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신명기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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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사랑이라는 의무(신명기 15:1-11)

Ⅰ. 가난한 자의 빚을 면제해 주는 율법이다. 그 대상은(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지불 불능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매 7년은 면제년(免除年)이다. 이 때에는 땅은 경작하지 아니하고, 종들은 그 종살이에서 해방된다. 그러한 여러 가지 은혜의 행위들 중에는 돈을 빌린 자들이 그것을 지불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이 면제년이 되면 빚을 면제해 주는 일이 들어 있다. 만일 꾸어갔던 자에게 능력이 생기면 그 후에 양심적으로 그것을 갚아야 하겠지만 그 후에도 채권자가 법으로 그것을 배상케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많은 훌륭한 주석가들은 이것은 면제년에 빚을 독촉하는 일을 금지만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해에는 수확이 없어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그 빚을 요구할 수 있고 배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면제란 빚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고 다만 어느 기간 동안 중단해 둘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빚의 면제는 영원한 것이라고 본다. 아마 이것이 더 맞는 견해인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분명한 제한이 있었다. 그것은 채무자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3절; 외국인은 이 율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과 그가 가난해야 된다는 것(4절), 그리고 장사를 위해 빌려간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빌려간 경우이며, 그것을 지불하게 되면 파국적인 빈곤에 떨어지고, 결국 다른 나라로 도 피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하나님을 반역할 시험에 빠지는 그런 경우에 국한된다. 이 율법은 채무자나 그의 친구가 빚을 갚을 수 있는데도 채권자가 빚을 받지 말아야 하는 법은 아니다. 이 율법의 존재 이유는

1. 안식년에다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이다.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 (2절). 매주의 안식일이 그들 자신들과 그들 종들과 가축을 위한 하나님의 날인 것과 같이 이것은 그들의 땅을 위한 하나님의 해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땅을 휴경케 함과 또 그들의 빚을 면제케 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에게 당신의 섭리에 의지하라는 것을 가르치셨다. 이 면제년은 복음의 은혜를 상징한다. 즉 복음의 은혜 안에는 주님께 우리가 영접되는 해가 선포되어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 빚의 면제, 즉 우리 죄의 용서를 받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또 받기를 바라게 된다. 한편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 주라는 교훈도 배우게 된다.

2. 이스라엘 사람 중 누구든지 극도의 궁핍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서이다. 4절의 난 외에 보면(흠정역 : 한글 개역과는 다름), "너희 중 가난한 자가 없게 하기 위하여" 라고 읽었다. 아무도 비참하고 수치스러울 정도로 가난하여 그들의 민족과 신앙에 치욕을 돌리는 일이 없도록, 저들의 명예를 잘 보존해야 되었던 것이다.

3. 여기에는 또한 만일 그들이 무엇이든지 그들의 가난한 채무자들 때문에 손해 본 것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들의 재물과 사업에 축복을 내리사 그것을 보충해 주신다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다(4-6절). 그들의 의무에 대해서 배려해 주라. 그리하면, 하나님은 그들이 빚을 관대히 면제해 준 것으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축복을 내리사 그해 마지막에 가서 그들의 재물이 넉넉케 하실 것이다. "너희가 여호와께 복을 받게 될 뿐 아니라" (4절). 그가 "너희에게 복을 주신다" (6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히 주셔서 우리가 넉넉할 뿐만 아니라 남은 것이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가난한 형제들이 요구에 완고하고 혹독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풍성함이, 두 극단 사이에 있는 그러한 불평등을 없게 하기 위하여(고후 8:14) 적어도 그들의 궁핍을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땅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요 그 모든 소산은 그 땅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에게 명령하시고 지시하시는 그대로 그들의 재산을 사용하고 처분하여 그분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일 그들이 그들의 가난한 형제들에게 빌려준 작은 금액을 면제한다면, 그들의 부유한 이웃들 곧 "여러 민족들에게 까지" (6절), 큰 액수의 금액을 빌려줄 수 있게 되고, 그들의 이윤만으로도 부유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빚진 자가 채주의 종이 되는" 것과 같이(잠 22:7), 여러 민족들이 그들에게 복종할 것이요 그들을 의존하게 될 것이다. 꾸어줄지언정 꾸지 아니하는 것을 우리는 큰 자비로 생각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 저울대를 바꾸시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물로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까닭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Ⅱ. 가난한 채무자들이 앞에 나온 율법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라는 율법이 또한 나타나 있다. 사람들은 채무자에 대하여 이렇게 된다면, 즉 면제년 전에 채무가 지불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잃고 말텐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꾸어주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너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 본문의 율법이 지정하고 있는 한 뜻이다.

1. 그들 중에는 돈을 빌리고 꾸어가야 할 처지에 있는 가난한 자들이 있을 것이 가정되어 있다(7절). 그러므로 자비를 받아야 할 자들은 이 지상에서 결코 중단되지 아니할 것이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리라" (11절). 비록 극단적인 빈곤에 떨어지는 그런 사람은 없다 할지라도, 지불 기일이 늦어지고 돈을 꾸어야 할 형편에 놓이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비를 베풀 마음을 가지면 자비를 베풀 기회는 언제나 나타나는 것이다.

2.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그 경우에 따라서 꾸어주든지 그냥 주든지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라" (7절). 손을 움켜쥔다면 그것은 강퍅한 마음의 표이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전 11:3). 동정의 주발은 풍성한 보답을 낳을 것이다(약 2:15, 16). 너희는 "너희 손을 활짝 펴서 넉넉히 꾸어주라" (8절). 때로는 그냥 주는 것 못지 않게 사려 분별있는 꾸어줌이 또한 더 자비가 된다. 그것은 꾸이는 자에게 근면과 정직을 행케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자립하는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자비를 베풀 대상이 나타날 때 우리는 무언가 주어야 할까 아무것도 주지 말까, 혹은 적게 줄까 많이 줄까를 선택해도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명령이 나타나 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줄 뿐 아니라 "너희 손을 활짝 펴서 넉넉히 주라" (11절).

3. 여기에는 채무를 면제해 주라는 전술한 율법을 생각하고 자비로운 대부(代負)를 해주지 않으려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경고가 주어져 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9절).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꾸어주면 떼일 것이 분명하니 꾸어줄 수 없다고 하지 말라." 그래서 너희가 꾸어주기를 거절한 가난한 형제가 하나님께 호소하여 그것이 너희에게 죄가 되고 큰 죄가 되지 않게 하라.

(1)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이 율법은 영적인 것이요, 마음에 품는 생각에 대한 제한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의 생각은 모르고 계시며 감시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니님의 선한 율법으로부터 악한 생각을 끌어 낸다는 것은 정말 사악한 마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용서의 자비를 베푸셨는데, 그들은 남에게 주는 자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3) 우리가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우리의 의무에서 떠나게 하거나 우리의 용기를 잃게 하는 모든 은밀한 암시들에 대항하여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죄의 행위에서 떠나고자 하는 자들은 바로 그 죄의 생각을 마음에 품는 데서 떠나야 하는 것이다.

(4) 우리에게 꾸어주는 자비를 베풀 기회를 가지게 될 때, 우리가 채무자를 신용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꾸어주라.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다시 받으리라 바라지 말고 오직 바로 그 부활의 때에 그것이 보상되리라고 생각하라(눅 6:35; 44:14).

(5) 우리를 거스려 고발하는 가난한 자의 소리는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귀를 저들의 소리에 귀울이실 것이고 그들에게 동정하시어 그들에게 가혹하게 대한 자들을 분명히 헤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6)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지혜롭다고 생각한 일이 결국 죄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면제년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꾸어주기를 거절한 사람은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들을 가리켜 "스스로 좋게 한 자라고 칭찬할것이다." (시 49:18). 그러나 여기서는 그는 사악하게 행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자기의 형제에게 몹쓸 일을 행한 자로 정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진실에 따라 집행" 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악이 되는 일이라고 선포하신 일은, 우리가 만일 그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파멸을 줄 것이다.

Ⅲ. 여기에는 우리가 남에게 자비를 베풀 때는 무엇이든지 즐겁게 주라는 명령이 나타나 있다.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라" (10절). 선한 일에 돈쓰는 일을 억지로 하거나 그것을 잃는다고 생각지 말라. 네 형제에게 친절을 베푸는 데에 인색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하지 말라. 그와 반대로 너는 네 소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스럽게 하며 선한 일을 행하며, 네 형제를 편안케 하며, 다가올 때를 위해 네 자신의 안녕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즐거움과 만족을 가지고 행하라.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Ⅳ. 여기에는 이 생에서의 보상도 약속되어 있다.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은 너희에게 축복하실 것이다." 탐욕의 사람들은 "주는 것은 헌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기쁘게 구제하는 것은 우리를 부하게하고 "창고를 가득차게 "할 것이다(잠 3:10). 그리고 그 영혼에게는 참된 위로를 충만케 할 것이다(사 58: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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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자유(신명기 15:12-18)

Ⅰ. 여기에 있는 율법은, 스스로 종으로 팔렸든가, 또는 극도의 빈곤으로 부모에 의하여 팔렸든가 또는 죄를 범하여 판정에 의하여 팔린 히브리인 종들에 관하여 주어진 율법의 반복이다.

1. 그들은 6년간만 봉사하고 7년째는 자유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12절; 출 21:2 과 비교해 보라). 그리고 만일 그들의 봉사의 기한이 차기 전이라고 안식년이 되면 그들은 자유케 되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자유한 백성이다. 그러므로 영구적인 노예란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인들도 자유에로 부름을 받았다.

2. 그들의 6년의 봉사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그들이 주인을 떠나기를 원치 않고 비록 더 큰 고통을 받을지라도 계속해서 섬기기를 원한다면, 이 경우에는 "송곳을 취하여 문에 그의 귀를 대고 구멍을 뚫음으로써" (16,17절) 그들을 영원히 즉 일생 동안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출 21:6 과 비교해 보라).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로 인하여 자유의 존귀와 기쁨에 대한 정당한 의식을 가지지 못하여 자신을 비천하고 굴종적인 정신으로 격하시켰을 것이나, 또 어떤 사람은 고요한 자족의 정신과 겸손하고 근면하고 사랑하고 불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명예롭게 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Ⅱ. 여기에는 그들이 종들을 풀어 보낼 때 그들의 손에 댓가를 치르라고 요구하는 율법이 부가되어 있다(13,14절).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의 친구들도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법적으로 풀려나기 이전에 속전으로 풀려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봉사에 대한 급료도 없고 그들이 노동해서 얻는 것이란 모두 주인의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세상에 나와 재출발하는 아무런 밑천이 없기 때문에 그 자유가 별로 좋은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인들은 여기서 그들에게 곡물과 가축으로 후하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어떠한 척도도 명시되어 있지않다. 그 종의 공적과 능력을 알고 있을 그 주인의 관대함에만 맡겨져 있었다. 그러나 유대 저술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인은 은 삼십세겔 이하의 가치로는 줄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상은 주인의 좋을 대로다." 여종들은 만일 그들이 그냥 머물고자 하면 귀를 뚫지 않았지만, 떠나려고 할 때는 그들에게도 사례금이 주어졌다. 이것에 대해서는 "네 여종에게도 일례로 할지니라" (17절)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이유는 감사의 율법에서 취해진다. 그들이 그렇게 행해야 할 이유가 있다.

1.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을 뿐 아니라(15절), 애굽인들에게서 가져온 물건들로 크게 부하게 해 주었다. 그들은 그들의 종들을 공수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 그들도 노예되었던 집에서 공수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푼 사랑과 친절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속한 자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게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그들의 종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인하여이다(18절). "그가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의 많은 것 중에서 얼마를 그에게 주기를 인색하지 말라. 품꾼의 정한 해는 기껏해야 삼년 밖에 되지 않는다(사 16:4). 그러나 그는 육년 동안 섬겼고 품꾼과는 달리 아무런 급료도 없이 봉사하였다. "주인과 지주는 그들의 종들과 소작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평안과 이익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그들에게 꼭 정확하게 법대로만 대하기보다 그들에게 친절까지 베풀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는 본장 앞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축복하시리라" (4,6,10절)는 말씀을 첨가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일가친지들에 대하여 우리의 의무를 양심껏 수행한 다음에야, 가정의 축복과 자손의 번영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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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의 첫 태생(신명기 15:19-23)

1. 여기에는 그들의 우양의 처음 난 것들에 관한 율법의 반복이 나타나 있다. 즉 만일 그것이 수컷이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19절). 그것은 애굽인들과 육축들의 처음 난 것들이 죽음의 천사로 인하여 죽임을 당할 때(출 13:2, 15)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은 살아남게 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여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제 팔일에는 하나님께 가져와야 되었고(출 22:30) 또 하나님의 제단과 제사장 사이에는 나누어져야 했다(민 18:17, 18).

2. 그들의 처음 난 것들을 처분하는 법을 지시하면서 그 말씀을 좀더 해석하기 위해 부가적인 율법을 부언하고 있다.

(1) 그것이 암컷이면 "네 소의 첫 암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암새끼도 털을 깎지 말라" (19절). 그 말씀에 대하여 패트릭 주교는 이와 같이 이해한다. 비록 첫새끼는 암컷이어서 하나님께 수컷처럼 온전히 드려지지는 못하지만 겨우 팔일만에 그것들이 다른 어미 가축과 같이 소유자에 의하여 이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도 하나님께 화목제로는 드려져야 하고 그해 마지막에 절기 때에 사용되었던 것이다(20절). 너희는 지시된 바와 같이 "하나님 여호와 앞에 먹을지니라" 고 했다(12:18 참조).

(2) 흠있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1절) 그것이 수컷이든 암컷이든 성소 가까이로 가져와서는 안 되고 제물로나 거룩한 축제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기에 합당치 아니하며 "흠 없는 어린 양인" 그리스도를 상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육되어서도 안 되고 그들 가정에서 일반 음식으로 잡아서 먹어야 했다(22절). 그러나 "피는 먹어선 안되었다" (23절). 이 주의의 빈번한 반복은 그 백성이 그것에 대하여 무엇이 필요하며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 무엇을 강조하시는가를 말해 준다. 우리가 이러한 멍에를 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자비인가! 우리는 그들과 같이 규정된 음식을 먹지 아니한다. 우리는 처음 난 송아지나 어린 양 그리고 그 외에 대해서도 차이를 가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모든 피조물의 첫 열매와 같이 우리 자신과 우리 시간과 힘을 하나님께 제일 먼저 드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의 선물이므로 우리의 모든 위안물과 즐거움을 그분을 찬양하는 데 쓰고 그분의 율법의 지시하심 안에서 사용해야 된다고 하는 이 율법이 가지고 있는 복음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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