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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투옥된 애굽의 대신들(창세기 40:1-4)

이 바로의 술만드는 자와 빵굽는 자의 얘기가 요셉의 발탁에 기여한 바가 없다면,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고, 교회의 이익을 위해 통치된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바로 궁전의 두 관원장이 왕을 해치고 옥에 갇힌다. 높은 자리들은 미끄러지기 쉬운 자리들임을 기억하자. 또 왕의 호의만큼 불확실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의 행복으로 알고 그를 봉사하는 것을 자기네 일로 삼는다면 그들은 그가 바로보다 더 좋은 주인임을 발견할 것이고, 그들이 잘못하는 것을 그렇게 엄하게 가려내지도 않을 것이다. 이 바로의 두 신하들의 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연히 그의 잔에 파리를 빠뜨렸거나 빵에 모래알을 넣은 정도로 작게 생각한다. 어떤 것이었든 간에, 섭리는 이런 방법으로 그들을 요셉이 있는 감옥으로 데려왔다.

2. 시위대장, 즉 보디발 자신이 요셉을 그들과 함께 집어 넣었다(4절). (비록 그가 자기 아내를 화나게 할까봐 두려워서 풀어 주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그가 이제 요셉과 화해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리고 어쩌면 그의 결백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례 요한은 헤로디아를 즐겁게 하기 위해 목이 잘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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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해몽하는 요셉(창세기 40:5-19)

Ⅰ.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그것은 이들 두 죄수들에게 이상한 인상을 주며 그것이 신에게서 왔다는 확신을 그들에게 주는 보기 드문 꿈을 같은 날 밤에 그들의 머리 속에 가득 채웠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영에 직접 접근하는 길을 갖고 있어서, 그는 자기가 원하는 때면 언제나 그 사람들의 의지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자기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에게는 모든 마음들이 드러나 있고 고래로부터 그는 그의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백성에게도 꿈을 통해 말했다(욥 33:15). 다가올 일들이 아주 모호하게 예언되었다.

Ⅱ. 꿈으로 인해 생긴 이 죄수들의 감명(6절). "그들은 슬펐다." 그들을 슬프게 한 것은 감옥이 아니었고(그들은 거기에 아주 익숙해 있었고, 아마도 거기서 즐겁게 지냈을 것이다), 그 꿈이었다. 슬프게 되어야 할 사람들의 영을 하나님이 슬프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 뿐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외적인 고통을 잘 견딜 만큼 강해서 굴복하지 않는 죄수들을 벌 줄 수 있는 방법도 하나님은 찾아낼 수 있다. 그는 그들의 혼을 상처 입히고, 그들에게 짐을 얹어 줌으로써 그들의 수레바퀴를 빼버릴 수 있다.

Ⅲ. 그들에 대한 요셉의 큰 친절과 동정심. 그는 관심 있게 물었다.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7절) 요셉은 그들의 수종자이었고, 그 일에 있어서 그는 온화했다. 우리의 감시 아래 있는 자들의 슬픔까지도 관심 쓰는 것이 좋다. 요셉은 고난받음에 있어서 그들의 동료이었으며, 지금은 그들과 함께 죄수이고, 과거엔 또한 꿈꾸는 자이었다. 고난의 경험은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동정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우자.

1.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걱정 속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것과 형제들의 얼굴에 있는 슬픔의 원인을 캐묻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주 억압받는 자들의 눈물을 생각해야 한다(전 4:1).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써 주는 것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2. 우리 자신의 슬픔의 원인을 캐묻는 것이 필요하다. 왜 나는 이렇게 슬프게 보일까? 이유가 있는가? 그것은 타당한 이유인가? 어떤 것이든 간에 거기에 비교할 만큼 충분히 위안이 될 이유는 없는가? 나의 영혼아, 너는 왜 그렇게 낙심하고 있는가?

Ⅳ. 꿈들의 내용과 그 해석이 죄수들을 괴롭힌 것은 그들이 갇혀있기 때문에 꿈을 해석한다고 자처하는 애굽의 술객들에게 의지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여기 감옥에는 "해석자가 없도다" (8절). 감옥이나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곁에 두고, 섭리의 의미와 계획을 자기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해석자들이 있다. "만약 사람에게 정당히 행할 바를 보여 줄 수 있는 해석자가 천에 하나라도 있으면" 이라고 말한 엘리후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을 것이다(욥 33:23, 24). 즉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안내해 줄 해석자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요셉은 여기서 그들에게 옳은 방법을 지적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그는 자기가 경배하는 하나님을 뜻하며, 그에 대한 지식에로 그들을 인도하려고 한다. 올 일을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사 46:10). 그러므로 그는 평범하든 비범하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선견의 은사에 대해 찬양을 받아야 한다. 요셉은 자기의 찬사에 대한 경고를 전제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데에 유의한다. 다니엘도 그러하였다(단 2:30). 요셉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만약 해석이 하나님께 속한다면, 그는 자유로운 행위자이며, 그가 원하는 자에게 그 힘을 전달할지도 모르니, 당신들의 꿈을 나에게 말하소서."

1. 술 만드는 관원장의 꿈은 삼일 이내에 그의 석방과 재진출을 알리는 다행한 전조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그것을 그에게 설명했다(12, 13절). 그 시대의 단순성이 술을 잘 만드는 현대 기술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는 잘 익은 포도즙을 바로의 잔에 직접 짜넣었을 것이다. 요셉은 술 만드는 관원장의 해방을 예언했지만, 자기 자신의 영광과 자기 형들이 자기에게 복종하는 것에 대해 꿈을 꾸었었고, 지금 그것을 기억하고 어떠한 새롭거나 신선한 발견 없어도 자기 자신을 지탱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도들의 안락을 위한 환상들이 나타날 때까지는 오래 걸리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일들에 연결되는 에 반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견은 여기 기록된 것처럼 겨우 삼일을 앞두고 보인다.

2. 빵 굽는 관원장의 꿈은 그의 수치스런 죽음을 예고했다(18, 19절). 술 만드는 자의 꿈에 대한 좋은 해석은 그에게 자기의 일에 관계시키는 데에 용기를 주었다. 그러므로 위선자들은 그들이 선한 기독교인들에게 약속된 좋은 일을 들으면, 그 일에 전혀 관계도 없으면서 한 몫 끼려 한다. 그에게 보다 좋은 소식을 전해 주지 못한 것은 요셉의 잘못이 아니었다. 사역자들은 오직 해석자일 뿐, 그들이 일을 사실과 다르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이 성실하게 해서 그들의 전언이 불유쾌할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나쁜 꿈들은 해석을 기대할 수 없다.

Ⅴ. 요셉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궁정에서 한 친구를 얻었다(14, 15절). 그는 그가 피택을 예언했던 술 만드는 관원장에게 점잖게 호의를 구했다. "그러나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소서." 요셉이 받은 존경이 그의 옥 생활을 가능한 한 수월하게 해 주기는 했지만, 아무도 그가 자유를 갈망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여기서 보라.

1. 그가 자기의 일에 얼마나 점잖은 대변을 하는가!(15절). 그는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다음과 같이 말할 뿐이다.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 왔나이다." 즉 어디에 잘못이 있었든지 간에 그때 부당하게 끌려왔다. 그리고 자기의 고소자인 여주인과 자기의 심판관인 주인에 의해 잘못 취급받은 것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온화하게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였을 뿐이다.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변호하도록 소화될 때 우리는 가능한한 남을 비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남들의 죄를 비방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말자.

2. 얼마나 점잖은 요구를 그는 술 만드는 관원장에게 하는가! "다만, 나를 생각하소서, 당신이 형통하거든 나에게 친절을 베푸소서."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탄원은 "나를 이 집에서 건져 내소서"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바로의 궁정으로 데리고 가서 나에게 한자리를 주소서" 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원했고, 승진을 원한 것은 아니다. 섭리는 때때로 거의 탐내거나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명예를 계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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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0

잊혀진 요셉(창세기 40:20-23)

1. 요셉의 꿈 해석이 앞서 말한 바로 그 날에 입증된다. 술 만드는 관원장과 빵 굽는 관원장이 둘 다 제 3일에, 하나는 그의 일터로 그리고 하나는 교수대로 나아갔다. 보다 나은 곳으로와 보다 나쁜 곳으로서의 굉장히 큰 변화가 흔히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나니, 자연의 수레바퀴의 변혁들도 그렇게 갑작스럽다. 그들 각각의 경우에 대해 심판을 내리는 것은 바로의 생일을 축하하는 일이었고, 그 날엔 모든 신하들이 관례를 따라서 그를 섬기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들 두 명이 심문 받고 투옥된 이유를 밝히기 위해 나왔다. 왕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고래로 그들에게 바쳐진 존경심의 일부이었다. 그리고 만약 여로보암의 경우와(호 7:5) 헤롯의 경우(막 6:21)처럼 남용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좋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도 탄생의 날보다 더 좋은 날로서의 죽는 날에 대한 기대를 가지면서 모두 우리의 생일을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바로의 생일날 그는 이들 두 죄수들의 머리를 들었다. 즉 소환해서 심리(審理)했고 (나봇이 심판 받을 때, 그는 백성들 중에 높이 앉혀졌다. 왕상 21:9), "술 만드는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고 빵굽는 관원장은 목매달았다." 만약 술 만드는 관원장이 결백하고 빵 굽는 관원장이 죄가 있었다면 우리는 결백한 자의 결백을 드러내고 죄 있는자의 죄를 찾아내는 섭리의 공평임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만약 둘이 다 결백하거나 똑같이 죄가 있었다면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자들보다 더 높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느브갓네살 왕이 부렸던 것 같은 권력으로(단 5:19, 그가 베고자 하는 자를 베었고, 그가 살리고자 하는 자를 살렸다) 자만하는 그런 거물급 왕들의 횡포의 한 예이다.

2. 술 만드는 관원장에 대한 요셉의 기대의 실망, 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다(23절).

(1) 여기 망측한 배은망덕의 예를 보라. 요셉은 그에게 잘 대접받을 만큼 했으며, 그에게 봉사했고, 그를 동정했으며, 그의 꿈에 대한 좋은 해석을 해 주었고, 자기 자신을 그에게 모든 면에 특별한 사람이라고 추천했었다. 그런데 그는 그를 잊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랑을 미움으로 돌려 받고 존경을 경멸로 되받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2) 자기 자신이 평안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지 보라. 선지자가 주발로 포도주를 마시고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조심하지 않는 자들을(암 6:6)말하는 것은 이 이야기에 대한 암시인 것 같다.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배우자. 요셉은 아마도 술 만드는 관원장에 대한 관심에 너무 많이 의지했던 것 같고, 그로부터 너무 많이 약속을 받았던 것 같다. 그는 자기의 낙망으로 인하여 오직 하나님만 신뢰할 것을 배웠다. 우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적게 기대해도 너무 적게 기대할 수 없고, 하나님에게는 아무리 많이 기대해도 너무 많이 기대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요셉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을 통찰한다. 요셉의 고통받는 동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도둑과 같았다. 하나는 구원을 받고 다른 하나는 저주받은 것과 같다(이것은 부루톤씨에게서 인용한 라이트푸트 박사의 말이다). 요셉이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은 요셉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당신의 나리에 들어갈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말했던 사람은 잊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술 만드는 관원장의 요셉에 대한 배은망덕을 잘도 비난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주 예수께 훨씬 더 불성실하게 행동한다. 요셉은 다만 술 만드는 관원장의 석방을 예언했을 뿐이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구원을 이루었고 왕에게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였다. 그러나 비록 가끔 그를 기억했고, 그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우리는 그를 잊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바보같고 미련한 백성처럼 잘도 그에게 악하게 보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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