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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돌아가려는 결심(창세기 31:1-16)

야곱은 자기 외삼촌의 일을 곧 그만 두고, 자기 재산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고 아내들의 충고와 동의가 있었으므로 의분의 마음으로 이 결심을 한 것이다.

Ⅰ. 의분이란? 라반과 그의 아들들이 야곱에게 대해 대단히 경우에 어긋나고 고약하게 대하므로, 그는 더 이상 안전하고 만족하게 그들 사이에서 머무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속에는 그들이 품고 있는 악의가 드러나 있었다(1절). 야곱이 괴로워하라고 일부러 듣게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30장은 라헬이 레아를 질투한 사실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본 31장은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을 시샘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보자.

(1)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의 번성을 극도로 과장하고 있다. "그는 이 모든 영광을 차지했다" (그는 큰 거부가 되었다: 한글개역) 그런데 도대체 그들이 그처럼 떠들어대는 "이 모든 영광"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떼의 갈색 양과 얼룩진 염소들(아마 그 중에서도 색깔이 좋은 것은 더 훌륭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약간의 낙타와 나귀등이었다. 이것이 말한 "이 모든 영광" 이다. 부는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영광스러운 것으로 보이지만, 하늘의 일을 사모하고 그와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영광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세상의 부를 지나치게 귀하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탐욕과 질투와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근본적인 잘못이다.

(2) 그들은 마치 야곱이 가진 소유가 모두 부정하게 얻어진 것처럼 야곱의 성실성을 비열하게 비난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았다."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라반의 아들들이 관리하여 "사흘 길이 떨어진" (30:35, 36) 곳에 갖다 둔 가축들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그들은 야곱이 가진 것이 아버지에 속한 모든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사실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야곱의 비위를 의도적으로 상하게 하려고 그렇게 얼버무려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 언제나 선한 양심을 조심스럽게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 형상 남들에 의하여 좋은 평판을 듣는 것은 아니다.

[2] 이 같은 것이 바로 외적인 번성이 지니고 있는 허무요 괴로움이다. 또 이러한 외적인 번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웃을 질투하게 한다(전 4:4). 또한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 27:4). 하늘이 축복하는 자를 지옥은 저주하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옥의 자식들도 저주한다.

2. 라반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야곱에게 호의적이었으나 그 표정이 이번에는 달라 졌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의 표정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2, 5절). 라반은 본래 야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전보다 더 심했다. 질투는 흔히 표정에서까지 나타나는 죄임을 명심하자. 그렇기 때문에 "악한 자의 눈" 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잠 23:6). 기분 좋지 않는 표정은 가정의 평화와 사랑을 깨뜨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라반의 노한 표정 때문에, 그의 가정이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최대의 축복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당연지사이다.

Ⅱ. 야곱이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에 의해서 된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3절). 비록 야곱이 여기에서 지극히 어려운 곤란에 직면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하시기 전에는 그 일은 고만두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좇아 거기에 왔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되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들의 의무임을 명심하자. 또한 우리가 나가든 들어오든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야말로 큰 위로가 되는 일이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시의 내용은 자기 아내들에게 하는 이야기 속에서 잘 드러나 있다(10-13절). 야곱은 그가 가축에 대하여 꾼 꿈을 자기 아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자기가 선택한 얼룩진 양들이 한없이 불어났고, 하나님의 천사가 어떻게 그 꿈속에서(나는 10절과 11절의 꿈이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 양떼를 보여 주면서, 그가 크게 많은 재산을 갖게 된 것은 우연도 아니고 그 자신의 지혜로운 계략 때문도 아니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들려주고 있다.

1.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이 야곱에게 행한 모든 괴로움을 보시고 그를 보상해 주어야겠다고 결정하신 것이다.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보았노라. 내가 한 시도 그 일에서부터 눈을 떼지 않았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닫는 것 이상으로 그 섭리하심에 있어서 공평하신 분이심을 명심하자. 그리고 그러한 공평한 섭리하심에 의 하여 피해 입은 자들은 진정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야곱이 그처럼 부자가 된 것도 그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2.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13절)라고 선언하신 그 선언 속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 때의 약속을 성취하려 하시었기 때문이다. 벧엘은 하나님이 야곱과의 약속을 새롭게 해 주신 곳이다. 이 세상에서의 번성과 성공이 그저 일반적인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약속하신 사랑, 곧 약속하신 자비를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었을 때, 다시 말하면 "벧엘이 하나님" 이신 그 하나님으로부터 그 모든 번성과 성공을 받아들이고, 이제 모두 하나님께 속한 내 삶의 약속을 이루어 주려 하시는 것일 때, 그것은 최대로 행복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는 부를 가져온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과 더불어 부가 점점 늘어나 희망에 찬 번성이 약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이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기 시작할 때도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일어나 돌아가라" (13절).

(1) 라반과 함께 있는 동안, 그의 경건한 삶의 자세가 때때로 중단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을 때의 그 경건한 헌신 자세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야곱이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에는, 다만 하나님께서 때때로 돌보아 주셨을 뿐인데, 이제는 "네가 기둥에 기름을 붓고 서원했던 그 곳으로 돌아가라. 이제는 네가 부유하게 되기 시작하니 제단에 제사를 지내고 희생 제물을 바칠 것을 생각할 때가 된 것이다" 고 말씀하신 것이다.

(2) 가나안에 있는 너의 즐거움에고 돌아가라고 하신다. "네 친척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 야곱은 하란에서도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최선의 의미에서 기대하고 생각해야 할 친척은 하나님의 계약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와 더불어 함께 살고 함께 죽을 수 있는 그런 친척들이다. 가나안의 상속자들은 아무리 자기들이 처한 장소에서 확실한 근거를 잡고 살고 있다 할지라도, 가나안으로 오기까지는 자기 집에 있다고 생각하지를 말아야 한다.

Ⅲ. 아내들이 알고 동의해 주었기 때문이다.

1. 보다 은밀하게 의논하기 위해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들판으로 불러내었다. 혹은 라헬은 레아가 머무는 곳으로 오려하지 않고, 레아는 라헬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으려 해서 두 아내를 함께 만나기 위해 들로 나오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들판을 떠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자기의 목적과 생각을 언제나 그녀와 함께 상의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서로간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상호적인 신임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깊은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를 언제나 남편이 신뢰할 수 있게 한다(잠 31:11). 야곱은 자기의 아내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이야기하였다.

(1) 자기가 얼마나 힘써 그들의 아버지를 섬겼는가를 말했다(6절). 비록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기들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그들에게 수행해야 우리에게 위로가 있을 것임을 명심하자.

(2) 그들의 아버지가 자기를 얼마나 불성실하게 대접했는가를 말했다(7절). 라반은 야곱과 맺은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 첫 해가 지나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시는 것을 보고는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다. 즉 양의 색깔이 점 있는 것으로 품삯을 주겠다든지, 얼룩얼룩한 것으로 주겠다든지 하면서 조건을 바꾸었는데, 그 때 그 때마다 야곱은 더욱 풍성하게 되자, 그 색깔을 바꾸기를 열 번이나 했던 것이다. 그것은 야곱을 속인 것이 아니라, 실상은 눈에 띄게 야곱을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남을 정직하게 대접하는 자가 반드시 정직하게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와 함께 해 주셨는가를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악의에서 야곱을 보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금하사 나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셨느니라."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해 주실 것을 믿어 야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멸망시키려는 라반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야곱에게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9절). 이처럼 정의의 하나님은 라반의 재산을 취하여 야곱의 고역에 보상을 치르셨다. 마찬가지로 후일에도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인들을 위해 일한 대가를 그들의 노획물로 갚아 주셨다. 비록 사람들은 잊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행한 사랑의 봉사와 노동을 잊으시는 불의의 하나님이 아니심을 기억하자 (히 6:10).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불의한 계획에 휘말려 있는 정직한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는 것이라" 는 사실을 기억하자(잠 13:22).

(4) 야곱은 아내들에게,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셨다는 것을 말하여(13절) 자기의 결심에 대하여 의혹을 품는다든가 그 고향이나 가족들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다든가 하는 일이 없게 했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정신에서 나온 계획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2. 그의 아내들은 야곱의 결심에 쾌히 동의하였다. 아내들도 또한 그들의 슬픔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고(14-16절), 자기들을 낯선 이방인처럼 대하고 혈연으로서의 사랑을 갖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였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의 재산이 하나님께서 라반의 재산을 취하여 자기에게 품삯으로 넘겨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반해서, 두 아내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몫(지참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라반으로 하여금 두 가지의 빚을 갚게 하신 것이다. 즉 라반은 자기의 종(야곱)과 자기의 딸들에게 빚을 갚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 그 아내들은 자기 동족들과 아버지의 집에 싫증이 나서, 그들을 잊을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을 오히려 선용해서 이 세상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쾌히 남편을 따라 가기로 하였다.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의 짓에 맡긴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준행하라." 남편들에게 도움을 주는 아내들은 결코 남편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데 대한 방해물이 되지 아니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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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야곱(창세기 31:17-24)

Ⅰ. 야곱은 라반에게서 도망하였다. 생각건대, 그는 이 일을 오랫동안 심사숙고했고, 이에 대한 많은 궁리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긍정적인 명령을 해 주셨기 때문에, 지체할 수도 없었고 또 그 하늘의 환상을 불순종할 수도 없었다. 라반이 사흘의 여행길이 되는 거리에 있는 그의 아들들이 치는 양들의 털을 깎으러 간 때가 최초의 기회를 제공했다(19절).

1. 야곱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기의 일자리를 갑자기 떠나는 것은 합당했음이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시를 하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보존이라는 기본적 법칙에 의해서도 타당했다. 자기 보존의 법칙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우리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한, 우리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도모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2.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야곱이 몰래 떠난 것은 현명한 행동이었다. 만약 라반이 알면 자기를 방해하거나 혹은 재산을 빼앗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3. 야곱은 정직하게 자기의 몫 이상의 것을 취하지 아니했다. "그가 얻은 짐승을 이끌고" (18절)라고 했다. 그는 섭리가 주신 것만을 취했다. 그것으로 만족했을 뿐, 손해 본 것을 자기 손으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라헬은 자기 남편만큼 정직하지는 못했다. 라헬은 "자기 아버지의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조상(彫像)을 훔쳐 가지고" (19절) 갔다.(한글 개역: 드라빔). 그런데 히브리 사람들은 이 조상을 드라빔이라고 한다. 이것이 혹자들은, 그 가문의 조상을 상징하는 작은 조상(彫像)이나 초상화라고 한다. 그런데 라헬이 그것을 무척 거지고 싶어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드라빔이란, 예배의 대상이거나 신탁(神託)을 위한 종교적인 목적을 가진 가신(家神)이 아니면 가정 수호신(R.S.V.)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라헬이 이것을 가지고 간 것은 (패트릭 주교가 주장한 바와 같이) 그것이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어 탐이 났다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모시고 싶었다거나, 자기들이 어디로 도망했는지 라반이 그 드라빔을 가지고 알아내어 쫓아올지도 모른다고 하는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에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야곱은 자기 아내들과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으로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그 아내들이 미신적인 행동을 취할 만큼 어리석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로 하여금 그러한 것을 신으로 여긴다 해서 안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드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사 46:1, 2).

Ⅱ. 라반은 야곱을 추적해 갔다. 야곱이 도망한지 사흘째 되던 날 라반은 이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즉각 자기의 형제 곧 온 친척을 끌고 다시 일을 시키든지 아니면 야곱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 위해서든지 야곱을 쫓아간 것이다(야곱의 후손들을 뒤쫓은 바로와 애굽 사람들 같았다). 7일 동안 달려가 마침내 야곱에게 이르렀다(23절). 아마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라반은 이런 고생의 절반도 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 올바른 사랑을 위해 바치는 정열보다 더한 정열을 악한 일을 하는 데 바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보다는 분노에 더욱 열심을 낸다. 마침내 라반은 야곱에게 이르렀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 라반이 야곱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사 "선악간에 야곱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라" (24절)고 하시면서, 야곱을 감싸고 라반을 꾸짖으시면서 그 싸움에 개입하셨다. 즉 야곱이 가는 길을 반대하는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것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히브리인의 사고법을 24장 50절에서도 볼 수 있다. 7일 동안 쫓아오면서 라반은 야곱에 대한 노여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야곱에 대한 자기의 욕심이 채워지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출 15: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라반의 마음을 말씀 한 마디로 묶어 버리셨다.

1. 하나님께서는 꿈이나 선잠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귀를" 열어 주시고, "인치듯 교훈 하신다" (욥 33:15, 16).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속삭임으로 인간의 양심으로 인간을 꾸짖으신다. 현명한 사람은 그 음성을 듣고 주의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양심을 다스리시고 악인들이 선인들에게 접근치 못하도록 막으시기 때문에, 비로소 선인들의 안전이 전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가끔 그의 백성들이 멸망하기 직전에 놀라운 역사를 통하여 그들을 구해 주신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모두 처형하라는 왕명이 내리기 직전에 그의 흉계로부터 구원을 받았다(에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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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개입된 싸움(창세기 31:25-29)

이곳에는 라반과 야곱이 후에 길르앗이라고 불리워진 산에서 만나 서로 논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논쟁은 서로 비난하기보다는 이유를 따지는 논쟁이었다(25절).

Ⅰ. 라반은 야곱에게 성이 나서 비난을 퍼붓고 있다.

1. 라반은 야곱을 자기의 선의를 의도적으로 부당하게 훼손한 배신자라고 비난한다. 그는 야곱을 범인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기의 딸들에 친절을 베풀려 했다고 한다(27, 28절). 또한 될 수 있는 한 사랑과 우애의 예를 갖추어 보내려 했으며, 엄숙한 작별식을 가지려 했었고, 자기 손자들에게 입을 맞추려 했으며 (이것이 라반이 그들에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또한 그 고장의 어리석은 관습에 따라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그들을 보내려 했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120여 년전, 바로 그 집안에서 리브가가 떠날 때는 기도와 축복 속에서 보내졌다(24:60). 그런데 즐겁고 떠들썩한 잔치 속에서 보내겠다고 하는 것은 그 집안의 신앙이 매우 쇠퇴해지고 성실성이 상실되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문제는 라반이 야곱을 정중히 떠내보내려 했다고 위장한 사실이다. 악한 사람들은 보통 자기들의 악한 계획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실망을 느낄 때면, 그들은 친절하고 공평한 것 밖에는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았었던 것처럼 꾸민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들은 그들이 의도했던 놓지 못한 의도들이 잘 되지 않으면, 자기들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의도했던 바가 되지 않고 다르게 되었을 때는, 그 다르게 된 것이 실은 자기들이 의도했던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속고 말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럴 수 없다. 또한 라반은 오히려 야곱이 그 아내들을 포로처럼 끌고 도망치려는(26절) 나쁜 계획을 했다고 비난한다. 본래 마음속에 좋지 못한 생각이 가득찬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무런 생각 없이 순수하게 한일조차도 나쁘게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잘못을 왜곡하게 표현하면서 더 악화시키는 것이 악을 의도적으로 행하는 자들의 솜씨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악한 의도에 반대하면서 고의적으로 악을 범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해야 한다(이러한 표현이 그렇게 부당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서 논의된 전체적 문제는 이러하다.

(1) 그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30절).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게 있으나" 하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악한 자에게 복수를 하거나 올바른 자를 구원해 주거나 하는(말하자면 야곱에게 선행을 베풀) 권리와 힘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악한 사람은 흔히 자기가 남을 해할 수 있는 권력이 있음을 더 귀중히 생각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선을 행할 수 있는 권력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조금도 남에게 친절을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서운 사람으로 봐 주기를 좋아한다.

(2) 그는 하나님의 권능이 자기를 견제하고 규제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야곱에게 더 자신과 위로를 가져다주리라고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젯밤 꿈에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야곱에게 말하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경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악한 도구들을 쇠사슬에 매어두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악인들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실 때면 그들로 하여금 발람이 그랬던 것처럼 선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한다는 것을 알자. 또는, 이 같은 라반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명백하게 보여 주신 금령을 어길 수 없었던 라반의 양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록 그는 악한 사람이었지만, 감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고 있는 사람을 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자기들의 양심이 말해 주는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생각한다면, 수많은 불행이 방지될 수 있을 것임을 알아두자.

2. 라반은 야곱을 도둑이라고 비난하고 있다(31절). 그는 야곱이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자기가 처신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로 자기의 처신을 어리석게도 감추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찌 내 신(神)을 도둑 맞았다고 말하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 도둑질하려 들어오는 자를 막지도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신에게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신 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도둑 맞지 않을 신을 그들이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도둑이 혹 우리의 재물을 훔쳐 갈 수 있을지라도 우리의 하나님을 훔쳐갈 수는 없다. 여기에서 라반은 자기도 알지 못하게 야곱에게 책임을 씌우려 했지만 이러한 무지야말로 위압감에 눌려 무의식중에 자기를 털어놓는 악한 사람들의 공통된 괴로움이다.

Ⅱ. 야곱은 자신을 변명한다. 자기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맡긴 자들에게도, 연약하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하는 변명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1. 아내들을 모두 몰래 훔쳐 가지고 달아났다는 비난에 대하여 야곱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그렇게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31절). 야곱은 라반이 자기의 딸들을 강제로 빼앗아 가지고 가서, 자기가 아내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고삐로 삼아 다시 노역을 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그렇게 불의할거라고 의심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자(눅 16:10). 라반이 야곱에게 줄 품삯을 속였으므로, 그는 또한 야곱에게서 아내들을 빼앗아 하나님께서 합하게 하신 것을 산산이 깨뜨리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그런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직의 원리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2. 라반이 자기의 신을 훔쳐갔다고 한 데 대하여는 상관없다고 무죄함을 주장했다(32절). 야곱은 자기 자신이 그것을 훔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그는 그 신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을 도둑 맞았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성급하게, 너무 무사려하게 말을 한 것 같다. "누가 그것을 훔쳤든 간에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 후 얼마 안 있어 그것을 훔쳤던 라헬이 산고(産告) 중에 별안간 죽었을 때, 야곱은 이일을 생각하고 심히 괴로웠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결과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무겁게 맺어 질는지 모르니 저주 같은 것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Ⅲ. 라반은 자기의 신(神)을 찾기 위해 열심히 뒤졌다(33-35절). 한가지 이유는 그가 미워하는 야곱과 한 바탕 싸움을 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찾기 위한 것이었고, 또 한가지 이유는 자기가 사랑한 우상이기 때문에 그 우상과 떨어진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잃어버린 가축들을 찾기 위해 야곱의 양떼를 뒤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도둑맞은 신을 찾아 헤맨 것이다. 그는 미가의 심정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네가 내 신을 취해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삿 18:24). 거짓 신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저들의 우상에 미칠 수 있었는가? 저들은 자기들의 신의 이름 속에서 그렇게 행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참된 하나님을 찾는 데 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당히 떠나셨을 때에고, 우리는 참으로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간구해야 한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욥 23:3). 라반은 마침내 자신의 신을 찾지도 못하여, 모든 것을 훔쳐 가지고 달아났다고 비난해서 싸우려는 계략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그를 찾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고,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분이 후하게 주시는 보상자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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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0

야곱과 라반의 논쟁(창세기 31:30-42)

우리는 이 곳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본다.

Ⅰ. 분노의 힘. 야곱의 본성은 온유하고 조용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총이 그 성격들을 더 훌륭하게 해 주었다. 그는 까다로운 것이 없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라반이 자기에게 보인 사리에 어긋나는 태도 때문에 화가 나서 그는 겉잡을 수 없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36, 37절). 비록 이해할 만한 까닭은 있다 할지라도, 라반에게 성이 나서 펄펄 뛰는 이러한 야곱의 태도는 정당화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우리가 본받으라고 기록된 것도 아니다. 극악한 말은 분노를 일게 하고 또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가 부정직하다고 비난을 받는 것은 매우 큰 모욕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이런 일조차도 인내로써 참고 견디는 것을 배워야 한다.

Ⅱ. 선한 양심이 받는 위로. 라반이 야곱을 악한 사람으로 비난하였지만, 야곱은 그 때 자기의 무죄한 것을 양심이 자기를 인정해 주었고, 지금까지 모든 일에서 정직히 살아왔다는 것을 증거해주었으므로, 야곱 자신은 오히려 기뻐했다(히 13:18 참조). 매사에 성실하게 봉사했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는 그 정직히 주는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Ⅲ. 선하고 신실한 종, 특별히 신실한 목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야곱은 스스로가 그러한 선한 노예요 신실한 목자였음을 증거 한다(38-40절).

1. 야곱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잘 살피지 않거나 게을러서 암양들이 낙태케 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그의 경건한 태도로 말미암아 자기가 관리하는 주인의 재산에 축복이 임했었다. 종들은 주인의 재산을 맡았으면, 주인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물려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2. 야곱은 대단히 정직한 사람이었다(40절). 그는 기후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일에 몰두하였다. 꺾이지 않는 인내심을 가지고 추위와 더위를 견딘 것이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 일을 통하여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해야하고, 어떠한 고통이라도 그 일을 위하여는 감내할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자. 아 야곱은 모든 사역자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모든 사역자는 자기를 신뢰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해야 하고, 어떠한 고난도 그들을 위해서는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Ⅳ. 고약한 주인의 특성이 나타나 있다. 라반이 야곱에게 바로 그러한 주인이었다. 악한 주인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1. 종들의 태만 때문에 손상을 본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그 종들로 하여금 그 손상을 보상케 함으로써 종들을 착취하는 사람이다. 라반이 바로 그런 짓을 한 사람이었다(39절). 비록 종이 태만하게 굴었다 하더라도 그 잘못 이상으로 부당하게 벌을 주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빈한한 종을 그렇게 해서 거의 회복 불능하도록 파산케 하는 것은, 결국 주인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손실이 되는 것이다.

2. 자기 종들에게 올바르고 공정하게 대접해 주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역시 고약한 주인들이다. 그런데 라반이 그러한 사람이었다(41절).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의 두 딸을 위하여 섬기도록 한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바에 의하여 라반에게 많은 재산이 증가하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또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라반은 능히 자기가 잘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딸들에게 그 딸들의 몫조차도 주지 않은 것 같다. 그리하여 라반은 가난한 자를 약탈했으니, 그 자신도 가난한 자였던 때문이다. 그는 야곱의 품삯을 바꿈으로써 야곱을 약탈했던 것이다.

Ⅴ. 무고한 피해자를 보호하시는 섭리의 돌보심을 살펴 볼 수 있다(42절).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은 것을 아시고, 가만히 놔두면 라반이 다 빼앗아 야곱은 빈손으로 쫓겨가도록 하지 않기 위하여, 보상을 해 주셨다. 또 야곱은 모두 삼켜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라반을 꾸짖으셨다. 하나님은 압제받는 자의 수호자이심을 알자.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학대를 당하였으나 아직 멸망하지 않은 사람, 내어 쫓기었지만 파멸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아직도 생존함이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이 사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야곱은 하나님을 자기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조상의 덕으로 그처럼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삭이 경외하는 분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이미 세상을 떠나,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없애버린 곳에 가 있다. 그러나 이삭은 그의 마음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거룩하고 찬양하면서,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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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

야곱과 라반의 화해(창세기 31:43-55)

라반과 야곱이 서로의 문제를 타협하고 화해한 사실이 여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라반은 야곱의 한의에 대해 답변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정당화하지도 않았고, 야곱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기가 행한 잘못을 자기 양심이 일러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자기네들 사이의 분규에 대해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잘못을 인정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야곱에게 용서를 빌어 그를 만족하게 한 것도 아니다. 다만

Ⅰ. 라반은 야곱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친절을 구실로 하여 문제의 핵심을 피하고 있다. "이 딸들은 내 딸이다" (43절). 그가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어떤 변명도 찾지 못하게 되자, 이제는 자기가 마땅히 했어야 할 사실을 했다. 사실은 인정한 것뿐이다. 그는 자기 딸들이나 아이들을 자기자신의 딸들이나 손자들로 대접을 했어야 할텐데, 그들을 낯선 사람으로 취급해 왔던 것이다(15절). 어떤 자연스런 애정이 전혀 없는 자들이 때로는 매우 애정이 두터운 양 가장하기가 일쑤임을 기억하자. 혹은 라반이 이렇게 말한 것은, 무언가를 과장해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뽑내기 위하여 "네가 보는 것은 모든 것은 실은 내것인데" 하고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이 모든 것은 야곱의 것이었고, 그럴 뿐만 아니라 야곱은 이 모든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탓하지 않았다. 라반이 점점 마음이 나아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재산은 언제나 세상에 집착해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들을 자랑하기 좋다한다. 나발이 "나의 떡, 나의 물" 이라고 했듯이 그들은 "이것도 내 것이요 저것도 내 것이다" 라고 말한다.

Ⅱ. 라반은 그들 사이에 우정의 언약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이에 야곱은 어떤 보상이나 항복을 라반에게 요청하지도 않는 채 즉시 동의했다. 서로 분쟁이 생겼을 때는 어떠한 조건에서든 다시 화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평화와 사랑은 아무리 비싼 값을 주어도 살 수 없는 귀한 보석이다. 분쟁 속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패배자로 앉아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찾아보기로 하자.

1. 그 계약의 내용. 야곱은 이 계약을 완전히 라반에게 맡겨 두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야곱은 자기 아내들에게 착하고 훌륭한 남편이 되고 그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며, 그들 외의 다른 아내들을 두지 말 것이다(50절). 야곱이 이제까지 자기가 좋지 못한 남편이 될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주는 행동을 라반에게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마치 자기가 그런 고약한 남편이었던 것처럼, 이 조건을 즐거이 받아들였다. 라반은 스스로가 그들을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으로 하여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그를 묶어두려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해치는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극도로 질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무를 수행하도록 압제하는 법이다.

(2) 야곱은 라반에게 결코 적대적인 이웃이 되지 말 것이다(52절). 이 조건은 그들 사이에 어떠한 적의 있는 행동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야곱으로 하여금 그가 받은 모든 괴로움과 학대를 용서하고 잊어주며, 라반을 미워하지 않고, 후에 그의 가족들조차도 라반의 그런 행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합의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는 사실에 대하여 분개할 수는 있지만, 복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2. 그 계약을 수립한 의식. 이 계약은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매우 엄숙히 맺어지고 비준되었다.

(1) 그 당시에는 문자를 사용할 줄 몰랐든가, 아니면 사용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계약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기둥을 세우고(45절), 돌로 무더기를 이루어(46절) 그 기억을 영구히 하였다.

(2) 제사, 곧 화목 제를 드렸다(54절).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면, 우리의 친구들 사이의 평화에 참된 위로를 넣어 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서로 갈라져서 싸웠더라도 피차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면, 그들 서로간의 화해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3)제사를 드리고 그 잔치에 참여하여(54절) 함께 떡을 먹었다(46절). 이것이야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화해의 증거이다. 옛날에는 진정한 우정의 계약을 같이 먹고 마시는 잔치에 의하여 참된 것으로 서로 인정하였다. 본질적인 입장에서 이것은 애찬(愛餐)이었다.

(4)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신실성을 경건하게 하나님께 아뢰었다. 즉

[1] 그들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었다(49절).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한 말은 "주님께서는 어느 편이든 이 언약을 깨뜨리면, 어느 편이 그랬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지 못할 때라도 언제나 그렇게 보살펴 주시어서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눈앞에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는 뜻이다. 이러한 아뢰임은 그대로 하나의 기도가 될 수 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간에도 이러한 기도를 위로 삼아, 서로 알 수 없는 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를 지켜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 둘을 언제나 검찰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2] 그들의 재판관으로 모시었다(53절). 아브라함(야곱의 조상인)의 하나님, 나홀(라반의 조상)의 하나님, 그리고 그들의 조상(두 사람의 공통된 조상)이신 하나님이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처럼 밀접하다. 그들은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그들 사이에 적의가 있어서는 안된다.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도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모든 면에서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서로 분쟁하는 파당 사이에 계신 심판관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게 재판을 하실 것이다. 심판관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게 재판을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악을 범하려면 그는 생명을 내놓고 그러한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그들은 그 계약의 장소에 시 이름을 붙였다(47, 48절). 라반은 아람말로, 야곱은 히브리말로 증거의 무더기라 물렀고, 또 미스바 곧 파수대(49절)라고도 불렀다. 이것은 영원히 기억하여 보존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이름들도 복음의 계약의 날인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복음은 우리가 신실하면 우리를 위한 증거가 되지만, 우리가 거짓되면 우리에게 적대적인 증거가 된다. 야곱이 이 돌무더기에게 붙인 이름(갈르엣)은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러나 라반이 붙인 이름은 그렇지 못했다. 이제까지의 라반과 야곱의 만남을 살펴볼 때, 라반은 대체로 수다스럽고 말이 많다. 그러나 야곱은 조용하고 별로 말이 없다. 라반은 많은 칭호를 붙여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는데,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의 경외에 의지해서 소원했다." 곧 아브라함과 나홀이 그러했듯이, 결코 다른 어떤 신들을 섬긴 일이 없는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한 그 하나님께 맹세한 것이다. 헛되이 반복하는 라반의 많은 말보다는 야곱의 말 두 마디가 더욱 잊혀지지 아니했다.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호령보다" 낫기 때문이다(전 9:17).

3. 마침내 이 모든 성난 담판 끝에 그들은 서로 친구가 되어 헤어진다(55절). 라반은 지극한 사랑으로" 그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축복한" 다음 평화롭게 돌아갔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두려하고 있는 이상으로 인자하시며, 인간들의 마음을 기이히 다스리사,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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