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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여종들의 자식들(창세기 30:1-13)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이 두 자매와 맺은 이상스러운 결혼이 좋지 못한 결과에 이른 것을 볼 수가 있다.

Ⅰ. 라헬은 자기 언니처럼 자식을 갖지 못하는 사실 때문에 야곱과 화합하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가 생겼다(1, 2절). 이삭의 하나 밖에 없던 아내 리브가도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지만, 리브가와 이삭 사이에는 아무런 불화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면 레아가자식들을 낳았기 때문에, 라헬이 야곱과 화목하게 살 수 없게 되었다.

1. 라헬은 초조했다. 그는 "그의 언니를 시기했다" (1절). 시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가 없고, 이보다 더 우리 이웃과 우리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없다. 라헬은 언니와 자기가 이렇게 다른 처지에 놓인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한 가지 점에서는 언니가 유리한 위치에만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기가 유리하다는 사실도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결코 우리 동료들을 악한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주님은 선하시기 때문이라. 그러나 라헬은 질투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말했다. 우리도 라헬이 여기에서 한 것처럼 현세적인 자비를 바라는 욕망 때문에 과오를 범하기가 쉽다는 것을 기억하자.

(1) 그는 "나도 자식들을 낳게 하라" 하고 말했다. 레아가 여러 자식을 두었기 때문에 그는 한 아이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도 또한 여럿을 가져야만 했다.

(2) 그의 마음은 너무 지나치도록 이 일에 집착되어 있어, 자기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자기 생명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고 한 말은 "나는 마음이 초조해 죽겠다. 이러한 불안은 나의 생애를 단축시킬 것입니다" 하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라헬이 만약 이러한 자비로움을 얻지 못하면 야곱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협박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3) 라헬은 기도로 하나님께 소원을 아뢴 것이 아니라 다만 야곱에게만 하소연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 이라는 것을 그녀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시 127:3). 괴로움이나 즐거움이거나 간에 그것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간구치 않고 그 하나님의 한 도구에 불과한 사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와 자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라헬과 같은 자비를 구했던 한다(삼상 1:10 이하)와 어떻게 다른가하는 것을 살펴보자. 라헬은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러나 한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라헬은 많은 아이들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두 아이를 낳고 단산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나는 단한 아이만을 원했을 뿐인데, 네 아이를 더 얻었다. 라헬는 무척 성가시고 강요적이었다. 그러나 한나는 상대방의 뜻에 스스로 맡기고 스스로 그 뜻에 따르려는 헌신적 태도를 취했었다. "만약 당신이 아이를 주시면, 그 아이를 당신에게 다시 바치겠나이다" 라고 한나는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라헬이 아니라 한나를 본받아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욕망은 이성과 신앙에 의한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2. 야곱은 라헬을 꾸짖었다. 매우 당연한 처사이다. 그는 라헬을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라헬의 실언을 꾸짖은 것이다(2절). 신실한 질책은 참된 사랑의 선물이요 한 실례라는 것을 잊지 말자(시 141:5, 잠 27:5, 6). 욥은 자기 아내가 어리석은 여인들이 말하듯 했기 때문에 그를 꾸중했다(욥 2:10; 고전 7:16 참조). 야곱은 그녀의 인격에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화를 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분노를 표현했던 것이다. 쓴 약을 환자에게 주듯이 때때로 질책을 하여야 하지만, 그 질책은 다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런데 그 때 그 약이 너무 뜨거워 환자를 데게 한다거나 너무 차서 효과가 없게 되면 안 된다. 심술이 난 라헬에게 한 야곱의 대답은 무게 있고 경건한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고 그는 말했다. 시리아 역본은 이 말을 참잘 풀어 설명하고 있다. "네가 나에게 아들을 낳아 달라고 하다니, 주님께 아뢰지 않고, 주님 아닌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소원을 말할 수 있는가?" 아랍어 역본은 이렇게 읽고 있다. "내가 하나님 보다 높으냐?" 하나님께서 네게 거절하신 것을 내가 어떻게 네게 줄 수 있단 말이냐?" 이것은 단순히 인간에 지나지 않는 자다운 말이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야곱은 라헬이 겪는 어려움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성태(成胎)치 못하게 하신" 것이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승낙하시지 않는 것은 주권을 가지신 주님이시며 가장 현명하시고 거룩하시며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곳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가지고 당신의 뜻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인간 누구에게도 빚지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피조물에 대해서도 악을 행하신 적이 없으시며, 또 그러실 수도 없는 분이시다(랍비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네개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구름과 마음과 무덤과 태도를 열고 닫으시는 열쇠를 가지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열쇠들을 스스로 지니시지 결코 천사들이나 최고의 천사에게도 주지 않으신다(계 3:7; 욥 11:10; 12:14 참조).

(2) 야곱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을 자기가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도대체 너는 나를 하나님으로 만들 셈이냐?" 하고 그는 외친다. Deos qui rogat ille facit 우리의 간청 대상이 되는 사람, 그 사람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 된다. 다음 사실을 주의해 두자.

[1] 하나님을 대신하는, 혹은 대신할 수 있는 어떤 피조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태양이 달고 별을 대신할 수 있듯이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을 대신하실 수는 있다. 그러나 달과 별이 태양을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피조물의 지혜나 힘이나 사랑도 하나님의 지혜와 힘과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어떤 피조물을 앉히는 것은 우리의 죄악이요 어리석음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만 바칠 수 있는 신뢰를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 바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죄적인 것이다.

Ⅱ. 야곱은 두 여종과 불행한 관계를 맺는다.

1. 라헬의 권고로 그는 라헬의 여종 빌하를 아내로 맞았다. 그 때 풍속에 의하면 여종에게서 난 자식들은 여주인의 양자로 받아들이고 그 여주인이 길렀던 것 같다(3절 이하). 라헬은 다만 남들이 어떻게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할까 하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 무서워 아이를 갖기를 원했던 것이지,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난 자식이 아니라도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식이라고 남들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친언니의 자식이 자기 여종이 낳은 자식보다 더 그녀에게 친근했을 것이며, 만일 그녀가 언니의 자식을 기뻐했더라면 자기 친자식보다 더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모든 사람에게 권력욕이 있듯이) 라헬도 사랑을 주기 위해서 보다는 자기가 지배할 자식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여종이 아들을 낳자마자, 라헬은 그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쾌락을 차지했다. 이것은 자식에 대한 자기의 지배권을 행사한 한 초기의 실례이며, 자기가 그의 언니를 이겼다는 표시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라헬은 두 가지 면에서 언니를 이겼다는 듯이 생각했다.

(1) 법적인 측면에서, 라헬은 자기의 여종에게서 난 아들을 단(판결)이라 하고,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판결하셨다" 고 말했다(6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승소하게 해 주셨다" 는 뜻이다.

(2) 싸움에서, 라헬은 둘째 아들을 납달리(경쟁)라고 물렀다.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고 그는 말했던 것이다(8절). 이는 야곱의 모든 아들들은 싸우기 위해서 태어나야 했다는 듯이 보인다. 경쟁이 어떻게 고통의 뿌리가 되는가, 또한 친척들 간에 얼마나 큰 불행을 존재케 하는가를 깨닫자.

2. 레아의 권고로 야곱은 레아의 여종 실바도 아내로 맞이하였다(9절). 라헬이 레아를 이기기 위하여, 자기 종을 남편에게 바치는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짓을 했는데, 레아도(일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자기가 라헬에게 뒤지지 않기 위하여, 혹은 더 나아가 계속 앞서기를 원하여, 똑같은 짓을 한 것이다. 질투와 경쟁심이 갖는 무서운 힘을 똑바로 보라. 그리고 한 남자는 한 여자와만 합할지라고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명심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평화롭고" 순결하게 살도록 부르신 것이다(고전 7:15). 실바는 두 아들을 낳았다. 레아는 스스로가 많은 아이들이 군대(한글 개역은 복이라고 읽음)처럼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첫 아들을 갓이라 불렀다(11절). 자녀들은 그 가정의 군대이다. 그들은 화살통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시 127:4, 5). 둘째 아들은 아셀(행복)이라 불렀다. 그녀는 그 아이 때문에 자기가 행복해지고 자기 이웃들도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모든 딸들이 나를 복된 자라 하리로다" (13절),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 이성이나 신앙에 의하여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인기가 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의 한 예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딸들이 복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자기 자신들이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라헬과 레아, 이 두 자매의 경쟁과 다툼 속에는 참으로 많은 잘못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셨다. 즉 그때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한없이 많이 번성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서 야곱의 가족은 열 두 아들을 갖게 된 것이고, 이들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족장이 되었고, 이들로부터 축복 받은 12지파가 생겼으며, 또 이들의 이름대로 그 지파가 불리워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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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와 라헬의 자식들(창세기 30:14-24)

Ⅰ.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던 레아가 다시 생산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과 더 가까이 했던 것 같다. 모세의 율법은 한 남자가 두 아내를 거느릴 때는, 한쪽이 사랑을 받으면 다른 한쪽은 미움을 받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라고 생각했다(신 21:15). 그러나 적어도 라헬의 경우, 그녀의 지나치게 강한 욕심은 그녀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레아와의 협상에서 남편 야곱을 레아에게 보내 버리는 결과를 낳게 했다. 르우벤은 대여섯 살 난 어린 소년이었는데, 들에서 놀다가 합환채를 발견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하다. 주석가들마다 제각기 의견이 다르다. 다만 대단히 맛이 좋거나 냄새가 좋은 진귀한 꽃이나 열매이었던 것 같다(아 7:13).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수품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많은 것을 마련해 주시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심고 가꾸는 정원에도 많은 위한 것이 있지만, 그대로 들판에 널리어진 귀하고 값진 것들도 많이 있는 것이다. 얼마나 자연의 집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며, 그 식탁이 넓게 벌여져 있는가!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마음대로 그 자연의 귀한 열매들을 거두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유대 사람들은 무척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예를 들면, 사과를 먹고 맛이 좋으면, "이렇게 맛있는 열매를 주신 분께 참으로 감사하다" 하고 말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훌륭한 습관이다. 그들은 꽃의 향기를 맞고 즐거울 때도, "이 꽃이 이렇게 달콤한 향기를 갖게 해 주신 분께 영광을 돌리자" 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이 합환채가 제스민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여간 합환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라헬은 그 아이가 가져다 준 그것이 레아의 손에 있는 것을 그저 볼 수가 없이 탐이 잤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간에 그 귀한 아름다운 꽃을 자기가 갖고 싶었다. 사소한 것에 대한 지나친 욕심도 죄를 짓는 일이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레아는(마치 야곱이 자기의 팥죽을 탐내고 에서의 욕심을 이용했듯이)이것을 이용하여, 사실은 레아에게도 당연한 것이지만, 결코 라헬이 동의하지 않으려 했던 바 야곱을 차지한다. 강한 감정은 일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그 욕심 때문에 매사가 계속 불안하고 초조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레아는 자기가 다시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는 자기 가족이 더 많아지는 그런 축복을 받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절에는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라고 기록되어 있다. 박학한 주교 패트릭(Patrick)은 야곱의 아내들이 서로 야곱과 동침하려고 경쟁을 하고, 서로 자기의 여종들을 야곱에게 바치곤 한, 이 모든 일이 진실한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사실이(그 후에 야곱에게 재확인되었지만) 이루어져 하늘의 별과 같이 그의 자손이 번성하고 그의 후손으로부터 모든 세상의 나라들이 축복을 받을 메시야가 오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패트릭 주교는 거기에 그와 같은 중대한 의미가 있지 않다면, 이러한 일들이 주목을 끌도록 기록되어 있는 사실은 이 거룩한 역사의 품위를 떨어 뜨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아는 다시 두 아들을 갖는 축복을 받았다. 첫 아들은 잇사갈(값)이라 이름 붙여, 합환채의 대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바친 대가가 아니었다(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관용하시고 짐짓 모른 체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알고 잘못 이행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두 번째 아들은 스불론(거함)이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거할 수 잇는 후한 상을 주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20절). 야곱은 레아와 결혼할 때, 아무런 선물도 주지 못했고, 재산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레아는 많은 식구들을 재산으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 주는 훌륭한 선물로 생각한 것이다(시 113:9). 레아는 여섯 아들을 낳은 지금, 남편이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끔 자기의 처소에 둘러 함께 유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 뒤의 절에 보면, 그의 딸 디나의 출생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그녀의 이야기가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34장). 야곱이 또 다른 딸들을 가지고 있었을 텐에,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Ⅱ. 라헬도 마침내 아이를 낳게 되었다(22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라헬은 오랫동안 하나님이 잊고 계신 사람이었던 것 같이 생각된다.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라고 했다. 또한 라헬의 기도도 오랫동안 듣지 않으시고 거절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우리가 무절제한 욕망으로 간구할 때는, 하나님께서 응당 그 자비를 거부하시지만, 마침내 은혜롭게 그 소원을 허락하시기로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고쳐 주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상함을 생각하시기 때문에 영원히 우리와 다투시는 분은 아니시다. 라헬은 그의 아들의 이름은 요셉이라 하였다. 요셉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두 가지 정반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아삽(Asaph: abstulit) 곧 "그는 나의 치욕을 없애 버렸다" 는 말이다. 마침 그 아들 때문에 라헬은 자기의 신용을 회복했다는 그런 뜻이다. 도 하나는 야삽(Jasaph: addidit) 곧 "주님께서는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리라" 는 뜻이다. 이말은 분수없이 더 바라는 라헬의 욕심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고 (라헬은 하나를 가지고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언제나 더 바라는 삶이었다). 겸허하게 또 다른 자비를 기다리는 경건한 신앙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과연 내게 자비를 베푸셨는가? 그렇다 면, 이 아이를 요셉이라 하자. 그러면 하나님이 더 많은 은총을 내리시리라!" 또는 "하나님이 과연 내게 자비를 베푸셨는가? 그렇다면, 이 아이를 요셉이라 하자. 그러면 하나님이 더 많은 은총을 내리시리라!" 또는 "하나님께서 정말로 당신의 즐거움을 내게 허락하셨구나, 그러니 이 아이를 요셉이라 불러 더 많은 즐거움을 내게 허락하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제 내게 그런 은총을 허락하시기 시작하셨는데, 어찌 그것을 중단하시도록 할까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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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라반의 계약(창세기 30:25-36)

Ⅰ.야곱은 자기 집을 그리워하였다. 야곱은 나이가 많았지만 성실하게 두 번 의 약속 기간동안 라반을 위해 일했다. 이제는 먹여 살려야 할 큰 가족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자수성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비록 라반의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 고생스러웠지만, 그리고 첫 번째 약속을 지키지 않고 라반이 속였지만 야곱은 정직하게 계약된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였다. 선한 사람은 자기가 해를 입어도 결정된 바를 변경하지 않는다. 그리도 비록 다른 사람이 우리를 속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법칙은 대접받은 대로가 아니라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야곱의 약속된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기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25절)>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는 가나안에 대한 애착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 부모가 있었던 고향이었으므로 보기를 원했던 땅이 아니라, 그 곳은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러한 약속을 믿는 그로서는, 비록 그가 하란에서 나그네로 떠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가나안에서 정착하기를 늘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하늘 나라를 그리워하며, 이곳은 우리가 나그네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늘 나라를 우리의 고향으로 생각하면서, 세상에서의 우리의 봉사가 기한이 되어 끝나자마자 그 하늘 나라에 가기를 동경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다 뿌리를 박으려 해서는 안 된다. 여기는 우리의 장소< 우리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히 13:14)

2. 그는 큰 식구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들을 먹일 아무런 준비도 없었으면서도 가나안에 몹시 가고 싶었다. 그는 처자를 거느리고 라반과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그밖에 아무 것도 그에게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라반에게 자기 아내들을 위해 재산의 몫을 나누어 달라든지, 자기 아이들을 위한 양육비를 달라든지 하는 애걸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요청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하는 것 뿐이었다(25, 26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비록 식구가 많고 수입은 적다 하더라도, 입을 주신 분이 먹여도 주시리라는 즐거운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들의 까마귀 떼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후손들을 결코 굶어 죽게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다.

Ⅱ. 라반은 야곱에게 함께 머물러 살기를 바랐다(27절). 라반이 야곱을 머물게 하려 한 것은 그가 좋아서거나 그의 아내들이나 아이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야곱이 계속 목자장으로 일하면 그에게 보수를 주겠노라고 하면서 머물러 있게 하려 한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고 했다.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갖 좋은 말을 구사해야 하는 법을 잘 알고 있음을 기억하자. 라반은 자기의 재산이 야곱의 신실한 관리로 인해서 놀랍게 증가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일을 야곱과 하나님께 가장 존경을 표하는 듯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라반은 "경험을 통하여(한글 개역에는 없음) 깨달았다" 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많은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만약 우리가 경험에 의하여 죄의 화, 우리 마음의 변절, 세상의 허무함과 하나님의 선하심, 신앙의 유일성 등등을 깨닫지 못한다면, 참으로 둔한 학생일 수밖에 없다.

2. 라반이 무엇을 배웠는가?

(1) 그는 그의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셨다."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자기 몫을 선택하는 이 세상의 사람에게는 때로 이 세상의 재물을 풍성히 축복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일상적인 재물의 축복은 계약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풍성히 내린다.

(2) 그는 야곱의 경건한 믿음이 자기에게 축복을 가져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주께서 나를 축복하신 것은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이 세상에 파묻혀 하나님 없이 사는 라반과 같은 그런 사람은 "아예 주께로부터 무엇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약 1:7). "너 때문이었다" 고 그는 말했다. 명심할 것이 있다.

[1] 선한 사람은 그들이 아무리 비천하고 눈에 띄지 않게 살고 있다 할지라도, 마치 들판의 야곱이나 감옥 속의 요셉(39:23)처럼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장소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어 준다.

[2]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경건한 신자들과 맺고 있는 관계 때문에 현세적인 축복을 주시는 때가 있다. 그러나 라반과 같이 그러한 축복을 축복으로 안다든가, 그 축복의 원인이 경건한 다른 사람 탓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Ⅲ. 그들은 새로운 계약을 세웠다. 라반은 간교하고 탐욕스러워 소박하고 정직하고 사람 좋은 야곱보다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지극히 공정하게 말했기 때문에 야곱이 확실히 유리한 입장에 있음을 알게 되자, 너그럽고 높은 임금을 제공하여 그를 붙들어 두는 것이 당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을 두루 살핀 후에, 자기가 할 일을 야곱에게 하도록 해버린다(28절). 즉 그는 야곱이 겸손하기 때문에, "네 품삯을 정하라" 하면, 자기가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달라고 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야곱은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1. 그에게는 자기가 제시하는 제안의 이유가 있었다.

(1) 먼저 그는 라반이, 자기가 그를 성실하게 섬겼고, 그리하여 마침내 성공하였으므로 자기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였다(30절). 그러나 야곱은 본래 그렇듯이 겸손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있다. 라반은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을 주셨다" 라고 했지만, 야곱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온 다음에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을 내리셨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겸손한 성도는 선하다고 말을 다시 듣는 것보다, 선을 행하는 데 더 큰 즐거움을 갖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는 자기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신앙과 자선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것이지만, 우리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마저 그러한 신앙과 자선을 위하여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자. 우리는 야곱처럼 "주님을 믿고 선을 행하기도 해야" 하지만, 또한 야곱처럼 우리들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이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딤전 5:8).

2.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섭리에다 맡기고 있다. 심지어 가축의 색깔과 같은 사소한 것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고 믿고 양이나 염소 중에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색이 있는 것과 그러한 것들이 앞으로 낳은 새끼들을 자기의 품삯으로 달라고 한다(32,33절). 야곱은 이렇게 하는 것이 라반으로 하여금 자기를 속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자기도 또한 라반을 속이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야곱이 이러한 색 있는 가축들을 선택한 것은, 이런 염소나 양들을 가나안에서는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나안에 있는 목자들은 네코힘(Nekohim 1:1)이라고 불리워지는데 이 말은 얼룩점이라는 뜻이다. 라반은 이러한 제의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점이 있거나 얼룩진 양이나 염소들이 얼마되지 않는데, 그런 것이 완전히 검거나 흰 다른 것들과 빨리 계약에 의하여 구별되면, 지금부터 야곱이 친 가축들은 희지 않으면 검은 것이기 때문에 아롱진 무늬를 가진 새끼들이 나올리 없고, 그렇게 되면 야곱이 계속해서 자기 양을 쳐도 자기는 아무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혹 지불한다 해도 그것도 거의 지불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속에 의하여 얼마되지 않는 아롱진 색깔의 양이나 염소를 따로 가려내어 라반의 아들들로 하여금 사흘 거리가 떨어진 곳에 몰고 갔다. 한 마리라도 섞여서 야곱이 이를 볼까봐 라반은 심히 야곱을 투기하였던 것이다. 야곱은 자신을 위해 얼마나 공정한 계약을 했는가! 그렇게 불확실하게 자기 가정을 위한 터전을 잡을 수가 있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만약 이 가축들이, 보통 가축들이 그렇듯이 똑 같은 색의 새끼들만을 낳는다면 야곱은 아무런 삯도 받지 못할 것이며 평생을 노예나 거지로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믿어왔던 분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었다.

(1) 그리고 그가 한 형상의 내용이 라반의 형상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지 않으면 야곱도 라반 밑에서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2) 거룩한 섭리를 의존하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고 겸손한 근면을 축복해 준다는 것이 드러났다. 남을 부당하고 불 친절히 대우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피해자들은 보상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께 자기들의 사정을 아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품삯을 지불하시는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30:2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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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7

야곱의 뛰어난 정책(창세기 30:37-43)

이 곳에서 우리는 야곱에게 불리한 것 같이 생각되는 라반과의 계약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정직한 정책을 쓰고 있는가를 살펴 볼 수 있다. 만약 야곱이 자기를 돕기 위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리한 계약이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라반이 자기 이익에만 급급히기 때문에, 우선 당장 눈에 띄게 자기가 유리한 것 같은 것만을 생각했지, 자기의 의도를 깊이 파악하지는 못하리라고 야곱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야곱의 계획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나뭇가지를 껍질을 벗기어 아롱지게 해서, 가축들이 마시러 오는 물 속에 담가두고, 그러한 무늬의 영상력으로 가축들이 새끼를 낳을 때 그 무늬를 닮게 했다. 아마도 이것은 얼룩얼룩한 가축을 좋아하는 가나안 목자들이 사용한 관습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할 일은 자기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직업이든지, 근면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재능을 발휘하여, 모든 합법적 기술과 비밀을 다하여 봉사하면 성공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사실 인간이란 자기의 직업이나 기능을 통해서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닌가? 농부에게도(가장 소박한 직업이다.) 하나님께서 분별력을 가르치듯이, 스스로 배워야 하는 분별력도 있다(사 28:26).

2. 야곱은 얼룩 무늬와 검은 반점이 있는 양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 새끼들을 먼저 구별해서 한데 모으고 무늬가 없는 라반의 단색 가축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다(40절). 가장 강한 인상은 눈을 맺을 필요가 있다.

3. 야곱은 자기의 계획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에 의하여 성공해 나가는 것을 보고, 보다 실한 양에게만 이를 적용하여 가장 값나가는 것을 자기에게 속하게 하고 약한 가축들은 라반의 것이 되게 하였다(41, 42절). 그리하여 야곱은 "심히 풍부하게" (43절)되었고, 잠깐 동안에 아주 부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야곱의 정략에 성공한 것은 이 계획 속에는 아무런 간교나 부정한 것이 없었음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 좋지 못한 요소가 없었음이 분명한 것이, 야곱은 이같은 계략을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행했기 때문이다(31:12). 또한 그 곳에는 공정한 계약을 선용하려는 정직한 노력 이외에 어떤 것도 없었다. 그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이 약속된 야곱에게, 라반이 행한 잘못된 행사와 고통스러운 사역이 평행되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한 것이었다. 비록 어떤 계약에서 작은 몫밖에 갖지 못하고 출발을 했더라도, 겸손하고 정직하며 스스로 만족하고 근면하면 마침내는 커다란 풍요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몫이 될 것에 충성을 다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몫도 받게 도리라. 정직하고 올바르게 주인을 섬겼던 종 야곱은 마침내 부유한 주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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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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