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역대상 07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7:1 본 장에서 저자는 북쪽의 이스라엘 여섯 지파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 지파들은 B.C. 722년 사마리아의 멸망 때에 앗수르로 끌려갔지만 그 이전에 그 지파들의 일부 사람들은 유다 왕국에 흡수되었다(대하 11:16-17, 30:1-2). 이들은 북 왕국의 종교 정책에 반대하여 유다로 넘어온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당시에 이들 지파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다 왕국으로 편입되었다(대하 34:6). 그리고 이들은 바벨론 포로 당시 유다 지파와 함께 잡혀갔다가 그 기간 동안에 언약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하나님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으며(겔 37:15-23),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에스라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되었다(9:3, 눅 2:36). 이렇게 볼 때 본 장의 족보는 당시 귀환한 에스라의 공동체에 포함된 이들 지파 출신의 사람들을 위하여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Wycliffe Bible Commentary, Payne). 한편 본 장에는 단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족보가 빠져 있다. 아마도 이는 이들 지파들이 이스라엘 최북단에 위치한 지파들로서 우상 숭배를 계속 고집하다가 언약 백성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와 아울러 귀환한 유다 공동체에 있어서 이 지파 사람들의 영향력이 대단히 미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Payne).

잇사갈의 아들들. 잇사갈 지파의 족보는 창 46:13과 민 26:23-25에 기초하였다. 잇사갈은 야곱의 임종시(臨終時)에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라는 예언을 받았다. 이는 그 지파가 비록 우직하여도 튼튼하고 힘이 센 지파가 되리라는 내용의 예언이었다(창 49:14, 15, 삿 5:15).

돌라와 부아와 야숩과 시므론. 창 46:13에서는 ‘부아’가 ‘부와’로, ‘야숩’은 ‘욥’으로 각기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욥은 우리가 잘 아는 욥(욥 1:1)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리고 돌라 역시 이스라엘의 사사(士師)였던 ‘부아의 아들 돌라’(삿 10:1)와는 다른 인물이다. 한편, ‘돌라’는 ‘자주색 천’이라는 의미이며, ‘부와’는 붉은 색 물감을 내는 식물의 이름이다. 그리고 ‘야숩’은 ‘그는 돌아온다’는 뜻이며 ‘시므론’은 ‘감시함’이란 뜻이다.

 

7:2 다윗 때에 이르러는 그 수효가 이만 이천육백 명이었더라. 이 같은 통계는 다윗의 인구 조사 때에 밝혀진 수치인 것이 분명하다(삼하 24:1-9). 그러나 거기에는 전체 인구의 총계만 나와 있을 뿐 각 지파의 소계(小計)는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본서 기자가 ‘이만 이천육백 명’이란 수치를 어떤 기록에 근거하여 밝히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추측컨대 그는 자신이 참조할 수 있었던 ‘다윗 왕의 역대 지략’(27:24) 등과 같은 문헌에 의거하여 그 수치를 밝혔을 것이다.

 

7:3 이스라히야의 아들들은 … 다섯 사람. 비록 이스라히야의 아들들이 ‘다섯’이라고 언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본 절에는 미가엘, 오바댜, 요엘, 잇시야라는 네 사람만 나와 있다. 때문에 혹자는 본 절에서 말하는 ‘다섯 사람’이란 ‘웃시의 아들’을 가리키며 그들은 바로 이스라히야, 미가엘, 오바댜, 요엘, 잇시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의 사실성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대신 본 절의 ‘다섯 사람’은 ‘네 사람’의 오기(誤記)일 수도 있다.

 

7:4 그들과 함께 있는 자는 … 삼만 육천 명이니. 여기서 ‘삼만 육천’이라는 웃시 자손의 숫자는 놀랄 만한 숫자이다. 왜냐하면 이 숫자는 웃시의 부친 돌라 후손의 전체 인구(2절) 보다 많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 숫자를 불합리한 것으로 보거나(Payne) 다윗 시대보다 훨씬 후기에 조사된 숫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Bertheau).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본 절은 이렇게 큰 숫자가 된 이유에 대해 ‘이는 그 처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특별히 언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Keil).

 

7:5 잇사갈의 모든 종족은 … 팔만 칠천 명이었더라. 잇사갈 지파는 모세의 제1차 인구조사 때에는 54,400 명, 제2차 때에는 64,300 명으로 계수되었다(민 1:29, 26:25). 참고로 본 장에 나오는 여섯 지파 중 인구 수가 밝혀져 있는 잇사갈, 베냐민, 아셀 지파의 인구 변동 상황을 간략히 도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제1차 인구조사(민 1, 2장): 잇사갈 지파(54,400), 베냐민 지파(35,400), 아셀 지파(41,500).
2. 제2차 인구조사(민 26장): 잇사갈 지파(64,300), 베냐민 지파(45,600), 아셀 지파(53,400).

3. 대상 7장에 나타난 인구: 잇사갈 지파의 돌라 자손(36,000) / 베냐민 지파의 벨라 자손(22,034), 베겔 자손(20,200), 여디아엘 자손(17,200) / 아셀 지파 일부(26,000).

 

7:6 베냐민의 아들들. 야곱이 이 지파를 향해 ‘물어뜯는 이리’(창 49:27)라고 예언한 것은 이 지파의 호전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사실 그러한 호전성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바, (1) 사사 에훗의 영웅담(삿 3:15-30), (2) 사울의 왕정 수립과 전쟁(삼상 17장 이하), (3) 탁월한 투석가와 활쏘는 자들(대하 14:8, 17:17)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기브아에서 전체 지파에 대항한 사례(삿 20장)는 민족 공동체를 파멸시키려는 매우 독소적인 측면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이러한 베냐민 지파는 왕국 분열 때에 유다 왕국에 속하였으며(왕상 12:21) 포로 귀환 때에도 유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었다. 저자는 이 같은 베냐민 지파의 족보를 8, 9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벨라와 베겔과 여디아엘. 여기에는 베냐민의 아들들이 세 명밖에 나와 있지 않지만 창 46:21에는 열 명의 아들들이, 그리고 민 26:38, 39에는 다섯 명의 아들들이 나와 있다. 아마도 그 중 몇 명은 ‘아들’이 아닌 ‘후손’일 것이다. 한편, 벨라와 베겔은 창세기에 나오지만 여디아엘은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혹자는 여디아엘이 베냐민의 아들 아스벨(창 46:21, 민 26:38)과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Lange, Keil).

 

7:7 벨라의 아들들. 여기에 ‘벨라의 아들들’로 소개되고 있는 인물들은 벨라의 친아들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명단은 벨라의 아들들의 이름을 보여 주는 민 26:40과 본서 8:3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 소개된 인물들은 벨라의 먼 후손들로서 이 명단이 작성되던 당시에 존재했던 다섯 족속의 조상들의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Keil).

 

7:8 아나돗과 알레멧. 베겔의 아홉 아들 중 이 두 아들의 이름은 다른 곳에서 지명으로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6:60). 이 중 아나돗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출생지로 유명하다(렘 1:1). 그리고 알레멧은 일명 알몬(Almon)으로도 불리는 곳이다(수 21:18).

 

7:9 용감한 장사. 이에 해당하는 ‘깃보레 하일’의 문자적 의미는 ‘힘이 강한 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싸움에 능한 전사(戰士)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처럼 베냐민 지파 자손들이 싸움에 능한 자들일 것이라는 점은 이미 야곱이 예언한 바이다. 6절 주석 참조.

 

7:10 에훗. 이 인물은 8장에 기록된 사사 에훗과는 다른 인물이다(8:6). 여기서의 에훗은 여디아엘의 후손이고, 사사 에훗은 베냐민의 넷째 아들 게라의 후손이다(삿3:15).

그나아나. 이름의 뜻은 ‘분열되다’이다. 한편 혹자는 ‘그나아나’가 베냐민 지파에 귀속한 가나안의 한 가족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Bertheau) 확실한 근거는 없다(Keil).

세단. 이름의 뜻은 ‘올리브 나무를 취급하는 사람’이다.

다시스. ‘금빛깔을 띤 보석’이란 뜻이다.

아히사할. ‘새벽의 형제’라는 뜻이다.

 

7:11 없음.

 

7:12 일의 아들은 숩빔과 훕빔이요. 여기서 ‘일’(Ir)은 벨라의 후손 ‘이리’(Iri)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7절). 한편 ‘숩빔’과 ‘훕빔’은 베냐민의 아들들을 소개한 창 46:21에서 ‘뭅빔’과 ‘훕빔’으로, 그리고 민 26:39에서는 ‘스부밤’과 ‘후밤’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 이들은 베냐민의 아들들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다.

아헬. ‘아헬’은 베냐민의 아들 ‘아하라’와 동일 인물이다(8:1). 그는 창 46:21에서는 ‘에히’, 민 26:38에서는 ‘아히람’으로 각기 기록되었다.

후심. 이 이름은 창 46:23에서 단(Dan)의 유일한 아들의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단의 아들 후심은 민 26:42에서 수함으로 소개된 자로 수함 족속의 조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에서의 후심은 아헬의 아들이므로 단의 아들 후심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 이밖에도 성경에는 또 다른 후심이 나오는데 곧 베냐민 지파 사람 사하라임의 아내 후심이다(8:8, 11). 한편, 본서 저자는 단 지파의 족보에 대해 본 장에서 단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방의 우상을 숭배함으로 일찍이 신앙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이다(Lange, Wycliffe Bible Commentary).

 

7:13 납달리의 아들들. 야곱은 이 지파를 두고 ‘놓인 암사슴’(창 49:21)이라고 예언하였다. 구약 성경에는 납달리 지파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이는 납달리 지파가 자유로운 암사슴처럼 제 멋대로 움직여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본서 기자가 이 지파에 관한 족보를 유달리 간략히 취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지파 중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다윗 왕국을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이 드물었던 것이다.

야시엘과 구니와 예셀과 살룸. 이 명단은 창 46:24, 민 26:48, 49의 기록과 일치한다.

빌하. 야곱의 첩이었던 빌하는 본래 라헬의 여종이었다. 그녀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곧 단과 납달리이다(창 30:3-8).

 

7:14 므낫세의 아들들. 본 족보는 5:23, 24에서 언급한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자손들, 즉 요단 서편에 위치한 므낫세 반 지파의 족보이다.

아스리엘. 여기서 아스리엘은 므낫세의 아들인 듯 표현되었으나 서편 므낫세 반 지파의 족보인 민 26:31에 의하면, 실상 그는 므낫세의 아들이 아니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손자였음을 알 수 있다.

길르앗의 아버지 마길. 므낫세의 장자(長子)로 보여지는 마길은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창 50:23).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므낫세 지파에서 주도권을 잡았었다(2:21-23, 민 32:39, 40, 삿 5:14).

 

7:15 훕빔과 숩빔의 누이 마아가. 훕빔과 숩빔은 베냐민의 자손들이다(창 46:21, 민 26:39). 12절 주석 참조. 한편, 혹자는 마아가(Maachah)가 갈릴리 바다 동편에 위치한 아람 소국의 이름이기 때문에(신 3:14) 이는 마길의 아내 마아가가 그곳 출신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앞의 ‘훕빔과 숩빔의 누이’라는 수식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므낫세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슬로브핫이니. 여기서 므낫세의 둘째 아들로 소개된 슬로브핫은 실상은 마길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이다(민 26:33). 그런데 여기서 왜 그가 므낫세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한편, 슬로브핫은 상속자를 두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가 남긴 다섯 명의 딸들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계속 남기기 위하여 자기들에게 상속권(相續權)을 허락해 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하였었다(민 27:1-4, 7-11, 36:5-9).

 

7:16 베레스. 히브리어 성경에서 유다의 아들 ‘베레스’와 다른 철자인 ‘베레스’이다.

세레스. 이름의 뜻은 ‘현명한’이다.

 

7:17 울람의 아들들은 브단이니. 여기 ‘브단’은 ‘베단’으로 번역될 수도 있으나, ‘사사 베단’(삼상 12:11)과는 다른 인물이다. 삼상 12:11 주석 참조.

 

7:18 함몰레겟. 이름의 뜻은 ‘여왕’인데 그녀는 길르앗의 누이이다.

이스홋. ‘광채의 사람’이란 뜻이다.

아비에셀. 이름의 뜻은 ‘도우시는 아버지’이다. 함몰레겟의 아들인 그는 아비에셀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수 17:2). 한편 민 26:30에 기록된 이에셀(Jeezer)은 길르앗의 자손으로 아비에셀(Abiezer)과는 다른 인물이다.

 

7:19 스미다. 그는 길르앗의 아들로서 스미다 가족의 조상이 된 자이다(민 26:32). 한편, 스미다의 네 아들들은 본 절 이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중 세겜은 길르앗의 또 다른 아들인 아스리엘에게서 태어난 세겜과는 다른 인물이다(민 26:31).

 

7:20 에브라임의 아들.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창 41:51, 52)은 이스라엘의 주도권을 장악한 에브라임 지파의 조상이다(창 48:19). 이 에브라임 지파는 다윗 왕과 솔로몬의 왕권에 도전하기도 하였으나(삼하 2:9, 왕상 11:26) 종교적 측면에 있어서는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영향권(影響圈) 내에 있었다(대하 30:1, 31:1, 34:6).

수델라. 이름의 뜻은 ‘찢는 소리’이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한 족속인 수델라 족속의 족장이다(민 26:35). 한편 본 절에는 수델라의 아들이 베렛으로 기록되었으나 민 26:36에는 에란으로 기록되어 있다.

 

7:21 가드 원주민. 가드는 블레셋의 유명한 다섯 성읍 중 하나로서 이곳에는 키가 장대한 아낙 족속이 살고 있었다(수 11:22). 그런데 블레셋 족속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가나안 남서쪽인 이곳을 장악했었다(수 13:3). 따라서 가드 원주민은 블레셋에 속한 아낙 족속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은 바로 이곳 가드 출신이었다(삼상 17:4).

이는 그들이 내려가서 … 빼앗고자 하였음이라. 여기서 ‘빼앗고자 하였음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카흐’는 단순히 ‘도둑질하다’는 뜻이 아니고 ‘강탈하다’는 뜻으로 전쟁의 행위을 암시해 주는 용어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러한 전쟁 행위가 출애굽 이전, 곧 이들이 애굽에 있을 때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Ewald, Payne).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약하니 사실성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Keil & Delitzsch, Vol. III, p.139). 한편, 본 절의 주어는 사실상 애매 모호하다. 즉, 본 절의 주어가 동사의 접미어 형태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어를 에셀과 엘르앗으로 취할 수도 있으며 반면에 가드 윈주민으로 취할 수도 있다. 더욱이 ‘가드 사람의 짐승’이란 말은 의역(意譯)된 말로서 원문에는 ‘그들의 짐승’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가드 사람이 주어가 되어야 하는 약간의 당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려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라드’가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가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드 원주민이 고지대인 가드에서부터 저지대인 에브라임인들의 거주지로 내려가 전쟁을 일으키고 에셀과 엘르앗을 죽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Lange, Payne). 그러나 이와 달리 혹자는 여기에서 주어를 에셀과 엘르앗으로 보고 그들이 가나안 정복 이후 에브라임 산지에서 가드로 내려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한다(Keil, Bertheau). 이 같은 상반된 주장은 어디까지나 원문의 애매 모호함 때문에 생긴 것이니 우리는 어느 한 견해만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

 

7:22 그의 아버지 에브라임이 여러 날 슬퍼하므로. 본 사건을 가나안 정복 이후의 사건으로 보는 학자들 가운데에는 본 절의 에브라임을 (1) 에브라임 전체 지파를 상징하는 말로 이해하거나(Bertheau) (2) 에브라임과 이름이 똑같은 그의 후손으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다(Keil). 그러나 전후 문맥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납득하기 곤란하다. (3) 따라서 우리는 에브라임을 액면 그대로의 에브라임으로 보아야 한다(Lange).

형제가 가서 위로하였더라. 부모가 자식을 잃는 것은 감당키 힘든 시련 중의 하나이다. 에브라임이 그러한 처지에 빠져 슬퍼할 때 그 형제가 위로하였는데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사랑을 보여준다. 성도의 참된 우애는 기쁨과 고통을 서로 나누며 동참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모이기에 힘쓰고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할 것이다(행 15:31, 32, 엡 4:13, 히 10:25).

 

7:23 브리아. 에브라임의 새로운 아들의 이름인 ‘브리아’는 ‘재앙’을 의미하는 ‘루아’에서 파생된 이름이다(Davidson). 즉 에브라임은 새로운 아들의 이름을 그같이 명명함으로써 에셀과 엘르앗을 잃은 데 대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였다.

 

7:24 세에라. 이름의 뜻은 ‘혈연 관계’이다.

아래 윗 성 벧호론. 이곳은 그핫 자손의 성읍이 있던 곳이며(6:68)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했던 유명한 전쟁터이다. 6:68 주석 참조.

우센세에라. 세에라(Sheerah)는 인명이며, 우센은 본래 ‘귀’를 뜻한다. 따라서 ‘우센세에라’는 ‘세에라의 귀’란 뜻이다. 즉 세에라는 이 성읍을 건축한 후 자신의 이름을 본따 성읍명을 붙인 것이다. 이곳은 분명히 벧호론 근처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Lange).

건설하였더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나’는 건축 활동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7:25 브리아의 아들들. 원문에는 본 절이 ‘그의 아들들’로 되어 있다. 때문에 뒤에 나오는 레바와 레셉이 에브라임의 아들들인지 아니면 브리아의 아들들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브리아의 아들로 보는 데에 있어서 특별한 문제는 없다. 그럴 경우 27절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레바의 8대손이 된다(Payne).

델라. ‘갈라진 틈’이란 뜻이다.

다한. 이름의 뜻은 ‘야영’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민 26:35에서 에브라임의 아들로 소개된 ‘다한’과는 다른 인물이다.

 

7:26 라단. 이름의 뜻은 ‘정돈된’이다.

암미훗. ‘탁월한 백성’이란 뜻이다.

엘리사마. ‘들으심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족장이었다(민 2:18, 7:48).

 

7:27 눈. 성경에서는 눈(Nun)에 대해서 여호수아의 부친이라는 사실 외에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출 33:11, 민 11:28, 13:8, 16, 신 1:38). 그의 이름의 뜻은 ‘물고기’이다.

여호수아. ‘여호와께서 구원하심’이란 뜻이다. 그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을 정복하였다(출 17:8-16, 24:13, 민 14:6-10, 27:18-23, 신 34:9, 수 10:1-12:24). 본서 기자는 에브라임 지파의 족보를 여호수아에게 귀결시킴으로 그의 위치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여호수아가 완고한 백성들을 강력하게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를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켰기 때문이다. 한편 여호수아 군대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성도들과 사탄과의 영적 전투를 예표한다.

 

7:28 토지.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후자’는 ‘소유, 재산’을 의미하는 법률적(法律的) 용어로서 여기서는 특히 에브라임 지파에게 상속된 땅을 의미한다. 한편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이었다(창 17:8, 48:4). 따라서 이 땅을 다른 사람이 임대하였거나 혹은 여호와께 봉납하였을지라도 희년(禧年)에는 반드시 주인에게 반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레 25:10, 13, 28, 27:24).

벧엘.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20 km 지점인 오늘날의 ‘베이틴’ 마을이다. 이 성읍은 팔레스타인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상에 위치하였으며 아브라함과 야곱이 하나님을 경배한 유서깊은 성읍이다(창 12:8, 28:19). 그러나 이곳은 후에 우상 숭배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다(왕상 12:28-33).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다.

그 주변 마을이요. 이는 곧 벧엘에 속한 인근 부락들을 의미한다(Lange).

나아란. 일명 나아라(Naarah)라고도 불렸던 성읍이다. 이는 가나안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요단 근처 기름진 평야 지대에 위치한 성읍이었다. 여리고 북쪽 근방에 있었던 이 성읍은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해 있었다(수 16:7).

게셀. 예루살렘과 욥바 중간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에는 그핫 자손에게 할당된 레위인의 성읍이 있었다(6:67, 수 21:21). 6:67 주석 참조. 한편, 다윗 왕은 블레셋과의 전투 때에 블레셋 병사들을 이곳 게셀까지 몰아내었다(삼하 5:25).

세겜. 레위인의 성읍이 있었던 곳으로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64 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6:67 주석 참조.

 

7:29 벧스안. 길보아 산 근처에 위치했는데 일명 벧산이라고도 불렸다(삼상 31:10). 이 지명은 ‘안락의 집’이란 뜻이다. 이곳은 한 때 블레셋인들에게 점령당하였는데 정확한 위치는 요단 강 서쪽 약 6.5 km, 갈릴리 바다 남쪽 약 19 km 지점이다. 삼상 31:10 주석 참조.

다아낙. 레위인의 성읍이 있었던 곳으로(수 21:25) 므깃도와 에스드렐론 평원이 바라다 보이는 예닌 근처에 위치하였다.

므깃도. 다아낙 북쪽에 위치했는데 동쪽으로는 길보아 산, 북쪽으로는 에스드렐론 평원이 굽어다 보이는 곳이었다. 이곳은 천혜(天惠)의 전략적 요충지기도 하다(수 12:21, 17:11, 왕상 9:15-19, 계 16:16).

돌. 갈멜 산 남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성읍이다. 이 성읍은 ‘에트-탄투라’라는 오늘날의 작은 항구 도시에 해당하는 곳이다(수 12:23, 17:11, 삿 1:27).

 

7:30 아셀의 아들들. 본 절에서부터 마지막 40절까지에는 아셀 지파의 족보가 나온다. 이는 창 46:17과 민 26:44-47의 족보에 따른 것이다. 한편 아셀 지파는 기름진 땅을 차지하리라는 축복을 받았는데(창 49:20) 실제로 그들이 차지한 지중해 해변의 땅은 기름지고 소산(所産)이 풍부하였다(수 19:24-31).

임나. 세 족보에서 모두 맏아들로 기록되었는데 그는 임나 가족의 조상이다(민 26:44).

이스와. 이름의 뜻은 ‘그가 평평하게 할 것이다’이다.

이스위. 이스위 가족의 조상으로서(민 26:44) 이름의 뜻은 ‘평평한’이다. 추측컨대 그는 ‘이스와’와 쌍둥이였던 것 같다.

브리아. 브리아 가족의 조상이다(민 26:44).

 

7:31 헤벨. 헤벨 가족의 조상이다(민 26:45). 그의 이름은 ‘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기엘. 말기엘 가족의 조상이다(민 26:45).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왕’(하나님이 지정하신 왕)이란 뜻이다.

 

7:32 야블렛. ‘그가 구출하실 것이다’라는 뜻이다.

호담. 이름의 뜻은 ‘결정’이다. 혹자는 호담(Hotham)을 35절에 나오는 헬렘(Helem)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

 

7:33 바삭. ‘나누는 사람’이란 뜻이다.

빔할. ‘할례의 아들’이란 뜻이다.

 

7:34 아히. ‘형제’라는 뜻이다. 그는 갓 자손, 구니의 손자인 아히(Ahi)와는 다른 사람이다(5:15).

 

7:35 소바. ‘항아리’라는 뜻이다.

 

7:36 없음.

 

7:37 이드란. 혹자는 ‘이드란’을 다음 구절에 나오는 ‘예델’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 이름의 뜻은 ‘돌출’이다.

 

7:38 아라. 이드란의 경우처럼 아라(Ara) 역시 다음 구절에 나오는 울라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나 확실치 않다(Payne). 더욱이 이 경우는 이드란의 경우와는 달리 철자상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확정짓기가 보다 어렵다.

 

7:39 한니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이다. 그는 므낫세 지파의 대표였던 한니엘(민 34:23)과는 다른 사람이다.

 

7:40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하면 이만 육천 명이었더라. 이 통계는 아셀 전(全) 지파의 군사 인구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아셀 지파 내에서 가장 탁월했던 헤벨 족속의 군사 인구를 나타내는 것 같다(Keil, Lange). 왜냐하면 이 숫자는 전(全) 지파의 인구수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셀 지파는 모세의 제1차 인구 조사에서는 41,500 명(민 1:41), 제2차 인구 조사에서는 53,400 명으로 계수되었다(민 26:47).

Articles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