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2. 그는 주의를 요구한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너희가 배워서 지키고 행하기 위하여 듣고 주의하며, 듣고 기억할 수 있도록 들으라 그렇지 않다면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그 뜻을 배우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나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 배운 바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들음과 배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우리의 머리를 온갖 개념들로 가득 채우고 혹은 우리의 입을 말로서만 가득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생활을 수정하고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
3. 모세는 그들 자신을 통치해야 할 바, 그들과 호렙산에서 맺는 그 계약에 계명을 연관시켰다. 계명을 계약으로 전환시키는, 하나님의 은총의 놀라운 겸비를 깨달으라. 계약이란, 우리가 동의했으므로 보다 복종해야 할 의무가 깊은 것이요 하나님의 약속이 깃들어 있으므로 우리에게 보다 큰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하는 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약속에 따라 제 2,3,4계명과 같이 어떤 계율에는 약속과 경고가 첨부되어 있어서, 그 계율을 계약의 형식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 계약에 참여한 당사자들. 하나님이 그것를 세우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다 즉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 그것을 세우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할례의 계약" 을 주셨다(행 7:8). 그러나 십계명의 계약은 하지 않았다. 계시의 빛이 점차로 밝게 비치어 자손들은 조상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 언약은 우리들과 함께 세워진 것이다. 혹은 우리를 대신하고 있는 우리의 양친들과 함께 세워져서 우리에게 계승된 것이다."
(2) 이 계약의 공포(公布). 하나님 자신이 하셨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그 계약의 조항들을 읽으셨다(4절). 시리아역(譯)이 말하고 있는 대로, "너희와 얼굴을 마주 대하여 말을 서로 나누셨다." 그가 그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밤의 환상으로가 아니고(욥 4:12, 13) 공중 앞에서,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시어 수천의 모든 이스라엘이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 다음 그들이 그에게 답하는 대답을 받으셨다. 그래서 그 계약은 "대면하여" 맺게 되었던 것이다.
(3) 계약의 중개자. "모세는 산 아래 하나님과 그들 가운데 섰다" 고 했다(5절). 그리하여 예비 조정을 위하여(출 19:), 그리고 비준의 교환을 위하여(출 24:), 양판 가운데 서서 메시지를 전하였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우리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를 듣고 그에게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도록 자신의 손을 우리 위에 얹는 축복 받은 중개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10계명 선포의 서언(신명기 5:1-5)
1. 모세가 회중를 소환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을 불렀다." 장로들 뿐 아니라 들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많은 백성들이 모인 것 같다(1절). 그들 중의 가장 위대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보다 높지 못하며, 그들 중 가장 비천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무시당할 만큼 비천하지는 않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행해야 할 바를 듣고 알아야 했다.2. 그는 주의를 요구한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너희가 배워서 지키고 행하기 위하여 듣고 주의하며, 듣고 기억할 수 있도록 들으라 그렇지 않다면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그 뜻을 배우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나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 배운 바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들음과 배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우리의 머리를 온갖 개념들로 가득 채우고 혹은 우리의 입을 말로서만 가득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과 생활을 수정하고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
3. 모세는 그들 자신을 통치해야 할 바, 그들과 호렙산에서 맺는 그 계약에 계명을 연관시켰다. 계명을 계약으로 전환시키는, 하나님의 은총의 놀라운 겸비를 깨달으라. 계약이란, 우리가 동의했으므로 보다 복종해야 할 의무가 깊은 것이요 하나님의 약속이 깃들어 있으므로 우리에게 보다 큰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하는 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약속에 따라 제 2,3,4계명과 같이 어떤 계율에는 약속과 경고가 첨부되어 있어서, 그 계율을 계약의 형식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 계약에 참여한 당사자들. 하나님이 그것를 세우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다 즉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 그것을 세우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할례의 계약" 을 주셨다(행 7:8). 그러나 십계명의 계약은 하지 않았다. 계시의 빛이 점차로 밝게 비치어 자손들은 조상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 언약은 우리들과 함께 세워진 것이다. 혹은 우리를 대신하고 있는 우리의 양친들과 함께 세워져서 우리에게 계승된 것이다."
(2) 이 계약의 공포(公布). 하나님 자신이 하셨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그 계약의 조항들을 읽으셨다(4절). 시리아역(譯)이 말하고 있는 대로, "너희와 얼굴을 마주 대하여 말을 서로 나누셨다." 그가 그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밤의 환상으로가 아니고(욥 4:12, 13) 공중 앞에서,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시어 수천의 모든 이스라엘이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 다음 그들이 그에게 답하는 대답을 받으셨다. 그래서 그 계약은 "대면하여" 맺게 되었던 것이다.
(3) 계약의 중개자. "모세는 산 아래 하나님과 그들 가운데 섰다" 고 했다(5절). 그리하여 예비 조정을 위하여(출 19:), 그리고 비준의 교환을 위하여(출 24:), 양판 가운데 서서 메시지를 전하였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우리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를 듣고 그에게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도록 자신의 손을 우리 위에 얹는 축복 받은 중개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5:6
2. 주기도문이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여기에도 이전 기록(출 20장)과의 사이에 어떤 변경이 있다. 이 양자에 있어서, 우리는 그 말에 조금도 변경없이 집착하기보다는 그 말의 내용에 집착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다.
3. 가장 두드러진 변경은 제 4계명에 나타나 있다. 출애굽기 20장에 첨부된 안식의 이유는 세계의 창조에서 취해져 있고, 여기서는 그들의 애굽에서의 구원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대속의 전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념하면서 안식일을 지킨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너희를 인도하여 내셨도다" (15절). 그러므로,
(1) "너희의 종들도 안식일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종의 심정을 알고 있고, 6일 동안의 노동 후에 하루의 안식을 얼마나 기다렸던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가 너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생각할 때 그 날이 거룩히 지켜야 합당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우리는 "강한 손과 편 팔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에로 인도되었다. 그러므로 복음이 들려주는 율법에 의하여 우리를 구속하신 영광스러운 권능과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주간의 첫날을 지키도록 지시받는다.
4. 제 5계명에는, "너희가 잘 되고" 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너희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는 말씀으로 먼저 이용했다(엡 6:3). 만일 부모에게 대단히 효도한 어떤 자녀가 땅에서 장수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 설명으로서 그 약속을 조정할지 모른다. 즉 그들이 장수했건 못했건 간에, 그들이 이 세상에서든지 혹은 후세에서든지 잘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전 8:12 참조).
5. 마지막 다섯 계명은 서로 연관되고 짝지어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는 그렇지 않다. 즉 "간음하지 말며, 도전질하지 말며" ......등등이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계명은 모두가 한 체제의 여러 단편으로 되어 있음을 말한다. 어느 것이나 우리에게 구속력(拘束力)을 작용하는 것은 같은 권위이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있어서 편파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고 모든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하여 존경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한 가지 율법을 범죄한 자는 모든 율법를 범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약 2:10, 11).
6. 이들 계명들이 대단히 무서운 엄숙함을 동반하고 주어졌다는 것이다(22절).
(1) 그것들은 "불과 흑암 가운데서 들려오는 큰 소리" 로 말하여졌다. 그것은 은혜의 복음을 더욱 즐겁게 영접하게 하고 심판의 날의 두려움의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한, 두려움을 영접케 하고 심판의 날의 두려움의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한 두려움의 율법이었다(시 50:3, 4).
(2) "그는 아무것도 더 보태지 않았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율법들도 모세를 통하여 전했지만, 십계명을 주는 방법과 같이 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더 보태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더 보태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한 것이다.
(3) "그는 그것들을 두 개의 돌판에다 새겼다." 이유는 그 기록이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당시 세대는 물론 그들의 후손들이 사용할 수 있기 위하여 후손들에게 순수하고 온전하게 전승해 주기 위함이었다. 계약의 중추가 되는 기록된 돌판이 보존된 상자는 "계약의 궤" 라로 불리었다(계 11:19 참조).
십계명(신명기 5:6-22)
여기에는 십계명에 대한 반복이 나타나 있다. 이것에 대하여 관찰해 보자.
1. 그들이 이미 이 말씀을 들었고 또 기록되어 있으나, 그들은 다시금 교훈을 받는다. 그 이유는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기록에 기록을 더하여, 아무리 작은 교훈이라도 충분히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켜지고 그 교훈의 감명을 보존하고 새롭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는 종종 같은 것이 반복해서 들려질 필요가 있다(빌 3:1 참조).2. 주기도문이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여기에도 이전 기록(출 20장)과의 사이에 어떤 변경이 있다. 이 양자에 있어서, 우리는 그 말에 조금도 변경없이 집착하기보다는 그 말의 내용에 집착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다.
3. 가장 두드러진 변경은 제 4계명에 나타나 있다. 출애굽기 20장에 첨부된 안식의 이유는 세계의 창조에서 취해져 있고, 여기서는 그들의 애굽에서의 구원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대속의 전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념하면서 안식일을 지킨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너희를 인도하여 내셨도다" (15절). 그러므로,
(1) "너희의 종들도 안식일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종의 심정을 알고 있고, 6일 동안의 노동 후에 하루의 안식을 얼마나 기다렸던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가 너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생각할 때 그 날이 거룩히 지켜야 합당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우리는 "강한 손과 편 팔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에로 인도되었다. 그러므로 복음이 들려주는 율법에 의하여 우리를 구속하신 영광스러운 권능과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주간의 첫날을 지키도록 지시받는다.
4. 제 5계명에는, "너희가 잘 되고" 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너희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는 말씀으로 먼저 이용했다(엡 6:3). 만일 부모에게 대단히 효도한 어떤 자녀가 땅에서 장수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 설명으로서 그 약속을 조정할지 모른다. 즉 그들이 장수했건 못했건 간에, 그들이 이 세상에서든지 혹은 후세에서든지 잘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전 8:12 참조).
5. 마지막 다섯 계명은 서로 연관되고 짝지어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는 그렇지 않다. 즉 "간음하지 말며, 도전질하지 말며" ......등등이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계명은 모두가 한 체제의 여러 단편으로 되어 있음을 말한다. 어느 것이나 우리에게 구속력(拘束力)을 작용하는 것은 같은 권위이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있어서 편파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고 모든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하여 존경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한 가지 율법을 범죄한 자는 모든 율법를 범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약 2:10, 11).
6. 이들 계명들이 대단히 무서운 엄숙함을 동반하고 주어졌다는 것이다(22절).
(1) 그것들은 "불과 흑암 가운데서 들려오는 큰 소리" 로 말하여졌다. 그것은 은혜의 복음을 더욱 즐겁게 영접하게 하고 심판의 날의 두려움의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한, 두려움을 영접케 하고 심판의 날의 두려움의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한 두려움의 율법이었다(시 50:3, 4).
(2) "그는 아무것도 더 보태지 않았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율법들도 모세를 통하여 전했지만, 십계명을 주는 방법과 같이 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더 보태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더 보태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한 것이다.
(3) "그는 그것들을 두 개의 돌판에다 새겼다." 이유는 그 기록이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당시 세대는 물론 그들의 후손들이 사용할 수 있기 위하여 후손들에게 순수하고 온전하게 전승해 주기 위함이었다. 계약의 중추가 되는 기록된 돌판이 보존된 상자는 "계약의 궤" 라로 불리었다(계 11:19 참조).
5:23
2. 차후로 모세를 통하여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라는 그들의 간절한 요구와 모세가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여기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27절). 이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1)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상의 계명들을 받기를 기대하였고, 좀 더 그의 말씀을 듣고 싶어했다.
(2) 그들은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표출을 견디어 낼 수 있으나 자기들은 죄 때문에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세는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으로 믿었고 그들에게도 역시 신실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때는 그에 대하여 불평하였고, 얼마 전만 해도 그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던 것이다(출 17:4). 어떻게 인간들의 뉘우침이 자기들의 감정을 바로 잡는지 보라.
(3) 지금은 그들이 들은 말씀의 강한 확신이 있어서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저들의 양심을 정화시키지 못하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양심을 놀라게 한다. 즉 율법은 그들의 양심에 아름다운 약속을 밀어 넣어 주지만, 그들의 양심 속에 선한 도의 원리를 심어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3. 그들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찬동.
(1) 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것을 인정하셨다(28절). 실상은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아셨다. 왜냐하면 우리 입에 들어 있는 모든 말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것이 옳다" 고 하셨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 줄 중계자의 필요를 그들이 고백한 것은 잘 말한 것이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상의 지시를 받고 싶어 한 것과,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지는 지시가 무엇이든지 준수하겠다고 하는 약속은 잘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말을 들을 때에는 찬사를 돌리자.
(2) 하나님은 그들이 늘 그러한 태도로써 성실하기를 원하셨다. "옳다!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기를 바라노라" (29절).
[1] 그들이 가졌던 그러한 마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그분의 계명을 영원히 지키려는 마음이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불쌍한 죄인들이 평강과 구원을 받게되기를 진심으로, 또 간절히 갈망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분임을 나타내는 풍부한 증거를 보여 주셨다. 그는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과 장소를 주시고, 당신의 자비로운 우리를 회개의 길로 초대하시며,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리신다. 그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고, 용서와 생명을 주시기로 공포(公布)하셨으며, 당신께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며, 그는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또 맹세하셨다.
[2] 그들이 지금 가졌거나, 그들이 가졌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다. 그들이 죄의 확실한 판결 아래 있을 때나 혹은 목전에서 죽음을 보게 될 때에 때때로 가지는 그러한 심정이 그들 마음 속에 항상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오!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기를!
(3) 하나님은 모세를 지명하여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을 받아 그것을 그들에게 전하게 하신다(31절). 여기에서 하나님이 차후로 우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을 통하여 즉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또 사도와 복음 전도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셔야 한다고 하는 양편의 동의에 의하여 이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것들을 받지 아니하고 비록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말씀하시든지 하늘과 지옥에서부터 전달을 보낸다 할지라도, 그 문제는 이 양편의 찬동에 의하여 해결된다.
이스라엘의 탄원과 하나님의 허락(신명기 5:23-33)
Ⅰ. 모세는 자기의 중개에 의하여 양편이 모두 이 계약에 동의를 표했음을 상기시켰다.
1. 여기에는 율법이 주어질 때 일어난 극히 무서운 광경으로 말미암아 그 백성들이 당한 경악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이상 더 견디어 낼 수 없다고 고백했다. 즉 "이 큰 불이 우리를 소멸하리라. 이 무서운 음성이 우리를 죽게 할 것이다. 우리가 그 소리를 다시 들으면 확실히 죽게 될 것이다" (25절).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그것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한 것을 이상히 여겼고, 그들이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듣고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신적인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하나의 특별한 실례(實例)라고 생각했다. "우리같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생존한 자가 누구이니까?" 아담의 타락 이후 줄곧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언제나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죄를 소멸하신 그리스도는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오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2. 차후로 모세를 통하여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라는 그들의 간절한 요구와 모세가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여기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27절). 이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1)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상의 계명들을 받기를 기대하였고, 좀 더 그의 말씀을 듣고 싶어했다.
(2) 그들은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표출을 견디어 낼 수 있으나 자기들은 죄 때문에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세는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으로 믿었고 그들에게도 역시 신실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때는 그에 대하여 불평하였고, 얼마 전만 해도 그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던 것이다(출 17:4). 어떻게 인간들의 뉘우침이 자기들의 감정을 바로 잡는지 보라.
(3) 지금은 그들이 들은 말씀의 강한 확신이 있어서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저들의 양심을 정화시키지 못하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양심을 놀라게 한다. 즉 율법은 그들의 양심에 아름다운 약속을 밀어 넣어 주지만, 그들의 양심 속에 선한 도의 원리를 심어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3. 그들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찬동.
(1) 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것을 인정하셨다(28절). 실상은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아셨다. 왜냐하면 우리 입에 들어 있는 모든 말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말한 것이 옳다" 고 하셨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 줄 중계자의 필요를 그들이 고백한 것은 잘 말한 것이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상의 지시를 받고 싶어 한 것과,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지는 지시가 무엇이든지 준수하겠다고 하는 약속은 잘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말을 들을 때에는 찬사를 돌리자.
(2) 하나님은 그들이 늘 그러한 태도로써 성실하기를 원하셨다. "옳다!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기를 바라노라" (29절).
[1] 그들이 가졌던 그러한 마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그분의 계명을 영원히 지키려는 마음이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불쌍한 죄인들이 평강과 구원을 받게되기를 진심으로, 또 간절히 갈망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분임을 나타내는 풍부한 증거를 보여 주셨다. 그는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과 장소를 주시고, 당신의 자비로운 우리를 회개의 길로 초대하시며,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리신다. 그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고, 용서와 생명을 주시기로 공포(公布)하셨으며, 당신께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며, 그는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또 맹세하셨다.
[2] 그들이 지금 가졌거나, 그들이 가졌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다. 그들이 죄의 확실한 판결 아래 있을 때나 혹은 목전에서 죽음을 보게 될 때에 때때로 가지는 그러한 심정이 그들 마음 속에 항상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오!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기를!
(3) 하나님은 모세를 지명하여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을 받아 그것을 그들에게 전하게 하신다(31절). 여기에서 하나님이 차후로 우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을 통하여 즉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또 사도와 복음 전도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셔야 한다고 하는 양편의 동의에 의하여 이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것들을 받지 아니하고 비록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말씀하시든지 하늘과 지옥에서부터 전달을 보낸다 할지라도, 그 문제는 이 양편의 찬동에 의하여 해결된다.
Ⅱ. 여기에서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이행하고 실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추론해 냈다(32,33절). 하나님이 자신을 그들에게 그렇게 부드럽게 보여 주셨고 그들의 형식으로 기꺼이 생각하게 하시고 그들이 갈망하는 대로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을 볼 때 그들 자신들이 지금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세를 그들의 선생으로 삼기를 욕망한 것을 볼 때 -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나 엄숙하게 약속하고 그렇게나 많은 선한 원인들과 사려의 영향 아래서 약속한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대단히 큰 유익이었음을 확실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모든 길을 따라가도록" 그가 그들에게 부탁한 것을 그들은 듣고 행했을 것이다. 행복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의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