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약속 (레위기 26:1-13)
우리는 위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보게 된다.
Ⅰ. 율법의 계율을 반복해 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반복되어 있는 계율은 율법 중에서도 지극히 중대한 문제의 내용이요, 특히 그 백성의 복종과 불복종이 이 계율에 의해서 시험되는 그런 것이다(1,2절). 그 계율은 십계명 중에서도 특별히 강조되는 제 2, 제 4계명의 요약이다. 또한 이 내용은 율법서의 다른 곳에서도 종종 반복되고 강조되는 부분이다. 주인이 자기의 종에게 여러 가지 일을 맡길 때에는 그 중에서도 중요한 일이나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반복해서 상기시켜 주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잊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많은 계율들 중에서도 특히 이 두 가지 주요 계명을 잊지 말고 복종하라고 모세를 통해서 당부하셨던 것이다.
1.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상(像)이나 그림도 만들지 말지니라" (1절). 다른 어떤 죄도 이 죄만큼 하나님을 분노케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사실이 특히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나중에 입증된 바이지만 이 죄악만큼 그들 자신의 운명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다. 하나님의 존재, 통일성, 그리고 우주적 권능 다음으로 우리가 꼭 믿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영(Spirit)이시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형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그의 형상을 만들거나 거기에 절하여 하나님을 형상 속에 감금시키는 일은 무엇보다도 그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것이요, "그의 명예를 부끄러움으로 바꾸는" 일이다(롬 1:23, 25).2. "너희는 안식일과 예배를 위한 성회를 지극히 거룩하게 지키라" (2절). 우상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보다 더 신앙을 타락시키는 것은 없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성소를 공경하는 것보다 신앙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러한 일을 통하여 신앙의 기능적 국면이 잘 간수될 수 있으므로, 그 신앙의 핵심이 또한 그것에 의하여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우상 숭배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두려워한 죄는, 안식일을 불경스럽게 하는 행위였다는 점이다.
Ⅱ. 하나님의 계명에 늘 복종하며 살아가라는 큰 격려의 말씀이 있다. 즉 만일 그들이 계명에 복종하는 생활을 하면, 진정 그들은 행복한 민족이 될 것이요. 저들이 갈망하는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력히 확신시켜 주고 있다.
세상의 정부는 법률 이행을 강조할 때에,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무서운 형벌이 주어진다고 두려움을 예로 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고 섬기는 자들에게 상급 주시는 자" 이시다(히 11:6).
그러므로 이제 이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을 살펴보자. 그 약속은 비록 현세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고 모든 민족의 공통 관심사인 것이기도 하지만 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도들에게 허락된 은혜로운 계약으로 상속받을 그 영적 축복의 한 모형인 것이다.
1. 땅의 소산이 풍성해지리라고 했다. 철따라 알맞게 비가 내리고, 하늘의 이슬이 그 땅을 적셔서(신 10:10, 11) "그 땅은 산물을 낼 것이다" (4절). 땅에 있는 모든 산물들은 하늘의 감응에 의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자비롭고 완전한 선물은 모두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약 1:17)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땅의 곡물과 포도의 수확이 풍성해짐으로써, 그들은 모두 완전 고용되리라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 저들이 곡물을 타작하고 포도를 거두어들이는 동안에 이미 파종이 시작되리라 했다(5절). 즉 포도 수확이 완료되기 전에 이미 또 다시 파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수확기가 오래 가는 것이 종종 일기 불순의 탓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는 수확량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이것은 복음의 시대에 퍼부어지는 충만한 은혜의 상징이며, 이 때야말로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잇는" 시기요(암 9:13). 수많은 영혼의 수확이 그리스도께로 거두어 들여지는 그런 시기이다. 추수한 것이 너무나 많아 "묵은" 곡식은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새 곡식을" 곡간에 쌓을 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은 부자처럼 "곡간을 헐어" 자기 창고에만 쌓아두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눅 12:18). 하나님은 다음 해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늘 풍성한 곡식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곡식을 (나눠주지 않고) 쌓아두는 자는, 그 백성에게서 저주를 받으리라" (잠 11:26). 말라기서의 약속(말 3:10) 즉 "내가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을 내리리라" 는 말씀은 이것을 의미한다(10절). 이 풍부한 축복에 대하여 존귀의 관을 씌워 주는 것은 그들이 풍요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 소산에서 영육의 만족을 얻으리라는 것이 암시되어 있는 점이다. 즉 너희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리라" (5절). 마찬가지로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만족할) 것이니라" 는 말씀이 있다(시 22:26).
2. 하나님의 보호 아래 평화를 주리라고 약속되었다. "너는 너희 땅에서 안전하게 거하리라(5절). 곧 어떤 불안이 닥치든지 진실로 안전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 안에서 편히 쉼을 얻고 아무도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니라" (6절 시 4:8 참조). 또한 어떤 짐승들도 그들을 해하지 못하리니 "그 땅에서 제거되든가" (6절) 또는 약속된 바대로 그 사나운 짐승들이 "너희와 화친하게 될 것이라" 는 약속이다(욥 5:23). 또 전쟁의 두려움이 그들을 겁낼 수 없다. "칼이 너희 땅을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고 했다. 이러한 거룩한 안전이 신실한 모든 자들에게도 약속되어 있다(시 91:1 이하).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반드시 안전히 거할 것이다(욥 9:18, 19).3. 집안에서 평안과 안정을 누리는 반면, 밖에 나가서는 전쟁에서 승리와 성공을 거두리라고 했다(7,8절).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의 정복을 알리는 군호처럼 그들을 따를 것이요, 숫자적으로 약하나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 했다. 즉 "너희 다섯이 백 사람을 쫓고" 쳐부수리라는 커다란 용기와 힘을 주셨으니, 마치 요나단이 행했던 바와 같다(삼상 14:12).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다" (삼상 14:6)는 하나님 자신의 원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4. 백성들의 수효가 늘어나리라는 약속이 있다. "내가 너희를 번성케 하고 광대케 하리라" (6절).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리라고 했던 바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그 약속이 결실을 보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당하지 않는 한, 그들의 수효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의 교회에서도 그 약속이 결실을 맺었다(요 15:16).
5. 모든 자비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약속되어 있다. "내가 너희를 권념하리라" (9절). 우리의 믿음의 눈이 하나님을 주시하면, 하나님의 은총의 눈이 우리에게로 향하리라."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으리라" 는 경고가 있는가 하면(히 10:38), 여기에는 그 이상의 큰 위로의 약속이 있다. 즉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않으리라" 는 말씀이 약속되어 있다. 비록 하나님과 그들을 격리시키려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만일 그들이 율법에 복종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싫어하지 않으실 것이다.
6. 하나님은 당신의 규례로 인하여 그들 중에 임재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라" (11절). 그들에게 최근 하나님의 장막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그들의 영광이요 명예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장막이 그들 중에 계곡 서 있게 되는 것은 그들의 선행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셨다. 만일 그들이 복종하면, 세워진 그 장막이 그들과 함께 정착할 것이지만 그들이 그렇지 못할 때는 장막도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의 마음에 고정시키는 방법은, 마치 일정한 곳에 박혀 있는 못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끝까지 고수하는 길뿐이다.자기의 정원을 거니는 사람처럼, 하나님은 기쁘과 만족으로 "너희 가운데를 행하리라. 사람이 자기 친구와 동행하듯이, 나도 너희와 친교를 나누리라" 는 말씀이 부가되어 있다(12절).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금촛대 사이를 다니고" 계신다고 말씀도 이를 두고 한 말씀일 것이다. (계 2:1)
7. 계약의 은총이 약속되어 있다. 즉 이 모든 축복의 근원이요, 기초이며, 즐거움이요, 보람이 되는 양속이다. "내가 너희와 세운 계약을 이행하리라" (9절). 계약의 조건 중에서 인간이 담당한 조건을 이행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모든 계명의 축복은 계약 관계 속에 요약되어 있다. 즉 "나는 너희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12절). 그들의 구원은 모두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구하여 낸 하나님이니라" (13절). 하나님은 값을 치르고 그들을 사들였으므로,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으며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리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의 저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들의 멍에를 꺾으시고, 그들을 곧은길로 인도하셨다" . 즉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평안하고 명예로운 길을 가게 하셨고, 적의 손에서 구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행해야 될 것이다.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그리스도의 거부를 당하게 되자 그들은 애굽에서 메던 멍에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고 다시 저희들의 등이 "굽어지게" 되었다고 했다(롬 11:10).
멸망할 자들에게 대한 경고 (레위기 26:14-39)
하나님께서는 복종하면 받을 수 있는 축복(복종하면 행복한 민족이 되어 생명과 자비를 받으리라 했다)을 그들 앞에 두셨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저주도 놓아 두셨다. 즉 그들이 불복종하여 죄를 짓게 될 때는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리는 죽음과 재앙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자기들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고로 하나님의 권능이 자기들을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고 있는 고로 하나님의 정의가 자기들을 멸망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조만간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암 3:2).
Ⅰ.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 그 죄가 어떤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 죄는 부지중에 또는 의지 박약으로 짓는 죄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희생 제사라는 제도를 마련해 주셨다. 또한 회개하여 용서받은 그런 죄도 아니다. 고의적으로 저지르고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그런 죄악이다. 그들에게 멸망을 초래할 두 가지 죄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일이다. '내가 율법으로 너희에게 일러 준 내 말에 정종치 아니하며 이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면 즉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나 뜻이 없으며 혹 잘못하여 범했을지라도 그 율법이 처방해 준 구제책을 활용하려 하지도 않는 경우" 라고 했다(14절). 그러므로 저들의 죄가 처음에는 무지하여서, 또는 부주의하거나 방심하는 데서 온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런 죄도 물론 충분히 나쁘다. 그러나 그러한 죄가 더욱 악한 죄를 유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15절).(1) "하나님의 규례를 경멸하게 되면", 율법과 그 율법을 주신 자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려, 하나님의 규례에 따르는 의무와 그 규례의 권위까지 멸시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규례를 경건하게 생각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멸망을 독촉하는 자들임을 명심하라.
(2) "그의 법도를 싫어하게" 된다. 그들의 영혼 자체가 그 법도를 싫어하게 된다는 말이다. 신앙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은 점차적으로 그 신앙을 아예 악한 것으로 비난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신앙을 외면한 자는 그 신 알을 반대하게 되고, 마침내는 신앙을 짓밟아 버리게 된다.
(3) "그의 계약을 배반하게" 된다. 계명을 못 지키는 것이 모두 계약의 파괴에 이르지는 않더라도-계약이 파괴되면, 우리는 모두 멸망된다-사람은 계명을 멸시하고 싫어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 다음 단계에 이르게 된다. 즉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까지도 부정하게 되고 만다. 계명을 배반하는 자는 결국 계약까지 파괴하게 된다. 그들이 배반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그 계약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즉 하나님은 계약을 세우시나, 인간은 그것을 파괴한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약이 수립되어 잘 지켜진다면 그 모든 영광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러나 그 계약이 파괴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절교가 선고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징계를 멸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개선시키려는 방도를 취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옹고집으로 자기들의 죄악을 계속 일삼지만 않는다면 그들이 설사 불복종했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멸망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채찍을 무시하여 계속 죄악을 범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했다고 하여 즉시 멸망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채찍은 그들을 회개시키려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이 3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1)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 (18,21,27절)이다. 즉 "만일 너희가 고통을 당하고서도 거기에서 복종을 배우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한 명령과 양심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듯이, 이제도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심판의 경종에 귀머거리가 되어 버린다면 너희는 참으로 패역한 자들이로다."
(2) "너희가 나를 거슬러 행할 경우(21,23,27절).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과 그의 진리와 율법과 계율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징계의 목적은 그들을 겸손케 하고 마음을 온유하게 하여, 회개시키려는데 있다. 그러나 그러는 대신에 그들의 마음이 더욱 굳어지면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 하게 된다(대하 28:22). 이것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마치 너희가 하는 일이 옳든 그르든,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든, 또 너희에게 유익이 되든 해가 되든 상관치 않는다는 듯이 방자하게 굴면서 고의적으로 내게 대하여 모험을 감행하는 경우와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했다).
(3)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 이다(23절). 하나님께서 형벌을 주시는 목적은 인간에게 죄에 대한 깊은 뉘우침을 주어 그들이 구원을 부르짖고 회개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징계의 일차적인 의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도 돌아서지 않는 자들은, 그 심판으로 결국 멸망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종종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은 자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수많은 변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하여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들은 죄악의 길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질병과 고통을 당하나 회개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지고 빈궁에 처하게 되더라도 회개치 않는다. 계속하여 고통을 당하여도 그들은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는다" (암 4:6 이하).
Ⅱ. 그러한 죄가 저들에게 가져올 불행에 대한 서술을 관찰해 보자. 거기에는 주요한 두 가지가 있다.
1. 하나님 자신이 그들과 대적하여 싸우시겠다고 하셨다. 이 사실은 그들의 모든 비극의 원인이요 근원이다.(1) "내가 너희를 칠 것이니라" (17절). 곧 "내가 직접 너희를 멸망시킬 것이니라" 하는 것이다. 그 교만한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실 것이며 그의 권위에 무례히 구는 자들을 쳐부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리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내가 너희를 지극히 불쾌히 여기리라."
(2)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리라" (24,28절).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하여서, 인간들이 스스로 잘되어 간다고 믿고 있던 인간의 목적을 좌절시키시며 그들의 의도를 방해하시고 그들의 방책을 훼방하시며, 그들의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그들의 기대를 꺾으신다면 하나님께서 바로 인간들과 대항하여 싸우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싸워서 유익함을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하나님은 당신과 다투시는 자들의 마음과 목을 꺾으시어, 그들을 회개시키시든지 멸망으로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은 "내가 항상 너희와 모험을 할 것이니라" 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모든 계약의 사랑과 친절은 잊혀지고, 단지 일반 섭리 안에 둘 것이니라" 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저버린 자는 하나님의 외면을 당할 것임을 명심하라.
(3) 저들이 고집을 계속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가중되리라 했다. 그들을 겸손케 하고 회개시키려는 하나님의 분노의 첫 계획이 좌절되면, 그때에는 "너희를 7배나 더 징치할 것이며" (18절). "내가 너희에게 7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니라" (21절). 그리고 "내가 너희를 7배나 더 칠 것이며" (24절). "내가 너희 죄를 인하여 7배나 더 징책하리라" (28절)고 말씀하셨다. 작은 심판으로 개심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욱 큰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모든 것을 이기시느니라." 만일 참된 회개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마침내 처형될 때까지 심판은 계속 될 것이다. 완고하고 교만한 자들은 한 폭풍이 끝나면 더 큰 폭풍이 오리라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미 이전에 어떤 심판을 받았든 간에 회개치 않는다면 "아직 더 두려운 심판이 남아있다" 는 말을 계속 들을 것이며 마침내 지옥에 이를 때까지 그 심판은 계속 될 것이다. 지금까지 "참아 오신 창조주의 참으심이 헛되게 된다면" (렘 6:28). "용광로의 불은 7배나 더 뜨거워질" 것이고, 계속해서 "7배씩 더 뜨거워질 것이다" (단 3:19). 우리 중에 누가 이 격렬 불과 겨룰 수 있으리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최고로 괴로운 심판으로 시작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참으심을 보여주시며,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이 계속 회개치 않으면 그들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임을 입증해 보이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조롱 받거나 멸시 당하지 않는 분이심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4) 그들의 불행은 그 경고대로 이루어진다. 즉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니라" (30절). 하나님의 증오를 받는 자는 참으로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된다. 왜냐하면 그의 분노는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뒤로 물러나면, 하나님의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히 10:38)고 했으며 또한 하나님은 "그들을 그의 입에서 토하여 낼 것이라" (계 3:16)고 했다.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라는 말씀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실이다(렘 14:18).
2. 모든 피조물이 그들을 대적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온갖 쓰라린 심판이 그들에게 다 임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통에는 화살이 여러 가지로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이 경고는 매우 특별한 것이다. 이 경고가 실제로 예언처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역을 예견하는 분은 그들이 그와 같은 반역을 감행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신 31:16, 19 참조). 여기에 길게 부연되어 있는 이 경고문은, 죄인들에게는 재앙이 임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고찰해 보자.
(1) 잠정적인 심판이 경고되어 있다.
[1] 몸의 질병이다. 그 질병이 유행하리라고 했다. 노역 간부가 일꾼들을 학대하듯이, "내가 너희에게 공포와 폐병과 열병을 내리리라" (16절). 여기서 "공포" 라고 해석한 단어를,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질병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패트릭 주교가 말하고 있는 대로) 간질병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공포이다. 폐병은 가장 전염성이 강한 질병중에 하나요, 열병이란 가장 괴로운 병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질병들은 보는 사람까지 괴롭게 하며, 그런 병에 걸린 환자의 방문객이나 친구, 친척들에게도 슬픔을 안겨준다. 모든 질병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일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질병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일을 수행한다. 때로는 하나님을 진노케 한 자들에게 대한 징벌의 구실을 담당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적군의 칼이 두려워 그들의 성읍에 집결해 있을 때에는 그들에게 염병이 임하리라고 경고되어 있다(25절). 사람이 많이 집결되면 될수록 염병이 주는 타격은 그만큼 커진다. 그들의 군사들이 일정한 곳을 방위하려고 모이면, 그것이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2] 여러 가지 이유로 기근과 식량난을 당할 것이다.
첫째, 약탈로 인하여,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라" (16절). 그리고 미디안 군사가 그랬듯이 이 모든 곡식을 빼앗아 갈 것이다(삿 6:5, 6).
둘째, 불순한 기후 특히 비가 부족함으로 인하여, "내가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리라" (19절). 즉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게 할 것이며 다만 뜨거운 열기만 내뿜게 하여, 온 땅이 건조해질 것은 물론이요 "놋쇠와 같이" 굳어버릴 것이며 경작하고 씨 뿌리는 그들의 수고가 "헛되게 하리라" (20절)는 것이다. 땅의 소산은 인간의 부지런한 노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에 더욱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자기들의 생명을 부지하는 "양식" (26절)이 끊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절실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땅의 기근이 극심해질 것이며 그리하여 옛날에는 각 가정이 자기들의 화덕에 떡을 구어 먹었으나 이제는 열 가정이 겨우 한 화덕을 이용하게 될 만큼 극심해진다. 그들과 그들의 자녀와 종들은 식량이 모자라 "먹어도 배부르지 않게 될 것이다." 양식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먹고 싶어하는 저들의 욕망은 더 커진다.
셋째로, 저들의 도성이 적군에게 포위되어 그들의 형편은 극에 달하게 되며, 마침내는 "자기들의 아들, 딸의 고기를 먹게 된다" (29절).
[3] 전쟁이 일어나고 패배를 맛보게 된다.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라" (17절). "너희들이 뽑은 장병이 전장에서 죽을 것이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니라. 너희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스리는 것을 싫어하였으니 그것은 실로 마땅하니라" (대하 12:8).
적국의 통치를 받으며 그들에게 주권을 양도해 주거나 자기들의 통치자가 자기들의 대적이 되어 은밀한 중에 자기 나라를 패망시키려고 하는 그런 백성은 실로 불행한 백성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을 것이다" (19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열방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 권세에 대해서 감사하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 사업에 이바지하는 대신에 그 권세를 자랑하거나 그 권세의 모든 제도를 악용하면 하나님이 그 권세를 꺾어버리실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로 칼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계약을 배신한 원수를 갚을 것이다" (25절).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연히 보복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교만한 인간들의 반역으로 인하여 조롱당할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해서 이랬다저랬다하는 자들에게 더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수하실 것이다.
[4] 사나운 짐승, 곧 사자나 곰이나 여우들이 그들을 덮칠 것이며 저들의 길에 있는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22절). 그 한 예로써 두 마리의 곰이 사십 두 명의 어린아이를 물어 죽인 사실을 읽을 수 있다(왕하 2:24). 이것은 에스겔서에 예고되어 있는 네 가지의 괴로운 심판 중의 하나이다(겔 14:21). 그 예고는 본 장에 나타난 경고와 관계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도록 만들어졌다. 어떤 피조물은 비록 인간보다 힘이 강하지만, 인간이 먼저 하나님의 지배를 벗어나서 자기의 주권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모든 피조물은 결코 인간을 해치지 못할 것이며 모두가 인간을 위해 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이 그의 조물주를 배반하자 모든 피조물은 그 인간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만군의 주 여호와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그들 피조물이 하나님의 진노의 수행자와 하나님의 정의의 일꾼이 될 것이다.
[5] 포로됨과 민족 분산이 있으리라 했다. "내가 너희를 열방, 곧 대적의 땅에 흩을 것이라" (33,34절). 어떤 민족도 이스라엘 민족처럼 그렇게 결속되고 결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 백성을 분산시킬 것이며 그리하여 그 백성은 이방 땅에서 구별하셨으나 이제는 그들이 악해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저들과 혼합된 것이다. 그들이 분산되더라도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그들을 찾아내어 뒤쫓을 한 칼을 준비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멸한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6] 그들의 땅이 완전히 황폐해질 것이다. 그 땅의 황폐가 너무나 현저하여 그들의 대적들도 그 사실을 보고 놀랄 것이다(32절).
첫째, 그들의 도성이 황폐해지고 버림받고 주민이 없어지며 모든 건물도 파괴된다. 전쟁의 황폐를 모면한 자들도 결국은 스스로 전락해 버리고 말게 된다.
둘째로, 저들이 일년에 세 번씩 모이는 저들의 성막은 물론이요, 저들의 성소도 완전히 황폐해질 것이다. 즉 매 안식일 때마다 예배를 위하여 모이는 회당까지도 파괴될 것이다.
셋째로, 그 땅 자체가 황폐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경작할 수 없도록 된다. 그 때는 그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 백성이 하나님이 명하신 안식년을 경건히 준행하지 않았으므로 그 때에 가서 비로소 그 땅이 안식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 땅을 쉬게 하라고 명한 때에도 그 땅을 경작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어 버림은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 땅 자체가 그와 같은 죄인들의 짐을 벗게 되면 기뻐하고 편히 쉬리라는 말씀은 이 사실을 의미해 주는 것이다. 땅은 죄인들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고 있다(롬 8:20 이하). 바벨론에서의 저들의 포로 생활은 70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 땅은 그토록 오랫동안 "자기의 안식을 누렸다" 는 말씀(대하 36:21)은 이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7] 우상들이 파괴된다. 이것은 심판이라기보다 오히려 자비를 베푸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의 한 필연적 결과이다. 이 사실이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은, 저들에게 이 모든 비극을 가져온 것이 어떤 죄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내가 너희의 산당을 파괴하리라" (30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죄를 떠나지 아니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그 죄에서 떠나게 된다. 저들이 자기들의 산당을 파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파괴하려 하였던 것이다. 저들이 우상에 대하여 보여준 부당한 경신(輕信)을 책망하기 위하여, "너희의 시체가 파손된 우상 위에 던져질 것이다" 는 사실이 예고되어 있다. 정욕을 따르는 자들은 불원간 보응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우상은 자기 자신들은 물론이요, 자기들을 예배하는 자들을 조금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우상을 만든 자들은 우상과 함께 멸망해 버릴 것이며 둘 다 맹인처럼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2) 영적 심판이 또한 여기에 경고되어 있다. 그 심판은 사람의 마음에 미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지으신 분은, 그가 원하시기만 하면 그 마음에 그의 칼을 꽂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고의 내용을 살펴보자.
[1] 저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내가 너희의 향기로운 향을 흠향치 아니하리라" (31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저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떨쳐 버리지는 않으면서 분향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헛된 것이다. 저들의 분향조차도 하나님께는 가증스럽게 여겨질 것이다(사 1:13).
[2] 저들은 전쟁에서도 완전히 사기를 잃을 것이다. 온전히 좌절되어 낙담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저들을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36절) 무서워 도망치게 된다(17절). 죄책을 지닌 양심은 그 자체가 스스로 끊임없는 공포심을 자아내어, "나뭇잎 소리에도 놀라 도망치게 된다" (36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온갖 사물이 다 저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만다(잠 28:1) 저들의 두려움이 저들을 쫓으므로 "서로 천답하여" 넘어지게 된다(37,38절). 죄를 더하는 자들은 두려움도 더하게 되리라.
[3] 저들은 감히 자기들이 죄가 용서되리라는 희망조차 못가지게 된다. "저들이 죄로 인하여 쇠잔해지리니" (39절). "어찌 저들이 살기를 바라리요?" (겔 33:19) 죄를 짓는 데에 용감한 자들에게는 죄의 용서를 바랄 수 없는 절망에 처하도록 버려두시는 것이 하나님으로서는 지극히 합당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가 죄속에서 나서 죄에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아 쇠잔되지 아니함은, 무한한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음이다.
경고와 약속 (레위기 26:40-46)
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저희들에게 임하게 되리라는 은혜스러운 약속으로 본 장은 결론을 내린다. (저들이 자기 자신들의 죄과로 인하지 아니하는 한) 저들은 "죄로 인하여 쇠잔" 되지는 아니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고집스럽게도 외면하면서 자기들이 극한 상황에 놓이기까지 결코 그 심판에 복종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런 자들에게도 자비를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를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너희 희망의 죄수들아! 요새로 돌아오라" (개역:너희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오라)(슥 9:12). 사태가 아무리 악화되었을지라도 역시 개선책은 있다. "여전히 이스라엘에게는 희망이 있도다!"
이제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Ⅰ. 다시금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회개이다. 그 회개가 어떤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가를 보자(40,41절). 그 실례가 3가지로 서술되어 있다.
1. 고백이다. 이 고백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자기들께는 부끄럼을 느끼게 된다. 자기들의 죄와 자기 조상들의 죄과까지 뉘우치는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들은 당연히 그 죄과를 슬퍼해야 한다. 그 죄과의 아픔을 저들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저들의 죄과가 갖다 주는 진노의 상속 대상에서는 제외되게 되는 것이다.저들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할 때, 자기들의 죄가 "하나님을 대항하는" 가장 못된 죄였다는 것을 아뢰어야 한다. 이것은 죄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죄이다. 이런 죄를 고백할 때는 특별히 비통해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도 고백해야 한다. 저들은 자기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던, 그 2차적인 요인들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항하셨다" 는 사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따라서 그들을 다루셨다" 는 사실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과에 고백의 실례는 다니엘의 고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그 민족의 해방의 날 새벽이 되기 바로 직전에 그런 고백을 했었다(단, 스, 느의 각 9장 참조).
2. 죄에 대한 깊은 가책과 경건한 애통이다. "할례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지면……" 이라고 하셨다(41절). 뉘우칠 줄 모르고 신앙이 없으며 겸손치 못한 마음을 "할례받지 못한" 마음이라고 불렀다. 즉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는 낯선 자들인 이방인들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참된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다(롬 2:19). 마음의 할례가 없는 육체만의 할례는 아무런 뜻도 없는 것이다(렘 9:26).그러나 이제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는 마당에서는, 저들의 할례받지 못한 마음이 낮아져야(겸손해져야)한다. 즉 그 마음이 죄로 인하여 찢겨지고 뉘우침으로 가득차져야 한다. 그러므로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시는(낮아진:字意) 섭리 아래에 있는 겸손한 마음은 구원과 참된 위로를 받을 준비가 다 된 것임을 명심하자.
3.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처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에 순복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저들의 죄과의 벌을 순히 받으면……" 이라고 말씀하셨다(41절 그리고 또 43절). 즉 그들이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죄과를 깨닫는다면 특히 인내하는 마음으로 그 징벌을 감수하며, 하나님이 진노하신 뜻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거기에 응답하며 그것을 자비로서 받아들이며, 그것을 하나의 약이라고 생각하고 그 징벌을 선용한다면 그러면 저들은 진실로 회개한 자들이라는 것이다.Ⅱ. 저들이 회개하고 나면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비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자.
1. 저들이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였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니라" (43,44절). 하나님은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같이 말씀하신다. 자애로운 아버지는 자기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아들에 대해서도 부자(父子)의 관계를 의절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법이다. "내가 어찌 그리하리요?" (호 11:8, 9)하나님께서 친히 이방 세계에다 교회의 기초를 건립하시기까지는 실로 유대 교회는 완전히 버림을 당하거나 괴멸당하지는 아니했던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시리라 하셨다. 이미 세웠던 약속에 근거하여, "내가 그 땅을 기억하여" 은혜를 베풀 것이요, "내가 내 계약을 기억할(권념할) 것이니라" (42절). 또 다시 같은 말씀이 반복되어 있다(45절).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이행하실 때에, "계약을 기억하리라" 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때문이다. 우리 속에 어떤 것이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친히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여 약속을 이행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제목이다. 곧 "언약을 돌아보소서" (시 74:20)라는 한 마디다. 하나님은 계약으로 세우신 조문을 기억할 것이다. 그 계약에는 인간의 회개를 위한 여지도 남겨 두셨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되었던 계약의 중보자께서 때가 차매 오셨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본문에 보면 계약(언약)이란 말씀이 세 번씩이나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계약을 영원토록 마음에 두시사 우리에게도 기억해 주실 것임을 뜻한다.
또 본문에 보면 그 계약을 맺은 상대자 인간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per modum ascensus-즉 특별한 줄[行]에 다가(강조하기 위해서) 언급하고 있다. 곧 야곱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야곱은 신앙의 조상(아브라함)과 맺어졌던 바 가장 오래된 그 약속에게로 모든 계약 상대자들을 끊임없이 이끌어 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가서에도 보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신실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비롭다" 고 하셨다(미 7:20). 하나님은 계약 상대자 인간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적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계약의 상대자라는 그 사실로 인하여서 기억할 것이요, 그들의 조상들의 계약을 기억할 것이며 그것 때문에 가장 불합당한 그 후손들에게도 자비를 보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을 보고, "택하심으로 말하면 저희들의 조상들로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들" 이라고 일컬었다(롬 11:28).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악의 길을 걷던 자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저들과 대적하여 저들을 심판하셨지만 다시금 구원과 은혜의 계약을 기억하사, 특별한 자비의 길을 저들에게 다시 보이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끝으로, "여호와께서 그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우신 율법" 이라는 말씀이 있다(46절). 하나님과 그의 교회와의 교제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지속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주권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율법을 준행함으로써, 저들의 거룩한 경외심뿐만 아니라 사랑도 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율법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하나의 법으로서보다는 계약으로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인간과 굳은 약속을 맺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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