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사랑하였으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하브’는 대상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가진 사랑을 말한다. 즉 그 대상을 소유하거나 그 곁에 있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리킨다. 곧 이 ‘아하브’에는 (1) 집착 (2) 욕망에 근거한 성적(性的) 열정이라는 성격이 두드러진다(창 24:67, 출 21:8, 삼하 13:1, 호 3:1). 그러므로 이 단어는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단순히 정략적으로 취한 것만이 아니고 ‘안목의 정욕’으로 적극 탐하였음을 알려 준다.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열거된 나라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과 전통적로 우호 관계에 있던 나라 외에 적대 관계에 있던 나라도 포함된다(신 23:3 이하). 솔로몬이 이러한 모든 나라들과 통혼(通婚)하게 된 데에는 외교적 목적이 분명 들어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왕의 국제 결혼에는 외교적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 결혼은 고대의 왕에게는 하나의 자랑거리였다(Bähr, Dentan).
통혼하지 말며 … 통혼하게 하지 말라. 여기서 ‘통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는 ‘가다’ 또는 ‘오다’란 뜻으로서, 결혼을 통해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은 양자의 문화, 풍습 및 종교의 절충과 혼합을 초래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고유의 여호와 신앙은 변질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들과의 잡혼(雜婚)을 엄격히 금지시켰던 것이다(출 34:11-16, 신 7:1-4). 그런데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通婚) 금지를 명한 율법은 그 율법의 정신으로 볼 때 비단 가나안 족속 뿐 아니라 여호와 신앙을 변질시킬 우려가 있는 다른 모든 이방 족속들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솔로몬이 이러한 율법의 명령과 정신을 무시하고 가나안 족속(헷 족속)을 비롯한 이방의 많은 여인들과 결혼한 것은 분명 국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편리한 혼합주의를 채택한 실정(失政)이요 범죄였다.
돌려. 9:6 주석 참조.
사랑하였더라. ‘사랑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는 ‘집착하다, 달라붙다’는 뜻으로서 강렬한 감정적 애착상태를 의미한다(시 102:5, 애 4:4 등). 따라서 이 말은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의 애정에 탐닉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1절의 ‘아하브’(사랑하였으니)와 함께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찰력과 분별력이 흐려진 이유를 잡작케 해준다.
후궁. ‘후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사라’는 ‘후궁’들과는 구별되는, ‘왕비’의 지위이다. 즉 이들은 원래 이웃 나라의 공주, 혹은 왕족이었기 때문에 구별된 지위와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Hammond). 한편, 바로의 딸은 이들 중에서도 으뜸의 지위를 누렸던 것 같다(3:1, 9:24).
첩. ‘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필레게쉬’는 삼하 16:21, 22에서 ‘후궁’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맞아들인 결과, 그 여인들은 각자 자기 민족의 신(우상)들을 가지고와서 숭배했다. 분명 왕비들은 여러 방법으로 솔로몬을 회유했을 것이고, 이에 솔로몬은 그러한 신들의 숭배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방 신들을 위해 산당까지 지었다(7, 8절). 솔로몬이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는 이방 국가들의 호의를 얻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이방의 우상 숭배를 거듭거듭 경고하고 엄히 금하신 율법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솔로몬의 말년부터 이스라엘 내에 자리잡게 된 이방 우상의 산당들은 이후 분열왕국 시대 동안에도 줄곧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남북 왕국 멸망의 주된 원인이 되고 말았다.
여인들이 …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솔로몬의 타락을 고발하는 본 절의 초점은 솔로몬이 단순히 이방 여인들을 많이 취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비록 솔로몬의 처첩들의 숫자는 놀랄 만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일부 다처 자체만을 심각히 비난하기는 어렵다. 다윗만 해도 왕비 7명, 첩이 최소한 10명 이상이었다(대상 3:1-9). 따라서 본 절이 보다 부각시키고 있는 점은, 솔로몬의 왕비들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빠지게 하는 함정 구실을 하였다는 데 있다. 신명기의 경고도 바로 이 점을 겨냥한 것이었다(신 7:3, 4, 17:17).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모압 여인들과 놀아나다가 우상 숭배에 빠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았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다(민 25:1-5). 따라서 이방 여인과의 접촉에 따르는 위험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 절은 솔로몬이 이러한 생생한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그물에 걸리는 비극을 보여 준다.
밀곰. 암몬의 민족신으로 인신 제사로 유명하며 ‘몰록’ 혹은 ‘몰렉’과 동일시 된다(7절). 그런데 ‘밀곰’은 히브리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파생된 명칭이다(IDB). 레 18:21, 20:2 주석 참조.
악을 행하여 … 따르지 아니하고. 솔로몬의 이러한 타락이 그의 통치 기간 중 어디쯤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분명 성전 완공 후 감사와 헌신의 봉헌 기도(8:12-53)를 드렸을 당시(즉위 11년)에는 이러한 타락이나 변질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후 왕궁 건축이 완료된(즉위 24년) 재임 중기 이후부터 서서히 나타나 재임 말기로 갈수록 심화되었던 것 같다(4절, Leon Wood). 그러나 이후의 여러 기록들을 참조하면, 솔로몬은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만든’ 여로보암처럼 직접 이방 우상들에게 제사드린 것 같지는 않다. 즉 솔로몬이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완전히 버렸다는 암시는 없다. 적어도 솔로몬은 그의 통치 말기까지 일 년 삼 차씩 번제단 위에서 엄숙한 제사는 드렸던 것 같다(J. Hammond). 그러나 그러한 제사 행위와 아울러 솔로몬은 왕비들의 우상 숭배 행위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산당을 지음으로 조장까지 했다는 사실에서, 분명 솔로몬은 부친 다윗과는 달리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한 것이다. 다윗도 비록 그의 생애 중 간음, 살인 교사, 교만 등 중한 죄악을 범하긴 하였으나, 우상 숭배 죄는 결코 범하지 않았다.
다윗이 … 온전히 따름 같이. 9:4주석 참조.
예루살렘 앞 산. 예루살렘 동편의 ‘감람 산’을 말한다. 이 산의 중앙 지역은 해발 822m로 예루살렘 보다 약 30m 정도 높다고 한다. 그런데 후일 이 감람 산의 최남단 봉우리는 ‘범죄의 산’(Mons Scandali)이라 불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이곳에 우상을 위한 산당을 지었기 때문이다(Robinson, Alden).
몰록. ‘몰록’은 ‘밀곰’과 동일시 된다. 5절 주석 참조. 원래 ‘몰록’은 고유 명칭이 아니고 그저 ‘왕’이라는 뜻이다. 즉 암몬인들은 그들의 신을 왕으로 호칭한 것이다. 한편 ‘몰렉’이라는 명칭은 ‘몰록’의 자음에다 ‘치욕’(히, 보쉐트)이란 단어의 모음을 결합하여 발음한 것이다. 이는 물론 이스라엘인들이 우상을 경멸하기 위해 취한 방식이다(Patterson). 한편 몰록 숭배 제사 의식에는 인신 제물이 바쳐졌다. 그리고 이 제사는 주로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의 골짜기 도벳에서 행해졌다(Gray, 왕하 23:10, 렘 32:35). 레위기 18:21, 20:2 주석 참조.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 제사하였더라. 비록 솔로몬이 왕비들에게 각자의 신을 섬기도록 허용했다지만, 이 왕비들이 자신의 신을 섬기는 데 적극적이고 열심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반대로 솔로몬이 이방 왕비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소개하는데 흥미가 없었음을 입증해 준다. 이러한 이면에는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였음과 솔로몬의 통치 방향이 일종의 혼합주의, 즉 주변 국가들의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쪽으로 잡혀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Dentan). 아무튼 다윗 역시 한때 중한 죄를 범하긴 하였으나(삼하 11:2-27), 솔로몬처럼 우상 숭배의 가증스러운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아내들로 각자의 신들을 섬기도록 허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산당을 짓기까지 하였다. 또한 솔로몬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였던 반면에 그 아내들이 열심으로 그들의 신을 증거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이렇듯 사탄은 누구든 교만하고 방만한 틈을 발견하면 걸코 이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한편 솔로몬에 의해 세워진 이교 산당은 이후 계속하여 이스라엘에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훗날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민들에게 이방인과의 통혼을 경고하면서, 솔로몬의 범죄를 예로 든 바 있다(느 13:26, 27).
진노하시니라. ‘진노하시니라’에 해당하는 원어 ‘아나프’는 특별히 하나님의 분노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이때 하나님의 분노는 언약 백성이 언약을 깨뜨린 범죄에 대해 발(發)하시는 거룩한 분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러한 분노는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고,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 하여금 진노하게 하는 범죄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저버림으로써 하나님께 큰 상처를 입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었던 솔로몬의 우상 숭배야말로 하나님을 지극히 진노하게 하는 범죄였다.
일찍이 두 번이나 … 나타나시고.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 나타나신 장면은 3:5-14과 9:2-9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 두 번의 묵시를 살펴보게 되면, 첫 번째에 비해 두 번째의 묵시는 좀더 경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우상 숭배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백히 경고하고 있다(9:6-9).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솔로몬의 우상 숭배가 곧 여호와께 드리던 제사의 폐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9:25). 솔로몬은 ‘이것도 저것도’ 모두 취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솔로몬의 혼합주의적 행위에 대한 성경의 진단은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이다(9절). 진정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전부를 온전히 원하신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 여호와 유일 종교 신앙의 특색이다(신 6:5, 마 6:24).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게서 솔로몬에게 명하신 명령과 법도(法度)는 지키기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때마다 친히 경계의 말씀을 해주셨다(3:5, 6:12, 9:2-9). 따라서 솔로몬의 우상 숭배는 안일과 교만으로 말미암은 불신앙의 소치라 할 수 밖에 없으며, 이중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것이다. 즉 하나님께는 이 일이 극진히 아껴주셨던 당신의 종으로부터 배반당하는 가슴 아픈 일이었으며, 당신의 공의대로 솔로몬을 심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또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번영과 부의 축적, 그리고 사치와 다처 축첩 등 모든 세상의 부귀 영화를 다 누리고, 심지어 우상 숭배에도 빠졌던 솔로몬이 그의 말년에 ‘여호와를 떠난’ 인간의 모든 부귀 영화, 우상 숭배, 입신양명이 ‘다 헛되고 헛된 것’(전 1:2)이라고 고백한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 즉 이 고백은 솔로몬은 이러한 사실을 다시 깊이 깨닫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한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솔로몬의 마지막 저술인 전도서를 보면,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전 12:13)이라고 명백히 결론 지은 사실에서 볼 수 있다(Leon Wood).
네가 내 언약과 …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계속적인 축복과 후손들에 대한 왕위 계승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법도를 지키는 조건에서만 보장되었다(3:14, 6:12, 9:4). 그러나 솔로몬은 그 조건을 지키는 데 실패하였다. 따라서 솔로몬과 그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철회될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불순종에 따른 심판을 받아야 했다.
빼앗아. 여기서 ‘빼앗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카라’는 ‘찢다’ 또는 ‘쪼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솔로몬 왕국 전체를 멸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둘로 분열시키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분열 원인은 바로 솔로몬의 우상 숭배와 율법 준수 실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네 신하에게 주리라. 여기서 신하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인물은 ‘여로보암’이다. 그는 솔로몬의 노역 감독관이었다(28절). 그런데 솔로몬 사후, 이 예언대로 여로보암은 남북으로 분열된 왕국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다(B.C. 930-910).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네 세대에는’(히, 베야메카)은 곧 ‘너의 날들에는’, 즉 솔로몬이 살아있는 동안을 말한다. 솔로몬의 죄는 그가 특별히 받아 누린 특권과 축복들을 생각할 때에 더욱 컸다. 즉 솔로몬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아도니야와 요압과 아비아달의 손으로부터 구원받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친히 두 번이나 나타나사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필요에 따라 지혜와 권면과 경계의 말씀을 적절히 주셨다. 그 결과 솔로몬은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당시 세계 열국의 왕들에 비해 으뜸가는 부와 권력과 명예와 향락을 누렸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평생동안 사랑과 헌신 경외를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렸어야 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지 하지 않았다. 솔로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헛된 우상들에게 그는 눈길을 돌리고 마음을 주었다. 따라서 의당 솔로몬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받아야 옳았지만, 그러나 다윗 언약을 끝까지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당대에는 심판을 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인간은 언약을 저버리지만, 그러나 인간이 저버린 언약을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 주리라. 솔로몬의 왕위가 대(代)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의 가치 때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택한(히, 바하르) 도성으로서, 다윗 언약에 근거된 바(삼하 7:13)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둘 만한 장소로 택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의 행위는 그만한 자비를 받을 이유가 없지만, 하나님 자신의 언약과 선택을 위해서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이름을 세계 열방에 전파할 종교적 수도로서 유지되어야 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유다의 주권을 아주 박탈하지 않으셨다(Hammond).
한 지파. 이는 구체적으로 ‘유다 지파’를 말한다(12:20). 모두 빼앗겨도 마땅한 범죄였지만, 다윗 언약과 예루살렘의 은총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최소한의 것만 남긴다는 것이다.
하닷. 원문상 17절은 ‘아닷’으로 표기되었지만,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하닷’은 ‘태양’ 아니면 ‘호통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고유 명사가 아니고, 에돔인들이 왕을 가리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Hammond). 한편 시리아 지역의 왕들 이름 역시 벤하닷, 하닷에셀과 같이 ‘하닷’과 결부되어 등장하곤 한다. 솔로몬 당시 에돔 왕 하닷은 에돔의 왕족으로, 일찍이 요압과 아비새 휘하의 다윗 군대가 어떤 이유로 에돔 왕족과 군대를 진멸시키기 위한 학살 작전을 감행했을 때 애굽으로 도피하여 살아 남았던 유일한 생존자였다(삼하 8:13, 14, 대상 18:12, 13).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에돔 사람 하닷 편에서 보면, 솔로몬에 대한 그의 적대는 일종의 독립 운동이었으나, 솔로몬에게 있어서 하닷의 적대 행위는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이었다. 이렇듯 얼핏 인간들끼리의 사건처럼 보이는 역사의 모든 대소사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의 선택과 자유 의지적 행위가 언제나 관련되고 전제되어 있다(Davison).
여섯 달 동안 그 곳에 머물렀더라. 잔인한 성격의 요압(삼하 3:27, 18:9-17, 20:8-21)이 이처럼 6개월간 에돔에 머물면서 자행한 살륙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닷의 끈질긴 복수심을 설명해 준다. 또한 하닷이 다윗과 요압에 대해 갖고 있던 공포심도 짐작케 해 준다(21절).
애굽으로 가려 하여. 18절을 보면, 하닷은 이스라엘 영토를 우회하여 시내 반도(Sinai Peninsula)를 통해 애굽으로 입국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경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취했던 경로의 역(逆)이다(민 10:12, 12:16, 13:3, 26).
바란. ‘바란’(Paran)은 ‘빛나는 땅’이란 뜻이다. 이곳은 미디안과 애굽 사이에 위치한 시내 반도 중앙의 넓은 사막 지역으로 가데스(Kadesh)와 신 광야(the wilderness of Zin)를 포함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그 기복이 심한 지형으로 인해 도피처로 자주 이용되었다고 한다(Houston). 한편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역을 횡단하였고, 이곳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정찰병을 보내기도 하였다(민 10:12, 12:16, 13:3).
바로가 그에게 … 또 토지를 주었더라. 여기서의 바로(Pharaoh)는 솔로몬의 장인(丈人)인 바로(3:1)와는 다른 인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닷의 망명은 다윗 시대의 일이었으며 또한 이스라엘의 적에게 은혜를 베푼 자와 솔로몬이 장인/사위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있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9-22절). 한편 망명한 하닷에 대한 바로의 환대는 왕자에 대한 동양적 예우,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바로가 왜 그토록 에돔 사람 하닷을 친절히 맞이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애굽이 남쪽의 테베(Thebe) 왕조와 북쪽의 타니스(Tanis) 왕조로 분열되어 국력이 약화되어 있던 점으로 보아, 이는 아마도 대외 융화 정책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왕비. 본 절에서 ‘왕비’로 번역된 히브리어 ‘학비라’는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왕의 많은 아내들 중에서도 으뜸인 지위에 있는 여성에게 붙이는 칭호이다(Hammond, Keil & Delitzsch).
다브네스. 이러한 형태의 이름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매우 보기 힘든 이름이다. 그래서 ‘다브네스’가 어디서 유래된, 어떤 뜻의 이름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두어 가지로 추측하고 있는데, 곧 (1) 애굽 여신의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견해(Rosellini, Rawlinson), (2) ‘바로’의 경우가 그렇듯이, ‘왕의 아내’를 가리키는 애굽의 공식 명칭이 그대로 고유 명사화된 것라는 견해(Wilson). 출 1:11 주석 참조.
없나이다 그러나 … 나를 보내옵소서. 애굽이 제공하는 모든 특권과 안락함으로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하닷의 복수심이 깊었음을 보여준다. 이토록 강렬한 하닷의 복수심은 솔로몬의 통치에 작지 않은 우환이 되었을 것이다(25절a). 한편 본 장에는 하닷의 간청을 바로가 승락했는지의 여부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하닷이 에돔으로 돌아와 솔로몬의 적수가 된 것은 분명하다(14, 25절).
소바. 아람족에 속한 한 나라로서 레바논과 안티레바논 사이에 위치하였다(Haldar).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왕국을 형성했던 적이 없으며 시리아와 북부 팔레스타인 지방에 여러 개의 조그마한 도시 국가를 이루었을 뿐이다. 삼상 14:47 주석 참조. 그런데 소바는 적어도 사울 왕 시대부터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다(삼상 14:47). 다윗은 아람 소바(시 60편), 아람 나하라임(시 60편), 벧르홉(삼하 10:6) 등의 아람 왕국들과 싸운 바 있다. 한편 이러한 아람의 여러 소왕국들 중 가장 큰세력으로 성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도시는 다메섹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10:6 주석을 참조하라.
환난. ‘환난’(히, 라으)은 ‘걱정, 고민’ 등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즉 이는 곧 하닷이 솔로몬의 골칫거리였다는 말이다. 추측컨대 하닷은 애굽에서 귀국한 후 일종의 게릴라 전투를 통해 독립을 꾀하였던 듯하다. 따라서 쉽사리 진압되지 않는 하닷의 활동은 솔로몬에게 눈의 가시와도 같았을 것이다(Gates).
수리아. 원문에는 ‘아람’으로 되어 있다. 원래 ‘수리아’(Suria) 혹은 ‘시리아’(Syria)는 70인역(LXX)과 일부 영역본이 아람(Aram)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 용어이다(IDB). 한편 아람인들은 대대로 통일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고, 대신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형성하곤 하였다(10:29). 이 중 본 절의 수리아는 아람 소바, 아람 나하라임 등의 아람 소왕국들과 구별되는 다메섹의 아람 왕국이다. 23절 주석 참조.
미워하였더라. ‘미워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쿠츠’는 어떤 대상에 대한 거부감 이상으로 그 대상이 파멸하기를 바라는 감정을 말한다. 따라서 이같은 감정은 실제로 대상을 파멸시키려는 행동을 낳기 마련이다.
에브라임 족속. 에브라임 족속은 수효 면에서나 이스라엘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서나 늘 유다 지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에브라임은 서편 진지의 주도 세력이었다(민 2:18-24). 또한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웅 여호수아도 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다(민 13:8, 신 31:7). 그 뿐 아니라 왕정 시대에 들어와 예루살렘이 종교적 수도가 되기 이전에는 에브라임 영토의 실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지였다(수 18:1, 22:12, 삿 18:31, 21:19, 삼상 1:3, 9, 2:14, 3:21). 이처럼 이스라엘 남북 왕국의 분열 이면에는 그러한 반목을 낳을 만한 뿌리깊은 경쟁 관계가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솔로몬 사후(死後) 에브라임과 유다의 반목은 강렬하게 표면화되었으며 대다수의 지파들은 여로보암을 후원하였다(12:12, 16-19). 그러나 훗날 에스겔은 이러한 지파간의 반목과 질시를 근원적으로 종식시키고 참된 단합과 화해의 왕국을 건설할 왕이 다윗 가계로부터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겔 37:15-28).
스레다. 스레다의 뜻은 ‘찌르기’ 또는 ‘서늘함’이다. 그러나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진 바 없다. 대하 4:17에 동일 지명이 나오긴 하나 그곳은 요단 골짜기의 성읍이란 점에서 본 절의 스레다와는 다르다. 혹자는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세리라’(Zerira)가 곧 본 절의 ‘스레다’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Lange).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9:15 주석 참조.
다윗의 성읍 … 수축하였는데. 솔로몬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라 할 수 있는 다윗 성의 보수 공사를 유다 지파가 아닌 에브라임 지파에게 맡겼다. 28절 주석 참조. 따라서 그렇잖아도 유다 지파와 경쟁의식이 있던 에브라임 지파로서는 이에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Bähr). 26절 주석 참조.
요셉 족속. 요셉 족속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말한다.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두 아들이다(창 48:5). 그래서 ‘요셉 족속’이라고 할 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 중 어느 하나를 말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 두 지파는 북쪽의 가장 강한 지파들이기 때문에 ‘요셉 족속’은 곧 북 왕국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Wintermute). 한편 야곱과 모세의 축복을 살펴보게 되면, 우리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 있어서의 요셉 족속의 중요성과 그 지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창 49:1-27, 신 33:1-29).
감독하게 하였더니.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예루살렘에서 일하게 된 요셉 족속의 부역 총 책임자로 임명한 것을 가리킨다.
새 의복.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다는 사실이 본 절과 다음 절에 걸쳐 두 번이나 언급된 것은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아직 신생 제국에 불과한 시점에서 남북으로 분단되고 말 것임을 상징한 표현이다. 여호와 신앙이 배척된 상황에서는 다윗의 천신 만고의 노력과 솔로몬의 다방면의 치적(治績) 등도 이렇듯 물거품에 불과하다.
한 지파. 실제로는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가 남방 왕국 유다에 속하였다(12:21, 대하 11:3). 그럼에도 블구하고 본 절은 유다와 베냐민을 통틀어 한 지파로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된다(Bähr, Hammond, Schmidt). (1) 유다와 베냐민 지경(地境)은 서로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계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2) 사사 시대 때의 내란으로 인해 인구가 격감(激減)된 베냐민(삿 20:46-48)을 따로 한 지파로 치지 않았거나 유다에 의존되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직한. ‘정직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샤르’는 물론 도덕적 품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1) ‘야샤르’가 가리키는 정직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말한다(신 6:18). 그러므로 모든 인간적 요소에 거리낄 것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승인을 얻기에 부족하다면, 아직 야샤르에 못미치는 것이다. (2) 이 야샤르의 구체적 표현은 하나님의 법과 약속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신 6:1-9). 즉 누구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충실하게 실행해 나가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정직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솔로몬의 생전에는 … 빼앗지 아니하고. 이처럼 이스라엘에 저주를 가져온 장본인 솔로몬(1-13절)이 그의 생전에 특별한 보응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일견 불합리하게 보인다. 사실 예고된 심판으로서의 왕국 분열은 정작 그의 아들 대에 일어난다(35절, 12장). 그런데 아버지의 죄가 후손에게 씌워지는 것은 만족할 만한 합리적 해답(렘 31:29, 30)이 없는 수수께끼이다(Davison). 여하튼 다윗의 덕분으로 심판을 면하는 솔로몬이나 솔로몬의 죄를 뒤집어 쓰는 르호보암에게서 우리는 아버지의 선악을 후손에게까지 응보한다는 신명기적 주제를 보게 된다(신 5:9, 10).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다스려. 이 말은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왕노릇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즉 절대 권력을 의미한다고 보는 입장(Keil, Living Bible 등). (2) 여로보암의 평소 소원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구절이라는 입장(Bähr, 공동번역 등). 그런데 이 두 입장은 어느 쪽이나 일면의 타당성을 제시하므로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1)의 입장을 취할 경우 이어지는 38절의 권면이 무색하게 된다. 따라서 (2)의 입장이 비교적 무난한 것 같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8:57 주석 참조.
견고한 집을 세우고. 여기서 ‘집’(히, 바이트)은 ‘왕조’(王朝)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즉 여로보암의 가문이 계속해서 왕위에 오르도록 한다는 의미이다(9:4, 5). 그러나 정작 여로보암 왕조는 그 아들 나답 대에 이르러 종말을 고하고 말았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행악(行惡)하였기 때문이다(15:25-30).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이처럼 비록 여로보암에게 순종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은 약속되었어도(38절) 다윗 가문과 같이 ‘영원한’ 왕국과 왕위에 관한 약속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1) 영원한 메시아 왕국이 오직 다윗의 후손을 통해 도래할 것과 (2) 이스라엘이 영구히 분열 상태로 있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암시한다. 따라서 여로보암의 왕위는 오로지 다윗 왕조의 겸손을 낳게 하려고 사용된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
애굽왕 시삭. 애굽 22대 왕조의 창시자로서 르호보암 때 예루살렘을 약탈한 왕이다(14:25, 26). 그런데 이 시삭이 솔로몬의 장인인 애굽의 바로(3:1)는 아닌 듯하다. 솔로몬의 장인이 솔로몬의 대적에게 피신처를 마련해 주었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솔로몬의 실록. 이 기록(the acts of Solomon)은 14:19, 29에 등장하는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역대 지략’ 중 솔로몬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즉 이는 역대 왕의 실록 중 솔로몬의 치세사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Helmbold). 한편 본서 기자는 본서를 기록함에 있어서 이 실록을 주된 자료로 참조하였음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대하 35:26, 27 주석을 참조하라.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대 왕들
[ 이스라엘 ]
1. 여로보암 1세, 931-910 (왕상 12:20)
2. 나답, 910-909 (왕상 15:25)
3. 바아사, 909-886 (왕상 15:33)
4. 엘라, 886-885 (왕상 16:8)
5. 시므리, 885 (왕상 16:15)
6. 오므리, 885-874 (왕상 16:21)
7. 아합, 874-853 (왕상 16:29)
8. 아하시야, 853-852 (왕상 22:51)
9. 요람, 852-841 (왕하 1:17)
10. 예후, 841-814 (왕하 9:3)
11. 여호아하스, 814-798 (왕하 13:1)
12. 여호아스, 798-782 (왕하 13:10)
13. 여로보암 2세, 782-753 (왕하 14:23)
14. 스가랴, 753 (왕하 15:8)
15. 살룸, 752 (왕하 15:13)
16. 므나헴, 752-742 (왕하 15:17)
17. 브가히야, 742-740 (왕하 15:23)
18. 베가, 740-732 (왕하 15:27)
19. 호세아, 732-722 (왕하 17:1)
[ 유다 ]
1. 르호보암, 931-913 (왕상 12:1)
2. 아비야, 913-911 (왕상 15:1)
3. 아사, 911-870 (왕상 15:9)
4. 여호사밧, 870-848 (왕상 22:41)
5. 여호람, 848-841 (왕하 8:16)
6. 아하시야, 841 (왕하 8:25)
7. 아달랴, 841-835 (왕하 11:1)
8. 요아스, 835-796 (왕하 12:1)
9. 아마샤, 796-767 (왕하 14:1)
10. 아사랴(웃시야), 767-740 (왕하 15:1)
11. 요담, 740-732 (왕하 15:32)
12. 아하스, 732-716 (왕하 16:1)
13. 히스기야, 716-687 (왕하 18:1)
14. 므낫세, 687-643 (왕하 21:1)
15. 아몬, 643-641 (왕하 21:19)
16. 요시야, 641-609 (왕하 22:1)
17. 여호아하스, 609 (왕하 23:1)
18. 여호야김, 609-598 (왕하 23:36)
19. 여호야긴, 598 (왕하 24:8)
20. 시드기야, 597-586 (왕하 24:18)
(연대는 모두 B.C.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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