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약속(1)(출애굽기 6:1-9)
Ⅰ. "그 후에 그가 너희를 보내니라" (3:20)는 약속을 여기서 반복하시고 확인함으로써 그 일이 성취된다는 것을 모세에게 확신시킨다. 이로써 하나님은 모세의 불평을 진정시킨다. 모세가 애굽으로 갔으나 일은 오히려 악화되고, 모세는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미디안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때에, 곧 그가 자기의 할 바를 도무지 모르고 있던 때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루신" 사실은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가서 행한 바를 너에게 보여 주리라(1절). 사태는 이제 위기에 직면하였고 만사는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바로의 교만은 극에 달했고, 이스라엘인들은 슬픔이 심연에 달했었다. "이제 내가 나타날 때가 되었느니라."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 (시 12:5 참조). 인간에게 극단적 상황은 하나님께서는 도우시고 구해 주시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 두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는지 이제까지 기대만 해 왔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세가 보게 될 것이다. 마침내 주의 날을 보게 된 것이다(욥 24:1). 모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자! 너는 내가 하는 일을 보게 되리라. 내가 이 교만한 자를 상대하는 것을 두고 보라" (욥 40:12, 13).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역사하실 그 때에야 교회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자. "강한 손으로" 즉 권능의 손으로 강압하여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의 날에 기꺼이 사명을 다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강권으로 인하여 자기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되나 하나님께 굴복하려 하지 않던 자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강권으로 멸망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Ⅱ.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일의 영광스런 결과를 희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시를 모세에게 주셨다.
1.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 자체에서 위안을 받으라(2,3절).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즉 존재와 축복의 근원이요 무한한 완전자라는 뜻을 지닌, "나는 여호와로다" 라는 말로써 시작하고 있다. 족장들은 이 이름을 알고 있었으나, 이 이름이 의미하는 뜻은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이제 그의 이름은 여호와라는 것이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1) 그는 약속은 바를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고무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2) 또한 그는 시작하신 것을 완성하시며, 자신의 일을 끝내시는 하나님이다.
창조의 역사에 있어서도 하늘과 땅이 다 만들어지기 전은 하나님이 결코 여호와라고 불려지지 않았다(창 2:4). 성도들의 구원은 영생 속에서 완성될 그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로 알려지기를 원하신다(계 22:13). 그러므로 그들은 어려운 때에 힘과 의지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된다. 엘 샤다이(El-shaddai:전능하신 하나님") 즉 모든 것에 풍성하시고 언제나 그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리라(미 7:20).
2. 그의 계약으로부터 위안을 받으라. "내가 내 계약을 세웠느니라" (4절)고 했다. 하나님의 계약은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것임을 알자. 하나님의 능력과 진리가 그 계약을 세웠으므로 그것은 확고한 계약이다. 우리는 이 바탕 위에서 모든 것을 걸고 모험할 수 있다.3. 하나님의 동정심에서 위안을 받으라(5절). "나는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들었노라" 고 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최근에 당하게 되었던 고생에 대하여 부르짖는 그들의 신음을 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비극이 가중된 것을 알고 계시며, 그 원수들이 날로 심한 횡포를 부렸던 것을 관찰하신다는 것을 주목해주자.
4. 하나님의 즉각적인 결단에서 위안를 받으라(6-8절). 여기에는 그들이 애굽에서 승리의 개가를 올리면서 나오게 된 것과(6절)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이(8절) 단계적으로 나타나 있으니, 이것은 그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다. "내가 너희를 빼어 내리라. 그 노역을 면케 하리라. 너를 구속(球贖)하리라. 내가 너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그것을 너희에게 주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반복해서 말해야 했던 인간의 불신앙을 우리는 부끄럽게 여기자. 하나님 자신이 당신을 낮추시는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확신을 주시려고 그렇게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그에게 영광을 돌리자.
5. 이 모든 것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의도에서 위안을 받으라(7절).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귀중하고 값있는 것들이었다.
(1) 하나님은 그 백성을 행복케 하리라고 작정하셨다.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곧 특별한 민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이보다 더한 무엇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2) 하나님은 그 자신의 영광을 드러 내시기로 작정하셨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계시니, 우리도 그것을 우리 자신의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자비의 말과 위로의 말들이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를 되찾아 주고 그들의 불행을 잊어버리게 했으리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불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9절). "그들은 마음이 상하여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는 했다.
[1] 즉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심히 사로잡혀 있어서 하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2] 그들은 최근에 당한 낙심으로 좌절되어 모세를 신용하지 않았다.
[3] 그들은 바로의 권력과 진노에 무서운 공포를 느낀 나머지 자신들의 해방 따위는 감히 염두에 둘 수 조차 없었다. 다음 사실에 주목하자.
첫째로, 자기들이 이전에 위안로 삼았던 것에서부터 때로는 정신적 슬픔이 일어나 그들 자신에게 불행이 되기도 한다(사 28:12 참조).
둘째, 큰 고통은 큰 위안을 거부한다. 우리 자신이 불만과 고뇌에 빠져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섭리로부터 오는 그런 위로를 빼앗기고 만다. 그러므로 위로가 없이 지내더라도 우리 자신의 탓으로 생각해야 한다.
해방의 약속(2)(출애굽기 6:10-13)
Ⅰ. 하나님은 전과 동일한 사명을 주어 모세를 두 번째로 바로에게 보낸다(11절). 그리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가게 하라" 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벌을 내리기 전에 훈계를 반복하신다는 것을 알자.
죄인들은 그들의 죄악에서 떠나라고 계속 불러도 종종 헛된 일이 되고 말지만 그들이 듣건 아니듣건 그들은 다시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사 죄인들을 치신다고 기록되 있다(호 6:5). 이 말은 타격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내가 몇 번이나 너희를 모으려고 했던고?"
Ⅱ. 모세는 낙심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자기의 대명을 포기하고 싶어했다(12절).
1. 모세는 바로가 들을 가망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소서! 내 민족이 내가 말하는 것을 주의해 듣지도 않으며 또 믿지도 않았습니다. 하물며 바로가 내 말을 듣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상하여 그들을 진정시키고 위로라는데 주는 말에 귀머거리가 되었다면, 바로의 노함과 교만과 무례는 그를 분개케 하고 성나게 할 뿐인 말에 대하여는 더욱 귀멀게 될 것입니다" 고 했다.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듣지 않는 터에 어떻게 하나님의 노골적인 대적이 그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자들의 완고함과 완악함이 사역자들을 크게 낙망시킨다. 또한 이 때문에 무신론적이며 세속적인 자들을 상대하는 사역자들은 거기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쉽사리 빠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을 단합시키고 그들을 정화하며 순화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 마음을 화평케 하는 도구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런 관심을 호소할 수도 없는 그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가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 모세는 그 자신의 언변의 결함을 호소했다. "나는 입술이 둔한 자이니라" 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다(30절). 그는 자신이 천성적으로 말을 유창하게 하는 재주는 타고 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재능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이 이의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미 충분한 해답을 주셨다. 그러므로 다시 그것을 핑계 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는 언제나 우리의 천성적인 결함을 능히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결점 때문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우리의 최선을 다히지 못하도록 우리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 속에서도 완전을 이루신다.Ⅲ. 하나님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모세와 아론을 재 결합시킨다.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개입시켜 그 쟁론을 끝맺으시고 그들 둘에게 엄숙한 책임을 맡기시어 그들의 위대한 여호와께 대한 충성 위에 서서 가능한 한 민활하고 충실하게 저들의 사명을 수행하게 하신다. 모세가 자신의 낙담스러운 변론을 반복했으나, 하나님은 더 이상 그와 논쟁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아론을 동행하고 이스라엘 자손과 바로에게로 가라고 명령하셨다(13절). 하나님의 권위는 능히 어떠한 이의에도 충분한 해답을 주며, 우리로 하여금 불평이나 논쟁없이 복종하게끔 만드신다는 것을 알자(빌 2:14). 디모데와 마찬가지로 모세, 그는 명령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딤전 6:13; 딤후 4:1).
모세에 관한 족보(출애굽기 6:14-30)
Ⅰ. 여기에는 한 족보가 나온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비난했던 그런 것과 같은 "끝없는 족보" 가 아니다(딤전 1:4). 그 족보는 위대한 두 애국자 모세와 아론에게서 끝이 났다. 이들 형제들은 그들이 구원하고자 보내신 이스라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의 예언자와 제사장과 율법 수여자가 되어야 할 사명을 띠고 하나님께 들어 쓰여진 자들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그들의 족보는 신중히 보존되어야 했던 것이다.
라이트 푸트 박사(Dr. Lightgoot)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열거된 세 가문의 우두머리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는 여기에 기록되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스스로 명예를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즉 르우벤은 근친 상간으로,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족을 죽인 살인자라는 오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므로 기록자 모세가 그들에게 이 특별한 명예를 부여했던 것은 후에 믿는 자들에 대한 모범으로서 회개와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크게 찬양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처음 두 사람은 단지 모세와 아론의 선조인 레위를 언급하기 위하여 씌어진 것이다. 이 레위족은 유대 교회의 모든 제사장이 되는 지파로서 일찍부터 구별되어 왔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야 보자.
1. 모세와 아론, 그리고 모든 제사장들의 혈통이 유래된 고핫은 레위의 아들 중에서도 나이 어린 동생이었다(6절). 하나님의 은총은 나이의 많음이나 출생의 순위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은 종종 연소자에게 더욱 임하여 손을 잡으시기를 즐기신다는 것을 주목하자.2. 모세의 부친과 조부와 증조부들의 나이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곧 아므람, 고핫, 그리고 레위의 나이이다. 그들은 매우 오랫동안 살았다. 레위가 137세, 고핫이 133세, 아므람이 137까지 살았다. 모세 자신은 거기에 크게 미치지 못하였으며, 그는 인생의 일반적인 나이를 70이나 80으로 못박았던 것이다(시 90:10). 그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이제는 모세의 손에 의하여 기록되어 더 이상 전승에 의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족장들이 장수해야 했던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이후로는 사람들이 단명하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3. 아론은 유다 지파 족장 중의 한 사람인 암미나답의 딸 엘리세바(스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과 같은 이름이다. 미리암이란 이름은 마리아란 이름과 같다)와 결혼했다. 유다 지파인 레위 지파는 종종 통혼하였기 때문이다.
4. 모세는 그의 아버지 아므람이 그 아비의 누이인 오게벳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빼 놓을 수가 없었다(20절). 민수기 26장 59절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혼은 후일에는 근친상간이라 금지되었다(레 18:12). 그것은 비록 율법 이전이었지만 그의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이를 숨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기보다는, 그것이 자기를 비웃고 망신시킨다 할지라도 진실에 성실하게 기록했던 때문이다.
5. 비록 그 자신이 그들 중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가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특별한 영예를 표하면서 족보를 끝맺고 있다(26,27절). 하나님이 이번 담판에서 당신의 전권 대사로 삼으신 자들은 바로 "이 모세와 아론" 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요(26절)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바로에게 말한" 자들도 이들이다(27절).
하나님의 교제와 그의 교회를 위해 봉사를 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사람들에게 진정한 명예를 준다는 것을 명심하라. 하나님께서 교제해 주시고 하나님이 그의 일에 쓰시는 자는 실로 위대한 사람이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시는 그의 모든 성도들이 바로 이런 영광을 누린다.
Ⅱ. 모세는 다소 갑자기 끝났던(13절) 그의 이야기를 본장의 끝부분에서 되돌아간다.
1.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그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책임을 그에게 주었다(29절). 한 충실한 대사처럼 "내가 네게 이르는 모든 것을 바로에게 고하라" 고 하셨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의 전체" 를 선포하는 일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자.2. 모세는 거기에 이의를 제기했다(30절). 어느 때고 분별 없이 입술을 놀리던 자는 종종 그것을 반성하면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알자. 아마 여기에서의 모세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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