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민수기 0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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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성소의 등대(민수기 8:1-4)

금 등대의 제조법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이미 지시가 있었다(출 25:31). 그리고 그 등대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보여 준 그 모형대로 만들어졌다(출 37:17). 그러나 이제 다른 것도 사용할 준비가 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등잔에 불을 붙이라는 명령이 내렸다. 다음과 같은 점을 관찰할 수 있다.

1. 등잔에 불을 붙인 사람, 그는 아론 자신이다. 아론이 "등잔에 불을 붙였다" (3절). 그는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집의 종된 직무를 다했다. 즉 그는 그의 주인의 등불을 밝힌 것이다. 또 백성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호의를 그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 주께서 내 등대에 불을 붙이시리라" (시 18:28)는 표현이 있다. 또 이로써 아론 자신은 이제 백성을 축복해 줄 지시를 받은 셈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로 네게 비취리라" (6:25). 계명은 곧 등불이다(잠 6:23). 성경은 "어두운 곳에서 발하는 빛" 이다(벧후 1:19). 진실로 교회라고 할지라도 그 말씀의 등불이 없으면 어두운 곳이 된다. 등불이 없으면(거기에는 창문도 없었다) 회막도 캄캄해지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사역자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풀어서 이 등불을 비추는 것이다. 제사장은 제단의 불에서 불을 가져다가 가운데 등잔에 불을 붙였고. 그 후에 그가 차례로 나머지 등잔에 불을 붙였다. 이것은 에인즈워드(Ainsworth)의 말에 따르면, 모든 빛과 지식의 근원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일곱 등불" (계 4:5)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 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러나 성경의 해석에서는 한 귀절이 또 다른 귀절에서 빛을 받아서 밝혀져야만 한다. 또 에인즈워드는 일곱은 완전수이며, 이 등대의 가지가 일곱 개인 것은 우리를 구원에 이를 만큼 지혜롭게 하는 성경의 완전성을 시사한다고 보았다.

2. 그 등불은 "등대 앞으로" 비치도록 했다. 즉 진설병이 놓여 있는 식탁이 있는 쪽이다. 이 등잔은 촛불처럼 스스로 타는 빛이 아니고 등불이 빛을 발하기 때문에 회막 맞은 편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마 5:15). 세상의 빛, 곧 교회의 빛은 등불처럼 빛나야한다. 우리는 빛을 가지고 있으므로 빛을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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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의 성별(민수기 8:5-26)

인구 조사 때에 레위인과 일반 이스라엘 자녀는 구별되었으며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끼리 계수하였다는 것을(3:6, 15) 이미 보았다. 이것은 그들이 회막의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제 여기서는 그들에 대한 엄숙한 안수식의 지시가 내려지며(6절) 또 그것이 실행된 것을 보게 된다(20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 외에는 이스라엘인 모두가 이런 명예를 차지하는 것이 아님을 이스라엘인은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이웃과 구별하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케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은 그 일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께 자기를 헌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아야 하며. 사역자들은 안수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일을 안 후에 우리의 일을 해야 한다. 안수의 방법을 관찰해 보자.

Ⅰ. 레위인들은 정결케 되어야 한다. 그들을 정결케 하는 예식은

1. 그들 스스로 해야 했다. 그들은 옷을 빨고, 목욕을 할뿐만 아니라 "모든 털" 을 밀어야 했는데 이것은 문둥병자의 정결 예식과 마찬가지다(레 14:8). 그들은 "전신을 식도로 밀어" 물로 씻겨지지 아니한 더러움을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야곱은 털이 없는 사람이었고 에서는 털이 많은 자였다. 저들이 스스로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감수해야 했던 큰 고통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교훈해 준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사역자들은 회개와 근신을 통하여 "육체와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완성"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그릇을 나르는 자들은 정결해야 한다.

2. 모세도 도왔다. 모세는 "정결케 하는 물을 그들에게 뿌렸다." 정결케 하는 물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마련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신앙에 의해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을 상징한다. 그 피는 우리를 악한 마음에서 정하게 해 주어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기에 적합하게 한다. 우리가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또 하나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Ⅱ. 이렇게 준비된 레위인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모이는 엄숙한 회의를 열어 여호와 앞에 나서게 되며, "이스라엘의 자녀들" 은 자기들의 "손을 그들에게 안수" 해야 한다(10절). 이것은 레위인들과 그들의 봉사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해 관계가 (부분적으로 그 백성 전체가 그 일들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과 그의 성소에 대한 관계로 전이되는 것이다. 그들은 레위인들을 "산 제사와 거룩하고 받아들여질 만한"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치며 "합당한 예배" 를 드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경우에 있어서도 제물을 가져온 자들이 그렇게 하지만, "이들은 자기들의 손을 레위인들에게 안수한다." 이것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온 회중, 특히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장자들의 온 회중이 드리는 예배 대신으로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사역자를 안수하여 임명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자녀들이 레위인들에게 손을 얹은 것은 레위인들을 성소의 사역자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호와께 제물 드려질 아론에 의해서 사역자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민병대나 국민 단체로부터 그 레위 지파를 떼어 내어 파송한 것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녀의 온 회중이 레위인들에게 안수할 수는 없었다. 아마 각 지파의 대표들이 와서 안수했을 것이다. 혹자는 각 가정의 장자들이 와서 안수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레위인들이 자기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어떤 일을 원하시든, 우리는 거기에다 손을 얹고 쾌히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며, 그것을 아까와하고 억류해 둘 것이 아니라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자.

Ⅲ. 그들을 위해서 제사가 드려졌는데, 처음에는 속죄제였다(12절). 그리고 나서는 번제를 드려 "레위인들을 속했다." 각 해당자들은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해야 했다. 여기서 이런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1.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아 하나님과 화해하기 전까지는 결코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사이에 아름다운 교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구름이 사라져야만 한다.

2.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되고 그에게 제물을 드리기에 합당한 자로 되는 것은 제사 곧 그리스도라는 대제사를 통해서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사역자들이 목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서이다. 박식한 패트릭(Patrick)주교의 말에 의하면 레위인들이 드린 이 제사는 레위인들이 자기들 자신이 바로 속죄 제물이라고 생각하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녀들을 속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드려진 자들이기 때문이다(19절). 또 레위인들이나 장자들은 죽음으로써 봉헌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대신하여 이 두 제사가 드려진다. 따라서 그들은 그 제물에 손을 얹어야 한다. 이스라엘 자녀들이 안수함으로써 그들에게 전가되었던 죄가(10절) 다시 이 짐승들에게로 이전되게 된다.

Ⅳ. 레위인들 자체가 "이스라엘 자녀들이 바친 예물" 로서 "여호와 앞에 바쳐진다" (11절). 아론은 먼저는 레위인들 자신과 이스라엘 자녀들이 그들을 바쳤듯이, 그들을 하나님께 양도한다. 요제를 뜻하는 원어의 뜻대로, 정말로 그들을 흔든 것이 아니라 요제의 제물처럼 하늘에 계신 분이신 하나님께 그리고 온 땅의 주이신 하나님께 현신(現身)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을 요제물이라고 부른 것은, 그들은 하나님 예배를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들을 하나님에로 향하고, 자기들의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며, 자기들의 마음도 하나님을 향하여 열어 놓아야 하며, 끊임없이 자기들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놀고 먹으라고 임명된 것이 아니라 활동하고 분발하게 하기 위해서 임명된 자들이다.

Ⅴ. 하나님은 당신께서 그들을 받아들이셨다고 선포하셨다. "레위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14절). 하나님은 장자들 대신으로 그들을 받으셨다(16-18절). 거기에 대해서는 앞에도 나와 있다(3:41). 하나님께 신실한 마음으로 바쳐진 것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입어 신실한 그의 사역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15절). 그들은 "회막의 봉사에 참여하리라."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것으로 취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회막의 특전에 참여하려는 자는 누구나 회막의 봉사에 참여할 결의가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피조물 중 어떤 것도 하나님께 꼭 필요한 종은 될 수 없다(하나님은 그들의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종은 결코 영예로운 종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이 인정하신 모든 자들을 고용하신다. 천사들에게도 자기들의 임무가 있는 법이다.

Ⅵ. 그 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들을 한 제물처럼 받아들였다(19절). 그러나 그 혜택은 이스라엘 자녀들 전체에 돌아간다.

1. 레위인들은 제사장들 밑에서 그들을 보좌하고 성소의 봉사에 노력해야 한다. 아론은 그들을 하나님께 드렸다(11절).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아론에게 되돌려 주었다(19절).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이 되도록 하여 우리에게 되돌려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 마음, 자녀들, 재산 따위는 우리가 그것들을 하나님께 바치기 전까지는 진실한 의미에서 결코 우리 것도 우리의 위안도 되지 못한다.

2. 그들은 백성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녀들의 봉사를 위해서" 취해졌다. 즉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만이 아니라 그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 전 민족의 명예와 안전과 번영을 위해서 일해야 했다. 하나님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들은 누구보다도 그 민중에게 유용한 일을 하는 셈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늘 자기들 일만을 하고 항상 양심적으로 그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그들의 국가를 위해서도 가장 유용한 일꾼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다른 어느 지파보다도 레위 지파의 사람들을 아껴야 한다. 그러나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자녀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란 도대체 뭔가? 다음과 같은 말이 뒤따라 왔다. "그들을 위하여 속함으로써,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라" 고 했다. 제물을 드려 속하는 것은 제사장의 할 일이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회막 봉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고, 제물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늘과의 평화를 보존한다. 회막 안에서 제사장을 돕는 일을 이스라엘 모든 장자들에게 난잡하게 맡겨 두었더라면, 그 일은 빠진 것도 있고 잘못되는 것도 생기며 함부로 하는 일도 생기며-이런 것은 모두 거기에 전념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찰이다-또한 부지런히 하지도 않을 것이고 레위인들이 할 때처럼 그렇게 지성으로 봉사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자녀들 중에 재앙" 을 가져오게 되리라-즉 장자들의 죽음이다. 이 재앙은 애굽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있었던 대 재앙이다. 이런 결과를 사전에 막고 속죄를 보존하기 위하여 레위인들이 이 일에 맡겨진 것이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부모 밑에서 그 일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일을 잘해 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녀들, 즉 장자들은 성소에 가까이 나아올 필요가 없게 된다. 또한 만일 어떤 이스라엘인에게 성소에서의 용무가 생길 때면 레위인들은 즉시 달려가서 그에게 모든 절차를 알려 주고 소개해 줌으로써 그들의 실수와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일반 신도들 앞에서 안내자와 선견자와 지도자로서 먼저 나아가며, 그것으로 그들의 임무를 삼도록 한 것은 교회에 대하여 베풀어진 지대한 친절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에 "이러한 은사들을 주신" 것이다(엡 4:8, 11, 12).

Ⅶ. 그들이 일하는 연한이 고정되었다.

1. 25세부터 일할 수 있다(24절). 30세가 되기까지는 회막이나 그 용구들을 나르는 일은 맡을 수 없다(4:3). 그러나 그것과는 달리 25세만 되면 일할 수 있게 했으나, 그만한 연령이면 사역자들이 공무에 나서기 시작할 만한 충분한 나이다. 당시에 그들의 일은 체력과 성숙한 판단력 및 행동의 견실성이 요구되었으며, 사람이란 그만한 나이는 되어야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풋나기들은 자만심을 가질 위험이 있는 법이다.

2. 5O세가 되면 일을 쉬고 안식으로 들어가야 했다. 25절의 말씀과 같이 그 때가 되면 전쟁터에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명예스런 면직이 아니라, 그들의 직무에서 오는 영예를 얻고 나이에서 오는 휴식을 찾아가는 것이니, 지금까지 그들은 자기들의 직무를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막에서 형제들과 함께 섬기게" 될지니, 그것은 곧 연소한 레위인들을 지도하고 그들에게 일을 익숙토록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회막의 접근로를 지키는 파수병으로서의 "직분을 맡아" 외인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고 부정한 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그들에게 힘겨운 일은 일체 맡겨지지 아니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그 일에 따라 일할 능력을 주신다면 사람은 지혜를 다하여 자기들의 능력에 맞도록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노한 자들은 수탁인으로 적합하니, 그 직분을 맡아야 한다. 청년들은 일을 하기에 적합하니,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느니라" (딤전 3:13).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연령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욥 32:9). "이 모든 일을 역사하는 이는 한 성령이니라." 이리하여 레위인들의 할 일이 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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