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4:1

이삭의 결혼을 위한 준비(창세기 24:1-9)

이 곳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세 가지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아브라함은 자기의 착한 아들을 결혼을 시키려고, 그것도 훌륭한 결혼을 하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다. 이제 결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삭이 마흔살쯤 된 때였는데, 서른 살이나 그보다 좀 이르게 결혼하는 것이 그의 선조들의 풍속이었기 때문이다(11:14, 18, 22, 24). 아브라함은 그의 집안의 번성을 믿고 있었으므로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지 않았다. 두 가지 문제가 이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결혼을 생각하게 하였다(1절).

1. 그 자신이 곧 세상을 떠나리라 생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이 많아 늙었고", 자기 아들이 그가 죽기 전에 살림을 차리는 것을 보면 큰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2. 또한, 그는 그가 죽은 후에 물려 줄 수 있는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곧 여호와의 축복이 그를 부하게 하신 것이다. 신앙과 경건도 외적인 번영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가를 보라. 그의 아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경건한 배려는 다음과 같다.

(1) 그의 아들이 가나안 사람의 딸과 결혼해서는 안 되고, 그의 친척 중의 하나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나안 사람들이 타락한 것을 보았고, 계시를 통하여, 그들이 멸망할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 가나안 사람들의 영혼에 덫이 되거나, 혹은 그의 이름에 오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이 그들 중의 어떤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2) 이삭이 비록 아재를 선택하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고향에가서 거기에 정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이삭이 직접 자기 친척들에게 가려고 가나안 땅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조심스러운 배려는 6절에서 표현되고 있는데 8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라. 내 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곳에서 정착하려는 유혹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돌보아 주는데 있어서, 그들의 영혼의 복지와 그들이 하늘나라에 이르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세심하게 권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의 타락에 빠지고 정복을 당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벧후 2:20). 그들을 다시 그곳으로 데려가지 않도록 조심하라(히 11:15).

Ⅱ. 아브라함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자기와 자기 가족에 충성을 다하고, 깊은 애정을 지니고 행동하는 착한 종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아마 그 종은 다메섹의 엘리에셀인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은 이 중대한 일을 이삭 자신이 아니라 그 종에게 맡겼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고향으로 보내지 않았고, 대리로 사람을 보내어 결혼을 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대리인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종 이상 가는 적격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주인과 종은 엄숙하게, 그리고 세심한 배려를 다하여 이 일을 결정하였다.

1. 그 종은 이삭의 아내를 아브라함의 친척 중에서 택해 오기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로 약속해야만 하였다(2-4절). 아브라함이 그 종으로 하여금 맹세를 하도록 한 것은, 그래야만 자가가 안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종이 이 일에 최대의 조심성과 성실을 다해 줄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종들로 하여금 그들의 할 일에 대하여 맹세할 것을 요청하신다. 그렇게 맹세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일을 성취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맹세를 받을 수 있고, 또 이러한 호소는 그에게 해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때 "손을 환도뼈 밑에 넣는 의식을 통하여 맹세한 것을 보면, 할례의 계약을 두고 맹세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맹세는 교회에만 있는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인류에게 공통된 것이다. 그러므로 맹세자에게 의무감을 지워 주는 그 나라의 관례적 표시를 보이면서 맹세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다.

2. 그 종은 자기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이 맹세에서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종이 심사숙고해서 삽입한 이 조건(5절)은 여자가 자기를 따라오지 않으려 할 경우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예외를 허락하였다(8절). 맹세를 할 때는 극히 조심해서 해야 하며, 그리고 맹세된 그 사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거룩한 것을 식언(食言)하는 것이라든가 맹세 후에 다시 물어보는 일은 덫이 되기 때문이다.

Ⅲ. 아브라함은 인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그의 종이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와주시리라 믿었던 것이다(7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실제적인 은총의 부르심을 통하여 얼마나 놀라운 섭리 속에서 본토를 떠나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는가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아들을 다시 그곳으로 데려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성공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언약하시고 확인하신 바 있는 약속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들 타락한 민족들 중에서 여인을 찾지 않고 그러한 약속된 자손의 어머니가 되기에 가장 알맞은 여인을 찾으려는 자기의 노력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라고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너의 길이 형통하도록 그 사자를 앞서 보내시리라."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자기들의 계획과 그 실행의 신앙의 원리에 따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이 번성하고, 성공하리라는 기대를 가질만한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 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결과가 우리에게도 위로를 주도록 섭리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들의 경험은 이 세상의 모든 문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희망을 질 수 있는 충분한 용기를 주고 있다.

3. 하나님의 천사들은 약속의 상속자들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인도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는, 일하는 영들이다(히 1:10).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시리라. 그러므로 네가 모든 일을 순조롭게 이루리라."

 

24:2 없음.

 

24:3 없음.

 

24:4 없음.

 

24:5 없음.

 

24:6 없음.

 

24:7 없음.

 

24:8 없음.

 

24:9 없음.

 

24:10

구혼(求婚)의 여행(창세기 24:10-28)

아브라함의 종이 이제 이 이야기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록 그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그에게 명예로운 일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그는 모든 종들의 모범이 되고 있고, 즉 만약 모든 종들이 성실하게 하나님과 자기들의 주인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훈을 빛내면, 그들도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잠 27:과 딛 2:10 을 비교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대우하시지 않기 때문이다(골 3:24, 25). 양심껏 자기의 의무를 지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선한 종은 비록 이 세상에서 이름을 재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받아 주시어 인정해 주시며, 그를 칭찬하실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Ⅰ. 아브라함의 동이 그의 주인에게 얼마나 성실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자기가 해야 할 임무를 주인으로부터 받자마자, 그는 구혼에 필요한 보든 장구를 갖추어 여행을 떠난 것이다(10절).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났다." 곧 그가 만나서 대답할 상대방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명세서거나 혹은 구체적인 계산서를 가지고(손에 넣고) 간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주인의 명예를 생각한 것이다. 이삭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는 이 일은, 그리스도의 종의 대리자들인 사역자들에 의하여 되어지는 교회의 결혼을 예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교회는 신부이니, 어린양의 아내인 것이다(계 21:9). 그리스도는 신랑이고, 사역자들은 그 신랑의 친구들이다(요 3:29). 그 친구들의 일은 모든 영혼을 설득하여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는 것이다(고후 11:2). 그리스도의 배우자는 가나안 사람이 아니라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 사람, 즉 그리스도의 친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역자들은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그들 주인의 사업을 함에 있어서 최상의 지혜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Ⅱ. 얼마나 헌신적으로 그가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한" 그 행복한 권속 중의 한 사람다웠다(18:19). 그는(여러 날 여행한 뒤에) 초저녁에 그의 목적지에 도착하여, 우물가에서 위면서 어떻게 해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일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그런데

1. 그는 구체적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정했다(12-14절). 그 기도 속에서,

(1) 그는 이 일이 잘 되고 훌륭히 성공할 것을 간청하고 있다.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소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들이 낱낱이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하심과 돌보심에 따라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의 일이 순탄하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오늘, 바로 이 일로 인하여 그는 기도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잠 3:6).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의무를 다함으로써 오는 위로를 받을 수가 있을 것이다.

(2) 종은 그의 주인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계약을 탄원하고 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인자한 부모의 자녀들처럼 인자한 주인이 둔 종은 번영과 성공을 하나님께 기원학 수 있는 특별한 용기를 지닌다는 것을 명심하자.

(3) 그는 한 표적을 원하고 있다(14절).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려는 것도 아니며, 그 표적에 만족치 못하면 더 이상 일을 중단하려는 뜻에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의 기도였다.

[1] 즉 하나님께서 자기의 젊은 주인을 위하여 착한 아내를 마련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달라는 기도였다. 이것은 훌륭한 기도였다. 그는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오서 말미암느니라"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잠 14:14).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를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그는 자기 주인의 아내가 겸손하고 근면하며 자기가 할 일은 잘 돌보고 처리할 줄 알며 기꺼이 일에 임하는 자로 자란 여인이기를 바랬다. 또한 그 여인이 예모 바른 성품을 가진 사람이어서 나그네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자기 주인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갔을 때 유흥 장소나 공원에 가지 않았다. 또 그런 곳에서 주인의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리라 기대하면서 우물가로 갔었다.

[2]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사소한 일을 보여 주심으로써, 이 일을 이루는 길을 기꺼이 예비했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주목하자. 첫째로 하나님의 섭리는 지극히 사소한 일에까지도 미치며, 그 사소한 일들을 통하여 그 섭리의 본래적 목적을 놀랍도록 이룩하신다는 사실은 선한 사람들의 믿음인 동시에 위안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즉 그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까지도 그렇다는 말이다. 둘째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섭리를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셋째로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법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섭리의 암시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또 우리가 행할 의무를 지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기도요, 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기도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으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고(시 32:8), 또한 평탄한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시 27:11).

2. 하나님께서는 구체적 섭리를 통하여 그 종을 인정해 주셨다. 그 종이 원한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다(욥 22:28). 그의 신앙에 따라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1) 그 기도의 응답은 속히 이루어졌다.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라고 했다(15절). 즉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사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한 것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늘 기도하는데 늦장을 부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는 데 있어서 열심이시다.

(2) 또 만족스럽게 이루어졌다. 물을 길러 나오는 것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그 종이 마음속으로 기대한 것과 똑같이 이루어진 것이다.

[1] 그녀는 모든 면에서 종이 자기 주인의 아재로서 구비해야 하리라고 바라던 자질을 완전히 갖춘 사람이었다. 즉 아름답고 상냥하며, 건강하고, 겸손하며, 근면하고 예의가 바르며 나그네에게 친절하고, 모든 훌륭한 성품의 사람이 지니고 있는 좋은 점을 다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는 우물가에 와서(16절) 내려가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가지고" 올라와 집으로 가려했다. 그녀는 한 나그네와 그의 낙타들을 응시하면서 서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에만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선행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어떤 방해도 받기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나그네와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호기심을 가지고 대화한다든가, 처음부터 아예 터놓고 이야기를 한다든가 하지 않았다. 가장 겸손하게 여성다운 정숙과 미덕을 지니고 그의 물음에만 대답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대에서는 리브가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두가 그의 성품과는 정반대인 교만과, 사치와, 게으름의 모습만을 볼 수가 있으니 얼마나 타락한 세대인가! 그 당시에는 존경을 받던 그 모든 자비의 행실이 이제는 경멸을 받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가 그녀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종이 바라던 표적에 꼭 맡게 응답을 했다. 그녀의 행동은 그 종의 뜻과 놀랄 만큼 일치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종에게만 물을 준 것이 아니라, 흔히들 예상하지 못하는 일, 즉 그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었던 것이다. 이 일이 바로 그 종의 제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첫째로, 하나님은 때때로 그 섭리를 통하여 믿음의 기도를 놀라운 방식으로 인정하여 주신다. 그리고 비록 사소한 일일지라도 기도하는 백성들의 순수한 욕구를 풍부히 채워 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영역을 보이시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다. 그러나 사건의 결과가 신앙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약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미리 처방을 다 내리는 따위 일은 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로, 어떤 기회를 통해서나 겸손하고, 정중하며, 애정이 있고, 자비스런 성품을 드러내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때때로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생각한 이상으로 우리에게 영예와 유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서 천사들을 대접한 일이 있다. 리브가는 그 당시에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혈통의 계약 속에 들어가세 된 것이다. 셋째로 돈은 별로 들지 않지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일이 많다. 우리 주님께서는 한 그릇의 냉수에도 보상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바 있다(마 10:42). 넷째로 어떤 일이든 우리의 일이 성공되어 가도록 촉진하려면,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와 그 섭리의 사소한 사정들을 세밀히 관찰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경탄과 감사를 돌려야 한다. "그 사람은 경탄했다(주목하다: 개역)" (21절). 우리에게 의무감과 위로가 결핍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세심히 관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알아 본 결과 크게 만족했다. 또한 자기가 유숙할 곳도 제공할 수 있는 집임을 알았다(23-25절). 알맞은 반려자를 선택하기 위해 신앙과 기도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게 역사하시어 그들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행복한 결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행복한 결혼은 하늘에서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3. 그 종은 특별한 감사도 드려 하나님을 인정했다. 먼저 그는 리브가의 친절에 감사하여(22절) 처녀 특히 신부가 잊을 수 없는(렘 2:32) 금고리와 손목거리 따위의 장신구를 주어 존경의 뜻을 표했다. 사실 그 예물들은 "한 항아리의 물" 에 대한 답례로는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리브가는 때때로 귀걸이와 팔찌를 했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를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는" 덕 있는 여인(잠 31:13)이나 "어릴 때에는 종과 다름없는" (갈 4:1), 그러한 아이 이상으로 자기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 종은 그의 경탄(21절)을 하나님께 대한 예배로 바꾸었다. "나의 주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나이다" (26, 27절).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그는 처음에 모든 일이 순적하게, 즉 거치는 것이나 지체되는 일이 없이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을 기도했었는데(12절), 일이 모두 순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얻은 것은 찬양을 통하여 간직해야 함을 잊지 말자.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 자비는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의무를 이행케 하여 만들기 때문이다.

(2) 그는 고무적인 전망은 가지게 되었으나 아직 그 일의 결과가 실제로 그러하리라는 확증은 없었으나, 감사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에 찬양으로써 그 은총을 나아가 맞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3) 자기 주인을 위한 혼담이 시작되었을 때는 그 성공을 하나님께 찬양드렸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 자신에게 내리는 은총에 대한 것처럼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4) 그는 일을 수행하는 도중에 있었으며 어떤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가야 할지를 몰랐는데, 주께서 그를 인도하셨기 때문에 감사를 드린 것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경우,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매우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5) 주인은 갈데아의 우리를 떠나 가나안으로 왔지만, 아직 하란에 남아있는 그 "주인의 동생집" 에 도착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로 생각하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아브라함의 형제들은 우상 숭배자들이 아니라,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족이 믿는 신앙에 호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적합한 반려자를 만나게 됐을 때는, 하나님의 섭리로 알고 감사해야 함을 잊지 말자.

(6)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않으셨음" 을 인정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집안을 번성케 하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으나, 아직도 그 약속은 아무런 실효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섭리가 그 약속의 성취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해 두자.

[1]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세상적인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만은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는 목마르지 않는 샘이며, 하나님의 성실은 침범할 수 없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2]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이 계속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모든 축복이 주는 위로에 더 한층 큰 위로를 보태 준다.

 

24:11 없음.

 

24:12 없음.

 

24:13 없음.

 

24:14 없음.

 

24:15 없음.

 

24:16 없음.

 

24:17 없음.

 

24:18 없음.

 

24:19 없음.

 

24:20 없음.

 

24:21 없음.

 

24:22 없음.

 

24:23 없음.

 

24:24 없음.

 

24:25 없음.

 

24:26 없음.

 

24:27 없음.

 

24:28 없음.

 

24:29

혼담의 성사(창세기 24:29-53)

여기서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결혼이 이루어져가는 것을 본다. 이 이야기는 매우 자세하고 세밀히, 어떤 데에서는 생략해도 좋으리라고 생각되는 사소한데 까지도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매우 중대하고(멜기세덱의 이야기와 같이) 신비한 일은 한 두 마디로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호기심 가는 것을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능력에 맞도록 어린아이들에게 보여 주시며(11:25),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고전 1:21).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삶 속에 있는 작고 평범한 일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야 하고, 바로 그러한 일 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총명함과 감사 기도를 나타내야 한다. 성서는 철학자나 정치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식구들의 모든 행실이 지혜롭고 덕스럽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Ⅰ. 리브가의 친척들이 아브라함의 종을 매우 극진하게 맞아들인다. 리브가의 오빠 라반은 "그 누이의" 귀걸이와 그 손의 "손목거리" 를 보고 나서야 나아갔다(30절). 라반은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오, 여기 아주 재산이 많고 너그러운 사람이 준 물건이 있군! 그를 반갑게 맞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우리는 다음 이야기를 통해 라반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아마 충분한 대가를 기대할 수 없었다면 라반은 그처럼 선선히 그 종을 접대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53절).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잠 18:16),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한다" (잠 17:8)는 사실을 명심하자.

1. 라반의 초대는 친절한 것이었다.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31절). 그들은 아브라함의 종이 부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라고 호칭한 것이다. 혹은 리브가로부터 그의 언행을 전해 듣고(28절) 선한 하나님께 복을 받은자를 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2. 접대도 친절한 것이었다(32, 33절). 방과 구유가 잘 제공되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 두 곳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약대들을 특별히 보살펴 주었다. "의인은 그의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기" 때문이다(잠 12:10). 소도 자기 주인이 자기를 돌보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거늘, 그 주인도 또한 자기 소가 자기에게 알맞은 것을 제공하고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Ⅱ.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의 심부름에 대하여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리브가에게 청혼을 하고 거기에 동의를 구했다.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의 일에 매우 전념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오랜 여행을 했고, 이제는 편안한 집에 와 있지만,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다" 고 말하고 있다(33절). 하나님을 위해서든 사람을 위해서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책임을 완수하는 일은 식사하는 긴요한 일보다 우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자. 또한 그러한 일이 우리 주님의 식사였다(요 4:34).

2.아브라함의 종은 이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매우 영리했다. 그는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총명한 동시에 정직한 사람임을 입증했다. 즉 그는 자기에게 일을 맡긴 주인에게 성실했고 대담하고 있는 상대자들에게 정당하게 대했다.

(1) 그는 자기 주인 집안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짐작컨대 그가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나이다" 하고 말했을 때 처음보다 배는 더 극진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분명히 아브라함의 이름은 그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고 존경을 받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또 아브라함이 그들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도 또한 아브라함의 형편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짐작이 된다(22:20-24).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의 혼담에 호감을 가게 하기 위하여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자기의 주인 아브라함은 대단히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2] 그리고 그의 주인이 이 모든 재산을 이제 구혼자인 이삭에게 모두 주었다는 사실이다.

(2) 그는, 자기의 주인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되, 자기의 친척 중에서 택하라는 책임을 맡긴 사실을 설명했다(37, 38절). 그리하여 그는 비록 아브라함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가 있지만 아직도 뒤에 두고 온 친척들을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다는 기쁜 사실을 언급했다. 아무리 지고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런 인간의 사랑을 훼방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종은 이삭이 장가를 들어야 학 자격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면, 이처럼 멀리까지 아내를 구할 사람을 보낼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즉 어째서 인근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느냐 하는 따위의 반대 의견에 미리 막았다. "충분한 이유가 있으므로, 우리 주인의 아들은 가나안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그의 혼담을 다음과 같은 사실로써 더욱 호감이 가게하고 있다.

[1] 믿음으로 자기의 주인 아브라함은 이 일이 성취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40절). 아브라함은 거룩한 삶의 정상적인 과정 속에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 는 양심의 증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용기를 얻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성공케 하시리라고 미루어 생각했던 것이다. 아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맺은 바 있는 계약(17:1), 곧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앞에서 행하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시리라." 계약 중에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해당하는 부분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을 또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약속을 특수 사정에 적용시키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2] 그는 그들이 동의를 해도 좋고 거절을 해도 좋은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이제까지 그가 설명한 바와 같이, 그는 아내를 허락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결코 맹세를 깨뜨리는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 주었다(39-41절). 다시 말하면, 이것은 그가 조심스러운 사람이며, 또한 구체적으로 보면, 이 혼담에 대한 그들의 동의가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3)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이 혼담을 후원하고 추진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이 모든 일 속에는 하나님의 손가락(권능)이 분명히 나타나 있음을 말해 준 것이다.

[1]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징조를 나타내시어 그 일을 제시해 주십사고 기도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42-44절). 하나님이 자기들의 사업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 자들의 사업은 훌륭한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문자 그대로 응답해 주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종 "묵도를" 했을 뿐이라고(45절) 말한 것은, 아마 사람들이 리브가가 이 사람의 기도하는 것을 넘겨듣고 의도적으로 비위를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닙니다. 나는 큰 소리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만 들으시도록 마음속으로(묵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생각이 곧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온 것입니다" (46, 47절).

[3]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즉각적으로 깨달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길은 언제나 "바른 길" 이다(시 107:7).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은 가장 좋은 안내를 받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자.

(4) 그는 공평하게 이 문제를 그들의 생각에 맡기고, 그들의 결정을 기다린다(49절).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당신들이 참으로 친절한 분이라면, 이 청혼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여기에 온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받아주시지 못한다 할지라도, 저를 마음 조이게 하지 마시고 분명히 거절한다고 말씀을 해 주십시오." 아름답게 남을 대우한 자는 역시 후한 대접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5) 그들은 대단히 자비로운 원칙 위에 서서 자유롭고, 즐겁게 이 제안을 결정했다(50절),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았고 하나님의 섭리가 이 일에 대해 미소를 지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조금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 먼 곳이라든가, 아브라함이 자기들을 버렸다든가, 그가 재산밖에는 어떠한 토지도 갖고 있지 않다든가 하는 따위의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사람이 하는 이야기의 진실성 여부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1] 그들은 그 종의 정직을 굳게 믿고 있었다. 만약 정직이 사람들이 사는 곳 어디에나 넘쳐흘러,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매우 현명한 일이 되기도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2]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어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없이 동의를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무한한 지혜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지시되었고 또 의도된 것으로 보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결혼일 때에, 비로소 위안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6) 아브라함의 종은 그가 이룩한 훌륭한 성공을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했다.

[1] 그는 "여호와께 경배했다" (52절).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그의 모든 일이 계속 성공하자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때마다 감사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그보다 먼저 보내시어, 그로 하여금 성공케 하신 것이다(7, 40절). 그러나 그가 바라는 성공을 이루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자들의 도움으로 어떤 유익을 얻든지, 그 모든 영광은 그 사자들의 여호와께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계 22:9).

[2] 그는 그 가족들, 특별히 신부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다(53절). 그는 신부와 신부의 어머니, 오빠에게 귀한 예물을 많이 선사했다. 자기 주인이 참으로 부하고 너그럽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친절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들과 잘 사귀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24:30 없음.

 

24:31 없음.

 

24:32 없음.

 

24:33 없음.

 

24:34 없음.

 

24:35 없음.

 

24:36 없음.

 

24:37 없음.

 

24:38 없음.

 

24:39 없음.

 

24:40 없음.

 

24:41 없음.

 

24:42 없음.

 

24:43 없음.

 

24:44 없음.

 

24:45 없음.

 

24:46 없음.

 

24:47 없음.

 

24:48 없음.

 

24:49 없음.

 

24:50 없음.

 

24:51 없음.

 

24:52 없음.

 

24:53 없음.

 

24:54

고향을 떠나는 리브가(창세기 24:54-61)

여기에서 리브가는 자기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

1.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도 곧 떠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간청한다. 비록 그와 그의 일행이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고 지극히 즐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보내어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소서(54절)" 하고 말하고 다시 56절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주인이 자기가 돌아 올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자기의 즐거움보다 자기의 의무를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인 이 종은 집에 돌아갈 것을 서둘렀던 것이다. 우물쭈물하거나 빈들빈들 거리는 자는 결코 현명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가 없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사업 관계로 해외에 나가는 때는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위하여 지체없이 돌아와야 한다.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 체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릇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잠 27:8).

2. 리브가의 친척들은 그들이 지닌 자연스러운 애정에서, 그리고 그런 경우의 친절을 표현하는 관용적 어법으로써 리브가가 그들과 함께 얼마동안 머물도록 간청하고 있다(55절). 그들은 리브가와 이렇게 갑자기 헤어지리라고 생각지를 못했던 것이다. 특별히 이제 리브가가 그처럼 멀리 떠나게 되니,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고 했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 있는 대로, "일년이나 적어도 열달" 동안 머물러 달라고 읽는다면, 불합리한 요청일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동의했다. 그러나 아직도 리브가와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한결같이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슬픔이 깃들어 있지 아니한 순수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즉 Nulla est sincera voluptas, 순수한 기쁜이란 없는 법이다. 그들은 자기 집안의 딸이 훌륭한 혼처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 무척 즐거웠다. 그러나 마침내 그 딸을 보내게 되자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리브가 자신이 이 문제를 결정하였다. 그들은 리브가에게 호소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57절). "소녀를 불러(자기 방에 겸손히 입을 다물고 조용히 가 있는) 그에게 물으리라" 고 했다.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 일이 결정되기 전에 "그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어보라." 그 소녀는 이 일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누구보다도 그 소녀와 상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리브가는 가기로 동의했다. 가겠다고 한 것뿐만이 아니라 즉시 가겠다고 한 것이다. "내가 가겠나이다" (58절).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의 경건하고 헌신적인 태도를 보고서 그 집에는 훌륭한 신앙과 경건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자, 신앙이 별로 크지 못한, 자기의 백성과 아버지 집을 떠나 빨리 서둘러 그곳으로가고 싶어했을 것이다.

4. 이리하여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과 함께 길을 떠난다. 우리는 그 이튿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아주 급히 떠나간 것이다. 리브가의 친구들은 그가 이 일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즐겁게 떠내 보냈다.

(1) 리브가는 알맞은 동행인들과 함께 떠났다. 그의 "유모" (59절), 그의 "비자들" (61절)과 더불어 떠난 것이다. 생각건대 리브가가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간 것은 그가 부릴 시종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한 일도 그가 즐겨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가는데, 그가 잘 아는 낯익은 사람들과 함께 가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리브가의 개인적인 자질이 실은 그의 지참금이나 다름이 없었고, 따라서 그가 따로 지녀야 할 아무 것도 필요가 없었으며, 지참금의 문제는 혼담 때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2) 그들은 충심으로 리브가의 앞날에 행복을 기원하면서 떠내보냈다. "리브가에게 축복하였다" 고 했다(60절). 우리들의 친척들이 새로운 조건 속으로 들어갈 적에,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에 부탁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제 리브가는 한 사람의 아내가 되려는 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가 수많은 그리고 승리하는 자손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아마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 주인에게 최근 하나님께서 맺으신 약속 즉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22:17). 한 약속의 내용을 그들에게 이야기했고, 그들은 이 축복을 마음에 두어 "너는 그 후손의 어미가 될지어다" 하고 축복을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24:55 없음.

 

24:56 없음.

 

24:57 없음.

 

24:58 없음.

 

24:59 없음.

 

24:60 없음.

 

24:61 없음.

 

24:62

이삭의 결혼(창세기 24:62-67)

마침내 이삭과 리브가는 행복하게 결합하였다.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Ⅰ. 이삭이 리브가를 만난 것은 그가 선한 일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가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 혹은 기도하고 있었다" (62, 63절). 어떤 사람들은 이삭이 자기의 종들이 이때쯤 돌아오리라 예상하고 그들을 맞이하려고 들에 나갔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일, 즉 고요한 저녁에 외로운 들판에서 묵상하고 기도하기 위해서 나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묵상과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룩한 행실인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경건한 사람들은 조용히 물러가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홀로 걷는다든지 홀로 앉아 있다든지, 가끔 홀로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고독과 참 경지에 들어서게 되면 우리는 조금도 외롭지 아니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우리가 홀로 있을 때에는 묵상과 기도를 일 삼고 그것을 즐거워해야 한다. 우리가 친숙할 수 있고 분명한 관계를 지닐 수 있는 하나님이 있고 그리스도가 있고 또 하늘 나라가 있다면, 기도나 명상의 제목이 결코 모자랄 수는 없다. 기도와 명상이 함께 있다면 그들은 서로들 돌보아 도와준다.

3. 우리가 들에 나아가 깊은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들판에 나아가는 일이 참으로 즐거운 것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 위에 있는 아득하고 드높은 하늘과 우리 주위에 한없이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면서, 또 그 하늘과 그 대지의 천체와 풍요함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창조주와 이 모든 것의 주인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4. 저녁에 드리는 기도는 하루의 번거로운 살림과 사업 때문에 지친 피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고, 밤의 숙면을 준비하기 위한 원기 회복과 위안이 됨이 분명하다.

5.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는 갑절의 위로와 축복으로 우리에게 임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때 이삭이 이 혼담이 성공하게 해 주십사고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삭은 이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일을 깊이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이삭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려고 선지자처럼(합 2:1) 망루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고 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사 사람들이 기도하는 바를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도 하시는 것이다(행 12:12).

Ⅱ. 리브가는 이삭을 만났을 때 대단히 적절하게 행동하였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자, 리브가는 "약대에서 내려(64절) 너울을 취하여 자기를 가리웠다" 고 했다(65절). 이것은 겸손과 정숙함과 순종의 표시였다. 리브가는 이삭이 자기에게 달려나와 자기를 반가이 맞아 주지 않았다고 그를 비난하지도 아니하였고, 적어도 자기를 맞기 위해 하루나 이틀 정도의 거리쯤 나와 마중을 하지 않았다고 질책하지도 않았다. 자기의 여행이 피곤했다고 불평을 하지도 않았고, 친척들과 헤어질 때의 어려움이나 낯선 곳에 와야 하는 어려움 등을 불평하지도 않았다. 이 일에서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자기보다 앞서가고 있음을 깨달은 리브가는 오히려 즐겁게 그의 새로운 관계에 적응해 갔던 것이다.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그에게 처녀의 순결을 드리기 원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겸허하신 것같이 그를 본받아 겸손해야만 한다. 마치 리브가가 이삭을 만났을 때 말에서 내려 걸어간 것처럼 해야 한다. 또한 그런 자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마치 리브가가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고전 11:10).

Ⅲ. 그들은 서로 평안하고 안락하게 어울려 살게 되었다(물론 서로 더욱 잘 알게 된 후이겠지만;67절).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1. 이삭은 참으로 그의 어머니에게 효성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때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이 되는 때였으나 아직까지도 이삭은 마음에 위로를 받지못하고 서글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불행이 그의 부드러운 영혼에 남긴 상처는 오랫동안 치료가 되지 않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주신 새로운 혈연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치료되었다. 이처럼 십자가와 형통한 위로는 서로 병행하여(7:14) 저울대의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2. 이삭은 참으로 그의 아내에게 애정 깊은 남편이었다. 한 인척에게 잘 대해 준 사람은 또 다른 인척에게도 잘 해 주리라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다." 이삭이 그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모든 남자는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 그 이유의 전부였다. 그 때 부부의 관계는 의무를 다하는 것이요, 또 그 관계가 주는 위안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 곳에 여호와께서는 축복을 내려주시기 때문이다.

 

24:63 없음.

 

24:64 없음.

 

24:65 없음.

 

24:66 없음.

 

24:67 없음.




































 


  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5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5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9 Next
/ 19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