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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모세의 축도(신명기 33:1-5)

첫째 귀절은 33장의 표제이다. 그 표제는 축복이다. 모세는 32장에서 저들의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공포를 발하였으므로, 32장은 애가와 애도 및 비통으로 가득찬 에스겔서와 같은 장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런 것을 무마하고 자기가 분노 중에서 작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축복을 첨가하고 평강을 남긴다. 그 평화는 화평의 아들들 중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임할 평화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서 마지막으로 행하신 일은 본장의 모세처럼 서로의 우애 속에서 작별한다는 표시로서 제자들에게 축복을 하신 일이었다(눅 24:50).

1. 모세는 한 예언자로서, 곧 "하나님의 사람" 으로서 저들을 축복하였다. 하늘 나라에 관계된 자들의 기도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을 알자. 그것이 곧 "예언자의 상급" 이다. 모세는 이 축복에서 자기 백성에게 자기의 축원을 발표할 뿐 아니라, 예언의 영에 의하여 저들에게 일어날 일까지도 예언하고 있다.

2.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한 어버이로서 저들을 축복하였다. 어진 임금은 그 백성들에게 어버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임종시의 야곱이 그 아들들을 축복하였는데(창 49:1) 그의 모본에 어긋나지 않게, 모세도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난 각 지파들을 축복한다. 이것은 비록 저들이 가증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고 할지라도 축복의 상속권이 상실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가 죽기 직전에 이 일을 행함은 그들에게 더 한층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비록 자기는 죽어야 하고 그들과 동참할 수는 없으되 저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자기의 호의를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세 축복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율법주실 때에 나타내신 당신의 영광스런 현현과 그것으로 인하여 저들이 누렸던 위대한 이익을 장엄하게 묘사해 주는 말로 시작된다.

Ⅰ.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엄위가 눈에 선하게 나타나 있으니, 가히 무신론자와 불신앙인을 깨우치고 침묵지킬 만하며, 아주 우둔하고 경솔한 자들을 각성시키며 감동시키기에 족하고, 다른 신들에게 은밀히 이끌리는 모든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주기에 충분하였다(2절).

1. 하나님의 현현은 영광스런 모습이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행하실 때 에는 태양처럼 빛을 발하셨다. 얼마간 거리에 떨어진 두산 세일과 바란까지도 시내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조명을 받았고, 그 빛을 다소 반사하였으니, 그 현현하심은 너무나도 휘황찬란하여서 인접한 나라들도 매우 주목하였었다. 예언자도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섭리의 기이함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였다(합 3:3, 4; 시 18:7-9). 예루살렘 탈굼은 이것을 진기하게도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려고 하강하셨을 때 먼저 그는 세일산에서 에돔인들에게 율법을 제시하였으나 저들이 그것을 거부하였으니 이는 저들이 그 안에서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바란산에서 이스라엘인들에게 그것을 주셨으나 저들 또한 그것을 거절하였으니, 이는 그 율법 안에서 너희는 도둑질 하지 말라는 조항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시내산으로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율법을 주셨고 저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저희가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는 것이다. 나는 탈굼의 고대성만 아니라 이런 근거 없는 허구를 옮겨 적지도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종자(從者)들도 영화스러웠다. 하나님은 에녹이 오래전에 그가 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마지막 날에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바와 같이 당신의 일만 성도와 함께 강림하셨다(유 14). 이들은 천사들이었고, "그 거룩한 곳" 에 여호와께서 계셨던 "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병거들" 이었다(시 68:17). 저들은 존엄한 하나님을 수종드는 자들이었고, 그 날의 엄숙한 의식에 봉사하도록 고용된 하나님의 하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저희에게 전달된 것" 이라고 일컬어진다(행 7:53; 히 2:2).

Ⅱ. 하나님이 저들에게 당신의 율법을 주셨다. 그 율법은

1. 불같은 율법이라 일컬어진다. 이는 율법이 불 가운데서 저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며(신 4:33), 또 그 율법은 불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율법을 받으면 무엇이나 녹으며 따뜻하게 되고 깨끗게 되며 부패의 더미를 태우게 된다. 만약 율법을 거절하면 무엇이나 완악하게 되며 시들게 되고 고통을 주며 파괴하게 된다. 성령이 불의 혀같이 임하였었다. 그것은 복음도 또한 불같은 율법인 까닭이다.

2. 율법은 "그의 오른 손으로부터 온다고" 일컬어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석판 위에 율법을 썼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율법의 권능과 에너지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 율법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것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할 것이다. 혹은 율법은 저들에게 내린 선물이었으니, 귀한 선물 즉 오른 손으로부터 내리는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3. 그것은 하나님이 저희를 위해 품으셨던 특별한 친절의 한 본보기였다. "진실로 여호와께서는 백성을 사랑하셨다" (3절). 그런고로 그것이 불같은 율법이었을지라도 "저희를 향해" (개역과 다름) 있는, 곧 저들에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2절). 마음에 씌어진 하나님의 율법은 거기서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임을 명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그의 은총의 선물 중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참으로, 그는 그 백성을 안으셨으며 "가슴에 품으셨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가장 자애로운 하나님의 사랑을 뜻할 뿐만 아니라 가장 따사롭고 주의깊은 보호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의 모든 성도들이 그의 수중에 있도다." 혹자는 이 귀절이 시내산에서의 사건을 특별히 의미한다고 본다. 거기서는 너무나 두려움이 극심하여 모세까지도 떨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보살피사 했다(신 4:33). 아니면 그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을 그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셨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듯이, 그가 저들을 형성하고 주조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곱별이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은 것처럼 (계 1:16) 저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엄호받고 보호되며 사용되고 처리됨을 뜻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성도들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계시니, 비록 그의 성도가 일만이 있다 할지라도 (2절), 바다를 측량하시는 그의 손은 능히 저들 모두를 장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크시고 충분히 강함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그들을 그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음" 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요 10:28).

Ⅲ. 하나님은 당신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저들이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셨다. "그들이 당신의 발 아래에 앉았으니", 이는 흡사 학생들이 스승이 자기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을 겸손히 청종하고 시중하며 존경하는 표시로 그 스승의 발앞에 정좌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기슭에 앉아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든 간에 듣고 준행할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어떤 자는 이 귀절을 저들이 "당신의 발에 달려들었다" 고 해석한다. 그것은 시내산의 두려움으로 인함이요, 그것으로 인해 저들이 그 당시에는 당분간 스스로 크게 겸손해 하였다(출 20:19). 그 때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 채 서 있었고 또 율법이 여호수아 8장 34절에서와 같이 저들에게 공표될 때에 또 다시 그러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우리가 다시 또 그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큰 특전이요 은혜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선포하여 알게 하였고 또 선포하여 알게 할 것이니라" (요 17:26). 그래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저희의 기도와 그 밖에 살아있는 신탁에 의해서 계속 율법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감사하여 율법 그 자체와 아울러 그 율법을 가져다 준 모세를 영광되이 기억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4,5절). 시리아어 의역본 두 가지는 "이스라엘 자손이 말하되, 모세가 우리에게 한 율법을 명하였도다" 라고 해석한다. 또 유대인이 말하는 바로는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대로 그 아버지는 "모세가 우리에게 한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란 말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1. 그들은 율법을 지극히 존하라는 교훈을 받았다. 그래서 그 율법을 "야곱의 총회의 기업" 으로 부르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1) 그들은 그 율법이 자기들에게만 특유한 것으로 보았다.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며, 이방 족속은 율법에 대한 지식도 없고 (시 147:20) 저들이 안다고 해도 이스라엘처럼 지켜야 할 의무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패트릭 주교의 말대로) "유대인들이 어떤 나라를 정복하면 그 피정복민 누구에게라도 모세의 율법을 모두 받아 들이도록 강요하지 아니하고, 단지 노아의 일곱 계율에만 복종하도록 요구하였다."

(2) 율법을 저들에게 상속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의 자손에도 물려 주어야 할 유산이다.

(3) 그들은 율법을 저들의 재산과 진정한 보물로 삼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총의 방편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우리는 훌륭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하게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부자이다. 여기에서 율법은 기업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은 저들에게 기업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며, 또 그것이 기업과 그토록 밀착되어 있어서 율법을 저 버리면 기업을 몰수당하게 되기 때문이다(시 119:111 참조).

2. 그들은 모세를 크게 존경하라는 교훈을 받는다. 그리고 모세가 그러한 영예를 자기 집안에 극한시키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모세의 이름을 더욱 더 잘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 제사장들이 "아론의 아들들" 이라 칭함을 얻었던 것처럼 모세의 후손들은 "모세의 아들들" 이라고 불리운 적이 결코 없었다.

(1) 그들은 모세를 자기들 민족에 대한 큰 은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는 "저들에게 율법을 명하였던" 것이다. 율법이 비록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모세의 손을 거쳐 전해졌기 때문이다.

(2) "그는 여수룬의 왕이었다." 그는 "저희에게 율법을 명하고 나서" 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율법이 잘 준행되고 있으며 실시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였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런 왕을 가지고 있으매 행복하였다. 그 왕은 저희를 다스렸고 저희 앞에서 늘 출입하였으나, "백성들의 두령들이 다 함께 모였을 때" 말하자면 국회에 모였을 때 유달리 위대하게 보였고, 모세는 그들 중에 주재하는 자가 되었다. 곡자는 이를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저희 왕으로 스스로를 공포하시고 저희가 여수룬, 곧 정직한 백성으로 지내는 동안은, 또 저희가 자기를 배척할 때 까지는 저희의 왕으로 계속 계실 터였다(삼상 12:12). 그러나 이것은 모세 자신에 관해 이해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좋은 정부는 어떤 민족에게나 큰 축복이 되며, 그들이 감사해 마지 아니할 만한 이유가 된다. 또 이스라엘이나 우리(영국)의 정부처럼 각 지파의 두령이 함께 모였을 때 여수룬의 왕과 지파들의 두령들이 권력을 분배하고 있는 헌법은 복되다 할 것이다.

 

33:2 없음.

 

33:3 없음.

 

33:4 없음.

 

33:5 없음.

 

33:6

르우벤과 유다에게(신명기 33:6-7)

Ⅰ. 르우벤이 축복을 선언하고 있다. 비록 르우벤이 그의 생득권의 영광을 상실했을지라도, 모세는 르우벤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수치당한 자를 모욕해서는 안 되며 처음부터 비록 그가 아무리 공정하게 오명을 쓰게 되었다 하더라도 불명예의 오점을 영속적으로 씌우고자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6절).

1. 모세는 르우벤 지파의 보존을 소원하고 또 예언한다. 비록 건너편 요단강 쪽 일선에 위치한 지파이지만 그래도 "살게 하여 주셔서, 그 이웃 민족에 의해서 멸망당하거나 그들 중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하소서." 라고 했다. 아마 모세는 여기에서 르우벤 지파 가운데서 뽑힌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자기 가족들을 떠나 자기들에게 이미 맡겨진 운명의 제비를 뽑고" 저희 형제들 보다 앞장서서 무장하여 건너갈" 준비가 되어 있는 진들이었다(민 32:27). "이 고귀한 원정에서 저들로 보호받게 하시고 저들의 머리가 싸움의 날에 엄호받게 하소서!" 하는 뜻이다.

2. 모세는 이 지파의 수가 증가 하기를 원하고 예언한다.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노라." 혹은 "그들의 사람 수가 많아지기를 원하노라." 즉 "수 많은 족속이 되기를 원하노니, 비록 저희가 다른 명예들을 놓쳐서 빼어 난 민족이 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저희로 번성하게 하소서" 하는 뜻이다. "르우벤 비록 그 사람 수가 소수일지라도 죽지 않고 살게 하소서." 그래서 패트릭 주교는 "그가 융성하기를 바랄 수는 없더라도 (창 49:4), 멸망치 않게 하소서" 라고 번역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시리아역 주석가들은 이 말씀을 저 세상과 관련된 말로 해석한다. 곧 "르우벤으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에서 살게 하시고, 두 번째의 죽음은 당치 말게 하소서" 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옹켈로서(Onkelos) 의 해석이다. "르우벤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살게 하시고 닥쳐올 세상에서 악인이 당하는 그런 죽음을 받지 않게 하소서" - 이것은 요나단과 예루살렘 탈굼의 해석이다.

Ⅱ. 유다의 축복. 유다의 축복은 레위보다 앞서 나오는데 이것은 우리의 주님께서 유다의 줄기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며, (라이트푸트 박사의 말대로)왕국의 권위가 제사장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축복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1. 유다 지파 전체에 관계되는 것이다. 모세는 유다 지파의 크나큰 번영을 기원하며 예언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며(대하 13:14, 15 참조). 저가 자기 분깃을 정하게 하시고, 그의 모듣 사업에서 번영하며 저로 자기 대적을 이기고 승리를 거두게 하실 것을 원한다. 유다지파는 기도하는 지파가 됨과 동시에 행동하는 지파가 되리라는 것이 당연지사로 여겨지고 있다. 모세는 "여호여, 저의 기도를 들으시오며 저가 하는 모든 계획에 성공을 베푸소서. 농경이나 전쟁에서 다 그의 손이 충만하게 하소서!" 라고 말한다. 기도의 음성은 항상 노력하는 손길을 수반하며, 그 다음에야 우리는 번영을 기대할 수 있다.

2. 그 말씀은 그리스도의 예표로서의 다윗을 특별히 지칭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며" (시 20:1)(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응답을 받았다" 요 11:4). 하나님은 저에게 그 원수들에 대한 승리를 주셨으며, 그가 계획한 큰 일 성공을 허락하셨던 것이다(시 89:20 이하). 게다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로 그를 인도하시리란" 기도는, "백성이 그에게로 모이리라" 는 실로에 관한 야곱의 예언(창 49:10)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시므온 지파가 축복에서 빠졌음은 야곱이 그를 낙인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레위가 하였듯이 자기 영예를 만회할 만한 아무 일도 하지 못하였다. 그 지파는 다른 지파에 비해 보다 더 심하게 광야에서 그 수가 감소되었는데 시므리는 바알브올의 일로 그 죄가 악명 높았던 자로서 바로 시므온 지파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시므온의 분깃이 유다의 분깃에 부속되어 있어서, 시므온 지파는 유다의 축복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70인 역의 어떤 사본은 시므온과 르우벤을 결부시키기도 한다. 즉 "르우벤으로 살고 죽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시므온은 그 수가 많아지기를 원하노라" 고 했다.

 

33:7 없음.

 

33:8

레위에게(신명기 33:8-11)

레위 족속의 축복에 있어서, 모세는 더욱 자유 자재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레위 지파가 모세 자신의 족속이라서 보다는(그는 자기와 레위 지파의 관계를 주목하지 않으므로) 그 지파가 하나님의 지파였기 때문이다. 레위의 축복은

Ⅰ. 본문에서 하나님의 "경건한 자" (8절)로 일컬어져 있는 대제사장과 관계된다. 그렇게 불리우는 것은 그 직분이 거룩한 것이었기 때문이고, 그 상징으로 대제사장의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 이란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1. 모세는 므리바에서의 죄(민 20:12)로 인하여 아론과 그 자손을 하나님께서 처치해 버리셨더라도 그것은 정당한 처사임을 인정하는 것 같다. 많은 주석가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내게는 반대로 모세가 다른 므리바(출 17:7)에서 백성들의 불평을 막는 데 보여 주었던 아론의 열성과 신실함 및 대담성을 하나님께 호소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일은 현저한 바가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눈여겨 보시고 아론에게 제사장직을 부여하셨음직도 하다. 모든 시리아역 성서의 해석자들은 그 말씀은 하나의 시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데에 의견이 일치한다. 그런데 아론은 "그 시험에서 완전했고 신실했고 이겼다" 고 한다. 그러므로 민수기 20장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2. 모세는 대제사장의 직분이 언제나 저들에게 남아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당신의 둠밈과 우림이 저와 함께 하게하소서!" 말라기 2장 5절에 나타나는 대로 제사장 직분이 그에게 주어진 것은 고귀한 일이었다. "주 여호와여! 그 직분을 결코 저에게서 빼앗지 마소서." 이같은 축복에도 불구하고, 우림과 둠밈은 저희의 바벨론 포수시에 상실되었으니, 제 2성전에서도 회복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시요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완전한 성취를 보았으니, 그 예표가 아론이었으며 영원 전부터 하늘 아버지의 품에 우림과 둠밈을 두고 계신 주님께는 대제사장의 직이 항상 함께 할 것이다. 훌륭하고 영속적인 조언자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둠밈의 우림과 통상적 순서가 여기에서는 거꾸로 뒤 바뀌어 둠밈으로 우림과 도치되었기 때문에, 또 여기에서만 뒤바뀌어 있음으로 해서 우림과 둠밈을 보통명사로 번역하고 있다. 즉 둠밈은 온전함을 의미하며, 우림은 조명을 나타낸다. 이것들이 주의 경건한 자와 함께 하소서! 즉 "주여! 대제사장은 언제나 공의로운 자와 지혜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사역자들이 명석한 머리와 정직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좋은 기도이다. 빛과 성실은 완전한 목회자를 만드는 것이다.

Ⅱ. 레위지파의 축복은 하급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도 관계된다(9-11절).

1.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이 지파의 열성을 추천해 보인다. 저들이 모세의 편(따라서 하나님께 편)을 들어서 금송아지의 숭배자들을 치고(출 32:26 이하) 그 죄악에 가담한 백성의 두령들을 처단하는 데에 있어서 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운 정을 두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이 세상에서 가진 친구들이 비록 가장 가까운 친치처럼 저희에게는 친절하였다고는 하지만, 만약 그 친구들이 우상 숭배자인 경우에는 살려 두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과 그 영광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다른 어떤 피조물에 대한 관심보다 항상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의 편만한 불의로부터 자기를 순수하게 지키는 자들과 자기들의 권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로 하며 "행악자를 쳐서 하나님을 지지하여 일어서는" 자들은 특별한 영광의 적을 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모세는 민수기 26장 11절에 나타난대로, 자기 아버지의 반역적인 일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고라의 아들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법도를 실행하여" "재앙을 그치게 한" 비느하스를 지목한 것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분은 하나님의 제단에서 최소한 번갈아 가며 끊임없는 시중을 책임지는 것이었으므로, 여태 이스라엘이 하듯 가족의 부양이나 돌보는 일은 할 수가 없었고 자기 가족들로부터 걸핏하면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저희가 항상 감수해야 하는 자기 부정이었다. 그래야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장직의 계약을 준수하며"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에게 가장 친근한 친척이나 관심사에 대하여 냉정해야 하며, 이 세상의 가장 친한 벗들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사역의 성취를 더 바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행 21:13, 20:24). 우리주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님과 형제들이 그 일을 중단시키고 그를 데려가고자 하였을 때, 그들을 알은 채도 하지 않으셨다(마 21:48).

2. 모세는 거룩한 일로 봉사하기 위해 이 지파에게 허용된 임무를 확증해 준다. 그것은 저희의 열성과 충절에 대한 보답이었다(10절).

(1) 저들은 하나님을 위해 백성들과 교섭하기로 되어 있었다. "저희는 당신의 법도를 야곱에게, 당신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거룩한 성회에서 율법을 읽고 설명하는 설교자로서와(느 8:7, 8) 그들 앞에 제출된 미심적고 어려운 사건들을 판결하는 재판자로서 행하는 것입니다" (대하 17:8, 9). 제사장들의 입술은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지식을 지켜야 하고, 백성들은 그들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한다(말 2:7). 예언자 학개도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제사장들에게 그 의견을 물었었다(학 2:11 이하). 설교는 교회를 처음으로 심는 데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심어진 뒤에 그 교회를 보존하고 교화하는 데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겔 44:23, 24).

(2) 저들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과도 거래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광을 기리기 위해 분향하고,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도 드려서 하나님의 은총을 얻어야 했다. 이런 것은 제사장들의 일이었으나, 레위인들이 이 일에 시중하며 도왔다. 저희의 분향과 제사의 혜택을 입을 자들응 부지런히 그리고 충실하게 그들이 들려주는 교훈을 준수해야 한다.

3. 모세가 저희를 위해 기도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11절).

(1) 하나님이 저희들의 재산이 번성하게 해 주셔서 저희의 생계를 위해 저들에게 할당된 것들이 저희에게 충분한 위안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주 여호와여! 저의 생업을 축복하소서!" 저희에게 내리신 양식은 아주 풍족하였고 저들에게 쉽사리 입수되었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그것을 축복해 주시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그로 인한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저희들의 분깃인고로 그 분깃에는 특별하신 축복이 따르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주 여호와여! 저의 덕을 축복하소서" 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주여! 저들에 대한 당신의 은혜를 늘이시사 저희가 저희 일에 더욱더 적합하게 만드소서."

(2) 저들의 봉사를 통하여 저들을 받아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손의 일을 받으시되, 그 자신을 위해서와 그가 사역하는 백성을 위해서 열납하소서!"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것, 그것은 인간들이 우리를 용납하건 않건 간에 우리의 모든 신앙 생활 속에서 우리가 누려야 하고 열망해야 하는 모든 것이다(고후 5:9).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타인들을 위해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3) 하나님께서 저들의 편이 되어 저들의 모든 대적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의 허리를 치소서" 모세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많은 원수를 가질 것이라고 가장하고 있다. 즉 어떤 이들은 저희의 독실한 믿음을 미워하여 저희에게 해를 끼치고자 꾀하겠고 또 어떤 자들은 저희의 생계를 시기하여 외람되이 그것을 박탈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또 저들이 그 공직을 수행함에 있어 저희를 반대하고 제사장의 판결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자들도 있으며, 또한 그 공직 자체까지도 엎어 버리려고 기도하는 자들도 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모든 그런 시도를 좌절케 하시며 오히려 그 장본인들 머리 위에 재앙이 되돌아가기를 기도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자들에게 대적하는 자들을 정녕코 심판하시고, 음부의 모든 흉계에도 불구하고 말세에까지 자기 교회 안에서 거룩한 직분을 유지하시고야 말 것이란 예언이다.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거역하고 나섰을 때, 그것은 이미 그의 죄악의 분량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삼상 22:18).

 

33:9 없음.

 

33:10 없음.

 

33:11 없음.

 

33:12

베냐민과 요셉에게(신명기 33:12-17)

Ⅰ. 베냐민에게 주는 축복이 있다(12절).

베냐민이 레위 다음에 나오는 것은, 제사장들의 일이 행해지는 성전이 베냐민 지파의 땅 가장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베냐민이 요셉보다 앞에 나온 것은 예루살렘(그 일부는 바로 베냐민 지파의 구역이었다.)의 존엄성이 에브라임 지파내에 있었던 사마리아의 존엄성 보다 상위에 속했고, 또 베냐민이 다윗과 여호와의 성전을 고수한데 반해 여타 지파는 여로보암과 함께 이를 버렸기 때문이다.

1. 베냐민은 여기에서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 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것은 그 지파의 조상이 야곱의 사랑을 입은 아들 곧 "그의 오른 손의 아들" 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진실로 복된 자들임을 명심하자. 첫 임금 사울과 위대한 사도인 바울도 이 지파에 속한다.

2. 모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안전하게 거하리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은 안전하다는 것을 기억하자(시 91:1).

3. 이 12절에서 암시되어 있는 바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이 이 지파의 경계 지방에 세워지리라는 것이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이 지파의 땅에 들어 있었다(수 18:28). 다윗의 도성 시온은 유다에게 속하기로 되있었지마는, 성전이 세워진 모리야 산은 베냐민의 땅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어깨 사이에" 거하시는 것으로 일컬어졌다. 이는 인간의 머리가 어깨 위에 있듯이, 성전이 그 산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베냐민은 지성소의 보호 아래 "종일토록 숨기워졌으니" (시 125:2)이로 인해서 지성소는 흔히 피난처로 일컬어진다(시 27:4, 5; 느 6:10). 하나님의 성전 곁에 거하는 베냐민은 그 곁에서 "안전히 거하였다." 성전의 이웃에 산다는 것은 복된 일임을 명심하자. 베냐민의 이런 정황이 다른 열지파가 배반했을 때 유다 지파와 결속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굳게 지키게 되었던 유일한 이유인 것 같다. 교회에 가까이 나아가면 나갈수록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더 멀어지는 자들은 부패하고 사악한 심령을 소유한 자들이다.

Ⅱ. 요셉에게 대한 축복이 있다. 거기에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다 포함되어 있다. 야곱의 축복에서도(창 49장) 요셉에 대한 축복이 가장 컸었는데 여기에서도 그렇다. 모세는 요셉 지파에게 주는 칭호를 창세기에서 차용하고 있는데(16절) 즉 그는 "자기 형제들 중에서 구별된 자" 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 말은 "저들 중에 있는 나실인" 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읽든, 그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저들 모두를 능가하는 요셉의 경건한 마음과 또 다른 자들의 지배자와 은혜자로 있던 애굽에서의 그의 존귀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형제들은 저를 종으로 만듬으로써 자기들로부터 구별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왕자의 신분으로 만들어서 저희보다 뛰어나게 구분하셨다. 여기서 모세가 바로 이 요셉 지파를 위해 기도하고 예언을 축복한 내용은 큰 풍요와 권세였다.

1. 큰 풍요(13-16절).

일반적인 면에서 보면, "그의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라고 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할당받은 땅은 매우 비옥한 곳이었는데도, 모세는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뿌려지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이 축복은 저들을 부요하게 하는 것이고 모든 풍부한 산출의 근원이 된다.



(1) 또 모세는 모든 하등 피조물에게서도 유익을 받게 해 달라고 창조주께 간구하면서, 이 두 지파들의 재산과 풍요에 도움이 될 세부적 조항들을 열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서 되어지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으므로 그렇게 되는 것인 까닭이다.

[1] 모세는 "하늘의 보물들" 인 비와 이슬이 철따라 내릴 것을 기원한다. 비록 그것들이 순전한 물에 불과하지만 얼마나 귀한 것인가 ! 만약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다면 땅 위의 소산이 모두 실패하고 끊어질 것이다.

[2] 풍부한 샘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땅을 비옥하게 하는 샘이 여기에선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깊음" (개역 :" 땅 아래 저장한물")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둘 다 "하나님의 강" 이다(시 65:9). 왜냐하면 그는 비의 아버지이며(욥 38:28), 특별히 "물들의 근원" 을 만드신 이이기 때문이다(계 14:7).

[3] 천체들의 좋은 감응을 기원했다(14절). "보배로운 결실" 들은 (이 말은 그 품질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훌륭한 종류의 의미한다) 활기를 북돋우는 태양의 열과 시원하게 하는 달의 습기에 의하여 싹이 트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도 한다. "저희로 하여금 여러 달 동안 해마다 맺는 과실을 거두게 하셔서, 자연의 운행에 따라 한 달에는 감람 열매를, 또 다른 달에는 대추를 얻게 하소서!" 등등 ......

[4] 다른 지방에서는 흔히 불모의 땅인 언덕과 산에서 조차 풍성한 산출이 있기를 기원한다(15절). 저희로 "옛 산의 주요 산품" 을 거두게 하소서! 만약 산들이 결실을 낼 수 있다면 그 산에서 열리는 열매들은 가장 먼저, 가장 훌륭하게 익을 것이다. 그 산들이 여기서는 옛 산이라 불리우는데, 이것은 다른 산들보다 시간적으로 그 산들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첫 소생과 같이 그 가치나 그 훌륭함에 있어서 저들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또 영원한 작은 산(언덕)이라 함은, 저들이 다른 산들과 같이 옮겨 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합 3:6), 저들 작은 산들의 풍성한 산출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5] 낮은 지대에도 생산이 있기를 기원했다(16절). "땅의 보물들을" 기원함. 비록 그 땅 자체는 무용하고 가치없는 물질 덩어리 같이 보일지 모르나,인류 생활의 부양과 안락을 위해서 땅에서는 귀한 물건들이 산출된다. "지면(地面)은 식물(食物)을 낸다" (욥 28:5). 그것은 우리의 몸이 거기에서 나왔고, 또 그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하는 영혼에게 "땅의 보물" 이란 무엇인가 ? 또 우리가 은혜에 은혜를 더 받게 되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충만함에 비하면, 땅의 충만함이란 무엇인가? 혹자는 모세가 기도하고 있는 이 보물들이 "그리스도께로 말미암은 하늘의 일들에서 보이신 영적 축복" 즉 성령의 은사와 은혜, 그리고 위로하심에 대한 예표라고 설명한다.

(2) 모세는 "가시 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16절). 곧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아니하던 그 가시 떨기 숲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출 3:2)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명령을 모세에게 주시던 그 하나님의 선의와 열락이 요셉의 모든 자들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비록 잠시 동안만 거기에 나타나셨었지마는, 그래도 그곳에 거하신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것은 그곳에 계실 필요가 있을 동안에는 계속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본문은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 있던 세키나의 은혜(선의)" 라고도 읽을 수 있다. 세키나는 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 비록 세키나가 떨기 나무 중에 잠시 동안만 거 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과는 계속 함께 거하였다. 또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 있는 나의 거주자" 라고도 읽을 수 있다. 그 때에는 이런 의미를 지닌다. 오직 모세에게만 나타내셨던 하나님적 위엄의 현현이요, 모세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여러 번 현현하셨으나, 자기가 곧 죽으려고 하는 마당에 있어서는 첫 번째로 자기에게 나타나신 일을 추억하는 것이 가장 흡족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모세가 전능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 된 때였고 하늘과의 교통을 처음으로 시작한 때였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요 "야곱과 이삭의 하나님" 이라고 공표하신 것도 가시 떨기 나무에서였고, 우리의 구주께서 출애굽기에서 인용하신 요지에서 나타난 대로 (눅 20:37) 몸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까지 이르는 그 약속, 곧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확인하였던 것도 이 가시 떨기 나무 가운데서 있었던 사건에서 부터 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가시 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 의 은혜를 기원할 때에는, 그 때에, 그 곳에서 새롭게 된 그 계약을 유의하였던 것이니, 그 계약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모든 소망의 기초인 것이다. 모세는 이 큰 축복을 하나님의 은총 또는 하나님의 호의를 비는 기도로 끝맺는다.

[1]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이 모든 축복의 원천이요 근원이기 때문이다.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 베푸시는 선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하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축복이 된다. 참으로 (요셉의 한 후손인) 에브라임이 "타락한 암소처럼"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려 실족했을 때에는, 그 땅의 모든 열매들은 저들이 바라던 하나님의 호의의 선물이 되기는 커녕 "넓은 들판에 있는 양처럼" 도살을 위해 살찌게 하는 선물에 불과하였다(호 4:16, 17).

[2] 하나님의 은혜가 이 모든 축복의 위로요 감미로움이었던 연고에서 이다. 우리가 저 축복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의를 맛보게 될 때에라야 우리는 거기서 기쁨을 얻게 된다.

[3] 하나님의 은혜가 이 모든 것보다 더 낫고 무한히 더 좋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호의를 얻는다면, 우리는 복되고 이 모든 물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편안하며, "무화가 나무가 꽃피지 않고 포도에 열매가 맺지 않는다 하더라도" (합 17,18) 우리 구원의 하나님안에서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요셉은 큰 권세를 축복받는다(17절). 여기에서는 그의 권세에 대한 세 가지 본보기가 예언되고 있다.

(1) 그의 형제들 중에서의 그의 권위 "그의 영광은 그의 첫 수송아지와 같도다." 곧 어린 황소와 같다는 것이니, 이런 황소는 위풍 당당한 짐승으로 서 이전에는 제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다. 모세를 계승한 여호수아는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고, 그의 영광은 진실로 찬란히 빛났으며 자기 지파의 영예가 되었다. 후일 에브라임 땅에는 열지파의 왕이 거주할 왕성이 서게 된다. 그리고 기드온과 입다와 야일도 므낫세 지파에 속한 자들로 모두가 자기 나라의 축복이 되었다. 혹자는 르우벤이 상실한 장자의 명분을 요셉이 양도 받았으므로 (대상 5:1, 2) 그가 첫 수송아지로 비유되었으며, 또 므낫세의 기업에 속한 바산이 황소와 암소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시 22:12; 암 4:1)" 그의" 수소의 첫 새끼로 비유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2) 원수들을 무찌르고 승리하는 그의 세력. "그의 뿔들은 들소의 뿔과 같도다." 즉 그가 전장에 투입하는 병력은 너무 강하고 두려운 것이어서," 이것으로 열국 백성들을 받을 것이다." 즉 그는 자기에게 거치는 모든 것을 무찌를 것이다. 저들이 호전적이고 용맹스런 지파였다는 사실은 에브라임 백성이 기드온과 다투려 한 이야기(삿 8:1) 및 입다와의 투쟁 기사에(삿 12:1) 나타나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에브라임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렸을 때 는 비록 "병기를 갖추고 무장해 "있을지라도 "싸움의 날에 물러"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시 78:9, 10). 왜냐하면 비록 여기에서는 "들소와 같이 강하고 담대한 자" 로 선포 되었지만, 하나님이 저희를 떠나실 때에는 저희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약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 요셉 지파의 수효. 에브라임은 비록 아우의 집안이었으나 야곱이 그 번성을 예견하고 손을 어긋맞겨 축수하였듯이 (창 48:19), 그 수효에 있어 우세하였다. "에브라임은 만만이요 므낫세는 천천이었다." 요나단의 탈굼은 이 귀절을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여호수아가 정복한 일만명의 가나인들과 므낫세 지파 소속의 기드온이 격파 한 수천의 미디안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있다. 또 예루살렘 탈굼이 이 17절의 전반부를 주석한 바는 주목할 만하니, 즉 첫 송아지는 결코 일을 시키지 않는 법이고 들소는 결코 길들일 수 없듯이 요셉은 언제나 자유를 계속 누리리라는 것이다. 저희가 죄악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팔아 먹지만 않았다면 저들은 계속하여 자유를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33:13 없음.

 

33:14 없음.

 

33:15 없음.

 

33:16 없음.

 

33:17 없음.

 

33:18

스불론과 갓에게(신명기 33:18-21)

Ⅰ. 스불론과 잇사갈의 축복은 한 데 묶여 행해졌으니 저희는 둘다 야곱이 레아에게서 얻은 아들이었고, 가나안에서 점령한 저들의 땅도 서로 이웃해 있었던 까닭이다. 저들에 대해 예언된 바는 다음과 같다.

1. 저들은 두 지파 모두 안락한 정착과 일자리를 가질 것이다(18절). 스불론은 기뻐하지 않으면 안 되니, 기뻐할 만한 이유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스불론이 밖으로 나가는 데에서 그 기쁨의 이유가 있을 것을 기원하고 있다. 이 나간다는 것은 전쟁으로 나가는 것을 뜻하거나 (그 이유는 "스불론이 들의 높은 곳에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위험을 무릅썼기 때문이요 삿 5:18), 또 바다로 나감을 가리키는 것이니, 스불론은 "배들이 매여 있는 항구" 였음으로써 이다(창 49:14, 15).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거주하는 경계를 다양하게 지정하셔서 어떤 자들은 도회지에 또 어떤 자들은 시골에 또 어떤 자들은 항구나 내륙의 읍에 살게 하시듯이, 대중의 이익을 위하여 상이한 여려 직업을 좋아하도록 인간의 취향을 지혜롭게 섭리해 주신다. 이것은 마치 우리 몸의 각 지체가 전체의 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위치하고 있고 또 거기에 적합한 구비 조건을 갖추고 있음과 같다. 어떤 이의 천재적 재능은 저들로 저술에 종사하게 하며 또 딴이들은 바다로 나가게 하고 또 딴 이들은 군무에 종사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농업을 좋아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또 다른 이들은 상업에, 또 어떤 자는 공업에 그 적성을 나타낸다. 또 그런대로 그것은 좋으니 "만약 온 몸이 눈이라면 어디에서 듣겠는가?" (고전 12:17) 스불론인 이 상인이고 잇사갈인이 농부였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공공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2) 우리의 지위와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의무이다. 또한 거기에 만족하며 기꺼워함이 큰 행복이다. 스불론은 밖에 나아가게 됨을 기뻐하게 하라! 그로 하여금 자기 이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며, 자기의 상품의 득실을 최대한 선용하게 하고, 잇사갈의 장막의 조용함을 부러워 말며 그 비천함을 경멸치 말라. "잇사갈은 자기 장막에 있음을 기뻐하라." 그로 하여금 자기의 은둔 생활을 기꺼워하며, 시골 구석에서 얻는 작은 이익에 만족하게하고, 스불론이 갖는 여행의 즐거움과 상업의 이익에 만족하게 하고, 스불론이 갖는 여행의 즐거움과 상업의 이익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불평하지 않게 하라! 모든 사업은 그 장단점이 있는 것이니만큼, 하나님이 의도하신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가에 우리는 그것에 전념 전력해야 한다. 우리의 분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진실로 우리 최상의 행복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사이다" (전 5:19).

2.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그 민족의 종교적 이익을 위해 자기의 위치에서 각각 공헌하리라고 했다(19절). "그들이 열국 백성을 산으로 부를 것이다." 즉 성전으로 부르리니, 이는 성전이 산 위에 세워질 것을 모세는 예견하였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나는 (대부분의 주석가는 그렇게 하지만) 이 귀절이 스불론에만 국한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스불론과 잇사갈이 각기 자기 직업이 주는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면, 왜 저희 두 지파가 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려 고심하였다고 생각할 수가 없단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두 가지 일을 행할 것이다.

(1)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여배에 초대할 것이다. "백성을 산으로 부름" 이다.

[1] 스불론은 인근 열방들에게로 나가서 그들과의 친숙과 상업을 발전시키는데, 이것은 저들의 이웃 민족에게 이 종교를 펼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이르도록 초청하고자 하는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이다. 대사업가나 활동이 큰 자들은 자기들과 교제하는 자들이나 자기 사업에 관여하는 자들에게 진지한 경건을 실천하도록 권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말 것이며, 그것도 현명하고 열성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렇게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그들은 축복인 연고이다. 외국과의 무역의 증대를 통하여 복음의 전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아마도 스불론에 대한 이 예언은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복음 전파까지도 내다본 것이리라. 그들은 스불론 경지에서 복음의 선포를 시작하셨고 (마 4:14, 15), 그래서 "그들은 백성을 산으로" 즉 "여호와의 전의산" 이라 불리우는(사 2:2) 메시야의 왕국으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2] 집에서 유하고 장막에 거하는 잇사갈은 자기 이웃들을 불러 신성한 잔치가 열리도록 지정된 절기에 지성으로 올라가라고 촉구한다(시 122:1). 이는 저희가 저희 이웃보다 더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고로(흔히 관찰된 바로는, 군중의 집합지인 항도에서 스불론과 같이 거하는 자들이 비록 종교가 주는 불빛은 통상 더 많이 받는다고는 하나 시골에서 잇사갈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는 자들은 그 종교가 주는 생명력과 열기를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이다.) 열성을 가지고, 더 많은 지식이 있는 자들을 자극시켜 거룩한 경쟁을 하도록 하거나 혹은 저들이 잔치를 위해 지정된 절기를 다른 지파보다 더 잘 준수하기 때문이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시리아역 주석의 하나는 앞 귀절(18절) 후반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네 학교의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고 읽는다. 이것은 저희 중 다수가 학자이어서 한 해의 주기에 따라 축제의 절기를 고시하기 위해 저들이 그 지식을 이용하게 된다는 가정하에 해석한 것으로서,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연력이 그렇게 흔하지 못하였던 까닭에 그와 같은 해석도 능하였다. 옹켈로스(Onkelos) 주석은 특히 이 부분을 더 상세히 해석하여 읽는다.

"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네가 예루살렘에서 있을 행사와 절기의 시간을 축정하러 올라 갈 때는 즐거워하라." 왜냐하면 그 때는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지성소가 있는 전의 산으로 모일 것" 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이 주석이 다윗 시대의 잇사갈 사람들이 가진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대상 12:32). "저들은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것을 아는 자들이라."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대상 12:33) 스불론 사람의 특성 즉 저들은 "전장에 출진하여 전쟁에 능한 자들" 이라는 귀절은 아마 이 신명기 33장 18절의 축복을 설명하는 것일 것이다.

밖에 있는 자들을 교회 안으로 인도해 들일 기회를 가졌던 스불론과는 달리,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자들은 그 나름대로, 잇사갈과 같이 집 안에 있는 자들을 재촉하고 격려하며 튼튼히 확립시키는 데 도움이 됨으로써 교회의 유익에 공헌할 수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또 사람들을 불러 하나님의 법도를 알게 하며 잘 잊어버리는 자에게는 그 법도를 기억하도록 가르치고, 따르기는 좋아하되 지도자가 되는 일을 싫어하는 게으른 자들을 고무시켜 분발하도록 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2) 그들은 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예배에 이르도록 초대할 뿐만 아니라 저희 스스로도 그 일에 열심히 참가할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의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저들은 딴 사람들만 성전에 보내고, 자기들은 사업을 버려 둘 수가 없다는 구실로 집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 기도 드리러 빨리 가라고 타인들에게 격려할 때는 스가랴 8장 21절에 나오는 대로 "우리도 또한 가리라" 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가 타인들에게 권고하는 선행에 있어서는 우리 스스로가 그 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의하라. 또 그들이 성전에 나아올 때는 여호와 존전에 빈 손으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저자들에게 번창하게 해 주신 대로,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를 위하여 헌물을 가지고 나와야 할 것이다(고전 16:2).



[1] 이 두 지파가 모두 부유해지리라는 것이 여기에 예언되어 있다. 바다로 배 타고 나가는 스불론은 "바다의 풍부한 것들을 흡수할 터인데, 바다는 상인들에게 어머니의 젖 가슴처럼 풍부하기 때문이나, 반면 집에서 체류하는 잇사같은 "모래에 숨겨져 있는 보물" 로 부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즉 이것은 땅에 내는 소산이나 금속과 광물들 따위의 지하 보물이나 바닷물이 밀어 올리는 비싼 물건들을 가리킨다. (모래라는 말은 바다의 모래를 의미하기 때문에) 또 잇사갈의 땅이 해변에까지 미치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백성을 산으로 부르는 일" 에 저희가 성공하리란 것은 아마도 "바다의 풍부한 것들을" 저희가 "흡수" 하리라는 데 암시가 되어 있으니, 우리는 이와 유사한 귀절이 민족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일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사 60:5).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이켜 오며" (5절) "너는 이방인들의 젖을 빨 것이라" (6절).

[2] 이 두 지파는 이렇게 부요하게 되어서 "저희의 소득을 헌납하며 온 땅의 대주재자에게 저희 재물을 바치리라고 예언되어 있다(미 4:13). 스불론의 무역에서 나온 "상품" 과 잇사갈의 "품삯" 은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해 바쳐질 것이다" (사 23:18). 이것은 저희가 그것으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 이기 때문이다. 그 두 제사는 율법에 따른 제사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영화스럽게 해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자. 그리고 하나님은 많이 뿌리는 곳에서는 그에 상응하여 많이 거둘 것을 기대하신다. 바다의 풍부한 것들과 모래에 묻힌 보물들을 흡수하는 자들은 그 능력에 따라 의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Ⅱ. 그 다음에는 갓지파의 축복이 나온다(20,21절).

이 지파는 모세가 그 때 있었던 요단 지경 그 쪽에 이미 자리 잡았던 지파중 하나였다.

1. 모세는 이 지파의 앞날을 예언하고 있다(20절).

(1) 갓이 그 당시 광대한 토지 분배를 받았듯이, 광대케 되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모세는 갓의 현재와 미래의 토지 면적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 지어다." 우리는 갓 지파 사람들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얼마나 광대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저희들은 하갈 사람들과 지극히 경건히 대적하여 그 전쟁을 수행한 것 같이 보인다(대상 5:19, 20, 22).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창대함에 대한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하다.

(2) 갓은 용맹과 승리의 지파가 되리라고 예언되며, 홀로 있을 때에도 사자와 같이 견고하고 담대하리라 했다. 또한 분노를 발하게 되면, 역시 사자처럼 "팔과 정수리를 찢으리라" 고 예언되어 있다. 즉 그는 자기 진로에 거치는 것이면 자기 대적의 팔이고 정수리고 할 것 없이 모조리 갈기갈기 찢으리라는 것이니, 여기서 팔은 힘을 뜻하며 정수리는 정책과 권세를 상징한다. 다윗 시대에는, 그 얼굴이 "사자 얼굴처럼 "생긴 갓인들이 있었다(대상 12:8). 혹자는 예후가 이 갓 지파 소속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예후에 대해 처음 나오는 언급이 라못 길르앗을 무대로 하고 있어 이 지역은 갓 지파에 속한 땅이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저들은 이것이 예후의 용맹한 행적과 유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왕하 9,10장).

2. 모세는 갓 지파에게 저희가 이미 행한 일과 그 때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칭찬을 하고 있다(21절).

(1) 그들은 자기들의 몫을 이미 정복된 땅에서 맨 먼저 택하였다. 이것은 저들 자신을 위해 매우 현명한 행동이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첫 기업을 택하였도다." 그가 비록 자기 동포 형제들에 대한 관심과 염려는 품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사랑은 자기 가장에서 먼저 시작하였던 셈이니 그는 자기 스스로가 먼저 배부르게 공궤받고 먼저 정주하기를 원하였었다. 갓 인들은 요단 저편 땅 할당에 대해서 가장 최초의 또 가장 능동적인 이주자였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의 역사에 있어서도 르우벤 인보다 먼저 이름이 나온다(민 32:2). 이렇게 해서, 다른 지파들은 정복자 여호수아로부터 자기 기업을 할당 받은데 반하여 갓과 그 동료는 율법의 제공자 모세에게서 직접 자기들의 기업을 받았었다. 즉 갓 지파는 율법에 의하여 자기 기업에 정주하도록 규정된 셈이다. 또 저희 중 전쟁할 수 있는 장정들이 자기 형제 동포와 함께 전진해 나간 동안에 뒤에 남은 자들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으로 저희는 (문자적인 의미대로)숨기움과 보호함을 입었다.

" 사람들은 네가 스스로를 위해 좋은 일을 할 때에 너를 칭찬하리라" (갓이 행했듯, 네가 너 자신을 위해 맨 먼저 선택할 때 이다)(시 49:18).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영혼 -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네 자신이다. - 에게 좋은 일을 할 때, 그리고 네가 율법을 만드신 이가 주는 분깃 중처럼 몫을 택할 때 너를 칭찬하시리라!



(2) 갓 사람들은 저희 형제 지파들을 위하여는 정직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행하고 있었다. 저들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그들보다 앞서서 무장하고 요단강을 건넜으니, 이것은 저들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 인들에게 "여호와의 공의를 행사" 하기 위해서였다(우리는 나중에 저희가 여호수아에게 엄숙히 복종을 맹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 1:12, 16). 저들이 이렇게 행한 것은 자기들에게 배당된 기업을 얻었을 때 저들의 행하기로 약속한 행동이였던 때문이다(민 32:27). 또 저들은 이 일을 선행하였다(수 4:12). 또 가나안 전쟁이 종결되지 여호수아는 저들에게 축복하며 돌려 보내었다(수 22:7).

우리가 형제들의 일에 협조하는 것은 특히 여호와의 공의를 행사하는 일로 조력하여 하나님께 가증한 자들을 진압하는 것은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임을 기억하자. 비느하스가 공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것은 이런 점에서였다.

 

33:19 없음.

 

33:20 없음.

 

33:21 없음.

 

33:22

단, 납달리, 아셀에게(신명기 33:22-25)

Ⅰ. 단 지파의 축복(22절). 야곱은 그의 축복에서 단의 교활함을 들어 뱀에 비유하였거니와, 모세는 단의 용기와 결단력을 보고 사자에 비유한다. 뱀의 머리와 사자의 가슴을 지닌 저들 앞에 무엇이 설 수 있겠는가? 단은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사자로 비유되고 있는데, 바산은 흉포한 사자의 유명한 산지이다. 그 곳에서는 사자가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있는 먹이를 덮치곤 하였다.

1. 이 귀절은 삼손이(그는 단 지파였다) 블레셋 인들에게서 거둔 승리들을 특히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손이 "사자 새끼와 같이" 아주 어릴 때에, "단의 진영 안에서 여호와의 신이 그를 감동하기 시작" 하였고, 그가 블레셋인들을 불시에 공격하여 사자가 그 먹이를 취하듯 온 힘을 다하여 저희를 압도 하였었다. 또 그의 첫 공적중 하나는 사자를 찢어 죽인 일이었다.

2. 혹은 이 귀절은(22절) 단 지파가 이룩한 보다 큰 성공을 가리킬 수도 있다. 곧 단 지파중 일단의 무리들이 가나안 지경중 그들에게서 가장 멀리 위치해 있던 레센 지방의 태평무사한 형편을 탐지하고는, 그곳을 습격하여 자기들의 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삿 18:27). 그리고 바산의 산악 지대가 그 성읍으로부터 멀지 아니 하였으므로, 아마 저들은 바산을 침입해 들어 갔을 것이고, 그 때문에 22절에서 "바산으로 부터 뛰어 나온다." 고 말하는 것 같다.

Ⅱ. 납달리의 축복(23절). 모세는 이 지파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칭찬하고 있다. "오! 납달리여! 너는 복되도다. 장차에도 복될 것이며 영원히 그러하리로다" 라는 것이다. 이 지파의 행복은 세 가지 일로써 구성된다.

1. 너는 "은혜가 족하리라" 혹자는 이것을 사람들의 은혜, 호의와 아름다운 말을 듣는 은총이라고도 한다. 야곱도 이 지파가 대체로 사랑스런 암사슴같다고 아름다운 말을 했고 예의 바르고 친절한 백성이라 묘사했다(창 49:21). 그런 저희는 과연 무엇을 받아야만 될까? 모세는 저희가 저희 이웃의 사랑을 받는 데에서 그 이득을 받는다고 예언한다. 따라서 저들은 은혜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자들은 사랑을 받게 된다. 또 달리 해석하는 자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만이 영혼이 배부를 만큼 족한 은혜이고 심령에 진정한 기쁨을 넣어 주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들이 진실로 복된 자들이며, 하나님 은혜안에서 만족함을 구하는 자들은 그 은혜를 얻을 것이다. 또 그것을 얻고 나면 만족을 느끼고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2. 너는 "여호와의 복이 가득하리로다." 곧 축복의 소산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따위의 좋은 물질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축복 그 자체로 충일할 것이니,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에 따른 은혜로 충만할 것이다. 그런 복을 받는 자는 스스로 가득하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들은 자기들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아무것도 더 필요가 없다. "납달리의 땅은(유대인들 말로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그 소출이 너무나 많고 생산이 계절에 앞섰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파는 자기소산의 맏물을 성전에 제일 먼저 가져오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한테서 맨 먼저 축복을 받았으니 이 축복은 곧 여호와의 축복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주로 거주하셨던 가버나움은 이 납달리 지파의 땅의 지경에 위치하였다.

3. 너는 "바다편(개역 : 난외에)과 남방을 소유하리로다." 이 귀절은 네 기업의 남방에 위치할 바다를 소유하리라고도 읽을 수 있다. 이 바다는 우리가 복음서에서 자주 대하게 되는 갈릴리 바다이다. 납달리 지파에게 큰 이득이 되었고, 이 지파 경내에 있는 동시에 갈릴리 해변에 위치하던 가버나움과 벳세다가 부촌임을 증거하게 된다. 이 축복들을 함에 있어서 얼마나 모세가 예언의 영에 인도함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지파의 기업을 제비뽑아 나누기도 전에 모세는 그 처리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미리 내다보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Ⅲ. 아셀의 축복(24,25절). 모세는 네 가지 일을 기도하며 이 지파에 대하여 그 이름이 나타내는 대로 복을 가져 오리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것은 레아가 이 지파 조상을, "나는 행복하도다" 라고 말하면서 아셀이라 칭하였기 때문이다(창 30:13).

1. 저희 자손의 수적 증가. 저들은 이제 무수한 수의 지파가 되었다(민 26:47). 그러나 "그 수가 더 많아지기를 원하노라. 아셀은 자녀들로써 복받기를 원하노라." 자녀, 특히 계약의 자녀들은 짐이 아니라 축복임을 기억하자.

2. 이웃 관계에서의 축복. "그가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리로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서 사랑과 호의를 받는 일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모든 심령을 그 손아귀에 장악하고 계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제목이며, 우리가 모든 자에게 선을 행할 능력과 기회를 갖는 대로 온유와 겸손과 기꺼이 행함으로 저희에게서 얻으려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3. 저희 토지의 풍요로움.

(1) 땅위에서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그가 자기 기업에서 그토록 많은 양의 기름을 얻어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을 뿐 아니라 그가 원한다면 자기 발도 기름으로 씻을 정도로 풍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 자기 형제에게 너무나 기쁨이 되어 주님의 발이 가장 값비싸고 귀한 기름으로 부음을 받은 사실이 누가 복음 7장 46절에 나타남을 볼 수 있다.

(2) 땅 아래에서 "네 신발 (혹은 문빗장)이 쇠와 놋 같은거라." 즉 "너는 네 자신의 땅에서 굉장히 풍부한 철과 놋(그 광산)을 얻게 되리니, 보기 드문 축복으로 인해 표면과 내부가 다 부하게 되리라." 는 것이다. 혹은 만약 저희 자신의 땅에서 산출되지 않는다면 외국에서 수입하게 되리란 것이다. 이 지파의 기업은 해변에 위치하였던 까닭에 이것은 가능하였다. 시리아역 주석은 이것을 비유적으로, "너는 쇠와 놋처럼 강하고 빛나리라" 고 해석한다.

4. 저희가 힘과 원기의 계속의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네가 힘이 있으리로다." 이것을 주석하여 "네 노년의 힘이 네 젊은 날과 같으리니, 너는 쇠함을 느끼지 아니하며 지칠 줄 모르고 네 청춘을 회복하리로다. 네 신발 뿐만 아니라 네 뼈도 쇠와 놋 같다면 그렇지 아니 하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자가 많다. 날이란 것은 흔히 성경에서 그날의 사건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기서도 네 날이란 귀절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한다고 하면 이 귀절은 하나님께서 저희의 처지가 어떻든 간에 저희가 시련과 고통을 당할 때는 은혜스러이 지원해 주리라는 약속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에게 주는 확실한 약속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부르신 자들에게 그 봉사와 수고에 따라 은혜를 주고, 우리를 지혜롭게 분배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너희가 자신에게 부과된 일거리를 가지고 있느냐? 너희는 그 일을 해 낼 힘도 얻으리라. 너희는 자신에게 지워진 힘든 짐을 지고 있느냐? 그러면 그 짐을 질 수 있는 힘도 주시리라. 그리고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결코 받지 않으리라!" 이처럼 약속해 주시고 이 약속에 소망을 두도록 하신 그는 신실하시다.

 

33:23 없음.

 

33:24 없음.

 

33:25 없음.

 

33:26

이스라엘 축복의 결론(신명기 33:26-29)

이 말씀들은 저 위대한 기록자요 대필자인 모세가 - 그가 친히 기록하였든 그가 부르는대로 누군가가 기록하였든 간에 - 여태껏 한 모든 말 중의 최후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아주 주목할 만하며 대단히 유익한 말씀임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그는 여태껏 존재한 어떤 사람보다 더 잘 하나님과 인간을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이유를 가졌던 분이다.) 그의 마지막 호흡을 하면서 이스라엘을 찬양한다. 그의 눈에는, 이 양자가 다 그 아무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일에 대한 그의 눈의 판단을 보아서도 그의 시력이 결코 쇠잔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Ⅰ.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다. 열방의 어떤 신들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신 일을 자기 경배자들에게 해 줄 능력은 없었다. "여수룬의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고 했다(26절).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가장 엄숙한 방법중 하나는 그와 같은 자가 없다고 고백하는 길이다.

1.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모든 민족은 자기 신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만큼 자랑할 수 있는 신은 어느 민족도 가지지 못하였다.

2. 이스라엘이 그러한 하나님과 계약을 맺게 된 것은 그들의 행복이었다. 모세는 다른 모든 닛들보다 여수룬의 하나님이 비할 수 없이 탁월하신 분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두 가지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1) 하나님의 최고 권세와 위엄. "그는 하늘을 타시고", 최고의 위엄과 위풍당당하심으로 궁창을 밟으신다. 하늘을 타신다는 것은 그의 위대성과 영광을 의미하는데, 그 안에서 그는 자기를 하늘 세계에 나타내시고 자기 자신의 의향을 하계에 전달시키심에 있어서는 하늘의 세력을 이용하시고 구름을 생산하신다. 사람이 자기가 타는 말에게 하듯이, 하나님은 인간들을 관리하시고 지시하신다. 하나님은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해 하실 일이 있으실 때면, 그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하늘을 타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일을 신속히 강력하게 추진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대적도 하늘을 타시는 자의 진로를 예기하고 막을 수는 없다.

(2) 그의 무한하신 영원성.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요, 그의 날은 "영원하다" (27절). 이방의 잡신들은 창안된지 오래지 않았으며 곧 소멸되어 버리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여수룬의 하나님은 영원하시니 그는 만세전부터 계셨으며(합 1:12). 시간과 날들이 더 이상 존재치 않을 때에라도 계실 것이다.

Ⅱ.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같은 백성도 없음이라. 각 지파에게 복되다고 선포함을 마친 후에는 모세는 마지막으로 전체를 합쳐서 온 이스라엘이 모든 점에서 복되다고 선포하였다. 저들은 너무나 복되어서 해 아래서 저들에게 견줄 복된 민족은 아무도 없다고 선언했다(29절). "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자로다." 네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이 이유로 인해서 네 민족을 진실로 복되다 하리니, "너와 같은 자 없도다." 만약 이스라엘이 자기 하나님을 그 잡동사니 같은 신이 아닌 참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영광되이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도 저희에게 호의를 베푸사, 자기 백성을 최고의 백성으로 만드셔서 저희 인근 열방의 선방의 대상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호의를 갖는 모든 사람의 기쁨이 되게 하시리라. "백성들아! 너같은 자가 누구이랴? 보라! 너는 나의 아름다운 사랑이로다" 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신부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 말씀에 화답하여 신부는 곧 대답한다. "보라! 당신은 나의 아리따운 사랑하는 분이로다. 어느 한 나라가(모든 민족을 다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삼하 7:23)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교회와 그 영광및 그 특권이다. 이것은 확실히 하늘에 기록되는 "장자(長子)의 교회" 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가 칭하는 대로(갈 6:16)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 거기에는 평화가 있을 것이며, 이스라엘처럼 이 세상의 모든 집단보다도 존귀한 공동체이다.

1. 어떤 민족도 그토록 안락히 정착하여 보호 받은 민족이 없었다(27절)."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피난처로다." 혹은 문자 그대로 "그는 네 처소 또 대저택이 되셔서 그 안에서 너는 안전하고 안락하여 마치 사람이 자기 집에 있는 사람처럼 안식을 얻으리로다." 진실로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안에서는 자기 집에 있듯 편안하며 영혼은 편안히 그에게 돌아가고(시 116:7). 휴식처와 같이 또 은신처와 같이 그 안에서 쉬리로다(시 32:7). 하나님을 자기 처소로 삼는 자들은 거기에서 모든 위안과 은혜를 얻을 것이다(시 91:1). 모세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을 그 때에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처로 보았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 이제 저들이 바야흐로 가나안에 정착하여야 한다지만 저희는 그 처소를 변경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자기들의 거주자로서 여전히 필요로 할 것이고 또 여전히 거소로 삼게 될 것이다. 하나님 없이는 가나안 그 자체도 광야가 되며 암흑의 땅이 될 것이다.

2. 저들 만큼 잘 부양되고 잘 양육받는 백성도 없었다.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저희들이 극심한 궁지와 극도의 곤경에 처하여서 그 짐이 가장 무거울 때라도 즉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세가 당신을 신뢰하는 저희를 보호하시고 위로하셨다.

(1) 일반적으로 말하면, 영원하신 팔은 교회가 침체하거나 쇠퇴하지 않도록 교회의 이익을 위해 뒷받침 하실 것이다. 교회의 아래로는 교회가 세워질 반석이 있어서 음부의 권세가 결코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 16:18).

(2) 그 영원하신 팔은 각 개개인의 신자의 심령을 지탱해 주셔서, 저희가 비록 억압을 당한다 하더라도 저희가 시험이나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 어느 때든지 극악의 상태에 놓여지더라도 영원하신 팔이 저들 아래 계셔서 그 심령이 타락하지 않게 하고 기진맥진하지 않게 굳게 붙드신다. 또 저희가 지나치게 억압당하였을 때라도 그 신앙이 동요하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이다. 그 영원하신 팔에서 솟아 나는 영원한 계약과 영원한 위로는 참으로 신앙인들을 놀랍게도 지탱시키며 또 가장 극심한 환란의 때에도 그들을 명랑하게 유지시키는 영원하신 팔이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도다(고후 12:9).

3. 이 백성만큼 훌륭한 명령을 받아 전투 태세를 잘 갖춘 백성은 결코 없었다. "그가 네 대적을 네 앞에서 그의 전능하신 권세로 쫓아 내시리니, 그가 이로써 너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여 주시리라. 그가 너를 지지하는 명령으로 저들을 멸하라고 이르시리라." 이스라엘은 지금 강력하고 무서운 민족이 들어차 있는 땅으로 쳐들어 가고 있었는데, 그들이 원주민으로서 그들 스스로를 그 땅의 정당한 소유자로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때에 이스라엘은 어떻게 침략자의 누명을 정당화하며, 저희 원주민의 축출을 성취할 것인가?

(1) 하나님께서 가나안인들을 진멸하라는 임무를 저들에게 부과하실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온 세상에 대하여 저들을 정당화시킬 것이다. 또 하나님은 저들을 지원하여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모든 생명과 온 땅의 주권자이신 여호와께서 허락하시고 인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분명하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고 예정해 주셨던 가나안 땅을 취하며 가나안 백성을 칼에 붙이게 하셨다. 이렇게 공인을 얻었으므로, 그들은 절도죄나 살인자라는 오명을 조금도 쓰지 않는 합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예롭게 그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인들을 멸할 능력과 권세를 주시리라. 아니 오히려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행하사 저희들의 손에 부쳐 주시리라. 그가 "대적을 그들 앞에서 부터 쫓아 내실 것이다" 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두려움으로 인해 도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으시기 위하여 이방 무리들을 쫓아내셨다" (시 44:2). 이처럼 신앙인들도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희 영적 원수들에게는 정복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 세상을 이기시고 왕들과 권세들을 패하시사" 우리 앞에서부터 대적들을 쫓아 내셨다." 또한 우리에게 명령된 말씀은, "저들을 멸하라. 승리를 추구하라. 그러면 너희는 그 진리품들을 나누게 되리라" 는 것이다.

4. 그토록 안전하게 지켜지며 보호받는 백성은 없었다(28절). "이스라엘은 홀로 안전히 거하리라." 하나님 안에 거하며 그의 이름을 자기의 간성으로 삼는 자는 "안전히 거하리로다." "저희가 방어하는 처소는 군수품이 공급되는 견고한 바위이다" (사 33:16). 저들은 홀로 안전히 거할 것이라고 했다.

(1) 홀로이지만 그러하다. 그들이 비록 그 인근 민족과 동맹을 맺지 아니하고 그 주변 누구에게서도 조력이나 구조를 기대할 만한 형편이 못되지만, 그들은 안전하게 거한다. 그들은 정말로 안전할 것이며, 자기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2) 혼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들이 이방인과 섞이지 아니하고 순수성을 계속 보존하여 단일한 특수 민족으로 남아 있는 한 안전하게 살아 갈 것이다. 저들이 다른 민족과 구별됨은 저들을 "무늬있는 새처럼" (렘 12:9) 만들며, 그 때문에 저희를 주변 인방들의 악의에 노출시키는 셈이 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저희를 지켜주기 때문에 저희는 인방이 꾀하는 위해에서 진실로 보존되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안전하게 보존된다.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거하리란 것이 약속되고 있다(렘 23:6).

5. 저들만큼 잘 공급받는 백성이 없었다. "야곱의 샘" (즉 당시 이스라엘 만족을 일컫는다. 이들은 후에 나타날 지류들의 원천이다.)은 곧 좋은 땅에 정착할 것이다. "야곱의 눈" (이렇게 읽을 수도 있으니, 히브리어의 샘이란 말은 동시에 눈도 의미하기 때문이다.)은 "곡식과 포도주의 땅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희가 진치고 있는 곳에서는 가나안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강 건너 저 편의 복지는 저희 눈 앞에 있었다. 저희는 그 땅을 저희 수중에 장악하며 급히 그 땅을 저희 발로 밟기를 원했을 것이다. 저희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 땅은 땅의 비옥함과 하늘의 이슬로 축복받은 곳이었다. 그곳은 실질상 유용한 산물인 "곡물과 포도주의 땅" 이었다. 또한 그의 하늘이(마치 하늘이 그 땅에만 복을 내리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것처럼) "이슬을 내리리니, "토양이 제 아무리 비옥 하더라도 이슬 없이는 곡식과 포도주가 흉작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각자의 눈 곧 신앙의 눈을 가져 그 눈으로 더 좋은 나라인 저 하늘의 가나안 복지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곡식과 포도주보다 더 좋은 것들이 풍부히 공급되어 있는 것이다.

6. 저들만큼 많은 도움을 입은 백성은 없었다. 저희가 곤경에 처할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저희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셨다(26절). 또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 이었다(29절). 저희가 해 받음의 위험 가운데 처하거나 어떤 물품이라도 궁핍할 때에는 저희가 찾아갈 하나님은 계셨고 신뢰할 전능하신 권세가 계셨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자들에게는 그들에게 해를 끼칠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었으며, "여호와께서 건지시는" 자들이 파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복음의 이스라엘에 추가되는 자들이란 바로 "그러한 구원을 얻을 자들" 이다(행 2:47).

7. 이들만큼 갈 무장했던 백성은 없었다. 하나님 자신이 저희를 도우시는 방패여서 그들은 이 방패로 자기를 방어할 수 있었고 모든 공격자들로부터 충분히 수호할 수 있었다. 그는 "저희 영광의 칼" 이어서, 공격하는 데 이 칼로 무장하여 모든 전쟁에서 위력을 보이게 되었고 성공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저희 "영광(字意 : 탁월)의 칼" 이라 불리시니, 이는 그가 저를 위해 싸우셔서 저희로 타민족을 월등히 능가하게 하셨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 중에서 자기가 저희 가운데 있는 그의 지성소를 유의하셨던 연고이니, 지성소는 "야곱의 영광" 이라고 불리웠기 때문이다(시 47:4; 겔 24:21; 암 6:8). 그 마음에 성결이라는 영광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방패와 칼로 삼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 군장을 갖추고 자기들을 방어한다. 곧 그의 말씀은 저희의 칼이며, 그에 대한 믿음은 저희의 방패이다(엡 6:16, 17).

8. 대적에 대한 승리를 그들처럼 확신하는 백성은 없었다. "그들은 네게 거짓말장이였음이 탄로되리라." 즉 "그들은 자기들의 의사와는 달리 어쩔 수 없이 네게 복종하게 되어서, 그 굴종은 위장된 복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목표는 놓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니, 네가 저희 목을 짓밞기 때문이다. "(70인역은 그렇게 번역했다.) 또 우리는 이 일대로 성취되었음을 볼 수 있다(수 10:24). "너는 저희 성채가 제 아무리 높다고 할지언정 그것들을 짓밟을 것이며, 저희 왕궁과 신전이 아무리 거룩히 여김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유린하리라(어떤 이는 이렇게 읽는다). 네 대적들이 만일 네게 거짓말장이였음이 발견되거든 너는 저희의 높은 곳을 밟을 지어다. 만약 저들이 연맹과 협약으로 결속되어 있지 아니하면, 그들은 전쟁의 힘으로 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화평의 하나님께서도 사탄을 모든 신자들의 발 아래에 짓밟히게 할 것이고, 또 이일을 "속히 이루실 것이다" (롬 16:20).

이제 이것을 총괄적으로 보면 이러게 말할 수 있으리라.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백성들아! 너 같은 자 누구가 있겠는가!" 여호와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는 백성은 3중으로 복되도다.

 

33:27 없음.

 

33:28 없음.

 

33:2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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