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1

유다 지파의 공격(사사기 1:1-8)

Ⅰ.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느 지파가 먼저 가나안 족속들을 쳐서 다른 지파들에게 힘을 주고 원기를 돋우어 주어야 할지를 하나님의 신탁에 물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였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가 그들을 지휘했고 모든 지파들은 그에게 순종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를 이을 후계자가 없었고 그가 가졌던 권위를 차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판결의 흉배에 문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에서 나오는 명령을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시요, 또 친히 저들의 대군의 주(主)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질문한 물음은 "누가 먼저 올라가리이까?" (1절)하고 것이다. 당시의 그들은 너무나 많은 무리여서, 그들이 차지한 땅은 너무 협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의 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적을 향해 나아가야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어느 지파가 먼저 무기를 잡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각 지파들이 앞장서기를 바라고 그 영예를 차지하기를 서로 다투었는지, 아니면 앞서기를 두려워하여 뒤로 빠지려고 했는지 그것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공통의사에 의하여, 누가 그 영예를 차지하고 그 과업을 완수하기에 가장 적합한가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 직접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Ⅱ. 하나님은 유다 지파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명하였고, 그들에게 성공을 약속했다.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2절) 즉 그 땅은 그의 소유가 되겠고 원수를 그의 손에 붙여 멸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유다 지파가 왜 이 싸움에 먼저 올라가야만 했던가?

1. 유다 지파가 가장 수가 많고 가장 강한 지파이었다. 그래서 유다 지파로 하여금 이 모험을 먼저 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부여하신 능력에 따라 사명도 맡기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가장 능력이 많은 자들에게서 가장 많은 일을 기대하신다.

2. 유다는 제일 존귀를 받는 지파이었다. 그러므로 의무에 있어서도 제일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형제들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지파가 유다 지파였다. 그러므로 모험적인 일에서도 지도자가 되어야 할 지파 또한 유다이다. 영광에는 사명의 짐이 따르는 법이다.

3. 유다가 제일 먼저 나섰다. 제비 뽑는 결과 유다가 제일 먼저 시작해야 했다. 그러므로 유다가 먼저 싸워야만 한다.

4. 유다는 우리 주님이 태어나신 혈통의 지파이었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에서도 유다 지파의 사자(lion)이신 그리스도가 그들 앞서 나가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제일 먼저 어두움의 권세에 도전하였고 그것을 물리치셨다. 이것은 우리의 싸움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다. 우리가 "정복자 이상" 이 되는 것은 바로 그분 그리스도안에서 이다. 봉사와 성공은 병행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유다가 올라갈 지니라,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게 하라. 그러면 그는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붙인 것을 보게 되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이 성공케 하시지 않으시면, 유다의 봉사는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유다가 열심히 자기 사명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를 성공케 하시지 않을 것이다.

Ⅲ. 이리하여 유다는 올라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의 형제요 이웃인 시므온 지파(이 지파의 땅은 유다 지파의 땅에서 분할되었다)에게 자기와 함께 하기를 간청한다(3절).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가장 강한 자라 할지라도 자기보다 약자의 도움을 멸시할 것이 아니라 청하여야 한다. 유다는 모든 지파들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지파이었고 시므온 지파는 가장 보잘것 없는 지파이었다. 그러나 유다는 시므온의 우의를 구하여 그의 도움을 청하였다. 머리는 발에게 "나는 네가 필요없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가 하나의 지체" 들이기 때문이다.

2. 남에게 도움을 청한 자들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세도 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리하여 가나안 사람들을 대항하여 이스라엘인들은 서로 돕게 되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서로 다른 종족들이라 할지라도 사탄의 나라와 싸울 때는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해야 된다. 이와 같이 사랑으로 서로 돕는 자들은 하나님이 은혜스럽게 서로를 도와주게 된다.

Ⅳ. 유다와 시므온의 연합군대가 전투에 참가했다. "유다가 올라갔고" (4절) 시므온이 그와 함께 했다(3절). 아마도 이 원정의 최고 지휘관은 갈렙이었을 것이다. 늙은이의 머리와 젊은이의 손을 가졌고 또 늙은이의 경험과 원기를 가진 사람으로 서 갈렙만큼 적합한 사람이 누구이겠는가(수 14:10, 11) . 그 다음 귀절에서 찾아 보면(10,11절), 갈렙에게는 아직 자기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땅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그의 이름만 들어도 온 마음을 다하여 충성할 수 있는 대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복된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누가 올라가서" 그들(가나안)과 싸우겠느냐" 고 상의하고 있을 때, 이미 가나안 족속들은 한 집단으로 결속되어 강력한 집단을 형성했으며, 또한 자기들에게 공포의 이름이 되어 있던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분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상처를 악화시킨 결과 밖에 되지 아니한 것이다.

Ⅴ. 하나님은 그들 유다와 시므온에게 큰 성공을 허락하셨다. 그들이 적군에게 침입해 들어갔던지 혹은 적이 먼저 그들에게 도전해 왔던지 간에, 여호와께서 저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다(4절). 비록 유다의 군대가 강하고 담대하다 할지라도 승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나안을 파멸시킬 능력을 주신 것이다. 그들의 힘에 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의 명령에 순종케 하신 것이다. 패트릭 주교는 우리가 여기에서나 그밖의 성서에 나타난 신성한 역사 안에서 보는 바와 같은 승전에 관한 종교적 표현기사는 이교의 저술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와 같은 경건한 고백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이 중지되지 않기를 바란다.

1. 이제 우리는 가나안 군대들이 베섹 또는 그 근방의 전투에서 어떻게 무참히 참패했는가를 보게 된다. 그 베섹은 나중에 사울이 총회 장소로 삼았던 바로 그 장소이다(삼상 11:8). 그들은 만 명이나 죽었다. 그렇다면, 이미 기세가 꺾인 그들을 크게 약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2. 우리는 그들의 왕이 붙잡혀 어떻게 곤욕을 당했는지를 본다. 그의 이름은 아도니 베섹인데 그것은 베섹의 군주라는 의미이다. 자기들의 땅에 이름을 붙인 자들이 있었다(시 49:11).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땅의 이름을 따라 자기 이름을 붙였다. 그는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그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그 왕이 싸움을 하지 못하도록 엄지손가락을 잘랐고 도망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엄지발가락도 잘랐다(6절). 불행한 한 인간에 대한 승리는 이토록 가혹했다. 그는 이스라엘인들의 처분에 맡겨졌었다. 그러나 그는 열성적인 가나안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은 악행을 자행한 자이며,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이미 들어 알고 있은 듯하다. 조세푸스(Josephus)는 "그들이 그의 손과 발을 잘랐다" 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상처로 인하여 그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를 정도 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에게 행한 이 모욕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의 의를 자백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7절).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해 볼 수 있다.

(1) 아도니 베섹은 지금까지 대단히 위대했으며, 전쟁에 매우 유능하여 적군들은 그 앞에서 모두 도망을 쳤었다. 또 자기 집에서도 대단한 자였으니, 왕들이 그의 개들과 함께 앉아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자신이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극도로 비참하고 치욕적인 단계로 떨어졌다. 이 세상은 얼마나 가변적이며 높은 자리는 얼마나 잃어버리기 쉬운 가를 생각해 보라. 가장 높은 자라도 교만하지 말며 가장 강한 자라도 안심하지 말라. 죽기 전에 얼마나 비극적인 처지가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2) 그는 그의 이웃들에게 매우 가혹했다. 그는 70명의 왕들을 자기 포로처럼 마음대로 다루었다. 한 도성의 우두머리이었던 그가 왕이라 불리웠고, 그의 밑에 있는 왕들의 호칭의 위대성은 오히려 그들의 치욕을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며, 그가 그들을 모욕함으로써 그의 교만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우리는 아도니 베섹이 이 작은 70명의 군왕들을 단번에 그의 노예로 삼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점차로 통치해 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찬탈하고 능욕 하였을 것이며, 아마도 그들 중 많은 왕들이 연이어 그를 반역한 동일한 도성의 왕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들을 자신의 야만적이고 전제적인 환상으로 기분내키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를 자아내게 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서 피흘린 자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폐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그 땅의 정복을 대단히 용이하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아도니 베섹을 정복함으로써 유다는 결과적으로 70명의 왕들을 정복한 셈이 된다" 라고 말했다.

(3) 다른 사람들을 대하던 그대로 공정히 그는 대접을 받았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의 섭리 중에서 죄에 대한 응답으로 벌을 주시고, 그 심판에서 형편성을 이행하신다. 즉 약탈하는 자는 약탈을 당할 것이요 "속이는 자는 속임을 당할 것이다" (사 33:1).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 2:13; 계 13:10; 18:6 참조).

(4) 그는 하나님이 행하신 의를 매우 정직하게 인정했다. 즉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나님이 그의 채찍으로 양심을 깨우칠 때 그것이 어떻게 죄를 기억나게 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인정하게 되는지 보라. 교만으로 하나님을 무시한 그가 이제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가 자기 좋을 대로 왕들을 상 아래 두고 지켜 보던 그대로 그는 상 아래서 그들에 대하여 후회의 빛을 보이고 있다. 그는 그가 그의 포로들에게 행한 대우보다는 선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같이 보인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의 손발을 잘랐을지라도 (" 눈은 눈으로 손은 손으로" 라는 보복의 법칙을 따라) 이스라엘 부스럽기를 줍도록 그를 상 아래 두지는 않았다.

Ⅵ. 예루살렘 정복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가 기울여저 있다(8절). 흠정역 번역자들은 여기서 말한 것을 이전 여호수아 시대에 행한 것이고, 다만 여기에서는 아도니 베섹이 죽는 기회를 따라 다시 한번 반복했을 뿐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그들이 예루살렘을 쳤다" 고 해석하고 있고, 이 귀절을 삽입구로 묶어 두고 있다. 그러나 원문은 이것을 현재 일어난 사건으로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또한 가장 합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일은 이스라엘 전체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이 아니고 여호수아가 명령한 유다 자손들로 말미암아 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실제로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 세덱을 정복하여 살해하였다(수 10장). 그러나 거기서 정복하는 동안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정복했던 이웃의 왕인 이 아도니 베섹이 그것을 소유했을 것이다. 이제 그 성은 이스라엘의 수중에 들어왔고 그들은 주민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성곽 내로 도망한 자들은 제외했으며 다윗의 시대까지 그냥 두었다. 또 그 성에 깊이 감염되어 있는 우상 숭배를 혐오하는 표시로서" 그 도서를 불태웠다." 그러나 아마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고 그들이 들어가 살아야 할 만큼의 편리한 주택들은 남겨 두었을 것이다.

 

1:2 없음.

 

1:3 없음.

 

1:4 없음.

 

1:5 없음.

 

1:6 없음.

 

1:7 없음.

 

1:8 없음.

 

1:9

유다의 승리(사사기 1:9-20)

우리는 여기에서 유다와 시므온이 획득한 영광스럽고 성공적인 전승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보게 된다.

1. 유다가 맡은 땅에서는 가나안족들이 많이 제거된 셈이었다. 그러나 철저히 제거되지는 못했다. "산지에 사는" 자들은 (예루살렘 주위에 있는 산지들) 추방되었다(9,19절). 그러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이들에 대항하여 그 땅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철병거" 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과 같은 내용이 여호수아 17장 16절에 있다. 여기에서 유다의 군사들은 실패한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여러가지로 용기도 많았지만 이 한가지 사건 때문에 그들 뒤에 따라오는 나머지 다른 지파들에게 줄 수 있던 좋은 영향력을 망쳐 버린 것이다. 그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안전치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시고 그의 철병거는 천천이나 된다는 것을 (시 68:17) 생각지 못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철병거도 불 앞에 마른 그루터기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분명히 가나안족을 대항하여 바로 이 원정을 시작할 때 철병거를 가진 자들까지도 예외 없이 그들의 손에 붙여 성공하도록 하시겠다는 신탁으로 약속하지 않았던가(2절). 그런데 그들은 신앙보다도 공포에 빠져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철병거에 감히 대항하지를 못했다. 한 번만 더 대담하게 나갔더라면 그들의 승리를 완성할 수 있을 그런 때에 그만 비참하게 군대를 후퇴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들이 달음질을 잘했는데 무엇이 그들을 막아 버렸는가(갈 5:7).

2. 갈렙은 헤브론을 빼앗았다. 그것이 비록 여호수아에 의하여 10년 혹은 12년 전 (라이트푸트박사의 계산에 따라)에 그에게 주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는 자기 개인의 사적인 이익보다 먼저 그 지파들의 안주를 위해 공무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야 그 땅의 주인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은 마지막으로 돌리고 타인을 위해 먼저 봉사하는 것이 선한 일이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은 적다(빌 2:20, 21). 이제 유다 지파들은 모두 헤브론을 빼앗는 일을 위해 그의 조력자로 함께 올라가서(10절) 이낙의 아들들을 치고는 그 땅을 차지하였다(20절). 그들은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다. 이제 갈렙은 그의 지파들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하여 드빌을 치고 그것을 유다의 자손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급하여 그 중요한 땅을 빼앗는 자에게는 자기의 딸을 주기로 하고 원정을 서두른다(11,12절). 옷니엘이 용감히 그 일을 맡아 그 성읍을 빼앗고 그 딸을 얻게 되었다(13절). 그리고 그의 아내의 이익과 그녀의 아버지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대단히 좋은 유산을 얻게 된다(14,15절). 우리는 이 사실을 여호수아서 15장, 16-19절에서 이미 보았다.

3. 시므온은 자기 땅의 경계 내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의 땅을 획득하였다(17,18절). 시므온에게 할당된 땅의 동쪽 부분, 스밧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진멸하고 그곳을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 다른 저주받은 성읍들과 이것을 합쳐서 로르마- 파멸-라 불렀으니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민 21:2, 3). 그들이 남쪽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의 이 성읍들을 완전히 멸망시켰는데 이것은 그들이 서약한 맹약의 완전한 이행인 셈이었다. 그들은 서쪽 지경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성읍들이 가사 아스글론과 에그론을 취하였으니, 즉 그들은 당시의 성읍들을 모두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을 진멸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블레셋 사람들은 점차 성읍들을 회복했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고질적인 적수가 되었다.

4. 겐 사람들은 다른 족속보다도 유다족속을 택하여 그들과 함께 안주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유다족속이 가장 강했으므로 그들이 거기서는 안전하고 조용히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16절). 이들은 이드로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모세가 그들을 청했을 때 이스라엘과 함께 동행했거나 (민 10:29) 혹은 그들이 38년 후에 광야의 유랑에서 떠나 본토로 올라왔을 때 그 부근에서 그들을 만나 모세가 그들에게 그들도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몫을 얻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민 10:32) 그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올라왔을 것이다. 그들은 먼저 "종려나무 성읍" 곧 여리고에 자리 잡았다. 여리고는 결코 개축될 수 없는 도성이었다. 그러므로 건물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천막"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합하였다. 그러나 그후에 그들은 유대 광야로 옮겼고 그 장소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적적하고 한적하기 때문이라고 보며 혹은 그 종족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스라가 도피하였을 때 납달리의 땅에서 훨씬 북쪽에 있는 씨족으로 야엘의 장막이 있음을 볼 수 있다(4:17).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은 조용한 백성이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어디서나 안주할 수 있도록 했음을 말해준다. 아무도 괴롭히지 아니한 사람은 누구에 의해서도 괴로움을 당치 않을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임이라."

 

1:10 없음.

 

1:11 없음.

 

1:12 없음.

 

1:13 없음.

 

1:14 없음.

 

1:15 없음.

 

1:16 없음.

 

1:17 없음.

 

1:18 없음.

 

1:19 없음.

 

1:20 없음.

 

1:21

가나안 주인과의 혼합(사사기 1:21-36)

여기에서는 다른 나머지 지파들이 가나안족속들과 함께 거하게 됨을보게 된다.

Ⅰ. 베냐민 지파는 그들에게 배당된 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21절). 유다 지파는 그들에게 좋은 예를 보여주었고 그들로부터 큰 수확을 거두어들였다(9절). 그러나 이들은 결단이 부족하여 그 모본을 따르지 못했다.

Ⅱ. 요셉 집안은,

1. 다소 운반하여 벧엘을 차지했다(22절). 이 도성은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 언급되어 있다(수 18:22). 그러나 거기에서 보면(수 18:13) 이 도성은 그 지파의 경계구역 낭에 있는 도성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경계가 그 도상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으며, 그 도성의 절반은 베냐민에게 속하고 다른 반은 에바르임

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이 당시의 에브라임 지파들의 활동은 그 도성을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완전히 회복하여 완전히 자기들의 소유로 삼는 것이었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 도성의 제일 주요한 지역을 회복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후로는 그 도성이 열 지파들의 세력권 (베냐민은 그들 가운데 있지 않음) 안에 놓이게 되어 마침내 여로보암이 그 도성에다 자기의 송아지를 세울 만큼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브라임 지파의 벧엘 원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음으로써 오는 그들의 이익"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했다." 다른 지파들도 자기들의 정성만 다했더라면 여호와께서는 그들과도 함께 했을 것이다. 시리아역은 다른 여러 곳에도 있는 바와 같이 이것을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을 돕는 자가 되었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군대의 대장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몸을 이룰 때는 물론 이려니와 분리해서 활동할 때도 그리스도는 대장이다.

(2) 그 도성을 획득하기 위해 그들이 취한 현명한 태도. 그들은 첩자들을 보내어 그 도성 중 어느 부분이 가장 약한지 또는 어느 길로 공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지 살피게 했다(23절). 이들 첩자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자기들이 만나게 된 어떤 사람으로부터 대단히 좋은 정보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첩자들에게 일반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위험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여 방비 상태로 버려 둔 곳을 통하여 그 도성에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은밀한 통로를 가리켜 주었던 것이다.

[1] 라합이 첩자들을 환대하였을 때 비록 그들이 자기 나라의 원수이긴 해도 하나님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당했듯이, 그 사람은"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하신다." 는 것을 확신했고, 여호와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신 것이므로 그 땅은 그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면, 그들에게 그러한 정보를 제공했다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2] 뿐만 아니라 "그에게 자비를 베풀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생명 뿐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곳 어디에 가서든지 살 수 있는 자유를 준 그 지파들도 책망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선행에는 선행으로 보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병합되기를 원치 않았고 그들을 사랑하기보다는 두려워했는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는 헷족속의 땅으로 갔다. 그 땅은 여호수아가 침략했을 때 헷족속이 아라비아로 들어가 안주한 곳인 듯하다. 그는 그 헷족속과 함께 살기로 작정했으며 그들 가운데 한 작은 성읍을 세웠다. 아마 새로운 이주자들은 흔히 성읍을 건설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곳의 옛 이름 곧 벧엘 -하나님의 집 - 이전의 이름 루스- 편도나무-는 잘 보존되었다.

(3) 그들의 성공. 첩자들은 그들이 얻은 정보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전달하였다. 그것으로 그들은 유리한 입장을 얻게 되었고 벧엘의 거민들을 모두 칼로 전멸시켰다(25절).

2. 그러나 요셉의 족속들은 이 성취 이외에는 두드러질 만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1) 므낫세는 그들에게 배당된 대단히 훌륭한 몇몇 성읍들에서 가나안인들을 몰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몰아내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27절).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을 차지하여 물러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다. 므낫세는 그들을 풀어낼 만한 결단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순순히 물러난다는 것을 결코 생각지도 못한 일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이 처신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강성해진 후에 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자기들에게 공물을 바치게 하거나 개인의 종으로 하거나 하였을 뿐이다(28,35절).

(2) 에브라임은 강한 지파이면서도 그와 같이 훌륭한 성읍인 게셀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 중에 거하게" 하였다(29절). 혹자는 이것을 그들에게 조용한 정착을 허락한 것이며 그들에 조공을 멸하지도 아니하고 기본권을 허락해 준 것이라고 보고 있다.

Ⅲ. 스불론은 기드론와 나할론 거민을 축출하지 아니했다(30절). 스불론은 배의 항구가 되리라는 예언이 있었던 것을 보아 해상무역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스불론은 다만 그 거민들에게 사역을 시켰을 뿐이다.

Ⅳ. 아셀 지파는 어떤 다른 족속들보다도 더 나쁜 상태에 빠져 있었다(31,32절). 즉 그들은 그들 중 어느 족속보다도 가나안 사람들 수중에 더 많은 성읍들을 남겨두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사역을 시키는 대신에 가나안 사람들에게 굴종적인 태도였다. 본문의 표현방법에서 볼 때 아셀지파가 가나안 사람들이 숫적으로 더 많고 더 강한 것처럼 들리며, 아직도 그 땅의 주인은 가나안 사름들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만 그들 가운데서 곤란을 당하고 있음을 암시해 주기 때문이다.

Ⅴ. 납달리도 역시 그들 가운데 가나안 사람들을 거하도록 용납했고(33절),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사역을 했다.

Ⅵ. 단은 그에게 할당된 땅을 정복하지도 못했고 아모리 사람들과 대항할 용기조차 없었으며 그들의 세력에 몰려 산지로 쫓겨 들어가 거기에 거하였으나 감히 골짜기에 내려 오지도 못했다. 아마 그 지역에는 철병거가 있었을 것이다(34절). 게다가 산지에 있는 어떤 성읍들은 계속 단 지파를 대항하여 고수하고 있었다(35절). 이와 같이 그들의 소유자가 협착해지자 거기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라이스 지방에 가서 더 넓은 땅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18:1 이하).

야곱의 집안에서 축복받은 유다는 사자에 비유되었고, 단은 뱀에 비유되었다. 이제 유다는 그의 사자 같은 용기로 어떻게 번성하였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은 그의 뱀과 같은 지략을 가지고도 땅을 얻지 못했다. 기술과 인간적인 방법이 항상 꾀하는 대로 성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단 지파가 이루지 못한 일을 그의 이웃인 에브라임이 그를 위해 얼마간 성취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모리 족속을 부리게 되었다(35절).

전체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반적으로 그들의 의무와 이득에 대하여 대단히 방심한 태도였다. 그들은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축출하고 자신들을 위해 땅을 확보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1. 그것은 그들의 나태와 비겁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완성해야 할 정복의 수고를 담당하지 않을려고 했고, 행길 대로에 사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꿈꾸는 게으름뱅이와 같이, 또 바람과 구름때문에 씨뿌리고 수확하기를 두려워하는 게으름뱅이와 같았다.

2. 그것은 그들의 탐욕 때문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의 노력과 돈이 그들의 피보다는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저들을 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손발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살려 두었던 것이다.

3. 그들은 마땅히 두려워하고 싫어 했어야 할 우상 숭배를 두려워 하지도 않았고 싫어 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의 그릇이 가득해도 칼로 저들을 치는 것은 가엾은 일이라고 생각저들을 자기들 가운데 살게 두어도 해롭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저들 때문에 자기들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4. 그들의 조상들을 40년 동안이나 가나안 밖에서 헤매게 했고 이제 와서는 그 땅을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게 한 것은 다같이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불신이 그들의 유익을 상실케 했고 수천 가지의 불행을 초래케 했던 것이다.

 

1:22 없음.

 

1:23 없음.

 

1:24 없음.

 

1:25 없음.

 

1:26 없음.

 

1:27 없음.

 

1:28 없음.

 

1:29 없음.

 

1:30 없음.

 

1:31 없음.

 

1:32 없음.

 

1:33 없음.

 

1:34 없음.

 

1:35 없음.

 

1:36 없음.




































 


  1.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1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2.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2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3.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3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4.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4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5.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5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6.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6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7.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7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8.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8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9.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9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0.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0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1.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1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2.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2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3.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3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4.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4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5.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5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6.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6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7.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7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8.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8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19.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9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20.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20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21. 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21장

    Category사사기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