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레위기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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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제사 금지령 (레위기 17:1-9)

이 율례는 모든 이스라엘인은 저들의 제물을 하나님의 제단으로 가져올 것이며 거기서 드리라고 명령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Ⅰ. 이 율례가 있기 전에는 어떠했는가?

1. 모든 백성 누구나가,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용되었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장막을 치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었고, 모든 집안의 가장들은 그 집안의 제사장이었었다. 욥도 그러했다(욥 1:5).

2. 이러한 자유는 우상 숭배의 한 계기가 되어 왔었다. 각자가 자기의 제사장이고, 각자가 자기의 제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자 점차로 그들의 생각은 허황해져 자기들 마음대로 신(神)을 만들어 버리고 "악마(한글 개역과는 다름)에게 제사했던" 것이다(7절). 악마라는 말의 어원은 거치른 혹은 수염소(한글개역)라는 의미이다. 아마 악마의 영들은 종종 그러한 수염소의 모양으로 묘사되었고, 거기에 그들은 제사를 드렸고 그들의 제사는 거기에 열납되어졌었기 때문이다. 악마는 하나님께 반기를 든 반역자가 된 이래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어 하나님께 속해 있는 거룩한 영광을 가로채려고 해 왔다. 그는 뻔뻔스럽게도 우리의 거룩하신 구주에게 "내게 절하여 경배해보라" 는 말을 속삭였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에서 마귀를 섬기는 법을 직접 배웠다.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영광스런 현현을 보이시고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줄곧 마귀 숭배를 계속한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이 악마들에게 "음란히 섬겼다" 는 말씀이 주어진 것이다. 음행이 결혼 계약에 위배가 되듯이, 그것은 하나님과 맺은 저들의 계약에 대한 위배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상 숭배에 깊이 중독되어 있으며 우상숭배에 잘 길들어져 있으며 마치 자신들을 음란함에 내어 주며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엡 4:19) 자들처럼 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 이시라고 칭하셨던 것이다.

Ⅱ. 이 율법은 어떻게 정해졌는가?

1.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이런 금령을 주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먹을 것을 위해서조차도 "회막 문" 외에서는 소, 양, 송아지, 어린 양, 염소 따위의 짐승을 죽일 수 없으며 이 율법에 따라서 회막문에서만 제물을 잡고 피와 기름은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며 그 고기는 화목 제물과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온 자에게 식용으로 되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 율법은 이러한 견해에 맞는 것 같다(3, 4절), 본문에서는 소, 양, 염소 따위를 죽이는 일에 관한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식이 풍부한 쿠드워드(Cudworth) 박사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들의 회막이 그들의 진 한가운데 있어서 그들과 매우 가까이 있었을 동안에는, 하나님께 먼저 드리지 않고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자 이 율법은 바뀌었고(신 12:21), 집에서도 노루나 사슴뿐만 아니라, 소나 양, 염소 따위의 가축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 년에 3번만 하나님의 회막에 나아가 하나님을 뵈옵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면 된다고 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는 아마 화목제물의 고기 외에는 별로 고기를 먹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저들이 소유하고 있던 가축을 보존하여 번성케 하기 위해서 금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나에 실증이 나서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이었었고, 그 때 모세는 그들을 다 먹이려면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양떼나 소떼" 를 다 잡아 먹여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민 11:4, 22). 그러나 이런 일시적인 율법이 "영원한 규례" (7절)라고 밝히 말해졌다고는 추측할 수 없다.

2. 그러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의 제단 외에서는 희생 제물만은 잡지 말라는 금령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은 이제 전과 같이 "들에서" (5절)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되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제사장을 통해서 여호와의 제단 위에서만 드려져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그들의 제사는 제사장과 제단을 거쳐서만 된다고 한정한 이 엄숙한 의식에 대하여, 거기에는 훌륭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나중에 증언되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인들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개종자들이나 할례 받은 외국인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들도 역시 자기들이 옛날에 지켜오던 예배 방식을 고수하려는 위험에 처하여 있었던 사람들이다. 누구든 이 율법을 어기고, 회막이 아닌 곳에서 제사를 드리면



(1) 그 죄책은 매우 크다.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4절). 그가 비록 한 마리의 짐승을 죽였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정하시지 않은 곳에서 죽였으면 그 사람은 살인자처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등 피조물을 죽일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정하신 자유의 한계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그 특혜를 누릴 수 없다. 그러한 권리는 잔인하게, 또는 미신적 습관에 의해서는 수행될 수 없는 그런 권리이다(창 9:3, 4). 우상으로 삼거나 거짓 신을 섬기기 위해서 짐승을 죽이는 일만큼 짐승을 악용하는 일은 없다. 바울 사도가 모든 피조물이 부패와 허무의 굴레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사실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롬 8:20, 21; 레 1:23, 25 와 비교하여 보라).

우상 숭배로 제물을 드리는 것은 음행뿐만이 아니라 살인자로 여겨졌다. 그런 식으로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느니라" (사 66:3).



(2) 그 형벌은 가혹했다. "그 사람은 자기 백성에게 끊쳐지리라" 고 했다. 그러한 범죄가 드러나 악명이 높아졌을 때에는, 재판관이 그를 처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분명하게 처벌받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손으로 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범죄자는 하나님의 정의가 내리시는 어떤 간접적인 공격에 의해서 목이 달아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그들의 모든 희생 제물을 일정한 장소에만 드리도록 엄하게 명령했는가?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 그것은 우상과 미신 숭배를 막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 의 종인 제사장들의 손에 의해서 제사 드려야 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되도록 보살피는 자 곧 하나님의 집의 지도자 대제사장이 보는 가운데서 드려져야 한다. 그래야 그 제물이 드려질 때 율법에 의해 드려지고, 저들이 창안해 낸 법에 의해서 드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의 영예를 보존하며, 특히 아무데서나 제사를 드리게 되면 퇴락해 버릴지도 모르는 그 제사의 특별한 품위를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3] 그들은 모두 한 제단에 모임으로써, 한 집안의 자녀들이 모두 같은 식탁에서 만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 간의 통일성과 형제애를 보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형제처럼 사랑하고 여호와 안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Ⅲ. 이 율법은 어떻게 준수되었는가?

1.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순결을 지키는 동안에는 이 율법에 열심을 내어 매우 큰 관심으로 존중했다. 그들이 두 지파 반(2.5 지파)이 자기들 마음대로 건립한 제단을 파괴하는 데에 보여주었던 굉장한 열심과 비교될 수 있었다. 즉 그 두 지파 반이 세운 제단을 저들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아니했고-그것은 제사나 예물을 위해서 설계된 것이 아니므로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듯이-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은 결코 그 제단의 존립 자체도 허용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수 22:12 이하).

2. 이 율법은 수 세대를 거치는 동안에 많이 범해졌으며 그것이 유대 교회의 수치와, 복구될 수 없는 부패가 되었다. 비록 훌륭한 왕들의 기록 속에서도 "산당이 제거되지 아니하였고......" 하는 불평이 종종 증언되고 있다.

3. 그러나 이 율법은 특별한 경우를 당하여서는 예외를 인정하였다. 기드온의 제사(삿 6:26), 마노아의 제사(삿 13:19), 사무엘의 제사(삼상 7:9; 9:13; 11:15), 다윗의 제사(삼하 24:18), 그리고 엘리야의 제사(왕상 18:23) 따위는 통상적인 장소에서 드려지지 아니했지만 열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들은 모든 천사의 명령이 있었거나 예언자들이 드린 경우이다. 실로가 폐허로 변하여 성전이 건립되기 전, 아직 법궤와 제단이 안치되기 전에는 어디에서도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Ⅳ. 이 문제를 지금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이 율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1. 우리가 드릴 영적 제사는 어느 일정한 장소에서만 드리라고 헌정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이 점을 명백히 말씀해 주셨고(요 4:21), 바울 사도도 "도처에서 분향이 드려지리라" (말 1:11)는 예언 말씀을 따라 말해 주었다(딤전 2:8). 우리에게는 이제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해 주는 성전이나 제단이 없으며 복음적인 통일성은 어느 한 장소에 매여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그것이 있으니, 곧 "영의 통일성" 이다.

2.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시다. "참된 장막" 이시다(히 8:2; 13:10). 그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에 거하시며, 우리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도 그 안에서 가능하며, 오직 그 안에서만 된다(벧전 2:5). 다른 중보자를 둔다거나 다른 제단을 세우거나 다른 속죄물을 바치면, 사실상 다른 신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통일성의 중심이시니,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서로 만난다.

3.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공중 예배를 존중해야 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히 10:25). 여호와는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도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 하신다(겔 20:4 참조). 하나님은 가정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물을 은혜로이 받으실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회막의 문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17:2 없음.

 

17:3 없음.

 

17:4 없음.

 

17:5 없음.

 

17:6 없음.

 

17:7 없음.

 

17:8 없음.

 

17: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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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금함 (레위기 17:10-16)

Ⅰ.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금령을 노아의 계율이 나타났던 곳(창 9:4) 외에서도 이미 레위 율법에서 두 번이나 보았다(3:17; 7:26).

1. 그러므로 이 금령이 여기에 반복되어 있지만, 이미 앞에서도 말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지지해 주고 있다. "내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12절), 또 다시 "내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14절)고 하셨다. 이 율법은 강조되어 있다. 우리는 얼핏 보기보다는 이 율법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엿볼 수 있을 것이다.

2. 그것은 "이스라엘의 집" 뿐 아니라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10절)에게도 적용된다. 이것은 아마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피를 금하기 위해서 그 당시 그렇게 강력히 충언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행 15:29).

3. 이 법에 딸린 형벌은 매우 가혹했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면, "내가 그 피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끊으리라" (10절). 또 "그는 끊쳐지리라" (14절)고 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들이 자초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진노의 얼굴을 보이시는 자는 멸망하거니와, 영원히 멸망하리라는 것을 새겨 두자. 이 세상 어느 피조물이 조물주와 대결할 수 있으리요?

4. 이 율법에는 한 이유가 주어져 있다. 곧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 때문이다. 또 "그러므로 "피로써 속죄하라고 지시되었으니, "육체의 생명은 피" 이기 때문이다. 죄인은 죽어 마땅하다. 그래서(죄인 대신) 희생 제물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피가 생명일진대는, 일반적으로 짐승을 사람대신 죽이어 그 짐승의 피가 완전히 흘러나오도록 하며, 사람의 생명의 속전(贖錢)이요 대불금으로서 짐승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상징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든가 바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이는 죄 속함이 없느니라" (히 9:22).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피를 먹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1) 그것이 당시에는 매우 아름다운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그가 명하신 속죄의 방식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지속하시고자 하셨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제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하셨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계약의 피가 가시적인 대상이었으므로, 어떤 피든지 먹거나 일상전인 물질처럼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만들라고 명령하신 그러한 향유와 관유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2)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가 시효 상실당했다. 그러한 것은 그 율법 자체가 의식적이었으므로, 이제는 효력을 지니지 아니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미 오셨던 그리스도(우리는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의 피는 사람의 죄를 속하는 유일한 것이 되었고, 당시의 희생 제물의 피는 이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불완전한 상징에 불과했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물러나게 된다. 짐승의 피는 이제 대속의 능력을 상실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대속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당시에 있었던, 피에 대한 금령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율법이 아직도 그러한 금령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금령이 신체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면야, 피는 이제 우리의 몸을 위한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제는 우리의 피를 위한 대속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유용한 의의를 함축하고 있다.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한다. 피는 동물의 혼이 들어 있는 매개체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짐승의 피까지라도 존중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짐승의 피에 대해 잔인하거나 냉정히 굴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러한 피를 야만스럽게 또 경솔히 취급하는 짓을 금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피에 굶주린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당시에는 짐승의 피가 상징적으로 죄를 대속했으나, 지금은 그리스도의 피가 실제적이요, 효험 있게 죄를 대속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율법을 존중하여, 피를 "속된 것" 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그가 생명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히 10:29).

Ⅱ. 어떤 다른 계율이 이 율법에 부가되어 있어서, 이 율법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1. "사냥하여 잡은" 짐승의 피는 (흙으로) 덮어두라고 했다(13절). 피를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피가 흘려졌을 때에는 정중히 묻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이러한 율법의 배후에는 어떤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믿었다는 증거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매우 엄중한 계율로 여겼고, 피를 묻을 때에는 이러한 말을 하면서 묻으라고 한다. 즉 "그의 계율에 의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로 그 피를 덮으라 명하신 분을 찬양하리로다" 하는 말이다.

2. 그들에게 "스스로 죽은 것" 이나 "찢겨 죽은" 짐승은 먹지 말라고 했다(15절). 그런 짐승에서는 피가 전혀 나지 않으며, 적어도 정상적으로는 피가 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자기들의 음식에 주의 깊은 신경을 쓰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육적인 육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호기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조심하고 삼가는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자기들 욕심대로 마구 먹도록 하시지 않으시고,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부지런히 분별하여,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는지 연구해 보도록 하신 것이다.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는" 자들은 죄를 짓는 것이다(삼상 14:32, 33). 만일 모르고, 또는 부주의하여 정당하게 죽여지지 아니한 짐승의 고기를 먹은 사람은, "자기 몸과 옷을 씻어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그는 "죄를 당한다" (15, 16절). 그 더러움은 의식법상의 부정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정결케 하는 것도 의식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지정된 정결 처방을 경솔히 여기거나 거기에 복종하려 하지 않을 때는, 그는 그 불복종 때문에 도덕적 죄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구제(치료)하는 율법의 성질을 깨달으라. 거기에 복종한 자는 그 율법의 혜택을 입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은, 그가 지은 의식법상의 죄책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총으로써 위안을 베푸시려는 처방을 모욕한 죄를 가중하게 되어, 그 구제책에 거스르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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