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본 절에 기록된 연대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1) 북(北) 이스라엘의 예후가 28년간 통치하고 죽은 것이 요아스의 제23년에 해당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후의 제7년에 유다의 요아스가 즉위했고 예후는 28년간 통치했으므로 이때는 요아스의 21년이나 22년 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Keil). 그래서 요세푸스는 21년이 옳다고 주장한다. (2) 만일 이것이 옳다면 10절에 요아스의 37년은 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가 17년간 통치한(1절) 기간에 해당될 것이므로 10절의 연대기 문제와 12:1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한편 본 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23년을 고집하는 일부 학자들은 10절에 기록된 요아스의 37년을 39년으로 수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다(Thenius). 그 뿐만 아니라 70인역(Aldina 판)도 이 10절을 3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70인역(LXX)의 39년은 1절의 기록에 따른 일방적인 수정일 뿐 당시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대기 기록 방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Keil, Bähr). 한편 본 절에서 요아스 23년이라고 기록한 것은 필사자의 착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Bähr). 그래서 혹자는 이 구절을 갖고 즉위 연대를 계산하지 않은 연대 계산법을 채용한 불분명한 것이라고 한다(Wycliffe).
13: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아하스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정치를 폈다’(공동번역). 본 장의 내용상으로 볼 때, 그는 금송아지를 숭배하였는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범죄 즉 우상 숭배였다. 그의 부친 예후 역시 바알 숭배를 타파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 죄에서 떠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았다(10:32-33).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여호아하스의 범죄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섬겼던 금송아지를 숭배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죄악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처음으로 범했던 우상 숭배(출 32:1-35)였기 때문에 특별히 죄에 대한 기준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금송아지 숭배는 척결해야 할 최대의 정치적, 종교적 관건이었으나 아무도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였다(왕상 12:26, 33).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항상 본 장과 같은 어두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편 여로보암의 구체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왕상 12:28, 31을 참조하라.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여호아하스의 범죄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섬겼던 금송아지를 숭배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죄악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처음으로 범했던 우상 숭배(출 32:1-35)였기 때문에 특별히 죄에 대한 기준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 금송아지 숭배는 척결해야 할 최대의 정치적, 종교적 관건이었으나 아무도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였다(왕상 12:26, 33).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항상 본 장과 같은 어두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편 여로보암의 구체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왕상 12:28, 31을 참조하라.
13: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아람 왕의 침입에 대한 본서 기자의 이러한 설명은 초기 신명기적 역사 속에서 자주 언급했던 설명과 일맥상통한다(수 7:1, 삿 2:14, 20, 3:8, 10:7).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마다 주변의 강대국이나 이방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심으로 범죄한 백성들에 대해 심판의 진노를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진노는 당신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신 5:1-3, 말 2:5)에 근거했을 뿐만 아니라 오직 여호와만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늘 … 넘기셨더니. 여기서 ‘늘’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언제나 하사엘의 통치 하에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아하스의 통치 전(全) 기간 동안 계속해서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콜 하야밈’으로서 ‘그 날들 동안 내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혹자의 생각처럼 하사엘과 벤하닷의 전(全) 통치기간(Theniu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아하스의 재임 기간 동안 아람의 침략이 계속되었을 나타내는 것이다(22, 25절, Bähr, Keil & Delitzsch). 그리고 암 1:3-5에서는 하사엘과 그의 계승자 벤하닷이 길르앗을 압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본 절의 이 기사가 바로 그 배경이 된다. 따라서 여호아하스의 통치 기간은 아람 왕 하사엘의 말년과 벤하닷의 통치 초기에 속하며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아람으로부터 많은 학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아람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의 침입으로 자국을 방어하기에 바빠 외부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으나 살만에셀 3세의 사후부터는 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시작했다(Wycliffe).
늘 … 넘기셨더니. 여기서 ‘늘’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언제나 하사엘의 통치 하에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아하스의 통치 전(全) 기간 동안 계속해서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콜 하야밈’으로서 ‘그 날들 동안 내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혹자의 생각처럼 하사엘과 벤하닷의 전(全) 통치기간(Theniu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아하스의 재임 기간 동안 아람의 침략이 계속되었을 나타내는 것이다(22, 25절, Bähr, Keil & Delitzsch). 그리고 암 1:3-5에서는 하사엘과 그의 계승자 벤하닷이 길르앗을 압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본 절의 이 기사가 바로 그 배경이 된다. 따라서 여호아하스의 통치 기간은 아람 왕 하사엘의 말년과 벤하닷의 통치 초기에 속하며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아람으로부터 많은 학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아람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의 침입으로 자국을 방어하기에 바빠 외부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으나 살만에셀 3세의 사후부터는 다시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시작했다(Wycliffe).
13:4 여호와께 간구하매. 히브리 원문에는 보다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여호와의 얼굴을 향하여 간구하매’로 되어 있다. 기도의 직접적인 대상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타난다(출 32:11, 삼상 13:12, 왕상 13:6, 렘 26:19, 시 119:58). 그리고 본 절의 ‘간구하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할’은 ‘약하여지다, 앓다’라는 뜻의 동사 ‘할라’의 피엘형(Piel: 강조형 능동)으로서 ‘계속해서 앓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여호와께만 전적으로 계속해서 의지한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여호아하스의 이러한 극한 상황(7절)은 결국 그로 하여금 여호와를 찾게 만들었다(Wycliffe).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출 3:9과 신 26:7에서 이와 똑같은 의미의 병행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본서의 저자가 아람으로부터의 학대를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시절의 고통과 연관시켜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비는 간구하는 자의 과거 행적을 묻지 않음을 본 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출 3:9과 신 26:7에서 이와 똑같은 의미의 병행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본서의 저자가 아람으로부터의 학대를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시절의 고통과 연관시켜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비는 간구하는 자의 과거 행적을 묻지 않음을 본 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3:5 구원자. 여호와께서 여호아하스의 간구를 듣고 보내신 구원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몇 가지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여로보암 2세나 요아스라는 견해. 14:27을 보면 하나님이 여로보암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본 장의 25절에서는 요아스가 벤하닷을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은 여로보암과 요아스를 구원자로 본다(Keil, Rawlinson, Matthew Henry). 그러나 그들과 여호아하스를 구원한 것은 시기상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여호아하스가 구원을 받았다는 본 절의 표현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다. (2) 앗수르의 아닷니라리 3세(Adad-nirari III, B.C. 811-782). 아닷니라리 3세는 여호아하스 치세 때 왕위에 오른 앗수르의 왕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통치 5년, 즉 B.C. 806년에 다메섹을 침공하여 아람의 국력을 약화시켰다. 이때가 바로 여호아하스의 통치 중반기이다(M. Haran, Vetus Testamentum, 1967, p. 267-268). 그래서 아람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그 후에 벤하닷을 세 번 쳐서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던 것이다(25절, 14:25). 그러나 아닷니라리 3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여호와께서 보내신 구원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여호와께서 이방 나라의 왕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비록 본문에 엘리사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당시 이스라엘에서 크게 활약하던 그가 이러한 국난기에 잠자코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Gray, Noth, Hobbs). 그리고 실제적으로 엘리사의 마지막 사역에서 그의 구원자적 예언이 나타났기에(14-19절) 더욱 이를 뒷받침해 준다.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왕상 8:66, 12:16, 슥 12:7) 이는 구원자에 의해 이룩된 평화로운 상태를 암시한 것이다(Bähr). 즉 이것은 이스라엘에 평화가 임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숙어적인 표현이다(수 22:4, 6, 7, 8, 삿 7:8, 삼상 4:10).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왕상 8:66, 12:16, 슥 12:7) 이는 구원자에 의해 이룩된 평화로운 상태를 암시한 것이다(Bähr). 즉 이것은 이스라엘에 평화가 임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숙어적인 표현이다(수 22:4, 6, 7, 8, 삿 7:8, 삼상 4:10).
13:6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이세벨의 제안에 의해 아합이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처음 세웠었다(왕상 16:33). 그러나 예후의 결단력 있는 종교 개혁에 의해서도 가나안 신의 숭배는 이스라엘에서 척결되지 못했다(10:26, 27, Reed, Interpreter’s Dictionary). 한편 ‘아세라 목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아쉐라 아메다’는 ‘세워져 있는 아세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70인역에서는 이것이 ‘작은 숲’이란 뜻의 ‘알소스’로 번역되고 있고, 제임스왕역(KJV)도 이와 같은 의미(grove)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삿 6:25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무에 새겨진 아세라 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13:7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혹자는 본 절을 4절과 5절 사이에 배치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Dath, Rawlinson). 그리고 본 절을 4절의 주석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5, 6절은 후대 사람에 의해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Rawlinson). 그러나 본문을 그렇게 수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본 절 서두와 중반에 나타나는 히브리어 관계 접속사 ‘키’는 6절에 기록된 여호아하스의 범죄에 따른 심판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다. 따라서 2-7절까지의 내용은 ‘범죄→징벌에 따른 고통→간구→구원과 안식→범죄→심판’이라는 사사기의 순환 모형을 연상케 한다. 한편 본 절은 아람 사람의 압제가 최고로 극심한 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Bähr) 북 이스라엘의 완전한 파괴를 서술한 것이다(Keil & Delitzsch, Rawlinson). 그래서 여호아하스의 백성들이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었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한편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었다’라는 말은 타작하는 도구로 죄수를 처형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Rawlinson)이 아니라 ‘굴욕적으로 처절히 짓밟힘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티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파르’는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아니라 ‘땅에서 발에 밟히는 먼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또한 본 절에 언급된 ‘타작 마당’은 ‘내리 밟는 곳, 부수는 곳, 도리깨질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더욱 분명히 증언한다.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일부 주석가들은 이런 표현을 보고 마명 오십 명, 병거 열 대, 보명 만 명 외에는 모두를 살해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 말은 상기(上記)한 숫자대로 군사적인 힘이나 병력을 제한했다는 의미이지 죽였다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Rawlinson). 왜냐하면 정복을 당한 나라의 군사력을 제한하는 것은 로마 뿐 아니라 당시 근동에서 유행하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일부 주석가들은 이런 표현을 보고 마명 오십 명, 병거 열 대, 보명 만 명 외에는 모두를 살해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이 말은 상기(上記)한 숫자대로 군사적인 힘이나 병력을 제한했다는 의미이지 죽였다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Rawlinson). 왜냐하면 정복을 당한 나라의 군사력을 제한하는 것은 로마 뿐 아니라 당시 근동에서 유행하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13:8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업적은. 예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10:34) 본 절의 표현에서도 ‘업적’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서는 바아사(왕상 16:5)와 오므리의 행적(왕상 16:27)에서, 또한 유다 왕들 가운데는 아사(왕상 15:23)와 여호사밧의 행적(왕상 22:45)에서만 이 단어가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 이것의 공통점은 선한 왕이든 악한 왕이든 관계없이 모두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는 것이다.
13:10 요아스의 제삼십칠 년에. 그가 죽기 삼 년 전의 일이다. 왜냐하면 요아스는 남 유다에서 40년을 치리했기 때문이다(12:1). 한편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또한 북 이스라엘에서 십육 년을 다스렸기 때문에 남 왕국과 북 왕국 모두 요아스라는 이름의 왕이 3년간을 다스린 것이다. 그리고 연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절 주석을 참고하라.
13:11 11-13절. 본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후대에 삽입된 것이라고 본다. 즉 (1) 똑같은 내용이 14:15-16에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며, (2) 본장의 구성상 이 부분이 문맥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부분이 본장의 맨 끝에 와야만 다음 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Keil & Delitzsch). 그러나 똑같은 문장이 두 번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해명되지 않고 있다. 한편 루시니아 70인역도 본문과 동일하게 되어 있어서 위에서 주장하는 본문 수정이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Hobbs).
악을 행하여. 예후에 의해 바알 숭배가 근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10:18-28) 아직도 단과 벧엘의 송아지 숭배가 계속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10:29). 그래서 ‘그 안에서 계속적으로 행동하였다’란 의미의 히브리어 ‘바 하라크’를 사용해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고 표현한 것이다.
악을 행하여. 예후에 의해 바알 숭배가 근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10:18-28) 아직도 단과 벧엘의 송아지 숭배가 계속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10:29). 그래서 ‘그 안에서 계속적으로 행동하였다’란 의미의 히브리어 ‘바 하라크’를 사용해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고 표현한 것이다.
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본절에서 엘리사의 이름이 다시 언급된 것은 그가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한(9:1-10) 사건 이후 약 50년 만이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엘리사가 행한 행적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아합이 죽기 전에 이미 성년이었던(왕상 19:19) 엘리사의 나이를 감안해 본다면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즈음에는 적어도 그의 나이가 80세를 넘었을 것이다(Rawlinson).
“엘리사는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그의 주인을 따를 특권을 받지 못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오래 끄는 병이 임하도록 허락하셨다. 인간의 약점과 고통이 있던 긴 시간 동안에도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았고 항상 자기의 주위에서 위로와 평화를 주시는 하늘 사자들을 바라보았다. … 그는 전 생애를 통하여 강한 신앙을 행사하였고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한 지식이 더해감에 따라 그의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신뢰심으로 성숙되었다. 그리하여 죽음이 이를 때에 그의 수고를 마치고 기꺼이 쉴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엘리사는 시편 기자와 함께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시 49:15)고 말할 수 있었다”(선지자와 왕, 263-264).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본절에서 ‘내려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יֵּרֶד 예레드’는 ‘자신의 비천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왕이 자신의 신하인 선지자를 섬기듯 스스로를 낮추는 경우는 없으므로 이 단어를 문자적인 의미로 취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을 방문할 때(3:12), 집으로 내려간다고 할 때(삼하 11:10), 그리고 환자를 방문하러 갈 때(8:29)에도 사용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는 ‘방문한다’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는 왕이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를 방문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왕이 가진 선지자에 대한 존경심과 사려 깊은 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 말은 정확히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했던 말이다(2:12). 그런데 요아스 왕과 선지자가 본절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이렇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스키너(Skinner)는 이 표현이 엘리사가 갖고 있었던 성품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 감화력의 진가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요아스 왕이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외친 것은 ‘지금까지 선지자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지켜주었는데 그가 막상 죽으면 군사도 없는(7절) 현 상태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탄식’이었다고 한다(Bähr, Hobbs). 그러나 요아스 왕이 엘리사의 행적에 관해서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표현을 엘리사에게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아스가 왕위에 16년 밖에 있지 않았으므로(10절) 그가 생생하게 엘리사의 이적을 체험한 것은 자신의 부친 여호아하스 때나 자신의 통치 초기일 것이다. 그러나 요아스가 아람에게 승리하기 시작한 것은 엘리사의 사후이므로 엘리사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자신의 행적을 남긴 시기는 요아스 왕의 통치 초기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여호아하스 때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와 같은 사실은 5절에서 여호와께서 구원자로 누구를 보내셨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한편 엘리사가 병이 든 시기를 예후의 즉위 45년 이후로 보는 견해가 있다(Wycliffe). 이는 예후가 B.C. 841년에 즉위해서 B.C. 814년에 죽었다고 할 때 이 시기는 여호아하스의 말년, 혹은 요아스의 초기에 해당하므로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고대 세계 최고의 무기인 이것의 위력만큼 엘리사의 영적 권위가 당대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요아스의 눈물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즉 광야에 버려진 자의 절망과 공포(창 21:14-16)를 표현한 것이다.
“엘리사는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그의 주인을 따를 특권을 받지 못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오래 끄는 병이 임하도록 허락하셨다. 인간의 약점과 고통이 있던 긴 시간 동안에도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았고 항상 자기의 주위에서 위로와 평화를 주시는 하늘 사자들을 바라보았다. … 그는 전 생애를 통하여 강한 신앙을 행사하였고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인자하심에 대한 지식이 더해감에 따라 그의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신뢰심으로 성숙되었다. 그리하여 죽음이 이를 때에 그의 수고를 마치고 기꺼이 쉴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엘리사는 시편 기자와 함께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시 49:15)고 말할 수 있었다”(선지자와 왕, 263-264).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본절에서 ‘내려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יֵּרֶד 예레드’는 ‘자신의 비천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왕이 자신의 신하인 선지자를 섬기듯 스스로를 낮추는 경우는 없으므로 이 단어를 문자적인 의미로 취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을 방문할 때(3:12), 집으로 내려간다고 할 때(삼하 11:10), 그리고 환자를 방문하러 갈 때(8:29)에도 사용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는 ‘방문한다’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는 왕이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를 방문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왕이 가진 선지자에 대한 존경심과 사려 깊은 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 말은 정확히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했던 말이다(2:12). 그런데 요아스 왕과 선지자가 본절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이렇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스키너(Skinner)는 이 표현이 엘리사가 갖고 있었던 성품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 감화력의 진가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요아스 왕이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외친 것은 ‘지금까지 선지자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지켜주었는데 그가 막상 죽으면 군사도 없는(7절) 현 상태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탄식’이었다고 한다(Bähr, Hobbs). 그러나 요아스 왕이 엘리사의 행적에 관해서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표현을 엘리사에게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아스가 왕위에 16년 밖에 있지 않았으므로(10절) 그가 생생하게 엘리사의 이적을 체험한 것은 자신의 부친 여호아하스 때나 자신의 통치 초기일 것이다. 그러나 요아스가 아람에게 승리하기 시작한 것은 엘리사의 사후이므로 엘리사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자신의 행적을 남긴 시기는 요아스 왕의 통치 초기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여호아하스 때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와 같은 사실은 5절에서 여호와께서 구원자로 누구를 보내셨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한편 엘리사가 병이 든 시기를 예후의 즉위 45년 이후로 보는 견해가 있다(Wycliffe). 이는 예후가 B.C. 841년에 즉위해서 B.C. 814년에 죽었다고 할 때 이 시기는 여호아하스의 말년, 혹은 요아스의 초기에 해당하므로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고대 세계 최고의 무기인 이것의 위력만큼 엘리사의 영적 권위가 당대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요아스의 눈물은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즉 광야에 버려진 자의 절망과 공포(창 21:14-16)를 표현한 것이다.
13:15 15-19절. 엘리사의 임종에 관한 가시를 서술하고 있는 본문 속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행위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릴 때에도 행해졌었다(4:32-37). 그런데 이런 상징적 행위가 고대의 마술적 행위와 유사한 점이 많기는 하지만(G. Fohrer, R. C. Thompson), 엘리사 선지자의 이러한 행위는 주술이나 마술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확고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Hobbs).
활과 하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이 말의 의미는 ‘네 스스로 아람과 전쟁할 무장을 하라’는 의미이다(Bähr). 이는 곧 요아스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요 확신의 방도였다.
활과 하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이 말의 의미는 ‘네 스스로 아람과 전쟁할 무장을 하라’는 의미이다(Bähr). 이는 곧 요아스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요 확신의 방도였다.
13:16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문자적으로는 ‘손을 활 위에 얹으소서’, 혹은 ‘활을 잡아 당기소서’라는 의미이다. 이는 단순히 활을 집어 들라는 뜻이 아니라 활을 쏠 때 보통 취하는 행동, 즉 왼손으로는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활줄을 잡으라는 말이다(Bähr, Rawlinson).
왕의 손 위에 얹고. ‘얹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숨’은 ‘올려놓다’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 나타난 행위는 4:34에서 엘리사가 죽은 수넴 여인의 아이 위에 자신을 몸을 포갰던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손’(히, 야드)은 권능과 의지의 상징(민 11:23, 사 59:1)일 뿐만 아니라 구원(신 5:15)과 인도, 그리고 도우심(스 7:9)의 상징이기 때문에(Geradon)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것은 ‘활 쏘는 힘이 엘리사의 중재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음’을 나타낸다(Keil).
왕의 손 위에 얹고. ‘얹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숨’은 ‘올려놓다’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 나타난 행위는 4:34에서 엘리사가 죽은 수넴 여인의 아이 위에 자신을 몸을 포갰던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손’(히, 야드)은 권능과 의지의 상징(민 11:23, 사 59:1)일 뿐만 아니라 구원(신 5:15)과 인도, 그리고 도우심(스 7:9)의 상징이기 때문에(Geradon)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것은 ‘활 쏘는 힘이 엘리사의 중재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음’을 나타낸다(Keil).
13:17 동쪽. 이스라엘의 동북쪽에 있는, 즉 요단의 동쪽에 있는 아람을 가리킨다(Bähr). 좀 더 정확히 말해서는 길르앗과 바산 쪽에 있는 ‘아벡’을 말한다(Rawlinson). 왜냐하면 아벡은 이스라엘의 평야에 위치한 성읍으로 수넴으로부터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람이 패배해 다시 찾은 지역이기 때문이다(25절).
이는 …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이것은 아람의 압제 하에 있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단순히 구원뿐만 아니라 아람과의 전투에서 얻게 될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아벡은 이스라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위치한 가장 전략적인 성읍 중의 하나이다(Hobbs, 왕상 20:26-30).
이는 …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이것은 아람의 압제 하에 있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구원하실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단순히 구원뿐만 아니라 아람과의 전투에서 얻게 될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아벡은 이스라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위치한 가장 전략적인 성읍 중의 하나이다(Hobbs, 왕상 20:26-30).
13:18 본절에서 열왕기서 기자는 요아스가 아람을 세 번 밖에 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진 신앙의 부족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요아스는 아람을 완전히 진멸하는 데 있어서 여호와를 신뢰하는 믿음과 불타오르는 열심히 부족했던 것이다(Wycliffe). 이러한 신명기적인 관점에서 본절과 본서 전체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와 같이 묘사함으로써 신앙의 중요성을 본문을 통해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땅을 치소서.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명한 이 두 번째 상징적 행위에 관해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한다. (1) 화살로 땅이나 마룻바닥을 치라는 것이었다(Ewald, De Wette, Thenius, Wycliffe, Luther). (2) 창문에서 땅을 향해 활을 쏘라는 것이었다(Keil, Bähr). 그런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크’는 ‘강하게 때리다, 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쏘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인 것처럼 보인다. 한편 요아스가 동쪽 창을 열고 활을 쏜 것이 아람에 대한 선전 포고를 상징한다면, 땅을 친 것은 아람을 쳐서 파할 것에 대한 상징적 행위이다. 그런데 이런 반복된 상징적 행위로 말미암아 요아스는 대단히 큰 위로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삼상 15:27, 왕상 11:30, 사 20:3, 렘 13:1-11, 18:3-4). 한편 본절에서 요아스가 ‘세 번 치고 그친’ 것은 왕이 갖고 있는 믿음의 정도가 그 뿐이라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일반적 개념 속에는 세 번이면 완전하다는 생각이 있었다(출 23:17, 민 22:33).
땅을 치소서.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명한 이 두 번째 상징적 행위에 관해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한다. (1) 화살로 땅이나 마룻바닥을 치라는 것이었다(Ewald, De Wette, Thenius, Wycliffe, Luther). (2) 창문에서 땅을 향해 활을 쏘라는 것이었다(Keil, Bähr). 그런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크’는 ‘강하게 때리다, 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쏘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인 것처럼 보인다. 한편 요아스가 동쪽 창을 열고 활을 쏜 것이 아람에 대한 선전 포고를 상징한다면, 땅을 친 것은 아람을 쳐서 파할 것에 대한 상징적 행위이다. 그런데 이런 반복된 상징적 행위로 말미암아 요아스는 대단히 큰 위로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삼상 15:27, 왕상 11:30, 사 20:3, 렘 13:1-11, 18:3-4). 한편 본절에서 요아스가 ‘세 번 치고 그친’ 것은 왕이 갖고 있는 믿음의 정도가 그 뿐이라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일반적 개념 속에는 세 번이면 완전하다는 생각이 있었다(출 23:17, 민 22:33).
13: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엘리사가 요아스의 행동에 대해 진노한 것은 왕의 결단력과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Skinner).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왕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신앙심의 부족(Keil & Delitzsch)과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축소시킨 데서 기인한 것이다.
13:20 엘리사가 죽어 묻힌 곳이 사마리아 땅임이 분명한 것 같다(Jerome, Ewald).
해가 바뀌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 쇠나’는 ‘1년이 돌아왔다’는 의미로 ‘1년의 시작’을 가리킨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가 비오는 계절이고, 그 나머지 기간에는 비가 오지 않으므로 농사 기간은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이다. 그런데 3월 말 춘분 때면 수확을 거의 다 마치게 되므로 춘분을 ‘해가 돌아온’ 때라고 한다(왕상 20:22). 그리고 수확이 거의 끝날 무렵이면 사막 지방에 사는 유목민의 약탈 행위가 심해지고 전쟁도 흔히 일어난다. 한편 모압의 약탈꾼들은 아람인들이 가끔 이스라엘을 약탈했듯이(5:2) 해마다 봄이 되면 노략질을 하곤 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는 이 시점을 정확이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같은 해’라고 해서 이를 얼버무리고 있다(Bähr).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당시에 모압의 도적 떼들이 자주 이스라엘을 침범했던 것 같다. 즉 당시에 아람의 국력이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를 이용하여 모압이 이스라엘로 그 세력을 넓혀 간 것이다(Hobbs).
해가 바뀌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 쇠나’는 ‘1년이 돌아왔다’는 의미로 ‘1년의 시작’을 가리킨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가 비오는 계절이고, 그 나머지 기간에는 비가 오지 않으므로 농사 기간은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이다. 그런데 3월 말 춘분 때면 수확을 거의 다 마치게 되므로 춘분을 ‘해가 돌아온’ 때라고 한다(왕상 20:22). 그리고 수확이 거의 끝날 무렵이면 사막 지방에 사는 유목민의 약탈 행위가 심해지고 전쟁도 흔히 일어난다. 한편 모압의 약탈꾼들은 아람인들이 가끔 이스라엘을 약탈했듯이(5:2) 해마다 봄이 되면 노략질을 하곤 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벌게이트역(Vulgate)에서는 이 시점을 정확이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같은 해’라고 해서 이를 얼버무리고 있다(Bähr).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당시에 모압의 도적 떼들이 자주 이스라엘을 침범했던 것 같다. 즉 당시에 아람의 국력이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를 이용하여 모압이 이스라엘로 그 세력을 넓혀 간 것이다(Hobbs).
13:21 시체를 … 묘실에 들이던지매. 이것은 사납고 거칠게 시신을 집어던진 것이 아니라 무덤을 열고 시체를 성급하게 취급한 것을 가리킨다(Bähr). 즉 모압의 약탈자들이 쳐들어오자 장례식을 거행할 시간이 없어 시체를 묘실에 황급히 밀어 던진 것이다(Rawlinson). 고대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시체를 관에 넣어 묻지 않고 그냥 아마포와 같은 천으로 싸서 바위를 깎거나 파서 만든 무덤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그 무덤을 바위와 같은 것으로 막아 놓았다(마 27:60, 요 11:38). 그렇게 때문에 열려진 무덤에서 엘리사의 뼈가 시체에 닿을 수 있었다.
엘리사의 뼈에 닿자. 엘리사의 시신이 뼈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이 사건이 발생할 때가 엘리사의 사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렀음을 가리킨다.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이 사건은 본장의 위치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목격자가 장사지내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한다. 즉, 15-19절에 기록된 엘리사의 예언적 행위는 요아스 왕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확신과 용기를 주는 것이었으나, 본절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민족의 소생에 대한 대망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적은 요아스가 아람과 싸워 승리할 것을 말한 엘리사의 예언을 확증시켜 주었다. 이 이적의 목적은 (1) 하나님께서 산 자의 하나님임을 확증하고 (2) 엘리사의 증언 자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받은 은혜를 사모하여 끝까지 따라갔고, 그의 소원은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는 것이었다(2:1-9).
한편 엘리사가 행한 이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요단 강물을 갈라지게 함(2:14), (2) 여리고의 나쁜 물을 고침(2:19-22), (3) 곰 두 마리가 자기를 조롱한 아이들 42명을 죽이게 함(2:23-25), (4)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모압을 징벌할 때에 행군 중 물이 떨어졌는데 물이 많이 날 것을 알려줌(3:4-20), (5) 선지자의 제자가 죽었는데 그 아내로 하여금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많은 기름을 받게 함(4:1-7), (6) 수넴 여자에게 아들을 예언하고 나게 함(4:12-17), (7) 그 아이가 죽었을 때 다시 살림(4:18-37), (8) 독이 있는 국에서 독을 제거함(4:38-41), (9) 보리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로 100명을 먹임(4:42-44), (10) 아람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침(5:1-14), (11) 게하시에게 나병이 나게 함(5:26-27), (12) 깊은 물속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함(6:1-7), (13) 아람 왕이 보낸 많은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함(6:8-18) 등이다.
엘리사의 뼈에 닿자. 엘리사의 시신이 뼈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이 사건이 발생할 때가 엘리사의 사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렀음을 가리킨다.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이 사건은 본장의 위치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목격자가 장사지내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한다. 즉, 15-19절에 기록된 엘리사의 예언적 행위는 요아스 왕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확신과 용기를 주는 것이었으나, 본절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민족의 소생에 대한 대망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적은 요아스가 아람과 싸워 승리할 것을 말한 엘리사의 예언을 확증시켜 주었다. 이 이적의 목적은 (1) 하나님께서 산 자의 하나님임을 확증하고 (2) 엘리사의 증언 자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받은 은혜를 사모하여 끝까지 따라갔고, 그의 소원은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는 것이었다(2:1-9).
한편 엘리사가 행한 이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요단 강물을 갈라지게 함(2:14), (2) 여리고의 나쁜 물을 고침(2:19-22), (3) 곰 두 마리가 자기를 조롱한 아이들 42명을 죽이게 함(2:23-25), (4)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모압을 징벌할 때에 행군 중 물이 떨어졌는데 물이 많이 날 것을 알려줌(3:4-20), (5) 선지자의 제자가 죽었는데 그 아내로 하여금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많은 기름을 받게 함(4:1-7), (6) 수넴 여자에게 아들을 예언하고 나게 함(4:12-17), (7) 그 아이가 죽었을 때 다시 살림(4:18-37), (8) 독이 있는 국에서 독을 제거함(4:38-41), (9) 보리떡 20개와 한 자루의 채소로 100명을 먹임(4:42-44), (10) 아람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침(5:1-14), (11) 게하시에게 나병이 나게 함(5:26-27), (12) 깊은 물속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함(6:1-7), (13) 아람 왕이 보낸 많은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함(6:8-18) 등이다.
13:22 본절은 3절의 주제를 반복한 것으로 사실상 14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여호아하스의 시대를 개괄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여호아하스와 하사엘은 동시대의 사람들이었다. 본서의 기자는 14-19절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요아스 왕에게 준 승리의 예언을 염두에 두고 서술하였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엘리사를 통한 승리의 예언을 기술한 반면 본절에서는 그 예언이 요아스를 통해 성취됨을 기술하여 그 기술의 대상을 바꾼다.
13:23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여기서 열왕기 기자가 족장들과의 언약을 언급한 것은 좀 특이하게 보인다. 특히 지금까지는 계속 다윗과의 언약에 대한 언급만을 해오다가 유독 본절에서 족장들과의 언약을 언급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편 신명기에서는 족장들과의 언약을 자주 언급하고 있으나 전(前)선지서(Former Prophets)에서는 이 언약이 단 한 번 밖에 언급되지 않았다(수 24:3). 그리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핵심은 ‘땅’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의 소유가 이 언약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교했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이 땅에서 이스라엘을 축출하시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언약 때문이며 결코 여호아하스의 선행 때문이 아님을 본서 기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Hobbs).
13:24 하사엘이 죽은 것은 일반적으로 B.C. 806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벤하닷은 앗수르의 아닷니라리 3세(Adad-nirari III, B.C. 811-782)의 공격으로 새로운 난국에 처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하맛(Hamath)의 자키르(Zakir)와 루아스(Luash)와 퀴트족(Kuites)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민족들이 B.C. 8세기 초에 아람의 국력을 더욱 쇠퇴시켰다. 그리고 결국은 아닷니라리가 B.C. 802년과 796년에 두 번 아람을 공격하였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의 요아스가 아람을 공격해서 성공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Malamat). 이것은 북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구원의 천 단계였다.
13:25 요아스가 실제로 아람에게서 몇 번 승리했는지는 본절을 통해서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브라이트(Bright)는 암 1:1-2:6이 요아스가 요단 강 건너편을 획득한 사실에 대한 언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승리는 요단 동쪽인 아벡 전투에서였다는 사실은 브라이트의 논지를 입증해 주는 것 같다(Gichon & Herzog). 따라서 이것은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한 약속에 대한 성취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승세는 그의 아들 여로보암에게까지 계속된다(14:27). 한편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옛 국경을 회복한 최초의 인물인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