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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포로가 된 롯(창세기 14:1-12)

여기에 성서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전쟁 기사가 나타난다.(비록 국가간의 전쟁이 역사상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 내지만)아브람과 롯이 여기에 연관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알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 전쟁에 대하여 사실을 고찰하자.

Ⅰ. 이 싸움에 가담한 당사자들. 침략자들은 4왕이었는데, 그 중 둘은 다름 아니라 사실 왕과 엘람 왕(곧 갈대아와 파사)이었다. 그들은 아마 직접 큰 왕국을 통치하는 군왕이 아니라, 그들의 휘하에 있었거나 그 큰 나라에서 파생된 어떤 지방의 수령이나 영주였을 것이다. 그들은 소돔 근방에 정주하고 있었고 그들의 발상지인 땅의 이름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침략을 받은 자들은 요단 평지 근처에 모여 있던 5도시, 곧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그리고 소알의 왕들이다. 그들 중 4왕의 이름은 나와 있으나, 다섯째인 소알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았든가, 사악하고 수치스러워 잊어버릴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Ⅱ. 전쟁의 이유. 그돌라오멜의 통치에 대한 5왕들의 반역이었다. 그들은 12년간이나 그를 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외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비옥한 땅에서 거두어들이는 바가 별로 없었으며, 그 땅마저도 자기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성장하는 강대국에게는 부유한 이웃 나라는 탐스런 먹이요, 일없이 호화로운 나라는 삼키지 쉬운 먹이었다. 소돔 사람들은, 노아가 일찍이 셈의 종의 되리라고 예언했던 그 가나안의 후예들이다. 엘람도 그들의 계통을 이은 자이다. 그 예언이 이처럼 속히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 13년에는 자기들의 예속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여, 조공을 거부하고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했고, 자기들의 옛 자유를 되찾으려 했다. 제 14년에는 얼마간의 휴전과 준비 기간을 가진 후에, 그돌라오멜은 그의 동맹자들과 연합하여 직접 그 반란을 징벌하고 진압하기로 했다. 이것은 자기의 무력으로 그들의 조공을 받아내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만, 탐욕 그리고 야심이 전쟁과 싸움을 일으키는 욕정임을 명심하라. 이들 탐욕에 찬 우상들에게 수천의 피가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다.

Ⅲ. 그 전쟁의 과정과 결과. 이들 4왕들은 소돔 왕이 자기들에게 항복하고 평화를 바라는 것이 지혜롭다고 경고했다. 또 그 인접국은 이미 황폐케 했고 노략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강해졌다(507절). 그러므로 이같이 승리에 넘치는 자들에게 소돔 왕이 감히 어떻게 접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소돔 왕은 굴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최후 수단을 써서 만난을 무릅쓰고 한 번 해 보려고 결심했다. 결국 전쟁이 벌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멸망시키기고자 하시는 자를 정신 빠지게 하신다.

1. 소돔과 그 동맹군은 패주하게 된다. 칼을 피하려던 많은 자들이 역청 구덩이에서 죽었음이 분명하다(10절). 도처에서 각가지 종류의 죽음에 둘러싸이는 것이 우리 인생이니, 전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2. 그 도성들은 약탈되었다(11절). 소돔의 모든 재물 특히 저장해 두었던 양식들을 정복자들이 약탈해 갔다. 관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포식하고 과도하게 남용하는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심판이나 그 밖의 다른 방법을 통해서 그 남용한 것을 빼앗아 가신다(호 2:8, 9)는 것은 하나님의 정당한 행동임을 명심하라.

3. 롯이 사로잡혔다(12절). 그들은 다른 자들과 함께 롯과 그의 재물까지 노략해 갔다. 롯에 관하여 관찰해보자.

(1) 롯은 이 공통적 재난을 이웃과 함께 했다. 비록 그는(분명히 나타나 있는 대로) 의로운 사람이요 또 아브람과 조카였지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재난에 빠진 것이다.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으로 임하리라" 는 사실을 명심하자(전 9:2). 가장 선한 자라도 이생에서 최대의 고난을 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 일이며, 하나님의 심판이 널리 미칠 때 우리들 자신의 신심(信心)이나 하늘의 은총을 입은 자와 우리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안전이 될 수 없다. 나아가 많은 정직한 자들이 악한 이웃들로 인해서 악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스스로 그들을 떠나든지, 적어도 그들과 구별되어 사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다(고후 6:17). 그리하여 자신을 구해 내야 하겠다(계 18:4)

(2) 롯은 소돔에 정주하기로 작정한 그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벌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일반으로 잡아갔더라" 고 했다. 이것은 분명 다음에 같은 일을 암시한다. 즉 그처럼 가까운 아브람의 혈족이라면 아브람의 동반자가 되어, 롯은 그의 장막에 머물렀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돔에 거할 것을 택했다면, 소돔의 재앙을 함께 받게 되더라도 달게 받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본분을 벗어나고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육욕으로 택한 것이 우리에게 위안을 가져오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음을 명심하자. 또 아브람과 다툼의 원인이 되었었고 그를 떠나게 했던 롯의 "재물" 을 빼앗아간 기록이 주신 하나님을 기뻐할 줄 아는 기쁨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 버리는 그런 기쁨을 하나님께서 당연히 빼앗아 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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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

포로에서 구출된 롯(창세기 14:13-16)

아브람의 직접 참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군사적 행동의 기사가 나타나 있다. 이 행동을 벌였던 것은 그 자신의 허욕이나 야심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의 원리에 의해서였다. 즉 그것은 자신을 부유케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의 벗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껏 아브람의 군사적 원정보다도 더 명예롭게 기획·실행되고 끝난 군사적 토벌은 결코 없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그에게 전해진 혈족의 어려움에 관한 소식.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그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살지는 아니하였기 때문에 즉각적인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가 있었다.

1. 그는 여기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 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이는 골 아벨의 자손으로서 그 뒤를 잇는 자라는 뜻이다. 그의 가정을 통해서 그토록 타락한 세대 속에서도 참된 신앙 고백이 유지되어 왔다. 아브람은 히브리인답게, 즉 경건한 신앙 고백자로서의 이름과 성품을 더럽히지 않게 처신하였다.

2. 간신히 목숨을 구해 도망한 자가 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마 그는 소돔 사람이었을 것이며, 다른 소돔 사람들처럼 그도 지극히 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브람과 롯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롯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고로, 그의 도움을 청하고 롯을 위하여 급히 도와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가장 악한 자라도 그들이 괴로움에 처하면 현명하고 기울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지옥에 있는 부자가 아브람을 "아버지" 라고 불렀으며, 어리석은 처녀들이 자기들의 기름을 위하여 지혜로운 자에게 아첨했었다.

Ⅱ. 아브람은 이러한 원정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그 동기는 분명히 선했고, 원정에 가담하라는 그의 소명은 확실하였다. 따라서 급히 서둘러 "집에서 길리고 연습된 자", 그 숫자 "318인을 거느리니", 집안으로서는 대가족이지만 군대로서의 지극히 소규모이며, 미디안 사람들에게 나아갔던 기드온의 군사 만큼밖에 안 되는 수효였다(삿 7:7). 그는 "훈련된" 종이나 "교리 문답을 배운" 종들을 뽑아 내었으니, 이는 그 후 한층 더 악한 세대가 개량한 기술에 비하면 매우 미흡한 것이었으나, 그 당대에는 완전한 전쟁 기술과 아울러 신앙의 원리를 배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집안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길을 지키라고 명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1. 아브람은 자기가 의지하고, 또 채용한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한 위인이었다. 그 종들은 힘과 영예가 될 뿐 아니라, 그의 신앙에 큰 기회도 주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귀중한 장소와 귀중한 상황에서는 진실로 가치 있고 바람직한 것들이었다.

2. 그는 선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까지도 하나님 섬기는 일을 가르쳤다.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자는 많은 육신 이외에 돌보아 주고 식량을 공급해 주어야 할 많은 영혼도 거느리고 있음을 명심하자. 아브람의 뒤를 잇고자 하는 자들은 자기 종들이 교리 문답을 받은 종들이 되게끔 해야 한다.

3.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언제 당할지 모르는 전쟁의 대비하여 그의 종들을 훈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거룩한 신앙이 화평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전쟁에 대비하는 일을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Ⅲ. 이 원정에 참여한 아브람의 동맹자들과 연합군들. 아브람은 그의 이웃들, 곧 그와 함께 하기 위한 "아넬과 에스골, 그리고 마므레" (그는 이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들을 설득시켜 자기와 동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원군으로 자기의 군사력을 강화한 것은 아브람의 분별 있는 처신이었다. 아마 그들도 그 다음에 자기들이 당하지 않기 위하여 이 만만치 않은 세력과 대항해야 할 이해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자기들도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친절과 공손으로 대하여 저들도 우리에게 쾌히 친절을 베풀게 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임무라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자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때에는, 섭리를 따라 인간의 조력을 애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Ⅳ. 매우 괄목할 만한 그의 용기와 행동

1. 그이 불리했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그 계획 자체가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농부와 목동으로 구성된 가족들이 이제 막 유혈과 승리에게 갓돌아온 4왕들과 대항하여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브람 토벌한 자들은 정복당한 군대가 아니라 승리한 군대들이었다. 또 어쩔 수 없는 필요성 때문에 이 대담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관대한 마음씨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본다면, 내가 알기로는 알렉산더가 시이저가 받는 칭송만큼 위대한 용기의 본보기였다고 생각된다. 신앙은 인간을 비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용기 있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자. 의로운 자는 사자와 같이 담대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영웅이다.

2. 원정 과정에 있어서는 대단히 수완 있는 행동을 보였다. 아브람은 전술에 생소한 사람은 아니었다. 기드온이 자기의 적은 군사들을 3개대로 나누었듯이(삿 5:16), 그도 가신을 "나누어" 여러 지역에서는 불시에 적을 기습함으로써, 그의 적은 군사들을 많은 무리로 보이게 하였으며, 그는 밤을 타서 공격을 가하는 기습 작전을 썼던 것이다. 정직한 책략은 우리의 안전과 유익에 좋은 친구가 됨을 명심하자. 뱀의 머리라도(그것이 옛 뱀과 전혀 같은 것이 아니라면), 특히 그 속에 비둘기의 순결한 눈이 있다면, 물론 선한 그리스도인의 몸이 될 수 있을 것이다(마 5:16).

Ⅴ. 매우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다(15,16절). 아브람은 자기의 적을 무찌르고 친구들을 구조하였는데, 그가 어떤 손실을 입었다는 기사는 없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동기로써 대담하게 나가는 자는 인자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가 있으며, 당연히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하자. 다시 말하거니와 그 모든 것은 단 한 가지 뿐이니, "곧 사람의 많고 적고 간에 구원은" 여호와와 함께 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삼상 14:16).

1. 그는 자기 혈족을 구출했다. 여기서는 두 번이나 "조카 롯" 이라고 불리운다. 본성적으로 은혜로써나 그들 상호간은 친족관계임을 기억함으로써 아브람을 전에 있었던 그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을 잊었다. 그 다툼을 하는 동안 롯은 아브람에게 결코 좋은 행동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자기와 다투고 떠나간 롯을 아브람은 당연히 견책하거나, 이미 자기는 잘해 주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또 과연 롯이 유복하게 지낸 것은 어느 때였던가를 알려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굳은 아브람의 관대한 마음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포착하여 오히려 자기의 성실한 화해의 산 증거를 삼았다.

(1) 우리에게 능력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곤경에 처한 자들을 기꺼이 구제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그리해야 함을 기억하자. "형제는 위급한 때를 인하여 났느니라" (잠 17:7). 곤경 속의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이다.

(2) 비록 남들이 우리에게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우리의 임무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목하라.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친구보다는 적들을 더욱 쉽사리 용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화목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용서하신다" (미 7:18)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적이나 친구를 모두 용서해 주어야 함을 알게 되리라.

2. 롯 때문에 낯설고 구해 줄 의무가 없는 다른 포로들로 아브람이 구해 주었다. 보다도 저들은 소돔 사람들이었고 여호와 앞에서 큰 죄인들이었고 몸값을 주고 롯만을 데려 올 수 있었지만, 그는 모든 부녀자들과 국민들과 주민들과 그 제물까지 되찾아 왔다(16절).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하며, 가능한 한 우리의 선은 널리 미쳐야 된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모든 곳에서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에게 한결같이 선을 베풀어 주시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마 5:45). 아브람의 왕들과 싸워 얻은 승리를 예언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41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즉 "누가 동방에서 의로운 사람을 일으키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겠느뇨?" 그리고 혹자는 그가 전에 은혜로써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듯이, 이제는 정복을 통해 소유권을 갖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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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과 멜기세덱의 면담(창세기 14:17-20)

이 구절은, 아브람이 왕들을 섬멸하고 돌아왔을 때에 소돔 왕이 그에게 보인 존경의 언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특별한 기사를 기록하기 전에 멜시세덱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대해 살펴보자.

Ⅰ. 그는 누구인가? 그는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이다. 다른 영광스러운 일들이 그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히 7:1 이하)

1. 랍비들과 대부분의 랍비적 저술가들은, 족장의 모범에 따르면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들의 왕이요 제사장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가망 없는 일이다. 왜 그 이름이 바뀌어야 했겠는가? 어떻게 그가 가나안에 정주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2. 많은 기독교 저적자들이 생각하는 바로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 곧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그런 이름으로 아브람에게 알려졌으며, 그 후에는 의로운 명분을 간직하고 평화를 주는 왕으로 아브람에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떤 평범한 인간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 (히 7:3)고 일컬어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멜기세덱은 항상 살아 있고 또 제사장으로 있다(히 7:3, 8)고 증거되어 있다. 게다가 바울 사도는, 이런 일은 유다에게서 연유되신 우리주님에게 해당되는 일로 삼고 있다(히 7:13, 14). 이와 마찬가지로 더 위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평범한 인간의 질서를 따르는 제사장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멜기세덱의 경우에서 분명히 언급된 바와 같이 어떤 인간적 제사장직이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훨씬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3.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멜기세덱이 가나안 왕이며 살렘을 통치했고, 거기서 참된 신앙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왜 그의 아브람의 이 이야기에만 나타나며, 왜 아브람이 자기보다 위대한 이웃 멜기세덱의 제단이 참예하지 아니하고 따로 제단을 쌓아야 했을까 하는 문제는 전혀 설명될 수 없다. 옥스퍼드 의 그레고리(Gregory)씨는 주로 Arabic Catena지(誌)의 권위에 의존하여, 멜기세덱은 에벨의 아들 벨렉의 아들 헤라글림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살라디엘이었고, 그녀는 노아의 아들 야벳의 아들 고멜의 딸이었다고 한다.

Ⅱ. 그의 행동

1. 그이 아브람과 그 군사들의 원가를 회복시키고, 그들은 승전을 축하하기 위하여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아왔다." 왕으로서의 그의 행동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따라 선을 행하고 교제하며 대접을 받을 것을 교훈해 주고 있다. 또한 이 일은 영적인 투쟁에 지쳐 있을 때에, 우리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은혜의 언약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과 위로의 영적 양식을 상징해 준다.

2.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람을 축복하였다. 생각건대 이 축복이 그의 떡과 포도주보다는 훨씬 더 훌륭한 원기 회복제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를 세우시고, 보내셔서 권능자로서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 따라서 그가 축복하시는 자는 참으로 축복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가셨다(눅 24:51).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살아 계셔서 제자들을 축복하신다.

Ⅲ. 그가 한 말. 그는 두 가지를 언급했다.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919절).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이 아브람에게 임하기를 축사했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돌린 칭호를 주목해 보라. 그것은 매우 영광스런 것이었다.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이라 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 완전함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다. 우리가 기도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보고 또 그렇게 부르는 것은 우리들을 신앙과 경외심과 크게 도움이 됨을 명심하자.

(2) "천지의 주재시요" 라고 했으니, 모든 피조물의 마땅한 주인이시오, 그것을 다스리시는 여호와라는 뜻이다. 그가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가 위대한 하나님이시며 크게 찬송을 받아야 함을 뜻한다(시 24:1).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은 행복되도다.

2. 그는 아브람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20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라고 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모든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할렐루야를 모든 호산나 찬양과 함께 올려야 한다. 이것이 매일 또 특별한 때에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물이다.

(2)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고 우리의 모든 승리의 영광을 받아 마땅하다(출 17:5; 삼상 7:10, 12; 삿 5:1, 2; 대하 20:21). 그 모든 승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의 적들보다 높으시다는 것(출 18:11)과 우리들보다 높으시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아무 일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우리는 타인의 자비에 대해서도 우리의 일처럼 감사함을 드리고 승리자와 더불어 기뻐해야 한다.

(4)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도와 찬양을 중보자이시니, 그는 우리들의 기도와 찬양을 대신 드릴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이 기도와 찬양을 드리신다(눅 10:21 참조).

Ⅳ. 그가 받은 것.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고 했다. 이는 곧 노획물 중의 십분의 일이었다(히 7:4).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그것은, 멜기세덱이 베푼 존경의 뜻에 보답하기 위하여 주어진 사례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자비를 받은 자는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명심하자. 감사함이란 자연의 법칙의 하나이다.

2. 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게 명세하여 헌납하는 예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예물을 자기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넘겨 주었던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께로부터 뚜렷한 긍휼을 입었을 때에는 경건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어떤 특별한 행동으로 우리의 감사를 표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 가운데서도 응당 받아야 할 몫을 받으시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어떤 특별한 섭리로 우리들의 재물을 보존해 주셨거나 증가시켜 주셨을 때에 더욱 그러하다.

(2) 불어난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영광과 성전 섬기는 일을 위해 구별해 놓은 것은 지극히 합당한 몫이다.

(3) 우리의 위대한 멜기세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는 경의를 표하여야 하며, 우리들 각자는 그 분을 우리의 왕과 제사장으로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의 십일조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바쳐야 함을 유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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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 없음.

 

14:20 없음.

 

14:21

아브람의 공평무사함(창세기 14:21-24)

아브람과 소돔 왕이 나눈 대화의 기사가 있다. 소돔 왕은 전쟁에서 패한 자였으며(10절), 아브람이 그에게 베풀어 준 선한 호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경의를 표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Ⅰ. 소돔 왕이 아브람에 대하여 감사에 넘치는 제의를 한다(21절0. "영혼은 내게 보내고 물질은 당신이 취하소서" (히브리어로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을 원하고는 있으나 물질은 아낌없이 아브람에게 주려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1. 권리의 소재가 모호한 곳에서는 논쟁보다는 상호적인 양보로써 타협하는 것이 현명하다. 소돔 왕은 그 사람들과 물품에 대한 권리를 처음부터 수유하고 있었고, 아브람은 그들을 구출함으로써 권리를 획득했으므로 아브람의 권리가 그의 권리를 대신해야 할지 어떨지 하는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싸움을 막기 위하여 소돔 왕이 공정한 제안을 했던 것이다.

2. 감사의 정신은, 우리를 도와 유익을 주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어려움을 참고 위험을 무릅쓴 자에게는 능력껏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음을 주목하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고전 9:11) 군인은 어느 다른 근로자들보다도 훨씬 귀한 값을 받고 있으며, 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고 싸우기 때문이다.

Ⅱ. 이 제의에 대한 아브람의 관대한 거절. 아브람은 자기가 그들을 적은 손에서 구출해 냈기 때문에 자기를 섬겨야 했던 그들은 소돔 왕에게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재물까지도 되돌려 주었다. 그에게 속한 것이라면, 지극히 적은 것조차도 "실 한 오라기에서 신들메까지도" 그는 취하려 하지 않았다. 산 믿음은 이 세상의 부귀를 천히 여길 수 있게 한다(요일 5:4). 이제껏 하나님과 하늘 나라를 바라보던 그에게 감성적인 모든 장식품과 기쁨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아무 것도 취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온유한 양심은 사소한 일로 죄를 범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 "내가 여호와께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내가 아무것도 취하지 아니하리라" (22절), 아브람은 자기의 결심을 엄숙한 맹세로 확인하고 있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1) 그가 하나님께 드린 칭호.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이라 했다. 멜기세덱이 조금 전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칭호이다(19절). 다른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 관하여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일을 훌륭히 말하는 자들을 모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믿음이 굳고 선한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모방하여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 이 맹세에서 사용된 예식. "내가 손을 들었다" 고 했다. 신앙적 서약으로 우리는 우리의 진실과 성실을 하나님이 받아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거짓을 맹세한다면, 그것은 그의 진노를 비는 것이 된다. "손을 든다" 고 하는 것은 진실과 성실 두 가지 경우를 다표현하는 매우 의의 깊은 일이다.

(3) 그가 소돔 왕에게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겠다고 한 맹세는 법적인 행동이기는 하지만, 선례를 따라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행동은 아니다.

[1] 전투에 임하기 앞서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맹세하기를, 하나님께서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신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신앙 고백을 위해서도 어떤 노획물도 취하지 않을 것이며, 그 노획물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기까지 하겠노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자비를 구하면서 세운 맹세는,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의 유익에 상반된다고 하더라도 정성껏 성실히 지켜야 됨을 유의하자. 시온의 신민이 된 자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맹세한 것이 있으면,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이 해로울지라도 변경치 아니한다" (시 15:4).

[2] 또한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난 아브람은 그와 동시에 그렇게 맹세함으로써 그가 더 이상 간청하지 못하게 하려는 자기의 거부 의사를 확고히 했다. 명심하자. 첫째로, 우리에게는 때로는 사도 바울과 같이(고전 8:13; 9:12) 당연한 권리에 속하는 것도 삼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하자. 둘째로, 확고한 결심은 유혹에 세력을 피하는 데에 유의하다는 것을 유의하자.

2. 아브람이 거절한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노라." 만일 그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치욕이 되겠기 때문이다.

(1) 소돔 노획물 없이는 아브람이 부유케 될 수 없었다는 듯이 하나님의 약속과 계약에 치욕을 돌린다.

(2) 그가 그 위험스런 토벌을 벌였을 때 노렸던 것은 마치 자신을 부유케 하려던 것인 양, 아브람의 신심과 사랑에 치욕을 초래하는 것이다. 또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말해서는 아니될 것을 말하는 기회를 남에게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인색하여 돈만 바라는 것으로 보이거나 탐욕과 독신적 거미를 보이는 일을 행할까 조심해야 한다. 소돔 왕은 교만하고 무례한 인간이며, 이런 일을 한 후에는 매우 부당하게도 후일 아브람과 불명예를 돌리 만한 자임을 아브람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자들과 함께 행동할 때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3. 아브람은 권리 포기에 두 가지 단서를 붙여 제한을 가했다(24절). 맹세를 할 때에는, 필요한 예외 사항을 첨부하여 후일 천사들 앞에서 "그것은 실수였습니다" 라고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전 5:6). 아브람은 다음 사항을 예외로 하였다.

(1) 자기 군사들의 식량. 곡식을 타작하는 동안 타작군은 마땅히 식사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소돔 왕이 자기가 아브람을 치부케 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으리라.

(2) 자기 동맹자들과 협력자들의 몫.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고 했다. 자신의 자유를 엄격히 자제하고 있는 자들이라도, 그런 속박을 남의 자유를 구속하는 데에 안 되며, 그들의 자유를 심판하는 데에 악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자기를 표준 삼아 남을 측정해서는 안 된다. 선한 자는 바리새인들의 관례(마 23:4)와는 반대로, 남의 자유를 부정하지 아니하는 자유에 공헌할 것이다. 아브람에게는 그 권리를 포기할 만한 이유가 있었으나 아넬, 에스골, 마므레는 자기들의 권리를 포기할 똑같은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브람과 똑같은 신앙 고백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맹세의 의무하에 놓여 있지는 않았다. 아브람처럼 저 세상의 분깃을 바라던 소망이 그들에게는 없었으므로, 어떻든 그들은 이 세상의 분깃을 취하도록 허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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