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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방주로 들어가라(2)(창세기 7:1-4)

Ⅰ. 이제 곧 대홍수가 이르게 되므로, 안전한 지대로 노아와 그 가족을 초대하신 은혜로우신 부르심이 있다(1절).

1. 그 부름심은 매우 친절한 것이었다. 마치 다정한 아버지가 밤이나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 자녀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이는 그런 친절이었다. "너와 네 온 집안, 네가 거느리고 있는 적은 가족들은 방주로 들어가라" 다음 사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1)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까지는 노아가 방주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다. 비록 그는 그 방주가 자신의 피난처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명령이 내려지기를 기다렸으며, 또한 그 명령을 받았다. 우리를 섭리하시는 자를 알고 하나님의 부름에 따르며,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모든 발걸음에 한 발 앞서서 가신다는 것을 아는 것을 지극히 큰 안위가 된다.

(2)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방주로 "들어가라" 고 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라" 고 하시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동해하시고 그를 방주 속으로 인도하시며, 거기에서 그와 동행하며, 때가 이르면 안전하게 밖으로 이끌어 내시겠다는 것을 암시하신다. 우리가 어떠한 곳에 처해 있든지 간에 지극히 바람직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다. 이것이 온갖 형편과 처지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자. 노아의 방주는 감옥과 같은 곳이었지만, 그의 피난처였을 뿐만 아니라 궁궐이 되게 한 것이 바로 그 사실이었다.

(3) 노아는 방주를 짓는 데 대단한 수고를 하였으나 이제 그 안에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다. 우리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한 그 모든 일은 조만간에 우리의 즐거움이 될 것임을 확실히 알자.

(4) 노아 뿐만이 아니라 그의 온 집안, 즉 그의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그와 함께 방주로 부르심을 받았다. 경건한 사람의 권속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유익하며, 또 그러한 사람의 그늘에서 거하는 일은 안전하고도 즐거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자. 노아의 아들 중에 함이 있었는데 그는 후에 악한 자임이 드러났지만 그래도 방주 안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이다.

[1] 사악한 자녀들도 때로는 경건한 그들의 부모 때문에 보다 더 잘 살게 되는 수가 있다.

[2] 이 땅에서는 가장 선한 사회 속에도 선과 악의 섞여 있다. 이것을 우리는 기이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노아의 가정에는 함 같은 존재가 있었고, 그리스도의 권속 중에는 유다가 있었다. 즉 인간 세계는 완전한 순결이란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5) 노아에 대한 이 부르심이 가련한 죄인들을 부르는 복음의 부름의 한 모형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마련된 방주가 되시니 그 안에서만 우리는 죽음과 심판이 닥칠 때에 안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노래의 후렴은 "오라, 오라" 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오라" 하신다. 목사가 이르기를 "오라" 고 한다. 성령께서 이르시기를 "오라", 방주로 들어오라" 고 하신다.

2. 이 초청의 이유는 노아의 완전함에 대한 영예로운 증언이다. 즉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속기 쉬운 사람들 앞에 보임으로써 경건의 본이 될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인간의 성품에 기만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게 의를 인정받음으로써 경건의 권능이 되는 자들은 참으로 의로운 자이다.

(2) "내가 너를 보았다" 고 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들을 그가 아시며 기뻐하신다. 사악한 사람들도 가득한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 의로운 노아를 알아보셨다. 그 많은 왕겨같이 쓸데 없는 것 가운데서도 결코 단 하나의 낟알이라도 잃어버리는 일이없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자져들을 아신다.

(3) 목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곧 자기 백성의 성실함에 대한 증인이 되신다.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천사들과 사람 앞에서 그것을 선포하시리니, 의롭게 될 수 있는 자비를 얻은 자들은 의롭다고 하는 증거도 얻게 될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악한 때와 장소에서도 선할 수 있는 자들을 특별히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현저하게 의로웠으니 이는 그같이 사악하고 타락한 세대 속에서도 의로웠기 때문이다.

(5) 모든 사람이 악한 시기에서도 스스로 자신의 순결함을 지키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재난을 당할 때에 또한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다. 남들과 함께 죄악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그들의 큰 재앙에도 동참되지 않을 것이다. 남보다 선한 자는 비록 이생에서라도 남들보다 안전할 것이니, 이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복이 된다.

Ⅱ. 여기에는 노아와 함께 방주에서 생존해야 될 금수에 관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들이 있다(2,3절). 이들 금수는 인간처럼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경고나 지시를 받을 능력이 없었다. 인간은 "땅에 있는 짐승" 보다도 훨씬 더 교화되었고 "공중을 나는 새보다도 훨씬 현명하게" 지음 받았다. 즉 사람이란 통찰력이라는 재능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들 금수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지배하에 보호를 받아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 하나를 모두 지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모든 종류를 세심하게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짐승의 족속, 곧 가장 하찮은 족속이라도 완전히 멸종되게 해서는 안 된다. 거기서 다음 사실을 살피자.

1. 인간을 위하고, 그들의 안위와 유익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배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노아 자신이 염려한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자신이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행복을 고려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옛 사상이 지극히 역겨운 것임을 아셨고 또한 새로운 세상도 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아셨지만 인간의 소용을 위해 짐승들을 보존케 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염려하심이냐?(고전 9:9). 이같은 염려는 오히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2. 가장 무가치하고 별 유익이 없는 짐승까지도 방주에서 생존케 하시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자비심을 가장 고귀하고도 유용한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으신 모든 것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정결한 것을 부정한 것보다는 더 많이 보존하신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1) 대체로 정결한 것이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면 더 많이 보존되었고 지금까지도 번식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사자 떼가 소 떼들 같이 많지 않으며, 호랑이 때가 양의 무리들처럼 많게 하시지 않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할지어다.

(2) 정결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정결한 것을 더 많이, 그 종류의 번식을 위하려는 세 쌍씩, 제물을 위하려는 일곱 쌍씩을 보존케 하셨다(8:20). 하나님은 이 땅에 속한 것을 모두가 다 그를 위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고 그를 섬기는 일에 쓰이는 것은 특별히 축복 받고 번성하게 된다.

Ⅲ.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비를 내리리니" 라고 하셨다(4절). 이것은 이제 곧 임박해 올 대홍수에 대한 예고이다.

1. "내가 그렇게 하는 데는 아직 7일이 남았다." 120년이 지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7일이라는 여유를 더 허락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천천히 노하시며, 심판의 역사는 하나님이 별로 원치 않는 일임을 보이시기 위함이다. 또 나아가 회개의 여유를 더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헛되었고 이 7일이라는 날도 다른 모든 날처럼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 그들은 홍수가 닥쳐올 때까지 계속해서 태평하여 육욕에 젖어 있었다.

2. "7일밖에 남지 않았다." 심판이 가까웠다고 노아는 그들에게 알렸지만 그들은 회개할 것을 연기하려는 유혹에 빠졌다. 이는 그 같은 일이 닥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아 그때가 지금 문 앞에 이르렀다고 알렸다. 이제 단 일 주일 밖에는 없으며, 단 일주일 후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으며, 이것을 깨달아 이제 곧 그들의 눈 앞에서 사라지게 될 그들 자신의 화평에 속하는 것들을 살피라고 했다. 그러나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서 건강이 있는 동안에 자신의 영혼에 무관심하고 소홀했던 자들은, 죄악에 미혹되어 그들의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에 이제 그들의 죽음에 가까이 임박해 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그 병든 날 7일 동안에도 방심하게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7:2 없음.

 

7:3 없음.

 

7:4 없음.

 

7:5

대홍수(창세기 7:5-10)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대한 노아의 즉각적인 순종이 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아직 홍수가 닥칠 가시적인 징조도 없고, 또한 그러한 일을 일으킬 것 같은 구름도 일지 않으며, 아무 일 없이 계속해서 화창하고 맑은 날씨였지만, 그는 7일 후에는 닥칠 것이라는 통고를 듣고 방주로 들어갔다. 그는 자연의 원인이 아직 작용하기 시작한 것을 보지 못하였으나 홍수가 닥쳐오리라는 경고를 듣고 역시 믿음으로 방주를 마련했던 것같이, 속히 그 홍수가 이르리라는 경고를 듣고 역시 믿음으로 그 방주로 들어갔다. 그가 취한 모든 행동은 믿음으로 행한 것이며, 결코 감각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이 7일 동인에 그는 그의 온 짐승들을 각기 나누인 몇 개의 방에 나누어 들여 놓으면서, 그 자신과 식구들도 그 방주 안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무관심한 이웃들에게 오랫동안 전해진 가시적(可視的) 설교의 결론이다. 혹자는 이것이 그들에게 깨우침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그들은 자신의 피를 자기들의 머리 위에 쏟고 말았다.

2. 그는 온 가족을 자기 아내와 함께 데려감으로써, 그의 동료와 위로로 삼았다(이후에는 그녀로부터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음이 분명하지만). 또한 그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갔으니, 이들로써 그의 가정뿐만 아니라 인류 세계가 이룩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살펴보건대 사람이 그처럼 적은 숫자로 감소되었으며, 이 세상에는 급속히 사람들이 다시금 많아지게 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으나, 노아의 아들들은 제각기 아내를 하나씩만 취하였다. 이것은 여러 아내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반증(反證)을 굳게 한다. 왜냐하면 이 새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그렇지 아나하였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그러했듯이 이제 그가 인생들을 지키시니, 한 남자에 한 여자만을 취하게 하시었다(마 19:4, 8 참조). 들짐승들도 그와 함께 곧 방주 속으로 들어갔다. 태초에 들짐승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어서 그가 그들의 이름을 짓게 하신 분이, 이제는 그들을 노아에게로 이끌어 오시어서 그로 하여금 보존하게 하셨다. 소는 이제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가장 사나운 피조물들까지 그 곳에 한데 모이건만, 인간을 들짐승보다도 훨씬 더 야수 같은 성질로 변하여 그 주인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다(사 1:3).

 

7:6 없음.

 

7:7 없음.

 

7:8 없음.

 

7:9 없음.

 

7:10 없음.

 

7:11

홍수의 발생 시기(창세기 7:11-12)

Ⅰ. 여기에는 이 대사건을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여 기록되어 있다.

1. 노아가 600세 되던 해라고 했다. 이는 계산상 창세로부터 1656년이 되는 해이다. 옛 세상을 장부들의 통치 기간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족장들의 수명으로 헤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제왕들보다 성도들을 더욱 귀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의로운 자는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당시 사람들의 수명처럼 이제 노아도 지극히 나이가 들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이 세상에 오래 살면 살수록, 그만큼 이 세상에 불행과 재앙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러므로 나이들기 전에 죽는 자의 특권은 그들의 "눈이 닥쳐오는 재앙을 보지 아니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른다(왕하 22:20).

(2)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친근한 종들에게 순종하는 인내를 비상한 시련으로 시험하신다. 그리스도의 군병 중의 가장 맹장인 자도 죽음이 그들을 놓아 주기까지는 시련의 싸움에서 놓임을 받는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결코 안 된다. 계속해서 그들은 갑옷을 몸에 걸쳐야 하며, 갑옷을 벗어 놓고 뽐내서는 안 된다. 대홍수가 난해(年)가 기록되어 있듯이 날짜도 볼 수 있다.

2. "2월 곧 그달 17일" 이라 하였다. 이는 태양력 11월 초순으로 계산되므로 노아는 대홍수 바로 전에 추수를 거두어들여 자기 방주에 음식을 싫어 넣을 수가 있었다.

Ⅱ. 이 대홍수와 동시에 일어난 자연의 원인들을 살펴보자.

1. 노아가 방주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한 바로 그 날에 대홍수가 시작되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만물을 활량하게 하는 심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안전을 마련하기까지는 결코 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19장 22절에 보면, "네가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고 하셨다. 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받기까지는 바람을 붙잡아 두신다" 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계 7:3).

(2) 선한 사람들이 죽으면 심판이 멀지 아니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인은 "화액(禍厄)이 이르기 전에 취하여감을 입기" 때문이다(사 57:1). 그들은 밀실로 불러들여 무덤 속에 숨게 하고, 곧 하늘 나라에 숨게 하신 후에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벌하실 것이다" (사 26:20, 21).

2. 그 날, 사악한 세상에 대한 숙명적이었던 그 날에 어떠한 일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1) "온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 아마 바다를 새로 창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섭리의 공통 과정 속에서 이 땅의 축복으로 만들어졌던 그 물이, 바야흐로 하나님의 비상한 권능의 행동으로써 이 땅을 파멸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깊은 물을 곳간에 마련하여 두시었다가 이제 그 저장물을 터뜨리셨다(시 33:7). 우리 인간들의 체내에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치명적인 온갖 질병의 근원과 원인이 될 수 있는 체액(體液)이 있듯이, 이 대지(大地)의 내부에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샘솟아 범람케 되는 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에 바닷물에 대하여 "문과 빗장" 을 정하시어서,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시었다" (시 104:9; 욥 38:9-11). 이제 그는 그 같은 태고의 육지 경계표와 둑, 그리고 울타리를 단지 제거하시기만 하면 바닷물은 다시 애당초와 같이(창 1:9) 땅을 덮게 된다. 하나님이 인내하는 날 동안에 눌려 있던 속박을 하나님께서 제거하시기만 한다면, 모든 피조물은 죄인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게 되고 죄인을 파멸케 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2) "하늘의 창들이 열려, 궁창 위에 있던 물이" 이 세상 위에 쏟아졌다. 하나님께서 "환난의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저축하여 두셨던" 그러한 보물이다(욥 38:22, 23). 통상적으로 방울 져서 내리는 비가, 인도에서 일컫는 것처럼 줄기로 곧 분수가 되어 내려왔다. 그 비는 종종 인도인들이 표현하는 대로 구름이 터져서 내린 비였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체험했던 가장 큰 소나기보다도 훨씬 더 극심한 급류처럼 쏟아져 내렸다. 욥기 26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물을 뻑뻑한 구름에 싸시나 물 밑의 구름이 ?어지지 아니한다" 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속박이 풀리어, 구름이 찢어지고 비가 그렇게도 많이 계속적으로 내렸다. 보통 때는 구름이 곧 사라지고 비가 그치지만 그 짙은 구름은 지칠 줄 모르고 물을 뿌렸다(욥 37:11). 그러나 비가 내린 후에는 구름이 되돌아갔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다시금 새로운 순환을 가져오셨다. 비가 중단이나 감퇴됨도 없이 "40 주야를" 세차게 내렸다. 그것도 흔히 한 곳에는 내리고 다른 곳에는 내리지 않는 그러한 비가 아니라, 일시에 온 세상에 내렸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6일 동안에 지으셨으나, 그것을 멸하시는 데는 40일이 걸렸다. 왜냐하면 그는 노하시는 데는 더디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멸망이 서서히 점차적으로 임하는 것이 기는 했어도 철저히 이루어졌다.

3. 그러면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배우자.

(1)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처분에 달려 있고, 엘리후가 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흑 징벌을 위해서나, 그렇지 않으면 토지를 위하여 또는 긍휼을 베푸시기 위함이든지 간에" (욥 37:12, 13),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피조물을 당신께서 원하시는바 대로 이용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신다" (시 69:22). 즉 통상적으로 우리에게 안위함과 유익함이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재앙도 되고 저주가 되기도 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샘이든 하늘에서 내리는 소나기든 물보다 더 긴요하고 유용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여기서는 그것보다 더 해독을 끼치고, 그보다도 더 파괴적인 것이 다시 없었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바에 파괴적인 우리에게 관계된다.

(3)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명령과 더불어 범죄한 죄인에게 이를 때에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 어디서나 죄인들을 치려고 무장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욥 22:27 참조).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사자를 보내시어 인간들을 둘러막음으로써, 그들이 위를 쳐다보면 두려움과 놀라움뿐이며 땅을 굽어 보아도 "환난의 흑암의 고통만을 보게" 하실 수가 있다(사 8:21, 22). 하나님께서 노하실 때에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4) 옛 세상을 물로써 멸망케 하신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불로 최후의 심판을 받으리라는 전조(前兆)를 보이셨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이 두 가지를 서로 대조한 것을 볼 수가 있다(벧후 3:6-7). 땅 속에는 물이 있듯이, 에트나(Aetna), 베수비우스(Vesuvius) 및 다른 화산들은 땅 밑에는 불도 있다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때로는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벼락으로 많은 폐허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따라서 예정하신 때가 되면, 이 두 가지 불 사이에 있는 땅과 그 위의 모든 업적이 불타 버리리라. 그것은 큰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을 통하여 옛 세상에 대홍수가 임했음과 같다.

 

7:12 없음.

 

7:13

방주에 들어간 짐승들(창세기 7:13-16)

여기에서도 노아의 가족들과 보존하기로 인치심을 받은 모든 피조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앞에서의 기사가 반복된다. 그러면 다음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Ⅰ. 이 속에는 노아의 영예가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의 믿음과 순종이 지극히 빛났고, 이로써 그는 좋은 평을 받게 되고, 그는 지극히 큰 하늘의 은총을 입었고, 땅에 대해서도 지극히 큰 축복이 되게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Ⅱ. 창조의 역사를 말할 때에 사용된 어구(語句)를 따라(1:21-25) "그 종류대로" 방주로 들어가는 짐승들을 유의해 두어야겠다. 이것은 애당초 창조될 당시 만큼의 종류만 이제 구원받는 것이지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 이와 같은 보존은 새로운 창조와 같은 것임을 암시한다. 특별한 보호를 받은 생명이란 말하자면 새로운 생명인 것이다.

Ⅲ. 비록 모든 피조물들 사이의 불화와 적의가 당분간 중지되고, 굶주린 아귀 같은 짐승들까지도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함과 같이" (사 11:6, 7) 지극히 온순하고 다루기 쉬운 뿐만 아니라,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정도로 이상하게 변하기는 했어도, 이러한 사건이 끝나면 그러한 굴레는 벗겨져서 그전과 똑같은 바탕으로 돌아간다. 방주가 그들의 본성을 개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는 위선자들도, 외모로는 방주의 율법을 따르고 있지마는 변치 아니할 것이며 조만간에 그 본성이 드러나고 만다.

Ⅳ. (그 주위 사정은 우리가 유의할 만하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16절)란 말이 덧붙어 있다. 노아가 끊임없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계속해서 노아를 돌보아 주셨다. 그리고 여기에는 매우 뚜렷한 하나님의 배려가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이 문을 닫으심은 노아와 바깥의 모든 세상 사이에 간막이 벽을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셨다는 이유는 이렇다.

1. 노아를 방주 속에서 안전히 보호하기 위하여서다. 그 문을 매우 굳게 닫혀져서 물이 스며들어와 외부의 어느 누구도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석으로 삼으심같이" (말 3:17) 노아를 돌보아 주셨다.

2. 다른 모든 것을 못 들어오게 하여 영원히 밖에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 때까지는 방주의 문이 계속 개방되어 있어서, 어느 누구든지, 최후의 7일 동안에라도 회개를 하고 믿었더라면 기꺼이 그들을 방주 안으로 맞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문은 닫히고, 그 속으로 들어갈 모든 소망이 단절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닫으셨으니 아무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Ⅴ. 방주 속에서 구원된 노아를 통하여 우리는 복음의 의무와 특권을 많이 엿보게 된다.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우리의 세례의 모형으로 삼았으니, 곧 그리스도교 신앙이다(벧전 3:20, 21). 다음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보잘 것 없이 가련한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복음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산 믿음으로써 우리들의 중대한 의무이다.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자신의 집과 땅도 버렸다. 우리도 우리의 독선과 세상의 재물이 그리스도와 대등한 위치에 있으면 언제나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노아는 잠시 동안이나마 세 세상을 위해서 살아 남으려고 방주에서의 위폐된 생활과 불편을 달게 받아야 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자 그에게로 들어오는 자들을 고난이나 섬기는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마땅하다.

2. 자기 스스로 방주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자는, 선한 가르침과 설득, 선한 본을 보임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자기와 함께 이끌어 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노아가 그 아내를 구원했듯이, "남편된 지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고전 7:16) 그리스도 안에는 그를 찾아오는 모든 자가 유할 곳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3. 믿음으로써 방주되신 그리스도에게로 들어오는 자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닫아 넣으실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새에 있는 자처럼" 보호하심을 입을 것이다(벧전 1:5).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낙원에 두시었지만 그를 닫아 넣으시지 아니하였던 때문에,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방주 안에 두실 때에 그를 닫아 넣으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한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때에는 그 구원을 보증하여 주신다. 그 구원은 우리들 스스로의 손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의 손을 통해서 지켜지는 것이다.

4. 자비의 문은, 지금 그 자비를 가벼이 여기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는 조만간 폐쇄되고 말 것이다. 지금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문이 열리지 않을 때가 이를 것이다(눅 13:25).

 

7:14 없음.

 

7:15 없음.

 

7:16 없음.

 

7:17

홍수가 계속된 기간(창세기 7:17-20)

여기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보게 된다

Ⅰ. 홍수가 계속된 기간은 "40일" (17절)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지 아니하였던 세속적인 세상 사람들은 실제로 눈 앞에 그 일이 다다랐을 때에는, 아마도 속으로는 이제 곧 비가 멈추어 결코 극한 상황에는 이르지는 아니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계속 많아져서 땅에 창일하게 되었다. 이제 유의해 둘 것이 있다.

1.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모든 것을 압도하신다. 일을 시작하시면 끝을 맺으신다. 하나님의 길은 심판에서 긍휼에나 다같이 완전하시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기 위하여 서서히 다가오지만, 그것 때문에 때때로 제멋대로 억측하는 나머지 그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데로 악용되기도 한다.

Ⅱ. 홍수는 어는 정도 계속되었는가? 온 땅에 창일하여 평지만이 범람하였던 것이 아니라, 일을 확실하게 하고 아무도 도피할 수 없게 하기 위하여 천하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까지 넘쳐 덮였다. "15규빗" 이라 했으니 이는 7야드 반이다. 그러므로 "작은 산들과 큰 산위에서 떠드는 무리들의 구원의 희망은 허사로다" (렘 3:23).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무리 높이 솟아도 그의 능력이 그 위를 덮지 못할 만큼 높은 것은 없다. 그리하여서 교만하게 거동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위에 계심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높은 산꼭대기도 물의 힘으로 휩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 물의 힘은 물이 산을 능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물을 내신즉" 범람하였을 뿐만 아니라, 땅을 뒤집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욥 12:15). 이리하여 거짓 피난처는 없어지고 물이 죄인들의 숨는 곳에 넘쳐 흘렀으며(사 28:17), 저들이 안전을 위해서 산과 바위 있는 곳으로 쫓아가사 헛되고 헛되도다(계 6:16). 이제 산들은 떠났고 작은 산들도 옮겨졌으니, 인간은 "평화의 계약" 외에는 설 곳이 아무 곳도 없게 되었다(사 54:10).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미치지 못할 만큼 높은 곳에 사람을 놓아 둘 곳은 없다(렘 49:16; 욥 3:4). 하나님의 손이 "그 모든 원수를 발견하리로다" (시 21:8). 노아의 추(錘)로써가 아니라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는 이의 지식으로써" (욥 28:25). 그 얼마나 정확하게 물의 깊이를 쟀는가(" 15 규빗")를 살펴보라(욥 28:25).

Ⅲ. 물이 그같이 불어났을 때 노아의 방주는 어떻게 되었는가? 방주는 "땅에서 떠올랐고(17절), 물위에 떠 다녔다" (18절). 다른 모든 건축물이 물로 인해서 도괴되고 물 밑에 매몰되었을 때, 방주만이 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1. 방주만이 만물을 파괴해 버린 물을 견디어냈다. 믿지 않는 자는 죽음의 구원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되나, 신실하게 믿는 자에게는 생명의 구원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된다.

2. 물이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방주는 점점 더 높이 하늘을 향하여 떠올랐다. 따라서 거룩한 재난은 영적 촉진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괴로움이 많으면 위로함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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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없음.

 

7:21

생물들의 멸망(창세기 7:21-24)

Ⅰ.대홍수로 인한 모든 생물의 전반적인 멸망.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불지어다. 땅을 황폐케 하셨도다" (시 46:8). 또 무더기 위에 무더기를 어떻게 더하셨는가를 보라 사망이 애당초 이 세상에 들어올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결코 이 때처럼 큰 승리를 거둔 적은 없었다. 청황색 말 위에 탄 사망을 와 보라. 그의 뒤를 따르는 지옥을 보라(계 6:7, 8)

1. 방주 안에 있던 몇몇을 제하고는 모든 가축들과 새들과 땅에 기는 모든 생물들이 다 죽었다.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 (21절)는 말씀이 얼마나 반복되어 있는가 살펴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22절). 모든 생물이 어찌하여 그랬을까? 오직 인간만이 사악한 일을 저질렀으니, 하나님께서 이들만 대적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양들, 그들은 어떠한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나는 이같이 대답하리라.

(1)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잘못하신 것이 없음이 분명하다. 그는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 모든 것의 유일하신 근원이시며 조물주이시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당신의 원대로 만드신 이가, 또 원하시기만 하면 파괴하실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누가 "그분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십니까?" 라고 물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지으신 것을 하나님 자신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2) 창조는 물론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대로 이제 그들은 멸망시킴으로써, 당신 스스로의 영광을 위한 목적대로 놀랍게 이루셨다. 이 가운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정의가 크게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미워하시며 죄인들을 크게 불쾌히 여기시므로, 하나님이 죄인을 벌하는 때에는 하등 피조물까지도 인간과 함께 멸망을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보다 더 뚜렷하고 무서운 것이 되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분노와 그 벌이 더욱 명백해진다. 피조물의 멸망은 타락의 굴레에서 그들이 해방되는 일이었으니, 지금도 모든 피조물이 바로 그러한 해방을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다(롬 8:21, 22). 마찬가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지혜의 실례이었다. 인간이 지음을 받을 때에 다른 피조물들은 인간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인간이 번성할 때에는 그들도 번식하게 하시었다. 따라서 그 인류의 수가 역시 그처럼 감소되었다. 그같은 비율에 따라 금수들도 감소되어야 마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수들이 지배권을 갖고 온 땅에 충만하게 되어, 살아남은 인간 생존자들은 그들로 인해서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하등 피조물이 인간의 종이요 한 소유물이며, 죄악된 일에 악용되었기 때문임을 나타낸다. 출애굽기 23장 29절에서도 하나님이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음을 볼 수 있다.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염려하여"

2. 남녀노소 할 것 없이(방주 안에 있던 자들은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죽었다. "모든 사람" (21절 23절)이라 했으니, 아마 더 많지는 않았겠지만 오늘날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1) 그들 자신이 물에 에워싸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얼마나 공포의 경악에 사로잡혔을까 하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가 있다. 홍수가 난 바로 그 날까지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더라는 사실을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다(눅 17:26, 27). 그들은 홍수에 빠지기 전에,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에 전혀 눈멀고 귀먹어 스스로 "평화" 하고 외치면서 이미 방심과 욕정에 빠져 있었다. 이러는 중에(사무엘상 30:16, 17 에 있는 말씀과 같이), 죽음이 불시에 그들을 기습해 버렸다. 그 때 그들은 그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그들이 전에는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보고 느끼게 되니 이미 때늦은 뒤에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눈물로써 근심스러이 회개할 곳을 찾으나 이제는 그러한 곳을 찾지 못한다.

(2) 가능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살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그 모두 헛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자들은 나무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그 곳에서 잠시 동안 자신들의 공포를 달랜다. 그러나 급기야는 홍수가 그들에게 이르러서 보다 더 슬프게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마도 혹자는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들이 조롱해 오던 그 방주에 매달려, 이제는 그것이 자기들의 안전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으리라. 또 혹자는 아마도 방주 지붕에 올라가서는 그 곳에서 자기 힘으로 그럭저럭해 보려고 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식량 부족으로 그 곳에서 말라 죽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배가 매우 급격히 움직이든가 심한 비가 내려 그들을 지붕에서 쓸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자들은 방주 안에 들여보내 달리고 노아에게 옛정을 호소했을지 모른다. 즉 우리가 당신 앞에서 먹고 마시지 않았나이까? 라고 그러나 노아는 이렇게 대답하였으리라. "그렇지, 헛되게도 여러 번 내가 그랬었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실어하였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였다(잠 1:24, 25). 이제 너희를 돕는 일은 내 권한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그 문을 닫으셨으니 내가 그것을 열 수가 없노라."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모든 것이 이러하리라. 외식적인 고백을 높이 내세우거나 선한 사람과의 인연을 주장하는 그것으로서는 하늘 나라에 이르지 못하리라(마 7:22, 25:8, 9). 그리스도 곧 방주 안에 들어 있지 않는 자들은 구원할 수은 없다(사 10:3 참조)

(3) 홍수에서 죽은 자 중의 어떤 사람들은, 방주를 짓는 일로 노아를 도왔든지, 혹은 그에게 고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여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써 구원의 자리를 마련한 만큼은 현명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사악한 성직자들은 이처럼 비록 남들은 하늘 나라로 인도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되나, 자신은 지옥으로 떠밀려 내려가고 말 것이다. 이제 잠시 동안 멈추어 서서히 무시무시한 심판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 공포를, 이 멸망의 공포를 마음속으로 깊이 묵상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닫고 다 함께 말하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심판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그가 노하신다면 누가 감히 그 앞에 설 것인가? 또한 하나님을 떠난다고 하는 일은 악하고도 슬픈 일이라는 이것이다. 죄인들의 피는 회개함이 없이는 조만간 그 자신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참되시다면 필경 그러하리라. 손에 손을 맞잡고 제휴하더라도, 악한 자의 형벌은 간과되는 일이 없으리라. 의로우신 하나님은 세상에 홍수를 내리시는 그 방법을 알고 계신다(벧후 2:5). 엘리바스는 이 이야기를 무관심한 세상에 대한 뚜렷한 경고로 호소한다. "네가 악인의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어 버리어 영원 속으로 가버렸으며, 그 터는 하수로 인하여 함물되지 아니하였더냐?" (욥 22:15, 16)

Ⅱ. 노아와 그 가족들의 특별하신 보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23절).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노아는 살아났다. 노아 주위에 있던 모든 자들은 정의의 기념비가 되어 수천 수만이 그의 좌우에서 멸망을 당하였을 때에, 그는 자비의 기념비가 되었다. 노아만이 홀로 직접 "악인의 보응을 목격" 하였으리라(시 91:7, 8).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라(시 32:6).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노아는 악한 세상에 전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돌이키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자신에게로 되돌아가 단지 자기 자신만을 건지는 응답되었을 뿐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노아, 다니엘, 욥은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겔 14:14). 이 영예의 징표가 중재 기도자에게 주어지리라.

2. 노아는 간신히 살아났다. 노아만 살아남았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는 사실상 생매장되었었다. 그는 좁은 곳에 유폐되어 있었고, 쏟아지는 비의 공포와 불어나고 있는 큰 물, 그리고 죽어 가고 있는 그의 이웃들의 비명과 절규로 놀람을 당하였고, 그의 마음은 황폐로 인하여 심히 우울한 생각 속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본분을 다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서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모든 것을 황량하게 만드는 심판이 널리 모든 사람에게 미칠 때에 우리는 스스로를 위한 대사(大事)나 쾌락을 촉구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명을 구하게 되면, 그것을 말할 수 없는 은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렘 45: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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