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된 모세의 이의(1)(출애굽기 4:1-9)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위하여 모세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큰 영광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사명을 수락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마침내는 몹시 망설이면서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겸양의 태도와 자족적인 태도의 탓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그의 일군에게는 겸손으로 옷입히신다는 것을 주목하라. 봉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격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음이라.
Ⅰ. 모세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마 자기 백성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 때문임이 분명하다. 즉 그들은 그가 어떤 기적을 보이지 않는 한, 그의 말만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아직 그가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지시는 받지 않았던 터이다. 그러나 이런 이의는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3:18)라고 하신 말씀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들을 것이다" 라고 말하셨는데도 모세의 말이 이뤄지겠는가! 모세가 의미하고 있는 말은 "아마 그들이 처음에는 듣지 않으려고 하거나, 그들 중 얼마는 듣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이 분명하다. 만약 그들 가운데 모세의 사명에 이의룰 제기하고 논박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어떻게 그들을 대하여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여 모세가 그들에게 확신을 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현재의 낙담은 종종 이전의 실망에서 기인되는 수가 있다.2.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들도 때로는 그들이 응당 받을 평보다는 나쁜 평판을 받게 된다. 모세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1절)라고 말했지만, 다행히도 그의 예상은 틀렸다. 31절에 보면 "그들이 모세의 말을 믿었다" 고 했다. 그러나 그 때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의에 답하여 보여 주셨던 그 기적들이 그들의 눈앞에서 처음으로 일어나는 때이다.
Ⅱ. 하나님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모세에게 주셨는데, 특별히 세 가지를 지시했고 그 중 두 가지는 모세를 확신시키기 위해 그 즉석에서 시험해 보이셨다. 진정한 기적은 하나님의 사명을 가장 효과적으로 확신시켜 줄 수 있는 외적인 증가가 된다는 것을 주시하라. 그러므로 우리 구주께서는 종종 당신이 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고 호소하셨다(요 5:36 에서 말한 것과 같이). 또 니고데모도 예수께서 행한 일을 보고 확신을 얻었던 것이다(요 3:2).
모세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법관으로 또한 율법 수여자로서 그에게 맡겨진 특별한 사명이 있었고, 그의 사명에 이 표증을 더 함으로써 그의 사명에 대한 신임장으로 삼았다.
1.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가 기적의 도구가 되었으니, 그것을 땅에 던지매 뱀이 되었고, 다시 잡으면 곧 지팡이가 되었다(2-4절).(1) 메마른 막대기가 살아 있는 뱀으로 변하니, 그는 사막에서 흔히 뱀을 볼 수 있었지만 무서워 "그 앞에서 도망할" 정도로 생생는 하게 살아 있는 뱀으로 변했다. 그 변화 자체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무릇 기적으로 이루어진 산물은 언제나 최상의 품질과 종류가 되나니, 포도주로 변한 그 물과 같다. 그리고 이 살아 있는 뱀이 다시 다른 막대기로 변했다면, 그것은 분명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었다.
(2) 어떤 주술이나 마법 요술과 같은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세가 그 지팡이를 던지고 다시 잡음으로써 이러한 변화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영예를 부여하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와 같은 능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연의 일반적인 과정이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은혜의 나라의 새 계명을 세우기 위하여 일하는 모세의 권위의 증거이다. 진리의 하나님이 이와 같은 능력을 어떤 사기군에게 주신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3) 그 기적 자체 속에는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바로는 그위험을 주었고(1:10), 배로 티끌을 헤치고 다니게 하였으며, 그들의 파멸을 도모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지팡이를 뱀이되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뱀이 다시 지팡이로 되었다. 또 바로는 권력의 지팡이를 가지고 모세를 미디안으로 도망하게 만든 압제의 뱀이 되게 했었다. 그러나 모세의 역사로 그 장면은 다시 뒤바뀌었다.
(4) 거기에는 모세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하시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라는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하는 직접적인 의도가 있었다(5절). 기적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보이시는 표적이다(고전 14:22).
2. 그 다음에는 그의 손 자체가 기적을 행하는 손이 되었다. 그는 손을 일단 그의 품속에 놓으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였고, 다시 품속에 넣으니 깨끗하여졌다(6-7). 이것은 다음을 상징한다.
(1)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세는 애굽인들에게 무서운 질병을 주게 될 것이며, 더욱이 그의 기도가 있으면 그 질병이 물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2) 반면에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문둥병자가 되었으니 곧 죄로 오염되었고, 압제로 인하여 그들의 힘이 거의 완전히 소진케 되었다(문둥병자는 "죽은 자" 와 같다. 민 12:12). 그러나 모세의 품속으로 들어옴으로써 그들은 깨끗게 되고 그들의 모든 고통은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3) 모세는 이 기적을 자신의 능력으로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의 영광을 위해서만 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등병에 결린 모세의 손은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된다. 앞에서의 있었던 뱀의 표적은 믿지 않을지라도, 후자의 기적은 믿으리라고 생각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의 진실하심을 여러 가지로 보이시기 원하여, 그 증거를 아낌 없이 보이신다. 기적의 다량성과 다양성은 그 증거를 확신시키는 것이다.
3. 모세는 애굽에 가서 강물의 일부를 피로 변하게 하라고 지시받았다(9절). 이것이 처음에는 하나의 표적으로 행하여졌다. 그러나 바로의 신뢰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그 후 온 강물이 피로 변하였고 그 후 다시 큰 온역이 되었던 것이다. 모세는 다른 두 가지 기적으로도 그들이 믿지 않을 경우에 이 기적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불신앙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언제나 자기 고집만을 확신한다는 것을 주시하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들을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3:18).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확신을 위해서 이 표적들을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목적을 정하신 그가 수단도 정하시기 때문이었다.
기각된 모세의 이의(2)(출애굽기 4:10-17)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에 계속하여 뒷걸음질만 쳤고, 마침내 실수까지 한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더 이상 그의 겸손이나 조심성으로 돌릴 수는 없게 되었다. 이것은 지나친 비겁과 나태와 그 일에 대한 불신앙이 있는 까닭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Ⅰ. 모세는 어떻게 그 사명에서 발뺌하려 했는가?
1. 그는 자신이 말에 능술치 못함을 호소하였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니이다" (10절). 그는 위대한 철학자요, 정치가요, 종교가였다. 그러나 웅변가는 아니었다. 명석한 두뇌와 위대한 사상, 그리고 분명한 판단력을 가진 자라도 말을 더듬거리며 잘못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모세는 권세가들 앞에서 그렇게 큰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자기로서는 부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또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1) 우리는 말 솜씨로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세는 "말에 권능이" 있었으나(행 7:22) 능변가는 아니었다. 모세는 비록 어떤 사람들처럼 쉽고 우아하며 임기웅변적인 말은 못하였더라고 그의 말은 강하고 날카로왔으며, 목적에 부합했으며, 이슬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신 32:2).
사도 바울의 말 솜씨도 시원치 않았다(고후 10:10). 많은 지혜와 참된 가치가 눌변으로 가리워져 있다.
(2) 하나님은 때로 기교와 천성이 별로 뛰어나지 않은 자들을 그의 사자로 선택하시기를 즐기시니, 이는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영화롭게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그들을 웅변가로 만드시기까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웅변가는 아니었다.
2. 이 간청이 기각되고 그의 모든 변명이 막히게 되자,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시키고 자기는 미디안에 남아 양을 치게 해 달라고 졸랐다(13절). "나 이외 다른 자를 보내소서! 당신은 나보다 더 적합한 자를 마땅히 찾으실 수 있나이다" 라고 한 것이다. 달가와 하지 하는 마음은 아무 말없이 있기 보다 오히려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게 되며, 난관이나 위험이 있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 맡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주시하라.
Ⅱ. 하나님은 모세의 모든 변명에 얼마나 친절하게 해답해 주셨던가!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셨지만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그가 수락할 때까지 계속하여 차근히 설명하였다. 자기 사양도 극에 달하면, 우리의 의무 수행에 방해나 장애가 되며 또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를 악화시키게 되어 하나님이 매우 노여워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섬기는 일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당히 분개하시며, 그것을 악하게 여기신다. 그것은 우리가 일하기 전에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런 은인이시요, 뒤늦게서야 보상해 주시기를 원하는 그러한 보상자는 아니시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당신이 아직 배척해 버리지 않은 자들에게도 의당히 본노하신다는 것을 알아 보자. 여기에서 모세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당신의 고집스런 자녀들과도 의논을 펴시며, 마침내는 은혜와 친절을 베풀어 그들을 설득시키신다는 것을 유의하자.
1. 모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권능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신다(11절).(1) 모세가 이의를 제기한 것에 관련돼 있는 하나님의 능력.
"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으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모세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제 다시금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지으신 것을 상기했다. 창조주 하나님의 눈동자는 우리들이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에 당하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우리를 도와 주시고자 하신다(시 124:8). 자연의 조물주 하나님은 말의 능력과 재능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은사와 모든 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말을 잘할 수 있는 재능이 나온다. 곧 "구재(口才)와 지혜" 를 주시고(눅 21:15) "학자의 혀" 를 주신다(사 50:4). "그는 입술 위에 은혜를" 베푸신다(시 4:2).
(2) 다른 재능들을 능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 외에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냐?"
[1] 우리의 지체의 기능이 완전함은 그의 솜씨다. 그가 눈을 만들어 "보게 하신다" (시 94:9). 그는 명철을 주시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신다(눅 24:45).
[2] 우리의 기능의 불완전함도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가 "벙어리" 와 "귀머거리" 와 "장님" 이 되게 하신 것이다.
여기에 무슨 악이 있는가? 여호와가 그것을 행한 것이 아닌가? 분명히 그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와 외로움 가운데서 행하신다(요 9:3).
바로와 애굽인들은 이사야 6장 9,10절에서와 같이, 영적으로 귀가 먹고 눈이 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계셨고, 그들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취하시는 그 방법을 알고 계셨다.
2. 이 위대한 역사를 착수함에 있어서 모세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3:12)는 자신의 임재를 반복하여 약속했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가 너의 입에 함께 있으리라" 고 약속하여, "네 말의 부족함이 네 말의 내용을 그릇치지 못하게 하리라" 고 약속하셨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점을 즉시 제거해 주시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대신에 말할 것을 가르쳐 주셔서 문제를 그대로 이용하게 하셨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더 그럴 듯하게 말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보다 더 능력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의 대변자로 일하는 자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그들에게 할말을 주리라" 고 했다(마 10:19).3. 하나님은 아론을 모세와 함께 일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이 적시에 그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셨고, 더욱이 그들은 (아마) 서로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아론이 그를 보면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4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을 그의 대변자로 삼으라고 지시했다(16절).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사용되기를 망설이었으므로, 그를 완전히 탈락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조직을 고려하여 한 조력자를 명하여 주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으니라(전 4:9). 하나님은 그에게 두 증인을 세울 것이니(계 11:3), 그들의 입에서 모든 말씀이 나오게 하실 것이다.
(2)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다. 그들의 하나님의 지혜가 그를 명하시니, 그들의 타고난 우애가 서로간에 그들의 사명을 공동 수행함에 있어서 더욱 그 결합을 튼튼하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형제끼리 였었다.
(3)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지만, 그는 이 일에 있어서는 기꺼이 모세의 밑에서 일하고자 했다. 이러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4) 아론은 말은 잘할 수 있었지만, 지혜에 있어서는 모세보다 훨씬 못했다. 하나님은인간의 자녀들에게 그의 은사를 다양하게 베풀어 주셨으니, 우리가 서로서로 남의 필요에 응하도록 주셨다. 그것은 우리 몸의 각 지체가 서로 유익되게 하기 위함이다(고전 12:21).
모세의 머리와 가슴과 더불어 아론의 혀는 이 사명을 위해 아주 적합하고 온전한 하나를 이루었을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하리라" 고 약속하셨다. 아무리 아론이 말을 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입에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그의 말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끊임없는 도움이 없었었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천부의 은사를 받은 자라도 실패할 것이다.
4.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손에 잡으라고 명하셨다(17절).
이것은 그가 말로써보다는 행동으로 그의 과업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모세가 이 지팡이로 행하는 표적은 말의 부족을 넉넉히 충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기적은 이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말씨보다도 그에게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지팡이를 들어라!" 이것은 그가 양을 치던 지팡이니, 하나님께서 그를 비천한 상태에서 불러내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 이 지팡이는 권능의 막대기요, 그에게는 검과 홀은 모두 대신할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애굽으로 돌아간 모세(출애굽기 4:18-23)
Ⅰ.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허락을 받는다(18절). 모세의 장인은 그가 나그네였을 때도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러므로 그가 그의 가족과 그의 일을 버리지 아니하도록 크게 관심을 기울여 예모있고 정당하게 대해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허락받은 영광이나 그의 일군이 되는 영광이 우리의 친척에 대한 의무나 이 세상에서의 직업에 대한 위무에서 우리를 면제해 주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하자.
모세는 영광스럽게도 하나님이 그 자신에게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사실에 대해서는 그의 장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그와 같은 은총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감사드려야 하는 것이지 사람 앞에 자랑할 것은 아니다.
Ⅱ.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기와 지시를 다시금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덤불 속에 나타나셔서 그와 대화를 나누신 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종종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을 것이나, 그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웠을 것이다.
1. 하나님은 모세의 앞 길에 아무런 방해가 없으리라고 확신시키셨다. 그가 그의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어떤 새로운 적이 나타날지는 모르나, "그의 생명을 찾아 다니다니" 옛 대적들은 "다 죽었다고" 알려주셨다(19절). 아마도 모세가 애굽으로 가기를 주저하는 밑바탕에는 이 대적들의 손에 잡힐 것을 두려워하는 은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는 보잘 것 없고 자격도 없으며, 말도 못하는 자라는 따위의 핑계를 대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처한 모든 유혹들을 샅샅이 아시고 그들의 은밀한 두려움에 대비하여 그들을 무장시키시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시 142:3).2.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뿐 아니라 바로의 앞에서도 기적을 행하라고 명하셨다(21절). 아마 바로의 왕궁에는 바로 왕의 딸의 아들로 있었을 때의 모세를 기억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가 그 영광의 자리를 차버리고 떠나 버린 것을 보고 모세를 심히 어리석다고 여러 번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지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주었던 것보다도 더 큰 능력의 옷을 입고 그 왕궁에 돌아왔으니, 그것은 그의 선택이 그에게 조금도 손해를 주지 않았음을 능히 입증했을 것이다. 이 기적의 지팡이야 말로 애굽 왕이 가지고 있는 홀보다도 모세의 손을 더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세상의 명예를 천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예를 보상으로 받으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 영예가 참된 영예이다.
3. 바로의 고집이 모세를 놀라게 하거나 낙담시키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는 데에 하겠다" 고 미리 말씀하셨다. 바로는 피압박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와 울부짖음에 대하여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먹었으며, 털끝 만큼의 동정도 베풀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정의의 심판으로써 그의 마음을 곧게 하사 기적과 재앙의 공포를 믿지 않게 하였다. 목회자들은 만나봐야 헛수고 밖에 할게 없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자.
우리는 가장 강력한 논법과 가장 공정한 추론으로도 조금도 마음의 변화가 없는 자들을 만난다 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심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모세가 바로에게 전할 말씀을 그의 입에 두셨다(22,23절). "할 말을 가르치리라" 고 모세에게 약속하셨었는데(12절), 하나님은 이제 여기에서 모세에게 그것을 가르치신다.(1) 모세는 자기의 메시지를 위대하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전해야만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하고 말해야 했다. 후일 모든 선지자들이 매우 자주 쓰던 이 말은 이제 모세에게서 사람으로서는 제일 처음으로 서문으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바로가 듣든지 안 듣든지 참든지 못 참든지 모세는 그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고 말해야만 했다.
(2) 모세는 바로에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일러 주어야 했다. "이스라엘이 종이냐? 그가 씨종이냐?" (렘 2:14). "아니다.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이요, 내 눈에 귀하고 소중한 첫 아들이니라. 내 아들을 사랑하고 학대하지 말지니라."
(3)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의 석방을 요구해야 했다. "나의 아들로 하여금 가게 하라. 네가 억류해 놓을 권리가 없는 나의 종들일뿐이 아니라, 내가 매우 아끼는 자유와 명예를 걸머진 내 아들들을 가게 하라. 그들은 나의 아들이니, 나를 섬기는 아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가 아껴 주고 돌보아 주어야만 하느니라" (말 3:17).
(4) 모세는 바로가 자기의 청을 거절할 경우, 애굽인들의 첫 소생이 죽을 것이라는 위협을 가해야 했다. "내가 너의 아들 곧 처음 태어난 것을 죽이리라" 고 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상대할 때에는, 그들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주께서 사악한 자들과 더불어 싸울 것이다.
Ⅲ. 모세는 이제 원정길에 들어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의 생명을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알려주신(19절) 그 직후에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20절). 비록 우리를 부리시어 맡기신 하나님의 역사에 죄악은 많은 이의를 제기하게 하지만, 결국 은혜가 승리하여 하늘의 뜻에 순종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모세의 아들의 할례(출애굽기 4:24-31)
모세는 여기서 애굽으로 가고자 하는데 우리는 다음이 같은 사실을 보게 된다.
Ⅰ. 하나님이 왜 진노하시어 모세를 만났던가?(24-26절). 이 구절은 모세의 이야기 중에서 매우 난해한 부분이다.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왔고, 잘 납득시키려고 애를 써 왔던 구절이다. 이제 그 뜻을 밝혀 보도록 하자.
1. 아들의 할례를 소홀히 한 것이 모세의 죄였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미디안 여자로 인하여 불공평한 멍에를 지고 있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여자는 그녀의 아들을 너무 사랑했고, 모세 또한 그녀를 너무 사랑했었다. 다음 사실에 유의하자.(1)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세상의 어떤 것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임무를 태만히 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사장 엘리는 "하나님보다 그의 아들들을 더 귀하게 여겼다" 는 것이 잘못이었다(삼상 2:29; 마 10:37 참조).
(2)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신앙 공동체에서 너무 오래 떠나 있게 되면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의무에 대하여 냉담해지기 쉽다. 고독한 은둔 생활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상실하는 것과는 별로 상대될 수 없다.
2.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 불쾌히 여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마 검을 쥔 천사를 대표하여 그를 죽이려고 찾았던 것 같다. 이것은 실로 큰 변화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대화하셨고 친구처럼 그를 신뢰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그를 적으로 생각하시게 되었다. 다음 사실에 유의하자.
(1) 하나님의 계명을 생락하여 제하여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그리고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 특히 계약의 표를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계약의 약속을 과소 평가하는 것이으며, 그 계약의 조건에 대하여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매매 계약을 하고서 거기에 날인과 비준하기를 꺼리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이행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도 당연하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감찰하시며 그것을 대단히 노여워하신다. 그들이 자기들의 의무를 태만히 한다면 그들의 양심이 그것을 깨우치도록 하자. 아마 그들은 어쩌면 불길한 섭리로 인하여 그것을 깨닫게 되리라. 혹자가 여기서의 모세에 관해 생각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소홀히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 모세가 의무 이행을 게을리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제 그와 논쟁을 벌이시자, 모세는 즉시 의무를 이행한다. 모세의 아들은 할례를 받아야 했지만 모세는 할례를 베풀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절박한 지경에 처하여 십보라가 모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이 때 그녀가 한 말은 어떤 뜻인지 분명히 결정하기 어렵다. 즉 분격해서 한 말인지(그녀가 예식 자체를 싫어하거나 그 아들이 너무 어리고 여행 중에 있으므로 할례를 행할 수 없다는 뜻의 표현으로)-내 생각에는 이것이 옳은 것 같다-또는 합당한 말이었는지 할례의 계약(혹자는 그렇게 읽는다)은 어린이를 하나님께 봉헌하는 식이라는 것을 격식 있게 표현한 것, 또는 그녀의 아들에게 할례를 줌으로써(혹자는 이렇게 읽는다) 그녀의 남편을 구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어 그녀에게 다시 돌려 주니 말하자면 그녀에게는 새로운 결혼이 되었으니,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녀의 감사 표현의 말-나는 그것을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교훈이 있다.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 가운데 있는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실 때에는, 우리는 신속히 그것을 고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며 특별히 우리가 소홀히 했던 의무를 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2) 우리에게서 죄가 제거되지 않고는 심판을 기필코 면할 수 없다. 이것은 모든 채찍의 소리이니, 그 채찍은 우리를 그에게로 돌아가도록 부르시는 소리이다.
4. 그리하여 모세가 거기에서 용서받는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모세를 가게 하셨다." 혼란이 사라지고, 멸망의 천사는 물러 갔으며,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단지 십보라만이 그녀가 당했던 놀라움을 잊지 못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모세를 "피 남편" 이라 불렀다. 이는 모세가 그녀로 하여금 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였던 까닭이다. 이 일로 인하여 (아마도) 모세는 그 이상의 번거로운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을 장인의 집으로 돌려 보낸 것 같다.
(1) 우리가 의무를 행하려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 자비를 가지고 돌아오신다는 것을 유의하자. 원인이 없어지면 결과도 그치게 되리라.
(2) 다윗의 열심이 미갈로 말리암아 오해된 것과 같다. 만약 하나님과 그의 법에 대한 우리의 열심이 그들 자신들과 우리들과 그들의 의무를 이해해야 할 사람들에 의하여 오해되고 실망을 주는 경우에도 우리는 인내로써 그것을 참고 나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자. 그리고 그것이 수치스런 일이고 피흘려야 하는 일이라도 우리는 더욱 인내해야 한다.
(3)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특별한 일을 할 때는 가능한 한 우리에게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것에서 완전히 떠나야 한다.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너희는 나를 좇으라."
Ⅱ. 아론이 모세를 얼마나 기쁨으로 맞이했던가! (27, 28절).
1. 하나님은 아론을 미디안 쪽에 있는 광야로 보내시어 모세를 만나라고 지시하셨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즐거이 만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함임을 기억하자.2. 아론은 그의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복종하여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급히 나아가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시던 곳, 즉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났다.
3. 그들은 사랑으로 서로 얼싸안았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로 서로 만나게 되었음을 그들이 깨닫게 되자 그들의 대면은 그만큼 더욱 더 기쁨에 넘쳤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입을 맞추었다'" 고 했다. 그것은 형제애와 옛정을 기억하는 표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함께 할 일에 대해서도 서로의 마음을 같이하리라는 다짐의 뜻에서인 것이다.
4. 모세는 그의 형에게 자기가 받은 사명과 거기에 따른 지시와 신임장에 대하여 고하였다(28절). 우리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존중하고 올바르게, 그리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Ⅲ. 신앙의 복종으로 이스라엘 장로들은 어떻게 모세를 만났던가? 모세와 아론이 애굽에서 그들의 임무를 처음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시하신 말씀을 전하고, 그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지시된 기적을 행하였을 때 그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영접을 받게 되었다(29-31절).
1.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신임하였다. 하나님께서 예고하셨던바 대로 "그들이 믿었다" (3:18). 그것은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라고 한 말씀과 같았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들이 행한 것과 같은 일들을 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들은 그들의 머리를 숙여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그것은 모세와 아론을 세우셔서 해방자로 보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감사의 심정을 표현한 것일 뿐 아니라, 그들의 명령에 즐거이 따르고 그들의 인도에 복종하겠다는 저들의 각오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