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출애굽기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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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유월절에 대한 지시(출애굽기 12:1-20)

모세와 아론은 유월절 예식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전할 바를 여호와에게서 받았다. 즉 유월절은 그들의 월력의 신 기원이 될 것이라 했다(1,2절).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9월 중순부터 그들의 해를 시작하였으나 이후로는, 적어도 그들의 교회력은 3월 중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더불어 날이나 해가 새로 시작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특히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이 새로 시작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 새로운 계산법은 "지면에는 꽃이 피는 봄부터 해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강림의 상징" 으로 간주되어 왔다(아 2:11, 1). 우리는 모세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출발을 위해 준비하라는 경고가 있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을 그 흩어진 곳에서부터 점차로 가까이 함께 모이게 한 것 같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회중" 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이며(3절), 또한 회중으로 모인 그들에게 모세가 명령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크게 놀랐고 서둘렀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거룩한 의식을 지켜야 한다.

우리의 머리는 걱정으로 꽉차고, 우리의 손은 일로 바쁠 때라도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잊어서는 아니되며, 우리 자신이 헌신의 행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의하자.

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빠져 나가는 날 밤에 모든 이스라엘인들을 각 가족의 식구수대로 "어린 양을 잡되" 식구가 적으면 두세 이웃과 연합하여 어린 양을 잡으라는 것을 지시하셨다. 어린 양은 4일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해질 무렵에 "그 양을 잡아" 제물로 삼으라 하셨다(6절).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제사가 아니었다. "제단" 에 바쳐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굽에 내린 재앙에서 자기들을 보호라는데 주시고 해방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한 종교적인 의식이었을 뿐이다.

가정 종교의 태고성을 여기서 보자. 신앙의 예배를 위하여 식구가 작은 가정들이 서로 연합한 관례를 보라. 아마 그들의 예배는 매우 엄숙하였을 것이다.

Ⅱ. 양을 잡아서 불에 구워(아마 나누어서 구웠을 것이다)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했으니, 이것은 그들이 그것을 "급히 먹어야" 했고(11절)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매일의 양식을 당신께 의존하기를 원하셨을 것이며 그들이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않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그들을 인도하신 이가 그들을 먹이셨을 것이다.

Ⅲ. 그들은 어린 양의 고기를 먹기 전에 그 피를 문설주에 뿌려야 했다(7절).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집을 애굽인의 집과 구별되어, 멸망시키는 천사의 칼로부터 그들의 첫 태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12,13).

무서운 일이 이 밤에 애굽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사람이나 가축의 모든 첫 태생이 죽임을 당하고, 애굽의 모든 신들이 심판을 받는 것이다.

모세는 이 예언의 실현에 대해서는 본 장에다 기록하지 않고 민수기 33장 4절에다 기록했다. 애굽인들이 숭상하던 우상들이 파괴되었으니, 쇠로 만든 것이 녹아 버렸고, 나무로 만든 것은 불에 탔으며, 돌로 만든 것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던 것이다. 이드로는 이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여호와는 모든 신들보다 더 위대하시도다" 고 하였다(18:11). 그들의 첫 태생은 멸망시켰던 바로 그 찬사가 그들이 중히 여기는 우상마저 파괴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을 이 재앙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리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그들이 그 명령을 지킨 행위는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그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교훈에 대한 그들의 복종심을 표현한 실증으로 열납되었다.

1. 온 땅에 임하는 환난의 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표를 주시어 보호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은 하늘에서나 하늘 아래서 숨기워질 것이며, 심판의 형벌에서도 적어도 심판의 고통 가운데서 보호받을 것이다.

2. 모든 사람이 일반으로 당하는 환난 날에 피를 뿌리는 행위는 성도들의 안전보장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편이라는 것을 표시해 주고, 양심을 만족시켜 주며, 그들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그리하여 그들의 둘레를 지키는 보호 장벽이 되고 그들을 이 세상의 자녀들과 구분하게 하는 칸막이가 되는 것이 바로 이 표시이다.

Ⅳ. 이 유월절은 모든 사람들이 매년 여호와께 지켜야 되었는데, 거기에는 7일 동안의 무교절이 첨가되어 있다. 그 27일 동안에는 누룩이 들지 않은 빵만을 먹어야 했다. 이것이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러 날 동안 그런 빵만을 먹었던 일을 기념하는 것이다(14-20절). 이 규례는 보다 주의를 기울이도록가르쳐지고 있다. 그것은 그 규례에 관하여 실수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애굽에서 저들이 모두 매우 어리석게 성장하여 신앙 문제에 있어서는 의식을 부지런히 지키는 일에 부주의했던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의식에는 복음적 교훈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신약 성서에는 종종 유월절이 언급되고 있다. 이 의식 안에서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 없어질 것들의 결국은 끝까지 볼 수 없었던 그들에게만 정해진 것이 아니다" (히 4:2; 고후 3:13).

1. 유월절 어린 양은 상징적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 이신 것이다(고전 5:7).

(1) 유월절 양은 "어린 양" 이어야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다(요 1:29). 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가 종종 "어린 양" 곧 털깎는 자나 도살자 앞에서도 말 없는 어린 양 같이 온유하고 정결한 양이라고 불리운다.

(2) 유월절 양은 "1년된 수컷" 곧 가장 활발한 청년기의 양이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의 어린 아기인 유년기 때가 아니라, 그의 생애의 중반기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 그것은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주 예수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3) 그 양은 "흠 없는 것" 이어야 한다(5절). 이것은 "흠 없는" 어린 양, 주 예수의 순결을 의미하는 것이다(벧전 1:19). 예수를 재판한 그 심판관은 (마치 그 심판을 예수가 제물로서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내려는 정밀 심사 같았지만)그의 무죄를 선언했다.

(4) 그 양은 4일 전에 따로 구별해야 한다(3,6절). 이것은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에서나 약속에서나 구원자가 되도록 지명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날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보다 4일 전 즉 유월절 양이 따로 구별되는 바로 그 날에 장엄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5) 그 양은 "죽여서 불에 구워져야" 한다(6-9절).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당하신 강렬한 고난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과 같으며,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6) 그 양은 이스라엘 전 회중이 저녁에 곧 3시에서 6시 사이에 잡아야 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 곧 전 회중의 손에 의하여(눅 23:18) "세상 끝" 에서 고난을 받으셨으니(히 9:26), 그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인들을 위해 제물이 되신 것이다.

(7) "그 양은 뼈를 하나라도 꺾어서는 아니되었다" (46절).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다고 했다(요 19:33, 34). 또 그것은 결코 좌절되지 아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2. 피를 뿌리게 함도 상징적인 것이다.

(1) 어린 양의 피가 흘렀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반드시 뿌려져야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영혼에게 효험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속죄함" (화목)을 받아야 한다(롬 5:11).

(2) "그 피를 그릇에 담아 우슬초 묶음" (2절)을 적시어서 뿌려야 했다. 이 피의 보관소는 그릇과 같은 영원한 계약이다. 그 안에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은혜와 특권이 보존되어 있다. 우슬초의 묶음은 우리의 신앙이다. 우슬초 묶음으로 우리는 그 약속과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 놓여 있는 그리스도의 피의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이다.

(3) 그 피는 "문설주" 에 뿌려져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표이며, 우리 자신이 그에게 의지하는 일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로서 그에게 대한 우리의 복종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짐승의 표는 이마나 오른손에 있게 마련이지만, "어린 양" 의 인은 언제나 "앞 이마에" 있는 것이다(계 7:3).

지옥으로 가는 샛길은 있어도 천국으로 가는 샛길은 없다. 아니 천국에 이르는 그 유일한 길은 하나의 고속도로이다(사 35:8).



(4) 그 피는 좌우 "설주" 와 "인방" 에 뿌리되, "문지방" 에는 뿌리지 말라고 했다(7절). 이것은 계약의 피를 발로 짓밟는 일이 없도록 주의시킨 것이다(히 10:29). 그 피는 귀중한 피이니, 우리도 귀중히 여겨야 한다.

(5) 뿌려진 그 피는 멸망시키는 천사에게서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는 방편이 되었다. 그 피가 있는 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에 뿌려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나 율법의 저주와 지옥 정죄함에서 보호를 받는 것이다(롬 8:1).

3. 그 어린 양을 엄숙히 먹는 일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복음적 의무를 상징한 것이다.

(1) 유월절 어린 양은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기 위해서 죽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먹은 음식을 우리 것으로 만들 듯이, 그리스도를 신앙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음식물에서 영양을 섭취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로부터 영적인 힘과 영양분을 얻어야 할 뿐 아니라, 배고프고 목마를 때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처럼 주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요 6:53-55 참조).

(2) 그 양은 남김 없이 먹어야 한다.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먹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전체를 먹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면류관은 물론 그리스도와 그의 멍에,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까지 모두 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누어졌는가?" 그리스도를 열심히 사랑하는 자들은 남김 없이 취할 것이다.

(3) 그 양은 즉시 먹어야 하며, 내일 아침까지 미루어서는 아니된다(10절). 오늘 그리스도께서 버져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잠을 자기 전, 부름을 받고 있는 바로 오늘에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4) 그 양은 "쓴 나물" 과 함께 먹어야 한다(8절). 그럼으로써 애굽에서 겪은 그들의 속박의 고통을 회상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회상하는 슬픔과 상한 심령으로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 이것은 유월절 양에 훌륭한 풍미를 더 하는 것이다. 죄는 쓸지라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꿀송이 같이 단 것이다.

(5) 그 양은 출발하는 자세로 먹어야 한다(11절). 우리가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먹을 때에 우리는 바로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죄인 법과 지배를 완전히 버려야만 한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위해 이 세상 일에 괘념치 말아야 한다.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리라(히 13:13, 14).

4. 무교병의 잔치(무교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상징한다(고전 5:7, 8).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다면,

(1) 우리는 거룩한 기쁨으로 잔치를 베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기뻐해야 한다.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되며" (16절) 이 거룩한 즐거움에 방해되고 조화될 수 없는 근심이나 걱정은 용납될 수 없다. 만약 진실한 신자들이 끊임없는 잔치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들의 잘못인 것이다.

(2) 그 것은 무교병의 잔치여야 한다. 즉 악의 누룩이 없는 자비와 위선의 누룩이 없는 성실로 지켜져야 한다.

유월절에 관한 율법은 매우 엄격하였으며, 유대인들의 관례도 그리했다. 곧 누룩은 "그들의 집에서도 발견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거룩한 생활의 잔치에 참여하려면, 우리에게서 모든 낡은 죄악의 누룩을 아주 단호하게 제거해 버려야만 한다.



(3) 그것은 "영원한 규례" 였다(17절).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먹으며 그를 기뻐하고 그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위대한 일을 언제나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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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출애굽기 12:21-28)

Ⅰ. 모세는 하나님 집의 신실한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라" 고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그 교훈하신 바가 그렇게 장황하게 기록돼 있지는 않지만, 모세는 자기가 받은 그대로 가르쳐 주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 없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1. 애굽인들의 첫 태생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던 그날 밤 이스라엘인들은 한 사람도 "아침까지 문 밖에 나가지 말라" 고 했다. 즉 그들이 애굽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 날까지는 나가지 말라고 했다(22절). 파멸시키는 펀사가 길 거리에 서 있는 이스라엘인들과 애급인들을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전은 오직 그 "피의 뿌림에" 기인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보호책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저들에게 위험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구별하신 자들이 행악자들과 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사 26:20, 21 참조).

또 그들이 출발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길 밖으로 나오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문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며" 집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선한 일이다.

2. 그들은 이후부터 그들의 자녀에게 이 예식의 의미를 주의깊게 가르쳐야만 했다(26,27절).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자녀들이 이 의식(그들 가정에서 그것을 목격했을 것이다)에 대하여 묻는 질문은 이러하다. "이 예식의 의미가 무엇이냐? 보통 음식을 먹을 때보다도 이 어린 앙과 이 무교병을 먹을 때 그렇게 주의를 하고 엄격하게 하는 의미는 무엇이냐? 이 식사와 다른 식사사이에는 왜 그런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자녀들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주의깊게 그 일을 찾는 자들이 마침내 그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어렸을 때에 "듣기도 하셨고 묻기도 하셨다" 고 했다(눅 2:46).

[2]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거룩한 규례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당연한 관심사이다. 곧 그 규례의 본성은 무엇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그 의미나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 안에서 우리가 행할 의무가 무엇인가? 또 우리에게 무슨 소득이 있을까를 이해해야 한다.

모든 규례는 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규례들은 성만찬과 같이 그 의미가 그렇게 명백하거나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지 않으나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의미를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거룩한 규례의 의미를 모른다거나 잘못 인식했다면, 그 규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못할 뿐 더러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이 될 수 없다.



(2) 부모들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27절). "너희는 이렇게 말하라. 곧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이 양을 죽여 희생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에게 베푸셨던 기적과 은혜의 역사를 영원히 기념하는 것이다."

[1] 또한 "우리를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첫 태생만을 죽이심으로써 우리를 석방하도록 그들에게 강요하신 것이다."

[2] 또 "우리 주 하나님께 대한 죄가 우리에게도 있지만, 멸망시키는 천사가 그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두루다닐 때에 우리의 첫 태생도 역시 죽여야만 되었던 것인데도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이삭 대신에 수양의 제사를 받으시듯 우리의 첫태생 대신에 어린 양의 가정 제사를 수납하신 것이다. 죽음 당한 어린 양이 있는 집마다 그들의 첫 태생이 죽음을 면하였다" 는 것이다.

이 예식이 매면 반복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기념하기 위해서다. 곧 예식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자기들의 조상에게 베푼 위대한 일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페사크(pesach:유월절)란 말은 "뛰다" (leap) 하였은 "넘다" (transition)란 뜻을 가지고 있다. 유월절이란 곧 "넘어나는 것" 을 의미한다. 멸망시키는 천사가 이스라엘의 집들은 건너 넘어가 버리고 그들의 첫 태생을 죽이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전멸하실 때에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더 이상 그들을 지나가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신다(암 7:8; 8:2). 이것은 지금 멸망시키는 천사가 그들의 집을 그냥 지나가듯 하나님께서 얼마나 종종 그들을 지나치셨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인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해 두자. ① 특별한 자비는 특별한 의무 이행에서 온다. "천인이 내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우리는 보존되리니, 우리는 희생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시 91:7). 환란이나 질병 가운데서 죽음의 화살이 우리를 빗나가고 넘아가며 우리의 옆 사람을 치면서 우리를 빼놓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보존됨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②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와 우리의 조상들에게 베푸셨던 자비를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 용기를 더하고 하나님 예배에 더욱 정성을 기울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와 우리의 첫 태생을 대신하여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드려졌던 어린 양의 위대한 희생을 미리 대망하는 표시를 위함이었다. 우리는 멸망시키는 천사의 칼에 위협을 받고 있으나,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그리스도어야 우리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셨으니 그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창세 때부터 죽음을 당하셨다." 또한 유대교회의 터전이 세워질 때부터 죽음을 당할 것이다.

모세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유월절을 지켰으니, 그리스도는 의의 율법의 결말이신 까닭이다.

Ⅱ. 백성들은 경건과 즉각적인 복종의 마음으로 이 가르침을 받았다.

1. 그들은 "절하며 경배하였다" (27절)고 하였다. 그들이 이 규례를 율법으로 삼아 복종하였고, 그들을 은총과 특권으로 삼아 감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울법을 주실 때에는,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기억하자.

2. 명령받은 대로 "그들은 가서 행하였다" (23절). 그들 가운데는 불만과 불평을 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5:20, 21). 애굽의 재앙이 그들에게 유익하였으며, 전에는 절망하고 있었으나 이제 그들은 영광의 해방을 대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해방을 성취하기 위하여 명령받은 길로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의식들을 겸손히 지키면서 우리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자비가 완성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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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태생의 죽음(출애굽기 12:29-36)

Ⅰ. 애굽인의 장자와 모든 첫 태생들이 죽음을 당한다(29,30절). 만약 바로가 이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다라면, 얼마나 많은 사랑스럽고 귀중한 생명들이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 완고한 불신앙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 주고야 만 것이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그 재앙이 닥쳐온 때가 기록되어 있다. 곧 "한밤중" 이라 했다. 그래서 공포가 더하였다. 그들은 그 이전의 사흘 밤은 감촉할 만큼의 짙은 흑암의 재앙으로 두려움에 싸여 조금도 잠을 취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조용히 한밤의 휴식을 취하려 하는 그 밤 중에 또 다시 경보의 사이렌이 울린 것이다.

멸망시키는 천사가 예루살렘을 대하여 그의 칼을 뽑았을 때는 한 낮이어서 별로 공포를 주지 않았다(삼하 24:15). 그러나 애굽의 멸망은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이었던 것이다" (시 91:6).

멀지 않아 "보라, 신랑이 오는 도다" 라는 경보가 울릴 것이다.

2. 재앙의 대상은 다른 사람 아닌 그들 각 가족들의 기쁨과 소망이 되는 "처음 난 자들" 이었다. 그들이 히브리인의 자녀들을 죽였으니, 이제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들의 죄를 그 자손들에게서 찾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원수를 갚아 주시는 분이니 불의하지 아니하다.

3. 그 재앙이 미친 범위가 나타나 있다. 바로의 왕자로부터 옥에 갇한 사람의 장자에까지 이르렀다. 비록 왕자나 농사군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똑같이 취급을 당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욥 34:19, 20 참조).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죽인 자들이 많으니 바로와 하나님의 논쟁이 끝났을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결단의 골짜기에 떨어졌다.

4. 그 때문에 큰 외침이 들려졌다. "그로 인하여 애굽에 큰 곡성이 있었다" 고 했다. 그들의 외아들과 모든 것의 "첫 태생" 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 온 땅에 넘쳤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이 갑자기 밤에 병이 나면, 우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애굽인들은 모두가 똑같은 재난을 당했으므로 누가 와서 도와 줄 수도 위로해 줄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들을 수 있다.



(1)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며, 그의 심판을 두려워 해야 한다(시 119:20). 하나님 앞에 설 자가 누구이며, 누가 감히 그를 거역하랴!

(2)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을 지켜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수없이 거짓말을 늘어 놓았지만 "우리가 멸망당하지 않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Ⅱ.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의 첫 태생일지라도 다 구원받았다. 이 심판은 바로를 굴복시켜 그로 하여금 무조건 항복을 하게 하였다. 인간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조건에 순응하는 것이 더 좋다. 하나님은 당신의 조건을 결코 낮추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조건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이제 바로의 교만은 꺾어지고 모세가 그에게 요구한 모든 것을 바로는 들어 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너희가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고 가라" (31,32절).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실현될 것이며, 그 말씀에 논쟁하거나 따르지 않으려고 고집 부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자.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인들이 떠나라는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만사가 최악의 사태에 도달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그들은 떠나가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다.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라" (31절). 바로는 모세에게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않으리라" 고 하였지만, 지금 그는 모세를 다시 불러 들였다. 이로까지 전에는 하나님께 도전하였던 자들도 반드시 그들이 절망에 처하여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바로는 너무도 놀랐기 때문에 그가 더 고집 부린다면 다음 번에는 자기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앞서 지금 이 밤에 떠나라고 명령한 것이다. 바로는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이방 역사가들은 이 문제를 그렇게 표현했다) 두렵기 때문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바로가 "너희가 간 후에 내가 과거와 같은 재앙을 받지 않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위하여도 축복하라" 고 겸손히 그들에게 요청했던 그 사실에서 밝히 알 수 있다(32절).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원수가 된 자들은 그들 자신에게도 원수가 되니 조만간 그들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애굽인들로부터 떠나 달라는 간청을 받았다. 애굽인들은 소리쳤다. "우리 모든 자가 죽은 자가 되었다" (33절). 죽음이 우리의 집안에 임할 때는 우리가 마땅히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 때인 것이다. 우리의 친척들 중에 죽은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 죽어가고 있는 존재들이며, 사실상 이미 죽은자나 다름 없다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어서 떠나 주기를 재촉하면서, 은, 금 패물까지 가져다 주는 큰 호의를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35,36절).

애굽인들이 이스라엘인더러 떠나 주기를 간청할 때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인들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주머니가 비었으므로 그런 여행을 행할 수 없노라. 떠날 채비를 갖추어 주면 떠나겠노라" 고 말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극한 상황에 이르는 고난 중에서 예비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이신 것이니,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인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어 요구만 하면 이스라엘인들이 원하는 것을 애굽인들이 제공하도록 하신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시는 여호와께서 애굽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애굽인들이 주도록 애굽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마치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로 법궤를 되돌려 보낼 때 속건제로 드릴 선물을 함께 보낸 것과 같이 그들도 아마 그리함으로써 속죄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삼상 6:3, 6).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아마도 애굽인들에게 요청하여 받았기 보다는 빌려 주었던 것을 찾았거나 돌려 받았을 것이다.



(1) 종들은 그들의 일한 만큼 그들의 주인에게서 품삯을 받으며, 만일 돌려주지 않을 때는 품삯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 정복자는 정복한 적들로부터 전리품을 취하는 것과 같다. 바로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께 반역한 죄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몰수당한 것이다.

(3) 신하들이 왕으로부터 그들에게 하사된 토지를 받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온 땅의 소유권자이시며 땅의 풍요도 그의 것이니, 그가 그것들을 어떤 사람에게서 취하여 다른 사람에게 주신들 누가 감히 항변할 수 있으랴!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이 행할 바를 행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로 된 것이다. 그 지시와 명령은 그들 자신을 충분히 정당화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일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행해도 좋다는 권한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누가 감히 그러한 정당성을 자랑할 수 있으랴!).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기억해 두자.

[1]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은 어떠한 잘못도 범하실 수 없다.

[2] 하나님은 인간에게 피해를 입은 자들에게 의를 베푸실 것이다(시 146:7). 그런고로 "불의한 자의 재물은" 종종 의로운 자를 위하여 쌓인 것이 되고 만다(잠 13:23; 욥 27:1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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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출애굽기 12:37-42)

이스라엘 자녀들의 출애굽 기사이다. 그들은 출발 허락을 받자 지체하지 않고 떠났으며, 떠나기 좋은 때가 오기까지 연기하지 않았다. 바로가 지금은 마음이 선해졌으나 그들은 그가 언제까지나 그러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볼 점이 있다.

1. 당시 여자와 어린 아이를 제외한 그들 장정의 숫자가 60만이라 했다. 생각건대 그들의 전체 인구수는 약 120만은 더 될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약 200년 남짓한 동안에 70인의 식구가 이와 같이 거대하게 늘어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고 축복하셨던 그 축복의 힘과 효력이 얼마나 큰가를 보라.

이것은 복음의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에 거기에 들어온 자들의 수효가 많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우 힘차게 성장하여 온 세계에 퍼졌다.

2. 그들에게는 수행원들이 있었다. "중다한 잡족이 그들을 따랐다" 했다(28절). 이스라엘들의 대가족 외에도 재앙으로 황폐한 애굽 땅을 떠나 그들과 같이 저들의 행운을 누리려는 자들이 많이 따랐던 것 같다. 옛적에 애굽인의 선조들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것들을 본 것과 같이(시 78:12), 또 어떤 자들은 광야에 나가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의식을 보고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는 모습을 보려는 호기심으로 따라 나섰을 것이다.

아마도 이 잡족의 대부분은 이유도 알지 못하고 군중을 따라 왔던 무사려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후일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올가미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민 11:4). 또한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스라엘 자녀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스라엘인들을 떠나 애굽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이스라엘 무리 가운데는 항상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자들이 섞여 있었는데, 오늘날 교회 안에도 교회의 많은 해를 끼치는 위선자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나 그들이 결국 떨어져 나가 버릴 것이다.

3. 그들의 동산(動産)을 살펴 보자. 그들은 또한 "수많은 양과 소와 각종 가축들을 몰고 갔다" 고 했다. 바로가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의 동산, 주로 가축들을 가지고 떠나기를 하락하기 오래 전에 이미 그러리라는 사실이 미리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자(창 46:32).

4. 야영을 위해 마련한 식량에 대해 살펴 보자. 그것은 매우 초라하고 빈약한 것이었다. 그들의 배낭에는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약간의 반죽이 있었다(34절). 그들은 그들의 이동이 임박했음을 알고 출발을 대비하여 그 다음 날 빵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빨리 급하게 떠나야 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발효되지 못한 반죽 그대로를 가지고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 야영지인 숙곳에 이르렀을 때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다. 물론 이것은 맛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주워진 해방의 기쁨은 그것들을 그들이 이제껏 먹어왔던 음식 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식사가 되게 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들의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도 아니되며, 감각적 기쁨에 탐닉되어서도 아니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무교절 잔치에 참여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하듯이 우리도 기꺼이 마른 빵과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 결코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해야 될 어떤 예식도 소홀히 하거나 미루지 말아야 한다.

5. 이 위대한 사건의 발생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 약속하신 후, 꼭 430년만이었다(바울 사도가 밝히 설명하고 있는 바대로<갈 3:17 >). 그 동안" 이스라엘의 자녀들" 곧 뚜렷이 선택받는 씨인 히브리인들은 남의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였던 것이니 가나안에서도 애굽에서도 그려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정착지를 주시마고 하신 그 약속이 그토록 오래 지연되고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가나안을 향해 진군한 그 첫날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 (창 12:2)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은 뒤 꼭 430년(하루도 틀림 없는 것 같다) 되는 날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시간을 얼마나 정확히 지키는가를 보라. 그의 약속은 비록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적당한 시간에 성취될 것이다.

6. 그 날을 기념하라고 했다. "그 밤은 여호와의 밤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켜야 되는 밤이다" (42절).

(1) 그 첫 밤의 하나님의 섭리는 매우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애굽인에게는 멸망의 기념이요, 이스라엘인에게는 구원의 기념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밤을 특별히 주목하고 계셨다.

(2) 매년 반복되는 그 밤의 규례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지키라고 했다. "이 밤은 여호와의 밤이다." 모든 세대가 축하해야 할 기념스러운 밤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은 곧 잊혀질 소문같은 것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일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은 특히 그렇다) 모든 시대을 걸쳐서 언제나 기념되어야 한다.

이 첫 번 유월절 밤은 "잘 지켜야 할" 여호와의 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배반당하던 그 마지막 유월절 밤은 (이 때문에 다른 의식 제도와 함께 유월절은 다른 것으로 대치되고 폐지되었다.) "더욱 더 잘 지켜야 할" 여호와의 밤인 것이다. 그 날 밤에는 애굽의 멍에보다 더 무거운 멍에가 우리의 목에서 벗겨져 나갔고, 가나안 땅보다 더 좋은 땅이 그 밤에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전자는 "그들 대대로" 축하해야 할 일시적 구원의 밤이었으나, 후자는 "온 세계의" 성도들의 찬양 속에 "끝없이" 축하함을 받아야 할 영원한 구원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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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규례(출애굽기 12:43-51)

여기에는 유월절에 관한 교훈이 계속하여 나타나 있다. 앞으로 때때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Ⅰ. "온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4,7절). 하나님인 자비하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그것에 대한 감사의 찬양도 함께 드려야 한다. 가족 단위로 떨어져 지킬지라도 그것은 온 회중의 행위로 생각되어야 한다. 이는 소규모의 공동체가 모여 더 큰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신약의 유월절, 곧 주의 만찬은 그것을 축하하는 어느 누구도 소홀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위대한 구원을 기념하는 일에 감히 태만할 수 있는 자는 이스라엘인이란 이름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Ⅱ.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누구도 그것을 먹지 못한다(43,45,48절). 문으로 들어온 자 외에는 그 식탁에 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례라는 입교 규례에 먼저 복종치 않은 자는 주의 만찬이란 그 다음의 규례에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주의 말씀으로 다시 난 후에야 그 만찬으로 양육받을 수 있는 것이다. 먼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그리스도의 희생의 은총에 참여하거나 누릴 수 없는 것이다(골 2:11).

2. 할례받은 이방인들은 비록 "종들이라도"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44절). 만약 함께 있는 타국인들이 유월절 규례를 지키고자 한다면 할례를 받은 연후에야 이 엄숙한 잔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것은(48절) 가장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할례를 받아야 함은 물론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남자들을 할례받게 해야 함을 암시한다.

우리가 마땅히 성실과 열심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바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더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드리고 우리의 모든 것이 곧 하나님의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타국인도 할례만 받는다면 이스라엘 본 자손과 똑같이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불쌍한 이방인에게 전해질 큰 은총을 미리 예표하는 것이다. 본토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동일한 법" 이다(49절).

이러한 사실은 유대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으나, 그들에게 그와 같은 특권이 부여된 것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에 기인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성실할 개종자는 이스라엘 본자손과 같이 유월절에 초대받을 수 있는 것이다(사 56:6, 7).

Ⅲ. "한 집에서 먹을지니라" 고 했다(46절). 이것은 훌륭한 친교가 이루어져 그들이 함께 그것을 먹음으로써 서로들 격려하고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 음식은 이리저리 가지고 다닐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중까지 남겨서도 아니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저들의 출발에 대해 지나친 염려에 빠져서 출발의 기쁨을 누리려 하지 않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대하리라는 전조를 가지고 기쁨으로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들어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천주교도들이 그들의 성체를 집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 자체가 미신적일 뿐 아니라, 어린 양의 살의 어느 한 조각이라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이 유월절에 대한 전형적 율법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본장은,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이 명령받은 대로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대로(50,51절) 그들을 위해 행하셨다는 전반적인 결론을 맺고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복종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창시자가 되어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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