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이 낳은 자. 1, 2절에는 베냐민의 다섯 아들이 소개되었는데 이 가족은 같은 베냐민 지파의 족보인 창 46:21의 기록보다는 민 26:38-40의 기록을 따른 것 같다. 왜냐하면 창세기의 기록에는 10명의 아들들이 소개되어 있는 반면, 민수기의 기록에는 5명의 아들들이 소개되어 있어 숫자상으로 본 절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Keil, Payne). 그러나 이 두 기록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즉, 벨라와 아스벨은 일치하나 나머지 세 명의 이름은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서 아하라는 민수기에 소개된 아히람(민 46:38)과 동일 인물인 것이 분명하나(Lange, Keil, Payne), 노하와 라바는 알 수 없다. 혹자(Keil)는 노하와 라바가 베냐민의 아들이었던 스부밤과 후밤(민 26:39)의 후손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 한편, 민수기의 기록에서 이들 베냐민의 아들들은 베냐민 지파의 각 족속의 조상으로 소개되었다.
게라. 게라란 이름은 5절에도 나온다. 아마도 벨라의 둘째 아들인 게라가 일찍 죽자 일곱 째의 아들에게 다시 그 같은 이름이 주어진 것 같다(Payne).
스부반. 이름의 뜻은 ‘뱀’이다. 그런데 그는 민 26:39에 나오는 스부밤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후람. 민 26:39에 나오는 후밤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후람은 ‘존귀한 자’란 뜻이며 ‘후밤’은 ‘보호받는 자’란 뜻이다.
게바 주민의 우두머리로서, 사로잡혀 마나핫으로 갔으니. 한글 개역 성경의 본 절 번역은 주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번역은 본 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게바에서 살다가 마나핫으로 사로잡혀 간 각 가문의 수령들은 나아만과 아히야, 게라인데, 이 게라가 바로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장본인이다.” 즉 여기서 ‘사로잡혀 … 갔으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라’는 ‘포로로 끌고 가다’라는 뜻이다(겔 39:23). 그리고 그 행동의 주체는 바로 에훗의 아들 중의 한 명인 게라이다. 하지만 7절에 의거할 때 나아만, 아히야 또한 게라의 공동 사역자 내지 보조자였음을 알 수 있으니 공동번역의 번역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번역에서도 사로잡혀 간 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본 절은 에훗의 아들들이 게바 거민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마나핫으로 끌고간 사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는지를 밝혀주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편, 게바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레위인의 성읍으로서(수 18:21, 24, 21:17) 오늘날의 ‘예렐’로 알려져 있다. 6:60 주석 참조. 그리고 마나핫은 유다 지파의 한 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8 km 떨어진 오늘날의 ‘말하’인 것으로 추정된다(Morton). 따라서 게라는 베냐민 경내(境內)의 게바 거민들을 유다 경내로 이주시켰음을 알 수 있는데 그 행동의 저의(底意)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웃사. 다윗 시대의 인물이면서 법궤 운반 도중 죽은 웃사(삼하 6:6, 7)와는 다른 사람이다.
롯. 사론 평지의 남쪽 경계지에 위치한 성읍으로 욥바 남동쪽으로 약 17.6 km 지점이다. 이곳은 신약 시대에 베드로가 중풍병자인 애니아를 고친 룻다와 동일한 곳이다(행 9:32, 33). 또한 이곳은 오노와 더불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720 명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거주한 곳으로(스 2:33, 느 11:35) 오노와는 불과 8 km 떨어져 있었다. 이들 성읍들은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서쪽 경계를 형성하였다.
마을.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노테이하’는 본래 건축물(建築物)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본(本)성에 부속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킨다.
아얄론 거민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들이 가드 주민을 쫓아냈더라. 아얄론은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했던 곳으로 처음에는 단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후에 에브라임 지파가 아모리 사람들로부터 탈취한 성읍이다(수 19:42, 삿 1:35). 이곳은 후에 레위인의 성읍이 되었다(수 21:24). 6:69 주석 참조. 한편, 가드에 대해서는 7:21을 참조하라.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가 공략하다 대패한 도시로(7:21) 견고한 요새지로 알려져 있다(수 11:22). 주민들은 대단히 강성한 자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늘 위협의 대상으로 존재하였다(삼상 17:4). 본문은 그들에게 당한 이스라엘의 울분이(7:22) 브리아와 세마에 의해서 설욕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들은 동족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과감한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여레못. ‘고지’(高地)란 의미이다. 그는 27절에 나오는 여로함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므술람. ‘므술람’은 12절의 ‘미삼’의 변형(變形)일 것이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Payne).
히스기. ‘강하다’란 뜻이다.
헤벨. 헤벨은 12절의 ‘에벨’의 변형인 것 같다(Payne).
브누엘.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이다. 브니엘(창 32:30) 또는 부느엘(왕상 12:25)은 이와 동일한 이름이다.
사삭. 그는 다름아닌 브리아의 아들 사삭이다(14절). 그의 이름은 ‘열심’이란 뜻이다.
아달랴. ‘여호와는 존귀하시다’는 뜻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로서 악명 높았던 자로는 유다 왕 여호람의 왕비 아달랴(왕하 8:26, 27, 11:1)가 있다.
엘리야.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뜻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였던 디셉 사람 엘리야(왕상 17:1)와는 다른 인물이다.
시그리. ‘명성있다’는 뜻이다.
여로함의 아들들이니. 혹자는 ‘여로함’이 14절에 나오는 브리아의 아들 ‘여레못’이라고 주장한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여로함은 ‘그가 자비를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
마아가. 이름의 뜻은 ‘압제’이다. 이 같은 이름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흔히 볼 수 있다(2:48, 7:16, 삼하 3:3, 왕상 15:13, 대하 11:18-21).
압돈. 사삭의 아들 압돈(23절)과는 다른 사람이다.
기스. ‘권능, 활’이란 뜻이다. 그는 사울의 아비 기스(33절)와는 구별된다.
그들은 친족들과 더불어 마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 여기서 ‘친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흐’는 한 피를 받은 형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친척, 또는 같은 지파의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6:39 주석 참조.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앞 절들의 모든 인물들을 가리킨다. 또한 ‘마주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게드’는 ‘바로 앞에’라는 말로서 여이엘(29절)의 가족들이 다른 친척들과 더불어 매우 가까이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기스. 이름의 뜻은 ‘활’이다.
사울.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다(삼상 10:17-24). 그러나 초대 왕의 명분에 비해 그의 족보는 본 장에서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었다. 즉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인 다윗의 족보가 매우 길게 소개된 사실에 비추어 보면(3장) 초대 왕으로서의 그의 족보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러한 사실은 본서 저자가 다윗 왕에게 초점을 맞추어 본서를 기술해 가고 있기 때문에 사울 왕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사울이 구속사(救贖史)의 주요 인물이 되지 못한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자기 임의대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다(삼상 13:9, 13, 14, 22:16-18, 삼하 21:2). 결국 이러한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왕권은 다윗 가문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요나단. 사울 왕의 장자(長子)이자 다윗 왕과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이다(삼상18:1, 19:1-7). 즉 그는 비록 사울의 뒤를 이을 왕자였지만 다윗을 시기하거나 배척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진실한 우정을 보여준 자이다. 이들의 친분은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운 인간 관계의 대표적인 예로서(요 15:13) 오직 진리에 최우선을 두는 참된 교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는 또한 활을 잘 쏘며(삼하 1:22) 죽음을 무릅쓰고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한 용사였다(삼상 13:2, 14:1-14). 그러나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 왕과 두 동생들과 더불어 전사하였다(삼상 31:6).
말기수아와 아비나답. 사울 왕과 요나단과 더불어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사울 왕의 또 다른 아들들이다. 이 중 아비나답은 다른 곳에서 리스위로도 기록되었다(삼상 14:49).
에스바알. 이는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위에 오른 동안 그의 당숙(堂叔) 넬(Ner)에 의해 북(北)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이스보셋이다(삼하 2:8, 9). 한편 에스바알이란 이름이 이스보셋으로 변형된 동기에 대해서는 삼하 2:8 주석을 참조하라.
비돈. 이름의 뜻은 ‘무해하다’이다.
멜렉. ‘왕’이란 뜻이다.
다레아. ‘숙련되다’이란 뜻이다.
아하스. ‘그가 붙들다’란 뜻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 중에는 악명 높은 유다 왕 아하스가 있다(왕하 16:3, 대하 28장).
비느아. ‘터져 나옴’이란 뜻이다.
라바. 이름의 뜻은 ‘안식하다’이다. 그는 9:43에서 ‘르바야’로 나와 있다.
엘르아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다’는 뜻이다.
아스리감. ‘대적에게서 구원하다’란 뜻이다.
보그루. ‘그는 장자이다’는 뜻이다.
이스마엘.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이다.
스아랴. ‘여호와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자’라는 뜻이다.
오바댜. ‘여호와를 섬김’이란 뜻이다.
하난. ‘자비롭다’란 뜻이다.
에섹. ‘억압’이란 의미이다.
울람. ‘강하다’는 뜻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40절에 나오는 그의 행적과 잘 어울린다.
여우스. ‘서두르는 자’라는 뜻이다.
엘리벨렛. ‘구원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아들과 손자가 많아. 기브아의 싸움에서 멸절되다시피한 베냐민 지파(삿 20:47)가 다시 번성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울람의 손자들은 므비보셋(므립바알)의 13대째 후손들이다. 므비보셋은 사울 왕이 전사한 B.C. 1010년에 다섯 살이었는데(삼하 4:4) 그 때로부터 13세대를 계산해 보면(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봄) 바벨론 유수 때인 B.C. 586년 직전까지 내려온다. 따라서 여기에 기록된 인물들은 모두 포로 시대 이전의 인물들이다(Payne, Lange, Keil).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