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8:1

천사와 아브라함의 면담(1)(창세기 18:1-8)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이같이 나타나신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보다도 더 소탈하고 절친하며 별로 장엄한 위엄을 갖춘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중의 한 인간과 같이 나타나신 때에, 곧 때가 차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사에 찾아오셨던 저 놀라운 방문과도 매우 흡사하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배우자.

Ⅰ.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은 어떻게 기다렸으며, 그의 기대는 얼마나 풍족히 응답되었던가!(1절). "정오쯤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 하였으니, 이는 휴식을 취하며 놀고 있었다가보다는, 그 곳에는 아마 나그네나 길손들을 숙박시킬 숙소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대접함으로써 선행의 기회를 찾기 위하여 앉았을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우리는 지극히 자유스럽고 자발적인 선행으로 인하여 가장 큰 위로를 갖게 되는 수가 있다.

2.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을 먼저 나타낸 그 사람을 은혜롭게 찾아 주시며, 그를 기다리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다. 아브라함의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그 세 사람이 자기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세 사람을 하늘 나라의 존재들이었는데 이제 인간의 육체를 빌어 나타난 것은,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게 하고 그와 대화하기 위함이었다. 혹자는 그들 모두가 피조된 천사들이었다고 생각하며, 또 혹자는 그 중의 한 사람은 계약의 천사 곧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여호와라고 불러 그를 다른 천사들과 구별했다고 한다(3절). 바울 사도는 손님 대접을 장려하기 위하여 이 사건을 인용하고 있다(히 13:2). 자발적으로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자는 천사들을 대접하게 되며 말할 수 없는 영광과 만족함을 맛보게 된다. 신중하고 공정히 판단해 보아 아무런 나쁜 의심을 품을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에게서 좋은 것을 희망하고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 사랑의 교훈이다. 꿀벌(부지런한 자) 하나를 굶어 죽게 하느니 수필(게으름뱅이)이나 장수말벌(성 잘 내는 자) 다섯을 돌보아 주는 것이 더 낫다.

Ⅱ.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어떻게 접대했으며, 그의 접대가 얼마나 친절히 받아들여졌는가를 보자. 성령께서는 아브라함이 그 나그네들에게 아낌없고 인정 넘치는 환대를 베풀었음을 특별히 유의하신 것이다.

1.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매우 공손하고 정중히 대하였다. 자기의 나이나 채면도 불사하고 극진히 정중한 태도로 "달려나가 영접하였으며" 그들은 단지 품위 있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었으나, 아브라함은 갖추어야 할 모든 예절을 갖추어 "몸을 땅에 굽혔다." 신앙은 아름다운 예절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증진시키며, 모든 사람들을 예우하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주목하라. 정중한 예절은 경건을 표하는 훌륭한 장신구이다.

2. 그는 지극히 정성스럽게, 그리고 성가실 정도로 그들이 자기 집에 유하기를 간청했다. 그것을 큰 은혜로 생각하였던 때문이다(3,4절). 다음 사실을 알아두자.

(1)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한 자들은 그들의 능력에 따라 손님 접대하는 일에 있어서도 도량 크고 솔직하여(인사말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친구를 환영한다. 우리는 즐겨 남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이나 사람은 모두 기꺼이 주는 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누가 먹으려 하겠는가?(잠 23:6, 7).

(2) 하나님과 사귀려 하는 자연 열심히 교제를 갈망하고, 그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간절히 바랄 만한 손님이다.

3. 그의 접대는 참으로 아낌없는 것이었지만, 검소하고 소박했다. 거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진수성찬이나 진귀한 음식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의 식당은 나무 그늘이었고, 멋있는 식탁보도 없었으며, 식기나 찬장도 따로 없었다. 음식도 송아지 고기 몇 접시와 화로에 구은 과자 몇 조각이었다. 그것도 급히 서둘러 요리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부유했고 그의 손님들도 정중한 분들이었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진미도 없었고 요리 종류도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양념된 고기나 특히 맛 좋은 과자는 없었다. 그러나 맛있고 소박하며 위생적인 음식들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별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의하자. 비록 음식이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좋은 음식으로 감사해야 하며, 꼭 진수성찬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런 음식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에만 마음을 쏟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4.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는 자기들의 최선의 것으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세심한 신경을 썼고 또 분주했다. 사라는 손수 요리를 하고 아브라함은 달려가서 송아지를 끌어오고 우유와 버터를 가져왔다. 그는 식탁일 따위는 자기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1) 참으로 덕 있는 자는 위엄을 나타낼 필요가 없으며, 그들의 신중한 겸양의 태도도 그들을 경멸하지는 못한다.

(2) 진정한 우의는 죄 이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몸을 굽힌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겸손한 사랑으로 서로의 발을 씻겨 주라고 우리에게 교훈 하신 바 있다. 자지 자신을 이렇게 낮추는 자가 높임을 받는다. 이리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자체가 선행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1, 26). 믿음의 조상은 그 사랑과 관대함, 그리고 그 훌륭한 가정 관리로 유명하였으니, 우리는 그에게서 선한 일을 행하고 전하는 것을 배워야겠다.

 

18:2 없음.

 

18:3 없음.

 

18:4 없음.

 

18:5 없음.

 

18:6 없음.

 

18:7 없음.

 

18:8 없음.

 

18:9

천사와 아브라함의 면담(2)(창세기 18:9-15)

이 하늘의 손님들은(최근에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으리라는 아브라함에게 준 계약을 확증하기 위해 보내졌던) 아브라함의 친절한 접대를 받은 반면, 그들은 그의 친절에 보답을 한다. 아브라함은 천사들을 맞이하였고, 천사들에게서 그 보답으로 하늘 나라의 은혜로운 소식을 받는다(마 10:41).

Ⅰ. 사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하였으니, 그 약속이 그녀에게서 이뤄진 것이 틀림없다(히 11:11).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그것도 낯선 자들과 더불어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지 않고 자기방에 들어앉아 있었던 것은 당시의 아름다운 관습이었다. 그러므로 사라가 그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말을 들을 수는 있는 곳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천사들은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고 묻고 있다(9절). 그녀의 이름 부름으로써, 그들이 비록 나그네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아브라함과 그 식구들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충분히 암시해 주었다. 그녀의 안부를 물어봄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에게 공손히 대해준 자의 가족들과 친적들에게 우정어린 친절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공중 예절의 하나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원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룩히 여겨야 한다. 또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그녀는 이것을 엿듣고 있었다) 그들이 앞으로 할 이야기를 그녀가 듣도록 하였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고 천사들이 말한다. "장막 안에 있나이다" 라고 아브라함이 대답한다. "그 곳이 아니면 어디에 있겠습니다" 라는 뜻이다.

1. 사라의 딸들을 그녀에게서 "순전하며 집안 일을 돌보는 것" 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딛 2:5). 여자가 나다니는 것은 득이될 것이 없다.

2. 자신의 위치와 의무를 지키는 자가 흔히 하나님과 그의 약속으로 위안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눅 2:8).

Ⅱ.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이 반복되고 확인된다(10절).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지금 약속을 가지고 너를 찾았듯이 다음에는 약속의 실현을 가지고 너를 찾아오리라." 하나님을 환영하고 하나님의 방문을 환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보답을 하신다. 곧 "내가 너의 친절에 보답하리니,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 고 여기에 반복되어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경건케 하기 위함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믿기에 느리므로 같은 뜻을 반복할 필요가 있다. 위의 말씀이 바로 사울 사도가 인용하여(롬 9:9), 이삭이 출생하리라는 것으로 이해했던 그 약속의 말씀이다. 다음을 기억하자.

1. 남들은 일반 섭리로 얻게 되는 바로 그 축복도 믿는 사람들은 약속으로 얻으며, 이 약속이 그들을 기쁘고 확신에 차게 만들어 준다.

2.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은 저들의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그 약속에 의하여 받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탄생된다.(벧전 1:23).

Ⅲ. "사라가 속으로 웃었다" (12절). 그는 이것이 너무나 기쁜 소식 이어서 이뤄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그 때까지도 마음속으로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웃음과 같이(17:17) 믿음으로 기뻐하는 웃음이 아니라 의심과 불 신앙의 웃음이었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매우 다른 뜻으로 행하여지는 수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만이 심판하실 수가 있음을 알아야 겠다. 사라가 묵과할 수 없는 큰 방해물은 그녀의 나이였다. "내가 노쇠하였고, 생리적으로 보아도 해산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고, 특히 지금까지 임신하지 못하고 지내왔으며(어려움을 과장하여) 내 주인도 늙었나이다." 여기서는 다음 사실을 살피고 배우자.

1. 사라는 아브라함을 그의 "주인" (lord)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말 중에 이 말만이 선한 말이며, 성령께서는 그녀의 정절을 이 말속에서 발견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아내들이 본받을 것으로 권면하고 계신다. 베드로 전서 3장 6절에 이르기를,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였으니" 그것은 존경과 복종의 증거라고 했다. 이처럼 아내는 그 남편을 경외해야 한다(엡 5:33). 말이란 물론 나쁜 말과 말에는 사랑의 옷으로 덮어 줄줄 알아야겠다.

2. 인간이 생각하는 불가능이 흔히 하나님의 약속과 모순되어 보이는 수가 있다. 감각 세계의 난점이, 참된 신앙인이라도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는 쉽사리 방해가 되고 방황하게 하기가 일쑤다. 제 2의 원인(현실 세계)이 못마땅하게 보일 때에 제 1원인(조물주0에게로 나아간다는 것을 어려운 일이다.

3. 참 신앙이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불 신앙과의 괴로운 갈등이 있게 된다. 사라는 "여호와여, 내가 믿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히 11:), "여호와여, 나의 불 신앙을 구하여 주소서" 라고 말해야 한다.

Ⅳ. 천사는 그녀의 불 신앙적인 무례한 인사를 비난했다(13,14절). 다음을 살펴보자.

1. 사라는 조금 전에 매우 친절하고 관대하게 천사들을 대접하였으나, 그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마르다의 집에서 마르다를 책망하였듯이(눅 10:40, 41) 책망을 받았다. 친구들이 우리에게 친절히 대해 주는데도, 우리는 그들에게 매우 불 친절히 대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2. 하나님은 이 책망을 사라의 남편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전달 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사라가 왜 웃느냐?" 고 말씀하셨다. 얼마전에 아브라함에게 이런 약속을 준 것을 그녀에게 전달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약속의 재확인과 동시에 그 약속을 그녀에게 알려 주었더라면, 지금처럼 그녀가 놀라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녀에게 약속을 전해 주라는 명령을 아브라함이 받았을 것이다. 만일 이유가 있다면, 서로를 책망해 주는 것이 부부간의 의무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3. "사라가 왜 웃었느냐?" 고 했다. 책망 그 자체는 꾸밈이 없었고, 배후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 되지 않도록(전 7:6) 우리의 웃음의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왜 웃었던가?"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의 불신임과 불 신앙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대한 크나큰 죄이다. 누구복음 1장 18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과 모순되는 감각적인 난점을 제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연히 악하게 보신다.

4. 인간의 모든 트집에 응수할 수 있는 한 질문이 있다. "여호와께서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는가?" (히브리어로는 "너무나 엄청나 할 수 없는" 으로 되어 있다)라고 했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뜻이다.

(1) 여호와께서 모르실 만큼 은밀한 일이 있겠느냐? 천만에 "마음속으로만" 웃었지만 사라의 웃음도 그렇게 은밀한 것이 못된다.

(2) 또 그의 능력이 못 미칠 만한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천만에 늙은 나이의 사라에게 하는 일도 그렇지 못하다.

Ⅴ. 사라는 어리석게도 자기의 허물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다(15절). 즉 어느 누구도 자기를 반박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사라는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말했다. 그녀가 이 같은 거짓말을 한 것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눈을 속이려고 꾀했던 것은 헛된 일이었다. 수치스럽게도 "너는 웃었느니라" 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1. 사라는 마음속의 불신임을 취소하는 것 같이 보이다. 이제 그녀는 전후 사정을 통하여 그 약속이 자기와 관련하에 세워진 하나님의 약속임을 깨닫고, 그것을 의심하고 불신했던 온갖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말았다.

2. 그리고 그 위에 거짓말로 죄를 은폐시키려는 악한 시도가 또 있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수치다. 그러나 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그것을 부인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속으로 빠뜨린다. 이사야서 57장 11절에 보면,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거짓말을 말하느냐?" 고 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속이려든다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밝히실 진리를 가져오실 수 있으며, 또 가져오실 것이니 우리의 수치가 되리라. 자기의 죄를 음폐하는 자는 번영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것을 드러낼 그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18:10 없음.

 

18:11 없음.

 

18:12 없음.

 

18:13 없음.

 

18:14 없음.

 

18:15 없음.

 

18:16

천사와 아브라함의 면담(3)(창세기 18:16-22)

하늘에서 온 사자들은 자기들의 용무를 이제 급히 서두르고 있다. 그들의 용무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은혜를 전해 주는 심부름이었다. 그것은 이미 전달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 앞에 또 다른 한 사명이 있다. 소돔을 멸망시키는 것, 그것이 그들의 할 일이었다(19:13). 긍휼하심이 여호와께 있듯이, 복수함도 그에게 속해 있는 그런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자. 그들이 위임받은 사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1. "그 사람들은 소돔으로 향하였다" (16절).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를 보셨다(14:24)고 하심같이, 그들은 소돔을 대하여 진노의 얼굴을 돌렸다. 하나님이 죄인들은 오랫동안 묵인하시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저들을 모르거나 무관심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이르게 되면 그들에게 얼굴을 향하리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2. "그 사람들은 소돔을 향하여 갔다" (22절). 그러므로 그들 중의 둘은 소돔에 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19:1). 셋째 번 천사는 아브라함이 그 앞에 섰었고 가까이 나아갔던(23절) 여호와였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처럼 천사들이 소돔으로 가기 전에 먼저 그들을 떠났었고 또 아브라함이 그 앞에 나아갔던 여호와의 후광(shechinah) 곧 그가 전에 보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이었는지, 그것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다음 사실은 알 수 있다.

Ⅰ. 아브라함이 그의 손님들에게 베푼 예우.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려 함께 나아갔다" 고 했다. 이것은 그처럼 훌륭한 일행들과 헤어지기 싫었고, 그들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싶은 자의 행동과 같았다. 이것이 우리 친구들에게 보일 합당한 예의의 단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지시하는 것처럼, 전송이란 "하나님께 합당하게" (요삼 6) 행해야 한다.

Ⅱ. 천사들이 그에게 보인 이유. 하나님을 예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예우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시라는 뜻을 그에게 전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문제에 관하여 그와 거리낌없이 의논해 주셨다. 하나님은 전보다 더욱 친밀히 그를 하나님과의 계약 속으로 이끄셔서(17장). 이제 전보다 더욱 친밀하고 교제를 그에게 허락해 주신다. 그리하여 그를 의논 상대자로 삼으셨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아브라함에 관한 하나님의 친절한 생각(17-19절). 소돔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그 이유와 더불어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시기로 한 하나님의 결의가 거기에 나타나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들을 전송하려 함께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는 그런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는 자는 지혜를 얻게 된다(잠 13:20). 하나님께서 기쁘게 스스로에게 의논하심을 보라.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 숨기겠느냐?" (또는 혹자가 보듯이. "…것을 내가 아브라함에게 숨기고 있는가?")고 하신다. "아브라함에게 말하지 아니하고도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하는 방식을 따라서 그의 뜻을 친히 나타내신다. 그러나 왜 아브라함이(하늘나라의) 국무회의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유대인들이 생각하기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허락하신 바 있으므로 그가 알고 동의하지 않고는 허락된 땅의 일부부인 그 도성들을 멸하시지 않으려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두 가지 이유를 여기에 제시하셨다.

(1) 아브라함은 알아야 했으니, 그가 하나님의 친구요 충애받는 자이며, 또 그를 위해 특별한 자비와 큰 일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이 될 것이고, 더욱이 그에게서 유래될 메시야를 통하여 "천하 만민들의 복을 받게 될 것이라" 는 것이다. "여호와의 비밀이 그를 경외하는 자와 함께 있다" (시 25:14; 잠 3:23)는 것을 알아야 겠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교하는 생활하는 자는, 비록 예언자적인 지식에 의해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분별 있는 실제적 지식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저들은 현재의 문제도 남보다 더 훌륭하게 통찰하며(호 14:9; 시 107:43). 또 다가오는 일은 최소한 저들의 인도와 위안이 될 만큼은 보다 깊이 예견한다.

(2) 아브라함은 알아야 했으니, 그가 그의 권속들에게 알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매우 잘 아노라." "그가 그 자식과 권속에게 알려줄 것이니라" (19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일로 생각할 수 있다.

[1] 아브람함의 성격과 모범의 매우 밝은 측면으로 그는 자기 가족과 함께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식 있는 사람이어서 그들을 가르쳤으며, 도 능력의 사람이어서 그들을 명령하셨고, 가정에서는 제사장이었을 뿐 아니라 예언자요 왕이었다. 여기서 다음 것을 살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그와 그 자손에게 약속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 약속에 준하여 그 권속들도 할례를 받았고, 그는 그들을 가르치고 잘 다스리는 일에 지극히 유의하였다는 것이다. 가정의 축복을 기대하는 자는 가정의 의무를 깨닫고 있어야 한다. 우리들의 자녀들은 여호와의 것이라면, 사역자들이라면, 그의 역사(役事) 가운데서 그들을 훈육해야 한다. 둘째, 아브라함은 그 자녀들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권속들까지 돌보았다. 그의 종들도 교리 문답의 교육을 받은 종들이었다. 가장들은 자기 지붕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실을 가르치고 보살펴야 한다. 가장 비천한 종들이라 할지라도 그들도 돌보아 주어야 할 귀중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셋째, 아브라함은 그의 가정의 실제적 신앙을 향상시키는 일은 자기 관심사요 임무로 삼았다. 그는 기묘한 사색이나 회의적인 논쟁으로 그들의 머리를 채워 준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도를 지켜 정의와 공도를 행하라고 가르쳤다. 이는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성실하고 헌신하며, 모든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정직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넷째, 그 중에서도 특히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들을 유의하고 있었다. 더욱이 자기와 같이 살고 있는 권속들 뿐 아니라, 자기 후대에올 권속들이 자기가 후에도 여호와의 도를 지켜서 신앙이 그 가정에서 융성해질 것을 염두에 두었었다. 다섯째, 그가 이런 일을 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약속 조건의 이행이었다. 자기 의무를 깨닫고 있는 자만이 약속된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2] 하나님께서 소돔에 관한 뜻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는 이유로.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기 좋아했고, 자기 휘하에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 지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마 13:12; 25:29), 자기 지식을 선용하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2.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친절한 대화. 거기에서 하나님은 소돔에 관한 당신의 뜻을 그에게 알려 주시며, 그 문제에 관해서 하나님께 청원할 자유를 허락하셨음을 볼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소돔을 싫어하신다는 확증을 일려 주신다. "소돔이 부르짖음이 크다" (20절)고 했다. 죄인들의 죄악은 큰 소리로 하늘에 부르짖어 복수를 내려달라고 소리친다는 것을 명심하자. 소돔의 죄악은 부르짖는 죄악이었으니, 이것은 그 죄악이 매우 극성을 부르고 있어서 하나님을 향하여 벌하여 달라고까지 재촉한다는 것이다.

(2) 이 증거를 조사해 보심. "내가 이제 내려가서 보고 알려 하노라" 고 했다(21절).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의심되는 일이 있거나 암중모색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식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자신을 표현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1] 그의 모든 재판 과정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공정심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은 흔히 하나님의 방식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의 심판이란 영원한 뜻의 결과이며, 결코 경솔하거나 갑자기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들도 알게 해야겠다. 하나님은 결코 소문이나 일반적인 평판, 또는 남들에게서 얻은 정보로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확실하고 무흠한 판단에 의하여 벌하신다.

[2] 소송 사건의 시비를 심문하는 일에 최대의 관심과 정성을 보여줌으로써 행정관들이나 당국자들이 사건을 판결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3] 어쩌면 이 판결은 아직 결정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따라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할 수 있는 여자와 용기를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중재할 자가 있지 않을까 하고 살피신다(사 59:16).

 

18:17 없음.

 

18:18 없음.

 

18:19 없음.

 

18:20 없음.

 

18:21 없음.

 

18:22 없음.

 

18:23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재(창세기 18:23-33)

하나님과의 친교는 말씀과 기도로써 유지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에게 말한다. 하나님은 이미 소돔에 관하여 작정하신 뜻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한 바 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소돔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릴 기회를 포착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시며 또 기도할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때는, 우리도 그 말씀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Ⅰ.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갔다" (23절). 그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엄숙한 태도로 말씀을 건네는 모습이다. 이 같은 표현은 다음과 같은 암시를 준다.

1. 성스러운 관심. "그는 담대히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렘 30:21). "소돔이 멸망 받아야 한다면, 내가 그 도성을 위해 한 마디 좋은 말씀은 드릴 수 없겠습니까?" 하는 것이다.

2. 거룩한 신념. 그는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으며, "왕족처럼" 가까이 나아갔었다(욥 31:37). 우리의 본분인 기도를 드리려고 할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며, 그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충일 되어야 한다(레 10:3).

Ⅱ. 이 기도의 총괄적인 범위. 이것은 우리가 성서의 기록 중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엄숙한 기도이며, 그 기도는 소돔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아브라함은 소돔 사람들의 악을 몹시 증오하였다. 그들이 그 땅의 가장 좋은 곳을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했더라도, 롯처럼 그들과 함께 살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을 위하여 진지한 기도를 드린 것이다. 죄는 미워해야 마땅한 일이나 죄인들은 불쌍히 여기고 위하여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 두자. 하나님은 저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니, 우리도 그렇게 기대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재앙의 날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해야 한다.

1. 그는 소돔 중에 살고 있는 의인들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한다. 특히 의로운 롯에 유의하면서 의인들이 공통적 재앙에 빠지지 않도록 바라는 기도를 했음이 분명하다. 아브라함에게 성실하지 못했던 롯의 태도는 이미 오래 전에 용서하고 잊었으며, 저번에는 칼로 구해냄으로써 친절한 열의를 보여 주었던 그가, 이제는 그 기도로써 그를 구해 내려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2. 아브라함은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의인들 보아서라도 모든 사람을 구해 달라고 간구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을 친히 이같은 요청에 호의를 보이셨고, 사실상 그의 첫 마디 말에 응답해 주셨다(26절).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가 한 몸의 지체요, 적어도 온 인류는 한 몸을 이룬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가 한 형제들이다.

Ⅲ. 이 기도 중에 나타난 특별한 은혜.

1. 여기에 위대한 신앙이 있다. 효력 있는 기도란 신앙의 기도이다. 그의 신앙은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정당한 사유를 아뢰며, 그의 입을 의논으로 가득 채운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의에 기초하여 신앙을 실행하되, 다음과 같은 일에 지극히 신념을 가지고 있다.

(1)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 않는다" (23절). 아니 "하나님께서 이같이 함은 불가하다" (25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의 영예를 훼손하는 여하한 생각도 품어서는 결코 안 된다(롬 3:5, 6 참조).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1] 이 세상에는 의인이 악인과 섞여 살고 있다. 가장 선한 자가 있는 곳에 흔히 악인들도 다소 사는 법이며, 가장 악한자들 가운데도 선인들이 다소 있는 법이다. 소돔과 같은 곳에도 한 사람 롯이 있었다.

[2] 의인이 악인들 사이에 있다고 하더라도,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악인과 함께 의인을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그들이 동일한 공통적 재앙에 빠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최후의 날에는 구별이 되리라.

(2) 의인을 "악인과 균등히" 하시지 않으리라는 신념(25절). 비록 그들이 악인들과 함께 괴로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들과 같지는 않다. 공통적 재앙이라도 악인들에게 내린 것과 의인들에게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사 27:7).

(3)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시리라." 의심의 여지도 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이니, 그가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울 사도의 논증이기도 하다(롬 3:5, 6). 여기에서 다음을 명심해 두자.

[1] 하나님은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다. 모든 것을 견책하시고, 알고 계시며, 모든 것에 대해서 언도하신다.

[2]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의를 억제한다든가, 또는 부당한 것을 요구함으로써 어떤 사람에게도 악을 행치 않으셨으며, 앞으로 그렇게 하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명심하자(욥 34:10, 11).

2. 또한 위대한 겸손이 있다.

(1)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깊은 의식(意識). "티끌과 같은 내가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27절). 31절에서 그것이 반복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주님" 으로, 자신의 미천함을 "티끌" 로 생각하면서, 자기의 대담성과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허락해 주신 자기의 자유에 놀란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유념하자.

[1] 인간 중에 가장 위대하고 이름 있으며 공로가 있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에 지나지 않으며, 초라하고 미천한 존재이며 비열하고 연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2]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광대한 거리가 있음을 공손하게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은 영광의 주님이요, 우리는 땅 위에 벌레이다.

[3] 우리가 은혜의 보좌에 접근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허락 받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삼하 7:18).

(2) 하나님의 노여움에 대한 무서움 공포. "주여, 노하지 마소서" (30절). 32절에도 되풀이되어 있다. 다음을 명심하자.

[1]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끈덕지게 요구하는 행위는, 그들이 만일 자기들과 같은 인간들에게 그렇게 한다면 혹시 그들이 자기들에게 노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통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설사 우리가 어떻게 보이더라도 "정직한 자의 기도에 대하여는 노하지 않는 분이시다" (시 80:4).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잠 15:8). 그는 씨름을 걸어오는 자를 기뻐하신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 표정을 받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지 않도록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을 범하는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신앙으로 무장하여 중보자를 우리와 함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토록 하자.

3. 여기에 위대한 사랑이 있다.

(1) 소돔의 평판에 대한 자비로운 의견. 소돔이 심히 악하기는 하였지만, 그 중에는 다소간의 선한 사람들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악의 곳에서도 최선의 것을 희망할 수 있다. 그 두 가지를 그렇게 극단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더 낫다.

(2) 소돔의 복리에 대한 자애로운 소망. 그는 자기의 모든 관심을 그들에 대한 긍휼을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쏟았다. 아브라함이 여기서 소돔을 위해 기도한 것과 같이 그렇게 진지하게 자신과 자기 가정을 위해 하나님께 변호한 일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4. 큰 용기와 같은 신념이 있다.

(1) 그는 무례를 무릅쓰고 소돔에 있을 것이라고 자기가 생각한 의인의 숫자를 결정했다. 그는 50명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24절).

(2)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양보를 재촉하였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많은 양보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많은 양보를 빌었다.

(3) 그는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조건을 제시했다(5개 도성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자비를 내려 달라고) 이 정도면 그들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지극히 적은 수효였다.

Ⅳ. 기도의 성공. 그토록 씨름하던 그는 훌륭하게 이겼다. 일 개방백에 불과한 그가 하나님과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단지 간구하여 얻은 승리에 지니다 않는다.

1. 거기에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자비가 나타나 있다. 의인의 낯을 인하여 악인들을 살려 두려 하셨다. 하나님은 일반적인 자비가 나타나 있다. 의인의 낯을 인하여 악인들을 살려 두려 하셨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심에 있어서 그 얼마나 신속하신가를 보라. 그는 이에 대한 이유를 밝히시기까지 하신다. 선한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합심하여 선한 자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축복 받는 일이 있는가 살펴보라. 결코 없다.

2. 거기에는 아브라함에 대한 특별 은총이 나타나 있다. 곧 아브라함이 간청을 그만 둘 때까지 하나님은 양보를 계속하셨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소돔 성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성 전체가 살아 남게 될 만큼 아브라함이 우세하게 되었을 때, 왜 그는 간청하기를 중지했는가? 다음의 어느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 1년을 더 시험해 보았다가 열매 맺지 않으면, 그 열매맺지 않은 나무는 찍어 없애자고 동의했던 "포도원지기와" 같았으리라(눅 13:9). 즉 그만한 수의 의인이 없다면 마땅히 멸망 받아야 한다고 인정했을 것이다.

(2) 아니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간구하지 못하도록 아브라함의 영을 억제시켰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단 어느 곳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나면,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렘 7:16; 11:14; 14:11).

Ⅴ. 상호 협의(協議)의 중단이 있다(33절).

1. "하나님께서 가시니라." 하나님의 환상이란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 앞에 하나님을 두게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뢸 말씀을 미칠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떠나시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는 일에 결코 싫증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사 59:1).

2.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베풀어 준 영예를 뽐낸 것이 아니요, 이러한 일상외적(日常外的)인 대화 때문에 일상적인 임무 과정을 버렸던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의 위치로 돌아와서 그 사건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나타나 있지만, 소돔은 10명의 의인이 없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 우리는 인간에게 너무 적은 기대를 걸어서도 안 되지만, 하나님께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도 안된다.

 

18:24 없음.

 

18:25 없음.

 

18:26 없음.

 

18:27 없음.

 

18:28 없음.

 

18:29 없음.

 

18:30 없음.

 

18:31 없음.

 

18:32 없음.

 

18:33 없음.




































 


  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0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1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2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2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3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3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1.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1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2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3.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3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4.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4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5.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5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6.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6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7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8.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8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49.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49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50.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50장

    Category창세기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