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인에 관한 율법(민수기 6:1-21)
죄로 인하여 곤욕을 당하는 자들을 찾아내어 수치를 주는 것에 관한 율법 뒤에, 스스로를 뛰어난 경건과 헌신으로 영예롭게 하여 남과 구별된 자들을 지도하고 격려해 주는 이 율법이 나온 것은 적당한 일이다. 이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나실인" 의 성격을 지닌 자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칭호는 남보다 신앙에 더 열심이 있고 철저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나실인이라고 불러 치하했을 것이다. 본문에 보면, 나실인의 서원이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이요, 단지 그 의무 규정만을 더 분명히 하려고 할 뿐이기 때문이다. 요셉도 그의 형제들 중의 나실인이라 했다(창 49:26). 그것은 단순히 그가 형제들 때문이 아니라 그가 뛰어 났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Ⅰ. 나실인의 일반적 성격 : 그것은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려진" 사람이라는 것이다(2절). 어떤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일생 동안 나실인으로 살았다. 즉 삼손(삿 13:5)과 세례 요한이다(눅 1:15). 또 자기 부모의 서원에 따라 그렇게 된 자도 있다. 즉 사무엘이다(삼상 1:11). 그런 자들에 대해서는 이 율법에는 언급이 없다.
본 율법은 자원하여 스스로 얼마 동안 나실인으로 자청한 자들에 관한 율법이다. 제한은 있지만 여자도 나실인의 서원을 할 수 있었다(30:3). 거기에 보면 그 여인은 여호와께 특별한 맹세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1. 나실인은 그들이 나실인으로 있는 동안만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다. 아마 그러는 동안 많은 시간을 율법 연구와 예배와 가르치는 일에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건한 정신이 그들과 그들이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2. 그들은 일반인과 속인과 구별된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는 이 세상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남과 구별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옛 삶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3. 맹세로써 구별된다.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것을 거룩한 율법에 의해서 하게 된다. 그러나 나실인은 자기들의 행실을 통해서 스스로 경건한 일에 참여하여 그 사랑의 결실과 표현을 보임으로써 남보다 풍성한 사랑을 실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극시키시사 교회의 빛이요, 신앙의 표준을 지킨 자요, 경건의 모범으로 삼으시는 그런 자들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젊은이들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키심" 은 그 민족에게 베픈 커다란 호혜라고 했다(암 2:11). 나실인은 길거리에서 알아 볼 수 있게 되고, "눈보다 정하고, 젖보다 더 희다" 는 존경을 받게 된다(애 4:7). 그리스도는 나사렛 사람(어원은 같음:역주)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또 그의 추종자들도 그런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이 율법에 따른 나실인이 아니었다. 그는 포도주를 마셨고, 시체를 만졌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실인의 모형이 완성되었으니, 그 안에서 모든 순결과 완전이 합치되기 때문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 인은 영적 나실인이다. 그들은 맹세로 주님께 드려진 자들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자기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서 유대인들과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실인의 율법에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방인들은 "그런 일을 피해야 한다" 고 선언했다(행 21:24, 25). 어떤 사람이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지대한 영예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나실인을 악하게 말해 "그러느니 차라리 나는 나실인이 되겠다" 는 식으로 말하면, (유대인에 의하면) 그는 사악한 인간이다. 그러나 거룩하게 나실인이 되겠다고 여호와께 서원한 자는 "보라, 그의 하나님의 면류관이 그의 머리에 있도다" 라는 말을 듣게 된다.
Ⅱ. 나실인은 특별한 의무에 처하게 된다. 미신적인 공상가들이 끝없이 많은 제약을 만들까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율법과 규칙을 만드셨다.
1. 그들은 "포도나무의 소산" 과는 일체 관계를 말아야 한다(3,4절).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며, 나아가 포도 씨나 껍질을 먹어도 안 된다. 건포도조차 먹으면 안 된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이렇게 추측한다. 즉 문둥병이나 그 밖의 질병으로 인하여 의식상으로 더러워진 것은 타락한 인간의 죄악된 상태를 상징해 주지만, 나실인의 제도는 무죄한 인간의 순결하고 완전한 상태를 말해 주려는 것이며, 나아가 아담에게 금지되었던 그 나무는 포도나무였기 때문에 여기 나실인들에게도 포도나무와 그 소산물 일체가 금지된 것이라는 것이다.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한 자는 그들에게 금지된 열매를 먹으라고 했던 그 유혹자의 일을 한 것이다(암 2:12). 레갑의 후손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고 칭찬을 하는 이야기가있다(렘 35:6).나실인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 . 이유가 있다.
(1) 절제와 금욕의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하나님과 그의 영예를 위해 바친 자는 육체의 욕망을 좇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어해야 한다. "속이 아픈 자들에게는 약간의 포도주" 가 허용되었다(딤전 5:23). 그러나 "미각을" 위한 과량의 음주는 "육을 따라서"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기로 작정한 자들에게는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2)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율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잠 31:5), "술도 실수를 범하지" (사 28:7) 않기 위해서 음주는 금지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음주와 독주를 절제하자. 술을 일단 사랑하게 되면, 그는 쉽게 사탄과 한 짝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술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또한 포도의 소산물 일체가 금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죄와 죄 비슷한 것, 또는 죄로 끌려갈 우려가 있는 것은 뭐든지 피하라는 교훈을 말해 준다.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2).
2. "털을 자르면" 안 된다(5절). 머리를 깎아도 면도를 해도 안 된다. 이것은 우리가 종종 듣는 삼손의 나실인 됨의 징표이다.(1) 이것은 육체에 대한 고상한 경멸이요, 또한 영혼의 평안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는 완전히 자기의 온 영을 다하여 영혼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구해야 한다. 또한 나실인인 당시에는 온갖 쾌락을 물리치고 자기 부정과 고해의 삶을 살겠다는 결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슬픔을 당한 므비보셋은 "자기의 수염을 깎지 않았었다" (삼하 19:24).
(2) 혹자는 긴 머리가 복종의 표시라고 한 점에 주목한다(고전 11:5). 따라서 나실인의 긴 머리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들의 복종과 하나님의 나라에 자기들의 몸을 바친다는 것을 뜻하여 준다.
(3) 이로써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실인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나실인으로서의 존경을 받게 된다. 그것도 아무런 기술을 부리지 않고서도 그들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그들의 머리의 자연의 면류관이요, 자기들의 정결을 지켰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만일 불결해지면 머리를 잘라야 했었기 때문이다(렘 7:29 참조).
3. 시체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6, 7절). 다른 사람들은 만지면 잠시 동안 의식상의 오염에 접촉될 뿐이다. 누군가가 시체에 손을 대지 않으면, 시체를 매장할 수 없다. 그러나 나실인은 만지면 안 된다. 나실인의 전 명예를 걸고서 금해야 한다. 그들은 부모의 장례식조차 참례할 수 없다. 이것은 대제사장보다 더 엄한 것이다. 까닭은, "그의 하나님의 성별됨이 그의 머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를 구별한 자들은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 즉,
(1) 남과 다르고 남보다 뛰어나는 일.
(2) 죽은 일로 마음을 쓰지 않는 일, 부정한 것을 만치지 않는 일이다. 우리의 신앙 고백이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죄를 멀리 하려는 관심도 그만큼 더 커야 된다. 죄로 인하여 그 많은 명예를 쉽게 잃고 말기 때문이다.
(3) 자기 친척들에게 지나친 애정을 기울이어서 그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복종이 파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마 8:21, 22 참조).
4.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들은 "여호와께 대하여 거룩해야" 한다(8절). 이것은 그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를 뜻하며, 이것이 없이는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드려져서, 그를 위해 일하고 그에게 마음을 주어야 한다. 마음과 생활이 순결해야하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형상과 뜻에 맞아야 된다. 이것이 거룩해지는 것이요, 정말 나실인이 되는 것이다.
Ⅲ. 그가 만일 시체를 만져 어쩔 수 없이 의식법상의 불결을 당했을 때, 그를 깨끗게 하는 대안이 있다. 앞에 나온 율법을 고의로 범한 경우에는 이 율법은 아무런 대책도 없다. 신앙으로 그런 서원을 한 자가 고의로 그런 짓을 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실수로 포도주를 마시거나 머리를 깍는 짓을 하겠는가? 순수히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자신의 실수가 조금도 아닐 때에라도, 그는 시체에 접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럴 경우이다(9절). 즉 "누가 우연히 그 곁에서 죽어, 그가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혔을" 경우이다. 죽음은 때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히 사람을 데려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사람은 그렇게 건강했다가 순간적으로 죽을 수 있으므로, 아무리 조심성 있는 나실인이라도 그 시체로 인한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시간에서 영원에 이르는 거리는 이렇게 짧고 순간적이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작스런 죽음을 준비해 주셨다 ! 이런 겅우에는
1. 나실인이 다른 사람들처럼 7일간 의식법상의 부정을 당하게 된다(9절). 또 나실인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한 것이 요구된다. 즉 그는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 그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10, 11절). 이것은 인간이란 제약성에서 오는 죄와 갑자기 겪게 된 실수도 성실히 회개해야 한다는 것과, 나아가 날마다 그런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제사의 효험이 우리 영혼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요일 2:1, 2). 또한 탁월한 신앙 때문에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고백한 자가 그 고백의 명예를 지키지 못하면,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보다 더 큰 것이 요구된다는 것도 알려 준다.2. 그리고 그는 구별된 날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즉 그가 정한 기일이 거의 완료될 무렵이었더라도, 지나간 시기는 오염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시간이므로, 나실인으로 지낼 기간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12절). 때문에 그들은 죽은 시체로 인해서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대단히 주의를 했던 것이다. 그 일이 그들의 시간을 잃어버리게 하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인이 그의 의를 떠나버리면" 죽은 일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니, 그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의로운 행실은 그에게 헛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겔 33:13). 끝까지 보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은 헛되고 만다(갈 3:4). 그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
Ⅳ. 그가 정한 기일이 다 되어 나실인에서 해방되는 식에 대한 율법이 있다. 그는 정한 기일이 완료되기 전에는 해방될 수 없다. 맹세하기 전에는 그의 권한에 있던 것이라도, 맹세한 다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유대인의 말에 의하면, 나실인이 맹세할 기간은 최소한 30일 이상이라 한다. 그리고 어떤 자가, "나는 이틀간만 나실인이 되겠나이다" 해도, 그는 역시 30일간 나실인의 법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서원은 단지 7일간이었던 것 같다(행 21:27). 그렇지만 오히려 그는 성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겐그레아에서 몇 년 전에 머리 자르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나실인의 의식을 잘 지킨 것 같다(행 18:18). 작정한 날이 다 되면, 그는 자유롭게 된다.
1. 공중 앞에서 곧 "회막 문에서" (13절) 그 식이 있게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와 맹세 기간이 완료되었음을 알아서, 그가 지금까지 그토록 거절하더니 다시 술을 마시는 것을 보더라도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아다.2. 제사가 따랐다(14절). 이러한 특별한 헌신 때문에 마치 하나님께서 그에게 빚진 자인 양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서원이 끝났을 때에도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잘 이행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일을 다 못할 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각종제사의 예물을 한가지 씩 바쳐야 한다.
(1) 번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특정한 서원에서 해방되지만 여전히 그가 자기를 다스리고 계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2) 속죄제. 이것이 두번째로 언급되어 있지만(14절) 먼저 드려졌을 것이다(16절). 다른 어떤 제사가 받아들여지기 전에 먼저 속죄가 이루어져야만 되기 때문이다. 나실인이 사람들의 눈에는 "눈보다 더 정하고 우유보다 더 희다" 고 하더라도, 속죄 제물이 없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감히 그렇게 보일 수 없는 법이다. 그가 비록 아무런 더러움 없이 정한 기간을 마쳤다 해도, 역시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아무리 선한 자에게라도 모르는 사이에 죄에 부딪히게 되고 아무리 선한 일에라로 티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어떤 선은 실행치 못하고서도, 어떤 악은 허용했을 것이다. 엄격한 재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죽게 될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속죄물을 드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도록 탄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3) 자기의 서원을 마치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과거에 나실인이었던 자답지 않은 일을 하지 않도록 계속 지켜 달라는 탄원으로 화목제를 드린다. 그가 이제는 자기의 서원에서 해방되었지만, 하나님의 율법에는 계속 제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4) 여기에다가 법식에 따라서(15, 17절) 소제와 전제가 뒤따랐다. 그 제사들은 번제와 화목제에는 항상 따라다녔던 것이다. 또 그 외에 무교병과 무교전병 한 광주리도 바친다.
(5) 화목제의 일부는 무교병과 전병을 함께 요제물로 드린다(19, 20절). 이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 보인 후에 이 제사를 위해서 수고한 그 제사장에게 사례비로 지불된다.
(6) 이 모든 것 외에도 그는 자원 예물을 드려야 한다.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드리는 예물이다(21절). 그의 능력 이상이나 이하도 안 된다. 또, 이 의식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이 때에 친구들이 "함께 비용을 내는" 수도 흔히 있었다(행 21:24).
끝으로, 한가지 의식이 더 지정되어 있다. 그것은 이 의식이 실행되고 나면 그의 속박의 줄이 끊어진다는 것과 같은 의식이다. 즉 그가 나실인으로 있을 동안 계속 자라도록 두었던 "머리를 잘라서" 화목 제물을 삶는 불에 넣어 태우는 의식이다(18절). 이것은 그가 자기의 서원을 완전히 이행했으므로, 그가 오직 위대한 제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것을 의미해 준다. 그러므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는" 것을 배우자.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를 기뻐하시지 않느니라."
축복 선언문(민수기 6:22-27)
Ⅰ. 제사장들에게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을 하는 엄숙한 일이 맡겨져 있다" (23절). 그것은 그들의 직분이었다(신 21:5). 이리하여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영예를 주었다. 즉 "작은 자가 큰 자의 축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것으로써 하나님은 그 백성을 크게 위로해 주시고 만족하게 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그 백성들에게 말하는 하나님의 입의 대언자로 보시는 것이다. 제사장 자신은 복을 내릴 수 없지만, 그의 직무상 복을 중재할 수 있고, 복을 주라고 명하신 그분의 이름으로 복을 빌 수 있으며, 손을 들고 권위 있게 사람들에게 얼굴을 향하여 축복을 기원할 수 있다.
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사명의 한 모형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축복" 이시다(행 3:26). 우리는 그를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고백한다. 그가 지상에서 하신 마지막 일은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신 것이다(눅 24:50, 51). 학식이 많은 주교 피어슨(Pearson)은 저녁 제사 때는 말고 아침 제사가 끝날 때에만 제사장들이 사람들에게 축복을 한 것이 유대인들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메시야의 시대인 마지막 시대-이것은 이 세상의 저녁이다-에는 율법의 축복이 그치고 그리스도의 축복이 대신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2. 그것은 복음의 사역자들. 회중의 사역자들에게 한 모범이 된다. 이들은 자기들의 회중을 떠나 보낼 때 축복의 기도를 하게 된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고 가르치고 명령하는 바로 그 입이 그들을 축복하는 그 입이다. 율법을 준행하는 자가 축복도 받을 것이다. 히브리 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즉 "복을 주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그러므로 이 가엾은 제사장의 축복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Ⅱ. 축복의 문형(文型)이 나와 있다. 다른 예배에 대한 문형은 없었다. 단지 이것만은 하나님께서 명하셨으니, 그것은 축복이 자기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못 가지도록 그들의 입에 말을 넣어 준 것이다(24-26절).
1. 축복은 각 사람에게 내려진다.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들은 각자가 복을 받을 준비를 갖추고 나서, 그들을 각각 행복하게 하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네가 복을 받으리라" (신 28:3). 우리가 율법을 지키면,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복을 받는다.2. 여호와란 이름이 3번이나 나와 있다. (비평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3마디에 원래에는 모두 엑센트가 달랐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여기에, 어떤 신비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신비를 안다. 신약성서가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이 있는 축복을 기대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3가지는 각각 여호와의 위(位)이다. 그들은 "세 주님이 아니라 한 주님" 이시다(고후 13:14).
3. 하나님의 은혜가 이 축복 속에 다 들어 있다. 이 축복은 모든 복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1) "여호와가 너를 복 주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blessing)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 칭송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복을 행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자가 참으로 복 있는 자이다.
(2)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리라." 이것은 해가 땅을 비추어 밝고 온화하게 해 주고 그 표면을 새롭게 함을 비유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그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또 그 사랑을 지니고 있음을 안다면 평안할 수밖에 없다.
(3) "여호와께서 얼굴을 네게 향하여 드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앞에 나온 귀절과 같은 뜻을 지닌다. 이것은 자녀에게 대한 아버지의 웃음을 비유한 말인 것 같다. 아니면 자기가 기뻐하는 친구들에게 대한 얼굴 표정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용납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이것은 "그 마음에 즐거움" 이 되리라(시 4:7, 8).
4. 축복이 가져온 은혜의 결과는 보호하심, 용서, 평강이다.
(1) 악에서부터의 보호(24절)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리라." 이스라엘을 지키는 이가 그분이니, 그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시 121:4). 믿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전능으로 지키심" 을 받는다.
(2) 죄의 용서(25절) 여호와는 네게 "은혜롭고 자비롭다."
(3) 평강(25절). 이것은 행복을 완성케 하는 모든 복을 포괄하고 있는 축복이다.
Ⅲ. 여기에 보면 하나님은 축복을 인정하시고 확고히 하시리라는 약속을 하셨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 이름을 두리라" (27절).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할 자유를 주시고,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축복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우도록 하는 축복을 주셨다. 이것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포괄한다. 즉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선택자와 총애자로 만드는 것은 최대의 축복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은 그들의 명예요 위안이요 안전이요 탄원 구실이 된다. "우리를 주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하옵소서.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그리고 네가 그들을 축복하리라" 는 말이 뒤에 추가되어 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제도에 동반하며 그 제도를 유효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평화는 참된 축복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이 회중에게 평강을 주옵소서" 라고 축복을 선포할 때에, 그 자리에 평강의 아들들과 축복의 상속자들이 있으면 그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게 된다(눅 10:5, 6).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된 모든 곳에는 그의 백성이"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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