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여호수아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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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북부 동맹군들과의 대전 (여호수아 11:1-9)

우리는 여기서 여호수아의 또 다른 원정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이것도 비록 기적의 면에서 볼 때는 그 영광이 보다 못할지는 몰라도 성공의 면에서는 그 화려함이 결코 전자에 못지 않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사는 그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어 그들로 힘있게 행동하게 했었다. 복음선포로 수행되는 사탄의 왕국에 대한 전쟁도 처음에는 기적으로 출발되었다. 그러나 그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것이 충분히 증명됨에 따라 이 전쟁의 통솔자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혜의 도움을 따라 성령의 칼을 사용해야 하며 우박이나 태양의 정지 같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Ⅰ.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출진함. 그들은 공격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 전쟁을 이르키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진멸하는 일은 분명히 정당화될 수 있었다.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이 길갈 진영으로 돌아 왔었다. 그리고 이 왕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점령한 것으로 만족하고 앉아 있을 걸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죄인들은 자기 꾀에 의해서 파멸을 자초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의롭게 되며" 그들만이 영원히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유다는 이제 "노략물을 움키려 올라가는 사자였다. "만일 북부 지역의 왕들이 유다를 깨워 놓았다면 그것은 그들의 위험이다(창 49:9).

1. 몇몇 나라가 이 동맹에 가담했는데 "산지에 있는" 몇 나라와 "평야에 있는" 몇 나라들이었다(2절). 동서로부터 온 가나안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 등등으로(3절) 헌법이 다르고 그들간에 서로 이해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자기들의 공동의 적인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연합한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더 잘 일치하고 "더욱 지혜롭다. "교회의 원수들의 일치는 불화하고 분열하는 교회의 벗들을 부끄럽게 하며 그들로 하나가 되도록 힘쓰게 해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이 동맹의 우두머리는 과거에 아도니세덱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하솔당 야빈" 이었다(1절). 하솔은 이들 "여러 나라들 중의 머리" 였고(10절), 우발적인 악의가 아니면 반역할 수 없는 왕이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는 이런 사실이 잊혀졌고 또 간과되어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눅 23:12). 모든 임금들이 각자의 할당에 따라 병력을 몰고 나와 자기들의 병력을 함께 집결시켰을 때 그 병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굉장한 군대였으며, 민중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 "그리고 여기에다 그들은 굉장한 말과 병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막강하고 어마어마한 군대였다. 이와 같은 것은 남부 지역의 왕들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그들은, 단지 보병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전장에서 말이나 병거를 써본 일이 없는 이스라엘에 비해 굉장히 유리한 입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조세푸스는 가나안의 군대가 300,000의 보병과 10,000의 말과 20,000의 병거로 구성되어졌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일어나는 자들은" 언제나 "다수다." 그리고 숫자로 승리를 확신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만큼 더 많은 살륙을 당했을 뿐이었다.

Ⅱ.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격려하사, 그들이 선택한 전장에서 그들과 접전하도록 하시었다(6절).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의 용기는 주목할 만하다. 이 용기는 그가 받은 최상의 은사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듭거듭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주의를 필요로 한 것같이 보인다. 새로운 위험과 역경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새로운 지원과 위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말씀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이용되어져야 한다. 자기 곁에 하나님을 모신 자들은 원수들의 숫자와 세력에 당황할 필요가 없다. "우리를 대항하는 자의 숫자보다 우리와 함께 하는 자의 수가 더 많다.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가 소유한 여호와의 군대를 가지고 다. 이 격려에서

1.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승리를 약속하시고 그 시간을 정하신다. "내일 이맘 때에" (아마도 약속이 통하고 양쪽이 전쟁 준비가 되었을 때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을 붙여 진멸하리라.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의 칼에 진멸되도록 운명지어져 있었지만,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2.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의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 말들로 절룸발이가 되게 하며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러한 모욕을 가하도록 계획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이후로도 이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불에 타도록 작정된 썩은 나무로 된 병거들과 수레도 끌 수 없는 병신된 그들의 전마들을 보게 해 주라. 하나님께서 여기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이러한 격려는, 자기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해 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위험을 느끼고 있는 백성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은

(1) 적의 모사들을 어리석게 만드신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서로서로 없애어지지 않고 모두가 한덩이로 뭉쳐질 수 있었던 가나안의 모든 왕들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에 대항해서 동맹을 맺지 못하고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동맹이 되어져 있었다. 따라서 그 힘은 훨씬 약화되었다.

(2)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보다 적은 군대를 쳐부수도록 시작해서 보다 더 많은 군대와 대결할 채비를 갖추게 하신다. 처음에는 다섯 왕이 결속했으나 지금은 더 많은 왕들이 결속했다. 하나님은 시련에 따라 우리의 힘을 분배하시고 우리의 힘에 따라 시련을 분배하신다.

Ⅲ. 이 동맹한 군대를 향한 여호수아의 행군(7절). "그가 졸지에 습격했고", 진영에 있는 원수들을 경악케 했다. 그가 이렇게 급습한 것은

1. 그가 가까이 왔으리라고 생각지도 않고 있을 때 그들을 놀라게 함으로써 보다 큰 혼란을 야기시키려고 함이었다.

2. "내일 이맘 때에" 원수의 진지에서 그를 만나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영광을 절대로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도 하나님과 시간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Ⅳ. 그의 성공(8절). 그는 완전한 승리의 영광과 이점을 획득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도망치는 몇 갈래의 길로 갈라져 그들을 치며 추격했다. 얼마는 북서쪽에 위치한 시돈 쪽으로 도망을 쳤고 얼마는 동쪽 미스바가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군대를 보내어 각 길로 이들을 추격했다. 이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다. "그들은 개종자가 되든지 조공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총에 제물로 바쳐지도록(롬 15:16) 스스로를 이스라엘 손에 맡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의 정의의 희생 제물로 삼으사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부터나 혹은 우리들에 의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Ⅴ. 말과 병거를 파괴시키라고 하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함(9절).

1. 이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한 본보기였다.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은 그가 명령 받은 대로 순종해야 한다.

2. 이것은 자기 부정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재능과 기호를 말살해 버리는 한 본보기였다.

3.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의 한 본보기였다. 이 확신이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의뢰하는 병거와 말들을경멸해 버릴 수 있게 했다(시 20:7; 33:17).

4. 이것은 자칫하면 너무 지나치게 의지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될 것들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백성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확신을 심어 주려고 한 그의 배려의 한 본보기였다고 그것은 "오른 손을 절단" 해 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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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군 격파 (여호수아 11:10-14)

우리는 여기서도 앞 장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승리에 대한 활용을 보게 된다.

1. 하솔의 파멸에 대해서 특별하게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성은 그들 중의 왕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대담한 계획이 그 성 안에 있기 때문이다(10,11절). 하솔의 왕은 자기의 생명을 위해서 전쟁터에서 도망쳤던 것 같다. 그리고 자기 도성으로 돌아왔을 때 이제는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다른 길로 패주하는 군대를 따라 추격해 갔었다. 그러나 그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그의 함정이 되었다. 그 안에서 "그는 악한 그물에 사로잡히듯 잡히고 말았다. "거기서 그는 죽임을 당했고 그 때문에 그 성읍도 불태워졌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면 그 성의 나머지 사람들을 이스라엘 족속이 잘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이 그 성을 재건하고 동일한 이름을 지닌 다른 왕을 모시고 정주했다(삿 4:2).

2. 이 나라의 지역내에 있는 여타 성읍들에 대해서는 여호수아가 모두 정복했다라고 일괄적으로만 이야기되고 있다고 그러나 이 성읍들은 하솔의 경우처럼 불태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이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좋은 성읍들" 에 거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신 6:10). 그리고 바로 여기에 있는 성읍 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피와 재물속에 딩굴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1) 원수들의 피 속에서.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니" (11절)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14절). 이것은 아무도 가나안의 가증한 것으로 그들을 물들지 못하게 하고 또 그들이 이것들을 소유하는데 아무런 방해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도 죽였는데 이는 그들이 나중에 자기 부모들을 내세워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 원수들의 재물 속에서. 재물과 가축들을 "노략물로 탈취했다" (14절). 그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압제자의 재물로 부자가 되었으나 광야에서의 훈련의 댓라고 모두 지불되어졌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원수들이 쌓아둔 재물로 부자가 되어 가나안 땅에 정주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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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승리 재음미 (여호수아 11:15-23)

우리는 여기서 이 전체 사건의 결말을 보게 된다.

Ⅰ. 이 짧은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네 가지 사실이 되어진 것을 발견한다.

1.이스라엘 족속을 대적하는 가나안 사람들의 완강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다는 것이 이토록도 명백하게 나타났고 또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나안 족속들이 최악의 운명을 모면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버티었다고 평화에 관한 것들이 자기들의 이웃보다 더 좋다는 것을 깨달은 기브온 사람들, 단 한 곳 이외에는 화천을 맺으려고 한 성읍이 하나도 없었다(19절). 이것은 다른 성읍들도 헤어진 옷과 떨어진 구두가 아니라도 만일 그들이 스스로 겸손해지기만 했었다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보다 좋은 조건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해 준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평화의 조건들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이엄청난 어리석음이 어디서부터 오게 되는지를 듣게 된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러하게 하셨다" (20절). 바로의 마음이 처음에는 자신의 교만과 고집으로 완악해졌으나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파멸을 위한 의의 심판을 마련하심으로 완악해졌던 것처럼 이들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도 그렇게 되었었다.

그들의 다른 모든 어리석음을 형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방으로 만들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이스라엘을 수로 삼는 이 일을 하도록 버려두셨다. 그들을 파멸시킨 것은 "이스라엘을 대적해서 싸우러 나와", 먼저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은총을 받을 길이 없었다. "하나님의 정의를 격노시키고 또 그의 정의의 도구들을 자극시키는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바를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보다도 더 강한가?"

여기서 살펴보면 완악한 마음은 곧 죄인들의 파멸이다. 하나님의 경고에 우둔하고 강퍅하며 조심성이 없는 자들은 이미 멸망하도록 작정되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가서 그들의 마음을 살찌게 하라" 고 말씀하신 그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2. 이 전쟁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변(18절). "여호수아는 오래도록 전쟁을 치뤘다. "어떤 이들은 이 땅을 정복하는데 소비된 기간을 5년으로 보기도 하고 7년으로 계산하는 이도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하나님은 전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시고 그가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매번의 새로운 승리 때마다 자기의 능력과 선하심의 실례를 거듭거듭 보여주셨다.

3. 최후적으로 아낙 족속을 정복함(21,22절). 이 정복은 그들이 전쟁에서 부닥쳐 패주할 때 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아낙 자손은 일단 요새 속으로 은신했었기 때문에 그냥두고 나머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다 정박한 후에 마지막으로 그들을 찾아내어 멸절시킨 걸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산들은 이들 산에 사는 사람들의 거주지들이었다. 그러나 그 산들이 아무리 높아도 그 동굴들이 아무리 강해도 또한 그리로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또 이들이 아무리 용사들이라고 해도 여호수아의 칼에서 안전할 수는 없었다.

아낙 자손들을 멸절시킨 것이 특별히 언급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40년전 정탐꾼들에게 너무나 큰 공포의 대상이 되었었고 이들의 체구와 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에 도저히 당할 수 없는 난관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민 13:28, 33). 도저히 당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적도 정복되어졌다. 아낙 자손들도 그들의 날이 멸망에 이를 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거인들도 전능자에게는 난쟁이로 보인다고 그러나 아낙 자손들과의 이 투쟁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 기술에 있어 보다 노련해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게 될 때까지 전쟁의 끝 부분쪽으로 보류되어졌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난과 시험중 가장 어려운 시련은 훗날로 미루신다. 그러므로 "갑옷을 입는 자가 갑옷을 벗는 자처럼 자랑하지 못한다. "무서운 아낙 자손, 곧 죽음 그것은 부닥쳐야 할 마지막 원수이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되어지도록" 작정되어 있다(고전 15:26).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4. 이 긴 전쟁의 종결과 문제. 가나안 사람들은 멸망당했다. 그러나 그것은(우리가 사사기에서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완전히 멸망된 것이 아니라 일부가 멸망되었다.

(1) 그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점령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여호수아가 그 온 땅을 취하였으니!(16, 17절) 우리가 상상해 본다면 제비를 뽑아 땅이 분배되고 그래서 자기들이 살 땅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이 점령한 나라들 가운데로 가족들을 데리고 흩어져 나갔을 것이라고 본다. 아니라면 최소한 길갈 본부 아주 가까이 살 곳 있었던 사람들만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민족을 성가시게 구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23절).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가나안 민족과의 화친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그것은 금지된 것이었다). 그들로 부터의 평화를 누리게 됨으로 끝났다. 거기에는 안식 곧 전쟁으로 부터의 안식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남겨두신 것이었다. 전쟁이 끝날 때 그들은 모두 그 안식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Ⅱ. 여기서 이때까지 된 일과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이 비교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생각해 본다면 서로서로 설명된다. 우리가 여기서 면밀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1.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에 관해서 모세에게 내린 모든 훈령을 적어도 여호수아가 살았을 동안은 백성들이 그대로 순종했다. 이것이 얼마나 엄숙하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살펴보라(15절).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바로 그의 손으로 율법을 받았다),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셨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를 입법자로 세우신 그 분에게 충실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일을 다하고 그리고 죽었다. "그러나 모세의 명령이 그가 무덤에 있을 때에도 지켜졌는가? 그렇다 지켜졌다. 여호수아가 그랬었다. 그는 모세를 대신해서 모세만큼이나 충성했었다.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히브리어 성경에는 "아무 것도 없애 버리지 않았다" 로 되어 있다).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을 하지 않은 채 버려두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들이 행하여야 될 하나님의 명령을 말소시키거나 무효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훈계들을 실행함으로써 신명기 27장 26절의 표현처럼 그것을 "확증했다. "여호수아는 위대한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순종보다 더 칭찬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자기들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지배받아야 한다. 그 때에 그들의 능력은 참으로 그들의 명예가 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여호수아가 여기서 칭찬받는 그 경건한 순종은 특별히 가나안 족속을 파멸시키고 "그들의 제단을 헐고 우상들을 불태우라" 는 명령에 관한 것이다(신 7:2-5; 출 23:24; 34:13). 여호수아는 만군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사울왕의 불복종, 곧 그의 부분적인 복종은 그의 왕국을 잃게 했었다. 여호수아는 그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가장 주의 깊고 정확하게 지킨 걸로 설명되고 있다.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모세가 그에게 명령한 대로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에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일을 생각함으로써 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을 누렸고 그를 부요하게 하고 잘 살게 하는 모든 노휙물과 승리보다도 이것을 더욱 가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2. 이 정복과 관계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모든 명령이 여호수아에게서 성취되었다(23절).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땅을 취하고" 그것을 정복하고, 그 땅을 소유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열방들을 쫓아내고(출 33:2; 34:11) "그들을 엎드러지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신 9:3). 그런데 그것이 지금 이루어졌다. 그리고 약속의 말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성공과 기쁨은 그것들이 약속(이것은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되는 것이다)에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나오는 것임을 보게 될 때 그것은 우리에게 갑절의 기쁨과 위안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의 훈계에 유의한 것일 때는 그것이 하나님께 열납된다.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양심껏 감당한다면 우리는 약속의 성취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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