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를 찾아온 이드로(출애굽기 18:1-6)
이 사건은 민수기에 기록된 것과 같은 어떤 곳(민 10:29 이하)에서보다는, 여기서 곧 율법이 수여되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보는 것이 매우 타당할 것이다. 제사는 전에도 드렸었다. 그것이 여기에 다시 언급된 것은(12절) 아론이 아니라 이드로가 제물을 드렸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위함이었다.
이드로는 모세 밑에 사법기구를 형성하라는 충고를 했다. 이 충고를 준 것은 "그 다음날" 이었지만, 모세가 그러한 기구를 형성한 것은 아마 그 얼마 후였을 것이다. 곧 신명기 1장9절에 있는 것처럼 율법이 수여되고 난 다음이었을 것이다. 이드로는 하나님의 지시가 있기까지는(23절) 그 통치 기구를 자기가 변경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모세는 얼마 후에 가서야 그의 말을 들었다. 이드로는 이스라엘의 행복과 특히 그의 사위 모세의 명예를 축하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제 이드로는 모세가 실의에 처해 있을 때에 친절을 베풀어 주었고 또한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자기의 딸과 결혼까지 시켜준 일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신 모든 사실이 온 열방에 퍼지게 되자, 그의 관한 소식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1절). 이드로는 그러한 사실을 더욱 자세히 알기 위하여(시 110:2 참조), 그리고 그들과 같이 기뻐하기 위해 왔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고자 했다. 그는 미디안 사람으로서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구원의 기쁨에 동참했다.
우리는 "의인의 번영" 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로 알아 기뻐해 줌으로써 타인의 위로를 우리 자신의 위로로 삼을 수 있다.
Ⅱ.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왔다. 모세는 아마도 그의 아내가 아들의 할례를 기피한 것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 희생될 번했던 그 숙소에서, 그들을 장인에게로 되돌려 보낸 것 같다(4:25). 그는 앞으로 그들이 더 큰 어떤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그들을 장인의 집으로 되돌려 보냈던 것이다. 모세는 바로의 궁정에 가면 어떤 시련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하고 그의 가족은 아무도 데리고 다니지 않고자 했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예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일하고자 했을 때에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도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고 말했던 그런 혈통을 지닌 모세였던 것이다(신 33:9).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세의 경우와 못지 않은 여정을 떠나게 될 때는 "아내와 자식" 을 버여야만 되었던 것이다(마 18:29). 그러나 모세와 그의 아내 사이에 있던 잠시 동안의 별거 생활에 어떤 타당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 필요성이 없어졌을 때는 즉시 다시 결합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륜의 법이다. "너희 남편들아 네 아내와 함께 거할지니라" 고 했다(벧전 3:7).
이드로는 그의 딸과 같이 지내는 것을 기뻐하고 또 자녀들도 귀여워하였을 것이지만, 그는 자기 딸이 남편과 떨어져 있고 자식들이 아비와 떨어져 있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5,6절). 모세는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는 동안 자기의 가정을 다스리는 좋은 모범을 보여야하므로 그는 그의 식구들과 함께 있어야 했던 것이다(딤전 3:5).
모세에게는 이제 영예와 책임이 다 같이 크게 더하여졌다. 그의 아내가 그와 함께 있어 그를 돕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1. 맏이의 이름은 게르솜 곧 "과객" 이었다. 모세는 그로 말미암아 그 자신의 처지를 회고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처지에 있었던 그의 아들을 기념하고자 했다. 우리의 선조들이 모두 그랬듯이 우리는 모두 지상에 사는 동안 지나가는 과객들이다. 모세에게는 게르솜 곧 "나그네" 라고 하는 거의 같은 뜻의 이름을 가진 백부가 계셨다. 게르솜은 가나안 태생이지만(창 46:11), 그래도 그들은 역시 자신들이 나그네라고 고백했던 것이다.2. 다른 아들은 엘리에셀 곧 "나의 하나님은 도우심" 이란 뜻으로 불렀다. 이것은 그가 애굽인을 죽인 후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던, 곧 바로에서의 구원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들이(혹자의 생각처럼) 여핼할 때에 그 속소에서 할례를 받았던 그 아들이었다면 차라리 나는 그 글자의 원의를 더욱 지니고 있는 말로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싶다. 즉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니 나를 구원하시도다이다. 그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바로의 궁정에 갈 경우에 거기에서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바로의 칼로부터의 구원을 회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동포를 위해 어떤 어려운 일을 할 때에,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데서 용기를 얻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제까지 우리를 구해 주신 그 분이 앞으로도 우리를 구해주니라.
이드로가 드린 제사(출애굽기 18:7-12)
Ⅰ. 모세와 그의 장인 사이에 있었던 친절한 인사를 살펴 보자(17절). 모세는 비록 여호아의 예언자요, 여수룬의 왕이었지만, 그의 장인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우리에게 나아오기를 기뻐하시지만, 우리가 마땅히 존경할 자들을 존경하며 우리 친척 중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자라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그가 사람들에 대한 의무 이행의 책임이 면제되거나 또 자신의 거만한 태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세는 이드로를 영접하기 위하여 마중을 나갔으며, "그를 맞아 절하고 입을 맞추었다" 고 했다. 신앙이 예의범절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들이 "안녕하십니까?" 하는 말을 주고 받은 친절은 상호간의 사랑과 우정을 표현하고 증진하는 표시로 특기되어 있다.
Ⅱ. 모세는 그의 장인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8절). 이것은 바로 이드로가 모세를 방문한 목적 중에 하나이기도 하였으니, 그는 이제까지 막연히 들어왔던 그 일을 더 완전히 그리고 더 세밀히 알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기사" 에 대한 대화는 유익한 대화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것은 교육에도 좋고 유용한 것이다(시 105:20, 145:11, 12 참조). 그러한 소식을 묻고 대답하며 또한 담론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대화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제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그 섭리의 작용 및 경향성을 깨닫게 되어 매우 유익한 관계를 맺게 될 수도 있다.
Ⅲ. 이 설명이 이드로에게 준 감명.
1. 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경축하였다. "그는 기뻐하였다" 고 했다(9절). 이드로는 그의 사위에게 베풀어진 영광은 기뻐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선하신 모든 일" 을 즐거워했던 것이다(9절). 공적(公的)인 축복은 공적(公的)인 마음을 가진 자들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자.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인들은 불평들을 하였지만, 한 미디안 사람이 그것을 기뻐하였다. 이방인의 신앙이 유대의 불신앙을 부끄럽게 한 일은 이것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마 8:10 참조). 하나님의 은총을 직접 입은 자들보다도 그것을 구경하던 자들이 더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2.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10절).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는 이때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너희를 바로의 손에서 건져 내시었으니, 바로가 죽이려 할지라도 죽일 수 없었으며, 그가 너희를 통해 이 백성을 인도해 내시었도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생겼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3. 이리하여 그의 신앙은 확고부동해졌으며, 엄숙한 신앙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도다" (11절).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그의 신앙 문제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예를 찬탈한 모든 가짜 신들과 거짓과 위선의 신들보다 위대하시다고 했다. 그는 그들을 침묵시키시고 뒤엎으시니, 그들보다 월등히 강하시고 "그만이 홀로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신 것을" 그가 믿었다. 그는 모든 임금들과 제후들(이들은 신으로 불리워졌음) 보다도 높으시며 그들이 따를 수 없는 권위와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무적의 힘을 가지신 분이시다. 아무리 그들이 위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며, 그들을 오직 당신의 뜻대로 다스리신다.
(2) 이드로의 신앙의 확증과 증진을 관찰해 보라. "이제 내가 알았도다" 고 하였다. 전에도 그가 하나님을 알았지만 이제는 더욱 잘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의 신앙은 이 새로운 증거로 더욱 완벽한 확신에까지 자랐다. "여호와께서 다른 모든 신들보다 크시다" 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이 가장 명백한 빛에 대해서도 고집스럽게 눈을 감아 버린다.
(3) 그의 신앙이 서 있는 근거와 이유이다. 애굽인들이 숭배했던 우상들이나 술객들, 그리고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쳐서 이기셨다" 고 그는 믿었다. 술객들은 부끄러움을 당했고, 우상들은 부서졌으며, 바로는 낮아졌으니 그의 교만은 꺾어졌다. 그들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들의 손에서 구함을 받은 것이었다.
조만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교만하게 구는 자들을 처치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계신다는 것을 스스로 보이신다는 것을 알자.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높아진 자" 는 하나님께서 "낮추실 것이다."
Ⅳ. 그들이 기쁨과 감사를 표현한 사실을 주목하자. 그들은 함께 제사를 드리고 이를 같이 나누어 먹었다(12절). 이스라엘의 일에 매우 관심이 깊었으므로, 이드로는 미디안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과의 교제에 쾌히 받아들여졌다. 그는 비록 아브라함의 한 신생가(新生家)에 속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1. 그들은 감사의 제사를 함께 드렸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였으며 이스라엘에는 아직 제사장직이 확립되지 아니한 때였으므로, "이드로는 하나님께 번제물을 가져왔다" 고 했으니 아마도 직접 희생을 드렸을 것이다. 상호간의 우정은 연합 예배로 더욱 성화되는 것임을 주목하자.친척과 친구들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형제됨으로써 기도와 찬미로 영적 제사를 함께 드림이 참으로 유익한 일이다.
2. 그들은 기쁨의 잔치 곧 희생물을 나누어 먹는 잔치를 함께 가졌다. 이 때에 모세는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을 그의 장막으로 초대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 자신도 본을 보이시며 권장하신 일인 것이다. 매우 본받을 만한 일이었다. 이것은 검소한 잔치였다. "그들이 떡을 먹었다" 고 했다. 아마 그 떡은 만나였을 것이다. 이드로는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 하늘의 떡을 보고 맛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이방인들은 지금까지도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할 수 있다.또 그것은 거룩한 잔치를 본따서 행하여졌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다" 고 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경건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치를 가진 것이다. 그들의 잔치는 성도의 교제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보고 계심을 믿는 자들 답게 예모 있게 식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드로의 조언(출애굽기 18:13-27)
Ⅰ. 통치자로서의 모세가 지녔던 큰 열심과 근면이 나타나 있다.
1. 이스라엘을 속박의 소굴에서 구해 냈던 모세는 그들에게 율법을 주고 또 그들을 심판하는 자가 되었으니, 이로써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의 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해졌다.(1)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주지시키고 또 그들에게 이미 준 하나님의 율법 곧 안식일이나 만나 등에 관한 일들을 설명해 주기 위하여 백성들의 질문을 일일이 답해 주어야만 했다(15절).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그들이 상의할 수 있는 그러한 신탁받은 자가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다행한 일이었다.
종종 우리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명백한 길을 알고 싶어 할 때가 많다. 모세는 그에게 일거리를 맡기는 자와 그와 더불어 상의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신실하게 대해 주었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려" 주었다(16절). 그의 임무는 율법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의 지위는 종의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2) 모세는 백성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해 주고 여러 가지 일을 판단하여 결정해 주었다(16절). 그들이 하나님과 다투었듯이 서로 간에 다툼이 생길 때는, 그들이 모세에게 나타나 여러 가지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특히 그 재판은 그들에게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으므로 더욱 많았을 것이다.
애굽에서 그들이 서로 다툴 때에 모세가 그들을 화해시키려 하자, "그들은 누가 너를 우리의 왕과 법관으로 삼았느냐?" 고 대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들의 법관으로 삼으셨음이 자명했다. 그들은 이전에 거만하게 쫓아버린 그 모세에게 나아오는 것이었다.
2. 그런 일이 모세에게 요구된 임무였다. 모세는 그 임무에 다음과 같이 임했음이 나타나 있다.(1) 매우 신중하게 처리하였다. 그는 늘 그러했다고 한다. 그는 재판하기 위해 "앉았다" 고 했다(13절). 침착하고 냉정한 마음 가짐을 자졌던 것이다.
(2) 또한 매우 겸손하게 백성들을 대하였으니 백성들이 그의 "곁에" 섰다고 하였다(14절). 그는 아주 붙임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아무리 비천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 앞에 자기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 환영되었던 것이다.
(3) 그는 매우 일관성 있고 치밀하게 행하였다.
[1] 그의 장인 이드로가 그와 함께 있었으므로, 아마도 모세에게는 법정을 휴회할 좋은 구실이 되었을 것이다(그는 그 날의 재판만 연기하든가 적오도 짧게 끝마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장인이 온 다음 날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재판석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필수적인 일에는 항상 예의 바른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꼭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채 버려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와의 즐거움을 택한다는 것은 친구에 대한 지나친 아첨이다.
[2] 모세는 큰 명성을 얻은 인물이 되었지만, 자신의 안일을 돌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근심과 걱정의 짐을 떠맡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지위 높음이 일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충실히 봉사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춰 선(善)한 일에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이다. 천사라 할지라도 봉사하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법이다.
[3]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에게 성을 내서 돌로 치려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모든 백성의 종으로써 봉사하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할 일을 다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4] 그는 비록 늙었으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직책에 충실하였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자기의 식생활처럼 여겼고,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마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그 위대한 과업을 기쁨으로 거뜬히 해 낼 수 있도록 그의 육체와 정신에 큰 정력을 주셨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하여도 그의 자연적 힘은 감퇴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주를 앙모하고 그의 일을 하는 자는 날마다 새 힘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Ⅱ. 친구로서의 이드로가 보여 준 깊은 분별력과 신중성이 나타나 있다.
1. 이드로는 모세가 취하는 방법을 못 마땅히 여겨 아낌없이 충고를 하였다(14,17,18). 이드로는 그 일이 모세 혼자 떠 맡기에는 너무 중함으로 필경 그의 건강에도 해를 끼칠 것이며 큰 피로를 줄것이고, 백성들도 이 재판하는 일로 지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모세에게 "그 일은 선하지 못하다" 고 명백히 말한 것이다.잘하는 일도 지나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선의가 흠잡히지 않도록 우리의 열성이 분별력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만족해 하는 것을 용납지 않으며, 또한 우리 힘에 넘치는 일을 하여 우리 자신이 넘어지는 것도 허락지를 않는 것이다.
2. 이드로는 모세에게 더 적합한 통치 형태를 제안하였다.(1) 즉 모세는 하나님께 소송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그런 형태였다. "그대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라" 고 했다(19절). 그 일은 다른 어떤 사람도 함께 해 줄 수 없는 명예로운 일이었던 것이다(민 12:6-8). 또한 일반적으로 온 회중에 관계되는 일들을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가야 한다고 말했다(20절).
(2) 그러나 또한 모세로 하여금 각 지파별로 재판관을 임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때를 따라 사람들 사이를 재판하게 하되, 무릇 큰 일이면 모세에게 맡기고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하도록 하는 그런 형태였다. 그것은 위로 왕을 모시고 그 아래 방백들로 하여금 일을 맡게 하였던 한 국가의 형태와 비슷한 방법이다(벧전 2:13-14). 많은 사람들이 일을 가볍게 분담하게 되니, 소송은 재빨리 처리되고 백성들은 그들의 장막 문에서 재판을 편히 답을 수 있게 되었다.
(3) 그러나 소송에 거짓이나 이의가 있을 경우에는 이 하급 법정에서 모세 자신에게로 소송 사건이 넘겨져야 했으며, 그들 재판관들이 어찌할 수 없는 "모든 큰 문제는 그대에게로 가져오리라" 고 했다922절). 그런고로 그 위대한 사람 모세는 더 큰 일들만을 맡음으로써 더욱 더 크게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재능이 탁월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보다는 못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뿐 아니라, 그들의 비난을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 두자. 머리는 손과 발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고전 12:21).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유능한 자가 될까하고 연구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능력에 맞도록 유용히 일을 시킬 수 있을까를 모색하기도 해야 한다. 모세는 종교적인 면에서 그의 장인 이드로를 능가하였지만, 이드로는 정치적인 면에서 그보다 탁월하였던 것이다.
3. 이드로는 그의 제안에 두 가지 조건을 첨부하였다.(1) 그 하나는 재판관을 뽑는 데 아주 신중을 기하여 신임받는 자를 택하라고 했다. 그들은 "재덕이 겸한" 유능인이어야 했다(21절). 최선의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라야 했다.
[1] 곧 판단력적 결단력이 있어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적 위협이나 불평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마음을 소유할 "재덕이 겸전한" 사람이라야 한다. 명석한 두뇌와 담배한 마음은 재판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2] 신앙심과 경건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자이어야 했으니, 그들 위에 계셔서 그들을 감찰하시며 그들의 행적을 헤아리시고 또 자기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야 한다. 양심적인 사람은 혹 은밀하고 안전하게 어떤 비열한 일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결코 공공연히 그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모든 불의의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 된다(느 5:1; 창 42:18).
[3] 정직하고 성실한 자라야 한다. 언행을 신임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 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신의를 배신치 아니하며 교활한 행동을 하지 않는 자이다.
[4] 세상의 부를 관대히 경멸할 수 있는 고귀한 성품의 소유자라야 한다. 곧 "불의한 이(利)를 미워하는 자" 이니, 뇌물을 탐하지 있고 자신의 부를 추구하지 아니하며 그러한 생각조차 혐오하는 자이어야 한다. 오직 "토색한 재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만이 사법관이 되기에 합당하다(사 3:15).
(2) 또 하나는 모세가 이 일에 하나님의 동의를 얻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라" (23절). 이드로는 모세가 자기보다 더 훌륭한 자문을 모시고 있음을 알고 그분께 이를 여쭈어 보라고 한 것이다.
충고는 항상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겸손히 순복하는 마음으로 주어져야 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서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모세는 이 뜻밖의 인물로부터 이러한 충고를 듣고서도 이를 경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자의 계시를 받듯이 그는 "그의 장인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24절). 모세는 그의 장인의 제안 속에서 타당성을 발견하고 실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받자 곧 그것을 실행하였던 것이다. 자신은 너무 현명하여 남의 충고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정말 그러하다면)은 남의 말을 들으며 배우기를 쉬지 않는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자의 충고라도 좋은 충고는 경시하지 않는 것이다.
모세는 사법관을 뽑는 일은 백성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직접 그들을 뽑아 세우고 임명하였다. 어떤 자는 큰 자로 어떤 자는 작은 자로 지명하여, 작은 자는 큰 자에게 종속케 했다. 정부는 하나님이 주신 큰 자비라는 것을 알고 법과 행정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약육강식하는 바다의 물고기처럼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Ⅲ. 이드로는 그의 본고향으로 돌아갔다(27절). 분명히 그는 하나님에 관한 더 많은 지식을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며 거기서 그의 이웃들에게 그 지식을 전하였을 것이다. 겐 족속(삼상 15:6 참조)은 이드로의 후예일 것이며(삿 1:16 비교)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푼 덕분에 특별한 보호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인 호의는 지극히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니, 적어도 부활 때는 그 상급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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