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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원망에 사로잡힌 이스라엘(민수기 14:1-4)

여기에서는 악한 정탐꾼들이 자기들의 부당한 보고 때문에 어떠한 불행을 당했는가를 보게 된다. 가나안 정탐꾼으로 뽑힌 그 열두 명의 사람들은 그들이 돌아와 회중에게 보고하기 전에 먼저 자기들끼리 거기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최선을 다하여 다른 정탐꾼들의 마음을 돌이켜 자기들처럼 생각케하려 했을 것이다. 그들이 만일 의견의 일치만 보았더라면, 위치상 갈렙은 먼저 그들을 대신하여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러면 만사는 잘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정탐꾼들은 순전히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폭동을 야기시켰음에 틀림없다. 아마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기들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망설이고 있는 민중을 유혹하여 애굽으로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 대장들이 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본문 속에서 우리는 폭동을 조정한 자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본 장이 끝나기도 전에 멸망하고 만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Ⅰ. 백성들이 얼마나 안달을 부렸는가. "그들이 소리높여 부르짖었다(1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그 정탐꾼들의 보고를 더 신인했고, 자기들의 처지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온갖 감정의 굴레가 벗겨졌으므로 아무도 그들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어리석고 심술?은 어린애들처럼, 그들은 엉엉 울었다. 그러나 왜 우는지도 몰랐다. 적들이 자기들의 본부를 공격하고, 그들이 자기들의 진영 문에 들어온 아낙의 자손을 보고나서 울어도, 울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는 자들에게는 울지 않으면 안 될 고통거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만사가 이미 끝났다는 듯이, 그들은 주저 앉아서 "밤새도록 곡하였다." 불신앙이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가 형벌이 되는 죄임을 기억하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항상 자신들을 들볶게 된다. 세상 때문에 슬퍼하는 자들이 하나님 때문에 슬퍼하는 자들보다 더 많으며, "세상의 슬픔은 죽음을 낳는다."

Ⅱ. 그들은 자기들을 다스리는 치리자들에게 어떻게 대들었는가-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여호와를 비난했다(2,3절). 장로들의 회중이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1절). 그러나 그 병은 순식간에 온 진영에 전염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원망했다" 고 했기 때문이다. 질투와 불만은 요원의 불길처럼 삽시간에 그 무사려한 무리들에게 번졌다. 그 무리들은 쉽사리 "권세 잡은 자들을 멸시하고 위에 있는 자들을 악평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1. 그들은 이유없는 불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처음 났던 그곳 애굽에서 죽었었더라면, 또는 근래에 욕정으로 인하여 재앙을 받아 광야에서 죽은 자들과 함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굴레 벗은 감정의 방탕한 광란을 보라. 이러한 감정은 저들의 본능 자체가 지극히 아끼는 그 생명 자체까지도 탕진하게 만든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래로 그 당시처럼 그렇게 여러달을 즐겁게 보낸 시절은 없었다. 지금 그들은 영예로 옷입었고, 호의로 동정받고, 계속 놀라운 여러가지로 대접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들은 자기들이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라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경솔한 생각을 가졌다. 즉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의 이웃 형제들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을 업신여겨,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과 같이 재앙을 받았더라면 하고 말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정복자로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정의의 희생물이 되어 범죄자로 죽기를 원했다.

어떤 자들은 본문을 이렇게도 해석한다. "오, 우리가 애굽에서 또는 광야에서 이미 죽었더라면!" 그들은 죽는 것이 무서워서 죽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가없은 문둥병자들은 죽기보다는 차라리 적진으로 뛰어 드는 모험을 감행하여 "그들이 우리를 죽이면 죽으리라" (왕하 7:4)고 했었는데, 이들은 그런 생가도 없었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영들은 얼마나 천박해지는가. (최악의 사태가 오면) 명예로운 침상에 서자기의 칼로 자살하려는 군인이라기 보다는 못된 양들처럼 광야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의 소행을 당연지사로 여기고(3절) 끝없는 절망 속에서, 저들이 진군한다면 칼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공포에 구실을 잡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처자식들도 가나안인들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 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해서도 가장 사악한 모독이 던져졌다. 마치 하나님은 그들을 이렇게 칼에 쓰러지게 하려고 그곳까지 끌고 왔으며, 마침내는 저들의 처자식들, 불쌍한 것들까지도 필경 희생물이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므로 사실상 그들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가장 악한 악이라고 비난했고 그가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 그를 위해 베푼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실로 그들에게 유혹의 함정이 되었고 그들을 몽땅 파멸시키려는 은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이 얼마나 뻔뻔한 짓인가! 그러나 하늘을 향하여 욕설을 퍼붓는 이 혀들은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을 것인가? 마귀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악한 생각을 갖도록 온갖 수단을 다 쓴다. 즉 하나님은 죄인들의 죽움을 바라며, 당신의 종들의 고생과 고난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을 아시나니(우리는 어떻게 알든 간에),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려는 생각" 이다(렘 29:11).

Ⅲ.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대신 이 절망적인 결단을 내리고 만다.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이러한 의안은 처음에는 그저 질문 형식으로 주어졌다.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3절) 그러나 그러한 동요는 커지고, 백성들의 영은 이미 비뚤어진 것은 뭐든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던 고로, 아무런 토의도 거치지 않고, 그러한 제안이 그냥 결단이 되었던 것이다.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4절). 이 일은 오랜 후에 "그들은 반역하여 저들의 종살이로 되돌아가려고 한 장관을 세웠도다" 라고 슬퍼했다(느 9:17).

1. 그들이 애굽에 있었던 시절을 사모하며, 그곳에 있었으면 지금보다 더 좋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이 감히 가나안으로 진군하기를 싫어한다면, 애굽으로 돌아가느니 그냥 가만있는 것이 더 좋았으리라.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뭘 불평하는 것인가? 식량이 풍부하고, 평화와 휴식이 있고, 좋은 통치자들이 있고, 훌륭한 벗들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가 있고, 광야에서도 불편한 것이 없었는데, 어떤 만족을 원한단 말인가? 어디 가야 이보다 더 편한 곳이 있을까? 애굽으로! 그곳에서의 그 괴로운 속박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그들은 중노동을 시키던 공사 감독과 벽돌을 굽던 고된 일을 다시 원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그들 때문에 애굽이 당했던 그 모든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다시 돌아가면 전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일년 반도 안 되는) 이 짧은 세월 동안에 그들 밑에서 내쉬던 한숨과 해방의 노래 소리를 몽땅 잊었단 말인가! 야수처럼 그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여, 이성의 모든 힘과 더불어 모두 기억을 감정에게 송두리째 희생하고 만 것이다(시 106:7 참조), 이것이 저들의 비극을 재촉한 것이라는 경고를 볼 수 있다(신 28:68). 즉 그들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는 그것 말이다. 죄인들은 스스로 자기들에게 원수 노릇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의 불행과 파멸을 스스로 추구하게 된다.

2. 광야를 지나서 이제까지 온 길을 되돌아 가겠다는 것은 정말로 지각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구름이 그들을 다시 인도해줄 것인가, 아니면 만나가 계속 내려 줄 것인가? 그리나 그렇지 않다면, 수천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필경 광야에서 길을 잃고 죽게 되고 말 것이다. 가나안의 정복에서 오는 고난이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듣도록 하자.



(1) 외적 조건이 가져다 준 십자가 밑에서 불만하거나 안달을 부리는 어리석음. 우리는 현재의 위치와 운명에 대해서 불평을 하면서, 그것을 바꿔 보려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그렇게 불평하고 있는 한,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에게 조금도 불편을 끼치지 않을 곳이 있겠는가? 우리의 형편을 더 좋게 하는 길은 우리의 정신 자세를 더 훌륭하게 만드는 일이다. "애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라고 묻는 대신에, "현실 속에서 만족을 찾으며.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고 물어야 한다.

(2) 하나님의 길을 떠난 자의 어리석음. 하늘 나라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가나안,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하늘 나라에 대한 악한 소식을 들어온 자들은 그 땅은 실로 복된 땅이니 도달하기 어려운 곳일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엄격하고 진지한 경건을 갖는다는 것은 실천 가능성이 없는 일로 여겨지며, 이 때문에 출발을 잘한 자도 계속 행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가 많아진다. 신앙 생활에 대한 상상적인 고생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들은 죄악된 생활이 주는 확실한 치명적 결과에 스스로를 던져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인들의 우행을 본 받아서 가나안의 문턱에 들어서서도 한 대장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14:2 없음.

 

14:3 없음.

 

14:4 없음.

 

14:5

진정되지 않는 폭동(민수기 14:5-10)

이스라엘 친구들은 여기서 가능한 한 그들을 멸망의 길에서 구해 보려고 폭등에 개입했지만, 헛수고였다. 의사가 그들을 치료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고쳐지기를 원치 않았다. 파수꾼이 그들에게 경보를 울렸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마침내 그들의 피가 그들의 머리에 쏟아졌다.

Ⅰ. 소동을 진압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적어도 자기들에게 평화를 줄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했다면, 모든 불평은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1. 모세와 아론이 참여했다(5절). 민중들이 원망하는 대상이 바로 이들이었지만(2절). 그들은 그 모욕과 수치를 용감히 묵살해 버리고, 자기들에게 무례히 구는 그들에게 신실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백성들의 아우성이 너무 컷으므로, 모세와 아론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시켜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지만, 군중들의 분노는 더욱 소란해졌던 것 같다. 그러므로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청중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을 뜻이다.

(1) 그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이 바다의 소동, 그 파도의 요란함, 그리고 그 백성의 요동을 진정시키려 한 것이다.

(2) 그것은 저들의 영이 가장 큰 고민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그들은 놀란 사람들처럼 땅에 엎드려졌다. 백성들은 저들의 자비를 묵살해 버리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 같았다. 그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이렇게 못된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보라.

(3) 그리고, 그들의 원망을 중지시키는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 백성들에 대한 커다란 열의를 보인 것이다. 그들을 자기들의 겸손한 자세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더 이상 배반을 고집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마치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통하여 그 백성들에게 간청이나 하는 듯이,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간청했다. 모세는 그들이 백성들에게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기록했다. "두려워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위해 싸우시리라" (신 1:29, 30).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열심 있는 친구 노릇을 하는 자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무엇이나 하려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모세와 아론은 자기들이 명예로운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 간절히 머리를 숙였다.

2. 갈렙과 여호수아도 참여했다. 그들은 백성들의 죄를 보고 거룩한 분개로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 그들은 이미 그들에게 하나님의 분노가 임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선량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사건이 더 큰 괴로움을 주었다. 그 소동은 저들이 같이 갔었던 그 정탐꾼들에 의해서 야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기들의 동료들이 일으킨 그 폭동을 진정시키기 위한 일이면 뭐든지 하려 했다. 저들의 말은 매우 논리정연하여, 그것보다 더 사리에 밟고 감격적인 말은 없었다. 그들은 권위 있게 말했다.

(1) 그들은 자기들이 탐색한 그 땅은 분명히 복된 땅이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그 땅은 정말로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나쁜 정탐꾼들이 말하듯이 그렇게 "주민들을 삼키는" 땅이 아니라고 했다.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 이라고 했다(7절). 문자적으로는 매우 매우 좋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복된 땅을 멸시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사람들이 신앙의 유익함을 바람직하다는 것을 철저히 확신하기만 하면, 신앙의 봉사에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자.

(2) 그들은 자기들이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 놓여 있는 듯이 보이는 그 곤란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 땅의 사람을 두려워 말라(9절). 너희들이 아무리 그들을 무섭게 생각하더라도, 그림 속의 사자 같아서 사납지 않다. 그들은 우리 밥이니라." 즉 "그들은 우리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먹이가 되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편안히, 아주 즐겁게, 그리고 매우 많은 유익을 얻으면서 그들을 지배하게 되리라" 는 것이다. 바로를 그들에게 고기로 주었다는 말씀이 있다(시 74:14). 또한 가나안 인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저들편의 유익이 될 것임을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1] 가나안 인들이 성벽이 있는 도성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무방비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보호자가 그들에게서 떠났느니라" . 제 국가의 권한을 보유해 주고 있던 일반 섭리가 그들을 버렸다.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아무런 은신처나 보호책이 없게 되리라. 다른 정탐꾼들은 그들의 강대함을 주목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저들의 사악함과, 그 결과로 하나님이 저들을 버렸고, 따라서 "그들의 보호자가 떠났다" 는 것을 주목했다. 하나님을 분노케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는 그 누구든 안전을 기대할 수 없다.

[2] 이스라엘은 천막 속에 거주하지만, 강성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시다." 그의 이름은 강한 망대로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와 할께 해 주는 한은, 아무리 강한 대적이라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그들은 저들이 지금 처한 모든 위험은 저들의 불만에서 왔으며,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은 한 가나안 인들을 쳐 이기리라는 것을 명백히 보았다. 바로 이 때에만 저들의 사정은 바꾸어질 것이다(8절). 즉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분명히 그는 그럴 것이다-우리가 그를 노엽게 하지 않는 한, 그는 우리를 이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시리라.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얼굴의 빛(시 44:3)으로 인하여 필경 그 땅을 차지하리라. 우리가 그의 은혜를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은혜를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가능하다."

2. 결론은 이렇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9절). 죄인들을 파멸시키는 것은 그들 자신의 배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두시며.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에게서 밀어낸다. 그래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들 스스로가 축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의 가나안에서 축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진상이 이보다 더 밝히 드러날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그들에게 강한 요청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던고 !

Ⅱ.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들은 정정당당한 추론에도 귀를 닫았다. 그보다는 이것 때문에 화가 났다. 더 무례해졌다. "온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했다" (10절). 회중의 지도자와 요인들(패트릭 주교의 말대로)이 시민들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시켰다. 그들은 머리가 돈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잘못을 범하게 했다" 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악행에 깊이 빠진" 심령을 가진 자들이 자기들에게 좋은 충언을 해 주는 자들에게 분노를 내는 것 흔히 있는 일임을 기억하자. 개회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바로잡으려는 자들을 미인하며, 진리를 말해 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원수시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일찍부터 예언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보내어진 주들을 돌로" 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그들의 죄악의 그릇은 다 차고 말았다(마 23:37). "그들을 돌로치라!" 왜? 그들이 무슨 악을 행했다는 것인가! 그들이 책망 받을 범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두 증인들이" 계속 불충성을 자행하는 "그들을 괴롭힌" (계 11:10) 것은 사실이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의로운 말밖에 안 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9절). 그리고 이스라엘은 저들의 격려의 말로 자기들의 두려움을 물리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돌로 치라고 말하는 그 성난 군중들에 대처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경우를 당한 다윗의 처신도 그러했었다(삼상 30:6). 자기들의 조언과 위로로 남을 교화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들은 고상한 인품을 지니려고 노력해야 한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자기들이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나서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즉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사" 하나님의 종들을 돌로 치려는 자들을 공포와 당혹에 사로잡히게 했던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비난을 가했을 때도(3절)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의 신성 도독을 침묵시키려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갈렙과 여호수아를 위협하고, 하나님의 눈동자에 손을 대려 하자, 하나님의 영광은 즉시 나타났다. 하나님께 신실히 봉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음을 확신하며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인간의 분노에서 보호해 주실 것임을 명심하자.

 

14:6 없음.

 

14:7 없음.

 

14:8 없음.

 

14:9 없음.

 

14:10 없음.

 

14:11

모세의 간절한 중재(민수기 14:11-19)

Ⅰ.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의의 심판을 내리셨다. 나중에는 그 형벌이 완화되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댓가가 무엇이며, 침해된 정의의 요구가 무엇이며, 모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났" 을 때. 모세는 그것이 자기를 가까이 부르는 신호로 알았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당하여(출 32:30), 아직 회막이 건립되기 전 그가 산으로 올라갔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모세를 헐뜯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공적으로 영예를 주셨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자문으로서의 영예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를 살펴 보자.

1.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가 지극히 악하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11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모든 관계는 모세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을 때는, 그들이 모세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2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분노하셨을 때에도, 역시 모세에게 그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의 종 예언자에게 그의 비밀을 알리신다" (암 3: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들려 준 불평은 두 가지였다.

(1) 그들의 죄다. 그들이 "나를 노하게 했다" (문자적 의미는 이렇다). 또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고, 비난하고, 멸시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으려" 함이다. 이게 바로 엉겅퀴만 내는 그 쓴 뿌리이다. 그들이 이 날 광야에서 하나님을 분노시킨 것은 그들의 불신앙이었다(히 3:8). 하나님과 그의 권능과 약속의 불신은 그 자채가 매우 큰 죄이며, 다른 많은 죄의 밑바닥이 된다는 것을 알자. 불신앙은 큰 죄이다(요일 5:10). 그리고 죄의 뿌리다(히 3:12).

(2) 또 그들은 그 죄를 계속했다. "얼마나 오래도록 그들이 그러하겠느냐?" 하늘의 하나님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악을 얼마나 오래 고집하고 있는지를 알고 계신다. 그들이 더 오래 고집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분노는 그만큼 커진다. 그들의 죄를 가중시킨 것은

[1]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였다. "이 백성" 곧 특정한 백성이요, 신앙을 고백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름과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과 보다 가까이 있는 자들이 죄를 범하면, 특히 불신앙을 범하면, 하나님은 더욱 더 분노하신다.

[2] 그들은 "자기들에게 나타난 모든 표적" 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자비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능히 그들을 하나님께 신뢰하게 하고 따르게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이 베풀어주시면 주실수록, 우리의 불신에 대한 그의 분노는 그만큼 더 커진다.

2. 그것 때문에 임한 정의의 심판을 모세에게 알려 주었다(12절). "이제 내가 그들은 완전히 멸하거늘 무엇이 남겠는가? 곧 시행하리라. 내가 그들을 전염병으로 치리라.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혈통을 완전히 사멸시킬 것이며, 그들을 뽑아 버리고, 다시는 그들 때문에 골치 앓지 않을 것이다."

3. "내가 나의 대적들을 편케 하리라. 그들은 죽기를 원하도다. 그러므로 죽여주리라. 뿌리나 가지도 몽땅 뽑아 버리리라. 이 패역한 자식들과는 내가 의절하리라."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나는 모세의 가문은 남겨 두리라. 그리하여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

(1) 이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시험하려 하셨다. 그가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그는 전에 자기 가문의 출세보다는 그들의 이익을 더욱 추구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아직도 공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이며, 이스라엘의 파멸되고 자기의 이름이 떨쳐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이 관명 되었다.

(2) 하나님은 죄인들의 파멸이 당신께 손해를 가져오지 않는 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죽어 없어졌더라도. 하나님은 또 다른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어서 그들에게 대한 당신의 자비를 찬양케 했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파멸되더라도, 여기에서의 모세가 받은 하나님의 자비는 찬연히 빛날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Ⅱ. 모세는 그들을 위해 간절한 중재 기도를 드렸다. 그들의 죄는 그들의 보호 장벽에 치명적 손상을 입혔다. 그러므로 만일 모세가 적시에 거기에서 임하여 사태를 호전시키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들에게 파멸이 따랐을 것이다. 여기서의 모세는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다. 그는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우리에게 한 모범을 보인 것이다" (마 5:44).

1. 그의 기도는 한 마디로 말하면, "간구하오니, 이 백성의 사악을 사하소서" 이다. 즉 "그들에게 그들이 받을 멸망을 주지 마옵소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고 자기를 못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기도이다. 한 민족의 죄의 용서 그 자체는 그 민족의 징벌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모세가 여기서 간절히 구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2. 그 탄원은 여러가지요, 강력한 것이었다.

(1) 그는 대부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옵시라고 탄원했다(13-16절).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고 했기 때문에, 모세는 잠시 중단하고 이렇게 시작했다. "여호와여, 그러면 애굽인들이 들으리로다." 하나님의 명예가 모세 자신의 이해보다 더욱 그의 심중에 가까이 있었다. 그가 하나님께 어떻게 "이 사정을 아뢰었는지" 보자.

[1] 그는, 애굽과 가나안의 눈들이 자기들을 지켜보고 있으며, 큰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다고 탄원했다. 그들은 오직 "이 백성 중에 주 여호와가 계심" 을 들었다(14절). 이 사실을 그 주위의 여러 나라들도 알았으니, 이 백성은 실로 얼마나 하나님의 특별 보호를 받고 있었으며, 해 아래 다른 어떤 민족도 그들과 같지 않았다는 깃을 잘 알 수 있다.

[2] 그들이 모두 죽게 되면, 그 사실은 크게 알려질 것이라고 했다. "애굽인들이 그것을 들으리로다(3절). 그들의 정탐꾼들이 우리 중에 있으니, 그들이 그것을 그 땅의 거민들에게 말하리이다" (14절). 또한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광야를 통과하는 길은 아니지만, 많은 왕래가 있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란을 피웠던 이 백성이 전멸된다면, 강대하던 그들의 권리가 무로 돌아가고 그들의 빛이 커져 버린다면, 그것을 들은 갓 족속이 즐거워할 것이며 또 아스글론 지역에 소문이 자자하리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이 폐허 위에 무엇을 건축하겠나이까? 그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의 행동이었음을 이해시킨다는 것, 또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옵니다. 야수 같은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나이다(시 92:6)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권능의 실패로 뒤집어씌우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모욕이 돌아가리이라(16절). 그들은 말 할 것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그들을 죽인 것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능력이 없고. 그의 팔이 짧으며, 따라서 기적의 창고가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오니 여호와여, 당신의 한 가지 속성을 희생시키고서도 아무런 속성도 영광을 받지 못하나이다. 차라리 권능자의 힘이 조소거리가 되기보다는 자비가 심판을 이기게 하소서." 기도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탄원은 하나님의 명예를 생각하여 나온 것임을 기억하자. 이것은 주기도문의 첫 조항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름을 거룩케 하옵소서. 당신의 영광의 보좌가 멸시받게 하지 마옵소서." 하나님도 이것을 요청하셨다(신 32:27). "내가 원수의 분노를 무서워했노라" .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주님의 원수들이 주님께 모욕을 돌리는 기회를 주지 않도록 스스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딤전 6:1).

(2) 그는 호렙산에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라고 했다(17,18절). "여호와의 권능을 크게 하옵소서." 여기서는 권능이 용서하는 자비를 뜻한다. 그것은 그의 진노를 누르는 힘을 말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말하신다면. 하나님의 권능은 의문시될 것이다. 그들 앞에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원수들의 힘으로부터 그리고 또한 그들의 죄 악에서부터 그들의 구원을 계속하시고 완성하신다면, 하나님의 권능은 지극히 빛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약한 백성으로 정복자가 되게 하실 수 있고 그렇게 무가치한 백성을 총애할 수 있는 분이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하나님의 권능이 손상될 위험이 더 많으면 많을수록, 그 권능이 더욱 영광스럽게 빛나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탄원을 강화하기 위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되풀이한다. "여호와는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심이 크시나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자랑하신 적이 있다(출 34:6, 7). 그러므로 이 때 모세는 이 기회에 그 영광을 드러내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기도의 용기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이다(시 119:49). "여호와여,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옵소서. 주께서 말씀 하셨으니 그대로 실행하셔야 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은 3가지를 엄숙히 선언하셨었다. 그래서 여기서 모세가 그것을 포착한 것이요,

1. 자기의 탄원의 지원 무기로 쓰고 있는 것이다.

2. 3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본성은 자비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자바가 크시다. 성을 급히 내지 않으시며, 죄인들을 향해 온유와 충성을 가지신다.

[2] 특별히 죄의 용서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다. "불의와 죄악을 용서하시나니." 곧 온갖 종류의 죄를 용서하신다.

[3] 벌을 주실 때에라도, 극한 상환까지 가기를 원치 않으신다. 이런 의미로 다음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결코 아비들의 죄를 자손들에게 내리시어 황폐케 하지 않으시리라." 하나님은 제 2계명 속에서는 그렇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 가족, 교회, 민족을 일시에 끝장내지는 않겠노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그것이 큰 의미를 주었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죄를 전혀 벌주지 말아달라고는 간청할 수 없었다(하나님께서 반역자들에게 아무런 진노의 채찍도 내리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반역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백성을 한 사람같이 죽이지" 말기를 간청할 수는 있었다(15절). 모세는 그들이 징계받지 않게 되고, 조금도 멸망되지 않기를 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렇게 선포한 것은 모세의 의도에 더욱 잘 들어 맞았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금송아지를 만든 죄를 용서해 준 때에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저지른 죄는 충분히 악한 것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는 아니었다.

(3) 모세의 과거의 경험으로 탄원했다. "주께서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 (19절). 이것은 모세에게 불리하게도 보인다. 그렇게 자주 하나님께서 관대한 처분과 인내로써 용서해 주셨으나 역시 배반하고 만 그런 자들을 왜 더 이상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판국에 그러한 사정을 아뢰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탄원을 올리는 자에게 피해를 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시는 일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다른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은 우리의 생각과 방식보다 훨씬 위에 있다(사 55:9). 모세는 이것을 훌륭한 탄원거리로 보았던 것이다. "여호와여, 용서 하셨던 것과 같이 다시 용서하소서." 전에 용서해 주셨던 것과 같이 지금 또 용서해 주신다고 하여 그것이 "주님의 정의를 모독하거나 자비의 찬양을 조금도 실추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은 소멸되지 않으리니," 그들에게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이 있기 때문이다(말 3:6).

 

14:12 없음.

 

14:13 없음.

 

14:14 없음.

 

14:15 없음.

 

14:16 없음.

 

14:17 없음.

 

14:18 없음.

 

14:19 없음.

 

14:20

하나님의 응답(민수기 14:20-35)

여기서는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게 된다. 그 응답은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을 다같이 노래해 주는 응답이다. 그것은 모세에게만 은밀히 주어졌다(20-25절). 그리고 나서 그 백성에게 공적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26-35절). 그 내용은 변명될 수 없는 단호한 하나님의 결의를 계속 말해 주고 있다. 구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 보자.

Ⅰ. 선고의 극한 상황만은 피하게 되었다(20절). "나는 사해 주었느니라. 그래서 그들이 일시에 멸절되거나 없어지지 않게 하였으니라" 기도의 권능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귀히 여기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자. 하나님이 용서의 뜻을 세우셨다. 그러나 모세는 기도로서 용서를 성취했다는 찬양을 받게 된 셈이다. 그것은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 이리하여 한 군왕으로 모세는 하나님과 겨룰 권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이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남을 위한 중재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고 격려해 주시는가를 깨닫자.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함에 있어서도 공적인 정신 자세를 견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인 한 사람의 간곡한 기도로 민족전체가 멸망의 위기에서 구출되었다. 하나님은 얼마나 죄 용서를 기뻐하시며 얼마나 탄원에 잘 호응해 주시는가를 주목하자.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용서하소서."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용서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다(20절). 이리하여 다윗은 그를 힘입어 자비를 보여 달라고 비약한다(시 32:5). "그는 우리의 죄에 따라서 우리를 대하시지 않으신다" (시 103:10).

Ⅱ. 일반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함이 뚜렷하다(21절). "온 땅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하리라" 고 했고, 그것은 하나의 맹세이기도 하다. 기도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처벌을 통하여 나는 그것(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크게 하고 밝히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겅우라도 죄라는 것은 몹시 싫어하신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비와 은혜는 넘치는 분노에 더디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구주께서도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시자, 즉시 이런 응답을 받았다. "내가 그것을 영화롭게 하였으나, 또다시 영화롭게 하리라" (요 12:28). 하나님의 영광을 성실하게 구하는 자들은 그 구한 것을 분명코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을 찬양하는 이 기도를 약속으로 바꾸어 주실 때에는, 우리도 기도를 찬양으로 바꾸어 천사와 화답해야 한다(사 6:3). "땅이 주의 영광으로 충만하도다."

Ⅲ. 하나님을 분노케 하여 저들에게 불리한 일을 하게 한 이 백성들의 죄는 가중된다(22,27절). 그것은 실제보다 더 악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피가 지독하게 악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것은 악한 회중이요, 각자가 모두 나쁜 사람이며, 전체로 보면 더욱 나쁜 회중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했다-즉 그의 귀능을, 또 그가 자기들의 곤고를 도와 줄 수 있는지를-또 그의 자비, 곧 그가 과연 자비로우 실는지-그리고 그의 신실성, 곧 그의 약속은 이뤄질 것인가 등을 시험한 것이다. 그들은 그의 정의 곧 저들의 죄에 대해서 분개하시고 벌 주실는지 그것을 심판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우상처럼 과연 "자비와 재앙" (사 41:23)를 베푸시는지 도전한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것은 여러가지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졌다(27절). 그들이 하나님께 과연 그가 어떤 분이 신가고 물은 것은, 계속 트집만 잡으면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어떤 율법이나 하나님이 주신 규례(그들은 그것을 무거운 멍에로 생각했지만)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신과 섭리에 대한 원망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아나가기보다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에 임하기가 능사라는 것을 명심하자.

3. 그들은 애굽과 광야에서 하나님의 많은 기적을 체험한 다음에도 이런 불만을 토했다(2절). 저들은 자기들의 눈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께서 진실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는 증인이었다.

4. 그들은 10번이나, 즉 매우 빈번히 하나님을 멸시했다. 유대학자들은 이스라엘 회중이 하나님을 분노케 한 것은 정확히 10번이라고 간주한다. 처음에는 홍해에서(출 14:11), 또 마라(출 15:23, 24), 신광야(출 16:2), 만나 때문에 두 번(출 16:20, 27), 르비딤(출 17:1, 2), 금송아지 사건(출 32), 그 다음에는 데베라, 그리고 기브롯핫다바(11장)에서의 원망이라 한다, 그래서 10번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죄악을 반복하는지를 계산하고 계시며, 조만 간에 그것을 우리 앞에 발표하실 것임을 잊지 말자.

5. 하나님은 수차 그들의 죄를 경고해 주었지만, 그들은 그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Ⅳ. 그들의 죄에 대한 형이 선고되었다.

1. 그들은 약속된 땅을 볼 수 없게 된다(23절). 물론 "들어 가지도 못한다" (30절). "그는 진노하사 그들을 그의 안식에 참예치 않게 맹세하셨다" (시 95:11). 약속에 대하여 불신하면 그 약속의 혜택을 상실하고 만다. 그 복된 땅을 멸시하는 자들은 거기서 쫓겨난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에게서 이루어지게 되리라했다.

2. 그들은 즉시 "광야로 되돌아가야" 한다(25절). 저들은 이제 후퇴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곧 진군해야 할 가나안의 국경지대 앞에 와 있었으나, 다시금 홍해 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너희는 내일 돌이키라." 즉 "이제 곧 너희는 너희들이 그렇게 싫증나 있는 그 광막한 광야로 되돌아가게 되리라. 그리고 너회들의 운명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느니라. 아말렉인들이 골짜기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너희들이 견지하지 않으면, 너희들을 칠 것이다" 는 것이다. 그들은 불신에 가득차서 아말렉인들을 두려워했다(13:29).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저들에게 겁을 주신 것은 정당하다. "악한 자들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3. 어른이 된 자들은 점차로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된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기를 바라던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한 소원에 "아멘" 이라고 답하셨다. 그들의 죄가 그들의 파멸을 초래했고 "그들의 입의 말이 그들을 덫에 넣었다." "그들의 혀가 그들에게 멸망을 불렀다."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되었고,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지리라" (28. 29절). 이 말은 반복되어 있다(32,35절). 그들은 어떤 책망을 들었는가 보라. 그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스스로 비겁해진 것이라고 했다. 주의 영이 떠나니. 용맹하던 장수들도 시체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시체 같았다. 그들의 선조들은 가나안에다 자기들의 뼈를 묻겠다고 소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복 된 땅을 멸시하고 그 약속을 불신한 이들은 거기에 묻히는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다. 모두 광야에서 매장되고 말았다.

4. 이 선고가 실행되면.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며, 마치 길 잃은 여행자들 같이 40년을 지내게 되리라 했다. 즉 그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40년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33.34절). 이리하여 저들은 오랫동안 방랑하게 된다.

(1) 그것은 정탐꾼들이 그 땅을 탐지한 날 수와 맞먹는다. 그들은 사람의 증언을 들으려고 40일을 기다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실행을 기다리면서 40년을 보낸다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2) 그것으로 인하여 저들은 회개하게 되고, 저 세상에 가서라도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 저들은 자숙하며 자기들의 행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광야 생활의 고달픔이 저들을 겸손케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저들의 심중에 있던 것을 보게" 된 것이다(신 8:2). 이토록 오래 저들은 "저들의 사악함을 짊어졌다." 그 동안 자기들의 처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의 중함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로 인한 짐으로 시달리었다. 그 점은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3)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 그 계약을 범하면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내가 약속을 이행치 않게 됨을 너희가 알게 되리라. 그것은 너희의 죄로 인함이니라" (하나님은 먼저 사람들이 그를 버리기까지는 버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너희의 파멸이 오리라. 너희가 계약을 저버렸으니 온전히 멸망되리라."

(4) 이리하여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새 세대가 일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그 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표징 밑에서 자라서 "그들(조상들)의 패역한 죄 (곧 그 부모들의 죄에 대한 처벌. 특히 금송아지로 인한 우상 숭배로 하나님은 그들을 불쾌히 여기시고 있는 것이다)를 지게" 된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자기 부모들의 불복종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경고를 받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광야 유랑이 그렇게 긴 것은, 그래야 나중에 가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고를 받자 모세는 시편 90편을 기록한 것 같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당시 현황과는 엄청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시편을 통하여 그들은 그 선고가 개정될 수 없는 것이므로, 거기에 순응하고 "지혜에 복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Ⅴ. 이 가혹한 선고 속에도 자비가 섞여 있었다.

1. 갈렙과 여호수아도 광야에서 유상해야 하지만. 그들은 당시 20세 이상인 자들 중에서는 살아 남아 가나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자들이라고 했다. 24절에서는 갈렙만이 언급되어 있어 특히 특별한 영예를 받고 있다.

(1) 그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다. 그는 "마음이" 다른 정탐꾼들과는 "달랐다." 그는 "다시 생각해 보는 마음" 이 있어서, 위험이 따라왔지만 다시 한 번 숙고해 보고 자기의 의무에 성실하여" 온전히 여호와의 뜻을 좇았다."

(2) 그 보상으로 약속이 주어졌다. "그들이 갔던 땅으로 때가되면 내가 인도해 가리라."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1] 우리들은 모두 여호와를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 최대한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명예를 위한 사업에 복종하려는 자세로써 그를 좇되, 만장일치로 분별없이, 가면없는 정직한 마음으로-불편없이 유쾌히-그리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끊임없이 좇아야 한다. 이것이 그를 온전히 좇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려는 자들은 남과 다른 정신, 이 세상과 다른 정신, 전과 다른 정신을 가져야 한다.

[3] 모든 자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시대에 홀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른 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재앙을 만나는 시대에 홀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른 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재앙을 만나는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 보호와 인정을 받는 영예를 지니게 된다. 여호와를 온전히 따른 자의 영원한 유업은 하늘의 가나안이다. 갈렙이 다시금 말해지는 곳 30절에 가서는, 여호수아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또 같은 은혜와 영예를 받게 되었으니, 그가 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2. 이 반역의 자식들에게도 자비는 베풀어졌다. 그들은 씨가 되기 위해서 보존되어야 한다. 가나안은 그 씨들에게 보장될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불신앙 때문에 "너희들의 어린 자들" 곧 지금 "너희들은" 너희들의 불신앙 때문에 "너희들의 어린 자들" 곧 지금 20세 미만인 자들을 위해 "희생이 되리다." 내가 그들을 "인도해 들이리라" (31절). 그들은 자기들의 자식들을 죽이려 한다고 하나님께 불평스런 비난을 가한 적이 있다(3절).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과 무죄한 자들임을 구별하실 수 있고, 그 죄인들이 자녀들을 물들게 하지 않도록 그들을 처벌해 버릴 능력이 있음을 그들에게 알리시려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잠시 실패하는 듯 했지만 영원히 좌절되지는 아니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징계 채찍을 드셨지만, 그의 "자비로움은 그들을 완전히 파멸시키려 하지 않으신다."

 

14:21 없음.

 

14:22 없음.

 

14:23 없음.

 

14:24 없음.

 

14:25 없음.

 

14:26 없음.

 

14:27 없음.

 

14:28 없음.

 

14:29 없음.

 

14:30 없음.

 

14:31 없음.

 

14:32 없음.

 

14:33 없음.

 

14:34 없음.

 

14:35 없음.

 

14:36

너무 늦은 회개(민수기 14:36-45)

Ⅰ. 열 명의 악한 정탐꾼들은 급사했다. 선고가 그 백성들에게 포고되어 아직 실행되지는 않고 있던 중에,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 (36,37절).

1. 이로써 하나님은 자기들도 "죄를 짓고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자들에게 대한 특별한 분노를 표명하셨다.

(1) 그들은 약속의 땅을 비방함으로써 스스로 죄를 저질렀다. 신앙을 그릇되이 말하고 비난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앙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고 기회를 찾는 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노케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비천하고 하찮은 것이며, 우울하고 기분 나쁜 일이며, 어렵고 비실제적인 일이요. 필요 없고 유익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그 복된 땅을 "악평하고." "여호와의 곧은길을 굽게" 하며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2) 그들은 "이스라엘로 죄짓게 했다." 그들은 고의로 "온 회중이" 하나님께 "원망을 하도록" 만들었다. 죄를 선동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 때문에 ?긴 사람들의 피를 엄중히 계산하기 때문이다.

2. 이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이 온 회중에게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가를 보여 주셨다. 즉 그들에게 지금 선고된 그 형의 집행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보여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지파 중의 일인을 갑자기 죽였다면, 그 나머지 사람들도 점차 죽일 것이다. 악명 높은 죄인들의 이 괄목할 만한 죽음은 불신앙 인들의 최후 파멸을 증거 해 주는 것이다(벧후 2:5, 6).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나타났다. 죄인들은 이것을 보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Ⅱ. 갈렙과 여호수아에 대한 특별 보호. "그들은 살아 남았다" (38절). 아마 12명의 정탐꾼들이 한군데 모여 서 있었던 것 같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잘 보이는 표적과 같았고, 전 회중에게 감화를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10명의 악한 정탐꾼들이 악질에 걸려 쓰러졌으나, 두 사람은 살아남아 건강한 채로 있음을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의 증언을 확인해 준 것이요, 그들을 돌로 치라고 했던 자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들의 좌우에서 수천명이 넘어지지만(시 91:7), 그들은 계속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다. 죽음은 결코 과녁을 빗나가지 않는다. 또한 많은 자들이 죽어가는 한가운데 살아야 할 자들이 섞여 있었지만, 죽음은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Ⅲ. 온 백성에 대한 사고의 집행(36절). 하나님은 당신이 그들에게 관하여 포고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한다. 가나안은 다음 세대를 위해 유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온 백성에게는 물론이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그토록 바라던 모세에게도 저으기 큰 실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모세는 침묵했고, 백성들만이 크게 통곡했다. 모세는 이 선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만족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의 죄책감 때문에 울고 괴로워한 것이다. 그들은 이유 없이 울었었다(1절).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울거리가 생긴 것이다. 이리하여 불평장이들이 애곡자가 된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는 간곡한 비난을 받았을때(9절), 만일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울었더라면, 이러한 선고는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심판의 가혹성 때문에 울고 있으니, 그것은 너무나 늦은 울음이요,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고 울었으나, 회개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히 12:17). 지옥에는 이러한 통곡이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지옥 불을 끄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혀를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할 것이다.

Ⅳ. 이러한 선고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1. 이제서야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애원했다(40절).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군대를 총동원시켜 놓고, 모세에게 자기들을 지휘하여 적을 물리치자고 애원했다. 더 이상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했다. "우리가 죄를 지었나이다." 그들은 회개를 공언했다.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이제 올라가리이다." 이제야 그들을 그들이 멸시하던 땅을 소망하고, 불신하던 그 땅을 신임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면, 모든 죄인들은 자기들의 불경건한 행동과 완악한 말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이 이기신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말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저들의 이러한 뉘우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는 되었지만, 아무런 이익도 그들에게는 없었으니, 그것은 너무나 때가 늦었기 때문이었다. 선고는 포고되었고, 그들의 멸망은 결정되었다. 그들은 찾을 만한 때에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 찾을 수 없는 때에 가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은혜의 날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이 오직 하늘에 소망을 굳게 잡고 있는다면, 그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는 그들이 하늘에 있게 될 것이다.

2. 모세는 그들의 망동을 전적으로 불허했다. 그들이 서두르고 있는 원정을 금지했다. "올라가지 말라" (41-43절).

(1) 모세는 그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는" 것이니라.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돌이켜 홍해쪽으로 가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바 있기 때문이다. 의무란 적시에 이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명령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율법에 복종하지 않은 자는 그 형벌에라도 복종해야 한다. 여호와는 율법수여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2) 모세는 위험을 경고해 주었다. "그것은 합당치 않느니라. 결코 기대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도,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명심하자. "너희 앞에 있는 가나안인들이 너희를 공격하리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않으니, 너희를 돕거나 위해서 싸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의무를 저버린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에서 떠나게 되고, 저들의 생명에 위험을 주게 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곳을 간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보다도, 모세는 그들의 실패를 명백히 예언해 주었다. "너희는 그 칼에 넘어지리라." 곧 아말렉과 가나안인들의 칼에 넘어지리라는 것이다(원래는 이들이 이스라엘의 칼에 넘어질 자들이었다). "너희가 여호와를 떠났기 때문이니라." 곧 그의 보호와 약속의 인내를 추종하기를 거부했고,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않으리라."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는 자들을 분명히 버리시리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자들은 온갖 비극에 빠지게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험을 했다. 이 때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려고 어그러진 길로 가려고 절망적으로 발버둥을 친 적은 없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안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금하자, 그들은 또 가려고 했다. 그러므로 "육적인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 된다. "그들은 그대로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44절).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에 역행하려고 애썼다. 그 판결을 무시하려고 했다.

(2)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표증을 경시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이 모세를 떠났고 그들을 떠났을 때에도, 올라가려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힘을 불신했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힘 없이도 능히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듯이 뽐냈다.

4. 그리하여 그들의 출정이 속행되었다(45절). 적군들은 그 언덕 꼭대기에 진을 치고 있었다. 침략자들을 쳐부수기 좋은 길을 이용코자 함이었다. 그들에게는 척후병이 있어서 이미 이스라엘군의 침입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제 척후병들을 내어 보내어 이들을 섬멸했다. 아마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죽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저들에게 내려진 선고는 집행되기 시작했다. 즉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서 넘어지리라" 고 했었다. 시작을 죄로 하는 일이 좋은 결말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 두자. 친구와 화해하는 길, 원수에 대해 승리를 거두는 길,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친구로 삼고 그의 사랑 안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저들의 조상들처럼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배척하고 나서는,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애썼고, 여기서처럼 그런 기획은 급속히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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