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역대상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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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본 절로부터 3절까지는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는 대관식 장면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는 다윗 왕조에 관한 기록의 초두에서부터 다윗을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 즉, 본 장 초두는 사무엘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나오는 다윗과 관련된 많은 기사를 생략한 채 곧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기술하고 있다. 본서에 생략된 다윗과의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는 장면(삼하 2:1-4), 다윗과 이스보셋 사이의 대치(삼하 2:8-32), 요압의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삼하 3:27), 다윗의 범죄와 그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행위들, 다윗에게 임한 재앙들 등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저자가 본서에서 다윗 왕조의 부정적인 면을 생략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기록한 것은 다윗 왕조의 신정 국가적(神政國家的) 탁월성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 장 초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병행 구절인 삼하 5:1에서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본 절에서는 ‘온 이스라엘’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틀림없이 유다 지파를 제외한 북쪽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문맥의 초점은 이스보셋(사울의 집)을 따르던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여 다윗에게 나아올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하 5:1-3 주석 참조. 반면, 본 절에서 ‘온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전체(유다 지파를 포함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Curtis).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1) 이스라엘이란 용어가 언약 공동체를 총칭(總稱)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2) 무엇보다도 본서 저자가 다윗의 7년간의 유다 지파 통치사(삼하 2-4장)를 지나쳐 곧바로 이스라엘 전체 통치사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다윗 왕조를신정 국가적 표상으로 다루고 있는 본서의 특징과도 잘 어울린다. 한편, 헤브론은 이스라엘이 통일되기 이전 유다 왕조의 수도였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 km 지점으로서 옛날에는 기럇아르바로 불렸다(수 15:13). 삼하 2:1 주석 참조.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헤브론에 모인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즉 백성들은 다윗과 자신들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강조하면서 다윗에 대한 자신들의 전적 신뢰를 표한 것이다. 더욱이 율법에는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동족인(同族人)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규정되어 있다(신 17:15). 때문에 이러한 율법 조항에 근거하여서도 백성들은 왕이 될 기본적인 자격이 다윗에게 있음을 더욱더 강조한 것이다. 삼하 5:1 주석 참조.

 

11:2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 여기서 ‘출입하게 한 자’란 ‘지휘력(指揮力)이 있는 자’, ‘전쟁에 나가 연전 연승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삼하 5:2 주석 참조. 이는 곧 온 이스라엘이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을 내세워 다윗이 반드시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두 번째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다윗은 이전 사울 통치 하에서 탁월한 지도력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며(삼상 18:5-16) 심지어 사울 왕의 후계자로까지 인정을 받았다(삼상 23:17, 25:30).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 하셨나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할 세 번째 당위성이다. 즉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기름 부음 받은 자)라야 하였는데(신 17:15) 다윗이 바로 그러한 자였다. 다윗은 약 20년 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았다(삼상 16:13). 때문에 그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백성들은 다윗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려 한 것이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 주권자가 되리라. 본서 저자는 다윗을 진정한 목자이며,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한 목자를 세우리라는 예언은 역대기 저자의 동시대인들 특히 포로 귀환민들에게 있어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예언은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자신을 목자라고 지칭하신 비유(요 10:11)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다.

 

11:3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 삼으니.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제사장직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면, 장로직은 백성을 치리(治理)하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신 21:18-21). 본 절의 회집 광경은 마치 이스라엘 최고 회의 같은 묵직한 권위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다윗은 백성들에게 왕으로서 준수해야 할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며 율법에 의한 규례대로 대관식을 거행한다. 이 규례는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이며, 기름 부음은 성별되었음을 의미한다(출 30:25-29). 이 같은 기름 부음의 의식은 신정 정치의 특성을 반영한 동시에(삼상 24:6, 10), 신약 시대에 메시아가 받을 표징의 하나였다. 한편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 받음으로써 메시아를 기다린 백성의 염원을 성취시키셨다(행 10:38).

다윗이 그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맺으매. 여기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다윗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언약의 성격이 쌍방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임을 시사해 준다. 즉, 이 언약은 군주와 백성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 지목하신 다윗을 무조건적으로 백성들이 자기의 왕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서약이었다. 이 언약에서 백성들은 다윗 왕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de Vaux). 이 언약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3 주석을 참조하라.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에게 있어서 이는 세 번째 기름 부음이었다. 첫 번째는 사무엘을 통하여, 두 번째는 유다 지파의 장로들을 통하여 받았다(삼상 16:13, 삼하 2:4). 삼하 5:3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이는 병행 구절인 삼하 5:3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첨언(添言)이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하여 다윗 왕조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하에 세워졌음을 강조하고 있다(삼상 16:1-13).

 

11:4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이제 본 절에서부터 9절에 이르기까지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는 장면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서는 다윗 ‘왕과 그의 부하들’만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본 절에서는 다윗과 함께 ‘온 이스라엘’이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1절의 ‘온 이스라엘’과 같은 개념으로 본서 저자가 신정 국가의 새 수도인 예루살렘이 일부 정예 부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에 의해 정복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Curtis).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예루살렘은 (1) 온 이스라엘 지형의 중심부에 위치했으며 (2) 천혜의 방어 요새지였다. 그리고 (3) 충분한 수자원이 있었고(수 15:7, 8) (4) 또한 성전 건축의 최적소(最適所)로 여겨졌다. 때문에 다윗 왕은 그의 즉위 초기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고자 했다. 한편 여부스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도 그것은 다윗 당시에 이곳에 여부스 족속이 거주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일 것이다(Curtis). 이 여부스 족속은 여호수아 당시 유다 지파의 침공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났으나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차지하였다(수 15:63, 삿 1:21). 그 이후 거의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탈취해 오지 못하다가 다윗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탈취하였다.

 

11:5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이 지난 400여년 동안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한 사실에 근거하여 여부스 족속이 큰 소리를 치는 장면이다. 사실 예루살렘은 (1)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는 ‘왕의 대로’(신 2:27)에서 떨어져 있었고 (2) 남과 동의 성벽은 가파른 언덕에 세워졌으며 (3) 서쪽에는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는 등 천혜의 방어 기지였기 때문에 외부의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는 여부스 족속이 다윗을 향해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조롱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장에는 그 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아마도 본서 저자가 그 말이 신정 국가의 왕 다윗의 영광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생략한 듯하다. 삼하 5:6 주석 참조.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시온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 삼하 5:9에 의하면, 다윗은 이곳을 빼앗아 이곳에 거처하면서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고 칭하였다(7절).

 

1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병행 구절인 삼하 5:8에 의하면 다윗의 군대 장관인 요압은 수구(水口)를 통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 수구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들어온 물을 성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파놓은 수직의 갱도였다. 요압과 그의 부대원들은 이곳을 통과하여 예루살렘 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 이후에 요압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삼하 5:8 주석 참조. 한편 스루야는 다윗의 이부(異父) 누이이다. 삼상 26:6 주석 참조. 따라서 요압은 다윗의 조카인 셈이다.

 

11:7 없음.

 

11:8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채우다’는 뜻의 ‘말레아’에서 파생한 ‘밀로’는 대체로 흙이나 돌로 쌓아올린 성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나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다만 예루살렘 성에 있어서 북쪽이 가장 취약 지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이것은 동북쪽, 또는 북서쪽의 한쪽 모퉁이에 위치한 성채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Hertzberg, Keil, Lange, Rust).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밀로를 중심으로 성벽을 보강함으로써 다윗이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의 중앙 성소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삼하 5:9 주석 참조.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여기서 ‘중수(重修)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하예’는 ‘살다’는 뜻의 ‘하야’의 피엘형(강의형 능동태)으로서 직역하면 ‘살게 하다, 재생하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존의 성을 ‘보수하다’ 또는 ‘보강하다’(왕상 18:30)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1:9 만군의 여호와. 이에 해당하는 ‘야훼 체바오트’는 ‘천군천사의 여호와’란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이다. 삼하 5:10 주석 참조.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이다. 다윗은 사방의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서 그 명성(名聲)을 널리 떨칠 수 있었다(14:1-17, 18:1-20:8).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10, 12 주석을 참조하라.

 

11: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본 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이다. 그 가운데서도 10-14절은 다윗의 첫째 세 용사에 관한 기록이다. 첫째 세 용사의 이름은 야소브암(11절), 엘르아살(12절), 삼마(삼하 23:11)이다.
여기서 이들이 기록된 이유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예루살렘에 도읍지를 정하는데 중요한 보조 역할을 하는 등 신정 국가 건설에 그들이 큰 공헌을 남겼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주로 삼하 23:8-39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이 사람들이 … 왕으로 삼았으니 …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본 절은 사무엘하의 기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해설적 첨언이다. 한편, 여기서 ‘이는 … 말씀대로 함이었더라’는 구절은 여호와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르신 말씀(삼상 16:1, 삼하3:9, 18)을 지칭하는 구절이다.

 

11:11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 야소브암은 시글락에서 다윗과 합류한 자로서(12:6) 다윗의 상비군 중 정월반(正月班)의 반장이었다(27:2).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3:8에서 그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로 소개되었다. 여기서 ‘다그몬’은 ‘학몬’에 대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이며 ‘요셉밧세벳’은 ‘밧세벳에 거주하는 자’라는 뜻으로 고유의 이름이 아니다. 또한 아디노는 야소브암의 별명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삼하 23:8 주석 참조.

삼십 명의 우두머리라. 여기서 30 명이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에 즉위한 직후 조직한 용사들로서 다윗의 신정 국가 건설에 큰 공헌을 한 자들을 가리킨다. 삼하 23:24-39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삼십 명의 두목으로 소개된 야소브암은 삼하 23:8에서는 왕의 호위병들을 지휘한 ‘군 지휘관’(히, 샬리쉬)의 우두머리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가 창을 들어 한꺼번에 삼백 명을 죽였고. 병행 구절인 삼하 23:8에서는 야소브암이 팔백 인을 쳐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를 사본 상의 오류로 보고 사무엘하의 기록인 팔백 인을 정확한 기록으로 간주하였다(Payne, Curtis). 첫째 삼 인에 미치지 못하는 둘째 삼 인 중의 한 사람인 아비새가 삼백 명을 죽인 것을 볼 때(20절) 그 같은 주장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한편, 여기서 ‘한꺼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파암 에핫’은 ‘한 사건 안에’라는 뜻으로 야소브암이 한번의 전투에서 올린 전과(戰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이 말로써 저자는 야소브암이 아비새보다 월등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11:12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 첫째 세 명 중 한 사람인 엘르아살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아호아 사람의 아들로서(8:4) 이만 사천 명으로 구성된 이월반(二月班)의 반장이었다(27:4). 그는 또한 야소브암, 삼마와 더불어 다윗의 ‘샬리쉬’(군 지휘관)로 활약하였다(삼하 23:8-12). 한편 여기서 ‘아호아 사람’은 가문의 명칭인지 아니면 지리적 명칭인지 분명치 않다.

 

11:13 그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있었더니. 여기서 바스담밈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잦은 전투를 벌였던 에베스 담밈을 가리킨다(삼상 17:1). 그곳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국경 지대인 엘라 골짜기에 위치하였는데 과거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이다. 그리고 이 지명의 뜻은 ‘피의 경계선’이다. 한편, 13, 14절은 삼하 23:9, 10에 나오는 엘르아살의 전공(戰功)을 보충해 주는 내용이다(Payne, Lange). 물론 이 구절들 안에는 삼마의 전공에 관한 기록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하다(삼하 23:11, 12). 그러나 결정적으로 본 구절들은 엘르아살이 소개된 바로 다음에 이어지고 있으니 엘르아살에 관한 언급이다.

백성들이 … 도망하되. 여기서 ‘도망하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누스’는 전투에서 패배하여 달아나거나 미리 겁을 먹고 도망한다는 의미이다(삼하 10:14, 왕상 20:30). 이렇게 볼 때 엘르아살은 쳐들어오는 블레셋 군대를 맞이하여 홀로 대처했던 것 같다. 삼하 23:9, 10 주석 참조.

 

11:14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 여기서 ‘그’란 ‘엘르아살’을 가리킨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3장에는 첫 삼 인의 용사로서 야소브암과 엘르아살 외에도 삼마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삼마에 관해서는 삼하 23:11, 12을 참조하라.

 

11:15 삼십 우두머리 중 세 사람. 이들은 둘째 삼 인으로서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또 한 사람이다(20, 21, 24, 25절). 즉 본 절에서부터 25절까지에서는 다윗의 두 번째 용사 삼 인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은 능력면에서는 첫째 삼 인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다윗에 대한 충성심에 있어서 만큼은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았다(16-19절).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여기서 바위는 당시 다윗이 있던 아둘람 굴의 바위를 의미한다. 즉 이들은 아둘람 굴 근처의 바위에서 다윗 왕을 배알(拜謁)한 것이다. 한편, 아둘람 굴은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가드 남동쪽 약 16 km 지점이다. 최근 한 고고학자는 이곳의 산중턱에서 약 400명 정도가 거처할 만한 동굴 하나를 발견하였다. ‘아둘람’은 본래 ‘은신처’라는 뜻이다. 과거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이곳에 은신한 적이 있다(삼상 22:1, 2). 그리고 지금은 다윗 왕이 자신을 잡으러 온 블레셋에 대항하기 위해 이곳에 임시 본부를 차렸음이 분명하다.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본 절은 본 문맥이 다윗 왕의 즉위 초에 있었던 바알브라심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에도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총 집결하였었기 때문이다(삼하 5:17-25). 이 전투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우려한 블레셋 족속이 다윗 왕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다. 블레셋인들이 르바임 골짜기를 총집결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삼하 5:18 주석에서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11:16 다윗은 산성에 있고. 이 산성은 아둘람 굴 근처에 있던 산성을 의미한다. 당시는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곳에 본부를 두었다. 삼하 23:14 주석 참조.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은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여기서 진영은 수비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편 블레셋 족속은 아마도 길보아 전투 때(삼상 31:1-7)에 베들레헴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같은 블레셋인들을 완전히 격퇴시켰으니(14:8-17) 다시 베들레헴은 탈환되었음이 분명하다.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나뉘었을 때 르호보암은 베들레헴에 요새를 설치하였다(대하 11:6).

 

11:17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깊은 우물로부터 솟아나오는 이 물은 시원하고 깨끗한 냉수였다고 한다(Ritter). 이곳 베들레헴 태생인 다윗(삼상 16:18)은 분명히 어려서부터 이 물을 마셨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 아둘람 근처의 물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 왕은 더욱더 이 물을 사모하였을 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Commentary, Lange). 삼하 23:15 주석 참조.

 

11:18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여기서 ‘돌파하고 지나가서’란 말은 이들이 베들레헴에 주둔하던 블레셋 군대를 꿰뚫고 목적지로 나아갔음을 나타낸다. 삼하 23:16, 17 주석 참조. 한편 혹자는 이와 관련 이들이 아마도 밤중에나 혹은 적의 부주의함을 틈타 블레셋의 방어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Curtis).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다윗은 이처럼 용사들이 길어 온 물을 여호와께 전제물(奠祭物)로 부어드렸다. 왜냐하면 그 물은 세 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떠온 물로서 그들의 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6, 17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당시 아둘람 근처에는 여호와의 제단이 있었을리 없었으니 다윗은 분명 그 물을 땅에 부어드리면서 여호와를 기억했을 것이다(Lange).

 

11:19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다윗 왕은 용사들이 떠온 물 속에 그들의 생명이 담겨있음을 생각하고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즉, 피와 생명을 동일시한 히브리적 사고 방식에 입각해서(창 9:4, 레 3:17, 7:26) 다윗 왕은 이들이 생명을 바쳐 떠온 물을 피로 간주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은 ‘피를 먹지 말라’(레 17:10)는 율법의 조항과 ‘제단에 붓지 않으면 물 같이 땅에 쏟으라’(신 12:16)는 조항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땅에 부었을 것이다.

 

11:20 요압의 아우 아비새. 여기서부터는 둘째 세 용사에 대한 설명이다. 그들의 이름은 아비새(본 절), 브나야(22절), 익명(匿名)이다.
아비새란 이름의 뜻은 ‘선물의 아버지’이다. 그는 요압과 더불어 다윗 왕의 조카였다(삼하 2:18). 즉 아비새는 다윗의 이부동복매(異父同腹妹)인 스루야의 아들인 것이다. 그는 일찍이 다윗과 함께 사울의 진영에 내려갈 것을 자원함으로써 용사적 기질을 보였으며(삼상 26:6, 7) 요압에 버금가는 다윗의 군대 지휘관으로 많은 활약을 보였다(삼하 2:24, 10:10, 18:2, 20:6).

그 세 명 중 우두머리라. ‘세 명’ 앞에 정관사 ‘그’가 붙어 있으므로 이 삼 인은 앞에서 다윗을 위해 물을 떠온 삼 인을 의미한다. 이 중 아비새가 우두머리였다. 삼하 23:18, 19 주석 참조.

그가 창을 휘둘러 삼백 명을 죽이고. 아마도 이와 같은 혁혁한 전과는 그가 에돔에 원정하였을 때(18:12)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Payne).

 

11:21 첫째 세 명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여기서 ‘첫째 세 명’이란 야소브암, 엘르아살, 그리고 여기에는 언급되지 않는 삼마를 지칭한다(11, 14절 주석 참조). 즉 비록 아비새가 용맹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영웅적 행위에는 미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편 다윗 휘하의 군대 내에는 다윗의 여러 친척들이 기용되어 있었다. 특히 군 수뇌부의 요직(要職)인 총사령관 요압을 비롯하여 자신의 여러 조카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행적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요압: 다윗의 이종조카(스루야의 장남)이다. 그는 여부스 성을 점령한 공로로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대상11:6). 압살롬의 반란시 다윗을 충실히 보좌하고(삼하 18:1-5), 아브넬을 죽이고(삼하 3:27-31), 아마살을 죽이고(삼하 20:8-10), 아도니아의 반란에 가담하였다(왕상 1:5-5-7).
② 아비새: 다윗의 이종조카(스루야의 차남)이다. 그는 에돔인 18,000 명을 섬멸하고(대상 18:12), 암몬을 격파하고(삼하 10:10),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고(삼하 20:6, 7), 블레셋 장수 브놉을 처치하였다(삼하 21:15-17).
③ 아사헬: 다윗의 이종조카(스루야의 3남)이다. 그는 다윗 군대 30인 용사 가운데 일인(대상 11:26)이며 이브보셋과 전투 중 적장 아브넬에게 살해되었다(삼하 2:18-23).
④ 아마사: 다윗의 이종조카(아비가일의 아들)이다. 그는 요압을 대신하여 총사령관이 되었고(삼하 19:13), 세바의 반란 진압시 요압에게 살해되었다(삼하 20:8-10).
⑤ 요나단: 다윗의 조카(삼마의 아들)이다. 그는 손, 발가락이 모두 24개인 르바임의 거인을 처치하였다(삼하 21:20, 21).

 

11:22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갑스엘은 유다 남쪽의 한 지방으로서 오늘날의 길벳 호라(Khirbet Hora)이다. 따라서 여기서 ‘갑스엘 용사의 손자’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으며 이는 ‘갑스엘 출신의 사람 용사’로 번역되어야 한다. 즉, 여기서 손자(아들로도 번역됨)라는 말은 그가 갑스엘 출신의 후예임을 나타낸다(Lange). 한편 이러한 브나야는 다윗 왕의 근위 대장이었으며(삼하 8:18, 20:23) 3월반의 반장이었다(27:5). 또한 그는 솔로몬 치하에서 군대 장관이 되었다(왕상 2:25, 29).

그가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여기서 ‘아리엘의 아들 둘’이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1)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獅子)’란 의미로서 ‘아리엘의 아들 둘’이란 ‘사자 같이 용맹스런 용사’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Keil, Lange). 그러면서 이에 대한 증거로 지금도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은 매우 뛰어난 용사를 가리켜 ‘아리엘’이라 부르고 있는 점을 든다(Bochart). (2) ‘아리엘’이 모압 왕의 이름이라는 주장이다(Pulpit Commentary, Thenius). 이럴 경우 두 아들은 모압 왕 아리엘의 아들들이 된다. (3) ‘아리엘’을 ‘제단’이란 의미의 ‘하렐’의 변형으로 보고 이를 모압의 두 제단으로 보는 견해이다(Barnes). 그런데 여기서 (3)번의 견해는 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 절의 ‘죽였고’라는 말이 아리엘을 비인격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없도록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Curtis, Payne). 또한 (2)번의 견해도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원문상 본 절에서는 ‘아들’에 해당하는 용어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1)번의 견해를 비교적 타당한 것으로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견해에 따르면, 브나야는 모압의 가장 뛰어난 용사 둘을 쳐 죽인 것이다.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죽였으며. 구약 시대에는 팔레스타인에 사자가 흔했다. 이 사자들은 추운 날씨에 민가에 내려와 사람들을 잡아먹곤 하였다(왕상 13:24, 20:36, 왕하 17:25).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자를 잡기 위해 함정을 만들어 놓곤 하였다. 그런데 사자가 그 함정에 걸렸을 때 그들은 갈고리 등과 같은 도구로 사자를 쳐 죽였다(겔 19:4, 8). 그러나 브나야는 맨 몸으로 뛰어들어가 사자를 잡은 것이다.

 

11:23 그 사람의 키가 다섯 규빗이요. 일 규빗이 45.6 cm이므로 그의 키는 2m 30cm나 되었다.

그 손에 든 창이 베틀채 같으나. 베틀채는 여기서 애굽 사람의 창이 얼마나 무거웠는가를 알려주기 위해 비유로 사용된 말이다. 이렇게 무거운 창을 다루는 자에게서 브나야가 도리어 그 창을 빼앗아 그를 죽였으니 브나야의 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삼하 23:20-23 주석 참조.

 

11:24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여기서 ‘세 용사’란 다윗의 둘째 용사 삼 인을 가리킨다. 즉 브나야는 아비새(20, 21절) 및 이름을 알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용사와 더불어 제2급의 서열에 오른 것이다. 15절 주석 참조.

 

11:25 시위대장. 시위대는 사형 집행 기관인 ‘그렛’과 보발(步撥)부대인 ‘블렛’으로 구성된 왕의 근위대를 가리킨다. 브나야는 다윗 치하에서 줄곧 그 같은 시위대의 대장이 되었다(삼하 8:18, 20:23). 삼하 23:20-23 주석 참조.

 

11:26 본 절부터 마지막까지는 흔히 ‘다윗의 30 용사’(11, 15, 25절)로 불리던 자들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자들의 총수는 48명이니 병행 기사인 삼하 23:24-39에 비해 17명이 더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군사 중의 큰 용사. 이는 곧 ‘전쟁의 영웅’이란 의미이다.

요압의 아우 아사헬. 그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으로서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였다(삼하 2:18). 그렇지만 그는 불행히도 그 빠른 발 때문에 이스보셋의 군장(軍長) 아브넬에 의해 죽었다(삼하 2:23). 한편 그는 요압, 아비새와 함께 다윗 왕의 조카이기도 하다(삼하 2:18).

베들레헴 사람 도도의 아들 엘하난. 삼하 21:19의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과는 다른 사람이다.

 

11:27 하롤 사람 삼훗. 그는 다윗의 상비군 중 5월반 반장이었다(27:8). 그는 일명 삼마로도 불린 것 같다. 삼하 23:25 주석 참조. 한편 ‘하롤’이 삼하 23:25에서는 ‘하롯’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필사자의 착오에 의한 오기(誤記)인 듯하다. 하롯은 기드온이 자기의 추종자들을 시험했던 샘이 있던 곳으로 길보아 산 근처이다(삿 7:1-7).

블론 사람 헬레스. 그는 7월반 반장이었다(27:10). 한편 ‘블론’ 사람이 삼하 23:26에서는 ‘발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발디는 유다 남쪽 벧-벨렛(수 15:27, 느 11:26)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다.

 

11:28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 그는 6월반 반장이었다(27:9). 그런데 그를 야일 사람 이라(삼하 20:26)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한편 드고아는 베들레헴 남동쪽에 위치한 유다 성읍이다.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 그는 9월반 반장이었다(27:12). 한편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이다. 삼하 23:27 주석 참조.

 

11:29 후사 사람 십브개. 그는 블레셋 거인 삽을 죽인 영웅이었으며(삼하 21:18) 8월반의 반장이었다(27:11). 한편, ‘십브개’는 삼하 23:27에서는 ‘므분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모두 십브개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므분내는 십브개에 대한 오기(誤記)로 볼 수 있다.

아호아 사람 일래. ‘일래’는 병행 구절인 삼하 23:28에서는 ‘살몬’으로 기록되어 있다.

 

11:30 느도바 사람 마하래. 그는 10월반 반장이었다(27:13). 느도바는 유다 지파 경내에 있었는데 악사들(레위인)의 거처였다(9:16). 삼하 23:28 주석 참조.

바아나의 아들 헬렛. ‘헬렛’은 12월반 반장이었던 ‘헬대’이다(27:15). 삼하 23:29에서는 ‘헬렙’으로 표기되어 있다.

 

11:31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이대. 구약 시대에 기브아란 이름으로 불렸던 성읍으로 다음과 같은 서너 마을이 있었다. (1) 유다 산지에 있었던 기브아(수 15:57), (2)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던 기브아(수 24:33), (3) 기럇여아림 언덕에 위치한 기브아(삼하 6:3, 4, 삼상 7:1, 2), 그리고 (4) 가장 많이 언급된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를 가리킨다(삿 19:14, 20:4, 10, 삼상 13:2, 15, 14:16). 한편 ‘이대’는 삼하 23:29에서는 ‘잇대’로 기록되어 있다.

비라돈 사람 브나야. 에브라임 지파의 땅인 비라돈은 오늘날의 나블루스(Nablus) 남서쪽에 위치한 페라타(Ferata) 마을이다(삿 12:13). 삼하 23:30 주석 참조.

 

11:32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후래. 가아스 시냇가는 에브라임 산지의 한 지류인 가아스 산의 시냇가다(수 24:30). 그러므로 후래는 에브라임 지파 출신임에 틀림없다(Keil). 한편, ‘후래’는 삼하 23:30에서는 ‘힛대’로 기록되었다. 아마도 이는 필사자의 착오에 의한 오기(誤記)인 듯하다.

아르바 사람 아비엘. 아르바는 유다 지파의 지경(地境)에 위치한 아라바 광야를 가리킨다(수 18:22, 15:61). 한편 아비엘은 삼하 23:31에서 아비알본으로 기록되어 있다.

 

11:33 바하룸 사람 아스마웻. ‘바하룸’은 ‘바후림’을 가리킴이 분명하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예루살렘 동북쪽으로 6 km 지점이다. 다윗은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가다가 이곳에서 시므이로부터 혹독한 저주를 받은 적이 있다(삼하 16:5). 삼하 23:31 주석 참조.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 사알본은 단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인 사알빔인 것으로 추정된다(삿 1:35). 삼하 23:32 주석 참조.

 

11:34 기손 사람 하셈의 아들들. 기손은 아직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곳이다. 혹자는 이곳이 이방인의 지역이라고 주장하나(Dalglish) 분명치 않다.

하랄 사람 사게의 아들 요나단. 삼하 23:32에서는 ‘야센의 아들 요나단’으로 소개되었다. 한편 하랄 역시 아직까지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곳이다.

 

11:35 하랄 사람 사갈의 아들 아히암. ‘사갈’이 삼하 23:33에서는 ‘사랄’로 표기되어 있다.

울의 아들 엘리발. 아마도 이는 삼하 23:34에 나오는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일 것이다(Curtis, Lange).

 

11:36 므게랏 사람 헤벨. 므게랏의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헤벨과 관련해서는 삼하 23:34 주석을 참조하라.

블론 사람 아히야. 추정컨대 그는 삼하 23:34에 나오는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동일 인물인 듯하다(Payne, Lange).

 

11:37 갈멜 사람 헤스로. ‘헤스로’는 삼하 23:35에서 ‘헤스래’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는 모음상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한 이름이다. 한편, 갈멜은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수 15:55) 헤브론 남쪽 약 10 km 지점이다.

에스배의 아들 나아래. 삼하 23:35에서는 아랍 사람 바아래로 소개되었다. 아랍은 헤브론 부근에 위치한 유다의 산악 지대이다(수 15:52).

 

11:38 나단의 아우 요엘. 삼하 23:36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아우’는 ‘아들’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Lange, LXX, Payne). 왜냐하면 거기서 ‘요엘’은 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갈’은 아마도 필사자의 착오에 의해 ‘요엘’로 표기되었을 것이다. 한편, 소바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 동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다(삼하 8:3). 이로써 우리는 요엘이 다윗 왕의 이방 정복 사업 이후, 이방인으로서 30인의 용사로 발탁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하 23:36 주석 참조.

하그리의 아들 밉할. 병행 구절인 삼하 23:36에서는 ‘밉할’이란 이름이 빠져 있다. 그리고 ‘하그리의 아들’은 ‘갓 사람 바니’로 기록되어 있다. 양 구절을 대조해 볼 때 본 절의 기록이 보다 더 정확한 기록인 것으로 추정된다.

 

11:39 암몬 사람 셀렉. 셀렉이란 이름의 뜻은 ‘갈라진 틈’이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나 다윗 왕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다(삼하 23:37).

요압의 무기 잡은 자 베롯 사람 나하래. ‘베롯’은 삼하 23:37의 ‘브에롯’이다. 이곳은 가나안 정복 후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 되었으나 본래는 기브온 족속의 성읍이었다(수 9:17). 때문에 나하래가 기브온 족속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The Interpreter’s Bible). 한편 ‘무기 잡은 자’란 일종의 ‘경호원’ 또는 ‘부관’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10:4 주석을 참조하라.

 

11:40 이델 사람 이라. 이델 사람은 기럇여아림에 거주하던 한 족속이다(2:53). 한편 본 절의 이라는 다윗의 대신(大臣)이었던 ‘야일 사람 이라’(삼하 20:26)와는 다른 사람이다.

 

11:41 헷 사람 우리아. 밧세바의 남편이다(삼하 11:3). 그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다윗 왕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가 어떻게 비극적 죽음을 당하였는지는 삼하 11:14-17을 보라.

알래의 아들 사밧. 본 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병행 기사인 삼하 23장에는 나오지 않는 추가된 부분이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인물 중 대부분은 요단 동편 출신의 용사들이라는 특징을 지닌다(Curtis). 또한 이들은 대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가된 용사들이기도 하다(Keil). 한편 사밧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주셨다’이다.

 

11:42 르우벤 자손의 우두머리 아디나와 그 추종자 삼십 명. 12장에는 시글락에 숨어 있던 다윗에게로 베냐민, 갓, 므낫세 지파의 일부 사람들이 나아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본 절의 아디나와 그의 추종자 30인도 그 때에 다윗에게 나아온 자들인 것으로 보인다(Curtis).

 

11:43 마아가의 아들 하난. 하난이란 이름의 뜻은 ‘자비가 풍성함’이다. 그런데 그는 ‘아셀의 아들 하난’(8:38)과는 구별된다.

 

11:44 아스드랏 사람 웃시야. 아스드랏은 요단 동편 북쪽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바로 므낫세 반 지파의 경내에 있었던 아스다롯이다. 이곳에는 도피성이 있었다(수 21:27). 6:71 주석 참조.

아로엘 사람. 아로엘은 (1) 르우벤 사람의 성읍으로 아르논 골짜기 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던 성읍일 수도 있으며(5:8, 신 4:48, 수 12:2, 13:16, 왕하 10:33). (2) 갓 지파 경내에 있던 길르앗의 한 성읍으로 암몬의 수도 랍바 근처에 위치했던 성읍일 수도 있다(수 13:25, 삼하 24:5). 본 절의 아로엘이 이 중 어느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Lange).

 

11:45 시므리의 아들 여디아엘. 여디아엘은 ‘하나님이 아신 자’란 뜻이다. 그런데 이 자가 12:20에 나오는 ‘여디아엘’과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11:46 마하위 사람. 혹자는 ‘마하위 사람’을 ‘마하나임’ 사람으로 본다(Lange, Bertheau). 마하나임은 길르앗 지방에 위치했던 군사 요충지로 갓 지파의 경내에 있었다(수 13:26, 30, 21:38, 삼하 2:8, 9, 17:24-27).

 

11:47 므소바 사람 야아시엘. ‘므소바 사람’을 ‘소바로부터’라는 뜻의 ‘미소바’와 같은 것으로 볼 경우 야아시엘은 소바 출신 용사가 된다(Bertheau, Barnes). 소바는 다메섹 북쪽, 레바논 산지 동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었다. 38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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