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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야곱의 여행 준비(창세기 35:1-5)

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가 벧엘에서 한 서원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서원을 이루도록 그를 그곳으로 가게 하신다(1절). 야곱은 자기가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28:21, 22) 말한 바 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어 야곱으로 하여금 먹고 입을 것 뿐만 아니라 많은 땅과 큰 두 무리를 이루게 하시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의 서원을 잊어버리고 오랫동안 그 서원의 실현을 지체했던 것같다. 이제는 그가 가나안에 돌아온지도 7, 8년이 지났다. 그는 그곳에서 넓은 땅을 샀고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이라 부르신 것을 기억하고 제단을 쌓기도 하였다(33:19, 20). 그러나 여전히 벧엘은 잊고 있었다. 시간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느낌과 그 은총으로부터 받은 깊은 인상을 퇴색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비록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집안에 대단히 괴로운 시련을 주시어(34장) 그가 자기의 서원을 기억하고 이를 수행하도록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찾아오시어 그것을 회상토록 해 주신 것이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잊고 있는 우리의 의무를 몇 번이고 양심을 통해서나 어떤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을 통해서나 간에, 이런 저런 방법으로 회상하도록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2.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맹세를 했으면 그 맹세한 일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전 5:4). 그러나 그래도 완전히 지키지 않는 것보다는 좀 늦더라도 실천하는 것이 더 좋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서 거기서 정착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야곱만이 아니라 야곱의 온 가족이 야곱의 헌신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살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시 27:4). 하나님의 집 벧엘은 여관이 아니라 내 집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그 서원을 기억하게 하시지 않고 그가 서원을 했던 그 때 사정을 회상하도록 하시었다.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 고난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생각해 내야 한다(시 66:13, 14).

Ⅱ. 야곱은 온 집안으로 하여금 이 제전을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한다. 준비해야 할 것은 여행과 이사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신앙의 예식을 수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2, 3절).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경건한 의식 이전에 경건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게 하고 나아와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사 1:16-18).

2. 가장들은 가정의 종교적 신앙을 독실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권위를 사용해야만 한다. 우리들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의 온 집안이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수 24:15). 그가 그의 집안 식구에게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18:19)명령하고 있는 것을 잘 살펴보라.

(1) 식구들은 모두 "이방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야곱의 가정에 이상한 신들이 있었다니! 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호와에게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르침 받고 있는 그러한 가정이 이방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두 번씩이나 나타나셨고 또 가끔 나타나신 바 있는 그러한 가장이 그 신들을 묵인할 수가 있을까? 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야곱의 커다란 결점이었다. 자기 자신이 착하고 훌륭하다고 해서 언제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도 마땅히 그래야 하듯 그처럼 훌륭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종교적인 가정이라고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많은 실수가 있고 또 때로는 의심할 수 있는 낯선 신을 모시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야곱의 집안에서는 라헬이 자기의 드라빔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떤 두려운 생각을 지니고 남몰래 어떤 미신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세겜에게서 잡혀 온 사람들은 그들대로 자기네 신을 가지고 왔고, 아마 야곱의 아들들은 그저 욕심으로 그 신들을 가졌을 것이다. 어떻게 그 신들이 야곱의 집안에 들어 왔든 간에 이제 "그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2) 그들은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어야만" 했다. 그들은 예절에 맞는 옷을 입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외모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므온과 레위의 손은 피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정결케 해야만 했고, 피로 얼룩진 그들의 옷도 새 옷으로 바꾸어 입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다만 마음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는 의식이었다. 새로운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깨끗한 옷이나 새옷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라이트푸트(Lightfoot)박사는 스스로를 "정결케 하고 씻었다" 는 것은, 세례로써 세겜과 아람 사람들을 개종시켜 야곱의 종교에로 이끌어 들였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전의 할례는 추악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3) 그들은 모두 함께 벧엘로 가야만 했다(3절). 가장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갈 때 자기 가족들을 모두 함께 데리고 가지 않으면 한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Ⅲ. 그의 가족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우상과 미신적인 것들을 모두 갖다 버렸다(4절). 만약 야곱이 더 좀 일찍이 그렇게 하게 했더라면, 양심적으로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그들은 좀 더 일찍이 그 모든 것을 버렸을 것이다. 때때로 무언가 개혁하려는 시도는 예상한 것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러한 노력에 대해서 우리가 두려워하듯 그처럼 완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야곱의 종들은 물론 그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신구로 썼든 자기네들의 신을 칭송하기 위해서 썼든 간에 귀거리까지도 갖다 바쳤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버렸다. 개혁은 모든 면에 골고루 미치지 않으면 진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에브라임이 자기의 모든 우상을 버리면서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호 14:8) 한 것처럼 또 자기 우상들에게 "나가라" (사 30:22)고 한 것처럼, 그들이 주저하지 않고 즐겁게 버렸기를 희망한다. 야곱은 그들의 우상들을 다 가두어, 생각건대 후에 그들이 다시 찾아 가지지 못하도록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 묻어 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보이지 않게 묻어서 "박쥐나 두더쥐에게 던져 버리듯" (사 2:20) 죄를 완전히 떨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Ⅳ.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세겜에게 벧엘까지 갔다(5절).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비록 가나안 사람들이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에게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힘이 그들을 사로잡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이 이사를 하고 있는 이 때가 자기 이웃을 해친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의무를 수행하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야곱의 집이 죄를 범했을 때, 야곱은 이웃에 있는 다른 종족들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방의 신들을 다 버렸고 그들은 모두 함께 벧엘로 내려가자, 두려워한 것은 오히려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족속들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 우리는 특별하신 보호 아래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출 34:24 참조). "네가 매년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에 생기게 하여 세상을 다스리신다.

 

35: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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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벧엘에 도착한 야곱(창세기 35:6-15)

야곱과 그의 일행은 안전하게 벧엘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자.

Ⅰ.야곱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7절) 틀림없이 희생 제물을 드렸을 것이다. 자기가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서원한 바와 같이 자기 가축의 십분의 일을 희생 제물로 바쳤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제물을 바치면서 야곱은 이전의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새롭게 기억나도록 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그와 그의 가족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사랑해 주실 것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그 장소를 (제단을) 엘벧엘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이전에 그가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고 그에게 예배드렸었다. 그런데 이제 벧엘에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엘벧엘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성도들이 거룩한 규례에서 얻는 많은 위로와 축복은 "벧엘에서, 곧 하나님의 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엘벧엘, 곧 그 집의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거룩한 규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된 것일 뿐이다.

Ⅱ. 그 곳에서 야곱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장례지냈다(8절). 생각건대, 야곱은 가나안으로 온 뒤에 자기의 가족들이 세겜 근처에서 살고 있는 동안 헤브론에 있는 자기의 아버지 이삭을 방문했던 것같다. 아마 리브가는 이미 사망했고, 그의 유모(이 여인에 대해서는 24장 59절에 나타나 있다) 만이 남았는데, 자기 아이들도 가르치고 또 그 유모 동족인 자기 아내들과 벗이 될 수도 있고 해서 자기 가족과 함께 있도록 집으로 에려 온 모양이다. 바로 그 드보라가 벧엘에 있는 동안 죽은 것이다. 모두가 크게 슬퍼했다. 어찌나 슬퍼했는지, 그가 상수리나무 밑에 묻혔는데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 즉 곡함의 상수리라 불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가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충실하고 성실했던 종을 우리는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드보라는 직접적인 혈연 관계도 아니고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가정은 이 유모에게 정중한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할 경우 우리는 생전에 그가 어떻게 봉사했는가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만날는지 모른다. 어쩌면 벧엘, 하나님의 집에서 죽음을 만날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3. 가정의 어려움은 가정이 모두 개혁을 하고 종교가 점차 발전하여 경건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도중에도 생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삼가면서 즐거워하여야 한다.

Ⅲ.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흠향하시고 "벧엘의 하나님" (7절)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신 것에 대하여 응답하시고 고통 중에 있는(8절) 그를 위로하시기 위하여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는 의무의 완수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은총을 통해 나타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1.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이 바뀌었음을 재확인하셨다(10절). 이렇게 이름이 바뀐 것은 전에 야곱과 씨름한 천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32:28). 여기에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신 거룩한 주님 곧 세키나에 의하여 이름이 재확인되었다. 그 때는 에서의 두려움에 싸여 있는 그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의 두려움에서 그가 용기와 안위를 갖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보다 누가 더 강할 수 있겠는가? 그처럼 고귀하게 된 사람들을 절망시키고 좌절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야곱의 언약을 엘샤다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재확인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 모든 것이 풍족하여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11절)이므로 약속한 바를 제 때에 지킬 수 있고, 가장 어려운 때에 너를 도울 수 있고,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줄 수가 있다" 고 하는 뜻이다. 가끔 이전에도 살펴본 바 있지만 두 가지 사실이 약속되었다.

(1) 야곱이 큰 민족의 아버지가 되고,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이스라엘의 각 족속은 하나의 국민이었고 12족속은 국민의 연합체였다), 영광과 힘을 얻을 것,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는 것이었다.

(2) 좋은 땅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12절).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그 땅을 양도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땅을 지금 점유하고 있는 가나안 사람으로부터 양도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것인데, 지금은 야곱과 야곱의 자손에게 물려주시는 것이다. 자손은 있는데 재산은 없고, 재산은 있는데 자손이 없어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야곱은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이 두 약속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야곱이 혹 어떤 생각을 가졌다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분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약속된 씨이고 하늘은 약속된 땅이기 때문이다. 모든 하나님의 사랑에 있어서 전자는 기초가 되고 후자는 제일 위를 장식하는 돌이 된다.

3.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말씀을 하시던 곳에서 그렇게 올라가신 것은 어떤 영광스러움을 직접 눈으로 보도록 하시려고 한 것 같다(13절).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행복한 교제는 극히 짧고 일시적이어서 곧 끝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하늘에서는 영원히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주님과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나 여기 이 세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Ⅲ. 그 곳에서 야곱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14절).

1. 그는 기둥을 세웠다. 그가 밧단아람에 갈 때 자기가 베고 자던 돌을 세운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사기가 자상하여 있었고 급하게 도망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욱 견고하고 훌륭하게 기념비를 세울 시간이 넉넉했다. 아마도 그 때 그 돌은 이번에 기둥을 세우는데 넣었는지도 모른다. 이 기둥을 자기가 하나님과 만난 거룩한 기념비로 하기 위하여 야곱은 기름과 다른 전제물(奠祭物)들을 그 위에 부었다. 이전에 그의 서원은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이는 건축자를 찬양하기 위한 집처럼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여기에서 그 약속을 지키어, 기름을 부어 이 기념비를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2. 그는 그가 전에 명명한 바 있는(15절)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바로 이 곳이 후에는 그 이름이 지닌 거룩한 명예를 잃어버리고 벧아벤, 곧 죄악의 집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여로보암이 황금의 송아지를 그 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비록 선한 사람들조차도 종교적인 정직과 외형을 후대에게 물려주기 힘들 듯이, 거룩한 장소를 계속 물려주는 것도 참으로 힘든 일이다.

 

35:7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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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의 죽음(창세기 35:16-20)

이 곳에는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써 있다.

1. 도중에 라헬은 산기로 인한 진통을 느꼈다. 그리하여 퍽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도, 다음 고을인 베들레헴에 도착할 수가 없었다. 여인에게는 진통이 갑자기 오기 때문에 진통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진통을 연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야곱은 곧 장막을 치고 해산하기에 편리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2. 라헬은 심한 진통을 겪었다. 보통 있는 산고보다는 더 심한 산고로 괴로움을 받았다. 이는 죄의 결과다(3:16). 인간의 삶은 슬픔과 더불어 시작하고, 장미꽃의 즐거움은 가시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3. 산파가 라헬을 격려하였다(17절). 분명히 산파가 옆에 붙어있어 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산파가 라헬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하였다. 라헬이 요셉을 잉태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도 또 하나의 아들을 주실 것이라" 고 말한 바 있는데, 산파는 이 일을 기억하고, 그 말을 하면서 라헬을 격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격려도 그가 정신을 차리게 하지는 못하였다. 하나님이 두려움을 쫓아내시지 않는 한, 누구도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산파는 어떤 권위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듯 막연히 "두려워 말자" 하고 말한 것뿐이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나 친구들을 잠깐 동안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위로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실망하고 말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위로를 영원한 생명의 희망,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근거 위에서 찾아야 더 좋은 것이다.

4. 그녀의 진통은 한 아이의 생명을 낳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스스로의 죽음을 마련한 것이었다. 비록 해산하는 아픔과 고통이 죄로 말미암은 것이긴 하지만, 때때로 그 고통은 거룩한 여인에게 치명적인 경우가 있다. 비록 그러한 여인들은 해산하는 데서는 구원을 얻지 못했지만 영원한 구원의 축복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 라헬은 전에 "나에게 자녀를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습니다" 고 감정적으로 말했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한 아이를 가졌는데(이번이 그녀의 두 번째 해산이다), 이제 죽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죽음이 "혼의 떠남" 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육신의 죽음은 다만 혼이 영계로 떠나가는 것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5. 그녀는 죽으면서 그녀의 새 아들을 베노니라고 불렀다. "내 슬픔의 아들" 이란 뜻이다. 심한 진통을 겪고 태어나지 않은 많은 아들들도 그 부모에게 커다란 슬픔을 주고, 그 어머니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수가 있다. 잉태하고 낳고 키우고 하는 것은 이미 어머니들에게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겪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 성장한 다음에는 부모들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가능하다면 부모님께 이 모든 은혜를 갚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아들을 부를 때마다 그 아내의 어머니의 죽음을 되새기는 것이 싫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 곧 오른 손의 아들이라 불렀다. 즉 "내게 참 귀한 자식 내 바른 쪽에 앉아 애 축복을 받은 아들, 내가 늙었을 때 내 오른 팔의 지팡이 같이 될 아들" 이라는 뜻이다.

6. 야곱은 라헬을 그녀가 죽은 곳 근처에다 묻었다. 해산하다 죽었기 때문에 자기의 가족들이 묻혀 있는 데까지 시선을 옮겨가는 것보다 빨리 그 자리에서 장례를 치르는 갓이 좋았을 것이다. 영혼이 죽음 뒤에 쉴 수 있다면, 몸이 어디에 묻히느냐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곳에 묻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례의 자세한 이야기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야곱이 가장 애통했을 것이다. 커다란 고통이 때로는 커다란 위로가 있는 직후에 닥친다는 것을 명심하자. 야곱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환상을 뵙고 너무 기로만장하여 들뜰까 봐 그를 겸허하게 하시기 위해 육신의 가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임하는 특별한 은총을 누리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녀에게 흔히 있는 모든 고통도 또한 당하리라고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보라가 살아 있었다면 라헬에게 큰 위로가 되었겠지만 그녀는 라헬이 죽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죽음이 집안에 찾아올 때 때로는 두 죽음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죽음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유대교의 어는 저술가는 "드보라와 라헬의 죽음은 그 집안의 딸 디나로 말미암아 생긴 세겜인들에 대한 살육 을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 말했다.

7. 야곱은 오랜 후에도 알 수 있도록 라헬의 무덤에다 비를 세웠다(삼상 10:2). 하나님의 섭리는 이 장소가 후에 베냐민의 몫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처럼 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야곱은 넘치는 기쁨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세웠었는데(14절) 지금은 슬픔을 기억하기 위한 비석을 세웠다. 이는 슬픔과 기쁨을 모두 우리 마음속에 기억해 두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고, 또 그러한 슬픔과 가쁨의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교회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에서 언약과 매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그들을 가르치시고자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호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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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9 없음.

 

35:2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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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의 치욕(창세기 35:21-29)

1. 야곱은 다시 길을 떠났다(21절). 그도 그의 선조들처럼 약속의 땅에서 마치 낯선 나라에서처럼 단순히 체류하였기 때문에 한 곳에서 오래 있지를 못하였다. 라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직후에도 야곱이 이스라엘이라고 불이워진다(21, 22절). 그러나 이 다음에는 그렇게 자주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워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후에 역사가(모세)가 고통을 겪는 야곱의 놀라운 인내와 하나님께 대한 자기 봉헌의 태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의 욕심이나 분노, 혹은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은 어떠한 강한 자보다 더 강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은 여전히 장막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살 도성은 저 세상에서 그를 위해 예비되어 있었다.

2. 르우벤의 범죄. 그가 지은 범죄는 가증스러운 악행이었다(22절). 그것은 "자기 아비의 아내와 같이하는" 죄로 이방인에게도 그런 짓은 흔하지 않다고 사도 바울이 탄식한 바로 그러한 범죄이다(고전 5:1). 이 범죄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 생긴 것이었다. 야곱이 없을 때였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불행한 사고는 야곱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것 같다. 빌하에게 더 큰 죄가 있겠지만 야곱은 그것 때문에 그녀를 버려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르우벤의 범죄는 너무나 야곱을 분노케 하였다. 그리하여 르우벤은 자기의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잃고 말았다(49:4). 장자가 언제나 가장 훌륭한 것이 아니고 또 가장 장래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사건은 르우벤의 범죄였지만 야곱에게는 심한 고통이었다. 그리고 더욱이 괴로운 것은 이 사건이 이 조그만 지역에 모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야곱은 이 이야기를 듣고 더 할 수 없는 비탄과 치욕, 두려움과 분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르우벤은 자기 아버지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이를 숨기려고 생각했다. 죄를 짓고 몰래 숨기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성공하지 못하고 실망하고 만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기 때문이다.

3. 이제 막내 베냐민이 태어났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이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열 두 지파의 족장들의 이름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후에는 여러 번 아주 자주 이 족장들이 언급되고 헤아려진다. 심지어 성경의 끝에서도 나타난다(계 7:4, 21:12).

4. 야곱이 헤브론에 있는 아버지 이삭을 방문했다. 아마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 이미 한번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것이다. 기록은 없지만 그렇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의 아버지의 집을 못 견디게 그리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의 온 가족이 아버지가 계시는 그 근처에서 살든가 아버지와 함께 살지는 못하였다(27절). 그런데 아마 리브가가 죽었기 때문에 이삭이 외롭게 되자 다시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모시고 온 것 같다.

5. 이삭의 나이와 그의 죽음이 여기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계산해 보면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뒤 여러 해 동안을 산 것 같지는 않고 또 그가 그곳에서 살기로 선택한 때가 언제인가도 분명하지는 않다. 온유하고 말이 없는 이삭은 모든 족장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180세를 산 것이다. 아브라함은 수명이 175세였다. 이삭은 자기의 유언을 남긴 후 약 40년 동안을 더 살았다(27:2). 우리는 우리의 수명을 한 시간도 어 연장할 수 없고 한 시간도 더 단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때에 어그러지지 않게 늘 가다듬고, 우리의 가정을 언제나 질서 있게 다루면서 풍요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기로 화해한 야곱과 에서가 경건하게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것이 특별히 주시되어 있다(29절).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은총으로써,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즉각 동생을 죽이겠다고 약속한 에서의 마음을 돌려 놓으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27:41).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의 악행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어하신다. 악인들의 손을 묶어버리실 수도 있고 마음을 돌려놓으실 수도 있는 것이다.

 

35:22 없음.

 

35:23 없음.

 

35:24 없음.

 

35:25 없음.

 

35:26 없음.

 

35:27 없음.

 

35:28 없음.

 

35:2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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