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은 다윗이 여부스 거민에게서 빼앗은 ‘시온 산성’을 가리킨다. 11:5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세운 왕궁은 히람 왕의 도움을 받아 지은 궁궐(14:1)과는 시기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히람 왕의 도움으로 지은 궁궐은 다윗 통치 말기에 지은 것이며 본 절에서의 왕궁은 통치 초기에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Bertheau). 14:1 주석 참조. 또한 히람 왕의 도움이 관련된 문맥에서는 동사 ‘바나’가 사용되었으나 본 절에서는 ‘아사’가 사용되었다. ‘바나’는 이미 세워진 건축물을 보수한다는 의미의 동사인 반면, ‘아사’는 새로이 건축물을 형성한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이렇게 볼 때 본 절에서 다윗 왕이 지었다는 왕궁은 형태를 갖춘 최초의 건축물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히람 왕의 도움을 받아 지은 궁궐은 이미 지어진 왕궁을 크게 보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Keil, O. Zöckler). 한편, 이 왕궁의 건축은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러 있기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가 그의 집에 머물러 있었던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13:14).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본 절이 다윗 왕의 왕궁 건축에 뒤이어 기술되어 있으므로 이는 다윗 왕이 자신의 궁을 건축하는 동안에 장막을 지은 사실을 시사해 준다. 다윗이 세운 이 장막은 분명히 옛 성막을 본따 새로 지은 것이다(16:39, 21:29, 왕상 3:4). 당시 원형 그대로의 옛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다(대하 1:3). 아무튼 본 절은 1차 안치식 때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시지 못했던 다윗(13장)이 이번에는 반드시 안치하기 위하여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사무엘서에서는 다윗 왕이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된 동기에 대해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신 까닭이라고 서술되어 있으나(삼하 6:12) 본 문맥에서는 이러한 서술이 생략되어 있다. 대신 오벧에돔의 집에 내린 여호와의 복이 예루살렘에도 임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에서 다윗 왕이 궤를 옮긴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신앙적인 동기를 가지고 곧, 예루살렘이 기도와 예배의 중심지가 되기를 오래전부터 바라는 마음에서 이같이 행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16:4). 여기서 우리는 본서 저자가 다윗 왕의 이기적인 동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그의 깊은 신앙적 측면에 치중하여 본문을 기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곧 지난번 웃사의 죽음(13:9, 10)이 언약궤 운반에 관한 여호와의 율법을 어긴 결과였음을 다윗 왕이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 섬기게 하셨음이라. 언약궤는 오직 고핫 자손들만이 관리하게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지적한다(민 4:15, 7:9).
지도자 우리엘. 그는 다윗 시대에 그핫 자손을 이끈 지도자였다. 우리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빛이시다’이다.
지도자 아사야. 그의 이름은 레위 지파의 족보에 기록되었다(6:30). 아사야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뜻이다.
요엘. 그는 게르손(게르솜)의 자손 라단의 아들이었다(23:8). 이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로는 사무엘의 아들 요엘(삼상 8:2)을 기억할 수 있다.
그의 형제. 여기서 ‘형제’(히, 아흐)란 친형제가 아닌 단순히 같은 족속의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몸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장들은 성역(聖役)을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레 8:12, 13). 이는 거룩한 의식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출 9:10, 14, 15, 레 11:44). 이때에 제사장들은 몸을 씻고 의복을 갈아 입으며(창 35:2)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았다(출 19:15). 우리는 이 문맥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에 있어서 최선의 준비를 다하는 다윗 왕의 성실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여기서 ‘구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는 (1) ‘주의하여 구하다’는 뜻(신 22:2)과 (2) ‘출입하다’는 뜻(대하 1:5)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돌보다’는 뜻(신 11:12)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절은 ‘그것을 돌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그것’이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리킨다. 즉 본 절은 3개월 전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규례(민 4:15)에 따라 운반하지 아니한 것을 의미한다.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여기서 ‘그의 형제’란 같은 지파 사람들, 곧 레위인들을 말하며 ‘노래하는 자’는 ‘찬양하는 자’를 의미한다. 다윗 왕이 이들을 구별하여 세운 것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성전(聖殿) 찬송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비파와 수금과 제금. 역대기에서 이 세 악기는 종종 함께 언급되었다(28절, 13:8, 16:5, 대하 5:12, 29:25, 느 12:27). 이 중 ‘비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벨’은 현악기인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악기의 현이 12개였다고 말하였다. 이 악기는 주로 종교 의식 때에 사용되었으며(20, 28절, 16:5, 25:1, 6, 대하 5:12, 시 33:2, 57:8, 71:22, 81:2, 92:1-3, 108:2 등) 세속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경우는 성경에서 단지 세 번 나타난다(사 5:12, 14:11, 암 5:23). 다음으로 ‘수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킨노르’ 역시 현악기이다. 이 악기는 모든 악기 중 가장 고귀한 악기로 간주되었으며 손가락이나 채로 연주되었다. 그 현의 수는 작게는 3개, 많게는 12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 악기는 또한 귀족 계급의 악기였기 때문에 종종 은이나 상아로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제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므칠타임’은 한 쌍의 심벌즈(Cymbals)를 의미한다. 한편 이밖에도 성경에는 여러 악기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를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파아몬(방울, 출 28:33): 대제사장의 지성소 출입시 사용되었고 경계의 목적도 내포되었다. 대제사장이 사용하였다.
2. 므칠로트(방울, 슥 14:20): 말의 가슴판에 부착되었다.
3. 므칠타임(공동번역은 ‘바라’, 개역성경은 ‘제금’으로 번역, 대상 25:1): 제의 중에 사용되었고, 제사장이 사용하였다.
4. 할릴(피리, 저, 삼상 10:5, 사 5:12, 렘 48:36): 제의 중에 사용하였다. 대중들이 사용하였다.
5. 쇼파르(뿔나팔, 나팔, 대상 15:28, 대하 15:14): 제의 중에 사용하였다. 레위인이 사용하였고, 신호용 악기로 경고, 파문을 뜻한다.
6. 네벨, 킨노르(비파, 거문고, 스금, 칠현금, 십현금, 시92:1-3, 150:3, 사 23:16): 제의 중에 사용하였다. 귀족계급, 다윗, 레위인이 사용하였다. 모든 악기 중 가장 고귀한 것으로 불렸다.
벤. 이는 분명히 필사자의 착오로 기록된 것이다. 왜냐하면 (1) ‘벤’이란 이름이 이들을 분류별로 다시 소개한 구절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또한 구약에서 ‘벤’(‘아들’이란 뜻)이 일개인의 고유 이름으로 사용된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O. Zöckler).
문지기 오벧에돔. 그는 3개월 동안 여호와의 궤를 지킨 자이며 문지기 직분 외에도 수금을 타는 직분을 수행하였던 자이다(21절). 한편, 21절에는 오벧에돔, 여이엘 다음에 아사시야가 수금을 타는 자로 소개되어 있다. 이로써 본 절에서 아사시야가 실수에 의해 생략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제2의 계급에 해당하는 악사들은 모두 14명이었다(Lange).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세 부류 중 첫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놋으로 만든 제금(심벌즈)을 쳤는데 이들이 이처럼 놋제금을 친 것은 곡의 음조나 박자를 조절하는 등 전체 찬양대를 지휘하기 위함이었다(Curtis, Keil).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본 절에 언급된 여덟 사람은 모두 알라못에 맞추어 ‘비파’(히, 네벨)를 연주하는 자였다. 그런데 여기서 ‘알라못’은 본래 ‘젊은 여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알라못에 맞추었다’는 말은 소프라노의 음조로 연주했음을 의미한다(Keil, Curtis, Lange). 시 46편은 바로 이러한 기법으로 연주된 대표적인 시이다.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이들은 궤를 옮기는 자들 가운데 속한 한 조(組)로서 아무도 법궤를 만지거나 그것에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궤 앞에서 지키는 자들이었다.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이 두 사람의 직무는 23절의 베레갸, 엘가나와 같은 직무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여기서의 오벧에돔은 3개월 동안 궤를 지켰던 고핫 자손 오벧에돔(18, 21절, 13:13, 26:1-4)과는 다른 인물이다. 왜냐하면 3개월 동안 언약궤를 지켰던 오벧에돔은 수금을 타는 악사로 21절에 이미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본 절의 오벧에돔은 16:38에서 여두둔(에단)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다. 에단은 므라리 자손이므로(6:44) 그의 아들 오벧에돔은 그핫 자손인 오벧에돔과 동일 인물일 수가 없다(Keil, Lange).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병행 구절인 삼하 6:13과 조화시켜 보면, 궤를 멘 레위인들이 무사히 여섯 걸음을 행한 후에 무리들이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삼하 6:13에서는 다윗이 ‘소와 살진 것’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나타나 있고 본 절에서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삼하 6:13의 제물은 출발하기 직전에 바쳐드린 것이며 본 절에서의 제물은 사역을 마친 후에 바쳐드린 것이라고 해석하였다(Keil, Lange, Zöckler). 그러나 이는 옳은 해석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 문맥은 분명히 사역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 결코 사역을 마친 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역을 마친 후에 드린 제사에 대해서는 16:1에서 특별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양쪽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삼하 6:13에서의 제물은 다윗 왕이 개인적으로 드린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본 절에서의 제물은 무리들, 곧 장로들과 천부장들과 따르는 무리들이 함께 드린 것으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삼하 6:13에서의 제물의 규모는 적은 것으로 나타나 있고 본 절에서의 제물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Curtis, Barnes).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세마포(細麻布)는 삼(hemp) 또는 아마(linen)에서 뽑은 아주 고운 실로 짠 베를 가리킨다. 구약 시대 당시 이 세마포로 만든 옷은 대개 성직(聖職)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입었다(출 28:6, 삼상 2:18, 22:18). 본 절에서도 레위인, 그나냐, 찬양 대원들은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옷을 입은 것이다.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에봇은 앞치마 같이 생긴 일종의 겉옷이다. 한편 다윗이 입은 베 에봇은 제사장적 신분을 나타내는 간편한 옷으로서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소매가 없는 겉옷인 대제사장의 에봇과는 다른 것이었다. 출 28:4 주석 참조. 그런데 레위인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었던 다윗 왕이 이 옷을 입은 것은 아마도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적 왕으로서 하나님의 보좌(궤)를 정성껏 모셔오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는 병행 구절인 삼하 6:14 주석을 참조하라.
메어 올렸더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림’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다’는 뜻의 동사 ‘알라’의 사역형 능동태로서 ‘올라가게 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온 이스라엘이 저지대에서 높은 고지대인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긴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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