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열왕기하 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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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본 장 1-7절까지의 기사는 4장과 마찬가지로 연대를 추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이 익명의 선지자의 제자들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기사를 4:38-44절과 연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K. W. Bähr).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이 기사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관해서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카일(Keil)은 많은 주석가들이 이 장소를 2:1에 나오는 길갈이라고 주장(Thenius)하는데 그것은 요단 강 근처의 길갈을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일은 요단 강과 가까운 여리고가 이 기사의 배경이라고 주장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한편 본 절의 ‘좁으니’란 말은 히브리어 ‘차르’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꺾쇠로 죄다, 고통을 겪다’는 뜻의 ‘차라르’에서 온 말이다. 이러한 어원적인 의미로 볼 때 그 장소가 매우 비좁고 불편했던 처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6: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요단 강변에는 숲과 나무들이 울창하여 버드 나무, 포플라 나무, 석류 나무 등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D. Baly, 렘 49:19, 50:44, 슥 11:3).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이 구절은 선지자의 생도들 모두가 사역에 동참하여 협력하면 금방 선지자 학교를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협동 정신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갈 6:10).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이 말은 배움의 장소를 옮기는데 있어서 먼저 스승의 승인이 있어야 했음을 나타낸다. 엘리사는 생도들의 요구가 타당한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승락한다.

 

6:3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벧’은 ‘노예, 신복’으로 번역된다. 이처럼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 앞에서 자신들을 ‘노예’와 같은 뜻의 단어로 표현한 것을 볼 때 선지자의 무리 가운데서 엘리사의 위치와 권위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생도들이 재목을 구하기 위해 요단 강으로 가면서 엘리사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1) 그들은 자신들이 벌목을 하는 중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엘리사가 자기들과 동행함으로써 그들은 안심하고 벌목 작업에 착수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행 20:34). 실제로 그들이 엘리사와 동행했으므로 하나님의 이적으로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다(5-7절). (2) 엘리사가 자기들과 동행함으로써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요청은 매사에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한 사실에서 기인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 즉 성도들은 어떤 일을 착수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 주는 분이심을 믿고(잠 16:1) 그 일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시 56:4). 이것이 곧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길을 지도해 주실 것이다(잠 3:6).

내가 가리라. 생도들의 요청을 간단히 응낙한 엘리사의 대답을 통해 그의 성격을 간파할 수 있다. 즉 그는 말과 행동이 신속하고, 동일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던 면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Pulpit Commentary).

 

6:4 나무를 베더니.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본 절과 5절에서 동일하게 ‘나무를 베다’로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원문상으로는 서로 다르다. 즉 본 절의 ‘나무’는 원어로 ‘에침’으로서 ‘일반적인 나무’를 가리키는 반면, 5절의 ‘나무’는 ‘코라’로서 ‘들보, 서까래’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공동번역과 RSV에서는 이를 ‘나무’와 ‘들보감’(log)으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나무를 찍다 도끼를 물에 빠뜨린 것은 큰 나무를 무리하게 찍다가 생긴 일로 생각된다.

 

6:5 쇠도끼가. 문자적으로는 ‘그 쇠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애굽으로부터 쇠를 제련하고 용구를 만드는 법을 배워 왔기 때문에 일찍이 모세 때부터 쇠로 도끼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신 19:5).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이 외침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Keil & Delitzsch). 그리고 여기서 ‘빌려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울’은 ‘애걸하여 빌리다, 구걸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도끼를 물에 빠뜨린 제자는 가난하여 도끼를 살 수 없어 이웃에게 구걸하다시피 애걸하면서 도끼를 빌려온 것이다(Wycliffe). 한편 율법에 따르면 이웃에게 빌려온 것을 상하게 하거나 잃어버리면 그에 대한 대가로 적절한 배상을 하게 되어 있었다(출 22:14). 그러므로 그 제자의 곤궁에 처한 형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6:6 본 절에 기록된 이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자연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엘리사는 자기 눈으로 물에 있는 도끼날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도끼날 밑에 나무조각을 끼워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Von Gerlach)는 것과, 둘째, 나무가지를 갖고 도끼날 구멍에 끼워 건져냈다는 것이다(Thenius). 그러나 ‘떠오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체프’는 ‘넘쳐흐르다, 덮다, 수영하다’라는 뜻의 동사 ‘추프’의 히필형(Hihpil, 사역형 능동)으로서 쇠도끼를 직접 물 위에 떠오르게 만들었다는 뜻이다(신 11:4). 그래서 선지자의 제자는 떠오른 도끼를 물에서 꺼낼수 있었던 것이다(Keil). 한편 엘리사가 행한 이 이적은 예수가 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꺼낸 이적(마 17:27)이나 오병 이어의 이적(눅 9:12-17)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의 현세적인 필요들을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본 절은 단순하고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 주고 있다(Wycliffe).

 

6:7 없음.

 

6:8 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본 절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정확한 연대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열왕기서 기자가 연대기 순으로 본서를 기록하지 않고 비슷한 주제들 끼리 묶어 기록하기를 좋아했다는 증거가 된다(T. R. Hobbs).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전쟁을 여호람과 벤하닷의 전쟁이라고 한다. 그레이(Gray)는 이기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는 다른 면모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시기인 B.C. 797년에 일어난 것이며 아람 왕 하사엘 때의 전투라고 한다. 그러나 여호람의 통치 시기에도 이스라엘의 정국이 항상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그레이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요세푸스의 주장처럼 본 절을 여호람 왕과 벤하닷의 전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Lange Commentary). 한편 나아만 사건이 있은지(5:5, 6) 얼마되지 않아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이런 조그만 전쟁이 잦았음을 감안해 볼 때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G. Rawlinson). 그리고 본 절에서 언급한 ‘진을 치리라’는 말은 9절의 말씀에 의거해 볼 때 ‘복병을 두리라’(Ewald, Wycliffe)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앉다, 진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하나’에서 파생한 ‘테하노트’이기 때문에 본 번역이 타당한 것으로 이해된다(K. W. Bähr, Keil & Delitzsch).

 

6:9 당시에 여호람 왕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3:2) 엘리사는 민족의 재난을 방관하지 않고 여호람 왕을 도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이와 같이 보임으로 인해 왕이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Pulpit Commentary).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어떤 학자는 아람의 전략에 대한 엘리사의 지식이 스파이 정보에 의존한 것처럼 말하나, 그런 것은 엘리사의 이적을 기록한 저자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특별히 2:19-6:22에 엘리사의 여러 가지 이적을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그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 절의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라는 말은 ‘이곳을 소홀히 하지 마소서’(Keil & Delitzsch, Clericus), 즉 ‘이 곳을 점령당하지 마소서’라고 해석 할 수도 있고 적군이 매복하고 있으니 ‘함부로 다니지 마소서’라고 해석 할 수도 있다(K. W. Bähr, Pulpit Commentary, Thenius, Wycliffe).

 

6:10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아람 군사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을 치고 숨어 있는 곳을 미리 알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경고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아람의 공격은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그 기회를 틈타 오히려 기습을 가하여 아람을 패주(敗走)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있어 왔기 때문에 아람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6:11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여기서 ‘불안하여’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잇사에르’는 ‘용기를 잃다, 태풍으로 바닷물이 출렁이다’(욘 1:11), ‘역경으로 마음이 흔들리다’라는 뜻의 ‘싸아르’에서 파생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몹시 당황하여 안절 부절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엘리사로 인하여 아람 왕이 얼마나 곤혹스러워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급기야는 내부의 간첩을 색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엘리사의 명성을 듣지 못한 아람 왕의 우매함은 패배를 자초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는 엘리사의 선지(先知)를 근동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단순한 점술사의 점괘로 알았을 뿐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6:12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엘리사의 명성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 아람에서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아마 나아만의 나병 치유나 그 밖의 다른 이적적인 사건들이 아람에 전하여졌기 때문일 것이다(G. Rawlinson). 그리고 원문을 보면 ‘선지자’ 앞에 정관사 ‘헤’가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전쟁에서 이상한 연유로 자주 패할 뿐만 아니라 엘리사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특별한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Pulpit Commentary).

 

6:13 그가 도단에 있나이다. 도단은 ‘두 우물’이란 뜻으로 오늘날 ‘텔 도단’(Tell Dothan)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사마리아에서 동북쪽으로 약 18 km정도 떨어진 도단 계곡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Word 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곳은 세겜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창 37:14)으로서 요셉이 자기 형들에 의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렸던 장소이기도 하다(창 37:17). 한편 본 절에서 아람 왕이 도단에 있는 엘리사를 잡으려고 한 것은 바로 자신들의 비밀 계획이 엘리사에 의해서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K. W. Bähr, G. Rawlinson).

 

6:14 많은 군사.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하일 카베드’는 그 의미가 대단히 모호하다. 왜냐하면 18:17에서는 ‘보통 군대의 규모’를 가리키고, 왕상 10:2에서는 ‘많은 수의 수행원’을,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큰 군대’, 혹은 ‘강한 군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후 문맥과 23절의 내용을 살펴보아 ‘일반적인 대규모의 군대’로 이해함이 좋을 것 같다(T. R. Hobbs).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아람 왕은 단지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하여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다 에워살 만큼 많은 군사들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군대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을 힘으로 잡으려는 것은 무력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사 40:17).

 

6: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여기서 ‘사환’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메샤레트’는 ‘예배를 돕는 자’나 ‘수행원’을 가리키는 단어이다(Davidson). 따라서 게하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와 동행한 선지자의 제자들 중의 한 명으로 추측된다(K. W. Bähr). 그러나 본 절에서 그가 게하시가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를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 단어는 엘리사가 보다 어릴 때 엘리야를 수종드는 자로 있을 때 사용되었으며(왕상 19:21), 또한 성전에 있던 어린 사무엘을 가리킬 때도 쓰였던 단어이기도 하다(삼상 2:11).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평지에 있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기가 매우 쉬웠다.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엘리사의 사환은 군사들이 왜 성을 포위하고 있는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크게 놀랐다. 더욱이 그는 믿음의 눈이 열려있지 않아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대하여 지나치게 겁을 먹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인간적인 눈으로 판단하면 낭패를 당하거나 실망하기 쉬우나 하나님 편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두려울 것이 없게 된다(Wycliffe).

 

6:16 본 절의 전(前)반부는 신 20:1-4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 취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즉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언제나 함께 하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난국을 주의 은혜로 타개해 갈 수 있다(시 3:6, 27:3, 대하 32:7). 한편 앞 절(15절)과 본 절에는 두 가지 사실이 뚜렷이 대조되어 있다. (1) 사환의 눈. 사환은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는 아람 군대만 보고 놀랐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한 모든 사람은 인간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함으로써 큰 낭패를 당한다(마 16:21-23). (2) 엘리사의 눈. 엘리사는 아람 군대보다 수효가 더 많은 하늘 군대를 보고 있었으므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당당함, 이는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에 찬 신앙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출 14:1-14).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 그 자체를 보지 말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

 

6:17 눈을 여시매. ‘눈이 열려진다’는 것은 소경이 눈을 뜬다는 의미가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을 영혼이 보는’, 즉 투시의 황홀한 상태가 됨을 말한다(Keil & Delitzsch).

불말과 불병거. 이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창 32:2). 따라서 불말과 불병거가 이 땅에 임재해 있다는 것은 지상의 어떠한 무력이라도 천상(天上)의 군대를 능히 물리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이처럼 엘리사와 같이 주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만이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힘입어 믿음 안에서 더욱 강건해 질 수 있는 것이다(살전 5:17, 벧전 1:4). 더 자세한 내용은 2:11을 참조하라.

 

6: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람 군대는 밑에서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K. W. Bähr). 따라서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로 내려왔다는 표현(Keil & Delitzsch)보다는 엘리사의 일행이 아람 군대에게로 내려왔다고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F. Meyer, G. Rawlinson, K. W. Bähr, Thenius 등).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여기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싼웨림’으로서 ‘맹목, 현혹’(dazzle)이라는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창 19:11에서 사용된 바와 같이 눈 앞이 가리워져 못보게 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나 처지를 전혀 모르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도단에서 약 20 km 정도나 떨어진 곳에 있는 사마리아까지 엘리사를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6:19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곡의 언덕 위에 있는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말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급경사가 굉장히 많고 바람이 많이 불어 매우 험난한 길인데(T. R. Hobbs)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엘리사의 인도대로 이끌려 간 것이다. 한편 혹자는 엘리사의 이러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엘리사의 집이 사마리아에 있었고 ‘너희가 찾는 사람’이 ‘그의 집’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Thenius). 그러나 도단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온 아람 군대(15절)가 이러한 말을 믿었다는 생각은 의심을 품게 만든다. 또한 왜 도단 성에서 아람 군대를 물리치지 않고 사마리아까지 그들을 끌고 갔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도단 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Wycliffe). 그리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영적 눈이 어두워져 사탄이 유혹하는 대로 따라 가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불을 좋아하는 나방이 불만 보고 날아가다가 불에 타죽는 것과도 일반이다.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소경이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사망의 길로 인도했다(마 23:16, 26, 요 9:39-41). 이와 반대로 다윗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삼고 그를 의지했다(시 23:1-6).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의로 다스릴 수 있었다(삼하 8:15).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2, 롬 12:2).

 

6:20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여기서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마리아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이 도단 성을 에워쌌던 처음 상황과는 (14절)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리어 이스라엘 군에게 포로가 되어 있었다. 한편 아람(시리아) 군인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시력을 회복시켜 준 것은 그들의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Keil & Delitzsch). 그래서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매우 관대하게 대했다(22절).

 

6:21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여기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은 어떤 부자간의 관계였기 때문이 아니라 존경과 경의의 표현(13:14)이었다(G. Rawlinson).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그렇게 불렀듯이(2:12) 선지자의 우두머리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볼 수도 있다(K. W. Bähr). 그러나 지금까지 이스라엘 왕 즉, 여호람과 엘리사 선지자와의 관계가 냉담하고 소원(疏遠)했던 것으로 미루어(3:11-14, 5:8) 볼 때 여기에서 사용한 이 호칭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던 특별한 호칭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호칭을 사용한 것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가 행한 일에 탄복하여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 절의 ‘내가 치리이까’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포로에게 행하던 관례 즉, 적군이 포로로 잡히거나 항복해서 잡힌 경우를 막론하고 죽였던 당시의 관례에 따라 죽일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민 31:7, 삼상 15:8, 대상 20:3). 그리고 여호람 왕이 관례대로 포로를 죽이지 않고 엘리사에게 물은 것은 상황이 예외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6:22 치지 마소서 …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엘리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람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유인해 온 것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안겨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참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5:8)이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만일 엘리사가 그들을 전쟁 포로로 간주해 이스라엘 왕에게 넘겨 주었다면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이지 아람 군대와 하늘 군대와의 전쟁은 아닌 것이다(16절). 애초에 아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관대하게 대해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의 권능을 인식케 한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이 엘리사가 보인 모범의 행위처럼 원수를 먹이고 마시게 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해 핑계치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심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롬 12:20, 잠 25:21, 22).

 

6:23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원수를 굴복시키는 데는 칼과 무력보다 더 큰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을 사로잡는 자비와 사랑이다(요일 3:16, 고후 5:14). 그래서 엘리사가 나타낸 이적과 더불어 그가 보여준 사랑으로 인해 끊이지 않고 계속되던 아람의 침입(5:2)이 멈추고 평화가 회복될 수 있었다. 한편 아람 군대가 잠시 동안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침공해 보았자 오히려 자신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K. W. Bähr), 둘째, 아람 군대에 대한 여호람의 호의와 석방에 대한 결과 때문(G. Rawlinson)이다.

 

6:24 이 후에. 이 말은 일반적으로 단순 접속사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앞의 사건과 연속되는 사건을 소개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해 사용된 접속사에 불과하다(삼하 8:1, 10:1, 13:1, 대상 18:1, 19:1). 따라서 본 절 이후는 본 절 앞의 사건과 연관이 있는 연대기적 서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여기서 벤하닷 왕은 아합을 공격했던 바로 그 왕(Benhadad II)이다(8:7, 왕상 20:1). 이것은 요세푸스의 주장에 근거한 것인데 다른 신학자들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K. W. Bähr, T. R. Hobbs, Wycliffe). 따라서 23절 이전의 사건이 있고 난 이후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간 때(K. W. Bähr), 그러니까 엘리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이 후 앞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잊었을 즈음에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G. Rawlinson). 그러나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재차 침입한 것(6:24-7:20)은 앞에 언급된 8-23절의 사건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31절에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즉, 앞 사건에서 아람 군대를 모욕한 것 때문일 것이다.

 

6:25 성중이 크게 주려서. 사마리아 성이 당한 고통은 두 가지였다. 즉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므로 성 내외(內外)의 교통이 두절되어 물자의 반입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또 사마리아에 닥친 기근으로 인해 성 안에서도 먹을 식량이 극히 부족했던 것이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레 11:4에 의하면 나귀는 부정한 동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머리는 다른 모든 부위보다도 먹기에 제일 나쁜 부분이라서 가장 값이 싼 고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나귀의 머리가 은 80세겔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기근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은 1세겔은 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이기 때문에(출 30:24, 삼하 24:24) 은 80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320일, 즉 거의 1년치의 품삯에 해당되는 가치이다.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여기서 비둘기 똥은 히브리어로 ‘히르이요님’으로서 ‘비둘기 똥’이나 여물지 않은 콩과 같이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물 찌꺼기’(Berleb), 혹은 ‘작은 곡식’(Wycliffe)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브’의 정확한 용량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요세푸스는 이것을 ‘제스테’, 즉 라틴어로 6분의 1(sextarius)로 번역했다. 그리고 그의 ‘유대 고대사’ 8장 57페이지에 보면 보다 정확한 용량을 제시하고 있는데 2/7 제스테는 1밧(Bath)과 같고, 1밧은 6/30 리터라고 한다. 따라서 1 제스테는 1/2 리터 정도이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이와 같이 성이 포위되고 기근이 극에 달했을 때는 동물이나 사람의 배설물까지 먹었다고 전한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도 있었는데 독일이 유럽을 포위하자 유럽 사람들은 먹을 식량이 없어서 개와 고양이, 심지어 해충까지도 잡아먹었다는 것이다(T. R. Hobbs). 이러한 곤경과 환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셔서 이같은 고충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레 26:23-26).

 

6:26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대부분의 고대 성들은 요새화된 성벽이었기 때문에 사륜 마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폭이 넓었다(G. Rawlinson). 또한 그곳은 매우 높아서 적의 이동을 관찰하기가 매우 용이했다. 그리고 그곳은 보초의 경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고관들이 자주 왕래하였다(Lange Commentary, Pulpit Commintary).

한 여인이 외쳐 이르되. 성 안에 있는 집들 중에는 성벽에 붙어 있는 집들도 있었기 때문에(수 2:15, 삼상 19:12) 성이 적의 공격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을 때는 여자도 성을 방어하는 일에 동참했다(삿 9:53). 그래서 왕이 성벽 위를 지나가는 동안 여인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6:27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여기서 왕이 말한 여호와의 이름은 마음 중심에서 나온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31-33절) 왕 자신의 탄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5:20).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왕의 표현은 사마리아 성 안에 기근이 심하여서 누구든지, 심지어는 왕조차도 백성을 도울 수 없다는 당시의 한계 상황을 나타내 준다.

타작 마당 … 포도주 틀. 본 절에는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이 나란히 언급되어 있는데 이러한 특수한 표현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1) 이것은 생산의 원천인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을 언급한 것이다(민 18:27, 30, 신 14:14, 16:13). 왕이 이와 같은 단순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당시에 굶주린 백성들의 아사(餓死)를 막을 수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래서 호 9:1, 2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심판의 표시라고 보고 있다. 한편 당시 사마리아의 타작 마당은 성문 앞에 있었는데(왕상 22:10) 아람 군이 이곳을 포위하여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2) 이것은 후기 예언서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왕이 타작 마당을 심판의 장소로 언급한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호 13:3, 미 4:12, 렘 51:33). (3) 이것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막막한 상태를 나타내는 숙어적 표현이다.

 

6:28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문자적으로 ‘너의 불평거리는 무엇이냐’라는 의미이다. 27절에서 왕이 여인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는 대답을 하자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인은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어떤 보충의 설명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혹자의 해석처럼 여인은 아마 자신이 왕에게 음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어떤 판결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K. W. Bähr). 그렇기 때문에 왕은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다시 질문한 것이다.

 

6:29 본 절의 사건은 이미 성경에서 예언한 그대로 성취되었다(레 26:29, 신 28:56, 57). 그리고 이러한 기록은 그 당시 사마리아 성이 당한 기근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말해준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이 같은 예언의 성취를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예루살렘이 (1)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애 4:10)와, (2) 티투스(Titus)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Josephus)였다. 그리고 죽은 아들에 대해서 전혀 비애하지 않고 그 시신(屍身)을 먹는 본 절의 기사를 통해 한계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죄악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극도에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인간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음부에 있는 부자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성경)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눅 16:31).

 

6:30 왕이 … 자기 옷을 찢으니라. 이처럼 여호람 왕이 자기 옷을 찢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5:7). 그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의 참혹한 상황에 경악하여 백성의 지도자로서 느끼는 비통함을 외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왕의 이러한 분노는 자기 백성의 참상에 대한 책임을 엘리사에게 전가시키는 심히 악한 격분이었다.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굵은 베’는 회개, 슬픔을 표시할 때 입는 거친 옷이다(19:1, 창 37:34, 삼하 3:31, 대상 21:16, 에 4:1, 욥 16:15, 사 15:3, 단 9:3, 욘 3:8, 마 11:21, 계 11:3).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공식적인 왕복(王服) 속에 이 굵은 베옷을 걸쳐 입었다는 것은 사마리아 성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회개하는 행동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여 겸손해진 행위라기보다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경문(經文)을 넓게 하여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재난의 원인을 엘리사에게로 돌리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31절). 그리고 혹자가 말한 것처럼 왕은 이런 형식적인 옷차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Bähr).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진실된 회개가 없이 슬픔과 회개의 표시로만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외식적으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딤전 4: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외식을 회개하지 않아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律)에 처해짐 같이(막 7:1-27), 여호람 왕도 결국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외식하는 자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모든 자에게도 해당된다(마 5:20).

 

6:31 여기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은 8-23절의 사건과 24절에서 벤하닷이 재 침입한 서건을 서로 연관시켜서 이해할 때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카일(Keil)이나 기타 다른 신학자들(Bähr, Rawlinson)은 이 두 기사를 서로 연관시키지 않고 해석하기 때문에 약간의 억지스런 추측을 했다. 즉 그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항복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할 것을 묵시적으로 권고했기 때문에 왕이 엘리사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하닷은 엘리사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못해서 사마리아를 다시 공격했고 이스라엘 왕은 그 때 아람 군대를 죽이지 않고(22절) 놓아 보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T. R. Hobbs). 그래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이다. 또한 왕이 엘리사에게 저주를 한 직접적인 이유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여호와께 간청하여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8-23절의 사건과 24절의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왕이 엘리사의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은 율법의 어느 곳에도 그러한 행위를 용납한 곳은 없으나(Pulpit Commentary) 애굽과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 이방에서는 흔히 행하던 참형(斬刑)이었다.

 

6:32 그 때에 엘리사가 그의 집에 앉아 있고. 엘리사의 거처에 대해서는 여러 곳이 언급되었지만 여기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본래의 집으로 추측된다.

장로들이. 이들은 성의 관리들(Lange Commentary)이라기 보다는 사마리아 성에 있는 백성들의 대표자들이다. 한편 그레이(Gray)처럼 여기에 언급된 모임을 정규적인 또는 습관적인 모임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사마리아 성이 직면해 있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백성의 대표자들과 상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Hobbs).

사람을 보냈더니.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신하 중 한 사람(왕상 10:8, 단 1:4, 5)을 여호람은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살인한 자의 아들. 이것은 물론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의 나쁜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래서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표현이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호람이야말로 혈통적으로나 기질면에서나 잔인한 살인자 아합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왕상 21:19). 그러나 본문의 ‘살인한 자의 아들’이라는 말은 족보상의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살인자와 같은 인간’, ‘포악한 인간’ 등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삼상 20:30). 비근한 예로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이때 예수께서 그들에 대하여 ‘마귀’ 즉, ‘살인한 자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다(요 8:44).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사자를 보낸 성급한 행위를 후회하고 즉시 사자를 뒤따라 왔다고 본다(G. Rawlinson, Keil & Delitzsch, Wycliffe). 그래서 엘리사는 문을 닫게 하고 왕이 도착할 때까지 사자들을 들이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33절에 기록된 말을 왕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한글 개역 성경도 왕의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학자는 이것을 왕이 뒤따라 온 것이 아니라 왕이 보낸 사자의 발소리라고 한다(T. R. Hobbs).

 

6:33 왕이 이르되. 원문에는 ‘와요메르’로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왕의 사자가 말한 것(T. R. Hobbs)이 아니라 ‘왕 자신’이 와서 말한 것이다. 그래서 영역 성경 RSV와 NEB는 말하는 주어를 왕으로 간주해서 번역하였다. 한편 KJV는 그 주체를 왕의 사자로 번역해서 그 뜻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어찌 더 … 기다리리요. 이 모든 재앙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시인하는 여호람 왕은 이제 여호와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말을 여호람이 여호와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왕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바른 길로 돌아왔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Wycliffe). 한편 7장 1절부터는 여호와의 재앙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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