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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아랏 왕 격파(민수기 21:1-3)

1. 가나안 왕 아랏이, 이스라엘이 "정탐 길로 온다" 는 말을 듣고 그들의 진영을 공격하였다. 그때로부터 38년 전 모세가 보냈던 정탐꾼들이, 그들도 모르게 다녀 온 길이지만, 그 후에 가나안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경각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행동을 눈여겨보며.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랏 왕은 그들을 먼 거리에서 미리 막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한 것뿐이다. 그가 가만히 있었다면 그의 백성들은 가나안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제일 마지막에 멸망했을 것인데, 이 일로 말미암아 그들은 제일 먼저 멸망 받게 되었다. 이처럼 "지나치게 악한 자는 기한 전에 죽는다" (전 7:17).

2. 아랏 왕의 시도가 처음에는 성공하였다. 아랏 왕의 전진 초소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흩어져서 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았다(1절). 그렇게 되자 그는 우쭐하게 되고, 이스라엘의 그 거대한 무리들을 무찌를 수 있으며, 자기 나라를 멸망의 위협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시련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불신과 불평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3. 이 일을 당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겸손히 하나님께 호소하였다(2절). 이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불평을 말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절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우신 섭리 속에서 그들로 하여금 그 시련을 잘 이길 수 있게 하여 주셨으며 저들의 강력한 공격자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리라는 것을 믿게 하여 주셨다. 그들은 장로들을 통해서 그들의 성공적인 구원을 기원하며 "서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이를 받기를 원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며, 특별히 우리가 구하는 바 그 자비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약속 아래 우리의 영혼을 묶어 놓아야 한다. 이처럼 여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뜻으로 이 가나안의 성읍들을 진멸하며, 결코 그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자기들을 위해서 사용치 않겠노라고 약속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허락해 주시면, 모든 찬양은 하나님께만 돌리고, 결코 그들이 거기서 어떤 이익을 취하지 않겠노라고 하였다. 우리도 이대로 하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을 수 있다.

4.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3절). 여호수아는 강력한 부대가 나가 싸우도록 명령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황야의 끝에 자리 잡은 그들의 성읍들까지 그들을 쫓아갔으며, 그 성읍들을 완전히 진멸하고 돌아왔다. Vincimur in praelio, sed non in bello- 싸움에는 졌지만, 최후의 승리는 우리가 거두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전부에 대해 참된 말씀이다. 군대가 일시적으로 그들을 정복할 수는 있지마는, 마지막에는 그들이 정복한다.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고 명명하였다. 그 뜻은 완전한 멸망을 기념하는 것이며, 가나안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들의 후손들에게 이 성읍들을 재건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읍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서 진멸되었고,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희생물이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여리고 성의 경우에서 찾아 보아도. 하나님의 법은 그러한 성읍들은 결코 재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신약 성서의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예언의 말씀 가운데도 이 이름에 관련된 은유가 들어 있다고 보인다. 거기에 보면 그들의 모든 군대들은-군대의 멸망이란 뜻 을 가진-아마겟돈이란 곳으로 모이라는 명령을 받는다(계 16:16).

 

21:2 없음.

 

21:3 없음.

 

21:4

놋뱀(민수기 21:4-9)

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통과하여 가까운 길로 가지 못하고, 그 땅을 둘러 먼 길로 전진하였기 때문에 심히 피로해졌다.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다" (4절). 아마 그 길이 거칠고 평탄치 못했거나 아니면 더럽고 메마른 길이었는지 모른다. 또는 그들 이 에돔 사람들의 땅을 그대로 밀고 들어가서, 그 땅을 통과하지 못 하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을 속상하게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Ⅱ. 이런 경우를 당하자 그들의 불신앙은 불평부터 토로하였다(5절). 금방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고 계속해서 정복하고 들어가고 있는 그들이건마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바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였으며, 앞으로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에 대해서는 이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여 그 불신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이끌려 나온 것과 또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의 손으로 지은 식물과 물을 먹고 마시지 못하고, 그들은 오로지 기적에 의해 생겨난 식물과 물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원망하였다. 그들에게는 "먹고 남을 만큼의 떡" 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떡이 없다" 고 불평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천사들의 음식을 먹어도 그것에 대해 싫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만나에 대해 싫증을 느꼈으며, 그것을 "박한 식물" 이라 하였고, 아 이들이나 먹을 것이지 어른들이나 군사들이 먹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하였다.

만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떤 것이면 만족할 수 있었을까? 싸움을 하고 싶은 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곳에 서로 잘못을 찾아낸다. 이처럼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하늘의 만나까지라도 싫증내기가 쉽고, 이를 박한 식물이라고 부르기가 쉽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경멸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떡이며, 참 식물이며, 믿음으로 그것을 먹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떡이다. 그 누가 감히 그런 떡을 "박한 식물" 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Ⅲ. 그들의 불평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의로운 심판을 내리셨다(6절).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고, 그중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셨다. 신명기 8장 15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지금까지 지나온 광야는 불뱀들이 들끓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의 백성들을 불뱀의 해로부터 지켜 주셨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불평을 말하게 되자.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을 피하던 짐승으로 하여금 그곳에 몰려들게 하고, 이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혼내 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 뱀을 불뱀이라고 일컬었다. 그 까닭은 그것들의 색깔, 그것들의 발광적인 모습 또는 그것에 물릴 때 오는 영향 즉 몸이 뜨겁게 타오르고, 즉시 열이 오르며 몹시 갈증을 느끼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들은 부당하게도 물이 없다고 불평하였다(5절).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물로도 해소시킬 수 없는 갈증으로 그들을 혼내주셨다. 아무 까닭없이 울부짖는 자는, 반드시 울부짖어야 할 까닭이 주어진다.

그들은 "이 광야에서 죽어야 한다" 고 불신앙적으로 스스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받아서, 그들의 불신앙이 곧 그대로 실행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의 면전에서 날뛰었으며, "그들 의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었다" (시 104:3).

그런데 이제 이 불뱀들이(이 뱀들은 나는 불뱀으로 보이는데-사 14:29) 그들의 면전에서 날뛰며, 그들에게 독기를 뿌렸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오만하였는데, 하나님은 이 천한 짐승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천벌을 주게 하여,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셨다. 전에는 애굽 사람들을 막았던 그들의 무기가 이제는 그들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메추라기 새들을 기르기 위해 그 새들을 가져오는 자는 그 새들을 물을 뱀도 함께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온 피조물이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해 무장을 갖춘 자들과 싸우고 있다.

Ⅳ. 백성들은 이러한 심판을 받자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청하였다(7절).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고 백성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특별히 이런 말로 고백하였다. "우리가 여호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였나이다." 아마 그들은 그 형벌이 가혹한 것이 아니었었다면 자기들의 죄를 시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채찍 앞에 꺼꾸러졌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시매 그때에서야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다" .

그들은 자기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것을 알며, 또 모세의 기도는 하늘에 크게 상달되는 것을 확신하고 모세에게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들의 어조가 어쩌면 그렇게 재빨리 변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원수로 치부하고 싸우던 사람에게 그들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아양을 떨며,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께 말해 줄 대변자로 삼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한한 때로 고난은 그들의 마음을 변화 시켜줌으로, 전에는 그들이 비난하였던 기도의 가치를 깨닫게 하여 준다. 모세는 그들을 충심으로 용서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자기를 저주한 사람들을 위해서 축복하였으며. "멸시하는 자들을 위해 서 기도하였다." 우리는 모세에게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에게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여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 고 일깨워 주시는 바를 찾아볼 수 있다.

Ⅴ.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놀라운 방법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심판을 선언하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좋은 감정을 살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그로 하여금 구원의 방편이 되게 하셨다(8,9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의 모양을 만들어 높은 장대 위에 매달아, 진영 어디서든지 볼 수 있게 하여, 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모세는 놋으로 불뱀 모양을 만들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였다(7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효과적인 구원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처럼 사람들은 그들의 불평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마는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하여 주셨으며, 그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회개하고, 겸손하게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것은 모세의 손을 거쳐 하나님의 치유를 받게 함으로, 다시는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원망을 토하지 못하도록 가르쳐 주시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보인다.

이 치료법 역시 하나의 기적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불뱀에 물린 자가 광택이 빛나는 놋을 보면 그 상처가 더 심해진다는 어느 박물학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유대인 자신들도 말하기를, 그들을 고친 것은 그 빛나는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그들을 치료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보면 이러한 방법을 택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요 3:14, 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나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 이제 우리는 그때 그 사람의 경우와 우리의 경우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1. 그들의 질병과 우리의 질병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마귀는 옛 뱀이요 불뱀이다. 그러므로 "한 큰 붉은 용" 으로 나타난다(계 12:3). 죄란 불뱀에 물리는 것이다. 그것은 예리한 양심에게는 고통을 주고, 마비된 양심에게는 독기를 뿜어 준다. 사탄의 유혹을 화전이라고 하였다(엡 6:16). 욕망과 정욕이 우리의 몸에 작용할 때 우리의 영혼을 불태운다. 전능자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죄는 뱀과 같이 물며, 독사와 같이 쏜다." 그리고 죄에 한번 물리면, 독사에 물린 상처처럼 부풀어오른다.

2. 그들의 치료와 우리의 치료와의 유사점을 알아보자.

(1) 하나님 자신이 불뱀에 물린데 대한 해독 방법을 고안하시고 설명하여 주셨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도 "무한하신 지혜자" 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구속의 원리를 발견하셨다.

(2) 그것은 조금도 치료법으로는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이처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한 우리의 구원도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다." 따라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다. 모세도 그리스도께 대하여 기록한 바가 있다(요 5:46). 그리스도는 모세의 후계자들인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해 들려졌다.

(3) 그 치료법은 상처를 준 그 방법과 같은 모양을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그 자신은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신 분이시지마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냄을 받았다(롬 8:3). 이와 같이 "그는 죄인이란" 말들 들었다(요 9:24).

(4) 놋뱀이 들려졌으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들려졌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 들려졌다(요 12:33, 34). 그것은 온 세상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그는 복음서의 설교에 의해 들려졌다. 여기서 "장대" 라고 씌어진 말은 "기치" 또는 "기호" 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라" 고 하였다(사 11:10). 어떤 사람은 뱀을 든 것이 곧 옛 뱀인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승리하실 때(골 2:15),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던 것이다.

3. 그들이 받은 치료의 효과와 우리가 받는 치료의 효과의 유사점을 알아보자.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리고 우리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의 주를 바라본다(히 12:2).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 45:22). 우리는 우리의 상처와 또 그 상처에서 보는 위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관해 전해 주신 기록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지시에 따라서 우리의 몸을 맡기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약속을 믿어야 한다.

놋뱀을 아무리 달아 놓아도 그것을 쳐다보지 않으면 고침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자신의 상처를 돌보았어도,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자들은 필연 죽고 말았다. 이 치료의 방법을 우습게 여기고 약물을 의지한 자들은 멸망 받았다. 이와 같이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경멸하거나, 은혜에 대해 실망하면 그 상처로 말미암아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치료의 표적을 바라본 자들은 비록 그 진영의 제일 외곽지대에서, 눈물에 젖어 약해진 눈으로 바라본 것이라도 이 때문에 그들은 확실히 고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믿음이 약해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연약한 형제들을 "위해서 죽으셨다."

아마 놋뱀의 장대가 설치된 후에도 얼마동안 이스라엘 진영은 불뱀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들이 남은 여행길에도 항상 이 놋뱀을 앞세우고 행진하였으며, 그들이 진을 치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설치하였으며,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는 그 놋뱀을 그 땅의 한 모퉁이에 세워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열왕기하 18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때까지 놋뱀을 향해 분향을 했는데, 그 놋뱀에 분향하기 위해 그처럼 멀리 광야로 나갔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죄의 삯인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받은 자라도,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은 그 때문 에 오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줄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놋뱀을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예수의 죽으심을 항상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모든 경우에 그것을 쳐다볼 수 있다.

 

21:5 없음.

 

21:6 없음.

 

21:7 없음.

 

21:8 없음.

 

21:9 없음.

 

21:10

전진하는 이스라엘 진영(민수기 21:10-20)

여기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평지에 진영을 차릴 때까지 거듭한 몇 번의 진영 이동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 모압 평지에서 나와서는 여호수아서의 첫 머리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연적인 운동은 더 빠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약속의 땅에 가까이 이르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진행하였다" 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10절). 우리도 이처럼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의 여행길에서, 그 여행의 마지막 때에 이르러, 천국에 거의 가까이 갈 무렵에 더욱 활동적으로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이동에 관한 간단한 기사 가운데서 우리는 두 가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다.

1. 아르논 냇가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사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하셨다(13-15절). 이제 그들은 에돔 땅을 우회하였으며(왜냐하면 그 땅은 그들이 정복할 수도 더우기 침범할 수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었다-신 2:4, 5), 드디어 모압의 경계에 이르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들은 그들의 길을 방해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약속된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행진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 즉 모압 자손을 괴롭게 하지 말라(신 2:9)는 명령을 엄격히 준수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왜냐하면 그 땅은 롯의 정당한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르논 건너편에 진을 쳤다(13절). 그곳이 전에는 여기 26, 27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모압 사람들에게 속했었지마는, 지금은 경건한 백성인 아모리 사람들의 소유였다. 모압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는 주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입다에 의해 다시금 주장된 바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암몬 사람들에게 항의하면서 그들에게 약속을 요구하면서 한 입다의 말이었다(삿 11:15 이하).

그들이 얻은 바는 지금 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아르논 강의 언덕이었다. 이 사실이 상세하게 명기된 바는 없지마는 아마 아말렉과의 싸움(출 17:14)의 역사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여호와의 전쟁기" 라는 책에 나타나 있을 것이다. 이 책은(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 란 말씀 때문에 시작되고, 그 후에 이스라엘이 싸운 모든 전쟁이 순서적으로 첨가되고, 거기에 아르논 골짜기에서의 활동도 첨부된 것이라고 본다. 곧 (우리 나라 개역 성경과 같이) 아르논 골짜기의 "수바의 와협" 이라는 지역과 그밖의 지역에서 활동 기록이었을 것이다. 또는(KJV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때 "홍해에서 행해진 여호와의 전쟁" 과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기 직전에 "아르는 시냇가에서" 행한 전쟁을 다시 "이야기 해 주라" 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념할 때는, 그가 은혜 베푸신 바를 모두 열거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홍해로부터 아르논 골짜기를 이르기까지 우리를 따라 왔는가를 기억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인생의 모든 과정, 아니 거의 모든 발걸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바를 찾아볼 수 있다. 그때,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바를 명확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2. 브엘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축복하사 놀라운 일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다(16절). 브엘은 샘 또는 우물을 의미한다. 병을 의미하는 오봇에다 그들이 진을 쳤다고 한다(10절). 그 지명은 아마 그들이 거기서 그들의 물주머니에 물을 채워 넣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 본다. 얼마 안 가서 물주머니의 물은 떨어지게 마련인데, 바로 이 때 하갈의 경우와 같이(창 21:15) 그들의 "가죽부대의 물이 다 떨어졌다" 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불평하거나 원망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이 불평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아시고 그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 위해 그들을 샘물이 있는 곳으로 이끄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봇에 진을 치 는 것과 같다. 거기에는 우리의 위로가 단지 작고 빈약한 물주머니 속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가게 되면 우리는 브엘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 그곳은 생명의 샘이며, 생수가 흘러나오는 샘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물을 공급받은 경우는 모두 그들이 부당한 불평으로 물을 요구하고, 하나님은 정당한 분개 속에서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1) 하나님은 사랑으로 물을 주셨다(16절). 하나님은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고 하셨다. 그들로 하여금 놀라운 사건의 증인이 되며,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불러모으도록 하셨다. 그들이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셨으며, 앞질러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다.

(2) 그들은 기쁨과 감사 가운데서 그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하여 그 고마움이 갑절이나 더했다(17절).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서로들 격려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우물 물아 솟아나라!" 이처럼 그들은 우물 물이 솟아오르도록 기도하였다. 왜냐 하면 약속된 자비는 기도를 통해서 이끌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이 솟아오르자 그들은 개가를 올렸으며, 환호를 질렀다. "기쁨으로 우리는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한다" (사 12:3).

놋뱀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들려진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면, 이 우물은 성령의 상징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시며, 그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온다(요 7:38). 우리의 영혼에서도 이러한 샘이 솟아 나오고 있는가? 우리는 이를 노래하여야 하며, 그 위로를 받아야 하며, 그리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이 은사를 받으라. 노래를 부르라. "샘이여 솟아라! 너 동산의 샘이여! 내 영혼을 축여다오" (아 4:15). 이 이야기와 관련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마른 땅으로 샘이 되게 하시겠다" 는 약속의 실현을 간구하라(사 41:17, 18).



(3) 전에는 이러한 기적이 영원히 기념되도록 그 땅의 지명을 붙일 때, 백성들의 다툼과 불평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백성들의 찬양의 노래가 영구히 간직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찬양 속에는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졌는지, 그 방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18절). "족장들이 우물을 팠다." 그리고 아마 70명의 장로들이 "율법을 주신 자(즉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모세)의 지시에 따라서 그들의 지팡이로 팠다." (역주 : KJV의 본문이 우리 나라 개역 성경의 본문과 다르다. 홀이란 말이 "율법을 주신 자의 지시에 따라서" 란 말로 대체되어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지팡이를 가지고 부드러운 모래땅에 구멍을 팠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이 판 구멍에서 기적적으로 물이 솟아나게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랜 후에도 메마른 땅인 "바카(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에 샘을 파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서 그 웅덩이에 물이 가득 고이게 하여 주셨다(시 84:6).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 물을 받기 위해서는 땅을 열며, 구멍을 내야만 했었다.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기대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 능력의 위대함은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다.

[2] 이스라엘의 귀인들은 앞장서서 이 일을 위해 그들의 손으로 일을 했으며, 그들의 지팡이를 사용하였다. 아마 그 지팡이는 그들의 명예와 권세의 표였을 터인데, 그들은 공적인 봉사를 위해 이를 사용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들의 명예가 기록에 남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의 하는 일이 이런 놀라운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 자신들에게는 그들의 직책을 더욱 공고히 하여 주는 것이었으며, 백성들에게는 크신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그 후 얼마 안 가서 죽은 모세의 정신이 어느 정도 이스라엘의 귀인들에게 전달되었다고 보인다. 모세는 전에 바위를 치던 때와 같이 스스로가 땅을 내려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하여 주었다. 이것은 그들의 지팡이가 모세의 홀이 가지고 있던 영광에 참여하게 하고, 나가서 자기는 비록 그들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떠나지 않고 그들을 계속해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안심하고 기대할 수 있게 하여 주며, 그들이 율법을 주신 자의 지시에 따르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다. 위로는 오직 책임을 다하는 길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기쁨에 동참하려면 하나님의 지시를 조심스럽게 준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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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혼 왕과 옥 왕 정복(민수기 21:21-35)

여기에는 시혼 왕과 옥 왕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보다 명확하게 관찰해 보면, 이 기사가 여기에 크게 취급된 것은 그들이 틀림없이 관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후에도 그 싸움의 승전을 후손들이 길이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거듭거듭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의 표시로서 칭송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 왕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9, 20).

Ⅰ.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평화 사절단을 보냈다(21절). 그러나 그 대답은 똑같은 종류의 사신에 대한 에돔 왕의 대답(20:18, 20)보다 훨씬 거칠고 전투적인 것이었다. 에돔 왕은 다만 그들의 땅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이를 거절하였으며 자기들의 땅에서 이를 지키었는데 반해, 시혼은 그의 군사를 이끌고 그들 땅의 경계를 벗어나서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왔던 것이다(23절). 그러나 이는 스스로의 멸망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입다도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을 지나지 못하게" 정책을 폄으로 스스로의 멸망을 가져오게 한 것이라고 시사한 바가 있다(삿 11:20). 그러나 그 정책이 자신을 속이는 결과가 되었다. 모세는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케 하셨음이라" 고 하였다(신 2:30). 하나님의 교회의 대적들은 때로 그들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취한 충고 때문에 오히려 정신을 잃을 때가 많다. 시혼의 군사들만 패주한 것이 아니다. 그의 땅 전부가 드디어는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다(24, 25절). 이스라엘의 점령은 정당한 것이었다.

1. 아모리 사람들에 대해서 이는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침략자요, 이스라엘에 대해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그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만국의 왕이시며, 온 세상의 주 여호와이신 하나님 자신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 하사하셨던 것이다. 이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아모리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게 될 때에 이루어진다고 하셨다(창 15:16). 입다도 이러한 하나님의 허락을 전면에 내세우고 소유권을 주장하였다(삿 11:23, 24). 하나님께서 주신 아모리 사람에 대한 승리는 그들에게 그 땅을 소유하게 하여 주셨고,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주었다.

2. 이 땅의 전 소유자였던 모압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땅을 일부라도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시지 않았노라" (신 2:9)고 주장하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모세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정당한 답변을 여기에 마련하여 주었을 깃이며, 200년 후에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유권에 말썽이 났을 때, 입다는 아모리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1) 비록 이 땅이 모압 사람들의 땅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해도, 아모리 사람들이 얼마 전에 이 땅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가지고 완전히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었다는데(26절) 그 정당성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을 모압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모리 사람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그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득불 이제는 그 땅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땅을 아모리 사람에게서 빼앗았을 때 그들은 그 땅을 모압 사람들에게 돌려 줄 의무가 없었다. 모압이란 이름이 사라지고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 세상 소유물의 불안함을 보라. 우리가 비록 아무리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하여도, 그 소유주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가 보라! 또 우리의 것도 얼마나 쉽사리 빼앗기는가! "그것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곳에 안전하게 보호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다.

또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로우심과 그 완전한 예견을 보라. 모든 하나님의 섭리가 완전히 이루어지기 위해 그 준비가 오래 전에, 제 때에 마련되고 있었다. 이 땅은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으로 계획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땅을 이스라엘이 준비가 다 될 때까지만 간직하고 있다가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된다는 것을 도저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무궁하심을 다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일찌기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다" (신 32:8).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계획하신 땅을 어느 한 민 족에게 잠시 맡겨두셨던 것이다.



(2)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대기 위해 이스라엘은 그 땅에 관한 믿을 만한 기록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 한 시인의 노래를 볼 수 있다(27-30절). 이 노래는 문제점을 잘 증명하여 주고 있다. 그 증거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1] 여기에 열거된 이러 저러한 땅들은 원래 모압 사람들의 소유였으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을 정복하였다. 헤스본은 그의 도성이 되었으며, 그를 위하여 견고히 성을 쌓게 되었다(27절). 그리고 디본과 노바 땅까지 정복하였고, 이들을 아모리 왕국에 병합하였다(30절).

[2] 모압 사람들은 그 소유권을 전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모압의 아드는 시혼의 공격을 받지 않음으로 여전히 모압의 수도로 남아 있기는 해도, 너무나 황폐하여 다시금 머리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28절). 모압 사람들은 파멸되었고, 그들의 신 그모스도 시혼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그들을 포기하였다(29절). 이 모든 것을 보아서, 이 땅에 대한 모압 사람들의 주장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아모리인의 시를 인용 삽입한 것은 그 이상의 이유가 있는데, 즉 악인의 승리는 잠시 잠깐이란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모압 사람들을 정복하고 그들을 모욕하였던 그들이 이제는 그들 자신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하고 모욕당하게 되었다. 아마 이 땅을 모압 사람들에게서 빼앗았던 바로 그 왕 시혼이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땅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모압의 전왕(前王)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26절), 아모리 사람의 전왕이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공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악행으로 얻은 것이 쉽사리 잃게 되는 것을 자주 보 여 준다. 그들은 그것들을 얻음으로 자고하여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높아져도 잠시 간에 없어진다" (욥 24:24).

Ⅱ. 바산 왕 옥은 이웃 나라의 운명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평을 누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과 싸우기로 작정하였는데 이는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었다. 옥 역시 아모리 사람이었다. 따라서 아마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의 이웃 나라보다 더 이스라엘과 잘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능력과 체구를 크게 믿었던 것이다. 모세도 그에 대해서 상당한 경각심을 일깨움 받았던 일이 있다(신 3:11). 거기에는 보다 상세한 그에 관한 기사가 나와 있다.

1. 아모리 사람들이 싸움을 시작하였다(33절).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였다" (33절). 그의 나라는 부유한 땅 이었다. 바산은 훌륭한 목재로 유명하였다(바산의 참나무가 이를 증명 하여 준다). 또 훌륭한 목축업으로 유명하였다. 바산의 소들이 이를 증명하여 준다. 그리고 그 나라의 수양과 염소는 매우 유명하였다 (신 32:14).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기들의 안전과 자기들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지마는 아무 소용이 없다. 기한이 이르면 그것들은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협적인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완전한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이셨느니라(34절). 그 일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땅이 모두 너희의 것이다. 가서 취하라." 아무리 거인이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한갖 벌레에 불과하다.

3. 이스라엘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원수의 군대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원수들의 땅까지도 차지하였다. 그 땅은 나중에 요단강 이편에 먼저 자리잡은 두 지파 반의 유업의 일부가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아직 그들과 함께 살아 있는 동안에 이를 성공하게 하여 주셨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모세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모세는 영광스러운 일의 끝장을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시작만이라도 보여 주신 것이다). 또 하나는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에 임할 백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일은 그 당시로서 볼 때는 매우 작은 일같이 보였지마는 실상은 매우 커다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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