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신명기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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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레위인의 생계(신명기 18:1-8)

재판과 사제직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 의 유지와 진보를 위해 필요한 두 가지의 신성한 제도이다. 전자에 관한 율법은 앞장 마감 부분에서 우리가 살펴 보았고 후자에 관한 지시는 여기에 주어져 있다. 여기에는 제사장들의 소유와 그 백성들의 소유를 구분하는 땅의 경계표가 세워져 있다.

Ⅰ. 제사장들은 이생의 속된 일에 얽매여 있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제물로 부유하게 되지 아니한다는 사실이 주지되고 있다. 그들은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는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다." 말하자면 그들은 전쟁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가져도 안 되고, 재비뽑아 나누어 갖는 땅도 차지해서는 안 된다(1절). 그들의 싸움과 산업은 둘 다 영적인 것이요, 그들의 손은 그 일과 거기서 오는 이득으로 채우는 것으로 족하며,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2절).

새 계약에 의하면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는 자들은 이 세상에 있는 큰 재물들에 탐욕을 가져서는 안 되며 소유한 것을 쥐고 놓을 줄 모르거나 또 더 많이 쥐려고 해서는 안 되며, 모든 것에 넉넉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답게 모든 현세의 일에 냉정히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Ⅱ. 그들은 또한 이 세상의 어떠한 안락과 편익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이 주지되어 있다. 영이신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해서, 그들은 공기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니

1. 백성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물자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음식을" 받아야 한다(3절). 그들의 생계 유지는 그 백성들이 베푸는 자선에 의존될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에 의한 것이다.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는 자는 자기를 가르친 자에게 당연히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하며, 경건한 신앙의 혜택을 입은 자는 그러한 성회를 주관한 자들에게 마땅히 편익을 제공해야 한다.

(1) 제단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은 희생 제물을 나누어 가졌다. 즉 그들이 집무 중에 가져온 화목 제물을 차지했다. 그 외에 앞에서 이미 지시된(레 7:32-34) 제물들의 가슴과 뒷다리들이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제물의 두 볼과 위(胃)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지시되어 있다. 그들에게 이미 허락된 몫이 여기에서 축소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추가되었다.

(2) 처음난 열매는 그 구내 지역에 사는 제사장들을 위하여 가져와야 했다. 처음된 곡식과 포도주의 처음난 것, 그리고 의복을 위해 처음 깎는 양털을 가져와야 했다(4절). 사람들을 가르치는 제사장들은 그들이 가져온 음식과 의복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첫 열매는 하나님께 헌납된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당신의 수납자들로 세우셨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준 것을 당신 자신에게 꾸어준 것으로 여기시나 거기에 이득을 붙여 갚으실진대 하물며 가난한 사역자들에게 준 것에 대해서 더 크게 갚지 않으시겠는가? 레위인들의 소유에 대하여 이렇게 부단한 책임을 져야 할 선한 이유가 나타나 있다(5절). 즉 그 이유는 레위인들은 "하나님이 택함을 입은 자" 들이며, 또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자는 마땅히 인정을 받아야 하며 재산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이 영화롭게 한 자들은 마땅히 영화롭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섬기는 자로 섰고", 또 마땅히 그들의 일에서 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분의 위임을 받아서 하는 일이며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찬양하기 위한 일이며 또 이 책임이 그들 후손에게 영원히 요구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일에 종사하고 고용된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구성원들이므로, 그들에게서 당연한 격려를 받아야 한다.

2. 제사장들은 서로의 이익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지나친 집착을 가지고 자신만 항상 제사를 도맡을 수는 없다. 제사장은 율법에 의하여 자기 차례에만 제단에 나아가고 거기에서 나오는 제물로 보수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제사장이 성소에 대한 간절한 집념이 있어서 언제나 성소에서 몸바처 일하며, 거기에서 만족을 누리기 위해 자기가 재비뽑아 차지한 모든 재산과 낙을 포기한 자가 있을 때에는 자기 차례가 된 제사장들이라도 그 제사장과 일을 함께 하고 몫도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하며, 그것이 자기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으로 생각될지라도 그의 명예나 이익을 탐하여서는 안 된다(6-8절).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경건한 열심은 비록 그것이 어느 정도 기존 질서를 침해하고 말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성소에 대한 애정을 가진 것으로 보이고 또 섬기는 일에 고용되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자" 가 되게 하라. 즉 그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도록 작정되어 있는 레위인들처럼 하나님께 영접될 것이요. 또한 레위인들에게도 그렇게 여겨져야 한다. 제사장이 되는 방침의 확정은 보다 기꺼이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자들을 배격하기 보다도 오히려 기꺼이 섬기려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그 일에 전념케 만들려는 것이다. 로마 교회는 재산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오려는 자들에게 그들의 재산의 소산을 함께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이 수도원의 공동 재산이 되게 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소득이 그들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경건한 헌신자는 자기 세습 재산의 소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리라고 지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 의하여 아무리 오용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신앙과 그 사역이 세속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로 이용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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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에 대한 재 경고(신명기 18:9-14)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 숭배의 관습에 감염되지 말라는 경고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요긴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여러 제도로 그렇게 큰 축복받은 백성이, 야수적이고 야만적인 인간들과 마귀들이 꾸며낸 것들을 용납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포로가 되게 하시고 또 자기들에게 공물 바치는 자들로 삼으신 그들(가나안 인)을 자기들의 신앙의 교사로 혹은 지도자로 세울 위험에 빠진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위험에 빠질 염려가 보였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비슷한 주의를 하고도 여기서 또다시 가나안 민족의 가증한 것들을 따르지 말도록 지시를 받고 있다(9절).

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구체적인 사실들이 명기되었다.

1. 자녀들을 태양신 몰렉에게 바쳐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거나" 때로는 희생물로서 불사르는 일이다(10절). 이것을 금지하는 율법은 앞에서 이미 나왔었다(레 18:21).

2. 장래의 일에 대한 불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마술이나 복술이나 요술" 등의 점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능력과 지식을 마귀에게 돌리게 되면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섭리에 대하여 큰 모독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10,11절). 우리는이러한 복술들과 어두움의 일들, 그리고 그렇게나 무지각하고 불합리하며 불경건하고 속된 일이 하나님의 계시가 그렇게 밝게 나타났던 그런 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잔재가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이 세상의 "어두움의 통치자" 들이 잡고 있는 권력과 정책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운수를 점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나 혹은 은밀한 것을 찾기 위해 요술사들에게 가는 자들, 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문을 사용하는 자들, 또 심부름하는 요괴들과 통하여 짝하고 있는 자들 - 그들은 그들이 그런 마귀들과 교통하고 있는 동안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밝은 나라에 또 밝은 시대에 이와 같은 유의 사칭자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Ⅱ. 그들이 이방인들의 관습에 동화되는 것을 막아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1.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하나님께 가증한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미움을 사게 만드는 일이나 그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들이다.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는 그 사실은 비참한 것이다(12절). 죄의 악의와 해독을 살펴보라. 그것은 반드시 실로 자비의 하나님을 비방하여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그 역사에 혐오를 가지게 하는 악한 것임에 틀림없다.

2. 이러한 가증한 풍습들은 가나안인들의 파멸이 되었고 그것들은 그 파멸의 입증일 뿐 아니라 수단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혹독하게 처벌하도록 위탁받은 바로 그런 일을 그들 자신들이 행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불경일 뿐 아니라 변명할 여지없는 우둔한 짓이다. 그 땅이 가나안인들의 가증한 것들을 토해냈는데 이스라엘이 다시 그 토한 것을 삼켜야 되겠는가?

3. 그들은 "가르침을 더 잘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행하는 것과 같이 행하는 그리스도인을 향해 바울사도가 논증한 것과 같은 주장이다(엡 4:17, 18,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각자 자기들의 길을 다니다가 스스로 부패하도록 저들을 욕정대로 버려두셨다(행 14:16).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버린 바 되지 아니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가 그렇게 행하도록 두시지 아니하였다. 너희는 하나님의 교훈으로 가르침을 받았고 저들의 악한 풍습에 대하여 마땅한 경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너희는 여호와 네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해야 한다." 말하자면 "너희는 그분께 최고의 영광을 드려야 하되 다른 것에게가 아니고 오직 그분께만 드려야 하고 이교도의 미신적인 관습 중의 어떤 것도 그분이 세우신 제도에 혼합시켜서는 안 된다." 시리아 역본의 한 해설자는 모든 불법적인 복술의 방비책으로 하나님이 우림과 둠밈의 신탁을 그들에게 마련해 주셨다는 점을 주시한다. 그들이 진리의 하나님께 문의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의 아비에게 문의하러 가는 자들이야말로 실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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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약속(신명기 18:15-22)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Ⅰ. 위대한 예언자를 세우시리라는 약속과 그를 영접하여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명령이 나타나 있다.

1. 혹자들은 이것은 여러 세대 동안 이스라엘에 일어날 예언자들의 계승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을 직무로 삼고 있는 일반 사역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이외에 그들은 자기들의 실수를 책망해 주고 자기들의 의무를 상기시켜 주며 다가올 일들을 예언해 주고 심판을 경고하고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달해 줄 특별한 사역자들인 예언자들을 가지리라는 것이다. 이런 예언자들을 가짐으로써

(1) 그들은 복술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요귀와 통하여 점치는 자들에게 문의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사울이 그의 아비의 나귀를 찾고 있을 때 행한 것과 같이(삼상 9:6) 그들의 사사로운 일에 관한 것까지도 하나님의 예언자들에게 문의할 수 있었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의 모든 의심나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에 상의할 수 있고 호소할 수 있는 예언자들을 가지게 되며, 그들은 무지나 오류 때문에 자기들이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을 잃지 않을 것이고, 그 일에 대하여 서로간에 견해가 갈리는 일이 없게 된다. 물론 모세보다는 못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예언자들이 모세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신 34:10).

2. 예언자들의 계승이 이 약속 안에 포함되어 있건 안 되었건간에, 우리는 그 말씀 속에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함축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모세의 모든 율법 속에 있는 것은 그분에 대한 가장 명백한 약속이다. 그것은 분명히 메시야를 약속한 것으로 우리 주예수께 적용되고 있으며(행 3:22, 7:37).

그 백성들이 그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 (요 6:14)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이 약속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모든 다른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그의 성령을 가리킨다(벧전 1:11). 이제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그리스도에 관하여 여기서 약속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것(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18절)을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백성들에게 약속했다.

[1] 한 선지자가 올 것인즉 모든 선지자들보다 큰 자가 올 것이며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알리시고 당신의 뜻을 후손들에게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완전히 그리고 더욱 명백하게 나타내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유대 교회가 예언했던 바와 같이 "세상의 빛" (요 8:12)이다.

[2] 하나님은 그런 예언자를 "그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것" 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태어남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는 그 민족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요 그들 가운데 사는 자이며 그들에게 보냄을 받는 자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부활에서 말한다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일으킴을 받을" 것이요, 그 후 그의 가르침은 온 세상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일으키시고 그를 보내시어 우리를 복되게 하신 것이다.

[3] 그는 모세와 같은 것이되, 다른 선지자들이 모세에게 미치지 못하듯이 모세는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율법을 준 선지자요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낸 자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다. 즉 그는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다스리시고 구원 하시는 분이다. 모세가 표적과 이사와 능력있는 행동으로 새로운 제도를 설립한 자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였고 그는 그런 것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임을 증명하였다. 모세가 신실하였던가? 그리스도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종이었으나 그리스도는 아들이었다.

[4]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그의 입에 두실 것이다(18절).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보내실 메시지를 그를 통하여 보내실 것이며 그에게 선지자로서 말하고 행하여야 할 충분한 교시를 그에게 주실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내 교훈은 내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 7:19)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이 위대한 약속은 이행되는 것이다. 이 예언자 곧 예수께서 오셨다. 오실 분은 그분이니, 우리는 다른 분은 기대하지 않는다.

(2) 그 백성들의 시내산에서 공공연히 자인한 선택과 갈망에 대하여 마련된 이 섭리에 대한 찬성을 보자(16, 17절). 하나님은 거기에서 불과 암흑 가운데서 천둥과 타는 불꽃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말씀마다 그들의 귀를 찔렀고 그들의 심장에 충격을 주어 모든 회중은 두려움으로 사색이 되었다. 이러한 공포 가운데서 그들은 겨우 간구하기를 하나님께서 이상 더 이와같은 방법으로 자기들에게 말씀하시지 말고(그들은 그런 일을 견디어 낼 수가 없었고 그들은 압도되어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을 통하여, 즉 지금은 모세를 통하여, 그리고 이후로는 그와 같은 다른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좋다. 그렇게 하겠다. 그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하고 혹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은혜의 관을 씌우기 위하여 때가 차서 말씀 자체가 육신이 되게 하셨고 그들은 시내산에서 본 바와 같이 위엄과 두려웅으로 가득 찬 모습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모습으로(요 1:14) "아버지의 독생자" 의 영광을 보았다. 이와 같이 율법에서 경악으로 아연 실색한 그들의 요구에 답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그것이 요구한 자들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아들의 성육신을 약속하셨다.

(3) 모든 사람에게 들어서 믿고 들어서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요구와 명령인 이 위대한 예언이 여기에 약속되어 있다.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라" (15절). 그리고 누구든지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를 확실히 그리고 냉혹하게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그를 벌하리라." 하나님은 친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빛나는 구름속에서" 말씀하심으로써 본문의 말씀을 우리 주 예수께 적용시키셨다(마 17:5). 즉 이것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고 모세가 이미 말했던 바로 그 사람에게 관한 것이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가 그 때에(변화산상에) 예수의 옆에 서서 그것에 협력했던 것이다. 이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임할 말씀이 반복되어 나타나 있고 신약성서에서도 재기되어 있다.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히 12:25). 시리아역은 여기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내 말씀이 그를 심판하리라." 여기서 내 말씀이란 다름 아닌 신격체이신 영원한 말씀 곧 그리스도이다.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심판의 현세를 위탁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그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귀머거리 된 자는 곧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말씀이 곧 저를 심판할 것이다(요 12:48).

Ⅱ. 여기에서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다.

1. 선지자로 자칭하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20절). 누구든지 예언자로 자칭하고 바알의 선지자들이나 참된 하나님을 빙자하여 거짓되고 허위적으로 예언하는 자로서 거짓 신을 예언하는 자는 필히 죽임을 당하리라(20절). 그런 자는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산헤드린 대회에서 정죄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인 법이 없고 예언자의 피는 예루살렘의 성문에 뿌려졌다고 말씀하셨다(눅 13:33, 34).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벌하시겠지만,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지지했던 것이다.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미혹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들 중에는 그런 사칭자들에게 미혹된 자들이 많았다(렘 23:5; 겔 13:6; 왕상 22:6). 그들은 한 의문을 가지라고 했는데, 그것은 지극히 합당한 의문이다(21절). 참된 예언자들의 말을 청종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의무이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잘못 인도될 엄청난 위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하시지 아니한 말씀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무엇으로 우리는 이러한 속임수를 알아낼 수 있을까? 어느 것이 여호와가 하신 말씀인지 우리가 알기 위하여는 우리가 듣는 말을 시험해 볼 만한 올바른 시금석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관심사이다. 직접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것, 또 자연법에 맞지 않는 것, 그리고 기록된 말씀이 가지고 있는 명백한 의미와 일치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여호와가 하신 말씀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또는 죄의 편을 들어 죄짓도록 부추기는 것이나 경건이나 사랑의 정신을 파괴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진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며 그 자체가 모순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리가 먼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하여 여기서 주어진 규칙은 주로 22절의 말씀에 적합하다. 만일 어떤 예언자의 신실성에 의심이 나면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 아님을 확실케 하기 위하여는 어떤 증험을 보이거나 혹은 다가올 어떤 일을 미리 말하게 하고 그 일이 그의 예언과 일치되지 않는 것을 보게 하라. 이것은 평화의 예언과 심판의 예언에 관계된 것이라기보다는 (사실 평화의 예언과 심판의 예언이라는 것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규칙의 하나였다. 렘 28:8, 9) 오히려 그들의 일을 확증할 목적으로 어떤 표적을 행하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표적이 실증되었더라도, 만일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기라고 한다면 그 표적은 그들의 선지자의 직임이 참된 것이라고 인정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이 문제는 이미 신명기 13장 1~3절에서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적이 실증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그들의 직분을 부인하게 될 것이다. "모세가 자기 지팡이를 땅에 던져서(이것은 패트릭 주교 해석이다) 그것이 뱀이 되지 않았다면 모세는 거짓 선지자일 수 밖에 없다. 만일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의 제물을 사르도록 기도했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바알 선지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무엘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 (삼상 3:19, 20)라는 말씀으로 입증되었다. 그리스도는 그가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특히 그가 예언한 대로 제삼일에 부활하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임을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거짓 선지자를 두려워 말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즉 사람들은 즐겁게 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하는 그러한 판단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그가 거짓 선지자란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에게 엄중하고 공정한 율법을 적용하기를 두려워 말라고 한다. 거짓 예언자를 두려워 말라고 한다. 반면에 이 명령은 분명하고 부정할 수 없이 그의 직책의 진실성이 입증된 참된 선지자는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 참 선지자에게 폭행을 가했다거나 살해했다면, 그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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