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레위기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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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사장들이 부정(不淨)한 때 (레위기 22:1-9)

날 때부터 흠이 있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제사직에서는 제외되었더라도, 성물은 먹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유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자들이 "게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벌레 먹은 제물을 골라내어서 그런 제물이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지지 않도록 하는 일을 맡았고, 또 다른 일로는 문둥병을 판단하는 일에도 기용되었다" 고 한다.

Ⅰ. 그러나 자기들의 잘못으로 병에 걸려 성례에 결함을 지니게 된 자는, 그 부정(不淨)이 계속되는 동안은 성물을 먹을 수 없다.

1. 문둥병이나 유출병 같은 지속적인 불결이 있을 때에 바로 그러하다(4). 그런 병들은 일반 사람들도 성소에 참예하지 못하게 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그런 질병에 걸리면 그것은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되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다.

2. 시체를 건드리거나 그 밖의 부정한 것을 만지면 일시적인 부정에 걸리게 된다. 그런 부정은 물로 씻으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었다(6절). 그러나 그러한 부정에 걸린 자는 하나님의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라" 고 했다. 그러한 흠도 하나님께서는 몹시 불쾌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고도 하나님의 성물을 먹는 자는 "나(여호와)의 면전에서 끊어지리라" 고 말씀하셨다(3절). 그러므로 우리가 깨끗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것은 우리를 깨끗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마는 행위이다.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것처럼, 그럴 경우에는 오히려 "주님의 존전으로부터" (살후 1:9)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더럽힌 자는 그들이 경하게 여긴 그 말씀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된다. 그 말씀이 그들을 징벌할 것이다. 이러므로 그들의 몸이 다시 깨끗게 되기 전에 성물을 먹으면 생명에 위험이 따른다는 경고가 다시금 반복되어 있는 것이다. 곧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죄를 지고 죽게 될까" 한다고 했다(9절).

다음 사실을 명심해 두자.



(1) 더러운 손으로 성물을 만져 성물을 더럽히는 것은 죽음을 당하는 범죄이다. 성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 성물이 주는 속죄의 혜택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깨끗지 못하면서 성물을 먹는 것은 오히려 자기의 죄를 중하게 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죄를 짓는" 것이 된다.

(2) 만일 무한한 자비가 죄를 막아 주지 않는다면 죄를 지은 죄인은 멸망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게" 될 것이다.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부정하거나 무례히 행하면 반드시 멸망되고 만다.

Ⅱ. 이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1. 제사장들은 주의를 기울여 자기들의 순수성을 지키며 혹시 자기들을 더럽히는 일이 있지 않나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다. 성물은 저들의 생계 터전이었다. 만일 그들이 성물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도 부정해짐으로써 우리의 위로와 명예를 잃게 되면 될수록 더욱 우리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2. 이것은, 제사장들까지도 성물을 성별하도록 조심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이 성물을 더욱 경외하도록 강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당신께 시중드는 자들을 이토록 엄격히 훈련시키시는 그런 하나님은 자신도 무한한 순수성을 지니고 있음이 명백하다.

3. 또한 우리에게 도덕적 타락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우리는 도덕적 타락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관습적으로 악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부정해지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잃고 만다. 그러므로 "발을 깨끗이 씻어야 할" 자는 (요 13:10) "손도 씻어야 하며", 또한 "제단에 두루 다녀야 한다" (시 26:6).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2절) 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될 필요를 알게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체하다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는 대신 그를 진노케 한다면 우리는 곧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답시고 부정한 짓을 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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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을 먹을 수 없는 자들 (레위기 22:10-16)

성물은 제사장과 그 가족들만 먹게 되어 있었다.

Ⅰ. 이방인은 이 성물을 먹지 못하며 제사장이나 그에게 속한 사람 이외에는 그 누구도 먹을 수 없었다(10절). 제사장은 이방인에게 이 성물을 먹도록 허용함으로써 성물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16절). 즉 제사장들이 자기들의 권리 이상의 일에 간섭하여 스스로 죄 짓는 일이 없도록 율법으로 금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능히 일반인에게도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죄짓는 일을 피해야 할뿐만 아니라, 남들이 죄를 짓는 일도 막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또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이 죄를 "짓는 것" 을 막을 뿐 아니라, 가능한 한 그들이 죄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데까지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제사장들이 속죄 제물을 먹는 것은 "백성의 죄를 대신 지는 것이요, 그들을 위하여 속죄를 하는 것이다" (10:17). 그러므로 이방인에게는 특히 성물 먹는 것을 금해야 할 것이며 그리하여 "죄를 짓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성물을 먹도록 지정된 자 외에는 누구든 그것을 먹으면 그 일로 인하여 큰 범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일은 그리스도에게만 약속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중보자들을 두면 그것은 "죄를 짓게" 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명예를 모독적으로 찬탈하고 그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의를 믿어 감히 하나님 앞에 불손히 나아가게 하지 말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을 믿고 나아가라고 경고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스스로) 죄를 짓지 않게" 경고해 주는 일이 된다. 죄라는 짐은 너무나 무거워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Ⅱ. 또 율법에 관한 해설이었다. 즉 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자로서 영광을 받아야 할 자와 그럴 수 없는 자가 각각 누구인가를 밝혀 주고 있다.

1. 제사장의 집에 머무는 기류자나 일꾼들은 영원히 그 집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또 그 가족 중에 머무르나 가족 자체가 아니므로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10절). 그러나 제사장의 집에서 태어났거나 돈을 주고 사온 종들은, 그들이 종의 신분일지라도 상속의 권한이 있으므로,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11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으로 "영원히 안식처" 를 삼고 또 "그 일생 동안 그 안에서 살기로" (시 23:6) 결심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집의 평안을 누릴 자격이 있다. 오직 잠시 동안만 믿고 당분간만 봉사하는 사람은 기류자나 고용인이므로, "그 일에는 관계도 없고 분깃이 없다(행 8:21)" 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제사장 가족의 자녀들에 관하여서는, 아들들은 논쟁할 필요도 없다. 아들들은 실제로 제사장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들에게는 제한이 있다. 만일 아버지의 집에 계속 머물면 거룩한 음식을 먹을 것이나, 제사장이 아닌 자와 결혼하면 그들의 권리를 잃게 된다(12절). 그들은 그 결혼을 함으로써 제사장의 가계에서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제사장의 딸들이 과부가 되었어도 그 자신이 따로 가정을 꾸밀 자녀가 없으면 그들은 더 이상 아내가 아니요, 어머니도 아니므로 제사장의 집에 돌아와서 제사장의 딸로서의 대우를 받으며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3. 성물을 먹을 권한이 없으면서 무의식중에 먹은 자들은 그 먹은 것에 대하여 배상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14절). 만일 그가 오만불손하여 신성을 모독하면서 그런 짓을 행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멸망할 것이며 관원들에 의해서 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연약하여 부지중에 이런 일을 했다면 그는 속건제를 드린 후에 그가 먹은 음식에 1/5을 대하여 배상을 해야 한다(5:15, 16).

Ⅲ. 그러나 이 율법은, 마치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성전의 진설병을 먹은 것처럼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벌을 면해 주기도 했다(삼상 21:6). 그리고 우리 주님도 이것을 정당히 보셨고, 그 이유를 설명하신 적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그와 비슷한 경우를 당할 때에, 두고두고 되새겨 볼 규칙을 남겨 준 것이다. "즉 하나님은 희생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신다" 는 것이다(마 12:3, 4, 7). 의식(儀式)은 마땅히 도덕에게 우선권을 양보해야 한다.

Ⅳ.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고전 4:1)인 복음의 사역자들에게는, 모든 자들에게 아무 구별 없이 성물을 먹도록 허락지 말 것이며 속된 것과 귀중한 것을 구별하라는 교훈을 들려주는 율법이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타락한 자들은 주님의 제사장의 가문에서 떨어져 나간 이방인들이요 나그네들이다. 따라서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그런 자들에게 주는 것은 합당치 않다. 거룩한 것은 거룩한 자들을 위한 것이요, 최소한 신앙상으로라도 거룩해진 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마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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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제물 (레위기 22:17-33)

본문에는 제사에 관한 4가지 율법이 있다.

Ⅰ. 무엇이든지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흠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은 여러 종류의 제물에 관한 세부적 법전 가운데서 아주 자주 언급되는 사항이다.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짐승의 흠에 관한 구체적 사항이 있다. 만일 그 짐승이 눈이 멀었거나 다리를 절거나 종기가 나 있거나 피부병이 있든지(22절), 또 상처가 났든지 깨어지고 부서졌다든지, 베인 칼자국이 있다든지(24절), 또 황소나 수양일 경우 거세되었으면 (칼로 베인 자국이란 유대학자들에 의하면 바로 이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것은 제물로 바쳐질 수 없다.

또한 자원하여 바치는 낙원 제물과 서약을 하고 나서 바치는 서원제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흠이 없는 짐승을 바쳤더라도, 만일 그 짐승이 본래의 모양에 비해 어디가 기형이면(유대학자들에 의하면 귀나 다리나 눈 따위의 양쪽의 크기가 서로 다를 때라고 한다) 낙헌 제물로는 가하거니와 서원 제물로는 바칠 수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배에 대하여 정해진 약속을 정확히 지킬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엄숙히 서원하고 나서, 나중에 직접 드릴 때에는 품질이 약속보다 못한 것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 서약하기 전에는 우리의 권한에 있었던 것이지만 서약한 뒤에는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니다(행 5:4).

그러므로 흠이 있는 짐승을 제물로 바쳐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거듭거듭 강조되어 있다(20,21절). 이 율법에 의하여 희생제물로 바치는 짐승을 엄격히 가려내어서 드리면 그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이다. 이방인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25절), 흠이 있는 것은 받지 않으신다. 즉 "이방인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도 흠이 있는 것은 받지 않으신다. 이와 같이 이방인들도 "먼 나라에서부터" (왕상 8:41, 42) 하나님의 전을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이 기대되었었다. 아마 하나님은 다리오 왕의 제사를 받으셨을 것이다(스 6:9, 10; 사 56:6, 7).

이교도의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바치는 제물에 대하여 이처럼 엄격하지 않았고 그들의 부끄러운 신을 위해서 적당히 희생 제물을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와 같이 섬길 수는 없다는 것을 이방인에게도 알려야 한다.

1. 이 율법은 성소와 그 곳에서 예배되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위해서 필요하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쓰여지는 모든 것은 가장 우수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또 모든 존재 중에서 최상의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최상의 분에게는 최상의 것을 바쳐야 한다. 이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을 얼마나 노엽게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말 1:8, 13, 14).

2. 이 율법은, 합당한 모든 제사가 가장 훌륭한 제사를 드린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합당한 모형이 되게 해 준다. 모든 희생제사는 그리스도의 제사에 힘입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율법을 염두에 두어서, 그리스도를 "흠 없고 깨끗한 어린 양" 이라고 불렀다(벧전 1:19). 제사장이나 제물이 모두 이러하니, 우리도 흠없고 순결하게 변화를 입는다. 빌라도가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흠도 찾지 못하였노라" 고 말했을 때 그는 실로 그리스도께서 흠없는 제물이시라는 것을 증거한 셈이다(요 18:38). 유대인들에 의하면 흠이 있는가 없는가를 구별해 내는 것은 현자(賢者)나 대제사장이나 기타 고급 인사가 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실 때에는 안나스가 그런 직책에 있었다. 그리스도를 처음에 안나스에게로 데려온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안나스에 의해서 예수는 가야바에게 보내지고 마침내는 희생제물이 되셨으니, 그것은 이 율법의 형식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요 13:13, 24).

3. 우리가 영적인 제사를 드림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다. 우리의 예배가 무성의하고 냉담하며 쓸모 없는 것이고 산만한 것이라면, 우리는 "눈멀고 절름발이이며 병든 것을 드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속이려는 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눈을 가렸다고 생각하나 실상은 자기의 영혼의 저주를 부르는 것이요, 그럼으로써 자신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Ⅱ. 모든 짐승은 난 지 8일이 지나기 전에는 제물이 될 수 없다(26,27절). 전에도 언급되었지만 하나님께 헌납되는 짐승은 난 지 8일이 지나야 바쳐질 수 있다(출 22:30). 너무 어린것은 사람의 식탁에서도 별로 좋지 않듯이, 하나님의 제단에도 좋지 않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해 주므로, 안식일을 (적어도 한 번은) 지낸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할례의 율법과도 일치한다. 어린이들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는다. 헤롯은 그리스도를 어린 시절 때에 죽이려 했으나 그는 그의 유년기에 우리를 위한 제물이 되지 않고 그의 인생의 황금기에 우리의 희생 제물이 되신 것이다.

Ⅲ. 희생을 위해서이건 일반적인 사용을 위해서이건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죽이는 것은 금해졌다(28절). 새들에게도 이 율법이 적용된다(신 22:6). 이것은 그 행위 자체가 악한 것이라서 보다는 그 일이 야만적이고 동물들에게 잔혹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폭군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눈알을 뽑았다. 두 세대를 동시에 죽이는 것은 마치 계획적으로 그 종족을 멸망시키려는 것과 같이 배리적(背理的)인 일이다.

Ⅳ. 감사 제물의 고기는 제사 당일에 먹어야 한다(29,30절). 이것은 전에 언급한 내용의 반복이다(7:15; 19:6, 7). 본 장은, 이미 본바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는 일반적인 명령으로 결론을 짓는다(31,32절).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한 자들이라도, 만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다만 그의 이름을 더럽힐 뿐이다.

또한 일반적인 이유 몇 가지가 추가되어 있다. 즉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 나는 여호와니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때의 이름-" 나는 너희를 깨끗게 하느니라", 그들에게 은총을 보이시려는 하나님의 뜻-"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하는 등이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영광되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서 "거룩하게 됨을 받음" 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시려는 결의-" 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 중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리라." 를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을 수 없다. 죄인의 회개나 멸망을 통해서 하나님은 불원간에 하나님의 명예와 권리를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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