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의 회고(신명기 8:1-9)
여기서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도 앞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고 행하라는 것이다. 그들의 복종은
1. 조심스러워야 한다. "지켜 행하라" (1절).2. 보편적이어야 한다. "모든 계명들을 행하도록 해야 한다" (1절).
3. 주(主)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특히 그분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진 선한 원칙에서 나와야 한다(6절). 그리고 그의 엄위에 대한 존경, 그의 권위에 대한 복종, 그리고 그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와야 한다. 모세는 그들 앞에 제시한 복종이 주는 큰 이득(그들이 살아 번성하며, 모두가 잘 되리라는 것) 이외에 그들이 힘써 복종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지시한다.
Ⅰ. 하나님이 그들을 지나오게 하신 그 광야를 되돌아 보게 하는 것. 즉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2절). 이제 그들은 성년이 되었고 그들의 기업을 받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미성년자들이었을 동안에 받은 훈련과 하나님이 그들을 훈련시키신 방법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광야는 그들이 40년 동안 스승들과 지도자들과 더불어 함께 기숙하고 배웠던 학교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을 회상할 시간이 된 것이다. 지나간 40년 동안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복종을 위한 여러 가지 논증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써 대단히 중대하고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또 기억함으로써 대단히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 모든 사건들이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유월절이 그들의 애굽에서의 구원에 대한 기념인 것과 같이, 초막절은 그들이 광야를 통과한 사실에 대한 기념인 것이다. 우리가 안심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신뢰할 수 있도록, 광야를 지나 이곳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전 과정을 기억하는 일은 대단히 좋은 일임을 명심하자. 여기에다 우리의 에벤에셀(" 도움의 돌";삼상 7:12)을 세우자.
1.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때때로 빠져 들었던 그 곤경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1) 그것은 그들의 교만을 제거하기 위하여서이다. 즉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다는 것 때문에 그들이 한없이 높아지지 아니하고 또 그들이 이제 곧 가나안에 들어감으로써 오는 안심과 자만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것은 그들을 "낮추시기" 위함이다.
(2) 그들의 완고함을 나타내기 위하여서이다. 즉 그들의 심중에 있는 모든 것(하나님 자신은 그것을 이미 완전히 알고 계셨음으로)을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까지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시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엇 때문이 아니고, 그들의 전체적인 자세는 못마땅하고 불쾌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들 천거하셨음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만나와도 연관되어 있지만(출 16:28),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받을 기회를 잃고 말았을 많은 계명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처음 조상을 동산의 동산의 나무로 시험하셨듯이, 이제 이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이 계명으로써 시험하셨다. 혹은 하나님은 그것으로써 그들에게 하신 약속 곧 당신의 교훈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수천대까지 복주시겠다는 말씀을그들이 믿는지 믿지 아니하는지를 시험하셨던 것이다.
2. 그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풍성한 물자가 공급되었던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양식과 의복과 건강을 특별히 돌보셨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이상 무엇을 가질 것인가?
[1] 그들는 만나를 양식으로 받았다(3절). 하나님은 그들로 "주리게 하시고" 그 다음에 가서 그들에게 "만나를 먹이셨다." 궁핍의 최고 경지는 그때 그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기쁘게 받고 더욱 두드러지게 할 수 있었으리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종종 낮추시는데, 그것은 그들를 도우심으로써 오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늘의 위로인 만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마 5:6).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달다" (잠 27:7). 만나는 "그들이나 그들의 조상들도 알지 못한" 종류의 음식이라고 했다. 16절에도 다시 나와 있다. 그들이 혹 때때로 그 지방에 이슬과 함께 떨어지는 어떤 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 어떤 자들은 그들이 이것을 알았다고 한다 - 그것이 어떻게 그러한 방대한 양으로 또 그렇게 끊이지 아니하고 어느 계절이든지 그렇게 오래 그리고 단지 어떤 일정한 지역에만 떨어지는지를 알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전혀 기적이요, 전례 없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셨다." 이것에 의하여 그는 그들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자원으로서 빵을 지정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빵 없이도 체력을 유지하고자양을 공급할 수 있고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것을 이용해서라도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실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 에 의하여 그 사용이 정당화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공기만으로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통상적으로 사용하시는 수단에 그분은 얽매여 있지 아니하며, 그런 것이 없이도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의 친절한 목적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는 사탄의 유혹에 대답하여, 본문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나의 하늘 아버지는 빵이 없이도 나(의 체력)를 지키실 수 있다" 라고 대답하시는 것이다(마 4:3, 4). 하나님의 자녀들 중 그 누구도 하늘 아버지를 불신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생활 필수품을 얻기 위하여 죄가 되는 그릇된 방법을 취하지 않게 하라. 하나님은 의무의 길과 정직한 근면의 길로나아가는 자녀들에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참으로 그들은 배부를 것이다."
이 사실은 영적으로 의미를 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당히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뜻과 은혜의 겨시가 될때, 그것는 곧 영혼의 양식이요, 빵에 의해서만 부지되는 삶이 아니라 인간의 참 삶을 부지해 주는 생명의 양식이 된다. 이 만나는 "생명의 떡" 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이시다.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산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떡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을 양식을" 위해 삶을 낭비하지 말자.
[2]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이르는 동안 적어도 그들 대부분은 같은 의복을 계속 입었을 것이다. 그들이 옷을 갈아 입지 않아도 언제나 새옷이었고, 오래도록 저들의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다(4절). 이것은 분명히 기적이었고, 만일 유대인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의복이 그들과 함께 커져서 언제나 그들 몸에 맞았다면 더 큰 기적이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옷 보따리를 메고 나왔으며(출 12:34), 그들이 서로 몸에 맞도록 필요에 따라 서로 교환해 왔었기 때문에, 그들이 새옷을 마련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충분하였으리라는 것이 분명하다.
(2)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음식과 의복을 마련해 주시는 방법을 이용하여서
[1]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셨다. 40년 동안 어떤 변화도 없이 같은 음식, 같은 의복, 같은 패션(fashion)에 묶여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고행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베풀어 주신 자비는 더 큰 자비의 상징이라는 것과 인간의 행복은 "자색 옷이나 고운 베옷" 을 입거나 "매일 호화로이 지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의의 심판을 아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은 그들에게 있어서 음식과 의복보다 앞서야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자연적인 조건이 다한 곳에서도 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실 수 있다는 점을, 그들이 믿는지 안 믿는지를 시험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로 당황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제자들도 이와 같은교훈을 배우게 했고(마 4:25), 그가 그들을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냈으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는 것을 주의시켰을 때(눅 22:35) 그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교육시키실 것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돌보신다. 그들이 매마른 땅과 거칠고 황폐한 길로 걸어서 여행했음에도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 (4절)고 했다. 여행을 위한 편안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였다고 하여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이러한 자비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은 안전할 뿐만 아니라 편안하기도 하다는 것를 명심하자. 우리가 의무 수행의 길을 걷는 동안에느 우리 발이 부르트지 않는다. "범죄의 길이 험한" 것이다 (잠 13:15). 하나님은 "당신의 성도들의 발을 지키시기로" 약속하셨다(삼상 2:9).
3. 그들은 역시 그들이 받은 징계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5절). 그들이 교육을 받은 이 여러 해 동안에 그들은 엄한 훈련을 받았고 또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지식을 사랑하여 그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자식을 징계함과 같이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를 징계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사랑하시는 부드러운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채찍의 쓰라림도 주신다. 이스라엘이 그러했다. 즉 그들이 징계를 받았으나 저주를 받지는 않았으며, 인간의 채찍을 통해서 징계를 받았던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원수를 파멸시킬 목적으로 상해를 입히고 살해하는 것과 같이 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식의 행복과 안녕을 이루기 위해 자식을 징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시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단련시키시고 가르치셨다(시 94:12). 이것을 그들은 "마음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바르게 키우셨다는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그것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하여 그들은 효성과 찬양을 드려 보답해야 한다. 하나님은 너희를 아버지와 같이 단련시키셨다. "그러므로 하나님 여호와의 명려을 지켜야 한다" (6절).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이렇게 응용해야 한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우리우리의 의무에 충실하고 민첩하게 되자. 그래서 그들은 광야를 되돌아 보라는 지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Ⅱ. 모세는 하나님이 이제 그들을 이끌어 들어갈 가나안을 바라보라고 지시한다. 우리가 바라는 길을 바라보라. 우리의 회상과 우리의 전망이 우리로 하여금 순종케 하는 논증을 마련해 줄 것이다. 아래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제 그들이 차지할 그 땅은 여기에서 바라는 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땅이라고 기술되어 있다(7-9절).(1) 그 땅의 "여호와의 동산 에덴과 같이 물이 풍성한 곳" 이다. 그 땅은 토지는 풍성한 소산을 가져다 주는 "시내와 샘과 분천이" 있는 땅이었다. 아마 거기에는 가나안인들이 우물을 발견해 내고 또 팠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때보다 지금이 더 많은 물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의 결실과 자기들의 노력의 결실을 거두었다.
(2) 그 땅은 필수품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의 편의와 안락을 위한 모든 좋은 선물까지도 많이 산출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땅에서 넉넉한 빵을 얻었다. 그곳은 곡물의 땅으로 밀과 보리의 산지였다. 그곳에서는 농부들이 보통하는 만큼의 관심과 노결를 기울이면 부족함이 없이 먹고 살 수 있었다. 그 땅은, 거기에 사는 자들의 범죄만 없다면, 결코 불모지가 되지 아니하는 풍요의 땅이었다. 그들은 갈증을 가시게 할 수 있는 넉넉한 물이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줄 포도와 과일들이 풍성하였다. 만일 그들이 맛난 음싯을 원하더라도, 그것들을 얻기 위해 먼 나라로 사람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그들 자신의 무화과나무와 석류나무, 가장 좋은 올리브나무가 모두 잘 준비되어 있엉고, 꿀이나(혹자들이 해석하듯이) 대추, 야자나무가 풍성히 마련되어 있었다.
(3) 그 나라의 지하자원까지도 대단히 풍성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은과 금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으로 생각된다. 금과 은은 스바의 왕들이 선물로 가져왔다(시 72:10, 15). 그러나 그들은 이것들보다 더 유용한 금속, 철과 놋을 풍부히 가지고 있었다. 철과 놋 광산은 그들의 산지에서 발견되었다(욥 28:2 참조).
2. 이러한 사실들이 언급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그들을 통과하게 할 광야와 하나님이 그들을 들어가게 할 아름다운 땅 사이의 차이를 보이시기 위해서이다. 인내와 복종으로 어려운 환경의 괴로움을 견디어내고, 또 그러한 역경으로 말미암아 겸손하게 되고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보다 좋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갖춘 셈이란 점을 명심하자.
(2)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주시는 배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리고 그 은혜가 계속될 수 있기 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이 아름다운 땅의 소유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었다.
(3) 장차 올 선한 것들의 상징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들이 본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아마 모세는 여기에서 장차 올 더 아름다운 나라의 상징을 보았을 것이다. 즉 복음의 교회는 신약 성서의 가나안이며, 그곳에는 하나님의 은사와 은총의 성령이 샘솟고 의의 나무가 있으며 의의 열매가 가득찬 곳이다. 하늘 나라는 아름다운 땅이다. 그곳에는 부족함이 없고 오직 기쁨이 충만할 뿐인 곳이다.
세상 부귀에 대한 경고(신명기 8:10-20)
모세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보게 될 큰 풍부함을 언급하고 난 후, 그런 풍요의 남용에 대비하여 그들에게 주의를 시킬 필요를 발견한다. 그들이 매마른 광야에서 나온 직후에 곧장 포도원으로 들어가게 된 지금 더욱 죄짓기가 쉬웠을 것이다.
Ⅰ. 모세는 그들에게 풍요한 조건에 처했을 때 지킬 의무를 지시한다(10절). 그들은 배불리 먹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과식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들의 후원자요 그들의 잔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식사 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잊지 말라고 했다. "그 때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0절).
1. 그들은 너무 많이 먹고 마셔서 오히려 더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생각이 나기보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무를 이행하고 싶은 마음을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2. 그들이 먹고 배불렀을 때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예배한 때와 같이(출 32:6) 거짓 신들에게 감사하는 자들과 어떤 교제도 해서는 안 된다.
3. 그들이 어떤 위안을 받았든자, 그 영광은 하나님이 받아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식사 전에 가르치신 바와 같이(마 14:19, 20), 우리는 여기서 식사 후에 감사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전자는 호산나 하나님 축복하소서이고 후자는 할렐루야 곧 하나님을 찬양하라이다. 무슨 일에나 우리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심 깊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엄숙한 만찬 때 뿐만 아니라 다른 보통 경우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에도 이 귀절을 잘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포도주 한 잔을 마실 때는 그들의 두 손을 들고 포도 열매를 창조하시어 마음을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했다. 그들이 꽃 한 송이에서 향기를 맡을 때는 이 꽃의 향기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다.
4. 그들이 그 땅의 결실에 대하여 감사했을 때 그들에게 약속으로 주신 아름다운 그 땅 자체에 대해서도 감사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위안에서부터 우리에게 그러한 안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계기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에게 좋은 땅을 주신 것으로 감사했듯이, 우리 나라(영국)처럼 또한 좋은 땅을 주신 연고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나라도 없다고 생각한다.
Ⅱ. 그는 번영된 조건에서 오는 유혹에 대비하여 그들을 무장시켰다. 즉 "너희가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는 때" (12절) 그러한 때를 대비하여 경계하도록 지시한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기들이 세우지 아니한 집들을 주었지만(6:10),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크고 더 훌륭한 집을 가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 즉 너희가 아브라함과 같이(창 13:2) "너희의 양이 번성하며 은 금이 증식될 때(13절) - 그리고 "네 모든 소유가 번창케 될 때"
1. "그 때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 때에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14절). 재산이 증가될 때 마음도 허영심과 자기만족과 자신감으로 높아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높은(번성하는) 조건에서도 낮은(겸손한)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자. 겸손이 번영의 안전이요 장신구이다.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17절)는 교만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우리는 결코 우리의 번영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된 것으로 찬양해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의 댓가로 돌려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지혜자" 라고 항상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한 자" 라고 언제나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전 9:11).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의 그물에 제사하는 것" 은 영적인 우상 숭배이다(합 1:16).
2. "그 때는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음이 교만해진 이런 일이 다음에 따라온다. 악한 자가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는 것" 은 "교만한 얼굴을 통하여" 오기 때문이다(시 10:4). 자기 자신들을 찬양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멸시한다.(1)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의무를 잊지 말라" (11절). 우리가 만일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잊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위에 있는 권위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그분에 대한 기대를 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부하게 되면, 신앙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들는 신앙 없이도 행복하고, 신앙은 하찮은 것이요 자기들로서는 너무나 힘겨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의 체면이 신앙에 머리숙이는 것을 금지하고, 그들의 자유가 닛앙에 봉사하는 그들을 막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하면 선할수록 우리가 그분께 더 악하다면, 참으로 우리는 배은망덕한 존재이다.
(2)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지난 날에 베푸신 일을 잊지 말라. 곧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해 내신 일이로다(14절). 크고 두려운 광야에서 너희를 위해 주신 양식을 또한 잊지 말라." 그들은 광야의 공포가 그들에게 남겨 놓은 감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레미야 2장 6절을 찾아보라). 거기에는 광야를 바로 "사망의 음침한 땅" 이라고 부르고 있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바르게 하기 위하여 때로는 불뱀과 전갈을 사용하시기도 했었지만, 그들을 불뱀과 전갈로 멸망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셨다. 또 하나님은 거기서 굳은 반석에서 물을 내시어 죽을 자리에서 그들을 지켜 주셨다(15절).(패트릭 주교의 말과 같이) 사람들은 그 반석으로부터 물보다는 차라리 불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님은 광야에서, 앞에서 말했지만(3절) "마침내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16절) 만나를 주심으로써 그들을 돌보시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스라엘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최상의 것은 보류하셨다는 것을 주목하자. 그가 아무리 그들에게 그 과정에 있어서 어려운 처사를 내리시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들에게 마지막에 선한 것을 행하실 것을 잊지 않으신다.
(3) "너희의 지금의 번영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것임을 잊지 말라(18절). 너희에게 부를 주신 이는 그분이란 것을 기억하라. 그분은 너희에게 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심과 우리의 받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것을 영적인 부에도 적용하라. 우리가 지혜를 얻고 무엇보다도 명철을 얻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나 지혜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얻게 된 것이 우리의 노력의 소산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것을 얻을 힘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게 찬양을 돌리고 그것를 하나님께 바쳐서 쓰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지런한 자의 손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축복" 은 이 세상에서 그들을 부하게 할 뿐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부하게 할 것이다. 그가 너희에게 부를 얻을 힘을 주신 것은, 너희를 만족케 하고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라기보다 그의 계약지키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모든 선물은 그의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오는 것이다.
Ⅲ. 모세는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함으로써 오게 되는 치며적인 결과에 대하여 그가 종종 그들에게 말한 마땅한 경고를 되풀이하고 있다(19,20절).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보자.
1. 그가 죄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죄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를 예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떠한 악함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게 하는가? 일단 저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애정이 떠나게 되면, 곧 거짓된 허영심으로 들어차게 된다.2. 모세는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임할 진노와 파멸을 어떻게 선포하고 있는가? "만일 너희가 그렇게 행하면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그리고 너희가 그렇게 자랑하던 너희 손의 능과 힘이 너희를 돕지 못할 것이다. 아니 너희는 너희 앞에서 쫓겨난 민족들과 같이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불순종하고 충실하지 못한다면, 너희가 맺은 계약과 상호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꼭같이 너희도 인정치 않을 것이다." 더불어 남의 죄를 쫓아가는 자들은 그들의 멸망까지도 뒤쫓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만일 우리가 죄인들과 같이 행한다면 죄인들이 받는 댓가와 같은 댓가를 받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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