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군과 기브온의 대전 (여호수아 10:1-6)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가나안 땅내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되었고 아무런 큰 일들이 생겨나지 않았다. 그들은 기적에 의해서 여리고를 점령하게 되었고 전략으로 아이성을 점령했으며 기브온은 항복해서 들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들의 승리의 행진이 이들의 가나안입성의 화려함과 출발의 영광에 발맞추어 진행되지 않는 것 같이 보였다. 이들 가운데는 이 지연상태에 대해 초조하게 생각한 나머지 여호수아의 느린 행동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려 놓기도 하고 왜 자기들이 자기들의 원수가 동맹을 맺고 자기들을 향해서 맞서기 전에 당장 가나안의 중심부로 쳐들어가지 않느냐고 또는 자기들의 명성과 성공이 이토록 자자할 때 바보스럽게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고 대드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사려가 드디어 나태와 비겁과 사기의 부족으로 비난받게 되었다.
1. 그러나 가나안이 하루에 점령되어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조금씩 조금씩"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 내실 것을 말씀하셨다(출 23:30). 그를 믿는 사람은 절대로 서두르거나 혹은 자기가 기대하는 것만큼 빨리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단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2. 여호수아는 가나안 족속이 침략해 오도록 기다렸다. 그들로 먼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공격해 오도록 하라(아니면 이스라엘의 동맹이 되게 하라). 그러면 그들에게는 멸망이 있을 뿐이며 적어도 그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보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구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들을 진압하기에 충분한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수들이 먼저 일격을 가해 오도록 기다린다. 그럴 때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보기에도 정당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없다. 그들은 이미 기브온 족속이 어떻게 이스라엘 제대로 민족에게 은총을 입게 되었는가를 본 이상 그들은 자기들의 항거에 대해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3. 이스라엘이 이렇듯 조용히 쉬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리한 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 작은 왕들의 세력이 한꺼번에 뭉쳐지게 되면 이들을 보다 쉽게 일격에 파멸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항해서 동맹하도록 그 생각을 저들 마음 속에 불어 넣으실 때 바로 이 의도를 가지고 계셨다. 원수들이 서로 힘을 합하도록 계획했을지라도 여호와께서 의도하신 것은 그들을 타작 마당에 곡식단을 모으듯 저들을 모아 한꺼번에 타작하기 위함이었다(마 4:12)(" 잠간 머물러라. 그러면 더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말과 같이). 때로는 역설을 보이는 것이 올바른 사려있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한동안 가나안족속과 전쟁을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바로 기다리던 사건 하나가 터진다.
1. 다섯 왕이 기브온 족속을 대항해서 동맹을 맺는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이 동맹을 발설한 주모자였다. 그는 아주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이름은 "의의 주" 라는 뜻이다)아마도 "의의 왕" 멜기세덱의 후손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혈통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악인처럼 보며 특히 그의 조상 멜기세덱이 그토록도 성실한 우정을 보였던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대해서는 간악한 원수였던 것 같다. 그는 이들 왕들 중에서 가장 존귀한 제왕이며 가장 윗자리에 있다는 것 때문에 (아마도 여타 왕은 그를 의지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기들 가운데 가장 덕망있고 힘이 있고 그리고 싸움 잘하는 이 왕을 존경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여리고와 아이성이 정복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들중에 가장 강한 도성의 하나였을 기브온마저 항복하고 났으므로-이것이 그를 경악시킨 주원인이었을 것이다. -자기 나라 안에 파고 드는 위험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잘 깨달았기 때문에, 멜기세덱은 자기 인근 왕들을 불러 모아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게 했다. 그래서 먼저 기브온을 대항해서 그가 모을 수 있는 온 병력을 집결시켰다.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이 일을 결심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1) 정책인 면에서. 그는 이 성을 탈환하고 싶었다. 그것은 이 성이 강한 성이며, 그리고 이 성이 누구의 수중에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그의 나라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2) 감정에서. 자기가 베풀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딴 마음을 품고 자기들의 나라를 배신하고 그들의 공통의 적을 도와 주었다는 핑계를 내세워 여호수아와 화친한 이 백성들을 징계함으로써 저들을 따르려고 하는 다른 나라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만들어 놓으려고 했었다. 이와 같이 사탄과 그 도구들은 하나님과 화친한 자들에게 대해서 전쟁을 걸어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고 그리스도에게로 전향한 사람들을 이탈자처럼 대우하더라도 이상히 생각지 말라. "
2.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이 처해 있는 곤경과 위험에 대해 여호수아에게 전갈을 보낸다(6절).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과 맺은 동맹의 은전을 기대한다. 비록 그것이 기만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이 드러난 후에 다시 확인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자기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1) 도의심에서. 그들은 그의 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첫 번 인사에서(9:8).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라고 한 것과 같은 아첨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들은 종들이 되었다. 가장 불쌍하고 보잘 것 없는 자기들의 종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바로 할 수 있는 힘이 주인의 수중에 있을 때, 종들로 하여금 불행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은 주인의 의무다.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 보호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다윗도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시 119:94)라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도 하나님의 것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
(2) 명예상. 이들이 자기들의 원수와 싸우게 된 근거는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표시한 존경과 그들이 맺은 계약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는 이들이 공격을 당하는 것은 자기와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이들의 애착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들을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윗은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훌륭한 호소거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나이다" (시 69:7). 우리의 영적 원수들이 우리를 대항해서 진을 치고 우리를 삼키려고 위협할 때 우리는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과 기도로 우리의 여호수아되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힘과 은총을 구하자. 그러면 우리도 똑같은 평화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후 12:8, 9).
태양이 멈추고 (여호수아 10:7-14).
Ⅰ.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을 도울 결심을 하고 또 하나님께서는 이 결심을 북돋아 주셨다.
1. 그는 길갈로 올라갔다(7절). 즉 그는 기브온을 구하기 위해서 이 원정을 계획하고 결단하고 준비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첫발을 내딛기 전에 그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말씀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된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자기의 새로운 우방을 돕는 일은 관대하고 정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왕은 자기가 기브온을 공격할 때 여호수아가 이들을 도와 주리라고 하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기브온 족속들이 기만 작전에 의해서 동맹을 맺았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이들을 가나안 족속들같이 방기해 버릴 것으로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는 확신을 가지고(4절), 기브온을 치자고 말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을 살려 주겠다고 한 약속이 스스로가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죽음을 막아줄 힘이 자기 수중에 있을 때 그들이 살육 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보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잠 24:11, 12). 여호수아는 이들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신앙과 예배를 맏아들일 때 이들도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 받으려왔음을 알고 있었다(룻 2:1, 2). 그러므로 그는 자기 종들을 보호해야만 했었다.2.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일을 위해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다(8절). "두려워 말라. "즉
(1) "네가 하는 일이 선하고 너의 소명이 분명함을 의심치 말라. 비록 그 일이 기브온 족속을 돕는 것이긴 하지만 너는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진실로 너와 함께 하시리라. "
(2) "적의 세력을 두려워 말라. 비록 많은 왕들이 너를 대적하여 동맹을 맺고, 기브온을 없애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또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우게 되겠지만 실망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너의 손에 붙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파멸하도록 정하신 자들인즉 대항하지도 도망치지도 못할 것이다.
Ⅱ. 여호수아는 이 결심을 실행하며, 하나님은 이 일을 집행하도록 그를 도와 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1. 여호수아의 놀라운 근면과 적이 패배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 이 행위에서(1)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속히 구원하려는 호의를 보여 주었다(9절).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렀다. "이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는 지연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만일 이스라엘 지파 중 하나가 위험에 처했다고 해도 여기 기브온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것보다 더한 관심과 열성을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을 생각해 볼 때, 다른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개종한 이방인을 위해서나 본토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위해서나 간에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동맹한 왕들이 그들의 병력을 몰고 기브온을 마주 치기 직전에 여호수아가 이들에게 도착했다. 이 놀라운 사실이 그들을 너무나 당혹하게 했다. 이 원수들은 실제로 한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따라서 그 몸에는 목도 하나뿐이었다) 이 일에 있어서는 급히 서두름이 과거에 완만한 행동만큼이나 긴요한 일이었다. 그는 바로 이 총체적인 집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 일이 완숙해져서 실행하게 되었을 때는, 아무도 과거엔 느린 것처럼 보이던 여호수아만큼 신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여호수아를 향해서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룬다" 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당일에 기브온에 도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원수들을 치는 데에 여하한 유리한 입장도 놓치거나 혹은 자기의 새로운 동맹자의 기대를 빗나게 하거나 혹은 무관심했다는 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는 이 원정이 성공할 때까지 잠을 자지도 않고 졸지도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밤새도록 행군해 갔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데리고 간 병력도 힘쎈 용사들이었음이 틀림없다. 몸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견인불발의 사람들이었으며 이 일에 열심히 있는 군인들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이 피로를 견디어 내지도 못했을 것이며 자기들의 지도자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리며 "이것이 우리가 가나안에서 약속받은 나머지 몫들인가?" 라고 질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고난이 행복한 정착을 위해서 있는 것임을 잘 알고 또 거기에 잘 따라 주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도" 여기서 "역경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 가며", 자기들의 종교가 이따금 밤잠을 자지 못하게 할지라도 허망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게 될 때 그 때에 충분히 휴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이토록도 긴장하여야만 했는가?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원수들을 그의 손에 붙이시기로"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들의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대신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불러 일으키고 경주시키기 위한 것이다. 참 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데는 서두르지 않으나 그 일을 실행하는 데는 서두른다. 그것은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근면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온 힘을 다해서 공격할 때 그의 크신 능력을 나타내어 적을 파멸하신다(10,11절). 여호수아는 의기저상한 이 적들을 때려 부술 수 있는 충분한 수효의 막강한 군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원수들은 전쟁의 정해진 운명에 따라 패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 스스로가 이 크고 결정적인 전쟁에 나타나시사 가나안 족속들을 대항해서 하늘의 포문을 여셨다. 그것은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 것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도 아니며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로" 된 것임을 증명하려 하심이었다(시 44:3). 여호와께서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망케 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만을 했으나 실상 하나님께서 모두 맡아 하시었다.
[1] 하늘이 그들을 대항해서 싸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원수들이 얼마나 큰 공포와 혼동에 빠졌을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누가 하늘의 능력과 대항하며 거기서 피하며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참 하나님을 모욕했고 오직 창조주에게만 돌려야 할 경배를 피조물을 섬기는 데로 바꾸어 하늘의 별들을 경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명예를 약탈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늘의 천군들이 그들과 맞서서 싸우며 그들이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든 피조물의 한 부분조차도 그들을 대항해서 싸우며 그들의 파멸을 축하한다(렘 8:2). (오직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우리 스스로가 그의 사랑을 지키는 이외에" 세상에 어떤 피조물도 희생이나 제사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승리한 이스라엘 민족의 손쉬운 노략물이 되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2] 공포가 그들에게 엄습했을 뿐만 아니라 우박이 내려 그들을 크게 도륙했다. 이 우박이 너무나 크고 강하게 내렸기 때문에, 비록 이스라엘 군대가 부지런히 죽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칼에 죽은 숫자보다 우박에 죽은 숫자가 더 많았다. 하나님 자신이 욥에게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쌓아둔" 눈과 우박의 창고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욥 38:22, 23). 그리고 그것은 여기서 가나안 족속의 멸망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거대한 대포에서부터 발사되는 이 우박은 겨낭된 사람에게 영락없이 들어 맞으며 (이들과 섞어 싸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절대로 겨냥되지 않았다) 그것이 어디에 맞든지 간에 영락없이 죽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하며 어떻게 틀림없이 망하게 되는가를 살펴보라.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거기서는 빠져 달아날 곳이 없다. 어떤 이들은 벳호론이 기브온의 북쪽 아세가와 막게다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르은 뿔뿔이 달아났지만 그들이 어느 길로 도망치든 간에 우박은 그들을 추격했고 어디서든지 그들을 내리쳤다.
2. 여호수아의 위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능력은 기적적인 태양의 멈춤으로 절정에 이르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승리의 날은 연장될 수 있었고 적은 철저하게 패망하게 되었다. 우박은 그 높이가 구름보다 높지 못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도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왔다. 태양은 쉬지 않고 움직여서 온 땅을 비추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도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멈추어 친절을 베풀었다. 표징이 되는, "해와 달이 주의 나는 화살의 빛으로 인하여 그 처소에서 멈추었다" (합 3:11).
(1) 태양이 멈추도록 여호수아는 기도했다. 나는 이것을 기도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가 여호와께 말씀 드렸다" 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12절). 엘리야에게 있어서도 우리가 읽은 대로는 그가 단지 가뭄을 예언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왕상 17:1), 그것은 기도한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다(약 5:17).
[1]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을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 지칠 줄을 모른다. 그는 온 밤을 행군하고 온 종일을 전투했었다. 누구든지 잠간의 휴식과 수면을 취하고 싶을 것이며 자기 군대에게도 약간의 휴식을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혹은 고용된 사람과 같이 이토록 훌륭한 하루 일을 끝냈다면 열심히 그늘을 찾고 밤이 오는 것을 기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그는 낮의 연장 이외에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여호와를 앙망하고 그를 위해 일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 (사 40:31)
[2] 그는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그리고 정상적인 제도까지도 통제하시고 변경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 능력을 믿는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적이 이러한 기회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의 마음 속에 소망을 자극시킨 것으로 보아 여호와의 마음 속에 비상한 충동이나 자극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된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원하거나 기대한 것은 건방진 릴이 되었을 것이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드려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마음 속에 이 신앙을 불러 일으키시고 그리고 "너의 믿음대로 그리고 너의 믿음의 기도대로 너에게 이루어지라" 고 말씀해 주시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일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속에 불어 넣지 않으셨는데 그의 마음 속에 생겨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흔히 태양이 멈추어 줄 것을 원하기 보다는 완전한 승리를 이루기 위한 수천의 계획들을 그 마음 속에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증보의 역할을 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기도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사 그것을 구하게 하시며, 그가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위해서 간구하도록 하신다(겔 36:37)).
첫째로 "태양아, 머무르라" 고 말한 여호수아는 얼마나 위대한가!그의 조상 요셉은 태양과 달이 그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었다. 그러나 그것이 상징으로 이루어진 후에 그의 후손대에 이르러 그것이 문자적으로 다시 이루어질 꿈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기도는 이토록 권위가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와 약속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평범한 기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간에 이 목적을 위해서 신적 영감이 부여된 예언자의 기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구해지기만 하면 일반적으로 기도는 효능을 낸다는 것을 가르쳐 주며, 또한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사 45:11)고 한 기도의 존귀스러움을 우리에게 기억나게 해 준다.
그는 태양이 행동의 장소, 곧 전쟁의 장소인 기브온 위에 멈출 것을 명령한다. 그가 이 요구를 한 것으로 봐서 원수들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태양은 지금 저물고 있었다. 그가 일몰을 향해서 태양이 빨리 기울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낮이 더 길어질 것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왕의 왕이 되신 분의 이름으로 이것을 명령한다. 달도 머물렀다고 한다. 천체 전체가 다 같이 그 길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사실 태양이 비치는 도안에는 달은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아얄론 골짜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브온 근처에 있는 곳으로 아마 여호수아가 그 시간에 거기 있었던 걸로 생각된다.
둘째로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담대한 노릇이며 아주 강력한 신앙의 확신을 실증해 주는 것이다. 만일 이 사건이 요구대로 응답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이보다 더 큰 치욕이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틀림없이 그를 미쳤다고 단정지었을 것이며 또한 그도 이토록 무모하게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시해서 마음 속에 나타내 주신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태양아 멈추라" 고 하는 말을 두려없이 했었고 또한 그들에게 이 기적의 사건을 보도록 했었다. 그에게는 자기가 믿는 그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을 믿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제힘으로 진행하며 전속력으로 움직이며 "용사처럼 달리기를 즐기는" 태양이 즉시 멈추어 서리라고는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연의 왕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연의 기존 질서나 과정이 변하고 중단되며 하늘의 질서와 이 질서에 따라 움직이던 항구적인 관습이 깨어지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태양 아래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이 비상 사태에 있는 그들에게 두배의 낮으로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 동시적으로(물론 이것은 당연히 따라 오게 되어 있는 것이지만) 지구의 다른 한부분을 두배의 밤으로 놀라고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해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자에게 골고루 비치게 하신다" 라는 말씀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한 번만은 의로운 이스라엘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 불의한 자들은 태양이 멈추는 동안 보통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태양을 기다리게 하신 것이다.
(2) 이 기도에 따른 놀라운 응답.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대로 이루어졌다(13절).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추었다. "태양과 지구사이의 그 광활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의 한 마디에 태양은 즉시 멈추었다. 왜냐하면 하늘 위를 다스리는 하나님은 동시에 이 땅도 다스리시며 또한 자기가 기뻐하실 때는 "하늘들이라도" 여기에서처럼 땅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1] "종일토록 계속했다. "즉 태양이 다른 때 같으면 다시 돌아 올라울 만큼오랜 동안을 지평선 위에 머물러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 일이 일어난 때가 한여름쯤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는 태양과 태양 사이의 시간은 약 14시간 정도인데 이 날만은 약 28시간으로 길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사건이 일년중 낮이 가장 짧은 시기에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호수아가 낮의 연장을 원하고 기도했으리라고 하는 것은 더욱 있을 법한 일이다.
[2] 백성들은 원수들에게 충분히 보복할 수 있는 시간을 소유하게 되었고 따라서 원수들에게 완전한 패배를 안겨 주었다. 우리는 이따금 전쟁의 역사에서 밤에는 싸움이 끝나고 밤의 그늘은 피정복자들이 퇴각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하는 것을 읽어 보게 된다. 원수들의 이러한 도망의 이점을 막기 위해서 낮은 두배로 길어지고 이스라엘의 손은 원수들을 하나 없이 찾아 낼 수 있었다. "그에게는 밤도 낮과 같이 비취기 때문이다" (시 139:12).
[3] 여호와께서 기도와 신앙을 이토록 존귀하게 보시고 이스라엘을 이토록 존귀하게 하신 "이같은 날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결코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놀랍게 인간의 요구를 들어 주신 일도 없었고 또한 이토록 놀랍게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 일도 없었다.
[4] 이 일이 민족 시집인 "야셀의 집" 에 기록되어져 있다고 한다. 그 책 속에는 이 기회에 씌어진 시가 다른 시들과 같이 들어 있다. 아마도 "여호와의 전쟁기" (민 21:14)와 같은 책인 것 같은데 이것이 후에 야셀에 의해서 계속되고 완성된 것 같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서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르라" 라고 하는 이 말들은 아주 운율적인데, 아마도 야셀의 책에 있는 그대로 인용해서 이 사건의 대사로 사용한 것 같다. 여호수아의 책의 신적 증거를 한 인간의 작품인 야셀의 책에서 확증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수중에 그 책을 가지고 있었던 사라들은 그것을 이 역사의 이야기와 비교하는데 이용했을 것이며 또한 그것을 세속 역사에서 말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이용해서 신성한 역사의 진실의 증명을 정당화하는 것도 될 것이다.
[5] 그러나 태양이 멈추어 서는 이 엄청한 기적을 단지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들을 찾아내어 더 많이 살육 할 수 있는 보다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 그 이상의 어떤 뜻이 분명히 있다. 사실 이 일을 그 다음날 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하나님은 여기서 여호수아를 특별히 사랑하는 자로, 그리고 그가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는 자로 높이심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리고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그런 형의 인간으로 만드시려고 했었다.
둘째로 하나님은 여기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자기가 가나안에서 하시는 모든 일을 온 세상에 알리시려고 했다. 따라서 세상의 눈인 태양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거기서 하시는 위대한 일을 보아 두었다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길을 보고 "그 땅에서 이루어진 이 놀라운 일을 탐문할 때에" (대하 32:31) 보증하려고나 하는 듯이, 기브온과 아얄론 골짜기 위에 몇 시간 동안이나 멈추어 있어야 했었다. 이 소문은 모든 인근 나라들에 선포되어졌다.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보라" (시 46:8). 그리고 계속해서 말한다고 "땅 위에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이스라엘 나라처럼 위대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아마도 이일이 굉장히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가장한 기브온 족속들과 같은 경우가 아닌 진짜 사절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이스라엘과 우호 협정을 맺기 위해서 몰려들게 했을 것이라고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해와 달을 섬기며 이것들에게 신적 존귀를 돌리는 우상 숭배자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며 비록 그것들이 높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들보다 더욱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실증함으로써 저들로 하여금 믿게 하고 당황하게 만드시었다. 또한 이렇게 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우상 숭배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굳세게 만드시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우상 숭배에 빠질 것과 그리고 또 그렇게 함으로 스스로 타락하게 될 것을 미리 내다보셨다(신 4:19).
넷째로 이 기적은 (이것은 학자 피어슨 감독의 주장인데) 훗날에 세상의 빛이 어두운밤을 향해서 기울어 질 때 "의의 태양" 되신 우리의 여호수아가 솟아 올라와(말 4:2) 다가오는 밤을 막는 참 빛이 되실 것을 의미했다. 이 주장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적 원수를 정복하셨을 때 태양에 나타난 기적은 이것과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이 때에는 한낮에 태양이 떨어져 버린 것처럼 어두워졌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승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양 빛을 필요로 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 어두움을 자기의 누각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전쟁의 날에 태양과 달이 멈춘 것은 마지막 날, 주의 크고 두려운 날에 태양이 어두움으로, 달이 피빛으로 변할 것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동맹 5부족의 격파 (여호수아 10:15-27)
다섯 왕이 기브온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용감한 군대를 거느리고 전장에 집결했을 때는 틀림없이 용감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패배했었다. 처음에는 혼란을 당했고 그 다음에는 우박으로 파멸을 당했다고 그리고 이제 여호수아는 자기 릴을 끝내고 자기 군대를 데리고 본영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일은 아마도 전쟁 협의회에서 곧 결정되었고 그들은 점령한 성읍들을 점유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을때까지 "길갈의 진"으로 돌아와 있어야 했었다(15절). 그러나 그는 곧 더 많은 일이 그에게 맡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승리는 약탈물을 나눌 때까지 추적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그 일에 뛰어든다.
Ⅰ. 패주한 군대들을 추격하고 쳐부수어야 한다. 왕들이 숨어 있는 곳에 대한 정보가 여호수아에게 들어 왔을 때 그는 잠시 동안 보초를 세워 그들을 지키도록 명령했다(18절). 악인은 "남기워서 멸망의 날을 기다리게 함이 되고 진노의 날을 맞으려 끌려 나감이" 된다(욥 21:30). 그는 자기 부하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군대가 성읍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추격하게 했다. 그들이 도망가면 다시 힘을 회복하게 되고, 따라서 그들을 함락시키는 일이 좀더 어려워질 것이다(19절). 사려있는 장군답게 그는 가장 필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하면서, 정복이 끝날 때까지 그의 개선을 연기한다. 또한 그는 사로잡은 왕들을 욕보이는 것 같은 일은 서두르지 않고 우선 패주한 적들이 다시 집결되는 것부터 막으려고 했었다. 이러한 강인한 추격의 결과로
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크게 살륙할 수 있다.2. 그리고 그들을 전장에서 쓸어 버렸다. 그래서 성벽으로 쌓인 성으로 도망친 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살아 남지 못했다. 이들도 거기서 오래도록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또한 그들에게 공포가 따르는 한 그들이 은신한 성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3.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21절). 이러한 표현은
(1) 이들의 안전과 평온이 완전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이 성경을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았다" (출 11:7)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을 대적해서도 혀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승리한 후에도 어떠한 위험의 위협도 전연 당하지 않았다. 참으로 개 짖는 것 만큼도 위협을 당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원문에는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전쟁터에서나 추격에서나 간에 상해를 입은 사람이 없었다.
(2) 이스라엘의 명예와 명성을 의미한다. 어떠한 사람도 이스라엘 향해서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격노하는 원수들의 손뿐만 아니라 입까지도 멈추게 하시었고 그 입술에 침묵을 매달아 두셨다.
(3) 갈대아 역에는 이 승리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수한 기쁨의 표현을 이렇게 풀어서 읽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는 어떤 사람도 영혼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상처나 손실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군대를 점검했을 때 거기에는 죽은 자나 부상당한 자나 혹은 유기된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 중 누구도 친구나 사지를 잃어버려 슬퍼해야 할 일이 없었다. 그만큼 이 승리는 희생이 들지 않은 손쉽고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Ⅱ. 숨어 있던 왕들은, 하나님이 약속과 선물로 주심에 따라 이 땅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요구가 있는 대로 양도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반역한 죄로 심문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서
1. 그들이 어떻게 갇혀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이 도망쳐서 피난처로 숨었던 그 동궁이 그들의 감옥이 되었고 그안에서 그들은 여호수아가 심판석에 앉을 때까지 투옥당했었다(18절). 그들 모두가 우박과 칼에서 도망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셔서가 아니라 보다 더 엄격하고 무서운 형벌을 위해서 남겨두신 것뿐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바로도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서 애굽의 재앙에서 견디어내게 하시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었다(출 9:16). 그들은 모두 도망쳐서 같은 곳에서 만났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인도하셨다. 바로 최근에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의논하던 그들이 이제는 자기 보존을 위해서 새로운 의논을 해야 했고 그래서 같은 동료에게 피신하게 되었다.이 사실에 대한 정보를 여호수아에게 가지고 온 사람은 그 동굴의 굴들과 요새의 사정을 잘 아는 그 나라의 사람들이었음에 분명하다.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거기에 가두어 둔 배려는 이 행동의 열기 가운데서도 여호수아의 지모를 실증해 주며 그의 지성의 됨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왕들의 계획은 결과적으로 스스로 기만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피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멸을 보여준다. 그들의 거짓 피난처는 그들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도록 넘겨 줄 뿐이다.
2. 그들이 어떻게 패배당했는가를 보게 된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동굴에서 끌어내어 공개 법정에서처럼 자기 앞에 앉히도록 명령하고 그들의 이름을 점호산다(22,23절). 그들이 결박당한 채 설 수가 없어서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는지, 혹은 목숨을 살려달라고 스스로 땅바닥에 부복하고 있었는지 그 경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이 때 여호수아는 장군들과 용사들을 불러내어 이 왕들을 짓밟고 그들의 목숨을 발로 밟으라고 명령했다. 이 일은 스포츠로나 혹은 자기들과 회중을 즐겁게 하려고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의 봉사자가 되는 엄숙과 예의를 갖추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의 자만과 용기를 만족시키지 않고 가장 높은 자보다도 더 높으사 "방백들을 진흙 밟으시는 것같이 하시며" (사 41:25), "땅의 모든 왕들을 두렵게 하시는" (시 76:12)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했었다.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에서 이러한 치욕의 상태로 불시에 떨어진 이 사람들을 이렇게도 지독하게 멸시하는 것은 야만적인 것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또한 면류관을 썼다니 머리가 직접 여호수아에 의해서가 아니라(그것 쯤은 차라리 견디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적어도 그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군대의 장관들에 의해서 짓밟혀진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분명코 이 일이 전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경우만은 특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수가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지시와 고무에 의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1)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 왕들의 가증할 만한 악들을, 그들의 죄악의 양이 이제 가득 찼기 때문에 벌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가나안 족속들의 괴수들인 이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취해진 이 정의의 공적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크게 두렵게 하사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나라들" 의 가증한 죄악을 모방하려고 하는 유옥을 받지 않게 하시었다.
(2)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모세를 통한 약속을 성실하게 이루시려고 하셨다. "너는 그들의 높은 곳, 즉 그들의 큰 인물들을 밟으리로다" (신 33:29). 이 말은 우리가 기록에서 보는 대로 모세의 바로 최후의 말이기 때문에 더욱 빨리 문자적으로 성취되어져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아직도 그들 앞에 나아 있는 전쟁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과 소망을 북돋우어 주시려고 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라고 말했다(25절).
[1] "지금 그들에게 이러한 모욕을 가했기 때문에, 너희자신에게 보복이 돌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위험 때문에 이 왕들이나 이들의 상속자들을 두려워 말라. 사실 이러한 생각은 자기들의 수중에 있는 그 사람들을 향해서 무례하게 굴지 못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전쟁의 불확실한 운명이 언제 똑같은 운명을 자기들에게 불려들여 오게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 전쟁의 복수로 해서 어떤 일이 생겨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2] "어느 때에라도 너희들을 대적해서 동맹을 맺는 왕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너희들은 그토록 무섭다고 생각했던 이 왕들을 끌어내려 놓고 있지 않은가. 여호와께서 너희 모든 원수들에게 이같이 하실 것이다. 이제 그들은 망하고 있고 너무나 깊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목을 너희들이 밟을 수가 있지 않은가!그들은 절대로 이기지 못하고 너희 앞에 엎드려질 것이라고 (에 6:13)확신할 수 있다. "
(4)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어두움의 세력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를 통한 신자들의 승리의 예표를 주시려고 했다. 구속자의 모든 원수들은 "그의 발등상" 이 되게 하실 것이다(시 110:1; 시 18:40 참조). "땅의 왕들이 그를 대적하나" (시 2:2) 조만간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복종하게 되며(히 2:8), 또한 그가 "정사와 권세들" 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을(골 2:15)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승리에서 우리는 정복자 이상이 될 것이며 "사자와 독사를 밟고" (시 91:13), "땅의 높은 곳들을 달리며 (사 58:14), 평화의 하나님이 사탄을 우리의 발아래 밟히게" 하실 것인데, 그 일은 조만간 이루실 것이며 기필코 이루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롬 16:20; 시 149:8, 9 참조).
3. 그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아마도 그들이 이스라엘 장관들에게 짓밟히는 처참한 굴욕을 겪었을 때 이미 아각처럼 말할 각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여러 사람에 의해서 가해지는 이 형벌이 족하도다. "이들의 명예가 그들의 생명, 즉 그들의 박탈당한 저주받은 생명을 구할 수가 보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칼로 치고 그들의 시체를 저녁까지 매달았다가 끌어 내리고 "그들이 숨었던 동굴에 던져 넣었다(,27절). 그들이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먼저는 그들의 감옥이 되었고 그다음에는 그들의 무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친 그 곳이 우리를 실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에게는 무덤도 "피난처" 가 된다(욥 14:13). 만일 이 다섯 왕들이 제때에 스스로 겸손하여져, 전쟁을 일으키는 대신에 평화를 간구했더라면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건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명령이 발한 이상 그들은 "회개할 곳", 혹은 심판을 취소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구했다" 고 해도 이것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여호수아의 연전연승 (여호수아 10:28-43)
우리는 여기에서 여호수아가 획득한 잇단 승리를 어떻게 전진시켰으며, 또 그가 이것을 통해서 획득한 이점이 무엇인지 보게 된다. 이런 일을 랄 한다는 것은 장군으로서 칭찬할 만한 점이다.
Ⅰ. 여기에는 여호수아가 직접 점령한 몇 몇 성읍들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1. 그가 전장에서 정복한 이 왕들의 셋 성읍, 즉 라기스 (31,32절), 에글론(34,35절), 그리고 헤브론(36,37절)을 직접 가서 탈취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 예루살렘과 야르뭇은 이 때에 취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병력이 너무 피곤했든가 혹은 그들이 얻은 걸로 만족해서 나머지 두 곳은 취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성들을 손쉽게 함락할 수 있었다니 제일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리고 나서, 훗날에 이 성들을 점령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었다(사 1:8; 삼하 5:6).2. 그는 또한 세 개의 다른 성읍과 왕도들을 점령했다고 다섯 왕들이 도망쳤던 곳 인근에 있었던 막게다와 립나와 드빌은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이 왕들을 추격해서 그곳까지 가게 되었기 때문에 급격하게 파멸을 당했다(28,29,30,38,39절).
3. 왕을 잃어버린 라기스를 도우려고 병력을 이끌고 온 한 왕은 자기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는 격이 되었다. 그는 게셀 와 호랍이었다고 그는 자기 이웃에 대한 우정에서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여호수아의 군대의 진행을 막으려고 하다가 자기의 모든 병력까지도 멸절당했다(33절). 이와 같이 악인들은 이따금 자기 자신의 꾀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방해하다가 그 심판을 더 빨리 자초하게 된다.
Ⅱ.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서 함락되어 그들의 수중에 들어온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40-42절). 초기에 그들이 획득한 가나안 땅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그 대부분이 후에 유다 지파의 몫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살펴보면
1. 여호수아는 이 성읍들을 점령하는데 굉장히 신속하게 했다. 혹자는 이것을 이야기하는 화법(話法)이 빠르고 간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호수아는 번개같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뛰어다녔다. 비록 이 성읍들이 전부가 마지막 극한 상황까지 버티고 또한 성문을 열어준 도성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순식간에, 여호수아는 단 하루나 이틀 동안에 이 성들을 모두 자기 수중에 넣었고 항복을 받았고 노획했다(28,32절). 이제 그들은 자기들의 군대의 패배와 왕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사려 있게 계속 강타를 가했다. 우리가 부지런하기만 하고 우리의 기회를 증진시키기만 한다면,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 낼수 있는지를 여기서 깨닫게 된다.2. 여호수아는 자기가 정복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가혹하게 했다. 그는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사납게 공격했고 "모든 사람을 칼로 진멸했다" (28,30,32,35절 등).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모두 진멸하였고" (40절)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군사적 처형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명려하신 대로 했다(40절). 이 하나님의 명령은 그들을 잔인하다는 악명에서 충분히 건져내 주고 구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일을 거룩하게 해 주고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한 봉사의 한 부분을 감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1) 가나안 사람들이 계속 저질러 온 우상 숭배와 다른 가증한 일들을 증오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 그들에게 내리신 엄청난 파멸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분노하게 만들었는가를 우리로 하여금 판단하여 알게 한다.
(2) 하나님은 여기서 이토록 많은 사람의 생명까지 희생시키면서 즉 "백성들로 그들의 생명을 대신하게" (사 43:4)하시면서까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자기 사랑을 밝히려고 하셨다. "이 포도 나무를 위해 열방을 쫓아내셨을" 때(시 80:8)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풍성히 나타나게 되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위해서 자기의 피조물의 생명을 이토록도 많이 희생시키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하는 영원한 신세를 지고 있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3) 이것은 주 예수의 은총의 풍성함을 업신여기는 모든 완악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원수들의 최후적이고 영원한 파멸을 예시해 주고 있다. 그들은 영원히 그의 진노의 막중함을 느껴야 하고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나라들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해서는 어떠한 욕이 돌아가서도 안 된다.
3. 이 원정에서 거둔 큰 성공. 이들 성읍들의 노략물은 이것들을 약탈한 군사들에게 분배되었다. 그리고 성읍들은 그 주변의 땅과 더불어 곧 지파들에게 분배되어졌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이다(42절). 만일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맡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승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때 이긴다. "만일 그가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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