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열왕기하 0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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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엘리사가 … 이르되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는 본 절 이하에 나타나는 기사의 주역이 엘리사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서론적으로 도입한 문장이다(Wycliffe).

여인에게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이 여인은 분명히 4장에서 언급되었던 그 수넴 여인이다. 엘리사가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그녀의 남편이 죽고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가정을 이끌어갈 책임이 그녀에게 있게 된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이 기근은 4:38에 언급된 기근과 동일하다(G. Rawlinson, K. W. Bähr).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은 연평균 강우량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덜 와도 쉽게 흉년이 들곤 했다. 그러나 본 절에서의 기근은 단순히 자연적인 재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재난임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근의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에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추정된다(렘 1:16, 민 26:10).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오므리 왕가는 극도로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다. 특히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아합과 이세벨이었다(왕상 16장 이후). 그 후에도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열왕들과 백성들은 우상 숭배와 여호와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에 빠져 있었다.

 

8:2 블레셋 사람들의 땅. 블레셋은 유다의 남서쪽 해안에 있는 평야 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또 강우량도 적절하여 농사 짓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오늘날에도 땅이 기름지기로 유명하다(Aharoni, The Land of the Bible, p. 23).

 

8:3 여인이 … 호소하려 하여. 여기서 여인 은 블레셋 땅에서 돌아와 정당한 법적인 수속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기근을 피해 7년간 고향을 떠나있던 동안 전토(田土)가 아마 다른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러한 일을 호소하기 위해 왕에게 나아간 것은 왕에 의해서 심판이 이루어지던 당시의 사정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삼하 8:15). 한편 본 절의 ‘호소’라는 말은 ‘부르짖다’라는 의미로서 권리 주장을 위한 법적 용어이다.

나아갔더라. 이 말은 히브리어 ‘테체’를 번역한 것으로 이는 ‘튀어 나오다, 전진하다, 분출하다’라는 의미의 ‘야챠’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재산을 회복하기 위해 다급한 심정으로 서둘러 나선 여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8:4 때에 왕이 …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왕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이적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특히 수넴 여인의 가정에 나타난 이적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여인이 왕에게 호소하러 들어왔다. 이것은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 당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하만의 계교를 극적으로 물리치고 디아스포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와 유사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신론(理神論)자들의 말대로 이 세상의 통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당신의 뜻에 따라 간섭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시다(신 29:29). 그런데 본 절에서 왕이 게하시와 대화하는 장면이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5:27절에서 이미 게하시와 그의 자손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사건의 시점이 게하시가 나병에 들지 않았을 때, 그리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준 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Smith, Keil). 그러나 이 사건을 5장 이전의 것으로 돌린 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다(T. R. Hobbs).

큰 일. 이 말은 히브리어 ‘가돌’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더 크다, 크게 되다’를 의미하는 ‘가달’에서 유래한 말로 ‘위대한 일, 놀라운 사건’ 등을 의미한다. 한편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어 행하신 일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욥 5:9, 9:10, 시 71:19, 106:21).

 

8:5 없음.

 

8: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본 절에서는 왕이 여인에게 질문한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아마 여인의 집과 전토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엘리사가 여인의 아들에게 행한 이적까지도 포함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여인이 호소하러 온 시간과 게하시와 왕이 엘리사의 이적에 관해서 이야기한 시간과의 일치는 여인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기적적인 만남을 통해 여인의 호소는 한층 설득력 있는 것으로 왕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설명한지라. 이 말은 히브리어 ‘테사페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친하게 이야기하다, 자세히 말하다’라는 뜻의 ‘사파르’에서 파생한 용어로 ‘사심이나 거짓이 없이 상세히 보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관리를 임명하여. 여기서 ‘관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리스’는 주로 ‘환관’(eunuch)으로 번역되지만 보다 폭넓게는 ‘중요한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면 보디발과 랍사리스(왕하 18:17) 등을 들 수 있는데 전자는 애굽 왕 바로의 친위대장이었고(창 37:36) 후자는 군사적으로 요직에 있는 인물이었다(C. U. Wolf,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2:197-180). 참으로 왕은 여인의 호소를 신중히 여기고 관리 한 사람을 보내서 그녀의 소유뿐만 아니라 부재시의 소출까지도 다 회복하게 해 주었다. 이것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갈취한 경우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선처였다(왕상 2:11-16).

 

8:7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엘리사가 다메섹으로 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6:13-19에서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으려 했던 사건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매우 뜻밖의 일인 듯이 보인다. 한편 카일(Keil)은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다고 본다(왕상 19:15). 즉, 이것은 본래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여호와께 받은 사명이었으나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왕상 19:16)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이 엘리사에게 전달되어 그를 통해 성취된 것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엘리사가 간 곳은 다메섹의 성 안이 아니라 그 성의 근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면 하사엘이 낙타를 타고 그를 맞이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9절). 엘리사가 간 곳을 단순히 다메섹이라고만 기록한 것은 그 지방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K. W. Bähr).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요세푸스는 벤하닷이 병든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가 6장에서 자기의 욕심에 의해(6:8-14) 이스라엘을 침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치심으로 병을 얻었다는 것이다(Antiquities of the Jews. ix 87). 그러나 벤하닷은 아합과 동시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에(왕상 20:1) 노년에 이르러 병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G. Rawlinson).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당시에 엘리사는 아람 땅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나아만에 의한 영향, 즉 나병이 고침을 받은 사실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을 암시해 준다(5:17). 그래서 나아만의 치유 사건을 잘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이 엘리사를 아람 왕에게 소개한 것이다.

 

8:8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요세푸스는 하사엘을 ‘그 집의 충성된 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하사엘의 족보나 궁중에서의 그의 관직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문벌도 없는 하사엘이 왕위를 차지했다’는 앗수르의 비문을 보면 그가 비천한 데서 왕위에까지 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왕이 자신의 병에 판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엘리사에게 하사엘을 보낸 것으로 보아 그는 나아만과 같은 군대 장관이었던듯 하다(K. W. Bähr).

여호와께 물으라. 왕은 나아만이 취했던 방법(5:5), 즉 선물을 가지고 가서 엘리사를 만난 동일한 방법으로 선지자를 맞이하게 하고 자신의 병에 관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묻도록 했다. 그리고 1:2의 아하시야 왕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란 이름을 부각시킴으로써 오직 여호와만이 참하나님이라는 확신과 그에 따른 의식(意識)을 나타내고 있다(Pulpit Commentary).

 

8:9 예물을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엇을 물으려 할 때에는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규례로 되어 있다(삼상 9:7, 왕상 14:3). 이는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지 못한다(출 23:15)는 규례가 오래 전부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람 왕 벤하닷은 일찍이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군대까지 동원했었다(6:13-15). 그러나 이제는 병중에 있으므로 엘리사의 도움을 받고자 사자를 보낸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개종(改宗)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그가 겸손하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하사엘은 자기 왕 벤하닷을 가리켜서 엘리사의 아들이라고 하며 겸손히 도움을 청했다.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이것은 아람 왕과 엘리사 선지자의 관계가 크게 변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관계가 호전되었다기보다는 병에 대한 치유 때문에 벤하닷이 이렇게 겸손해진 듯하다. 한편 하사엘도 벤하닷의 치유를 위하여 자신의 왕을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엘리사에게 존경을 나타냈다(G. Rawlinson). 한편 7절에서 엘리사가 다메섹을 방문한 것과 이러한 우호적 관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6:8-23의 제1차 침입 사건에서 실패한 이후 아람 왕이 엘리사에 대하여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8:10 왕이 반드시 나으리라 하라. 본 절은 히브리 본문상의 해석을 두고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원문에서 히브리어 ‘로’의 성격과 그 위치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해석을 살펴보면 (1) ‘그에게 말하라 당신은 살리라고’(Theodort, Josehpus). 이것은 ‘로’를 부정사(negative)로 보지 않고 대명사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선지자가 하사엘에게 고의로 거짓말을 시킨 경우가 되어 선지자의 권위나 성격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배격된다. (2) ‘당신은 살지 못하리라고 말하라’(Keil). 이 해석은 ‘로’를 그대로 부정사로 본 것이다. 이것은 14절에서 하사엘이 왕에게 “왕이 반드시 살아나시리이다”라고 거짓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하사엘에게 돌릴 수 있고 선지자의 권위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일 것이라는 말은 되지만 왕의 병에 관한 본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히브리어 어법상 부정사(negative)의 위치가 한정동사 앞에 올 수 없기 때문에 이 해석은 문법적인 지지도 얻지 못한다. (3) ‘네가 반드시 살리라’(Gesnius, G. Rawlinson). 이것은 부정사(negative) ‘로’를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부정법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해석에는 ‘당신은 병으로 인해서는 결코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의해서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라는 뜻이 있다(Clericus, Gerlach, Bähr). 이 중 세 번째의 해석이 가장 옳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이 해석은 문법상의 오류를 피할 뿐만 아니라 왕의 병에 관한 본래의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해석은 왕의 병에 대한 대답이 됨과 동시에 하사엘이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예언도 된다.

 

8:11 11~12절. 본문에는 하사엘과 이스라엘 간에 일어날 전쟁의 참상이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엘리사가 이런 예언의 말을 하고 운 것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조국의 앞날에 대하여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고(눅 19:41), 바울도 이스라엘을 보고 운 적이 있다(롬 9:1-3). 또한 “쏘아보다”란 말은 문자적으로 ‘상대의 얼굴에 눈을 고정시켜 부끄러워하기까지 본다’란 의미이다. 즉 이것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바라보는 태도(Thenius)가 아니라 쏘아보는 행위로 인해 ‘상대가 당황하기까지 보는 것’을 말한다(Keil & Delitzsch). 하사엘은 실제로 엘리사가 쏘아볼 정도로 잔악한 사람이었다(10:32-33, 13:3-7, 암 1:3-5). 즉 엘리사의 걱정이 후에 역사적 사건으로 성취되었다.

 

8:12 없음.

 

8:13 개 같은 종. 이스라엘 지방에서 개(히, 켈렙)는 시체나 각종 썩은 고기를 먹으면서 온각 전염병을 옮기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사 66:3, 신 23:18, 삼상 17:43).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시체에 닿기만 해도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레 11:39, 민 19:11, 13, 16) 그 시체를 먹는 개를 부정한 것으로 취급했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켜 표현할 때는, ‘죽은 개’ 또는 ‘개 같은’이란 표현을 사용했다(삼하 9:8, 16:9). 하사엘이 엘리사 앞에서 자신을 ‘개 같은 종’이라 한 것은 베를린 비문에 기록된 대로 ‘문벌도 없는’ 그의 신분에 대한 겸손한 표현임과 동시에 역모할 마음이 누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구약 시대에 부정한 동물로 여겨졌던 이 개는 오늘날 죄악에 빠져 죄를 짓기 위해 이리 저리 찾아 다니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곧 부정한 개를 만지듯 죄에 빠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빌 3:2)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과가 끝나면 세상에서 오염된 손발을 씻는 의식을 행하듯(레 14:8, 삿 19:21, 마15:20, 막 7:2, 3) 우리들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우리의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항상 주님 앞에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겠다(고후 7:1, 히 9:14, 약 4:8, 벧전 1:22, 요일 3:3).

알게 하셨느니라. 이 말은 ‘보여 주다, 인식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라아’에서 온 ‘히르아니’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용어는 주께서 엘리사에게 환상을 통해 예언했음을 암시한다.

 

8:14 하사엘은 선지자가 말한 대로 왕의 쾌유(快癒)를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앨리사의 말을 반밖에 전하지 않았다. 즉 하사엘은 벤하닷이 살 것이라는 사실만 말했을 뿐 그가 죽으리라는 것은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왕위에 오를 계획을 다 꾸며놓고 있던 하사엘의 입장에서 볼 때 왕이 병에서 회복된다면 하사엘의 계획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었다.

 

8:15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이불에 물을 적시면 무거워질 뿐만 아니라 통풍이 안 되기 때문에 얼굴에 덮으면 질식하게 된다. 하사엘은 이와 같이 왕의 죽음을 자연사로 가장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벤하닷을 살해할 목적으로 한 간교한 행위였다(K. W. Bähr). 앗수르의 기록들에는 벤하닷이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으나,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3세(B.C. 859-824)는 ‘하찮은 사람에 불과한 하사엘이 왕위를 찬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David D. Luckenbill, Ancient Record of Assyria and Babylonia, Vol. I, p. 681). 이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1) 하사엘의 음모가 사전에 발각되지 않았다. (2) 다른 사람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도 하사엘의 압력에 의해서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T. R. Hobbs). (3) 하사엘은 분명히 왕족 출신이 아니었다(Wycliffe).

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 사실은 역사적인 고증 자료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즉 흑색 방첨탑(Black Obelisk, 方尖塔)의 비문에는 ‘빈 이드리’(벤하닷) 이후에 다메섹 왕으로 하사엘을 기록하고 있다.

 

8:16 본 절에서는 북(北) 이스라엘 왕과 남(南) 유다 왕의 이름이 동일하기 때문에 편의상 북 이스라엘 왕을 요람으로, 남 유다 왕을 여호람으로 발음하여 표기했다(9:14, 17, 29).

요람 제오년에 …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 본 절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의 연대기가 다른 연대기 자료(왕상 22:42, 왕하 1:17, 3:1)와 상충된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여호사밧과 그의 아들이 함께 섭정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Thiele, Mysterious Numbers, p. 54, 65). 한편 연대기상의 오차가 생긴 것은 이러한 섭정상의 이유로 인해 연대기 기록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8:17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여기서 8년은 그의 부친인 여호사밧의 제23년부터 계산된 햇수이다. 즉 여호람이 여호사밧과 함께 섭정했던 기간부터 계산해서 보면 8년이 된다. 왜냐하면 그가 단독으로 예루살렘을 다스린 것은 6년간이기 때문이다(G. Rawlinson, Keil & Delitzsch).

 

8:18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아합의 딸은 11:1에 언급된 악명 높은 아달랴이다. 대하 21:4에 따르면 여호람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때 모든 동생들을 다 죽였는데, 이 때 아달랴가 그의 아내로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26절에서는 그녀가 오므리의 손녀라고 했다. 아달랴는 바알 숭배 사상과 의식을 유다에 도입하여 남방 유다를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자 원흉(元兇)이었다(Wycliffe, 대하 21:5-7).

 

8:19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언약(삼하 7:12-17, 시 89:27-37, 132:11-12)에 대한 당신의 신실함 때문에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셨다. 하지만 삼하 7:14에서 말한 언약 내용은 모세의 율법에 대해 철저히 순종할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왕상 2:1-4, 9:1-9). 따라서 여호람에게도 그가 행한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이 따랐음은 당연한 것이다. 이에 대한 죄 값으로 15년간이나 유다에게 복종하던 에돔 족속이 여호람이 통치하던 시기에 반란을 일으키고 독립했다(20절, K. W. Bähr).

항상 등불을 주겠다.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그의 가문을 향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의 왕통을 이어가는 남쪽 유다 왕국의 부패함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는 등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의 징벌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유다 왕국의 패역이 극에 달했을 때 그들 속에 가문의 씨를 남기시고 마침내 왕통의 문을 닫으셨다.

 

8:20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때 에돔은 여호사밧이 임명한 섭정 왕(왕상 22:47)을 죽이고 자기들 스스로 왕을 세웠다고 한다(Antiquities of the Jews, ix, p. 30, 97). 한편 3:9에 나오는 에돔 왕은 바로 왕상 22:47에서 유다를 위하여 임명된 ‘대리자’(히, 나차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 절에서 사용된 ‘왕’(히, 멜레크)이란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통치자’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여호람의 죄악에 대한 징계의 의미로서 유다에게 큰 타격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유다의 국력이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8:21 사일로 갔더니. ‘사일’은 유다와 에돔의 경계 지역에 있는 것은 분명하나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밤에 일어나. 요세푸스는 여호람이 밤에 일어나 에돔을 공격하였다고 했으나, 22절에서는 에돔이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난 것으로 나오므로 옳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여호람의 에돔 원정은 실패로 끝나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에돔에 포위당해 그 포위망을 뚫고 나오기도 바빴다(Bähr, Rawlinson). 이것은 확실히 여호람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18절). 한편 본 절은 히브리어 본문 자체의 모호한 표현 때문에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왕이 에돔 및 그 장관들을 침(개역성경, KJV): 만일 이 입장을 취하면, 포위된 여호람과 그의 백성들이 에돔 사람과 그의 병거 장관들을 치고 도망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때 포로된 입장의 여호람이 에돔 사람과 그의 병거 장관들을 쳤다는 표현은 매우 어색하다. (2) 왕과 병거 장관들이 에돔을 침(RSV, Jerusalem Bible): 이 입장은 앞에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라는 말과 조화된다. 또한 여호람이 그의 병거 장관들과 함께 에돔의 포위망을 뚫고 그 다음 백성들이 그 뚫린 에돔의 포위망을 따라 도망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입장은 본 절의 문맥상 무리가 없는 것 같다.

 

8:22 오늘까지. 이 성경 말씀이 처음으로 기록될 당시까지를 가리킨다(왕상 8:8).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립나는 오늘날의 ‘텔 바나트’(Tel Barnat)로 추정되는데, 성경에서는 이곳을 유다 남쪽 지방에 있는 도시로 언급하고 있다(수 15:42). 이곳은 한때 옛 가나안의 수도였지만, 후에는 이스라엘의 도피성들 중의 하나로 사용되었다(수 12:15, 21:13). 또한 립나는 이전에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당한 적이 있으며(수 10:1-5, 29, 30, 32, 39)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유다와 시므온 지파의 7 성읍들 중에서 헤브론 다음가는 성읍으로 알려져 있다(수 21:13, 대상 6:57). 그런데 이 성이 유다를 배반한 것은 아마도 블레셋이 유다를 침공할 때였던 것으로 추측된다(대하 21:16-17). 이곳은 블레셋의 변방과 가까운 지역으로서 어느 정도 블레셋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8:23 23~24절. 역대하에서는 여호람의 행적에 대하여 본 장보다 좀더 상세히 다루고 있다(대하 21:11-19). 그리고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예루살렘에서 장사되긴 했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다(대하 21:20). 한편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는 ‘여호아하스’로 불리기도 했고(대하 21:17) 잘못된 기록에 의해 ‘아사랴’로 칭하기도 했다(대하 22:6).

 

8:24 없음.

 

8:25 요람 제십이년에. 본 절과는 다르게 왕하 9:29에는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상이한 연대의 언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시대에 왕들의 연대는 얼핏 보면 혼동돼 보인다. 외관상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료를 조화시키려 할 때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이스라엘 왕이 통치를 시작한 시점을 말할 때 유다 왕의 통치 기간과 관련하여 주어지며, 그 반대로 주어지기도 한다. (2) 왕의 통치 기간의 길이는 공동통치라는 관습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왕은 자신이 죽기 오래 전에 아들을 공동통치자로 지명할 수 있었다. (3) 즉위년 방식(accession-year)과 비(非)즉위년 방식의 사용으로 어떤 서기관이 어떤 기간에 어떤 방식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1년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즉위년 방식은 왕이 즉위한 해가 왕의 통치 제1년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통치 제1년은 새 해의 첫날에 시작했다. 그러므로 선왕이 죽은 시기에 따라, 즉위년은 길게는 11개월도 될 수 있고 짧게는 며칠이나 몇 주도 될 수 있다. 비(非)즉위년 방식은 왕이 즉위한 해를 통치 제1년으로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주로 비(非)즉위년 방식을 사용한 반면, 유다는 여호람과 요아스 사이의 짧은 기간만 제외하고 즉위년 방식을 사용했다”(참조 Edwin R. Thiele,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Grand Rapids, MI: Zondervan, 1983], 53).

어떤 성경 해석자들은 요람의 제12년과 11년의 차이는 서기관의 실수로 생겼으므로 두 기사를 조화시킬 수 없다고 간단하게 말한다. 그러나 성경 본문의 신빙성을 진지하게 인정하는 다른 해석자들은 이스라엘에서는 비즉위년 방식이 사용되었고(왕하 8:25), 유다에서는 즉위년 방식에 기초되었음(왕하 9:29)을 고려하여 1년의 차이가 생겼다고 말한다. 왕하 8:25과 9:29의 연대계산은 이 두 성경절이 각기 다른 역사기록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 둘 다 정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대 왕들의 연대표는 왕상 11:43의 주석을 참고하라.

 

8: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이 구절과 병행하는 대하 22:2에는 이 때에 그의 나이가 42세라고 하는데 이는 히브리어 자음이 갖고 있는 숫자, 즉 ‘카프’(20)를 ‘멤’(40)으로 잘못 기록한 필사자의 오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Keil & Delitzsch, Winer, Thenius). 그의 아버지 여호람이 40세에 죽었으므로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의 나이는 22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호람의 나이 18세에 아하시야를 막내 아들로 낳았다는 것(대하 21:17)은 당시 동양의 조혼 풍습과 왕들의 축첩(蓄妾)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Keil).

오므리의 손녀. ‘손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트’는 ‘딸’이란 뜻이지만, ‘아들’이란 뜻의 ‘벤’과 마찬가지로 폭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즉 ‘바트’는 ‘딸’뿐만 아니라 ‘손녀’, 그리고 ‘여자 후손’ 등을 의미한다(Davidson). 본 절의 아달랴는 아합의 딸이기 때문에(18절) 오므리의 ‘손녀’로 번역한 것이다.

 

8:27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하시야는 오므리의 아들 아합과 같이 악행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바알을 숭배하였다(왕상 16:31-33).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원문대로 직역하면 ‘그가 아합의 집과 결혼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다. ‘결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탄’은 본인이 직접 결혼한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결혼에 의해서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과 연관되었음을 나타낸다(Hobbs, F. Brown, Driver, C. A. Briggs).

 

8:28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아하시야가 아람과 싸웠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여기 밖에 없기 때문에 그가 요람과 ‘함께 갔다’는 의미에 대해 논란이 많다(T. R. Hobbs). 그래서 혹자는 ‘함께’라는 뜻의 히브리어 전치사 ‘에트’를 제거하거나 주격 부호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K. W. Bähr). 그러면 본 절의 주어가 ‘요람’이 된다. 그리고 아하시야는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고 다만 부상당한 외삼촌 요람을 방문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이스르엘로 갔다(29절)는 말이 된다(K. W. Bähr). 그러나 아하시야가 결혼 관계로 북방 이스라엘과 깊은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의 모친 아달랴의 권고도 그의 원조를 부추겼을 것이다(Hobbs).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하시야가 요람과 함께 간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전치사 ‘에트’는 그대로 ‘함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아하시야의 태도는 아합을 도왔던 여호사밧과 마찬가지(왕상 22:1-36)의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G. Rawlinson).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이 전쟁이 길라앗 라못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는지 아니면 아람에게서 그 지역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는지 분명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아합이 여호사밧과 함께 길르앗 라못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고, 그 때 이후로 그곳은 아람이 장악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9:14에 의하면 이 싸움은 길르앗 라못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카일(Keil)은 이곳이 아람이 사마리아로부터 도망갈 때(7장)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든지, 아니면 전쟁으로 훼손된 이곳을 아람이 버려두었기 때문에 그 때 이스라엘이 이곳을 장악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카일은 이 전쟁이 길르앗 라못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길르앗 라못은 오늘날의 ‘텔라미드’(Tel Ramith)와 동일 지역으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남쪽으로 약 40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Hobbs).

 

8:29 라마. 이곳은 사무엘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인 ‘라마’(삼상 7:15, 17, 25:1)와는 다른 곳이다. 드물기는 했지만 ‘라못 길르앗’(28절)을 ‘라마’라고 부르기도 했다(Cohen,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4:10). 또한 이곳은 ‘높은, 고결한’이란 의미로 ‘길르앗에 있는 라못’의 또 다른 명칭이다.

이스르엘에. 이스르엘은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성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만나는 도시이다. 그리고 이곳은 아합이 간악한 방법으로 빼앗은 나봇의 포도원이 있는 곳이며 여호와를 배반한 악한 왕들이 죽임을 당했던 곳이기도 하다(왕상 21:23, 왕하 9: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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