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출애굽기 25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5:1

예물을 가져오라(출애굽기 25:1-9)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거룩한 천사들이 세키나 곧 하나님의 존전에 시중드는 그 곳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머무는 동안, 그는 상계(上界)에서 속하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들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지도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모세는 그의 기록 곧 계약서에는 자기들이 아직 보지 못한 일들을 알아보려는 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것들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단지 이스라엘 자녀에게 말해야 될 것만 기록했다. 성서는 우리 머리를 사변으로 채우거나 우리의 공상을 즐겁게 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를 다하도록 지도할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위의 본문에서 보면, 당신의 의도 일반을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자녀들은 하나님께 성소를 지어 봉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 거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8절). 혹자는 생각하기를 비록 이전에도 예배를 목적으로 사용된 제단과 숲이 있었지만, 모세가 이 장막을 세우기까지도 어떤 민족에도 종교적의식을 위해 건조된 집이나 신전은 없었으며, 후일에 이교도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 모든 신전들은 모세의 장막에 연원을 두고 그 본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께 특별한 민족으로 택하시사, 하나님의 계시와 거기에 따른 신앙이 그들에게 있게 하셨다. 즉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왕이 되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들의 왕으로서 하나님은 이미 그들에게 그들을 다스리고 백성 상호 간의 관계에 관한 율법을 주셨으며, 십계명과 그에 따른 해설에서 자연 법칙과 이성의 빛에 따라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기 위한 몇 가지의 일반적 규칙들을 주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들을 타민족들과 구별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 이 되시고자 하여 체결하신 그 계약의 한도에까지 미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Ⅰ. 그리하여 하나니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한 궁전을 그들 중에 세우라고 명하셨다. 그 궁전은 "성소", "거룩한 곳" 또는 "거소" 하고 불리운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서에는 "영화로우신 보좌여! 태초로부터 높이 계신 우리의 성소시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렘 17:12). 이 성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 성소는 구약 성서의 율법이 말하는 다른 제도들과 부합하는 한 의식이다. 이것은 육적인 규례로 되어 있다(히 9:10). 그런 까닭으로 그것은 "세상에 속한 성소" 라고 불리운다(히 9: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므로 그 백성 중에 당신의 궁전을 두신 것이다.

(1) 하나님은 그들 중의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시와 증거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기들 한가운데 성소가 있는 한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고 결코 다시는 묻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광야에서는 천막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이동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간절히 그들에게 임하는 가를 보여 주는 한 실례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궁전도 장막으로 만들라고 명하신 것이다.

(2)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거기에서 충성과 예물로 당신을 섬기도록 명하셨다. 백성들은 그의 뜻을 듣기 위하여 그리로 와야 했고, 또 희생물을 그 곳으로 가져와야 했으며,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연합적인 경의를 표하기 위해 거기에서 서로 만나야 했다.

2. 그것은 상징적인 성소였다. 손으로 만들어진 성소는 "본래 것의 모형" 이었다(히 9:24). 복음의 교회는 참 "장막이니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다(히 8:2).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몸 안에서, 또 그의 몸을 통하여 속죄를 이루셨으니, 그리스도의 몸은 "더 크고 온전하신 장막" 이었다(히 9:11). "말씀이 육신이 되사 우리 안에서 거하셨으니, 곧 장막 안에 거하셨음과 같다."

Ⅱ. 모세가 이 전을 세우려 했을 때에, 그가 제일 먼저 받아야 했던 지시는 어디에서 재료와 설계도를 구하여야 할 것인가였다. 모세는 자기의 창안으로 그것을 고안할 수도 없었고 자기의 비용으로는 그것을 지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이 두 문제에 대한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1. 백성들은 모세에게 그 재료를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과된 세금으로서가 아니라 자발적 거부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명령된 첫 번째 일이었다.

(1)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나에게 예물을 가져오라고 하라" 했다. 또한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1절).

[1] 곧 그들을 석방시켜 주고 애굽인에게서 취한 노획물로 부요하게 한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애굽인에게서 재물을 차용하도록 지시하셨고, 애굽인에게는 이스라엘인에게 재물을 주도록 하시어,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재물을 얻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 그들이 그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받았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례를 드림이 합당하였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첫째로, 이 세상 재물을 가장 훌륭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그 재물로 신앙과 사랑의 사업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이 사업에서 어떤 괄목한 만한 성공을 거두는 축복을 받았거나 소위 행운을 만났을 때에는, 우리의 이득의 합당한 몫을 성별하여 온 땅의 대 주재자께 (미 4:13)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보통 때 이상의 어떤 일을 해야 함이 마땅하다.



[2] 성소는 백성들에게 은혜와 위로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지는 것이므로, 그들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만약 그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데 인색하다면 그들은 그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과 가족들이 하늘에서 매일 쏟아지는 양식을 먹으면서 자유스런 숙소에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낌없이 바칠 수 있음이 당연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그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그의 도움으로 살아가므로 그를 위해 살아야 한다.

(2) 이 예물은 즐거이, 진심으로 봉헌되어야 한다.

[1] 즉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바쳐야 한다고 지정되지 않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전과 거기서 드릴 예배에 대한 자기들의 선의를 나타내 보이며, 또 "많은 사람들을 분발시키는" 소수의 열심(고후 9:7), 곧 거룩한 경쟁심으로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 문제는 그들의 아량에 맡겨졌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가?" 하고 자문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묻기도 해야 한다.

[2] 그들이 무엇을 비치든 즐거이 바쳐야 했으며, 아까와하며 마지 못해 억지로 바쳐서는 아니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즐겨 내는 자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고후 9:7). 하나님의 사업에 쓰여진 것은 잘 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3) 그들이 바쳐야 할 것에 대한 세부 사항이 여기서 언급되었다(3-7절). 그 모두가 장막 안에서나 그 예배에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혹자는 거기에 금과 은과 놋은 있었으나 철이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철은 군사용 물질이며, 이 집은 평화의 집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가져온 모든 것은 대단히 비싸고 좋은 것이었으며 또 최우량종들이었다. 하나님은 최선이시므로 제일 좋은 것을 소유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 자신이 모세에게 그 양식(樣式)을 제공해 주셨다.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라고 했다(9절). 하나님께서는 축소판으로 그에게 그 정확한 설계를 보여 주셨고 모세는 모든 점에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했다. 에스겔도 그와 같이 그 집의 형태와 양식을 환상중에서 보았던 것이다(겔 43:11).

하나님의 사업으로 행해지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의 지시대로 해야 하며 달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주의하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장막의 양식에 따라 짓는 방법에 대해서도 세부적 지시를 내리셨다. 하나님은 그것을 본장과 다음 장에서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있다. 창세기의 서두에서 모세가 천지 창조를 기록할 때 천지 창조는 비록 매우 장중하고 호기심 가는 구조였고 또 매우 다양하고 많은 항목으로 구성된 것이었지만, 거기에 대해 대단히 간결하고도 개괄적인 기록을 하였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한 자에게서 바라거나 기대하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모세가 장막에 관해 기록하게 되었을 때에는, 최대의 섬세함과 정확성을 기울여 그것을 묘사했다. 지구의 형상, 궤도, 직경 그리고 항성의 고도나 크기 등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은 그가, 장막의 휘장, 널판은 그 칫수까지도 상세히 말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와 의식은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보다 모세에게는 더 소중하고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경이 기록된 것은 우리들에게 자연의 작용, 곧 우리가 창조주를 인식하고 그를 예배하기에 충분할 만한 자연에 관한 어떤 일반적 관점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과 오직 하나님의 계시의 문제에 관한 것들에게 우리가 친숙해 지도록 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장차 올 나라의 축복됨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에서 보다는 새 예루살렘이라는 말에서 보다 잘 나타나 있다.

 

25:2 없음.

 

25:3 없음.

 

25:4 없음.

 

25:5 없음.

 

25:6 없음.

 

25:7 없음.

 

25:8 없음.

 

25:9 없음.

 

25:10

법궤(출애굽기 25:10-22)

제일 처음 만들라고 명령된 것은 법궤와 그 부속물들이다. 법궤는 지성소의 비품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특별한 증거물이었다. 장막은 사실상 법궤를 넣어 두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었다.

Ⅰ. 법궤 자체는 상자나 혹은 함인데, 그 안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쓴 두장의 율법판이 영화롭게 비치(備置)되고, 조심스럽게 보관되어져야 했다. 그 칫수는 정확히 지정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계산한 대로 만약 유대인들 1의 규빗이 1/2 야드보다 3인치 더 길다면 (총21인치) 이 상자의 길이는 약 52인치, 폭이 31인치, 깊이가 31인치쯤 되었다. 그 안과 밖은 얇은 금관으로 둘러쌌다. 그 주의는 금으로 된 테 또는 배내기가 둘려져 있고, 운반하기 위한 고리와 채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궤 안에 증거판을 두도록 되어 있었다(10-16). 율법판은 하나님이 그 율법판에다 당신의 뜻을 중거해 주셨으므로 "증거(판)" 라 불리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는 표시이다.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임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순종을 표시한다. 이 율법은 그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지시해 주는 증거가 되었고, 법궤는 "증거궤" 라고 불리우며(30:6), 장막은 "증거막" (민 10:11) 또는 "증언의 장막" (행 7:44)이라고 불리운다. 그리스도의 복음도 증거 또는 증언이라 일컬어진다(마 24:14).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법관은 법궤 속에 신중히 보관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말씀을 중히 여겨야 하며, 또 법궤가 지성소 안에 놓여 있듯이 그 말씀을 우리의 심중에, 곧 가장 내면적인 우리의 생각 속에 감추어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을 교회 안에 보전하는 배려를 취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의 "증거의 궤" 를 볼 수 있도록 하셨음을 암시해 준다(계 11:19 참조).

2.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주요한 표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첫째되고 주요한 증거와 그의 법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율법이 받들어지는 곳에 거하신다(히 8:10).

3. 그들이 이동할 때는 언제나 법궤를 함께 운반해 가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신앙을 지켜 행하며 주 예수 사랑과 그의 법을 함께 품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Ⅱ. 속죄소는 법궤 곧 그 상자의 덮개였는데, 그것은 정금으로 제조되었고 법궤의 칫수와 일치하였다(17,21절). "속죄의 덮개" (영문은 자비의 자리라고 되어 있음)라고 부르는 게 더 좋을 이 속죄소는 위대한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그의 대속은 율법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우리의 죄악들을 덮으며 우리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저주를 가로 막았다. 이리하여 그는 "의를 위하여 율법의 끝" 이 되셨다.

Ⅲ. 황금의 그룹들이 속죄소에 부착되었고 또 속죄소의 일부분을 이루었으며, 날개를 그 위에 펼치고 있었다(18절).

이 그룹들은 세키나 즉 하나님 존전을 항상 수행하며 특히 율법이 수여됨에도 같이 했던 그 거룩한 천사와 같은 상(像)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에스겔 1장 10절에서 말하는 바 네 얼굴들 중의 하나처럼, 천사의 성질을 나타내는 어떤 상징적 모습으로 고안되었을 것이다. 그 얼굴의 모양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으며, 양편이 다 아래로 법궤를 향한 반면 그들의 날개는 서로 맞닿을 정도로 평쳐져 있었다. 바울 사도는 히브리서 9장 5절에서 그들을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 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 그룹들이 구속주에게 시중을 들며-그룹들은 그의 일을 하는 영들이다. 그의 뜻을 행하려는 저들의 준비 태세, 또 성도들이 회중에 특별히 참석한다는 사실(시 68:17, 고전 11:10) 및 저들이 부지런히 복음을 상고하여 그 비의(義)를 살펴 보고자 하는 갈망(벧전 1:12)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소 위에 있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시거나 거하신다고 한다(시 80:1). 그리하여 앞으로는 거기서 모세와 만나시고 "그와 교제하실" 것을 약속하신다(22절). 거기에서, 보좌 위에 앉으신 왕으로서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것이며 그들의 말을 들으시리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중재 안에서 그리고 그 중재에 뜻을 분명히 나타내신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는 말은 이 속죄소를 염두에 둔 말이다(히 4:16).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며" -그것은 가리워졌다-은혜 아래 있기(이것은 드러나 있는 것이다) 때문이다. 곧 은혜의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어 우리를 그 날개의 그늘 아래로 초대하시기 때문이다(룻 2:12).

 

25:11 없음.

 

25:12 없음.

 

25:13 없음.

 

25:14 없음.

 

25:15 없음.

 

25:16 없음.

 

25:17 없음.

 

25:18 없음.

 

25:19 없음.

 

25:20 없음.

 

25:21 없음.

 

25:22 없음.

 

25:23

진설병 식탁(출애굽기 25:23-30)

1. 금으로 입힌 나무 식탁을 만들라는 명령이 있다. 이는 지성소 안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지성소에는 법궤와 그 부속물 이외는 아무것도 둘 수 없다), 장막의 외부 즉 "성소" 혹은 "거룩한 곳" 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세워질 것이었다(히 9:2, 23 이하). 또한 거기에는 찬장에 넣어 두는 일상 비품, 곧 "순금제의" 대잡과 숟가락 등도 있어야 했다(29절).

2. 이 식탁은 언제나 진설병 곧 얼굴의 떡이 차려져 있어야 했다. 그 떡은 각 지파를 나타내는 12덩이였고, 한 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놓여 있어야 했다. 이에 관한 율법은 레위기 24잘 5절 이하를 보라. 장막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겠다고 쾌히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집이므로, 하나님은 당신이 훌륭한 집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고자 하셨다. 왕궁에는 왕의 식탁이 있는 법이다. 혹자는 열 두 덩이의 떡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 기록바 "그의 마당의 곡식" (사 21:10)과 같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나타내며, 그래서 하나님의 앞에 놓여졌다고 한다. 법궤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의미하듯이, 열 두 덩이의 떡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의미한다. 이 떡은 다음와 같은 의도로 진설되었다.

(1)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 즉 광야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식탁을 주심으로써 만나를 주셨으며 또 가나안에서는 그 땅의 곡식들을 주심으로써 그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한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즉 첫 소산의 단을 드려 감사를 드리는 밭의 곡식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이 떡을 집에 가져왔을 때 하나님께 "불어 버리지" (학 1:9) 아니하셨던 바 집 안에 있는 떡대 에 해서도 그러하셨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매일 기도해야 된다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다.

(2) 저들의 식탁 위의 놓인 빵과 꼭 같은 곡식으로 하나님의 식탁의 빵이 만들어짐으로써, 말하자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우의와 친교를 서약하는 표로 함께 먹었던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잡수시고,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먹었던 것이다.

(3)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장이 되신 분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교회에서 만들어지는 영적 양식의 상징이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충분히 먹고 남을 만큼의 떡이 있으니", 모든 지파들에게 나누어 줄 떡이다. 하나님의 집에 참예하는 자는 모두가 그 집의 양식으로 풍족할 것이다(시 36:8). "하나님의 식탁과 그 음식물을" (그것은 평범한 떡이므로) 경멸히 여기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말 1:12), 하나님의 위로는 거룩한 영혼들에게 끊임없는 잔치가 된다. 그리스도는 그의 모든 성도들이 그와 함께 영원히 먹고 마실 식탁을 그의 나라에서 베푸신다(눅 22:30).

 

25:24 없음.

 

25:25 없음.

 

25:26 없음.

 

25:27 없음.

 

25:28 없음.

 

25:29 없음.

 

25:30 없음.

 

25:31

등대(출애굽기 25:31-40)

Ⅰ. 하나님 전의 설비를 위해 제조하도록 명령받은 그 다음 물건은 속이 비지 않고 꽉찬, 화려하고 장엄한 순금제 등대였다. 그것에 관해 여기서 내린 상세한 지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나타낸다.

1. 그것은 아주 장려(壯麗)한 것이었고, 하나님 전의 주요한 장식물이었다. 그 촉대에는 등대 줄기에서 나온 많은 가지가 달려 있었다. 등대 줄기에는 (기름과 불을 켜는 심지를 넣을) 등잔은 어느 꽃과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또한 달려 있었다.

2. 그 등대는 빛을 비추고 장막이 연기와 냄새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아주 편리하고 훌륭히 고안된 것이다.

3.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장막은 밖에서 햇빛이 들어 올 창문이 없었고, 유일한 광원(光源)은 등불이었으니 이것은 구약 율법의 비교적 암흑성을 시사한다. 한편 의의 태양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고, 샛별이 하늘에서 아직 그의 교회를 방문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증거하셨고,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계명은 등잔이었고, 율법은 빛이었으며, 예언자들은 여러 시대 동안 구약 성서 교회에 빛을 비추어 주던 등잔 가지들이었다. 장막이 그러했듯이 교회는 천국에서의 그 모습과 비교하면 여전히 어둡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촛대요, "어두운 곳에서 비추는 빛" (벧후 1:19)이기에, 이것이 없다면 세상은 참으로 암흑천지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은사와 은혜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은 "보좌 앞에 켜진 일곱 등불" 에 비유된다(계 4:5). 교회는 촛대다. 곧 촛대가 빛을 발하듯이 "생명의 말씀을 발하는" 이 세상의 빛이다(빌 2:15, 16). 교역자들은 성서를 공개하는 일을 함으로써, 등불을 밝히거나 불똥을 제거하는 것이다(37절). 이 빛의 보배가 지금은 "질 그릇" 속에 놓여 있다(고후 4:6, 7).

촛대의 가지들이 사면으로 뻗어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선교에 의해 복음의 빛이 온 땅에 널리 퍼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마 5:14, 15). "다양한 은사가" 있으되, 같은 성령이 유익함에 따라 각자에게 주신다.

Ⅱ. 그 지시 사항 중에는 장막의 양식이 모형과 달라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명백한 경고가 모세에게 주어져 있다. 즉 "네게 보인 양식대로 그들을 만들지니라" 하신 말씀이다(4절). 어떠한 것도 모세 자신의 고안이나 일군들의 생각이나 백성들의 기분에 따라 되어서는 아니되며, 모든 점에서 경건하게 지켜져야 했다. 이리하여,

1.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꼭 그의 뜻에 맞는 것이며, 사본은 원본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무한한 지혜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척도를 바꾸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목적하신 바는 무엇이든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2. 하나님이 주신 모든 규례는 그가 정하신 제도에 따라서 집행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에게 하신 교훈도 이와 유사하다. 즉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라" 고 하셨다(마 28:20).

 

25:32 없음.

 

25:33 없음.

 

25:34 없음.

 

25:35 없음.

 

25:36 없음.

 

25:37 없음.

 

25:38 없음.

 

25:39 없음.

 

25:40 없음.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