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産婦)의 부정한 기간 (레위기 12:1-5)
본문의 율법은, 해산한 여인을 의식법상 부정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아기가 생겨서 성(性)의 구별이 생겼다면 그 때 낙태한 자에게까지도 이 율법이 적용된다" 고 한다.
1. 출산 직후는 얼마간의 엄밀한 별거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 기간은 남아를 낳았을 때에는 7일, 여아를 낳았을 때에는 14일 간 계속된다(2, 5절). 이 기간 동안 산부는 남편이나 친구들과 별거하며, 그녀를 시중들어야 하는 불가피한 사람들도 역시 의식법상 부정했다. 이것이 왜 남아들이 제8일에 가서야 할례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이유이다. 즉 이 별거 기간동안은 어머니의 오염에 그 남자아이들도 참여해 있기 때문이다.2. 그 여인들을 정결케 하는 데는 보다 긴 기간이 지시되었다. 즉 남아를 낳았으면 33일 이상(도합 40일 간)이고, 여아를 낳았을 때는 그 두배의 기간이 걸린다(4, 5절). 이 기간 동안, 그 여인들은 성소에 들어갈 수 없으며 유월절 양이나 화목 제물도 먹을 수 없다. 제사장의 부인이라 하더라도 역시 여호와께 대하여 거룩한 모든 것은 전혀 먹을 수 없다. 왜 여아일 경우에는 남아일 경우보다 그 기간이 배나 되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율법 창시자의 뜻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간의 구별이 없다(갈 3:28; 골 3:11).
해산한 여인이 지니는 의식법상의 부정은 우리가 모두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하는 그 죄의 불결을 상징하는 것이다(시 51:5). 뿌리가 불결하면, 가지도 또한 그러한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요?" (욥 14:4)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생육하고 번성하라" 는 이 위대한 축복의 모든 산물에는 오직 정결과 존귀만이 따라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치욕의 징표가 찍혀 있는 타락된 본성이 유전되고 있다. 죄와 부패는 본성과 더불어 유전되는 것이기 때문이며 첫 여인이 범죄함으로써 받은 그 저주 때문이다. 곧 여인은 "고통 속에서" (여기에 이제는 수치가 덧붙어졌다) "자녀를 낳으리라" 고 했다. 단지 자녀를 낳았을 뿐인 여인이 그토록 오랫동안 성소에서 차단되고 성물과는 완전히 결별되는 것은 우리들의 원죄[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온 "죄짓게 하는 죄" (sinning sin)이다]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사 우리를 정결케 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영원토록 하나님의 즐거운 잔치와 은혜에서 차단하게 되리라는 것을 상징해 준다.
산부의 정결법 (레위기 12:6-8)
산부는 성소에 되돌아갈 수 있는 기간이 되면, 빈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6절).
1. 번제를 드려야 한다. 가능하다면 어린양을, 가난하다면 비둘기를 예물로 드려야 한다. 이 예물은 해산의 고통과 위험을 무사히 끝내게 해 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또 앞으로도 여인 자신과 아이에게 계속 은혜를 베풀어 줍시사고 소원하고 바라는 희망의 뜻에서 드리는 것이다. 자녀가 나면, 거기에는 기쁨과 희망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예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 그것이 곧 철리(哲理)인 것이다. 기쁨을 받으면 감사해야 하며 희망을 갖게 되며 그것을 위하여 기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2. 그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속죄 제물은 가난한 자나 부자나 똑같아야 한다. 곧 산비둘기가 집비둘기 새끼다. 감사의 예물에는 빈부간에 차별이 있을 수 있지만 속죄를 위한 제사는 빈부간에 똑같기 때문이다. 이 속죄 제물은,
(1) 아마 의식법상의 부정(不淨)에서 여인을 완전히 깨끗케 하려는 뜻일 것이다. 비록 해산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만 그것은 도덕적 부패의 한 상징이었다.
(2) 아니면 그것은 부당하게 자녀의 축복을 욕심냈든가, 해산의 고통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인내하지 못하는 따위의 실제적인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을 것이다. 우리의 본성의 죄악이 제거되는 것은 오직 대(大)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 덕분에 우리가 영원토록 성소에서 쫓겨나거나 성물을 못먹도록 금지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 율법에 따라, 우리의 축복된 주님의 어머니는-물론 주님은 우리들처럼 죄 중에 잉태되지는 않았지만-" 정결케 되는 날이 찬" 후에야 아기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 아기는 첫 아기이므로(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을" 자기의 예물로 바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눅 2:22-24). 그리스도의 부모도 너무나 가난하여서 번제물로 어린 양 한 마리를 바칠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일찍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율법 아래 나셨느니라" (갈 4:4, 5). 이러한 율법의 도덕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축복을 받은 모든 여인들은 자기들에게 베풀어 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고백하고 감사함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 그들은 그 은혜를 받기에는 부족한 자들임을 인정하면서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계속 거하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여인들을 해산에서 구원해 주는 최선의 정결법이다)고 명한다(딤전 2:15). 이것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보다 훨씬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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