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신실하라(신명기 7:1-11)
Ⅰ.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과의 모든 우리와의 교제에 대한 아주 엄격한 주의가 나타나 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무익한 혹암의 일과 교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저들에게 분부되었다.
1. 그들은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1,2절). 여기에는 이스라엘에 잔인한 일을 행하라는 명령이 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선한 일이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필요하고 공납되는, 명예로운 일이다.(1) 하나님은 여기에서 하나님 자신의 몫을 행하심으로써 그 일에 가담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이끄시고", 현재 그 땅의 점령자들인 여러 민족들을 그들 아에서 내쫓으시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허락된 하나의 사실로 언급되고 있다. 그의 힘은 불가항력적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것를 하실 수 있고 그의 약속은 틀림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는 그 일을 하실 것이다. 이제,
[1] 여기에는 이들 이방 민족들의 이름과 수효가 나온다(1절). 그들은 모두 "일곱" 민족들로서, 7대 1이란 커다란 불균형이다. 이스라엘이 행하여야 할 영역과 한계를 그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이방 민족들의 이름이 낱낱이 열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잔학 행위는 거기까지만 미쳐야 하고 그 이상 더 나아가서는 안되며, 그들이 임무를 수행한다는 목적 아래 그들의 진로에 가로 놓여 있는 모든 민족을 멸해서는 안 된다. 그 파멸의 물결은 여기에서 머물러야 한다. 여기에 여러 민족들에 대한 이러한 한계 설정이 명백히 되어 있는 것은, 후 세대가 이것을 하나의 전례로 생각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이 사건이 다른 민족을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는 야만적인 율법을 정당화하는 데로 이용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이러한 잔학 행위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었다 하여 본받을 일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수많은 짐승이 희생 제물로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지던 구약 시대에 있었던 일이요, 지금은 모든 속죄 제물이 그리스도의 죄로 드려진 그 위대한 제사에 의해서 완성되고 폐기되었으므로, 인간의 피는 그 당시보다 더욱 귀중하게 되었고, 아무리 큰 권력을 지닌 자들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피를 함부로 흘릴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2] 그 민족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크고 더 힘이 세다는 점이 여기서 인정되고 있다. 그들은 그 땅에 오랫동안 뿌리박고 살아왔는데, 이스라엘이 나그네처럼 거기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수도 더 많고 체구도 훨씬 더 크며, 이스라엘보다 더 전쟁에 숙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조건이 이스라엘 앞에서 쫓겨나게 되는 그들의 운명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원수의 강함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을 더욱 찬양해 줄 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한 것이다.
(2)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라고 명령한다. 너희는 "그들을 쳐서 진멸할 것이다" (2절).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 내신다면, 이스라엘이 그들을 맞아들여서 소작인으로나 공물를 바치는 속국인들로나 혹은 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과는 어떤 종류의 계약도 맺어서는 안 되고, 어떠한 자비고 그들에게 베풀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잔학 행위는 다음과 같이 지시되어 있다.
[1] 그들(이방 민족)과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의 사악함에 대한 벌이다. 아모리 족속의 악행이 이제 충만되었으니,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마침내 그 형벌은 더 혹독한 것이 된다.
[2] 만일 그들이 살아 남게 되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피해를 줄 것이므로, 그러한 불행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서이다. 이 증오의 백성들이 거룩한 씨를 부패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저들이 거룩한 씨와 혼합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참된 여배가 상실되기 보다는 이 모? 생물들이 지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욕망을 이와 같이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그것이 너희 자신의 과실이 아닐진대, "죄가 너희를 다스리지 못하리라" 는 그 약속에 의하여 온갖 정욕들을 우리 손에 붙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과 타협하지 말고 거기에 어떤 자비도 베풀지 말고, 다만 그것들을 금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서 철저히 파멸시키자.
2. 이스라엘은 진노의 칼을 피하여 살아 남은 자들과 혼인해서는 안 된다(3,4절). 가나안 족속들의 가정들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아마 그들 중에는 "존귀한" 집안이라고 불리우는 가문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들에게는 하나의 유혹이 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특히 이스라엘 족속들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이름을 가진 자들은 자기들의 혈통을 높이기 위하여 그들과 결연을 맺고자 하는 유혹이었을지도 모른다. 더우기 그 나라와 친분을 맺으면 그 나라를 섬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경외심이 이 모든 조건들을 압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과 통혼하는 것은 불법인 즉 이는 그것이 위험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홍수 이전의 옛 세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주었음이 증명되고 있다(창 6:2). 그리고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불경건하고 불신앙적인 결혼으로 인하여 자기들을 망쳐 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분통하면, 악인이 개종할 가능성보다는 선한 사람이 타락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희 아들로 하여금 나를 떠나게 할 것이다" 라는 경고는 지극히 합당한 말씀이다. 솔로몬은 이 점에서 자신이 우매했던 사실에 대하여 값비싼 댓가를 지불한 셈이다. 우리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에 대하여 민족적인 회개가 있었고 또 개혁을 위하여 고심한 사실을 엿볼수 있다(스 9:10; 느 13:). 그리고 신약 성서도 "너희는 믿지 않는자와 명예를 같이 하지 말라" 는 주의를 주고 있다(고후 6:14). 배우자의 선택이 적어도 신앙의 정당한 고백의 한계 안에서 성립될 수 없을 때는, 그들 자신의 만남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약속할 수 없다. 여기에서 시리아 역(譯) 성서의 한 귀절을 이 명령의 이유로서 첨가하겠다. 즉 "우상 숭배자들과 혼인하는 자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우상들과 혼인하는 것이다" (3절).
3. 그들은 저들의 모든 우상 숭배의 유물들을 파괴해야 한다(5절). 우상 숭배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그것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제단을 헐며, 우상을 깨뜨리며, 목사을 찍어 버리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살라야 했다. 이 명령은 이미 앞에서도 주어졌던 것이다(출 23:24; 34:13). 이런 종류의 많은 일들이 경건한 열심을 가진 그 백성들에 의하여 행하여졌고(대하 31:1), 선한 요시야 왕에 의하여 행해졌으며, 또한 신약 성서에서는 마술서를 불사른 사실과도 비교가 된다(행 19:19).
Ⅱ. 이러한 주의를 주는 데에는 대단히 합당한 이유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1.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하나님의 선택(6절). 하나님은 다른 어떤 백성과도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계약과 교통을 맺으신 적이 없다. 이와 같이 그들을 명예롭게 해 주신 그분에게 우상 숭배를 인하여 그들이 모독을 돌려서야 되겠는가? 자기들에게 친절을 나타내신 그분을 그들이 업신여겨서야 되겠는가? 하나님이 그들을 들어 모든 백성 위에 뛰어나게 하셨는데,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다른 백성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려서 되겠는가? 하나님은 그들 외에 다른 백성을 택하시지 않으시고 오직 그들만 당신 앞에 특별한 백성으로 삼았거늘, 그들이 오직 그분만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2. 이러한 선택을 하신 그 은혜의 무한함.
(1) 이스라엘 자신들에게는 이와 같은 은총과 칭호를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다" (잠 14:28), 그러나 그들의 수효는 미비했었다.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을때는 단지 70명 뿐이었고 거기서 크게 번성하였다 해도 숫적으로는 이들보다 더 큰 백성들이 세상에 많이 있었다.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7절). 예루살렘 탈굼(Jerusalem Targum : 시리아역 구약 성서) 저자는 자기 민족에 대하여 "너희는 영적으로 겸손(비천)하고, 모든 민족보다 유순하다" 라는 과찬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전혀 반대이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백성보다 목이 곧고 나쁜 성품을 가지고 있다.
(2) 그 선택의 이유는 순전히 하나님 자신의 의사였다(8절).
[1] "그가 너희를 사랑하시고자 하셨으므로" 너희를 사랑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당신 보시기에 선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자유로이 사랑하신다(호 14:4). 멸망하는 자들은 모두 그들 자신의 행적으로 인하여 망한다. 그러나 구원받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대권(大權)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자 하시므로, 당신의 역사(役事)를 완수하신다. "그는 너희 열조들에게 서약하신 서약을 수행하시려고 너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서는 채무자가 아니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다만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약속에 대하여 스스로 채무자가 되셨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불합당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를 이행하신 것이다.
3. 그들이 서약한 계약의 취지는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을 때 하나님도 그들을 향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확실히 하나님께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어야 했다.
(1) 하나님은 당신의 친구들에게는 인애를 베푸신다(9절).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그 민족들의 신들이나 공상으로 만들어낸 것들이나 조잡한 싯귀의 주제들과는 다른 분이다. 다만 그는 하나님이시요, 참으로 하나님이시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그는 당신 자신의 약속만 행할 수 있다든가 그것만 준비되어 있는 분이 아니라, 그를 예배하는 자들의 정당한 모든 기대에 응답하시는 분이다. 그는 확실히 언약을 지키시고 자비를 보이시되,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겠다는 그 약속에 따라서 자비를 나타내시는 분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양심껏 지키지 아니하고 그를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 2계명에 대한 약속의 설명에서 첨가되어 있는 것과 같이) 수천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수천대까지 이르는 것이니, 그 샘이 다함 없고, 그 흐름이 끝이 없는 것이다.
(2) 그의 원수에게는 정의로 대하신다. 그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신다" (10절).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고의적인 죄인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다. 육적인 마음은 그를 대적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특별히 더 그러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적수들과 야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해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그들은 자신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이 모든 무기력한 악의를 무시한 채 그들의 목전에서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화살은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준비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시 21:12). 혹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사 그 심판이 우상 숭배에 대한 정당한 형벌임을 그들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욥기 21장 19절에서 "그가 그 몸에 갚으셔서 그로 깨닫게 하셔야 할 것이다" 는 말씀과 비교해 보라. 비록 보응이 느린 것 같이 보이지만, 결코 연기되지 아니한다. 악인들과 죄인들은 "이 땅에서 보응받게" 될 것이다(잠 11:31). 나는 예루살렘 탈굼이 이 문제에 대해서 허식을 꾸민 것을 그냥 넘길 수 없다. 그것은 미래 상태에 관한 유대 교회의 신앙을 다음고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을 오는 세상에서 파멸시키시기 위하여, 이 세상서는 단지 저들의 선행에 대한 상급을 베푸신다" 고 했다.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신명기 7:12-26)
Ⅰ. 우상 숭배에 대한 주의가 반복되어 있고, 우상 숭배자들과의 교제에 주의하라는 말이 나타나 있다. "너희는 그 백성을 진멸하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지 말라(16절). 만일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하는 자들과 교제하기를 좋아한다면 우리는 어두움의 일 그 자체와 교통할 위험이 있다. 여기에는 역시 조각한 신상들을 파괴하라는 명령이 반복되어 나타나 있다(25, 26절). 이방인들이 예배한 우상들은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것들도 그렇게 여겨야 한다. 즉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게 된다. 이 사실이 그들에게 강요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너희는 그것을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다" (26절).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가증스러운 것" 곧 죄에 대해서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분노를 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자기들의 탐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이러한 조상(彫像)들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입혀진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고, 그런 것을 파멸시키는 것에 대해 애석하게 여기지 말라. 아간은 저주받은 물건을 자기가 이용하려다가 너무나 큰 값을 지불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보류해 두어서도 안 된다. "너희는 장식으로 걸어 두기 위해서라도 집안으로 그것을 가지고 들어오지 말고, 고대 유물이라 하여 보존해 두지 말라. 아니 가장 적절히 사용될 수 있는 용도인, 불을 피울 땔감으로도 사용치 말라." 이러한 주의가 주어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그것으로 인하여 올무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 이다(25절). 즉 "너희가 의식(意識) 하기도 전에 그것를 좋아하고 사랑하여, 그것에 홀리어 그것을 숭배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서이다.2. "너희가 그와 같이 진멸받을까" 하여서이다(26절). 조상(彫像)들을 만드는 자들도 그것들과 같이 역시 우둔하고 무지각하게 ?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더 나쁜 의미에서 그들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파멸에 넘기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를 함께 비교하여 보고 우리를 함정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를 저주 아래로 끌어가는 것임을 명심하자.
Ⅱ. 만일 그들이 순종하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의 약속이 가장 감격적인 여러 가지의 유연한 말로 상술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인이 된다는 것을 얼마나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며 또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말해 준다. 여기에 가능한 모든 보증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
1. 만일 그들이 계약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진실하게 수행하려고 애쓴다면,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당신의 의무를 이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너희 열조에게 맹약한 언약을 지켜 인자를 베푸시니라" (12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무에 항상 충실하자.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의 불변하심를 의심할 수 없게 되리라.2.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섬기며 헌신하고 자기들의 소유를 그에게 바치면,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복주시어 그들을 크게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13,14절). 그들이 자기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이 우상의 무엇을 바랄 필요가 있겠는가?
(1) "그는 너희를 사랑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요일 4:10).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충실함으로써 그의 사랑에 보답하면, 그리고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실을 기대할 수 있다(요 14:21).
(2) "그는 너희를 모든 백성보다 더욱 사랑한다는 표시를 주어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특별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자신들을 스스로 그 이웃들과 구별한다면, 하나님은 특별한 축복으로 내리어 그들을 이웃들보다 고귀하게 해 주실 것이다.
(3) "그는 너희를 번성케 하실 것이다." 사람이 많아져서 온 세계에 사람이 살게 되는 것을 위해서는 수적 증가가 출옥이었다. 이 사실은 수차 언급되었다(창 1:25, 9:1). 이제 하나의 작은 세계와 같은 가나안 땅에도 사람이 번성할 수 있도록 여기에 그 축복이 내린 것이다. 그들의 집안과 재산이 다 같이 증가되리라고 약속되어 있다. 즉 상속자 없는 재산이나, 재산 없는 상속자들이 그들의 운명이 될 수는 없었다. 완전한 만족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자식들과 그들을 위한 풍부한 재산이 소유가 다 같이 있어야만 했다.
3. 만일 그들이 애굽의 우상 숭배에 물들지 않고 자기들의 순수심을 지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악질(惡疾)에서 그들을 깨끗이 지키실 것이다(15절). 이것은 저들을 애굽에서 떠나올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애굽의 여러 가지 재앙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어떤 유행병(우리가 그렇게 부르듯이)을 말해 주고 있는 것같이도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애굽인들 사이에 유행했었고 하나님이 그들의 민족적 죄에 대하여 징계하신 질병으로 회상하고 있었다. 질병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그가 명하시는 대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영혼의 죄를 억제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4. 만일 그들이 민족들을 진멸하려고 했다념 그들은 필경 저들을 진멸하였을 것이며, 그 누구도 그들 앞에서 항거할 수 없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저들이 해야 할 의무는 그 자체가 그들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즉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진멸하라." -이것이 명령이다(16절). 그러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저들을 너희에게 붙이시고 저들을 멸하실 것이다." -이것이 약속이다(23절). 이와 같이 우리도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도록, 단 우리 자신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또 죄를 권장하지 않도록 하고, 죄를 미워하고 그것을 대항하여 싸우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롬 6:12, 14 절). 우리가 오히려 죄를 정복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가나안 정복의 난점과 회의가 그들 조상들에게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모세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용기를 잃게 하는 것들과 대항해서 싸우고,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명령한다(18절). 그리고 다시금 반복한다(21절).
(1) 그들의 원수의 수 많음과 강함으로 인하여 낙담하지 말라고 한다. 즉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라고 하지 말라" (17절). 우리는 수의 많음이 승리의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유혹에 대항해서 이스라엘을 담대하게 하기 위해서, 바로와 애굽의 모든 세력을 파괴시켰던 사실을 그들에게 회상시켜 준다(18,19절).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불러 내실 때 행하신 큰 "유혹이나 기적" 들(시리아 역은 그렇게 읽고 있다)과 징조와 기사들을 그들은 보았고, 거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들을 추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었을 것이다(비록 가나안인들도 매우 강력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애굽인들 만큼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더 큰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더 작은 일도 능히 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저들을 쫓아 내시려 하신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만일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면, 그들은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일이 그들에게 조금도 친절한 일이 되지 못하고 만다. 시작하신 그분이 마치기도 하시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것을 "잘 기억하라" (18절). 하나님의 말씀고 역사가 잘 기억되어야, 그것이 우리의 신앙과 복종에 도움을 주게 된다. 우리가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 우리에게 즉각 준비될 수 있는 것이 잘 마련된 것이다.
(2)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힘의 허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낙망하지 않게 하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벌" 또는 어떤 해석자들의 말과 같이 "장수말벌" 을 후원 부대로 보내실 것이다(21절). 아마 이 벌들은 보통 벌보다 더 큰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적들을 매우 무섭게 만들고 성가시게 굴어서(아마 그들 중 많은 자들이 이것 때문에 죽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대다수의 군대가 쉽게 이스라엘에게 희생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인들에게는 파리로 재앙을 일으켰으나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벌들을 가지고 재앙을 일으키셨다. 작은 형벌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림을 보고 경고 받지 않는 자들은 더 큰 형벌이 자신들 위에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큰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크고 두려운 하나님" 이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다(21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결코 우리를 대항하는 어떠한 피조물의 세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3) 그들의 군대의 진격이 느리다고 하여 낙망되지 않게 하며, 가나안 사람들이 첫 해에 다 추방되지 않을 경우에는 영원히 정복되지 않는다고 잘못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점점 쫓겨날 것이니 급히 멸하지 말라" (22절).
우리는 교회의 확장과 그 원수의 파멸이 즉시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결코 결과를 못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일은 당신 자신의 방법과 시간에 따라 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일들을 언제나 최선으로 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의 마음에 있는 부패도 "점차적으로" 추방되는 것이다. 성화(聖花)의 역사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드디어 그 심판은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이 여기서 주어진 이유는(앞의 출애굽기 23:29, 30 에서와 같이) "들짐승들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 사람들의 자식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그 땅이 괴물들의 거주지가 되거나 "들짐승들의 거처" (사 34:13, 14)가 되는 것보다는 가나안 족속들 중의 남은 자들이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 땅을 넉넉히 채울 만큼 수가 증가될 때까지, 그 땅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들짐승들 때문에 오는 피해도 막을 수 있었다(레 26:6). 그러나 안정된 번영이 가져다 주는 일반적 결과인 교만과 안일과 그밖의 다른 죄가 들짐승들보다 더 위험스러운 적이었다. 그래서 이것들이 커져서 그들을 더 해치기가 쉬웠을 것이다(삿 3:1,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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