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출애굽기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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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제사장들의 지명(출애굽기 28:1-5)

여기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알게 된다.

Ⅰ. 저명한 제사장들: "아론과 그의 아들들" 이라고 했다(1절). 그 때까지는 각 가족의 가장이 가족의 제사장이었으므로, 필요할 때마다 토단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제 가족들이 뭉쳐서 한 민족으로 통합되기 시작하였고, "회중의 장막" (회막)이 저들의 통일성의 가시적 중심으로 세워져야 할 때이므로, 필수적으로 공적(公的) 제사장직 제도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그 직무를 수행했고,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제사장" 중의 하나로 여겨졌던 (시 99:6)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이행했고, 또 판결하는 왕으로서의 할 바를 충분히 이행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영예를 자기 혼자 독점하거나 세습권이 있는 제사장직을 자기의 가족에게 물려주기를 원치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의 형 아론이 직분에 서임되고 그의 자손들이 그를 계승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으며, 한편 (모세 자신은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자신의 사후에 그의 자손은 평범한 레위 족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가 자기 직계 가족이 발탁되기를 전혀 기대하지 아니했다는 사실은, 이 위대한 인물이 지니고 있던 겸손의 한 실증이며,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성실히 좇았다는 한 증거인 것이다.

아론은 한 예언자로서 자기 동생 모세를 겸손히 섬겼으며 그러한 직분을 거절하지 아니하였으므로(7:1), 이제는 제사장이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가 아니면 누구든지 "자기 스스로 이 영예를 취할 수" 없는 것이다(히 5: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일반이 하나님께 대한 "제사장 나라" 가 되리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19:6). 그러나 제단에서 봉사하는 자들은 자신들을 전적으로 그 일에만 바쳐야 할 것이 필요했으며, 또한 모든 사람이 맡은 일은 불원간 아무도 행하지 않은 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한 가족 곧 아버지와 네 아들을 택하여 제사장 가족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우리가 신구약 성서 속에서 자주 읽는 바대로 유대 교회의 모든 제사장들은 아론의 가계(家系)에서 계승된 것이다. 의식의 거룩함이 계승되는 것이 축복이듯이, 참된 성결이 한 가정에서 계승된다면 그것은 축복된 일이다.

Ⅱ. 제사장들의 의복은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위해" 지정되었다(2절). 가장 값비싼 재료가 제공되어질 것이고(5절), 이 의복들을 짓는 데는 가장 우수한 기술자가 동원되어야 했다. 그들의 솜씨는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특별히 주신 재능" 이며 여기에서 최고도로 발휘되어야 했다(3절).

비록 평범한 기술이라도 뛰어난 재주는 하나님의 은사이며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기회가 오면 그 재능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농부에게 분별력을 가르치는 그분이 역시 상인도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양자는 다 그들의 수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인간의 학식은 특히 제사장의 직무에 바쳐져야 하며, 거룩한 일들을 하는 자들을 단장하는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의복은 다음과 같이 지정되었다.

1. 대제사장과 하위 제사장들이 다 사용하는 네 가지가 있다. 즉 아마포 바지, 아마포 겉옷, 이들을 잡아 매는 띠, 그리고 관이나 특히 대제사장이 쓰는 관은 마이터(mitre)관이라고 했다.

2. 또 대제사장에게만 특유한 네 가지가 더 있다. 곧 진기한 띠가 달린 에봇과 판결의 흉패, 바닥에 방울이 달리고 석류 무늬가 수놓인 긴 옷, 그리고 그의 이마에 다는 금패이다.

이 영화로운 옷들은 다와 같은 목적을 위해 지정되었다.



(1) 제사장들 자신이 그 직분의 위엄을 상기하여 정당한 예의 범절을 갖추어 처신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그렇게 장엄하게 보임으로써,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한 경의감에 사로잡히게 하기 위해서이다.

(3)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자신을 흠 없이 드려야 했다.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상징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성별되었으므로 성결의 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복음 아래 있으므로 교역자들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단장은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할 것이 아니라, "구원의 옷과 의로움의 겉옷" 으로 해야 한다(사 61:10, 시 132:9, 16).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입었던 더러운 옷이 그의 제사장직에 각인된 불의를 의미하므로 제사장직을 청결게 하기 위한 배려가 취해졌듯이(슥 3:3, 4), "그 성스런 옷들" 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속에 있는 완전한 순결을 의미했다. 그리스도는 거룩하시고 무해하시며 더럽혀지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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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에봇(출애굽기 28:6-14)

여기서는 대제사장이 제일 겉에 입는 애봇이라는 옷에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 세마포 에봇은 하위 제사장들이 입었던 것으로(삼상 22:18), 사무엘도 어릴 때 입었고(삼상 2:18), 다윗도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출 때에 에봇을 입었다 했다(삼상 6:14). 그러나 대 제사장이 입는 옷만은 황금 에봇이라고 불리웠으니, 이는 옷감을 짤 때 다량의 금을 넣어서 짰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매가 없는 짧은 겉옷이었고, 단추로 채웠으며, 같은 재료로 된 진기한 띠가 부착돼 있었다(6-8). 그 견대(肩帶)는 금으로 싼 두 개의 보석으로 붙여 있고 양 어깨에 하나씩 있었는데, 그 위에는 "이스라엘 자손들" (12지파)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9-12절).

1.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가슴에" 에봇의 진기한 띠와 같은 "금 띠를 두르시고" 요한에게 나타나셨다(계 1:13). 의(義)가 그 허리의 띠요(사 11:5), 우리도 의의 띠를 매어야 한다(엡 6:14). 그는 우리의 구속 역사를 위하여 권능의 띠를 띠고 준히하고 계신다.

2. 아론이 그 어깨 위에 있는 보석에 모든 이스라엘 족속의 이름을 새겨 가지고 있었듯이, "그의 어깨 위에는" 정부(政府:권세)가 있다고 한다(사 9:6). 그는 자신과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 를 세우셨다(엡 5:27). 능력으로 그들을 부양하시고 관심으로 권면하시니, 교회가 존귀와 은총을 입어 기억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는 온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또 옹호자로서 친히 "여호와 앞에" 나선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로서 하나님 안에서 그들을 증거하여 "기념이" 되게 하신다(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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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패(출애굽기 28:15-30)

대제사장의 장신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흉패였다. 이것은 황금과 자색 따위의 실로 진기하게 짜여진 값비싼 천조각인데, 길이가 두 뼘이요 폭이 한 뼘이었으며, 두 겹으로 했으므로 사방 한 뼘이 되었다. 이것은 금 사슬로 둘러 싸여 에봇에 붙어 있었고(13,14,22절 이하), 흉패의 위와 아래 끝 양쪽에 모두 금사슬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흉패가 에봇에서 풀려나지 않도록" 하였다(28절).

에봇은 예식복이었다. 그리고 판결의 흉패는 영예의 상징이었다. 이 둘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누구라도 여호와를 섬기고 그의 뜻을 행하려면, 그의 교훈을 알아야 할 것이다.

Ⅰ. 이 흉패에는 12보석이 있어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그 보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었다(17-21,29절).

어떤 사람들은 레위 지파의 이름도 그 보석에 세겨졌는지를 문제시한다. 만약 없었다면, 야곱이 이야기한 대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하나의 지파로 여겨졌을 것이며, 대제사장 자신이 레위 지파의 우두머리이었으므로 그가 능히 그의 지파를 대표했을 것이다.

" 그들의 출생에 따라" 이름을 새겼다는 말이 암시해 주듯이(10절), 만약 레위 지파를 위한 보석도 있었다면,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지파 하나로 계산되었을 것이다.

아론은 "끊임없이 여호와 앞에서 기념" 되도록 그들의 이름을 어깨에 매고 있어야 했으며, 하나님께 관계되는 일에 있어서는 그들을 대표되기 위하여 사람들을 위해 임명받았으므로 그는 우리를 위해 항상 하나님의 종전에 참예하여 계시는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을 상징한다.

1. 비록 백성들은 지성소에 가까이 하지 못하며 거리를 지켜야 되도록 엄명되어 있었지만, 대제사장의 흉패에 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대제사장을 통하여 지성소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이 아직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지성소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하늘 처소에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 앉게" 된 것이다(엡 2:6).

2. 각 지파의 이름이 보석에 새겨졌는데,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신자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존귀스러운가를 나타내 준다(사 43:4). 그들은 하나님이 "그의 특별한 소유(보석)를 정하시는 날에 그의 소유가 될 것이다" (말 3:17).

이스라엘 지파가 지금까지 아무리 하잘 것 없고 비천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이름은 대제사장의 흉배에 있는 보석 위에 새겨졌던 것이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에게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며, 아무리 이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질항아리들" 처럼 여길지라도(애 4:2) 그리스도의 기쁨이 이 땅의 가장 훌륭한 기쁨으로서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다.

3. 대제사장은 그의 양 어깨와 가슴에 각 지파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백성인 성도들을 위해 중재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는 전능하신 힘으로 그들을 그의 팔에 붙드실 뿐 아니라, 29절의 표현 그대로, 그들을 "그의 가슴에" 붙으시며 가장 친절한 사랑으로 "그들을 그의 품에 안고 데려가신다" (사 40:11).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즐겨 우리 이름을 당신과 가까이 두시고자 하시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의 심령 가까이에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모든 신앙 고백을 받으시는 위대한 대제사장께서 그의 이스라엘의 모든 이름을 그의 가슴에 품으사 여호와 앞에서 "기념으로" 삼으시며, 그들을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열납되게" 하셨으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잊으셨을까 두려워하지 말며, 어떠한 경우이든 하나님께서 너희를 기억하고 계실까를 의심하지 말 것이니라. 너희는 "그의 손바닥" 에 새겨졌을 뿐 아니라(사 49:16), 위대한 중보자의 가슴에도 새겨진 바 되었음이니라!(아 8:6 참조).

Ⅱ. 의심스런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는 우림과 둠밈을 흉패 속에 넣으라 했다. 그러므로 이 흉패를 "판결의 흉패" 라고 불렀다(30절). 우림과 둠밈은 빛과 완전을 의미한다. 그 정체에 대해 학자들 간에 의견이 구구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기 전에 모세가 만들려고 한 어떤 물건이었으리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셔서 딴 물건들이 준비됐을 때 흉패 속에 넣도록 모세에게 주셨거나(레 8:8), 아니면 이미 만들도록 명령받은 어떤 물건의 새로운 사용법을 말해 주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는 판관의 흉배에 빛과 완전을 부여하거나 전달하여, 그것들(빛과 완전)이 아론의 마음에 있게 하라." 즉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문제나 교회의 일에 관련된 어렵고 의심스런 일이 있거든, 그(아론)는 의도를 아는 능력과 알리는 능력을 부여 받을 것이다." 그들의 정치는 신정(神政)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요, 대제사장은 하나님 밑에 있는 통치자요, 우림과 둠밈은 그의 각의(閣議)였다. 아마 모세가 우림과 둠밈이란 글짜를 흉패 위에 썼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거기에 짜 넣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이 흉패를 달고서 일반과 관계된 비상시에 하나님의 의향을 물음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일반 백성이 취하고 따라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지시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대제사장이 법궤밖에(그러나 휘장밖에) 서게 되면, 모세가 그러했듯이(25:2), 속죄소로부터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비느하스도 그렇게 한 것 같이 보인다(삿 20:27-28). 아비아달이 다윗을 위하여 여호와께 물었던 때처럼(삼상 23:6), 대제사장이 법궤에서 멀리 떨어져서 서면, 그 때의 응답은 하늘에서 음성으로 들리거나 그의 마음에 어떤 충동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이것이 적어도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그 가슴 위에서 둘지니라" 고 한 표현 속에서 나타난 것일 것이다.

이 신탁(神託)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주 유용했다. 여호수아가 이 방법을 이용했고(민 27:21), 아마 사사들도 그를 답습했던 것 같다. 그것은 포로 시대에 가서 없어졌고, 그 후에는 기대하여도 다시는 회복되지 못하였음이 분명하다(스 2:63).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였고, 그 본체는 그리스도이다. 그는 우리의 신탁이시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당신 자신과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나타내셨다(히 1:2; 요 1:18). 하나님의 계시가 그의 중심에 있고,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온다. 그리스도는 빛이시되 참 빛이며, 신실한 증인이요, 진리 그 자체이시니,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실 진리의 영을 우리는 그에게서 받는다.

흉패를 에봇에 연결한 것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직분이 그의 제사장직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그리스도께서 당신께는 존귀가, 우리에게는 은총이 돌아오게 하신 것은 그의 죽의심의 덕분이다.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그 봉인을 여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이었다(계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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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봇 받침 겉옷과 관패(출애굽기 28:31-39)

1. 여기에는 "에봇 받침 겉옷" 에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31-35절). 이것은 에봇 바로 안의 옷이었고 무릎까지 내려왔으며 소매는 없었다. 머리 위로 입는 옷이어서 양쪽에 팔구멍이 나 있었다.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묘사한 바로는 양쪽은 전혀 꿰매지 않았다. 머리가 들어 가는 꼭대기 구멍은 입을 때 찢어지지 않도록 돌아가면서 깃을 잘 짰다.

경건한 예배에서는 예배자들의 마음을 산만하게 하거나 예배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은 모두 제거하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법이다.

이 받침 옷자락 주위에는 금방울을 달았고, 다양한 색실로 석류화를 수 놓았다. 석류는 받침옷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아론이 분향하러 성소로 들어갈 때 나는 금방울 소리는 그 때 바깥 뜰에 있던 백성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그래서 그들도 그와 동시에 각자 헌신에 참여하게 되었으니(눅 1:10), 이것은 저들로 아론의 제사에 동참한다는 표시요, 아론이 드린 분향의 덕분으로 자기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바라는 희망의 표시가 되었다.

아론은 지정 의복을 입고 예배 드리러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야 "그가 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제도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그의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우리는 죽어 마땅하며 어떤 치명적 과실을 저지를 위험 속에 처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서, "두려움과" 거룩한 "떨림" 으로 여호와를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에 준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성의(聖衣)의 방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휘장속에 들어가셨음을 알려 주는 바 이 세상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리를 상징한다고 본다. "이 즐거운 소리를 듣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9:15).

향기로운 과일인 석류 무늬를 수놓은 것은 복음의 즐거운 소리는 물론 그 복음의 아름다운 향기를 나타낸다. 복음의 향기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항기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석류의 과수원이라고 불리운다.

2. 아론의 이마에 붙이는 금패에 대한 지시가 나타나 있다. 그 금패 위에는 "여호와께 성결" 혹은 "여호와의 성결" 이라 새기라고 했다(36,37절). 이로써, 아론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그의 제사장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 성결이 그의 집이 되며, 그의 집안이 된다. 대제사장은 온갖 오염에서 떠나서 하나님과 또 그를 예배하는 일과 영광 돌리는 일을 위해 성별되어야 하며, 또한 그가 하는 모든 일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 참예하는 모든 자들은 자기들의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새겨 넣어야 한다. 즉 그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이 여호와 보시기에 거룩해야 하며, 그분께 바쳐지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이러한 모습이 저들의 이마에, 즉 하나님께 대한 공개적 신앙 고백 속에서도 드러나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이 세상 속에서의 모든 교제 속에서도 그 신앙에 대해 책임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말은 인장(印章)의 조각처럼 깊고 영속성 있게 새겨져야 했으며, 물에 씻겨질 채색으로 아니하고 성실과 영속성으로 새겨져야 했다. "여호와께 성결" 한 우리의 마음도 그래야만 한다.

아론의 이마에 이 말이 새겨짐으로써, 그는 "성물(聖物)의 죄악을 담당할 수 있었고(38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으시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으며 우리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서임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예배 속에 있는 잘못된 것이 용서를 받는다. 하나님의 법은 엄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드리는 거룩한 사물에조차도 불의가 깃들어 있음을 우리는 고백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도 악이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고자 하시면 그것까지도 우리 멸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불의를 짊어지시사 우리에게서 제거하셨다. 그러므로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용서가 주어지니 그 책임이 우리에게 지워지지 아니하는 것이다.

(2) 그를 통하여 선한 것이 받아들여진다.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중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며, 다른 방법으로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벧전 2:5).

주께서 "여호와께 성결" 케 됨으로써, 그의 의로움에서 중재받은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지게 되며,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옷입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거룩하게 되심은 우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였다(요 17:19).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대제사장이" 있음으로써,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히 4:14-16).

3. 그밖의 다른 의복은 이름만 나타나 있다(39절). 왜냐하면 그것들은 특별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놓은 세마포옷은 제사장들의 의복 중 가장 안에 입은 옷이었는데, 발에까지 닿았고 소매는 손목까지 내려오며, 띠 곧 바느질한 허리띠로 몸에 묶여졌다.

마이터 관 혹은 제관은 고대 동방의 임금이 썼던 것과 같은 것이며, 아마포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왕적 직능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보좌에 앉으신 제사장" 이요(슥 6:13), 왕관을 쓰신 제사장이다. 하나님께서 이 둘을 결합시켰으므로 우리는 이 둘을 분리시키려고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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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관 및 고의(출애굽기 28:40-43)

1. 여기에는 하위 제사장들의 의복에 관한 자세한 지시가 나타나 있다. 그들은 대제사장의 의복과 같은 재료로 된 속옷과 띠와 관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과 대제사장의 마이터 관과는 형태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그들의 관도 대제사장의 관처럼 "아름다움과 영화스러움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40절). 그리하여 제사장들이 직무를 수행할 때 위엄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영화도 은혜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이 모든 아름다움도 그 의복이 상징하는 성결의 아름다움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특히 직무를 수행할 때 "아마포 고의(袴衣)" 를 입도록 명령받았다(42절). 이것은 우리의 외교의 복과 태도가 항상 정숙하고 단정해야 하며 특히 공중 예배에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여인의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은 이에서 시작되었다(고전 11:5, 6, 10).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벌거벗음의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우리 영혼이 가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암시해 준다.

2. 대제사장들과 하위 제사장들의 모든 의복에 대한 일반적 규칙이 나타나 있다. 즉 그들은 직분을 서임(任)받았다는 표시로서, 그들이 성별될 때 처음으로 그 옷을 입을 것이며(41절), 그 다음에는 직무 수행시에 입을 것이지만 그 이외에는 입지 말 것이라 했다(43절). 그들이 "죄를 범하여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이것을 실행해야 했다. 직무 위반과 마찬가지로 직무 태만의 죄책을 진 자는 "불의(책임)를 져야" 한다. 만약 제사장들이 제정된 예식을 수행하되, 지정된 예복을 입지 않고 행하면(유태인 학자들이 말하는 바대로), 나그네가 그 예식을 행한 것과 같게 되리니, 곧 거기에 가까이 가는 나그네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친히 가장 가까이 오도록 부른 자들의 불경이나 외람됨까지도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아론이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를 등한시 한다면 죄를 지어 죽을 것이다. 이 의복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징해 준다.



(1) 그리스도의 의(義)이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선다면, 우리는 "죄를 지어 죽을 것이다." 결혼 예복을 입지 않고 결혼 잔치에 가면 되겠는가? 또는 제사장의 차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제단에 가면 되겠는가?(마 22:12, 13).

(2) 에베소서 6장 3절에 규정된 바의 "하나님의 갑옷" 이다. 만약 우리가 그 갑옷을 입지 않고 모험을 감행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영적 원수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요, 우리는 불의를 범하게 되므로, 우리 피가 흘려질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의복을 감찰하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할 것이다(계 16:15).

3. 이것은 "영원한 규례" 라고 했다. 즉 제사직이 계속되는 한 의복의 법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러한 그림자의 실체안에서 영속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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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2 없음.

 

28:4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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