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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느부갓네살’이란 이름은 바벨론의 신 ‘느보’(Nebo)의 이름과 결합된 것으로서 ‘느보여 나의 지계석(地界石)을 지켜주소서’라는 뜻이다(A. van Selms). 한편 여기서 바벨론의 연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B.C. 609년경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은 서진(西進) 정책을 세우고 메소포타미아 북부 성읍 하란(Haran)을 공격하였는데 애굽의 바로 느고가 이 지역을 막고 있어서 하란을 탈취하지 못하고 서쪽 영토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 B.C. 605년경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과 애굽의 느고가 유프라테스의 갈그미스에서 전투를 했다. 이때 애굽의 느고가 참패하여 물러나고 느부갓네살은 자기 부친 나보폴라살이 원했던 아람과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차지하고 계속해서 유다의 여호야김과 주변의 다른 왕들을 위협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단 1:1-7)도 바로 이때인데 이것이 곧 바벨론의 제1차 유다 침입이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블레셋 땅 아스글론을 차지한 것(렘 47:5-7)은 그로부터 한 해 뒤인 B.C. 604년경의 일이다(A. Malamat). 그리고 B.C. 602년경 느부갓네살은 애굽 쪽으로 이동하여 그 경계 지역에서 느고와 다시 격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두 나라는 크게 손실을 보았고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 배반하였더니. 바벨론의 1차 침입(B.C. 605)을 당한 이래 여호야김은 삼 년 동안 느부갓네살을 섬겼다. 그러나 602년경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돌아가자 여호야김은 주권 회복의 호기(好機)로 생각하고 반(反) 바벨론 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연합군을 편성, 유다를 징치하였는데 그것은 곧 2절에 나온다(H. Austel).

 

24:2 본 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야김이 처음 바벨론을 배반했을 때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부대를 유다에 보내어 반란을 평정하려고 했다(렘 35:11).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탓에 갈대아 연합군의 침입을 당한 것은 유다 멸망의 전조(前兆)였다. 그런데 유다가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리라는 사실은 이미 이사야, 미가, 하박국, 예레미야, 스바냐, 훌다 등과 같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바이다(20:16-18, 22:16, 17, 렘 21:8-10, 미 4:9, 10, 합 1:5-11, 습 1:1-18). 그래서 본서 기자는 그 같은 예언에 의거, 당시의 정황을 하나님의 심판의 도래(到來)로 설명하고 있다.

갈대아의 부대와 … 암몬 자손의 부대. 갈대아는 본래 남부 바벨론에 있는 한 지방의 이름이다. 그런데 후에 이는 신바벨론을 다스렸던 왕국을 통칭(通稱)하게 되었다. 한편 여기서 ‘부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두딤’은 조직화된 군대가 아니라 기습했다가 달아나는 유격대들을 가리킨다. 당시 아람이나 모압, 암몬은 유다보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유다와 정면 대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당시까지는 큰 군대를 유다에 보낼 만한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인들로 구성되 유격대를 파견, 유다를 괴롭혔던 것이다. 한편 바벨론이 다시 팔레스타인에 전면적인 공격을 시도한 것은 여호야김이 죽은 지 1년이 지난 후인 B.C. 597년 3월로서 그 때는 여호야김의 18살 난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있던 때이다(5-17절). 바로 이것이 바벨론의 제2차 유다 침입인데 마지막 제 3차 침입에서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사건은 다음 25장에 기록되어 있다.

 

24:3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여기서 ‘물리치고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하시르’는 ‘돌아서다, 옮기다, 제거하다’라는 뜻의 동사 ‘수르’의 히필형(Hiphil: 사역형 능동) 부정사이다. 따라서 이 단어에는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버리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표명되어 있다(17:23, 23:27).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바로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었다(21:1-15, 23:26, 27).

 

24:4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이에 대해서는 21:16 주석을 참조 하라. 여기서 므낫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는 것은 몰록(Moloch)에게 드린 희생제사(21:6), 계속된 의로운 자에 대한 박해(21:16), 선지자 이사야 살해 등을 가리킨다(PulpitCommentary).

그의 피가 …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성경은 피흘림에 대하여 매우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창 4:10에서는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했고, 창 9:5에서는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의로운 자의 신원(伸寃)과 피흘림에 대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보수하신다는 것이 곧 성경의 가르침이다(사 61:1, 2, 렘 22:16, 계 6:10, 11, 18:20, 19:2).

 

24:5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 대하 36:5-8에는 여호야김의 말년에 대하여 보다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거기에 따르면 여호야김은 바벨론으로 잡혀가 그곳에서 마지막 나날들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서(26:23, 36:20-23, 26)와 에스겔서(19:9)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23:35, 37 주석을 참조하라.

 

24:6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역대기 기자는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쇠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잡혀 갔다고 기록할 뿐(대하 36:5-8)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렘 22:19에서는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라는 말은 여호야김이 예루살렘에 있는 묘실에 장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Hobbs). 더욱이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에는 여호야김이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렘 22:19, 36:30).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여호야김은 어떤 식이든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 죽임당한 후 예루살렘 묘실에 장사된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한편 렘 36:30에서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여호야김의 시신이 영구히 그대로 버리워진 채로 방치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얼마 동안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렘 36:30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에 대하여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라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본 절에서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즉위한지 3개월 만에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대신 여호야김의 동생, 즉 그의 삼촌이 왕위에 올랐으니(15, 17절) 실상 여호야긴은 왕위에 올랐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24: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애굽 왕 느고는 두 번에 걸쳐 하란 남쪽에 위치한 갈그미스 지역으로 원정을 했었다. 첫 번째 원정시에는 성공하여 팔레스타인을 장악할 수 있었으나(23:29-34), 두 번째 원정에서는 이미 강력한 제국을 형성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대패(大敗)하여(렘 46:2-12)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졌다. 따라서 애굽 왕 느고는 느부갓네살이 생존한 동안에는 더 이상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원정할 수 없었다.

애굽 강. 이는 애굽을 상징하는 강인 나일 강(the river of Nile)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바란 광야에서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애굽 시내(the brook of Egypt)를 가리킨다. 민 34:5 주석 참조.

 

24:8 여호야긴 … 나이가 십팔 세라. ‘여호야긴’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일명 ‘여고냐’(대상 3:16) 또는 ‘고니야’로도 불렸다(렘 22:24). 한편 본 절과 평행 구절인 대하 36:9에서는 여호야긴이 위(位)에 나아갈 때에 단지 8 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대하 36:9에 필사상의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10’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빠졌다는 것이다.

이 난제를 푸는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여호야긴과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의 공동통치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특정 시기에 왕이 권력의 절정기에 통치하고 있는데도 아들을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 한 나라의 정확한 연대기를 구축하는 데 공동통치를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동통치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중첩되는 해들이 연속적으로 계산되어, 한 나라의 역사가 실제적인 기간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Edwin R. Thiele,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Grand Rapids, MI: Zondervan, 1983], 46, 47).

연대기를 재구성할 때 씰리(Thiele)가 세운 기본적인 전제에 기초하여, 여호야긴의 삶에 있었던 두 가지 별도의 사건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제안을 따른다면, 대하 36:9은 아버지 여호야김의 통치 1년에 여호야긴과 그의 아버지의 공동통치가 시작된 때(B.C. 608년)을 묘사하며, 반면 왕하 24:8은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B.C. 598년 말에 그가 단독통치를 시작한 때를 말한다. 여호야긴의 통치 기간에 대한 묘사(‘석 달’과 ‘석 달 열흘’)는 대략적인 계산과 좀 더 구체적인 계산 방식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본문 와전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보다 더 합리적이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느후스다’라는 이름의 뜻은 ‘동’(銅)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18:4에서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자손의 구리뱀을 가리켜 ‘느후스단’이라 칭한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엘라단’은 여호야김 통치때에 있던 예루살렘 방백들 중의 한사람이다(렘 26:22, 36:12, 25). 한편 렘 22:26과 29:2에 따르면 여호야긴의 모친 느후스다도 11장의 아달랴와 같이 아들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에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24:9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본서 기자는 아주 간략하게 여호야긴이 부친 여호야김과 같이(23:37)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행악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를 가리켜 ‘천하고 깨진 그릇’과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렘 22:28)이라고도 표현했다. 아마도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던 여호야긴의 무익성을 강조한 말인 듯하다.

 

24:10 그 때에. 즉 여호야긴이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를 가리킨다. 대하 36:10에는 ‘그 해에’로 되어 있는데 곧 B.C. 597년 3월이다. 이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제2차 유다 침입을 시도하였다.

그 성을 에워싸니라. 처음에 예루살렘을 에워싼 것은 느부갓네살의 신복(臣僕)들이었고 느부갓네살 왕은 한참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11절). 한편 처음에 여호야긴은 애굽의 지원을 기대하면서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애굽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느부갓네살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도착하자 곧 항복하기로 한 것 같다(12절).

 

24:11 본 절은 느부갓네살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신복들을 뒤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했음을 보여준다

에워쌀 때에. 과거 앗수르 왕 산헤립도 이와 같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했다(18:17-37). 그런데 어떤 성이 이렇게 포위 공격을 당할 때는 제일 먼저 식량과 식수 문제로 인해 곤욕을 치루기 마련이다(6:24-30). 여호야긴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한 이유 중의 하나도 아마 이와 같은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24:12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여호야긴이 이렇게 빨리 항복하기로 결정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 때문이었을 것이다(렘 22:24-30). 아무튼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의 선처를 바라면서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을 모두 데리고 항복하러 나아갔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그의 부친 여호야김에게 했던 대로(대하 36:5-8) 여호야긴에게도 어떠한 혜택도 베풀지 않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들 모두를 포로로 잡아갔다(렘 22:24-30).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여기 제시된 연대는 바벨론 연대기의 통치 연대와 거의 일치한다. 이로 보아 본서 기자는 느부갓네살의 즉위 연대와 바벨론 통치 연대를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Hobbs). 한편 느부갓네살은 B.C. 605년에 즉위했기 때문에 그의 제8년은 B.C. 597년이 된다. 그런데 렘 52:28에는 느부갓네살이 처음으로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 그의 통치 제7년부터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그것은 바벨론 왕의 연대를 바벨론 식으로 계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24:13 예루살렘 성을 몰락시킨 후 바벨론은 맨 먼저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들을 탈취해 갔다. 이방 나라의 침략에는 항상 이와 같은 노략 사건이 뒤따르기 마련이나 여기서는 20:16-19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라는 의미도 있다.

솔로몬이 만든 것 곧 … 금 그릇. 이들 그릇에 대해서는 왕상 7:48-51을 보라.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면서도 성전 기구들과 금 그릇들을 제작하였다. 한편 몽고메리(Montgomery)와 그레이(Gray)는 본 절이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르호보암 당시 이미 애굽 왕 시삭이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아간 사건을 든다(왕상 14:25, 26) 그러나 본 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은 솔로몬 시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 시대에 이웃 나라의 사절단이 가져온 것들이다(20:12, 대하 32:23). 그리고 본 절에서 ‘솔로몬이 만든 것’이란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왕상 24:26에는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는 탈취당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금 그릇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 파괴하였으니. 여기서 ‘파괴하였으니’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카차츠’는 16:17에서 ‘떼어내다’, 18:16에서 ‘벗기다’로 번역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이 단어는 금을 탈취하기 위하여 각종 그릇들에 두텁게 입혀져 있는 금들을 벗겨낸 것을 가리킨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했다고 했지만 25:15이나 렘 27:19-22에 따르면 놋 그릇들과 약간의 금물(金物)들이 시드기야 때까지 남아 있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바벨론이 여호야긴 대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정치적, 경제적 명맥을 당분간이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것(17절)으로 보아 그러한 그릇들을 약간이나마 남겨 두었음이 분명하다(Hobbs).

 

24:14 본 절의 내용과 병행하는 바벨론 왕들의 역대기를 보면 이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방대한 공물(貢物)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공물들 가운데는 본 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지도자와. 여기서 ‘지도자’가 ‘용사 만 명’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단순히 예루살렘의 귀인(貴人)들이나 상류층 남자들이기보다 군대의 두령들인 것으로 추정된다(Hobbs).

모든 용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보레 하하일’의 문자적인 의미는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다. 혹자는 이것을 ‘부유한 자들’로도 해석하나(Bähr, Gray) 이것은 ‘모든 훈련받은 무리’(Hobbs, Ewald)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한편 여기서 ‘만 명’이라는 수치는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 그리고 모든 용사를 합친 수치인 것 같다. 따라서 이는 16절의 용사를 칠천이라는 수치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렘 52:28에 따르면 B.C. 597년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의 숫자는 3,023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본 절의 기록과 모순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이와 같이 수치가 다른 것은 포로들을 구분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Hobbs).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 여기서 ‘장인’(히, 하라쉬)은 ‘돌이나 금속 또는 나무들을 자유 자재로 다루는 모든 기술자들’을 뜻한다(출 28:11, 왕상 7:14, 사 44:12). 그리고 ‘대장장이’(히, 함미쓰게로)는 ‘가두는 사람, 잠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각종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가리킨다(Bähr).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여기서 ‘비천한 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달라트’는 보다 광의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민들을 가리킨다. 즉 이는 단순히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을 가리키기 보다는 힘이 없는 천민들도 포함한다. 한편 렘 38:4, 7, 25, 27, 40:7, 52:7을 참조해 볼 때, 시드기야 치하의 예루살렘에는 방백들과 군대 장관들 그리고 많지 않은 군사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본 절의 내용과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 그것은 수사법상의 차이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즉 본 절은 바벨론의 제2차 침공으로 유다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한 상황을 표현한 반면, 예레미야서는 유다의 행정을 유지하기 위해 남겨진 최소한의 인원을 사실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약간의 과장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당시 상황의 암울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사실 당시 남겨진 백성들은 대다수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로서 더 이상 바벨론에 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수였다.

 

24:15 그가 여호야긴을 …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본 절은 이처럼 여호야긴 및 그의 측근들과 왕궁에서 그를 받들던 요직(要職)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음을 보여준다. 한편 혹자는 본 절과 16절이 14절을 다시 한 번 자세하게 풀어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Montgomery). 그러나 본 절과 16절과 14절은 그 내용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본 절과 16절은 보다 광범위하게 포로들을 분류해서 설명한 것이나 14절은 특별히 군대와 관련있는 사람들에 관해 설명한 것이다. 한편 이 포로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잡혀갔는데 여기서 바벨론은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바벨론의 수도였던 바벨론 성읍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정복 왕들은 포로를 자기 수도로 이끌고 가서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24:16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 느부갓네살은 직접적인 전투를 수행하는 칠천 명의 용사와 성을 부수고 또 성을 세울 때에 필요한 기술자들인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따라서 느부갓네살은 실상 용감하고 싸움에 능한 자들을 다 잡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분명 그렇게 함으로써 바벨론은 유다로 하여금 더 이상 어떠한 군사적인 모반도 꾀하지 못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24:17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요시야의 아들은 모두 네 명으로서 요하난, 여호야김(엘리야김), 맛다니야(시드기야), 여호아하스(살롬)이다(대상 3:15). 이 중에 맛다니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서 여호야긴에게는 ‘아자비’, 즉 삼촌(uncle)이 된다. 한편 느부갓네살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맛다니야는 자신의 마음에 꼭 맞았다고 한다(Hobbs). ‘맛다니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선물’이다. 그리고 고친 이름인 ‘시드기야’의 뜻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이다. 이와 관련 혹자는 맛다니야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 23:5, 6)을 염두에 두고 ‘시드기야’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고 본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여호와가 의로써 유다를 통치하시기를 바라는 의로운 자들의 소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awlinson).

 

24:18 시드기야가 … 십일 년을 다스리니라. 시드기야의 통치 11년은 B.C. 597년부터 B.C. 586년까지이다. 그는 유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로서 예루살렘 함락을 목도한 비극의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시드기야는 여호아하스의 동복(同腹) 형제이다(대상 3:15). 따라서 그 어머니가 같을 수 밖에 없다. 한편 하무달이란 이름의 뜻은 ‘안개의 사촌’인 것으로 추정된다. 3:31 주석을 참조하라.

 

24:19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요시야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다. 그중에서도 시드기야의 악행에 대해서는 대하 36:12-16, 렘 27-39장에 상세히 나와 있으니 참조하라. 그 기록들에 따르면 시드기야는 매우 허약하고, 우유부단하며, 환경에 잘 휩쓸리는 인물이었다.

 

24:20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이는 곧 때가 차면 홀연히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듯(슥 14장) 이제 패역한 유다 백성을 징계할 바벨론의 마지막 3차 침입이 있으리라는 말이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본 절을 다시 말하면,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그 앞에서 쫓아내시기 위하여 진노하셨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레미야의 예언들 속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데(렘 21:1-10, 34:1-3, 37:6-10, 38:17-23)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함으로 인해 온 유다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계속해서 충고했다. 한편 이와 관련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게 된 외적인 동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유다의 반(反) 바벨론 정책을 주장하던 무리들은 시드기야에게 적극적으로 친(親) 애굽 정책을 주장했다. 심지어 이 무리들은 우유부단한 시드기야를 설득시켜 바벨론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고 애굽의 지원을 요청했다(렘 27:1-22). 이때 거짓 선지자들도 이 정책을 지지하는 거짓 예언을 했다(렘 28:2-4).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그를 의지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의 예언을 했다(렘 37:6-8). 이처럼 들을 귀가 없고 볼 눈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바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므로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 일례로 참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버리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라 아람 왕과 싸우다가 전사한 아합 왕을 들 수 있다(대하 18:33, 34). 아무튼 이상의 결과 시드기야는 유다의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왕이 되었다(25:4-7).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벨론에 복종했으면 유다가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자신도 비참한 상황에 처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사는 자들은 신명기적 축복과 저주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신 28: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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