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신명기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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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약속에 대한 회상(신명기 1:1-8)

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설교를 한 때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의심할 바 없이, 들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많은 무리를 모아 큰 군중을 이루었고, 특히 모든 장로들과 유사들, 그리고 백성의 대표들이 모였다. 아마 그가 그들에게 설교 한 날은 안식일이었을 것이다.

1. 당시 그들이 야영을 친 곳은 "모압 땅에 있는 광야" 였다(1,5절). 거기에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했고 가나안 사람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들에게 군사적인 문제나 전쟁 기술이나 전략에 관해서 강론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에 관해서 말했다. 이는 만일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은혜를 간직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이 무난히 정복케 하실 것이고, 그들의 신앙이 그들의 최선의 정책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2. 때는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 거의 40년이 다 될 무렵이었다. 하나님이 오래동안 그들을 "싫어하고", 그들이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있었다.(민 14:34). 이제 새롭고도 유쾌한 장면이, 자비의 표시로서 도래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모세는 그들에게 이율법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금송아지 때문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이 있은 후 처음이요 또 가장 확실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화해가 "새로운 돌판" 을 주신 것으로나타났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당신의 율법을 두신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와 보증은 없다(시 147:19-20).

Ⅱ. 강론의 내용을 살펴보라. 전체적으로 보면,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다" (3절). 그가 지금 전한 것은 내용상으로 앞서 받은 것과 같은 것이었을뿐 아니라, 지금 다시 그에게 반복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내용을 고하였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그들에게 이 말씀과 훈계를 권했다. 즉 하나님은 그에게 이 유산을 교회에 남겨 주라고 지시하셨던 것이다. 그는 시내산에서 출발하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6절). 여기에는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이 서술되어 있다.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영을 거두어 행진해 가라는 명령(6,7절). "너희는 이 산에 거한 지 오래다." 이 산은 "불붙는 산" 이며(히 12:18), "종을 낳은" 산이다.(갈 4:24). 거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겸손하게 하였고, 율법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언약의 땅을 위해 준비케 하셨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약 일년 동안 그들을 지켜주셨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거기에 "오래 거하였으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통과 고난을 영적인 고통과 마음의 고난으로 이끄셨지만, 그는 그들이 거기에 충분히 오래 거한 때를 아시고 노예 정신의 공포에서부터 양자(養子)의 정신의 위안으로 나아가게 하실 시간, 즉 가장 적절한 시간을 확실하게 찾아 내실 것이다(롬 8:15 참조).

2. 그들이 가나안 땅에 행복하게 정착하리라는 전망을 주셨다. 즉 "가나안 족속의 땅으로 가라" (7절). 이제 들어가서 그것을 소유하라. 그것은 모두 너희 것이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그 땅을 두었도다" (8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길을 따라 나아가라고 명하실 때에는, 우리를 격려하시기 위해 하늘 나라의 가나안을 우리 앞에 두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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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설립(신명기 1:9-18)

모세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그들의 통치를 위한 좋은 기구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 기구란 그 자체의 과실만 없다면, 그들 모두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좋은 율법이 그들에게 주어졌을 때, 그들 중의 선량한 사람들은 그 율법 시행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즉 그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한 본보기이 듯이, 또한 그들에 대한 모세의 배려이기도 하였다. 그는 여기서 진심으로 그들의 복지를 구하고, 그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바의 방법을 강구하되, 오직 그들의 선만을 추구한다. 그는 이 설화에 교묘히 그들을 설득해 가고 있다.

Ⅰ. 그는 그들 수의 증가에 대해 크게 기뻐했다. 그는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것을 인정한다. 즉 "너희는 하늘의 별 같이 많아지리라" (10절). 그리고 그는 그 이상의 성취를 위해 기도한다. 즉 "하나님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리라" (11절). 이 기도는 한 삽입구로 들어 온 것이고 신중하게 드리는 선한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말하는 데 부적합할 수가 없다. 경건한 탄성(歎聲)은 이 이야기의 일관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고 아름답게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들의 수가 현재보다 천배나 더 많아지게 되기를 기도한 것은, 그의 욕망이 얼마나 원대한 것이었던가!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곧 곤궁함이 없다면, 왜 우리는 그 약속 만큼 크게 이루어질 것이 틀림없다는 신앙과 희망을 못가지랴? 모세가 여기서 자신의 기도의 수단으로 삼은 것은 그 약속에 기인한 것이다. 즉 "여호와는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복 주신다." 약 250여년 전에 애굽에 들어갈때보다, 지금은 열 배나 더 되었는데, 그렇다면 지금보다 수천 배나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소망을 왜 그는 가질 수 없겠는가? 그들이 바로의 통치 아래 있을 때, 그들의 인구의 증가는 애굽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압박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출 1:9). 그러나 지금에 와서 모세의 통치 아래서 그것은 최상의 기쁨이며 축복의 기도였다. 이것을 생각할 때 그들의 대장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한 그때의 그들의 우둔함에 대한 수치를 반영할 수 있는 계기를 그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다.

Ⅱ. 그는 그 통치의 영광을 독점하고, 그들을 자기 혼자서 절대 군주로 통치하겠다는 야망을 가지지 않았다(9절). 비록 그는 그 영예를 가지기에 합당한 인물이었고 그 영광에 충분한 자격이 주어질 때 누군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위치였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 업무에 자기의 조력자로 참여하여 결과적으로 그 영광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 바랐던 것이다. "나 홀로 그 짐을 담당할 수 없다(12절). 치리자란 하나의 짐이었다. 모세 자신은 그 일을 맡기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것이 자기의 무거운 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최선의 치리자들은 그 짐에 대해서 가장 불평을 많이 하고, 도움을 가장 절실히 요구하며, 그들이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일을 해야 할까봐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Ⅲ. 그는 부하들을 택하여 은밀히 그들을 자기에게 속하도록 하려는 그따위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즉 그는 그 백성들 스스로가 자기들의 재판장들을 선택하게 했으며, 그것은 그가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또 그는 durante bene placito 즉 자기가 원하는 때에는 언제든지 추방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quam diuse bene gessrint - 즉 그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성실을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두령을 삼으리라" (13절).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무리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돌 볼 사람들을 택하게 하여 그들을 안수했다(행 6:3, 6). 그는 그들에게 지시하여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택하라고 했다. 즉 그들 개인의 장점에 따라 천거토록 했던 것이다. 이 민족의 발상과 기원은 너무나 늦었기 때문에, 그들 중 아무도 자기 집안의 태고성이나 혈통의 귀족성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최근에 애굽의 노예에서 함께 떠나왔기 때문에, 아마도 어떤 집안이 다른 집안보다 월등한 부자였던 집안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은 순수히 지혜와 경험과 고결성에 따라 지도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세는 말한다. "너희 각 지파 중에서 찬양 받는 자들을 선택하라. 나는 나의 마음을 다하여 그들을 두령으로 세우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이 우리들 손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선한 사람들의 손으로 마련되는 것을 꺼려해서는 안 된다.

Ⅵ. 그는 이 일에서 아주 기꺼이 그 백성들을 기쁘게 했고 그가 어떤 일에 있어서든지 그들의 찬사를 노리지는 않았지만 본성적으로 그는 그들의 찬동이 없이는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으니라" (14절)고 그 제의에 그들은 찬동했다. 그는 이것을 이 찬동 후에 그들의 반항과 불만의 죄는 더욱 크다고 말하며 그들이 시비하는 정부는 그들 자신이 이미 동의했던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모세는 그들이 기뻐한다면 그들에게만족하려고 했다.

Ⅴ. 그는 그들을 만족케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교화하려고 했다.

1. 그는 성품 좋은 사람들을 임명했다(15절). 즉 그들은 자기들의 책임에 충실하고 공중 이익에 성실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2. 그는 그들에게 선한 책임을 부여했다(16,17절). 명예를 얻게된 그들은 자기들이 일을 책임 맡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들의 책임에 대하여 언젠가 헤아리게 될 날이 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 그는 그들에게 근면하고 인내하라고 당부했다. "송사를 들으라." 양방간을 듣되 충분히 듣고 용의주도하게 들어라. 자연은 우리에게 두 귀를 주었다. 그러니 "진상을 듣기 전에 그 문제를 판결하는 사람은 우둔하고 그에게 수치가 올 것이다." 배우는 자의 귀는 학자의 혀가 필요하다(사 50:4).

(2) 공의롭고 공정한 재판을 하라고 당부했다. "공정히 판결하라." 재판은 사건의 진상에 따라서 실행되어야 하며 그 당사자의 지위 고하를 배려해서는 안 된다. 본토인은 타국인이 본토인을 욕하거나 침략하는 일이 아니고는 타국인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큰 자들이 작은 자들을 괴롭혀서는 안 되고, 작은 자들이 큰 자들의 것을 탈취하거나 큰 자들을 모욕하는 일 외에는 그들을 짓눌려서는 안 된다. 재판에 외모를 보아서는 안 되며 언제나 뇌물이 없고 무사견한 공평만으로 판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결심을 굳히고 용기를 가지라고 했다. "너희는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라. 즉 군중들의 소동이나 권력을 쥔 자들의 협박으로 말미암아 나쁜 일을 하도록 하는 데 위협 당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이 책임을 강화할 좋은 이유를 제공했다. 즉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다. 너희는 그분을 위해 행한다. 그러므로 그분과 같이 너희는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는 그의 대변자들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불의하게 재판하면 너희는 그를 잘못 대변하는 것이다. 재판은 그분께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너희를 옳게 행하도록 보호하실 것이며 그래도 너희가 틀리게 행하면 확실히 너희를 불러 헤아리실 것이다."

(4) 모세는 그들에게 모든 어려운 소송은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언제나 듣고 판단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재판관들과 백성들과 편이하게 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 복되도다 이스라엘이여" 모세와 같은 왕을 가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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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추억(신명기 1:19-46)

모세는 여기에서 그들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바로 가나안 경계에서 그 땅을 정복할 영광에서 그리고 그 땅을 소유할 기쁨에서 그들에게 일어난 숙명적인 회전과 곧 당시의 전 세대는 광야로 되돌아 나아가게 되었고 그들의 육체는 모두 거기에 쓸어진 장장한 경험담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기억해 둘 만한 회고담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민수기 13장과 14장에서 읽긴 하지만 거기에 언급되지 아니한 몇 가지 상항이 여기에는 나타나 있다.

Ⅰ. 그는 그들에게 호렙산에서 발행하여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가데스바네아에까지 행진한 사실을 상기시킨다(19절).

1. 큰 광야를 지나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무서운 황야로 둘러싸인 여러 가지 불운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선하심을 그들에게 의식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했다. 우리가 당한 위험을 상기할 때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게 된다.

2. 그들의 우둔함을 재 천명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불만을 품고 그들이 이러한 역행적인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몰수당하고 그것을 기대할 이유를 상실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를 지나 애굽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던 것이다.

Ⅱ. 그는 그들이 그 때에 가나안을 위해 싸우는 것이 얼마나 마땅한 일이었든가를 보여준다(20,21절). 그는 그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올라가서 얻으라."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바로 자신들의 문지방에 이르러 섰을 때 행복한 안착을 향한 길이 얼마나 가까웠든가를 보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죄가 더욱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았으나 그 때도 모자랐다" (막 12:34). 거기에 당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위선자들의 영원한 패망을 더욱 슬프게 만들 것이다(막 12:34).

Ⅲ. 그는 정탐하러 보낸 자들에 대하여 책망을 하는데 민수기에는 이 이야기가 나타나 있지 않다. 거기에는(민 13:1, 2) 여호와께서 정탐군을 보내라고 지시하셨으나 여기에서는 우리가 보는 바 그 백성들이 먼저 그것을 원했고 그 다음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어 그들의 의사에 맡긴 것으로 되어있다. "너희가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자'라고 말했다" (22절).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20,21절).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심중에 그 말씀을 의지할 뜻이 없었다. 인간의 책략이란 하나님의 지혜보다는 사람을 더욱 의지한다. 그래서 그들은 태양 빛으로 나아가는데 등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마치 그들은 자기들 앞서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 앞서 정탐군들을 보내려 했던 것이다.

Ⅳ. 그는 정탐하라고 보낸 그 정탐군들이 가지고 돌아온 그 땅의 풍성한 열매에 관한 보고를 다시 들려준다(24,25절). 하나님이 언약하신 그 축복은 실로 귀하고 탐스러운 것이었다. 불신자들이 판단해볼 때도 그러했다. 즉 아무도 그 거룩한 땅을 본 사람이 없어도 그들은 그 땅의 풍성함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정복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라고 그 난점을 보고했다(28절). 마치 싸움으로 그들을 공격한다는 생각은 "그 백성이 우리보다 장대하기 때문에" 쓸데 없는 생각인양, 그리고 포위 8격하는 것은 백성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또 아마도 이것은 하늘까지 닫는 탑을 쌓겠다는 바벨탑을 세운자들 처럼(창 11:4)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비난할 의도를 가지고 그들의 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과장법으로서 "그들의 도성이 하늘까지" 닿기 때문에 쓸데 없는 생각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 땅의 도성들이 하늘까지 성벽이 쌓여 있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방패로 둘러 쌓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호의로 싸여 있을 뿐이다.

Ⅴ. 그는 그들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당한 고통이 어떠했으며, 그들의 형제들이 그들의 용기를 저하시키는 많은 말을 하고 있을 때 모세 자신은 그들을 격려시키려고 애썼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무서워 말라고 말했다" (29절). 모세는 그들의 단을 진정시키고 그들의 얼굴을 가나안으로 향하도록 종용했음을 충분히 암시했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임재해 계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확실히 "그들을 위해 싸우신다 것" 을 확신시켰다(30절). 그리고 그들의 원수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다는 증거를 위해 그는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언급한다. 애굽에서 그들의 원수는 무엇이나 그들보다 우세한 입장에 있었지만 그들은 낮아졌고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30절). 그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과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친절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그들에게 "광야에 있을 때를" 상기시킨다(31,33절). 그 광야를 지나 올 때 그들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그들의 움직임과 휴식을 이끄심)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형안으로 인도하심을 받으며 부모님의 품안에 안겨 있는 어린 아이에만 볼 수 있는 그러한 돌보심과 부드러우심으로 이끄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 이러한 하나님을 불신할 여지가 있겠는가?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고도 "시험의 날에 그들이 마음이 완악하였으니" 세상에서 이들이야말로 가장 배은망덕한 백성이 아니었겠는가?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양육하는 아비가 젖먹는 아이를 품듯" (민 11:12) 이 백성을 이끝 책임을 주신 것을 한 번 불평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이끄시는 이가 하나님이란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견디시고 그들의 소행을 참으신다" 는 말에서 언급되어 있다(행 13:18).

Ⅵ. 그는 이 기회에 그들이 지은 죄를 그들에게 책임지운다. 그가 대상으로 하여 말하고 있는 그들이 비록 새로난 세대라 할지라도 그는 그 죄를 그들에게 지운다. "너희는 거역하고 원망하였도다." 왜냐하면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때에 생존해 있었고 비록 나이는 20세 전이었어도 아마 그 반역에 가담했을지도 모르며 그 나머지는 그 아비들의 부덕한 성품을 상속 받았고 그들을 위해 분개했기 때문이다. 모세의 비난 내용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과 거역.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거역하여" (26절).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배척은 실로 그의 권위에 대한 반역이다.

2.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비위에 거슬리는 반응. 그들은 아주 비열하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7절)라고 말하고 있다. 이보다 더 하나님에 대하여 불합리하고 불진실하고 더 모욕적인 언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3. 이 모든 밑바탕에는 믿지 않는 심정이 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2절).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너희의 불순종과 그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불신은 모두 그의 말씀을 믿지 않음에서 나온 것이다. 영원한 진리의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슬픔이 찾아온다.

Ⅶ. 그는 그들이 겪어서 지금 그 집행의 경과를 본 이 죄에 대한 선고를 그들에게 되풀이 해 준다.

1.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할 선고를 받았고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34-38절). 그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광야의 유랑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도에서 죽었고 그 당시의 가장 나이 어렸던 자들도 죽어야 했다. 이와 같이 그들은 불신앙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한 것은 율법의 어떤 계명을 범했거나 또한 금송아지 때문이 아니었고 복음의 은혜의 한 모형이었던 그 언약을 불신한 것 때문이다. 즉 이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것은 죄가 아니라 치료를 거부하는 불신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2. 모세 자신도 그들이 하나님을 비난한 그 경솔한 말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를 받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37절). 왜냐하면 모든 낡은 그루터기는 잘리워 나가야 했기 때문에 모세 자신도 뒤에 남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불신을 진영 안으로 죽음을 들게 했음으로 모세까지도 범죄의 영역에 빠지게 된 것이다.

3. 그러나 여기에는 진노와 더불어 자비도 함께 나타나 있다.

(1) 모세는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못했지만 여호수아는 해야 했다. "너는 그를 담대케 하라" (38절). 그는 모세 자신이 부담에 눌려 쓸어진 것을 알게 됨으로써 어떤 정부를 세우는 일에는 실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그에게 주어진 일은 그가 완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케 했다. 즉 "그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것을 유업으로 받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이 그 자체는 약하여 행할 수 없었던 일을 우리의 여호수아 예수는 더 좋은 희망을 가져다 줌으로써 이행하고 있다.

(2) 비록 이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해도 다음 세대는 들어갈 수 있다(39절). 그들이 그들의 조상 때문에 선택된 것과 같이 그들의 후손들은 그들 때문에 당연히 배척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비가 심판보다 앞선다.

Ⅷ. 그는 일이 너무 늦었을 때 이 선고로 역전시켜 보려는 시도는 어리석고 무익한 시도임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1. 그들은 다시 대오를 지어 그 일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들은 과거에는 가나안을 대항하여 올라가기를 거절해 놓고 이제와서 올라가고자 했다. 슬픈 일이다. 황급히 그들은 그 목적을 위해 무장을 했다(41절). 그러나 그들은 이미 늦었다. 이와 같이 문이 닫히고 은혜의 날이 끝날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개혁과 같이 보이는 이러한 행동은 계심과 같이 보이지만 오히려 반역이었음이 드러났다. 하나는 모세를 통하여 그 시도를 금지했다(42절). 그러나 그들은 마치 반역의 귀신에 잡힌 것과 같이 과거에 언약을 멸시하던그대로 지금 하나님의 위협을 무시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갔다" (43절). 따라서 파멸은 더욱 가속되었다(44절). 그들은 쫓기워 격멸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내어 버리시록 분노케 하여 당하게 된 이 실패로 말미암아 그들은 만일 그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였더라면 어떠한 성공을 획득할 수 있었든가 하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2. 그들은 기도와 눈물로 그 선고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였다(45절). 민수기 14장 1절에 그들은 초조하여져서 서로 불평을 하면서 "밤새 곡했다" 고 기록되어 있다. 먼저번의 눈물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눈물이요 지금의 눈물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겸비를 나타내는 눈물이다. 불만의 눈물은 다시 한 번 더 울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적인 슬픔은 죽음을 야기시키고 회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슬픔은 렇지 않고 마지막은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울음은 전혀 목적이 없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그의 말씀에 귀를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판결은 이미 내려졌고 그들은 에서와 같이 눈물로 조심스럽게회개의 기회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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