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틸레(Thiele)의 계산을 따라 성전 건축을 시작한 솔로몬 4년 시브월(유대 종교력 2월, 오늘날 태양력 4, 5월)을 B.C. 966년 경으로 볼 때, 본문대로라면 출애굽 연대는 B.C. 1446년 경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본 절의 ‘사백팔십 년’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많은 학자들은 나름대로의 근거하에서 480년이란 이 연대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곧 (1) 70인역(LXX)은 480년 대신 440년으로 보았다. (2) 요세푸스(Josephus)는 480년 대신 592년으로 잡는다. (3) 혹자들은 본문의 480년을 일종의 상징적인 세대수(世代數)로 본다. 즉 벌도우(Bertheau), 뵈쳐(Böttcher) 같은 학자들은 여기 480년을 ‘40년+12세대=480년’으로 보고, 실제적인 12세대는 250년-280년 가량이므로, 약 200년 가량 단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의 주장은 입증할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다.
반면 카일(Keil)과 메튜 헨리(Matthew Henry) 같은 주석가들 및 우드(L. Wood)와 아쳐(G. A. Archer) 같은 보수주의 구약 학자들은 본문 그대로 480년의 정확성을 뚜렷이 주장한다. 사실 본 절이 왕의 통치 년, 월까지 상세히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은 높다. 그리고 이 480년은 부분적인 이견(異見)이 있긴 하지만, 대략 (1) 광야 생활 40년 (2) 가나안 정복기 및 평정기 32년 (3) 사사 시대 331년 (4) 사울의 통치기 33년 (5) 다윗의 통치기 40년 (6) 솔로몬의 즉위 후 4년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편, 본서 저자가 성전 건축 시기를 특별히 출애굽을 기준으로 해서 기술한 까닭은, 성전 건축은 곧 약속의 땅에 대한 그 때까지의 임시적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소유를 표징(表徵)하는 신기원(新紀元)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Keil).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솔로몬은 즉위 초부터 히람과 협정을 체결하여(5:1-12), 대략 3년 동안 목재, 돌, 역군 등 건축에 필요한 제반 준비 작업을 하였을 것이다(5:13-18).
시브월. 37절 주석 참조.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역대하 3:1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이다(창 22:2). 그곳은 인구 조사의 죄를 범한 다윗에게 천사가 하나님을 위해 번제단을 쌓도록 지시한 장소(삼하 24:16-25), 곧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다(대상 21:15-27).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쳐 드리던 중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나타난 역사적인 장소이다(창 22:2, 14).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일반적으로 ‘규빗’(Cubit)은 어른의 팔꿈치에서 중지(中指)까지의 길이로 대략 45.6 cm, 혹은 그 안팎이다(Siloam Inscriptoin, 창 6:16, 출 37:1, 신 3:11). 왕실에서는 좀더 긴 규빗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1규빗이 대략 52-54 cm 가량이다(Stinespring). 한편, 대하 3:3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에는 ‘옛날에 쓰던 자’, 곧 모세의 측량법이 적용되었다. 따라서 1규빗을 대략 45.6 cm 가량으로 잡고 성전의 규모를 환산해 보면, 대략 길이가 27.36 m, 너비가 9.12 m, 높이가 13.68 m 가량이다. 그런데 이 규모는 당시의 대건축물에 비하며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이유인즉 아마 이곳은 일반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이 거처하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오직 제사장들만이 드나드는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Dentan, Hammond).
골방들. 이 골방들의 숫자는 30 개이다(겔 41:6). 그리고 이 골방의 용도는 겔 42:13, 14에 의하면 (1) 제사장들이 제물을 먹는 장소. (2) 제물을 보관하는 장소. (3) 제사장들이 옷을 갈아 입는 장소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 (4) 그리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거처 장소이기도 했다(시 134:1). 한편, 이처럼 솔로몬 성전의 구조와 용도를 밝히는 데 에스겔서를 참조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왜냐하면 환상 중에 계시된 에스겔의 미래의 성전은 곧 솔로몬의 성전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Quellette).
성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아니하게 하였으며. ‘턱을 내어’라는 말은 ‘벽의 두께를 줄인다’는 뜻이다(Keil). 예를 들면, 각층 골방의 들보를 지탱하는 선반(턱)을 만들기 위해서 윗층벽의 두께를 1규빗씩 축소하는 식이다. 한편, 왜 들보들로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고 굳이 턱을 내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단지 성전 벽면의 돌들이 크고 값진 것이므로 구멍을 내기 싫었거나, 아니면 성소와 지성소의 신성함을 손상치 않으려는 것으로 추측해 볼 따름이다(Bähr).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이것은 일차적으로 ‘철기를 대지 않는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출 20:25, 신 27:5의 옛 율법 정신을 형식에서라도 가능한 한 접근하려는 노력이다(Gray). 그리고 치석(治石)을 위한 모든 준비 작업이 레바논 채석장이나 ‘왕궁의 동굴들’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건축 현장에서는 철 연장 소리 없이도 작업이 가능했음을 이해할만 하다. 한편, 이처럼 ‘피를 흘리게 하는’ 철 연장 소리 없이 정숙히 성전 건축 작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암시하는 영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해 등을 상징하는 거룩과 평화의 장소로서 성전은 그 성격에 부합되도록 건축 과정에서도 평화로움과 정숙함과 거룩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Patterson, M. Henry).
문은 성전 오른쪽에 있는데. 이처럼 제사장들을 위한 골방에 이르는 문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이 부속 건물과 성소 및 지성소, 즉 성전 본 건물 사이에 아무런 연결 통로가 없었음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골방들이 있는 부속 건물에서 성전(성소와 지성소) 내부로 통하는 문이 있었으리라는 테니우스(Thenius)의 가정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것은 성전의 거룩성에도 어긋나는 추측이 아닐 수 없다(Hammond, Keil). 한편, 여기서 ‘성전 오른쪽’은 7:39에 의하면 남동쪽이다. 그런데 이 때의 ‘오른쪽’은 밖에서 성전 입구를 바라보았을 때가 아니라,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밖을 바라보았을 때의 오른쪽이다.
나사 모양 층계. ‘층계’(히, 룰림)란 단어는 여기와 70인역(LXX), 불가타역(Vulgate) 등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창 28:12의 ‘사닥다리’는 본 절과 달리 ‘술람’의 번역이다. 그리고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룰림’이 ‘나선형 계단’(winding stairs)이라면, ‘술람’은 문자 그대로 ‘사닥다리’(ladder)를 뜻하는 단어이다. 한편, 과연 고대에 나선형 계단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가능했는지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으나(Stade, Moffatt), 고고학의 발전이 이를 입증해 주었다(Montgomery). 즉 B.C. 18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나선형 계단 유적이 아카나(Achana)의 한 궁전에서 발견되었다(Patterson).
그 성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덮었고’ 에 해당하는 원어 ‘이세폰’은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사판’에서 유래된 단어이다(신 33:19, 렘 22:14). 그러므로 본 절의 작업은 15절의 내장 공사와는 달리 지붕을 덮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지붕의 모양에 대해서는 (1) 둥근 아치 형(Thenius), (2) 사람인(人)자 모양의 박공(博供, gable) 형(Fergusson), (3) 평평한 형(Bähr, Keil) 등으로 주장된다. 이 중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나 당시 근동의 건축물의 대다수가 그렇듯, 일반적으로는 평평한 형이었을 것으로 추청되고 있다(J. Hammond).
높이가 다섯 규빗되는 다락방. 이 ‘다락방’(히, 야추아)은 6절의 다락들과 이에 딸린 골방들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속 건물은 3층 건물로서 각 층의 높이가 5규빗(약 2.3 m)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3층 건물 전체의 높이는 15규빗(6.84m)이지만, 약간의 여유있는 간격을 염두에 둔다면 대략 18-20규빗(약 8-9m) 정도일 것이다(Hammond). 그런데 이 높이는 성전 본관의 높이(2절)와는 10규빗(4.5m) 이상의 차이가 나므로 이 간격에 창문을 설치했으리라 본다(Keil).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이 들보들은 성전 벽 바깥 둘레에 이 용도를 위해 일부러 만든 턱(선반)에 걸쳐졌다(6절). 따라서 성전 본관 자체에는 어떤 손상을 주지 않고도 이 건물은 성전에 든든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Keil). 한편, 이 다락들은 분명 물건을 저장할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이다(Patterson).
법도. ‘법도’(히, 훅카)는 원래 ‘새기다, 조각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주신 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일반적인 법률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에서 나온 법, 곧 율법으로서 이해해야 한다(신 4:5, 14, 6:20). 따라서 이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는 것이 된다(Wharton).
지켜 그대로 행하면 … 이룰 것이요. 성전의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성전에 임재하시도록 붙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언제나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전제로 해서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성전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순종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Dentan). 한편, 이 조건적 언약의 내용은 2:3, 3:14의 반복이다.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 구체적으로는 ‘네 아버지 다윗과 맺은 너에 관한 언약’이란 뜻으로(NASB, JB), 삼하 7:12-16의 언약을 가리킨다.
버리지 아니하리라. ‘버리다’(히, 아자브)에는 ‘배반하다’하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본 절은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결코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암시해 준다.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천장과 벽에 이어 이제 성전 마루에도 나무를 깔았다. 이로써 성전(성소와 지성소)의 내부 전체는 돌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18절). 한편, ‘잣나무’에 관해서는 5:8 주석을 참조하라.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칸막이를 백향목 널판으로 세웠다. 원래 모세 성막에서는 청, 홍, 자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그 위에 그룹을 수놓은 휘장만이 드리워져 있었다(출 26:31, 36:35). 그런데 이제 솔로몬의 성전에는 휘장 뿐만 아니라 백향목 칸막이가 더해진 것이다.
성전의 내소 곧 지성소. ‘지성소’(히, 코데쉬 하코다쉼)는 ‘거룩함 중의 거룩함’(holy of holies), ‘가장 거룩한 성소’(most holy place)를 의미한다. 원래는 모세 성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출 26:34). 그런데 이제 솔로몬 성전의 맨 안쪽 방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모세 성막 시절과 마찬가지로 언약궤가 이곳에 안치되었다(8:6, 대하 5:7). 그리고 이 지성소에는 창문을 달지 않았으므로 매우 어두웠다(Good, 8:12). 한편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규모는 모세 성막의 지성소 규모의 2배였다.
핀 꽃. ‘핀 꽃’은 ‘활짝 피어 만개(滿開)한 상태의 꽃’(open flowers)을 말한다(J. Hammond). 그런데 이 ‘핀 꽃’은 일반적으로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영광을 상징한다(사 35:1, 2).
아로새겼고. 혹자는 이것을 얕게 돋을새긴 양각(陽刻, basirelief)이라고 생각한다(keil).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성전의 천장과 벽, 그리고 마루는 모두 백향목 또는 잣나무 등으로 덧입혀졌기 때문에 성전(성소와 지성소) 안에서는 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웅장한 석벽들은 온통 백향목으로 덧입혀졌기 때문에 마치 통나무 집과 같았다”(Stanley).
두기 위하여 …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내소’(히, 데비르), 즉 지성소는 법궤를 안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정금으로 입혔고. 본 절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 방식을 의미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금으로 입히다’란 말은 금으로 두껍게 싸는 것일 수도 있고, 도금(鍍金)을 의미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말을 얇은 금판을 못으로 목재에 부착시키는 방식일 것으로 말한다(Hammond). 특히 대하 3:9은 금못의 사용을 보여 준다. 아마 그러한 기술은 애굽에서부터 익힌 기술일 것이다(출 25:11, 13). 한편 만일 그랬다면 성전 벽에 입힌 금은 엄청난 양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침략자들이 그 같은 금을 약탈해갔다는 기록이 구체적으로 보이질 않는다는 점(왕상 14:26, 왕하 14:14)을 들어 본 절의 사실성을 부인하는 학자도 있다(B. Stade). 그러나 대하 3:6로 미루어 이방 침략자들이 약탈해간 보물, 즉 ‘보석’은 성전의 금을 포함한다. 실제 성전 내부에 사용된 금은 600달란트(약 20,400kg)나 되었다(대하 3:8).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 개역 성경 및 KJV의 번역은 ‘백향목 제단에 금을 입혔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원문은 ‘제단에 백향목을 입혔다’라고 되어 있다. 원문대로라면 제단의 몸통은 백향목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 제단에 또 나무를 덧입혔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2절과 함께 연결해 보면 제단은 백향목을 입힌 다음 다시 도금을 한 것이 된다(Bähr). 즉 성전 내부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의 공정(工程)을 거친 것이다. RSV 및 기타 영역본들은 무난하게 ‘백향목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made an altar of cedar) 정도의 의미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백향목 제단’은 ‘향단’을 가리킨다(Keil, Patterson). 비록 향단은 지성소 바로 입구의 ‘성소’에 위치하고 있었지만(출 30:6, 40:5, 26), 그 기능면에 있어서는 ‘지성소’와 보다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지성소에 속한 것처럼 묘사된 것이다. 22절의 ‘내소(지성소)에 속한 제단’이란 표현 역시 이와 같다.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이 구절에서는 주로 금사슬의 기능과 용도, 그리고 ‘건너지른’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가 논란이 된다. 금사슬의 경우, 그것이 단지 장식용이었다는 견해(Meyer)와 실질적인 기능, 즉 지성소의 문을 달아 거는 빗장 또는 휘장을 움직이는 장치로서의 구실을 했으리라는 견해(Bähr)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들을 따라 금사슬의 ‘건너지른’ 상태가 달리 설명된다. 예를 들면 지성소 입구 좌우 양벽에 고정시켜 드리웠다든지(Keil, Hammond), 또는 금사슬 양끝에 고리가 있어 거기에 쇠를 가로질러 휘장을 달았다든지(Thenius) 하는 등이다. 어쨌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른’ 상태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게 하는 뚜렷한 표식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성소 입구에 가로질러 드리워진 금사슬은 정한 규율(레 16:2) 외에는 그 누구도 지성소에 근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Patterson). 영역본 KJV는 이런 점을 잘 살려 ‘금사슬로 구획을 지었다’(made a partiton by the chains of gold)로 의역하였다.
내소에 속한 제단. 지성소에 속한 제단(20절)이란 의미로 곧 ‘향단’(출 30:1-10)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제단은 지성소 내부가 아닌 입구 앞 성소에 놓여 있었다(출 30:6). 이전 성막에서의 위치가 그러했기 때문이다(Keil, Hammond, Bähr, Patterson).
금으로 입혔더라. 성전 내부를 온통 금으로 입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대하 3:6). (1) 금은 빛과 순전함을 상징한다(욥 37:21, 계 21:18). 따라서 하나님의 빛이시며 빛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이다(요일 1:5, 7). (2) 금은 불변성과 고귀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 또한 금과 같이 변치않는 고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히 11:6, 벧전 1:7) (3) 정금으로 장식된 성전은 새 예루살렘, 곧 영원한 하늘 나라를 상징한다(계 21:16-18).
두 그룹. ‘그룹’(히, 케룹, 복수형은 케루빔)은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의 한 부류이다. 그러나 그룹의 형상과 본성에 대한 문제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A.D.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조차도 그룹의 형상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했고, 신약 성경도 그룹의 본성은 “낱낱이 말할 수 없는”(히 9:5)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따라서 솔로몬 성전의 그룹 형상도 예술적 표현의 하나일 뿐이다(출 25:18, 19 주석 참조). 그러나 그룹의 기능에 대해서는 몇 가지 요점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다. 즉 (1) 감시자의 역할(창 3:24), (2) 하나님의 보좌를 운반하는 역할 (출 25:22, 삼상 4:4, 왕하 19:15, 시 80:1, 사 37:16), (3) 불(숯불, 번개, 화광석)과의 관련성(겔 10:2, 28:14, 사 6:6, 7) 등이다(Acomb). 한편, 성경에서 ‘둘’(two)이라는 숫자는 선포와 증거의 수이다. 따라서 ‘두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선포하고 또한 증거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 한편, 모세 성막내의 두 그룹은 법궤 쪽을 향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자세를 취하였으나(출 25:20, 37:9), 솔로몬 성전의 그룹은 모세 성막의 그룹과는 달리 입구 쪽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대하 3:13). 그리고 두 그룹의 바깥 쪽 날개는 각각 지성소의 중앙 지점에서 서로 맞닿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27절).
십 규빗. 혹자는 그룹 형상의 키가 10규빗인데 주목한다(Hammond). 실제로 성경에서 수(數)의 상징적 용법상 10은 기본수이면서 완전수이다(창 24:10, 31:7, 레 26:26, 수 22:14, 느 5:18, 욥 19:3, 마 25:1, 계 2:10). 가장 대표적으로 십계명에서의 ‘10’이란 신성한 수가 그것이다(출 34:1, 신 4:13). 그 밖에도 다니엘, 에스겔, 계시록의 상징 등에도 ‘10’은 완전수로 자주 사용되었다(Pope, 단 7:7, 계 12:3 등).
퍼져 있는데. 그룹들의 날개가 펼쳐져 있다는 말이다. 공동번역은 이해하기 쉽게 ‘펼쳐져 있어’로 되어 있다.
종려. ‘종려’(히, 티모라)는 야자과에 속한 높이 3-8m 내외의 나무로, 고급 정원수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고대 근동에서는 이 종려 나무(palm tree)가 생산력의 상징으로서 신전에 조각되는 등 매우 신성시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조각 예술품들에도 사용되었고, 고대 유대의 회당에도 양각(陽刻) 또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Trever). 그리고 성경에서 이 종려는 환영, 즐거움을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요 12:13, 계 7:9). 한편, 겔 41:18의 기록에 의하면 종려나무는 그룹 사이 사이에 엇갈려 새겨졌음을 알 수 있다.
핀 꽃. 18절 주석 참조. 활짝 핀 꽃은 예나 지금이나 싱싱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생명력이 가득한 장소로 표현된 것이다(Bähr).
문설주. 문설주(門楔柱, doorpost)란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끼워 달도록 세워진 기둥을 말한다.
벽의 오분의 일이요. ‘오분의 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미쉬트’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 어휘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견해들은 대략 다음 세 가지가 있다. (1) 문의 크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즉 성전 폭의 1/5, 즉 4규빗 크기의 문을 의미한다는 견해(Keil, Bähr), (2) 엔태블러처(entablature), 즉 건축에서 기둥이 떠받치는 힘의 평형 부분이 기둥의 1/5 지점에 있음을 의미한다는 견해(Böttcher, Thenius), (3) 오각형(pentagon) 모양의 문을 의미한다는 견해(Gray, Meyer, Stier). 한편, 대다수의 영역본들은 이 말을 오각형 모양의 문으로 번역하였다(RSV, a pentagon; NIV, Living Bible, five-sided). 그리고 공동번역도 “오각형을 이루었다”로 번역하였다.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지성소의 문에는 벽에 조각된 것과 같은 형상들이 새겨졌다(29절). 한편 조각된 형상들에 금을 입힌 사실을 새삼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기록상의 특징이다. 즉 새로운 부분이 소개될 때 마다 매번 금을 입힌 사실을 꼼꼼이 반복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쪽 문짝도 … 저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각 문짝이 두 짝으로 이루어져 다른 문짝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일상적인 출입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Keil, Montgomery). 그런데 각 문짝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카일(Keil)은 33절의 ‘사분의 일’을 문의 크기로 보기 때문에 만일 각 문짝이 수직 분할로 되었다면 한 사람이 간신히 드나들기에도 비좁은 크기가 되므로 아마도 수평 분할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평 분할의 경우, 그의 계산으로는 각 문짝의 아래쪽 문은 각각 2규빗(너비), 4규빗(높이)의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1) 우선 33절의 문의 크기를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고, (2) 만일 그렇더라도 그의 계산은 본 절이 외소의 문짝임에도 불구하고 내소의 문의 크기를 적용한 실수이며, (3) 수평 분할의 문은 당시의 건축에서 거의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 등이다. 따라서 각 문작은 수직 분할의 형태로 나뉘어졌다고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J. Hammond).
안뜰. ‘안뜰’(the inner court)이라는 표현 자체가 ‘바깥뜰’을 전제하는데, 각각 대하 4:9의 ‘제사장의 뜰’과 ‘큰 뜰’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렘 36:10은 본 절의 ‘안뜰’을 ‘윗뜰’로 호칭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안뜰이 바깥뜰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格)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전의 모세의 성막처럼 성전 앞의 뜰에서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집회를 가질 때 일반 백성들과는 달리 제사장들은 안뜰, 즉 제사장의 뜰에서 직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생긴 구별일 것이다. 그러나 안뜰과 바깥뜰 모두 크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다른 예들에 비추어 솔로몬 성전이 모세 성막 크기의 2배가 된다면, ‘안뜰’(제사장의 뜰)의 크기는 동서간의 길이가 200규빗(91.2 m), 남북 간의 폭이 100규빗(45.6 m) 될 것이다. 그리고 ‘바깥뜰’(큰 뜰)은 안뜰 크기의 2배, 즉 길이 400규빗(182.4 m), 폭 200규빗(91.2 m)이 될 것이다(Keil, Hammond).
기초를 쌓았고. 목재와 석재의 준비 기간(5:13-18)은 건축 기간에 합산(合算)되지 않았다(Keil, Bähr). 즉 본서 저자는 솔로몬 성전의 건축 기간을 성전의 기초석을 정초(定礎)한 시점부터 계산하고 있다.
그 설계와 식양대로. 솔로몬 성전의 전체 건축 내용은 일찍이 선왕(先王) 다윗이 솔로몬에게 알려준 것이다. 나아가 성전의 설계와 식양은 성령께서 다윗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대상 28:11 이하, 특히 12절).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성전 건축은 솔로몬 즉위 4년 불월(B.C. 966년 2월)에 기초석을 놓음으로 시작하여(6:1), 솔로몬 즉위 11년 시브월(B.C. 959년 8월)에 완성되었다. 따라서 건축 기간은 보다 정확히 7년 6개월 걸린 셈이다. 그런데 성전 건축에 걸린 이 기간은 고대의 다른 대건축물에 비하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다. 에베소의 다이아나(Diana) 신전 건축은 무려 20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Pliny). 또한 애굽의 피라밋 건축에는 대개 20년이 소요되었다(Hammond). 이와 비교하면 그토록 화려하고 정교한 건물을 완공하는 데 7년 남짓 걸렸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1) 성전이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는 점, (2) 많은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최선을 다했다는 점, (3) 그리고 다윗 시대부터 세심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솔로몬 성전 건축은 긴 세월 동안 정성을 다한 대건축 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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