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과의 전쟁(민수기 31:1-6)
여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만군의 여호와께서 미디안 사람들과 싸우라는 명령을 모세에게 내리시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명령이 이 전쟁을 정당하게 해 주었던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명령이 없는 전쟁까지도 정당화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미디안 사람들은 그두라가 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다(창 25:2). 그들중 일부는 이드로가 살고 있는 가나안 남쪽에 정착했고, 참되신 하나님을 계속 숭배했다. 그러나 이들은 가나안 동편에 정착하여 모압 사람들과 이웃하고 동맹함으로써 우상 숭배에 빠졌다. 그들의 땅은 이스라엘에게 주기로 계획되어 있지 않았고 또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나쁜 여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음란과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함으로써 그들을 괴롭혀 분노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도 그들에게 간섭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거기에 대한 보복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하나님은 말씀 하신다) "이스라엘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는" 일이었기 때문이다(2절).
1.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들을 징벌하시고자 하여 그들 나라 중 이스라엘 진영에 가까이 있는 부분을 침입하게 하셨는데, 아마도 그곳 미디안 사람들은 악을 행하여 홀로 내버려둠을 당한 모압 사람들보다 더욱 죄에 깊이 관여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죄로 이끄는 자들을 우리의 최대의 적으로 간주하게 하시며 그들을 피하게 하고자 하신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정욕에 이끌리어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곧 간계로써 우리를 유혹하는 그 정욕이 미디안 사람아므로, 우리는 우리의 정욕에게 원수를 갚아야 한다. 즉 정욕과 동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금욕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정욕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미디안 사람의 유혹에 진 것에 대해 원수를 갚으셨다. 이제 그렇게 유혹을 한 미디안 사람들도 보복을 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욥 12:16)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문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지라도, 그것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벧전 4:17). 교회에 과실과 타락을 들여온 자들에게 보복이 임할 것이며, 그리고 사람을 속인 마귀가 "불못에 던져질" 날이 오고 있다. 이스라엘을 친 아말렉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적인 싸움은 오랜 후에야 행해졌다. 그러나 그들을 타락시킨 미디안에 대한 보복적 싸움은 즉석에서 행해졌다. 왜냐하면 미디안이 훨씬 더 위험하고 해로운 원수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2.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의 생애 중에 그 싸움을 행하게 하시려 했다. 그리하여 미디안 사람들이 행한 손상에 대해 깊이 분개하고 있던 모세로 하여금 그 원수가 갚아지는 것을 보고 만족을 느끼게 해주려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에게 이 일이 행해지는 것을 보리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이 것은 모세가 더 행해야 하는 이러한 종류의 봉사 중 유일한 것이었고, 그리고 나서 그는 고용인으로서 그의 날을 마치고 quietus-안식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의 유용함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고, 여기에서 끝나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의 전쟁은 다른 손에 의해 수행되어야 했다.
하나님은 때로 유용한 사람들을, 그들이 별로 도움을 할 수 없으리라고 우리가 생각할 때에, 제거하신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정되어 있는 그 일을 행하기 전에는 결코 그들이 제거되지 않으리라는 이 사실에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Ⅱ.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 원정을 위해 준비하도록 명령하고 있다(3절). 그는 그 출정군 전체를 동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중에서" 가장 합당하거나 가장 적극적인 "사람을 택하여 싸움에 나갈 준비를 시키고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아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으라" 고 말씀하셨으나, 모세는 "여호와의 원수를 갚으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권익이 연합되어 있어 이 둘의 사유는 하나이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행하시는 일 가운데서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영예를 지키려고 몹시 경계하시는 사실을 보이신다면 분명히 이스라엘도 그들이 행하는 일 속에서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려고 몹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 그때에만, 즉 여호와의 원수를 갚는 것일 때에만 우리의 보복 행위가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우리가 스스로 원수 갚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은 네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Ⅲ. 따라서 이 봉사를 위해 "매 지파에서" 일천명씩, 도합 일만 이 천 명의 분견대가 파견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적은 수효였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칠 그 적의 수효에 따라서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있어서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한다는 사실을(삼상 14:6) 그들에게 가르치시려 했다.
Ⅳ.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들과 함께 보내어지고 있다. 이 큰 행위에서 여호수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만일 그가 이 군대의 대장이었다면, 그가 그들을 인도하는 것을 우리가 왜 발견할 수 없겠는가? 만일 그가 집에 남아 있다면, 왜 우리는 그가 그들이 돌아 올 때 모세와 함께 그들을 맞이하는 것을 발견 할 수 없겠는가? 아마도 각 지파는 각자 천명에 대한 지휘자를 갖고 있었으므로 대장이 없었고 그들은 48절에 언급되어 있는 각 지휘자의 명령 아래 유다를 선두로 하여 각기 순서대로 광야를 지나 행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싸움이었으므로 비느하스가 그들의 총 지휘자이었는데, 그것은 대장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 방침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각 천 명의 지휘들은 이에 모두 순종하고자 했고, 그것을 따라 그들은 합동하여 행하려 했다. 그러므로 그는 거룩한 기구나 기명을 특히 판결의 흉패를 지니고 다녀 위급한 경우에 그것으로써 하나님께 물을 수 있기도 했다. 비록 그가 아직 대제사장이 아니 었을지라도 그는 pro hac vice-이 특별한 경우를 위해 그 권한을 위임받고(삼상 23:6 에서처럼) 우림과 둠밈을 지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느하스를 보내어 이 출정을 주관하게 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미디안 족장의 딸인 고스비츨 브올의 일에 대한 그녀의 건방진 태도로 인해 죽여 버렸을 때(25:15), 이스라엘을 유혹한 미디안 사람들과 그들의 가증스러운 계교를 미워하는 그의 열의로 인해 이미 유명해져 있었던 것이다. 특정한 범죄자에 대한 공의의 칼로 곧잘 쓰였던 그는 그 온 민족을 치는 전쟁의 칼을 안내하기에 가장 훌륭한 자격을 지니고 있었다. "네가 작은 일에도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자랑스런 승리(민수기 31:7-12)
1. 이 적은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의 지령 아래, 지휘와 명령 아래 미디안을 침입했다. 그들은 미디안을 쳤다. 그들이 먼저 그들에게 선전 포고를 하여 전쟁의 이유를 밝히고, 죄악의 주동자들을 공의에 넘겨 주도록 요구했으리라는 것은 매우 있음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이 후에 "율법" 이었고(신 20:10), 이러한 것이 "관례" 였기 (삿 20:12, 13)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안 사람들은 그들이 행한 것을 정당화하고 그렇게 행한 자를 옹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과 칼로써, 그리고 하나님과 그들의 백성을 위한 그들의 열의를 고취시킨 온갖 경건한 분노로써 그들을 공격했다.2. 그들이 침입하여 행한 (군사적) 처형.
(1) 그들은 "그 남자를 다 죽였다" (7절). 즉, 그들이 가는 곳마다 만나는 모든 남자를 죽였다. 그들은 그들 모두를 칼로 쳤으며 하나도 살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 민족의 남자를 모두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디안 사람들이 기드온 시대에 이스라엘에 대한 강하고 거대한 적이 되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고장에 있든 미디안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동방 사람" 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삿 6:3).
(2) 그들은 "미디안의 왕들을 죽였는데," 이들이 "미디만 장로들" (22:4) "시혼의 방백" (수 13:21)이라 칭해지고 있는 자들과 동일 인물이다. 이 방백들 중 다섯의 이름이 여기에 나와 있고, 그 중 한 사람이 수르인데 아마도 그는 고스비라는 딸을 갖고 있었던 수르와 동일 인물이었을 것이다(25:15).
(3) 그들은 발람을 죽였다. 무엇이 이 시대의 미디안 사람들에게 발람을 불러 오게 되었던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있다. 아마도 그들을 치러 오는 이스라엘 군대의 행진을 알았던 미디안 사람들이 발람을 고용하여, 그의 마술로 그들을 돕도록 하려 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이스라엘 군대를 저주함으로써 그들의 편을 들어 공세적으로 행할 수 없었다 할지라도 그는 미디안의 나라를 축복함으로써 방어적으로 행할 수는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무슨 이유로 거기에 있게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의 압도적인 섭리가 그를 그곳으로 데리고 왔고, 하나님의 공명정대한 복수가 거기에서 그에게 임하게 된 것이다. 만일 그가 이스라엘의 행복한 상태에 대해 그 자신이 말한 것을 믿었다면, 그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적들과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비록 의인의 죽음을 죽고 싶어하는 척했을 지라도) 악인의 죽음을 당하였을 뿐이며 "무할례자와 함께 무저갱에 내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처럼 자기 자신의 양심의 확신 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디안 사람들의 계략은 발람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그들과 함께 멸망 해야 했다 (호 4:5). 이제 "그의" 어리석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명백히 드러났다. 그는 다른 사람의 운명은 예고했어도 그 자신의 운명은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4) 그들은 모든 "부녀들과 그 아이들을 사로 잡았다" (9절).
(5) 그들은 그들 자신이 거기에 거할 의사가 없이 "성읍들과 촌락을" (그 고장은 그들의 경계선 밖에 있었다) 불 살랐다. 그리하여 그들은 피신한 자들이 자기 고장에 숨어 거기에 다시 정착하지 못하게 했다. 혹자는 그것을 그들의 우상 신당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들이 이 복수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6) 그들은 그 고장을 탈취했고 모든 가축과 귀중품들을 빼앗았으며 그리고 나서 매우 풍성한 노략물을 싣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 왔다(9, 11, 12절). 이처럼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처럼) 그들은 그들의 대적에게서 획득한 노략물들로 풍성케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가시는 그 훌륭한 땅을 물건으로 가득 채웠다.
승리의 개선(민수기 31:13-24)
우리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개선하여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Ⅰ. 그들은 큰 존경으로써 영접 받았다(13절). 모세는 그의 연로함과 위엄에도 불구하고 친히 진 밖으로 나와 승리한 그들을 축하했고, 그를의 개선식을 영예롭게 했다. 공적 승리는 공적으로 인정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되어야 하며, 나라를 위해 생명을 내놓은 자들을 격려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Ⅱ. 그들은 여자들을 살려 둔 것에 대해 엄하게 책망 받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여자들을 죽이라고 명했으리라는 것은 매우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것은 이스라엘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는 그 일반적인 명령 속에 시사되어 있었다. 그 처형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하여금 브올을 숭배하도록 유인한 그들의 죄악과 관련되어 있었으므로, 주범이었던 여자들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은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모세는 말하고 있다.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 (15절) 그는 그들을 보자 거룩한 분노로 흥분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이것을 범죄케 한 자들이었느니라."
1. 그러므로, 그들이 죽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행의 경우에 대한 율법은 "음행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염병으로써 음행한 이스라엘의 남자들을 죽이셨다. 그리고 이제 음행한 미디안의 여자들이 특히 그 유혹자들이었었기 때문에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2. "그들을 살려두는 것은 위험하다. 그들은 계속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정으로 유혹할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사로잡은 자들은 너희의 정복자가 되고 두 번째로 너희를 멸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모든 여자들은 냉정하게 죽이고 단지 여아들만 남겨 놓으라는 엄한 명령이 내려져 있다.
Ⅲ. 출정했던 자들은 율법의 의식대로 그들 자신을 깨끗케 해야 했고 그들이 깨끗케 될 때까지 칠 일 동안 진 밖에 주둔해야 했다. 왜냐하면,
1. 그들은 피로 손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 전쟁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그들이 어떤 도덕적인 죄를 지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의식법상(儀式法上) 부정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깨끗케 되기 전에는 성막 가까이에 오기에 합당치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들 마음속에 살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지니게 하시고자 했다. 다윗은 "군인이며 피를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해서는 안 되었다(대상 28:3).2. 그들은 시체를 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더러워졌고, 그것은 그들이 성별의 물로써 깨끗케 될 필요가 있었다 (19, 20, 24절).
Ⅳ. 그들은 또한 그들이 얻은 탈취물과 포로들(19절) 그리고 모든 물건들을 깨끗케 해야 했다(21-23절). 불에 견딜 수 있는것은 불을 지나게 해야 했고, 견딜 수 없는 것은 물로 씻어야 했다. 이 물건들은 미디안 사람들이 사용해 왔던 것이었고 이제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마땅히 그것은 그 거룩한 백성의 봉사와 그 들의 거룩한 하나님의 영예에 맞게 성별되어야 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만일 우리가 불과 물로 비유되어 있는 성령에 의해 성볕된다면, 모든 것은 말씀과 기도에 의해 성별된다. "모든 것이 정결해야 정결한 자들이다."
탈취물의 분배(민수기 31:25-47)
우리는 미디안 출정에서 얻은 탈취물이 분배되는 것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분배하는 방법을 지시하셨고, 모세와 엘르아살은 그 지시대로 행했다. 이리하여 그들 가운데에서의 불행한 경쟁이 예방되었고, 그 승리는 공동의 이득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들에게 그 노략물을 주신 자가 또 그 분배를 명하시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의 뜻에 복종되어야 한다.
Ⅰ.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도록 명령되어 있는데 한 몫은 전쟁에 참가한 일만 이천 명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한 몫은 회중을 위한 것이었다. 분배되었던 탈취물은 포로들과 짐승뿐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금은으로 된 그릇이나 보석, 그리고 다른 물건들에 관해서는, 여기에 시사되어 있는 것처럼(50-53절) 탈취한 각 사람이 가졌던 것 같다. 그들이 들어가고 있는 그 훌륭한 땅의 저장품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만이 분배되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 얻은 물건의 반은 온 회중에게 주어졌다. 모세는 각 지파에게 그 몫을 할당하고 그것을 지파들의 두령에게 주어 가족 수대로 각자의 몫을 나누어 주게 했다. 그 전쟁은 온 회중을 위하여 수행되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명령이 떨어졌을 때, 허락만 되었더라면 그들 모두가 "여호와의 도움으로 나아가 싸우려"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기도로써 그 전쟁을 도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집에 거한 자들도 탈취물을 나누도록" (시 68:12) 명하고 계신다. 다윗도 자기 시대에서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같게" 되도록 하는 것을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 로 삼았다(삼상 30:24, 25). 공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고와 모험으로써 얻은 이득을 자기 자신만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되고, 공중의 유익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2. 그러나 싸움에 나갔던 일만 이천 명은 회중에 비해 오십 배나 많은 몫을 얻었다. 그리하여 군인들 각자는 집에 머물러 있었던 그들의 형제보다도 훨씬 나은 몫을 얻었다. 거기에는 그렇게 할만한 좋은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을 위한 그리고 우리 세대를 위한 봉사에 있어서 우리가 더 무고하고 더 위험을 무릅쓸수록, 결국 우리는 더 큰 보답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수고와 역사를 잊으실 만큼 불의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은 그들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받으시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가 그들의 "세(稅)를 받으셔야 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탈취물 중에서 세를 받으셨다. 그것은 그들의 왕이심을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다. 또 그가 그들을 성공하게 하셨으므로, 특히 이 싸움에서의 그의 이득과 그 수익에서 조세를 받으셔야했다. 그리고 제사장들 곧 여호와의 수납원들은 그들의 생계를 위한 식량 외에 다른 것도 추가하여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든지, 하나님은 그것으도부터 세금을 받으셔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전과 다름없이) 군인들은 다른 회중들 보다 더 배려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어떤 위험이나 노고를 치름이 없이 탈취물을 얻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몫에서 오십분의 일을 요구하셨으나. 군인들외 몫에서는 단지 오백분의 일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적 봉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기회가 적을수록, 우리가 물질로 그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 더욱 기대되어진다. 군인들의 조세의 반은 제사장에게 주어졌고(29절). 백성들이 낸 절반은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다(30절). 특별하고 위험한 봉사를 위해 이 군인들이 백성들에게서 택하여 진 것처럼 제사장들은 레위인들 중에서 택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준한 비율의 보수를 지급받았다.
군대 장관들이 드린 자원제(민수기 31:48-54)
여기에 군대 장관들 즉 "천부장" 이라 불리우고 있는 연대장들과 "백부장" 이라 불리우고 있는 하위 장교들이 지니고 있는 경건과 헌신에 대한 큰 일례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장군과 총사령관인 모세에게 왔다. 그리고 모세가 이제 그 관직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의 "종들" 이라 칭하면서. 그에게 매우 겸손하고 공손하게 아뢰었다. 그들이 얻은 존귀는 그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의무를 잊게 만들 정도로 그들을 우쭐거리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살펴보자.
1. 그들은 최근의 출정에서 그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휘하에 있었던 모든 군인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데 대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선하심을 경건하게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점호 명부를 조사해 볼 때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았음이 나타나있다(49절).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어떤 역사와도 필적될 수 없을 것이다. 그처럼 많은 생명들이 그 전투 속에서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으나 적군의 칼에 의해 또는 어떤 병이나 재난에 의해 한 사람도 생명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여호와의 역사였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생명이 특히 군인들의 생명이 항상 자기들의 수중에 어떠한 상태로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는 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기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 사령관들이 그들의 군인들에게 자상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 생명들이 그들에게는 매우 귀중하다는 것과 그들의 휘하에 있는 자들이 하나도 실족하지 않은 것을 그들 자신에 대한 긍휼로서 간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 중에 그들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께 있어서는 그의 신하들과 군사들의 피가 매우 귀하시다(시 72:14).2. 그들은 이 은총을 경건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의 예물을 가져 왔나이다(50절). 그들이 가져온 예물은 각 사람이 얻은 것에서 취한 것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정직하게 얻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각 사람은 "얻은 대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신 대로)바쳐야 한다(고전 16:2).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가 하사하는 선물을 풍성히 뿌려 주시는 곳에서, 우리의 경건과 박애의 열매를 또 풍성히 거둘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성막이 그리고 후에는 성전이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서 취해진 노략물들로 아름답게 되고 부요케 되었다. 마찬가지로 다윗과(삼하 8:11, 12) 그의 족장들(대상 26:26, 27)에 의해서도 그렇게 되었다. 우리는 전쟁이나 장사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으로 그 일부를 하나님께 봉헌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그것들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번제물을 탈취하는 것을 증오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놀랍게 보존해 주시고 형통케 해 주셨을 때, 우리가 그에게 약간의 특별한 감사의 보답을 할 것을 기대하신다. 이 예물에 관하여,
(1) 족장들은 "그들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려" 고 그것을 드렸다(50절). 그들이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은" 그 선한 봉사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거나 자기들의 이름을 불멸하게 할 전승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모세에게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은 가장 훌륭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봉사를 했을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그들이 그 의무에서, 즉 그들이 책망받았던 그 일(14절)에서 뿐만 아니라 그밖의 여러가지 일에서도 잘못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려고 예물을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지상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라도 의로운 자가 없고 죄짓지 않은 자가" 없기 때문이다.
(2) 모세는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회막에 들여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 을 삼았다(54절). 즉,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기념물로 삼아 그들로 하여금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격려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감사함을 나타내는 기념물로 삼아 - 제물은 기념이 되는 것으로 일컬어진다-그들이 부여 받은 이 은총을 감사하게 인정한 것을 매우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속 그리고 거듭하여 긍휼을 베푸시게 되었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