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신명기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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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회개하는 자들에게(신명기 30:1-10)

이 귀절들은 조건적 약속이거나 절대적 예언으로 간주될 수 있다.

Ⅰ. 이것은 첫째로는 조건적 약속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외에도 모든 개인이나 모든 백성에게 적용이 되는 것이며, 이 말씀들의 의도는 아무리 큰 죄인들이라 하더라도 만약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저들의 죄가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은총에로 회복될 것임을 우리에게 확실히 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은혜의 계약의 취지인 것이니, 곧 범죄하는 경우에 회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며, 회개하면 용서하심을 받는다는 약속을 주는 것이다. 결백의 계약(구약의 계약)은 그렇지 아니했던 것이다.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 약속들을 받을 조건이 되는 회개란 어떠한 것인가?

(1) 그것은 진지한 심사 숙고에서 비롯된다(1절). "너는 네가 잊어 버렸거나, 아니면 중요치 않은 것으로 생각했었던 일을 상기하라." 심사숙고가 마음을 돌이키는 일의 첫 걸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오! 너희 패역한 자들아! 다시 생각해 보라" (사 46:8). 신약성서의 탕자도 먼저 제 정신이 들고 나서야 자기 아버지께 돌아 갔던 것이다. 저들이 상기해야 하는 것은 축복과 저주이다. 죄인들이 만약 죄로 말미암아 잃어 버렸던 행복과 스스로 빠져 들었던 불행을 진실되게 생각해 보고 회개에 의하여 저들이 그 비참한 궁지를 면할 수 있으며 그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지체하지 아니하고 "저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다." 탕자가 "그 마음 속에서 축복과 저주를 생각해 낸 것" 은 바로 그의 당장의 궁핍과 "자기 아버지 집의" 풍족한 양식을 생각해 내었을 때였던 것이다(눅 15:17).

(2) 그것은 진지한 회심으로 된다. 심사숙고의 결과는 경건한 슬픔과 경건한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다(겔 6:9; 7:16). 회개의 골수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은, 또 이것 없이는 가장 열정적 표현도 우스개 소리에 불과하게 되고 말 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2절).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10절). 우리가 돌아오되 우리 주이시며 은인이신 그에게 의지해야 하고, 우리의 최고 목적이신 그분께 헌신해야 하며 우리와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으로서의 그와 교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거역하거나 그와 다투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그에게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의 이 돌이킴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며 모든 면에서 돌이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곧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3)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대한 끊임없는 순종에 의하여 확증된다. 만약 네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2절) 곧 "너와 네 자손" 이 순종한다면 이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의무만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못하고 우리의 자녀들도 그 일을 행하도록 훈육시키고 약속해야 함을 이르시기 때문이다. 혹은 저들의 자녀들이 자기들의 의무를 굳게 지킨다면 복을 내리시겠다는 조건으로서 주어진 것이리라.

[1] 이 순종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 너는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일 지니라(10절).

[2] 그것은 진실되며 즐겁고 온전한 순종이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영혼)을 다하여서 해야 한다" (2절).

[3] 그것은 사랑의 원리로부터 비롯하는 순종이어야 하며, 게다가 그 사랑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성품을 다하는 것" 이어야 한다(6절). 하나님께서 하감하시며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과 성품(영혼)인 것이다. 하나님은 전체를 온전히 받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받지 않으시든지 하시는 분이시다.

[4] 이 순종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2절)", 그리고 또 8절에서 "그의 모든 명령을 행할 것" 이라고 했다. 이것은 한 가지 계명을 범하도록 허용하는 자는 모든 계명을 다 멸시하는 죄에 빠지는 까닭에서이다(약 2:10). 곧은 마음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주의하는" 것이다(시 119:6).

2. 이러한 회개 위에 약속되는 은총은 무엇인가? 저들이 비록 쫓겨감을 당한 열국 중에서(1절) 고통과 피폐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 오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자비롭게 용납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불행을 내리셔서 우리로 회개시키려 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저들이 "하늘 끝까지 쫓겨가 있다" 할지라도 거기서 회개하는 저들의 기도 소리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귀에 다달아서 마침내 그의 은총이 저들을 찾아 내고 말 것이다(4절). Undique ad caelos tantundem est viae - 즉 어디에서나 하늘에 이르는 길은 동일하다. 느혜미아도 그의 기도 속에서 이 약속을 들어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탄원하고 있다(느 1:9). 여기에서 약속된 은총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긍휼을 받을 적당한 대상으로서 그들을 동정하실 것이라고 했다(3절). 죄악 중에 행하는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분노를 발하시나(신 29:20), 회개하고 자기를 탄식하는 자에 대하여는 불쌍히 여기신다(렘 3:18, 20). 진실되어 참회하는 자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신 자비로부터 크나 큰 용기를 얻을 것이니, 그 긍휼과 자비는 결코 대항이 없으며 차고 넘치리라.

(2) 하나님은 "저들의 포로됨을 돌이키실 것" 이며, 아무리 원방이 "열국 중에 흩어져" (3절) 있다 하더라도 "거기로부터 저들을 모으실 것" 이다(4절). 시리아역의 어떤 의역본은 이것을 메시야에다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여호와의 말씀이 큰 제사장 엘리야에 의하여 너희를 모으실 것이요, 왕 메시야의 손에 의하여 너희를 인도하실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가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들을 회복하시리라" 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메시야와 맺은 계약이었기 때문이다(사 49:6). 그리고 이것은 그의 죽으심이 목적이었으니, 곧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요 11:51, 52). "백성을 모으는 일은 그에게 속할 것이다."

(3) 그가 "저들을 저들의 땅으로 다시 데려오시리라" 는 것이다(5절). 참회하는 죄인들은 그들의 불행에서 구출당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참 행복에 복귀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저들이 그의 인도를 받아 소유하게 될 땅은 비록 예전과는 같지 않을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조상 아담이 소유하다가 쫓겨난 곳 보다는 나은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선을 행하실 것이며" (5절), "저들을 영원히 기뻐하시리라" 는 것이다(9절). 왜냐하면, 하늘에서는 죄인들의 회개와 돌이킴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영영토록 그를 기뻐하였던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수를 증가 시키신다는 것이다(5절). 게다가 저들의 수가 많아질지라도, 모두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들로 저들을 풍족하게 하실 것" 이었다(9절).

민족적 회개와 혁신은 민족적 풍요와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다.

" 여호와께서" 네 가축과 네 토지의 소산으로 영구히 "너로 하여금 풍족하게 하시리라" 는 것도 약속되고 있다. 많은 자들이 충분한 고통을 받고 우매한 자들의 번영이 저들을 파멸시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번영을 사용할 수 있는 은혜를 함께 주실 때에는 영원한 것이다.



(6) 당신께서는 저들이 당하고 있던 저주를 저들의 원수들에게로 옮길 것이다(7절). 하나님께서 저들을 다시 세우려고 불러 모으실 때면, 저들은 수많은 반대 조건들을 능히 대적할 것이다. 또한 저들에게 임했던 바로 그 저주들이 오히려 저들의 방패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저주들은 그들의 대적들에게 옮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공포의 잔이 저들의 손에서 취하여져서 저들을 괴롭히던 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리라(사 51:22, 23).

(7)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은혜를 주사 저희 마음을 편케 하시고 그 은혜가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시리라는 것이다(6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여호와를 사랑하도록 하시리라." 다음 사실을 명심해 두자.

[1]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시리아의 역본이 해설하는 대로, 육체의 더러움과 심령의 우매함이 제하여져야 한다(골 2:11, 12; 롬 2:29 참조).

할례는 계약의 날인이었다. 마음이 이 의무에 강력히 결속될 때에 그 때에야 "마음은 할례를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2] 마음의 할례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널리 뿌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인 것이며, 이 은혜를 회개하며 정성들여 구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계율이라기 보다는 약속인 것 처럼 보인다. "너는 돌아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 것이라" (8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은혜를 약속하고 계신다. 만약 그 은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우리가 받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우리 잘못인 것이다. 여기에는 은혜의 계약도 엿볼 수 있으니, 이 계약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의 약속이기도 한 것이다. "너는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부어 줄 것이라" (잠 1:23).

3. 이 10귀절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네 하나님 여호와" 라고 열두 번이나 청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 사실을 가리킨다.

(1) 통회하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저들의 하나님께 대한 관계로부터 인도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보소서! 우리가 당신께 왔사오니 당신께서는 우리 주 하나님 여호와 이심이니라(렘 3:22). 그런고로 우리는 당신께로만 나아와야 하며 그외 어디로 우리가 가오리까? 그런즉 우리는 당신께로부터 은총 얻기를 원하나이다."

(2) 하나님을 떠나 반역했던 자들이라도 만약 저들이 그에게 돌아와 저들의 처음의 일들을 행한다면, 저들의 이전 상태 즉 명예와 행복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첫 번째의 의복을 이리로 가져오라." 이 앞장의 경고 가운데에서는 하나님이 권세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것의 심판자된 여호와로 곳곳에 불리우고 있으나, 본 장의 약속 가운데에는 은혜의 하나님, 너와 언약을 맺으신 "네 하나님 여호와" 로 불리우고 있다.

Ⅱ. 이것은 또한 유대인들의 회개와 회복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일들이 네게 임할 때에는" (1절) 축복이 먼저, 그 다음은 저주가, 그리고 나서는 예비된 자비가 임할 것이다. 저들의 마음이 비참할 정도로 강퍅케 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저들을 부드럽게 하며 변화시킬 것이었고 저들의 사정이 통탄할 지경으로 비참하였다 해도 하나님의 섭리가 저들의 모든 괴로움을 보상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1. 이 예언은 저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왔을 때 성취되었음이 확실하다. 우상과 결합했었던 에브라임이 저들과 절교하면서 "내가 이 우상들과 더 이상 무슨 관계가 있느냐?" 라고 말하였던 것은 저들의 회개와 개혁에 대한 놀라운 본보기였다. 그 포로 생활은 저들의 우상 숭배 악습을 제거시켜 주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의 본래의 땅에 심으시고 선대하셨던 것이다.

2. 그러나 어떤 자들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돌이켜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저희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며 그리스도 교회로 가까이 나아올 때라야 이것이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호라!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실 때에 누가 살아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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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계시의 장점(신명기 30:11-14)

모세는 그들이 이 명령의 분명함과 행하기 쉬움을 생각해 보고 순종하라고 강조한다.

Ⅰ. 이것이 모세 율법의 참된 면모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들에게 알 수도 없으며 실행할 수도 없으며, 인식 불가능하거나 실행 불가능한 명령을 내리셨으므로 자기들이 불순종했다고 결코 변명할 수 없었다(11절). "그것(명령)은 너에게 어려운 것이아니다."

1. 즉 "그것은 네게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알아 보고자 사자들을 하늘로 보낼 필요도 없는 것이요, 학문의 탐구를 위해서 먼 지역까지 두루 여행하는 철학자들처럼 네가 바다를 건너갈 필요도 없는 것이라, 네가 그런 수고를 하도록 함도 아니요, 그런 비용을 들게 함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은 거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자나 정교한 천재적 능력을 가진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범위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네게 심히 가깝게 있는 것이다(14절). 그 말씀은 돌판 위에 명백히 만들어진 네 책에 기록 되었으니, 달려 가면서라도 그것을 읽을 수 있으며 네 제사장들의 입술이 이 지식을 간직하고 있은즉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너는 저들의 입에서 율법을 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말 2:7). 또 그 말씀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은 내 입에 있는 말로 된 것이니, 즉 네가 보통 사용하는 내 나라 말로 되며 내가 읽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네 자녀들 사이에서 친밀히 얘기하는 자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를 당혹케 하거나 놀라게 할 애매한 문구나 숫자로 쌓여 있다든지 상형문자로 감추어져 있는게 아니라, 바로 네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네 능력에, 가장 하찮은 자의 능력까지도 알맞는 모양으로 전달되고 있다" 는 것이다.

2. 70인역 성경에는 "그것은 네게 너무 어렵거나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니라" 고 되어 있다(11절).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들을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하늘로 기어 오르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새벽의 날개를 타고 바다 저 끝까지 달아나는 것과 같다" 고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일은 그렇지 아니하며 사악한마음의 소유자들이 표현하듯 그토록 참을 수 없는 멍에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우신 멍에와 비교할 때 이것은 참으로 무거운 멍에라고 하겠으나 저들의 인근 열국들의 우상 숭배에 비할 때는 그다지 무거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예물로 저들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셨으며 유황으로 저들을 곤비하게 하신 적이 없으셨음을" 저들에게 호소하신 것이다(사 43:23; 미 6:3). 그러나 모세는 도덕법과 그 교훈들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고 있다. "그것은 네게 아주 가까이 있으며 누구나가 단지 주의해 보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과 모든 자의 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네 안에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롬 7:16). 그런고로 네가 그것을 준행하는 데에 어떤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불평할 만한 하등의 이유도 없다.

Ⅱ.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도 맞는 말이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복음에 적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를 뜻하는 것으로 삼았다(롬 10:6-8). 그리고 이것이 모세가 가장 중요시한 의도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많이 있으니, 이는 그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썼기" 때문이다(요 5:46).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 (요일 3:23), 이것은 복음 아래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이다. 만약 우리가 소경이 하였듯이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그가 어디에 있나이까? 우리가 그를 믿고자 하나이다." 라고 묻는다면(요 9:36), 이 성경이 해답을 주는 것이니, 곧 우리가 그를 이리 데려오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음은 그가 성육신 하셔서 이리로 내려 오셨기 때문이며, 그를 데려 오기 위해서 음부로 내려 갈 필요도 없음은 그가 부활하시사 거기에서 올라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은 우리에게서 가까우며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메시야의 성육하심에 대한 약속이나 부활에 대한 약속이 우리 주 예수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으며 따라서 그를 영접하고 우리 입으로 그분께 고백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할 것이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는 가까이, 아주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 율법은 분명하고 쉬운 것이었지만 복음은 더욱 더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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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하라(신명기 30:15-20)

모세는 가급적이면 자기가 지금껏 가르쳐 온 것들이 이 무사려한 백성의 이해와 관심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아주 환한 등불처럼 교화력 있는 말로 또 아주 강렬한 불꽃처럼 정열적인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생동적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보다 더 깊고 오랜 인상을 지을 수 있으랴! 그가 그들을 대하는 방법은 너무나 순리적이고 너무 신중하고도 인정스러워서 어느 모로 보아도 핵심을 찌르기 때문에,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충분히 나타내 주며 저들이 불순종할 때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도록 해놓고 있다.

Ⅰ. 그는 이 일을 매우 공정하게 진술하고 있다. 모세는 자기가 그들에게 바라는 만큼 최대한 도로 명료하게 이 문제를 저들 앞에 제시하여 놓았었는지에 대해 직접 생각해 보라고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1. 누구나 생명과 선의 획득을 바라며, 사망과 악의 회피를 원하고, 행복을 갈망하며 불행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모세는 말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원할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얻게 하는 길과 불행을 모면하게 하는 길을 너희에게 보여주었다. 순종하라! 그리하면 만사가 형통하여 추호라도 잘못 되는 일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첫번째 조상은 선악의 지식을 얻고자 하여 금단의 열매를 따 먹었다. 그러나 저들이 얻은 것은 불행한 지식이었으니 선을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선에 관한 지식을, 악을 인식함으로써 악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동정심은 너무나 크셔서 인간을 인간 자신의 사망에 팽개쳐 두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그의 말씀으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리하여 만약 인간 자신의 잘못이 없는 한 인간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그런 지식을 주셨던 것이다.

2. 인간은 누구나 그의 행동 속에서 알게 모르게 희망과 공포, 곧 신에 대한 희망과 악에 대한 공포의 영향과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이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자, 나는 양편 길을 다 알아 보았다. 만약 너희가 이들에 대한 확실한 전망 때문에 자진해서 순종으로 이끌리든 혹은 불순종할 경우에는 파멸에 대한 전망이 역시 확실함으로 인하여 하는 수 없이 순종하게 되든, 만약 너희가 순종하기만 하면, 너희는 하나님과 너희 의무에 가까이 나아가게 되거니와, 만약 너희가 순종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너희는 결코 용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전반적 사정에 대한 결론을 들어 보기로 하자.

(1) 만약 저들과 저들의 자손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면, 저들은 생존하여 복될 것이다(16절). 저들이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명령들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 한다면, 즉 저들이 만약 그의 계명 지킴을 양심의 문제로 간주하고 사랑의 원리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행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선히 행하시며 그의 사랑과 축복이 닿는 데까지 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2) 저들이나 그 자손이 만약 어떤 때에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돌이켜서 그를 섬기는 일과 담을 쌓고 다른 잡신들을 숭배하면, 이 일은 정녕코 저들의 파멸을 부르리라는 것이다(17,18절). 파멸의 경고가 발하여지고 있는 것은 저들 의무의 세부 조항에 대한 모든 낱낱의 불이행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배반이나 우상 숭배에만 그러하다. 비록 계명의 위반은 한결같이 저주를 받아 마땅한 바이지만 그 민족의 멸망은 결혼 계약의 위반시에만 초래되는 것이었다. 신약 성서의 요지는 이와 매우 흡사하다. 이와 비슷하게, 신약성서는 우리앞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을 제시하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고 한다(막 16:16). 그리고 이 신앙은 사랑과 순종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계속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분쟁을 좋아하여 진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물의를 쫓는 자" 에게는 (그래서 실제로는 잡신들을 경배하며 그들을 섬기는)죽지 아니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노와 분으로 갚아질 것이니 그 결과는 멸하지 않는 영혼의 환난과 고통임에 틀림없는 것이다(롬 2:7-9).

Ⅱ. 그는 이 같이 말한 후에, 이것을 저들의 선택권에 붙이면서 저들에게 잘 선택하라는 지시를 한다. 그는 그들을 향한 자기의 공명정대하고 신실한 행동에 대하여 하늘과 땅에 호소를 하고 있다(19절). 저들은 무엇이 논의의 초점이었든지 간에 모세가 자기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런고로 모세는 저들도 자신들의 정성을 다 기울여 저들이 생명을 선택하기를 명하는데, 이는 곧 저들의 의무를 선택하는 것이다. 또 저들의 의무는 저들의 생명이 될 것이었다.

1. 의무와 복종의 길을 선택하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택하며 저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와 교제하기를 택하고 저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바대로 그 선택을 이행하는 자는 그 들이 선택하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2. 생명과 행복을 얻지 못하는 자들은 자업자득임에 틀림없으니 저들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맡겨졌을 때 저들이 그것을 택하였더라면 그것을 소유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는 자들은 죽고자 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니 즉 그들이 제안된 조건 위에서 약속된 삶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이다.

Ⅲ. 마지막 귀절에서 보면,

1. 모세는 그들의 의무가 무엇인지 저들에게 요약하여 나타내 주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 곧 가장 친근하신 분인 여호와로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며, 저들과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인 저희들의 하나님" 으로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그 사랑의 증거로 모든 일 중에서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 이며, 이 사랑과 순종의 항구성에 의하여 "그에게 굳게 달라 붙는것" 이며 관심에 있어서나 실행에 있어서 결코 그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2. 그는 이 의무에 대한 이유를 저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려하였다.

(1)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의존.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다." 그는 생명을 주시며, 생명을 보존 하시며, 생명을 회복시키시나니, 덧없는 인생이라도 그의 능력으로 인하여 그 생명이 길어지고 상실된 삶이라 할지라도 그의 인내하심으로써 연장시키시는 것이다. 그는 그의 위로로써 우리의 생을 행복하게 하시나니, 그는 생명의 주권자, 여호와이시다. "그의 손에 우리 호흡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 그의 사랑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그를 우리의 친구로 모시는 것은 선한 일이요, 하나님을 우리의 원수로 삼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2) 저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고 맹세로 인준하신 가나안 땅의 약속에 대한 저들의 의무.

(3) 그리고 그 약속의 실현에 대하여 하나님께 거는 저들의 기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섬기라." 이는 그가 주시리라고 네가 확신해도 좋을, 약속된 그 땅에서 네가 거하기 위함이니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長壽)이신 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분이시로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망과 복종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해 주고 있는 것이다.

 

30:16 없음.

 

30:17 없음.

 

30:18 없음.

 

30:19 없음.

 

30:2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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