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역대상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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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본장에 나오는 용사들의 명단은 성경 중에서 오직 본서에서만 소개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그에게 찾아와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용사들과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본 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도 이미 거국적인 지지를 받았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윗이 …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시글락은 가나안 정복 후 시므온 족속에게 할당된 땅이었으나(수 19:5) B.C. 12세기 초에 블레셋이 점령한 이후 다윗 시대 전까지 계속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다. 특히 사울 왕이 다윗을 핍박하던 당시에 이곳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내분을 조장하려는 의도로 이곳을 당시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의 거처로 주었다. 다윗은 이곳에서 1년 4개월을 지낸 후(삼상 27:1-7) 헤브론으로 돌아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다(삼하 2:1-4).

 

12:2 그들은 활을 가지며. 이는 곧 본 절 및 그 이하에 나오는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모두 활로 무장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의 동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따른 것은 다윗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정통성있는 통치자(삼상 16:1-13)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사울의 폭정과 비신앙적 행동 그리고 심한 정신병적 증세에서 더 이상 희망과 기대를 찾지 못하였을 것이다(삼상 22:17-19). 한편, 여기서 ‘동족’은 가까운 친척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단순히 같은 지파에 속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Keil, Lange). 그러므로 우리는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동족애보다 하나님의 의를 따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들의 행동은 동족애를 내세워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의 행동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삼하 16:5-8). 혹자는 이와 관련 베냐민 지파가 사울 왕의 출신 지파이므로 이들이 다윗에게 나아온 행위 자체가 다윗의 영광을 더욱 기리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Stotki).

 

12:3 기브아 사람. 여기서의 기브아는 사울의 기브아라고도 불려지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이다(삼상 11:4, 13:2, 15, 14:16, 15:34, 삿 20:10).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0 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오늘날의 텔-엘-풀(Tell-el-Ful)이다.

아스마웻의 아들. 11:33에서 다윗의 용사로 소개된 아스마웻 또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므로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 것으로 보여진다(Curtis).

아나돗.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었던 제사장의 성읍이었다(수 21:18).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 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아나타(Anata)이다.

 

12:4 기브온 사람.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 9.6 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수 18:25). 이곳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산당이 있었다. 왕상 3:4 주석 참조.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의 우두머리가 된 이스마야. 여기서 30 명은 삼하 23장과 본서 11장에서 소개된 다윗의 30 명 용사와 다른 어떤 자들이라고(Curtis) 볼 수 없다. 따라서 비록 이스마야가 30 명 명단에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그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으며 그들의 우두머리이었음이 분명하다(Payne, Keil, Lange). 우리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18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데라 사람 요사밧. 그데라는 유다 산지에 있는 성읍으로서(수 15:36)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 아니다. 혹자는 이곳에 베냐민 지파의 용사 요사밧과 그 가족들이 이주해 살았다고 주장하나(Keil) 이에 대한 분명한 근거가 없다. 때문에 이와는 반대로 혹자는 1-7절에 베냐민 지파의 용사와 더불어 일부 유다 지파의 용사들이 함께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Bertheau, Lange).

 

12:5 하룹 사람. 하룹은 지명이 아니라 인명으로 보여진다. 즉 여기서 하룹 사람은 갈렙의 후예 하렙의 자손들일 것이다(2:51).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1-7절에 일부 유다 지파의 용사들이 언급되어 있다는 주장이 입증되는 셈이다. 4절 주석 참조.

 

12:6 고라 사람들. 혹자는 이들을 레위의 후손 고라의 자손들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즉 이들을 레위 사람으로서 베냐민 지파 내에 살았던 자들로 보는 것이다(Payne, Lange). 그러나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12:7 그돌 사람. 그돌은 유다 산지에 위치한 성읍으로(수 15:58) 베들레헴 근처, 곧 오늘날의 길벳 그둘(Khirbet Gedur)이다.

 

12:8 광야에 있는 요새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 다윗의 피난 생활을 기록한 삼상 22-24장에 비추어 볼 때 이 ‘광야’는 유다 광야이며 이 ‘요새’는 유다 광야 곳곳에 흩어져 있었던 굴 또는 요새지들이었다(삼상 22:1, 24:3). 그리고 이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하던 첫 해에 해당한다. 즉 본 문맥에서 갓, 베냐민, 유다 자손들이 다윗에게 합류한 때는 앞의 문맥(1-7절, 다윗이 시글락에 있었던 때)보다 앞서는 때이며 다윗의 피난 시절 초기이다. 그 당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유다 광야의 은신처들을 찾아다니며 방황하고 있었다. 사무엘서에는 그 당시에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이 사백 명 가량(삼상 22:2) 또는 육백 명 가량(삼상 23:13) 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기록은 본 문맥의 역사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한편 여기서 ‘돌아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닙들루’는 ‘구별하다’는 뜻의 동사 ‘바달’의 닢알형(단순 재귀형)으로 이는 ‘스스로 구별하여 … 에게 속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스 6:21). 본 절에서 특히 이 말은 사울 왕의 편에 섰던 사람들로부터 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별하여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에게 속했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Bertheau, Keil, O. Zöckler).

싸움에 익숙하여. 이는 곧 체계적으로 잘 훈련된 병사들을 묘사한다(7:11).

그의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고대의 문학에서 ‘사자’(獅子)는 용사들의 용맹성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비유되었고 ‘산의 사슴’은 그들의 민첩성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비유되었다(삼하 1:23, 2:18). 즉 본 절은 갓 지파 용사들의 강인함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12:9 9-13절. 갓 지파 용사들이 서열에 따라 차례로 소개되고 있다.

 

12:10 다섯째는 예레미야요. 이와 동일한 이름은 13절에도 나온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유명한 선지자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렘 1:1)와는 다른 인물들이다.

 

12:11 없음.

 

12:12 여덟째는 요하난이요. 요하난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이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으로서 다윗을 섬긴 용사 가운데에도 이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가 있었다(4절).

 

12:13 없음.

 

12:14 군대 지휘관. 문자적 의미는 ‘군대의 머리’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큰 군대의 지휘관’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만 ‘탁월한 용사’라는 뜻이다(Keil, Lange).

그 작은 자는 백부장이요, 그 큰 자는 천부장이더니. 혹자는 본 절을 갓 지파 용사들이 능력에 따라 각자 백 명 또는 천 명을 지휘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Kittel).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당시 다윗을 따르던 무리들이 육백 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삼상 23:13)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본 절은 갓 지파 용사들 중 상대적으로 약한 자는 적군 백 명을 감당해 낼 수 있었으며 가장 강한 자는 천 명을 감당해 낼 수 있었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Keil, Bertheau, O. Zöckler, P.C. Barker, Kautzsch).

 

12:15 정월에 요단 강 물이 모든 언덕에 넘칠 때에. 정월은 히브리 월력으로 니산월(지금의 태양력 3-4월)로서 이때는 보리를 추수하는 때였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 늦은 봄, 여름은 건기(乾期)였으며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우기(雨期)였다. 따라서 사람들이 건기인 여름에는 요단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봄에는 비록 건기이긴 하였지만 간간이 봄비가 내리고 또한 겨우내 얼었던 레바논 산록의 눈들이 녹으면서 요단 강물은 범람하였다. 수 3:15 주석 참조. 그런데 갓 지파 용사들은 바로 이러한 때에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나아오기 위해 넘기 어려운 요단 강물을 도강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에게로 나아오는 그들의 간절함과 영웅적 모험 행위를 볼 수 있다.

골짜기에 있는 모든 자에게 동서로 도망하게 하였더라. 이는 당시 사울 왕을 계속 따르는 자들이 갓 지파 용사들의 길을 막았을 때 그들이 사울 왕의 추종자들을 물리쳤음을 나타낸다(Curtis). 즉 갓 지파 용사들은 사울 왕의 군대에서 이탈하여 다윗에게로 향하여 나아갔으므로 그 때 그들의 길을 막으려는 무리들이 있었던 것이다.

 

12:16 요새에 이르러. 이는 곧 8절과 같은 상황이다. 즉 베냐민과 유다 자손들은 당시 요새에 거처하던 다윗에게로 나아왔던 것이다. 8절 주석 참조.

 

12:17 다윗이 나가서 맞아. 여기서 ‘나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차’는 현재 있는 곳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절은 다윗이 자신의 은신처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맞이한 것을 보여준다. 다윗이 이와 같이 한 것은 자신을 찾아온 자들이 사울 왕의 첩자일 것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여기서 ‘손’은 ‘행위’를 상징하며(욥 16:17, 시 7:3, 9:16) ‘불의함’은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는 포악한 ‘폭력 행위’를 의미한다. 즉 다윗은 자신이 베냐민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원한을 살 만한 불의를 저지르지 아니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옛 족장들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이는 무죄한 자를 그 언약대로 인도하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출 3:6 주석 참조.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께 호소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무죄함을 강변하였다(Curtis). 한편, ‘책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카흐’는 법정 용어로서 진상 조사를 통하여 고소하는 행위, 또는 비난하는 행위를 나타낸다(창 31:36, 욥 9:23, 40:2, 미 6:2).

 

12:18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아마새’ 역시 다윗의 30 명 용사 중 한 사람이었으나 30 명의 명단(삼하 23장, 대상 11장)에는 기록되지 아니한 사람이다. 4절 주석 참조. 그런데 (1) 혹자는 본 절의 아마새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일 것이라고 주장한다(Kittel, Bertheau). (2) 또 다른 학자들은 아마새가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후에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가 그만 요압에 의해 살해된 ‘아마사’(삼하 17:25, 19:13, 20:4, 8)라고 주장한다(Keil, Barnes, Lange). 위의 두 견해 중 우리는 (1)번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아비새는 30 명의 두목이 아니라 둘째 세 명의 두목이었기 때문이다(11:20, 21). 반면에 (2)번의 경우는 두 이름들이 철자상으로 거의 일치하므로 비교적 가능성이 있다. 한편, 여기서 ‘감싸시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베쉬’는 ‘옷을 입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성령께서 아마새의 전(全) 인격을 감싸 전적으로 자기의 영향력 아래 두심을 나타낸다.

이르되 … 도우심이니이다. 본 절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아마새의 시적(詩的) 찬미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라는 말은 과거에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을 뿐 아니라(삼상 18:12 이하) 미래에도 도우실 것임을 나타낸다(Lange, Keil). 이와 같은 아마새의 찬사는 여호와께서 진정 다윗을 택하셨다는 고백이기도 하다(Myers).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당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나 아마새의 감동적인 시적 설득으로 인하여 그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다윗은 아마새를 그의 주변에 모여든 사백 명 또는 육백 명의 우두머리 중 한 명으로 세웠다.

 

12:19 다윗이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 할 때에. 이는 곧 과거 다윗이 블레셋으로 피신하여 시글락에 거주하던 때의 일이다(삼상 27:1-7). 그 때 블레셋과 사울 휘하의 이스라엘간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다윗은 블레셋 편에 서서 사울을 대적치 않을 수 없는 형편에 빠졌었다(삼상 28:1, 2).

므낫세 지파에서 두어 사람이 다윗에게 돌아왔으나. 갓, 베냐민, 유다 지파에 이어 이처럼 므낫세 지파에서도 몇 사람이 다윗에게로 돌아왔다. 여기서 ‘ … 에게 돌아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팔 알’은 전쟁 중 지휘관을 배반하고 적에게로 나아가는 배신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여기서는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에게 투항한 저들의 망명 행위를 가리킨다(삼상 29:3, 왕하 25:11).

우리 머리가 위태할까 하노라. 블레셋 방백들이 사울과 전투하기 전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이유이다. 즉, 이들은 다윗의 용맹을 기억하고 이러한 다윗이 자기들을 배반하여 사울 왕과 화합할 경우 자기들에게 미치게될 화(禍)를 염려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본 절은 다윗이 사울 왕과 화합할 경우 자기들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그리할 것이라고 우려하던 블레셋 방백들의 말이다(삼상 29:3, 4). 그들이 이처럼 다윗을 경계했던 까닭은 전날 다윗이 그들과의 싸움에서 보인 용맹성을 그들이 기억했기 때문이었다(삼상 29:5).

 

12:20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 이때는 블레셋 방백들의 강한 반발에 못이긴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참전하지 말라는 말을 하자 다윗과 그 무리들이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가게 된 때를 말한다(삼상 29:1-11). 이때는 블레셋 군대가 사울과 접전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올라갔던 때이기도 하다(삼상 29:11).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 … 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 이들은 바로 19절에 언급된 ‘다윗에게로 돌아온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므낫세 지파의 천부장, 곧 지휘자들이었다고 하니 당시 다윗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들이 돌아온 때는 사울과 그 군대가 블레셋 족속에게 크게 패한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직전이었다.

 

12:21 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도둑 떼를 쳤으니. ‘이 무리’는 분명히 다윗에게로 돌아온 므낫세 용사들(19, 20절)이다. 그리고 ‘도둑 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두드’는 ‘강도 떼’, 또는 ‘침략자의 무리’를 의미한다. 삼상 30:1에 의하면 이들은 다윗이 없는 동안 시글락을 약탈하고 다윗의 두 아내 및 여인들을 사로잡아간 아말렉 족속이었다. 다윗은 이때 이 므낫세 용사들 및 다른 용사들의 도움을 받아(삼상 30:7-15) 아말렉 족속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두 아내와 모든 것을 도로 찾을수 있었다(삼상 30:18, 19).

그들은 다 큰 용사요. 여기서 이들은 22절의 ‘큰 군대’와 달리 다윗에게 모인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Bertheau, Oettli). 즉 문맥상 이들은 므낫세 지파에서 온 천부장들(20절)을 가리키는 것이다(Keil, Lange, O. Zöckler).

 

12:22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본 절은 당시 다윗의 무리들이 육백 명을 넘어서 수천 또는 수만 명에 이른 것을 보여준다. 혹자는 당시 다윗의 무리가 사백 명 또는 육백 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에 집착하여(삼상 22:2, 27:2) 본 절은 저자의 주관적 사고에 의해 기록한 것으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 절은 그 이후 다윗의 무리들이 어떻게 크게 늘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길보아 전투(삼상 31장)에서의 패배 이후 상당수의 패잔병들이 다윗에게 나아왔다는 분명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절은 분명히 역사적 가치가 있다(Keil, Lange). 한편, ‘큰 군대’나 ‘하나님의 군대’에서 ‘군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하네’는 ‘진영’(陣營)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군대’란 (1) 군대의 큰 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Lange), (2)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군대를 의미하기도 한다(Keil, Payne).

 

12:23 본 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11:1-3에서 이미 소개된 다윗 왕의 대관식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삼하 5:1-3).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각 지파의 용사들의 명단과 통계는 11:1의 ‘온 이스라엘’, 삼하 5:1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한 자세한 내역(內譯)이다. 즉 이들은 모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줄 것을 다윗에게 설득하기 위해 나온 자들이었다. 삼하 5:1 주석 참조. 그리고 이들이 다윗에게 나아온 때는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 반을 지낸 때로서(삼하 2:1-11) 본서 저자는 유다 지파의 왕으로서의 다윗의 약력을 생략하고 곧 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다윗의 면모를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기술 형식은 처음부터 다윗을 신정국가의 영광스런 왕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11:1 주석 참조.

싸움을 준비한 군대 지휘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여기서 ‘준비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라츠’는 ‘전쟁에 대비하여 장비를 갖춘’, 또는 ‘무장한’이란 뜻이다. 또한 ‘군대 지휘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세’는 (1) ‘두목, 우두머리’라는 뜻과 함께 (2) ‘전체, 총계’라는 뜻이 있다(삿 5:30, 7:16, 20, 9:34, 44, 삼상 11:11). 그런데 본 문맥에서는 (2)번의 의미, 곧 ‘전체 무리들’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Lange, Barnes, Keil).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문맥에서 온 이스라엘의 총수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싸움을 위해 무장한 온 무리들이 … ’라고 번역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다윗의 즉위를 보는 저자의 시각(視覺)이다(11:3). 즉 저자는 이 말을 함으로써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더구나 무장한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더구나 무장한 온 이스라엘의 병사들이 그에게 나온 사실 등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상 대관식 장면에서 보여준 다윗의 피동적(被動的) 자세(11:1-3, 삼하 5:1-3) 역시 그의 나라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해 준다.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다윗에게로 나아온 무리들의 총 수효은 도합 340,822 명에 이르는 큰 수였다. 혹자는 400 명 또는 600 명에 불과한 다윗의 무리들이 이렇게 큰 수로 불어난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본 문맥이 다윗의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부각시키기 위한 저자의 과장인 것으로 본다(Curtis, Thomas, Mazar). 그러나 그러한 시각은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불신앙적 견해이다.

 

12:24 방패와 창을 들고. 여기서 ‘방패’(히, 친나)는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로서 적의 화살을 막기 위해 가지고 다닌 ‘작은 방패’(히, 마겐)와는 다른 것이다. 또한 창은 찌르는 살상용 무기이다. 이후 각 지파에서 무장한 무기들이 소개되는데 이같은 무기에 대한 기록은 다윗 왕조의 강대한 위세를 보여준다. 이와 관련 성경에 언급된 무기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활: 고대인에게 가장 강력한 공격용 살상 무기이며 때로는 주술적인 목적에도 이용되었다(겔 39:3, 시 7:12, 11:2, 계 6:2). 이것은 폭력을 의미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였다.
2. 칼(검): 근동의 칼은 두 가지 형태로 찌를 때 쓰이는 곧은 칼과, 목이 낫 같이 휘어진 언월도 곧 왕의 장식용 칼 등이 있다. 구약의 칼은 대개 곧은 날을 가진 공격용 살상 무기였다(창 3:24, 49:5, 삼상 17:39, 엡 6:17, 히 4:12, 계 1:16, 2:16, 19:15). 히브리어 ‘바라크’는 번개를 의미한다. 또한 ‘헤레브’는 억압을 상징하며, 헬라어 ‘마카이라’는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성령의 검이다. 이 영적인 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3. 병거: 고대 세계 최고의 공격용 무기이며 군사력의 상징을 말해주는 것으로 4필의 말이 끌었으며 화려한 행진에도 사용되었다(겔 23:24, 합 3:8, 행 8:28, 계 9:9). 왕권을 표현할 때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병거’란 말은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그분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4. 방패: 방어용 무기이며 고대의 방패는 몸 전체를 보호하는 큰 방패 ‘치나’와 왼쪽팔에 메는 작은 방패 ‘마겐’으로 구별된다. 한글개역 성경은 대부분 이 둘을 구별하지 않았다. 장식품인 금방패도 있었다(삼하 8:7, 엡 6:16, 대하 23:9, 욥 15:26, 시 119:114, 렘 51:11). 욥기에는 하나님에 대항하는 사악한 인간의 저항으로 비유하였다. 신약에서는 사탄에 저항할 수 있는 성도의 ‘믿음’이 방패로 상징되었다.
5. 투구및 갑주: 방어용 무기이며 초기 시대에는 왕이나 높은 지도자에게 국한되었다. 일반 사병들은 가죽옷을, 지휘관들은 놋쇠 비닐옷을 착용하였다(삼상 17:5, 엡 6:11, 대하 26:14, 17, 사 59:17, 살전 5:8). 투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나타냈으며, 구원에 대한 소망을 상징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미하였다.

 

12:25 시므온 자손 중에서 … 칠천백 명이요. 23-37절에 의하면 유다와 시므온 지파처럼 지역적으로 팔레스타인 남쪽에 거주한 지파의 용사들의 수가 북쪽 지파의 용사들의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카일(Keil)은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또 다시 그를 왕으로 인정하기 위해 많은 수의 병력을 집결시킬 필요가 없었으나 북쪽 지파들은 다윗을 최초로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병력을 파송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12:26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육백 명이요. 이밖에도 여호야다가 이끄는 용사 3,700 명과 사독의 용사 22 명이 더 있었으니(27, 28절) 레위 지파의 용사들은 모두 8,322 명이었다. 한편 이처럼 성직(聖職)을 맡아 봉사하던 레위인들 가운데서도 다윗을 추종하는 용사들이 많았다는 것은 다시 한번 다윗의 왕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임을 증거해 둔다.

 

12:27 아론의 집 우두머리 여호야다.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지도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호야다는 대제사장이 아니었다. 당시 대제사장은 이다말의 후손 아비아달이었다(삼상 23:9). 한편, 이 여호야다는 다윗의 시위대장 브나야의 부친임에 틀림없다(11:22, 27:5, 삼하 8:18, 20:23, 23:20, Keil, Payne, Barnes, Bertheau, Kimchi).

 

12:28 젊은 용사 사독. 본 절의 사독은 다윗 통치하에서 아비아달과 함께 대제사장직을 맡았으며 솔로몬 즉위 때에 단독으로 대제사장직을 맡은 바로 그 사독인 것 같다(삼하 15:24, 왕상 2:35, 4:4, Payne, Keil, Lange, Curtis). 본 절은 그가 다윗의 대관식 당시에 아직 젊은이였음을 알려준다.

 

12:29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 … 삼천 명이요.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가장 적은 수이다. 아마도 베냐민 지파 내에는 지파 우월주의에 빠진 실권자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었던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12:30 가족으로서 유명한 큰 용사. 에브라임 지파는 옛부터 용감한 전사(戰士)들로 유명했었다. 신 33:17 주석 참조. 한편 본 절은 문법상 ‘본 족속에 따라 유명한 큰 용사’로 번역될 수 있다(B.D.B. Bertheau). 즉 본 절은 기질적으로 에브라임 지파 가운데서 유명한 용사들이 많이 나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12:31 므낫세 반 지파 중에 이름이 기록된 자. 본 절의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서편에 거주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37절에 요단 동편의 반 지파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이름이 기록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브’는 ‘임명하다, 지정하다’는 뜻이다(민 1:17). 즉 이들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위해 특별히 ‘임명받은 자’란 뜻이다.

 

12:32 시세를 …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이백 명은 당시 다윗에게 나아온 잇사갈 지파 전체의 수가 아니라 다만 지휘관들의 수이다(Keil, Lange, Curtis). 여기서 ‘시세(時勢)를 안다’는 말은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 또는 통찰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 여기서 ‘통솔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피헴’은 직역하면, ‘그들의 입에 따라서’라는 뜻이다. 이는 곧 잇사갈 지파가 그들의 판단 또는 지도를 따랐다는 말이다(창 41:40, 민 4:27, 신 21:5, Keil, Lange).

 

12:33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이는 무장(武裝)을 한 채 전쟁에 대비한 연습을 하였다는 말이다(Lange, Keil). 때문에 공동번역은 본 절을 ‘훈련을 받아’로 번역하였다.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이는 한 마음, 또는 견고한 마음으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다르’는 ‘배치하다’라는 뜻으로 모든 용사들이 적군 앞에서 견고한 마음으로 대열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다(Lange, Keil).

 

12:34 방패와 창. 여기서 방패는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이나 창은 24절의 찌르는 창과는 약간 다른 종류이다. 24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니트’는 길이가 짧고 던질 수 있도록 고안된 무기를 가리킨다(삼상 18:11, 20:33). 대개 이같은 창은 앞, 뒤쪽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녔다(삼상 19:9, 10, 22:6, 26:7, 삼하 1:6, 2:23, 23:21).

 

12:35 35-36절. 단 지파와 아셀 지파 가운데에서 다윗에게로 나아온 용사들의 수는 합하여 ‘육만 팔천육백 명’이다. 이는 다른 지파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숫자인데 그들 지파의 인구 수가 상대적으로 다른 지파에 비해 많은 탓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민 26:42-47).

 

12:36 없음.

 

12:37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이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 언급되었다. 본서 저자는 이상과 같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를 언급함으로써 모든 백성의 지지 가운데 출발하게 된 다윗 왕조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12:38 이 모든 군사. 위에서 언급한(23-37절) 헤브론의 다윗에게로 나아온 이스라엘 온 무리들을 가리킨다.

전열을 갖추고. ‘오(伍)와 열(列)을 맞추어’라는 뜻이다.

성심으로. ‘온 마음(Whole heart)으로’ 라는 뜻이다. 즉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한 용사들은 모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다윗에게로 나아왔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미처 헤브론에 나오지 못한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조차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는 본 기록은 다윗 왕조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출발한 이상적인 신정 국가(神政國家)였음을 증명한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는 사실은 아브넬(이스보셋의 군장)이 죽기 전에 한 말을 통해서도 능히 확인할 수 있다. 삼하 3:17 주석 참조.

 

12:39 무리가 거기서 다윗과 함께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셨으니. 이는 곧 다윗 왕의 즉위를 축하한 3일 간의 잔치를 가리킨다. 당시 왕이 즉위할 때에는 대관식(왕상 1:32-48, 왕하 11:12-20), 왕홀(王笏)의 수여(삼하 1:10, 왕하 11:12, 시 89:40), 기름부음(삼상 9:16, 10:1, 삼하 2:4, 왕하 23:30) 등의 의식이 거행되었으며 이때에 백성들은 다같이 환호하며(왕상 1:34, 39, 왕하 11:12, 14) 기쁨의 잔치에 참여했다.

그들의 형제가 이미 식물을 준비하였음이며. 여기서 ‘그들의 형제’란 이미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한 유다 지파 및 시므온 지파를 가리킨다. 25절 주석 참조. 이 지파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잔치를 준비하는 데 동원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잔치에 필요한 제반 물자(物資)를 준비하였다. 한편 이러한 사실은 유다 지파나 시므온 지파가 다른 북쪽 지파에 비해 군사를 적게 소집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25절 주석 참조.

 

12:40 근처에 있는 자로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까지도 … 실어 왔으니. ‘근처에 있는 자’는 유다 지파에 인접해 있었던 지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북단에 위치한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지파들까지도 음식을 실어왔다. 이와 같은 저들의 행동은 다윗의 즉위를 저들이 진심으로 크게 기뻐했다는 사실을 증거해준다.

과자와 무화과 과자와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 왔으니. 이것들은 팔레스타인의 기본 소산물들로서 히브리인들의 잔치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삼상 25:18, 30:12, 렘 40:10, 12, 암 8:1). 아무튼 본 절은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는 잔치가 굉장히 성대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실상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큰 무리가 사흘 동안 잔치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그 규모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쁨이 있음이었더라. 본 절 앞에는 원인을 나타내는 접속사 ‘키’가 붙어 있다. 따라서 본 절을 정확히 직역하면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쁨이 있기 때문이더라’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본 절에서 말하는 기쁨은 3일 간의 잔치의 결과였다기 보다 오히려 잔치를 벌이게 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은 잔치의 음식을 먹음으로 얻었던 것이 아닌 보다 순수한 것이었다. 실상 본 절의 ‘기쁨’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심하’는 주로 여호와 안에 있을 때 가지는 기쁨을 나타낸다(대하 20:27, 시 5:11, 9:2, 64:10). 따라서 이들의 기쁨은 오직 여호와의 기름부으신 다윗의 왕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에서 가졌던 순수한 희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쁨 때문에 유다 지파 근처 사람들이나 먼 지파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잔치 음식을 날라온 것이다. 한편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즉위를 기뻐하여 사흘 동안 ‘희락의 잔치’를 벌였었다. 그러나 장차 성도들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은 곧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성취되는 때이니 바로 세상 끝날이다(계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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