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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이스라엘인이 부른 승리의 노래(출애굽기 15:1-21)

이 글은 애굽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경축되었는가를 알려 주고 있다.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14:14)은 태평하게 있을 수 있었던 자들이라도 이제 구원이 완성된 지금은 태평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때에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그 만큼 할 일이 더 많아졌다. 만일 하나님이 직접적인 그의 능력으로 이 구원을 이루셨다면 그만큼 그에게 더 큰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분명히 모세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 노래를 지었을 것이며 그것을 이스라엘 지녀들에게 전하여, 애굽인의 시체를 목격했던 그곳을 떠나기 전에 그들이 이 노래를 부르게 하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감사를 노래로 표현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즐거움과 정신적 기쁨을 터뜨리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의식법이 부여되어 예배의 한 역할을 하기도 전에 이미 시편의 노래들이 그리스도 교회에서 종교적 예배의 한 행위로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편의 어느 부분도 철폐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도가 거룩한 소망을 표현되는 언어이듯이, 찬송은 거룩한 기쁨을 표현하는 언어이다.

2. 그들의 선두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바다를 통과했던 모세는 이제 노래로 그들 앞에서 행하여 가고, 그들을 위해서 노래를 지었다. 공적인 예배에 능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공적인 찬미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여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비가 새로이 임했을 때, 곧 그들이 그 지식에 많은 감동을 느꼈던 때에 그 때에 그들은 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었을 때에는 마땅히 세월이 지나 우리 마음에 위선이 생겨 거기에 대한 좋은 감동을 사라지게 하기 전에 신속히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은 승리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삼하 22:1). Bis dat qui cito dat 신속히 주는 자는 두 번 주는 것이 된다.

4. 그들이 "여호와를 믿었을 때에" (14:31) 그들은 그 때에 이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신앙의 노래였다. 이러한 관련은 다음 구절에서 관찰될 수 있다(시 106:12). "저희가 그 말씀을 믿었고, 그 때에 찬송을 불렀도다" 고 했다. 충심으로 믿는 자는 이와 같이 고백도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Ⅰ. 찬양의 노래.

1. 우리는 이 노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1)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 중에서 가장 고대의 노래이다.

(2) 가장 아름다운 곡조와 고상하고 장중한 문체, 그리고 생동적이고 특유한 영상과 전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감을 지니고 있다.

(3)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이름을 높이며 오직 그분 하나만을 찬양하는 거룩한 노래이다. 그 노래에는 여호와께 대한 거룩함이 새겨져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멜로디로 노래했다.

(4) 그것은 상징을 품은 노래이다. 그 원수들의 몰락 속에는 복음의 교회의 승리가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에 함께 나타나 있으니, 전자가 홍해 바다에 관한 것인 것과 같이 후자는 유리 바다에 관한 노래이다(계 15:2, 3).

2. 모세가 이 노래에서 주로 목적한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 보기로 하자.

(1)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승리의 개가를 드렸다.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의도이었다(1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라." 우리의 모든 기쁨은 하나님 곧 빛의 아버지요 자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을 유의하자. 왜냐하면 그가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기쁨임에 틀림없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즐거워했으니

[1] 여호와는 그들 자신의 하나님이시니 그들의 "힘이요 노래며 구원" 이기 때문이다(2절). 그러므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은 행복하다. 이보다 더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에게는 해야 할 과제가 있고, 싸워야 할 시험과 참아야 할 고통이 많으며, 그들 자신들은 약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의 힘이 되신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일로 자주 슬픔에 빠지나 여호와 안에서 그들은 위로를 얻으니, 그는 "그들의 노래" 가 되시기 때문이다. 죄의 죽음과 지옥이 그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여호와가 그들의 구원이시니, 장차도 그러하시리라(사 12:2참조).

[2] 여호와는 "그들을 조상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가치함과 분냄을 알고 있는 고로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은 그들의 "조상들을 인하여" 베풀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신 4:37). 계약의 자녀들은 마땅히 하나님-그 하나님은 또한 자기들의 하나님이므로-과 자기들의 조상의 관계에서 위로와 경고와 활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3]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이다(3절). "여호와는 용사이다." 즉 그들의 창조주를 거스리는 모든 자들을 상대하실 수 있으시니, 아무도 그를 이길 자가 없음이 분명하다.

[4] 여호와는 적수가 없으시며 절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11절). 그 사실이 첫째로는 매우 일반적인 말로 표현되어 있다. 즉 "모든 신들 중에서 여호와 당신과 같은 자가 누구이니까!" 라고 했다. 이것은 순수한 찬미이요, 겸손한 경모의 지극한 표현이다. 그것은 여호와와 비교되는 다른 모든 신들에 대한 도전이다. "그들을 모두 불러 세우라. 그리고 저들의 최상의 것을 자랑케 해 오라. 감히 그 앞에 설 자가 없으리라."

애굽인들은 신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은 너무나 강하시어, 그들 모두를 꺾어 버리시는 것이다(민 38:4; 신 32:23-39). 세상의 제왕들과 군주들도 "신" 이라 불리워진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인 것이니, 누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와 견줄 수가 있겠는가?

이 노래는 하나님의 무한한 완전의 초월성과 무비성(無比性)을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완전하신 분으로 경배를 받으시고 경모를 받으셔야 할 것이니, 그는 비길 수 없이 무한히 완전한 분이요, 또 그와 같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으며, 그는 만물 중에서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시 89:6).

두 번째로 보다 구체적인 표현이 있다.

① "여호와는 거룩함에 영광스러우시다." 그의 거룩하심은 그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천사들도 흠모하는 속성이시다(사 6:3). 그의 거룩하심은 바로의 멸망,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 그리고 완악한 죄인들에 대한 그의 진노 안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과 거룩한 성도들에 대한 기쁨, 그 자신의 약속에 대한 성실성 안에서 나타났다.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시다." -즉 이것이 그의 보화요 "거룩하심 속에 있는 영광" 이다-이것은 그의 영예이다. 항상 그의 거룩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하자.

② "여호와는 찬송할 만큼 위엄이 있으시다" 우리에게 찬송의 제목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기쁨이 되지마는 그의 원수들에게는 두렵고 매우 떨리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시 66:1-3). 아니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겸손하고 거룩한 경의심을 가지고 그를 찬양하며 "두려움으로 그를 예배해 한다" 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기쁨과 승리까지도 신앙적인 경외심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여호와는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그 기적은 모든 자에게 기이한 일이다. 곧 자연적인 힘과 법칙을 초월한 모든 이적들이다. 우리에게, 곧 그러한 것을 기대할 이유와 가치가 없는 우리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시니 그 기적은 우리에게는 특히 기이한 것이다. 그 기적들은 능력과 은총의 기적들이니, 이 두 가지 사실 안에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다.



(2) 모세는 그들이 지금 개가를 부르고 있는 그 구원의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그 노래는 그 은총에 대한 그들의 감사를 표현하고 고취시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후세에까지 이 경이적인 일을 영구히 기념하고 보존시키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주의하자.

[1] 적의 멸망이다. 바다가 갈라졌다. "바다가 언덕같이 일어섰다" (8절)고 했다. 그리고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는 그 물 속에 묻혀 버렸다. "말과 말탄 자들" 이 도망칠 수 없었으며(1절), "병거와 그 택한 장관들" 이 잠겨 버렸다(4절). 그들이 스스로 바다에 들어가 모두 물에 엎여지고 말았다. "깊은 바다가 그들을 덮고" (19절) 기세 등등한 물이 교만한 죄인들을 쓸어버렸으며, 그들은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짓눌려 "돌처럼 잠겼고 납같이" 잠긴 것이다(5,10절). 그뿐 아니라 "땅도 그들을 삼켜 버렸으니" (12절) 그들의 시체는 그 빠진 곳의 모래 위로 가라앉아 모래가 그들을 삼켜 버린 것이다.

창조주께서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은 모든 만물이 그들의 적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가 하신 일이요, 그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전능한 행위였다. "여호와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시시며(6절) 주의 콧김과(8절) 주의 바람과(10절) 주의 오른손을 드심으로" (12절) 그들이 삼킨 바 된 것이다. 그것은 "그의 초월적 권능의 한 예증" 이니 "주의 큰 위엄" 이었다.

그 일은 그의 정의의 집행이다. 즉 "주께서 진노를 발하신 까닭이다" (7절). 이 애굽인들의 멸망은 그들이 교만과 무례, 그리고 "애굽이 가로되, 내가 이스라엘을 좇아 탈취물을 나눌 수 있으리라" 고 했던 그 이상스런 확신감 때문에(9절) 더욱 극적인 사건이 되는 말았다. 여기에는 다음 몇 가지 사실이 나타나 있다.

첫째로, 확신감을 크게 가졌었다. 그들이 추적할 때 이스라엘을 따라 잡을 것을 의심치 않았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따라 미칠 때 덮쳐서 "탈취물을 나눌 수 있으리라" 고 생각할 만큼 승리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 데도 흔히 가장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저들의 멸망을 그만큼 더 쓰라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자(사 37:24, 25 참조).

둘째로, 큰 잔인성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살육과 목베임과 파괴등등을 그들의 즐거움으로 삼으니, 이러한 야만적 즐거움은 수많은 피로써만이 만족되는 것이다. 교회가 받는 미움은 이와 같이 잔인한 증오임을 알자. 교회의 적들은 피에 굶주려 있다.

여기에 나타나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1.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스스로 높이는 자들을 낮추시기를 기뻐하신다.

2. 피에 굶주린 자들은 그만한 대가를 받을 것이며 남을 멸망시키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멸망받는 것이니, 여호와께서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앞으리라" 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

[2] 이스라엘의 보호와 인도(13절). "주께서 주의 자비하심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시사"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 주시고, 홍해의 위협 중에서도 살려 내심으로써 그들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같이 행한 것이었다" (19절). 악한 자의 멸망을 이스라엘의 구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며,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사 45:13-15).

(3) 모세는 그들을 위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이 기적인 출현을 이용하였다. 곧

[1] 그들을 격려하여 속히 하나님께 경배드리게 하도록 이용했다. "내가 그에게 거처를 예비하리라" 는 말씀을 기억케 해 주었다. 하나님을 그들을 보호하사 피난처를 주셨으니, 그들이 거기서 안전과 평안을 누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성소를 세우는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거기서 주를 찬양하며 바로로 인하여 받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이야기하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시고 위대하게 하셨으니, 이제는 그들이 그의 지고하심과 장엄하심을 입으로 증거하며 찬양을 드려야 한다.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의 사업에 봉사함으로써 주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알자. 우리가 그런 일에 힘을 기울이면 우리에게도 발전이 온다.

[2]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께 대한 신뢰심을 북돋게 하기 위하여 이용했다. 이 시인은 그 구원의 행복한 결과에 대한 확신이 매우 강력하게 벌써 모든 것이 이뤄진 것처럼 노래하였다. "주께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13절). 주께서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사 멀지 않아 그들을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실 것이니 여호와의 일은 완전하기 때문이로다." 또는 "당신께서 그들을 인도하셨으니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저들의 찬양을 받으리라" 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을 그의 처소로 인도하실 것이니 지금은 믿음으로 맛보며 불원간 그 결실을 보리라는 것을 알자. 이 위대한 구원은 두 가지로 용기를 준다.

첫째로, 그의 대적들을 떨게 하시고 그들을 아주 낙담케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실증이다(14-16절). 애굽이 패망했다는 보고는 다른 모든 그들의 적들이 이미 거의 다 패망했다는 소식과 다름 없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그들의 힘과 세력도 위축시켰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불레셋과 모압과 에돔과 가나안 거민들은 그 소식을 듣고 놀라 매우 의기소침해져, 그와 같은 능력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기 때문이니 우리가 그들과 싸워 봐야 헛일이라고 단정지었을 것이다. 에돔 거민들이 그들을 두려워했던 것은 이 사건의 영향 때문이었다(신 2:4). 또 모압인들도 그러했으며(민 22:3), 가나안인들도 마찬가지였었다(수 2:9, 10; 5: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위엄을 그들 앞에 보내시고(23:27) 왕들의 의기를 꺾으셨다.

둘째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의 완전을 미리 보이시는 한 징표로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숨어 있다.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요, 또한 그들을 탈출시키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다면", 이제 분명 그는 그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실 것이니 "주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가시리라" (17절)고 했다. 그가 시작하셨으니 그가 끝내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우리가 경험했다면 그것이 우리의 장차의 희망에 버팀목이 되어야 함을 알자. "주께서 하셨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현재도 하실 수 있으며, 앞으로도 하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주께서 거하시려고 만드신 그 곳에 그들을 심으시리라."

땅위의 교회에서나(시 27:4) 하늘의 교회에서나(요 17:24)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훌륭한 처소임을 알자. "하나님께서 이 곳은 영원한 나의 안식처니라" 라고 말씀하시는 곳마다, 우리는 "그 곳이 곧 우리의 안식처가 되게 하소서" 라고 말해야 한다.

끝으로, 그들이 이 놀라운 기적에서 크게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음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다스리시이다" 라는 말씀에 근거해서이다(18절). 그들은 지금 바로의 통치의 끝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통치는 시간이 그 한계를 정하지 못하리니, 그의 나라는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그의 절대적 통치권으로 다스리라는 사실 뿐 아니라, 그는 영원히 다스릴 것이요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 모두에게는 말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Ⅱ. 그 노래는 엄숙히 불러졌다(20,21절). 여인의 회중을 통할하던 미리암(마리아와 같은 이름)은 (여성답게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으니 이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기쁨을 표현하는 일반적 방식이었다)이 노래를 불렀다. 모세는 시를 지어서 남자들에게 주었고, 미리암은 그것을 여인들에게 주었다. 이스라엘의 딸들에 의해서 위대한 승리가 칭송받은 적이 있는데(삼상 18:6, 7), 이번이 그와 같은 경우다. 미리암이 그 일 이외에 어떤 일을 더 했는지 기록으로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그는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셨다" 고 기록되어 있다(미 6:4).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따르는 큰 축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15:2 없음.

 

15: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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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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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 없음.

 

15:22

마라의 물(출애굽기 15:22-27)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찬미를 부르던 그 개선의 해변가를 떠나게 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 놀라운 광경이나 그 찬미의 노래, 또는 시체들에서 얻은 탈취물에 넋을 잃어, 그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는 많은 소동 끝에 그들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광야로 이끌러 나아갔다.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얻은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지연시켜서는 아니되며 우리 앞에 광야가 있다 할지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아니된다. 다음 이야기를 살펴 보자.

Ⅰ. 수로 광야에서 그들은 물을 얻지 못했었다(22절). 이것은 젊은 여행자들에게는 극심한 고통이었으며 그들의 즐거움도 크게 저해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으로 그들을 훈련시키시는 것이니, 다윗도 물이 없어 목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그 영혼이 주를 갈망하였다(시 63:1).

Ⅱ. 마라에서는 물을 얻기는 얻었으되 매우 써서 3일 동안이나 물을 먹지 못했다. "그것을 마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물은 맛이 극도로 나빴고 건강에도 해로왔으며 찝찔하여 마실수록 갈증만 더하게 할 뿐 이었기 때문이다" (23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최대의 만족을 주리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고통으로 변케 하실 수 있으며 또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종종 그런 일을 우리가 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결핍 사항과 피조물에 대한 실망이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기 위함이니 창조주의 은총 안에서만 진정한 안위가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 곤경 가운데서 백성들은 어떻게 했는가?

1. 모세가 그들에게 악행이나 한 듯이 그들은 모세를 들볶고 싸움을 걸었다. 그들의 모든 불평은 한결같이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이었다(24절). 신앙으로 살지 아니하고 육체적이고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과 소망도 순식간에 가장 큰 슬픔과 두려움으로 변해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모세는 기도 드렸다.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25절). 모세는 그들이 자기에게 가져온 불평을 하나님께로 가져갔다. 모세는 지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기의 신앙을 고백했다. 지도자들이나 사역자들이 그들의 책임 때문에 괴로워질 때에 그들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됨을 알자. 그는 교회 지도자 중의 지도자이시며, 주목자(主牧者)되시니, 수하 목자들은 모든 문제를 그와 상의해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셨다.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매, 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갑자기 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 고 했으니 그 나무가 무슨 특별한 효능을 가지는 있는 나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물을 인간에게 유용하게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 유용성을 개발시키기도 하시는 분임을 알아야겠다. 아마도 이것은 광야의 구리뱀이나 엘리사가 여리고의 우물에 한 병의 소금을 뿌림과 같이, 단지 치유의 한 신호일 뿐 결코 그 매개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나무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십자가는 모든 신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쓴 물을 달게 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 나무 자체는 쓰나 그것이 마라의 물을 달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의 그 쓰라림은 우리의 속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4. 이 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은 그들에게 협상을 제기했다. 곧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하나님 덕분에 애굽인들이 당한 재앙을 조금도 당하지 아니 했었으니 이제 광야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선행을 보이라고 했다. 또 그들의 처신에 따라서 그것은 복도 되고 저주도 될 것이라고 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다" 고 했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시련을 주어 당신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대하시는 것, 그것은 한 마디로 복종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의 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들의 의무를 앎으로써 몰라서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의 모든 법도를 지켜"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만 하도록 애를 써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받은 몸이니 그들에게는 이제 어떤 상전도 있을 수 없으며 자기들이 곧 주인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결박을 풀어 주셨으니" (시 116:16; 눅 1:34, 35). 이제부터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2) 그런 뒤에 그들이 하나님께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어떠한 질병도 내리지 아니하리라" 했다. 곧 "애굽 사람에게 내린 재앙의 어느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 고 하신 것이다. 이 말은 곧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하면 그들의 적에게 임한 그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리라는 경고였다(신 28:60).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들이 이스라엘에게는 은총이 되어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었지만, 이제 다시 그것들은 이스라엘의 경고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시어 그들을 명예롭게 하시고 온 세계에 그들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자임을 선포하셨다고 해서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죄를 묵인해 주시며, 자기들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고 결코 생각할 수 없다.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 반역하는 이스라엘은 반역하는 애굽인과 다를게 없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대가를 그들이 가나안에 도착하기 전에 다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내말을 들으면 너희는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경고고 암묵리에 나타나 있지만 약속은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26절). 너희가 가는 곳마다 너희의 안위를 돌볼 것이니라" 는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의사이심을 알자. 우리가 건강하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를 치료하신 까닭이다. 그는 우리의 생명이시니, 우리의 생애의 길고 짧음은 그에게 달려 있다.

Ⅲ. 그들은 엘림에 이르러 좋은 샘을 얻고 기뻐하였다(27절).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그의 백성에게 마라의 샘곁에 진을 치라고 명하였다 할지라도, 그곳은 그들이 항상 있을 곳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의 형편은 좋았다가는 나빠지는 나빴다가는 좋아지고, 얼마나 변화가 심한가! 그러므로 우리는 궁핍에도 부유함에도 처할 줄 아는 것을 배우자. 또한 우리에게 있는 것이 넉넉하지 못할 때도 과거처럼 기뻐할 줄 알며 없는 것이 없을때도 과거처럼 슬퍼할 줄 아는 것을 배우자. 거기에는 샘물 열 두 개가 있어 한 부족이 한 개씩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조상들이 때로 싸웠듯이 물 때문에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종려나무 70주가 있어 그늘을 만드니, 그들이 거기서 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그의 백성들이 끊임없는 피로 때문에 약해지지 않도록 훌륭한 휴식처를 주실 수도 있는 것을 기억해 두자. 그러나 우리가 순례의 길을 가는 이 땅에서 비록 얻어지는 기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오직 잠시 동안만 쉴 뿐 거기서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왜냐하면 그곳은 우리의 영원한 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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