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람. 두로 왕 ‘히람’의 이름은 원문 10, 18절에서는 ‘히롬’으로, 역대기에서는 ‘후람’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었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해이로모스’로 표기하였다. 어쨌든 이 왕은 삼하 5:11과 대하 2:3에서 보여지듯 선왕 다윗에게 건축 자재를 보내준 인물이다. 한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성전 건축을 시작하던 해, 즉 솔로몬의 즉위 4년은 두로 왕 히람의 즉위 11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히람은 적어도 20년 이상을 솔로몬과 교류하였다(9:10). 따라서 히람은 그의 재위 기간이 다윗 시대 보다는 솔로몬 시대에 보다 더 장기간(長期間)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Bähr, 9:10-14). 삼하 5:11 주석 참조.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두로 왕 히람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게 된 계기는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듣고서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신하’는 새 왕을 승인하고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使節)이다. 두로와 이스라엘의 우호 관계는 후대에까지 계속될 만큼 밀접한 것이었다(행 12:20). 그 주요한 이유는 좁은 해안 지대인 두로는 경작지가 충분치 못함으로 이스라엘에 곡물 수입을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Hammond). 이러한 사실은 9, 11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평생에’의 원어 ‘콜 하야밈’은 ‘모든 날에’란 뜻이다. 이것은 다윗과 히람이 각각 왕으로 통치하는 기간 동안 서로 친구로서 항상 우호 관계 속에서 지냈음을 의미한다(Keil). 처음 히람이 건축 자재와 일꾼들을 보내 다윗과 우호 관계를 맺게 되자 다윗은 그 일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었다(삼하 5:11, 12).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성전 건축을 열렬히 소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즉 다윗은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으므로 성전 건축의 기회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형편에도 불구하고 다윗 자신은 성전 건축을 하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빈번한 전쟁을 치른 결과, 다윗은 피를 많이 흘리게 하였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평화의 성전 건축에 적격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대상 22:8, 28:3).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 건축의 목적으로서, 이는 “오직 …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 하신 곳”(신 12:5, 11)이라는 유일 중앙 성소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뜻(대상 22:8-10, 28:2-6)을 분명히 안 다음, 다윗은 자신의 후계자로서 장차 자기 대신 성전 건축 사역을 담당할 솔로몬에게 가능한 한 많은 도움과 편의를 주기 위해, 성전 건축에 필요한 기술자와 제반 자재들을 충분히 비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대상 22, 29장).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성경에서 ‘발’(히, 레겔)은 보통 종속, 비하의 관계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발은 신체의 하부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Dentan). 예를 들면 ‘발 아래 두다’는 정복과 피지배 관계를, ‘발 아래 앉다’는 선생과 제자의 종속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시 8:6, 눅 10:39). 따라서 본 절 역시 정복하여 지배하는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시 91:13, 사 63:3, 롬 16:20, 엡 1:22, 히 2:8). 실제로 발견된 고대 앗수르의 그림 중에는 정복자가 적의 몸을 발바닥으로 누르고 있는 그림이 있다.
원수도 없고. 여기서 ‘원수’(히, 사탄)은 ‘방해하다, 반대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구약에서 보통 사람의 길을 막는 방해자, 전쟁에서의 적군, 또는 법정에서의 고소자 등을 의미하는 데에 사용되었다(Gaster, 민 22:22, 삼상 29:4, 시 109:6, 7). 한편, 11:14, 23에서 솔로몬의 대적으로 나타나는 하닷과 르손의 반역 행위는 분명 성전 건축 후의 일로서, 솔로몬 통치 후기의 사건이다(Keil). 그리고 그것은 후기에 이르러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타락한 솔로몬의 불순종 때문에 내린 하나님의 징계였다.
재앙도 없도다. 여기서 ‘재앙’(히, 페가)은 ‘졸지에 찾아오는 불행’(misfortune, RSV), ‘갑작스러운 재난’(disaster, NIV) 같은 것을 의미한다(전 9:12). 구체적으로는 다윗이 겪었던 반역, 기근, 역병 등이 이에 해당된다(Bähr, 삼하 15:14, 20:1, 21:1, 24:15). 다윗은 이러한 재앙을 많이 겪은 ‘고난의 왕’이었으나, 성전 건축을 담당할 솔로몬은 ‘평강의 왕’(대상 22:9)으로서, 이와 같은 재앙들이 전혀 미치지 않은 것이다.
하신 대로 … 건축하려 하오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려는 것은 자신의 야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부친 다윗의 유지(遺志)를 따르려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Hammond).
내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 할 것이요. 영역본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은 ‘나의 종들을 보내 당신의 종들 곁에서 일하게 하겠다’(I will send my men to work beside them)로 번역하였다. 즉 벌목(伐木)하는 일을 돕겠다는 뜻이다.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드리리이다. 본 절의 뜻이 한글개역 성경에서는 좀 모호하다. 그러나 영문 성경은 ‘당신이 요구하는 대로 임금(whatever wages you ask, Living Bible; such wages as you set, RSV)을 지급하겠다’로 번역함으로써 보다 선명하다. 공동번역도 이와 비슷하게 “당신의 신하들에게는 당신이 정하는 급료를 지불해 드리겠습니다”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솔로몬의 말에서 그의 부(富)에 대한 정보를 가늠할 수 있다(대하 2:10).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 하는 자가 없나이다. 벌목(伐木)에는 단순히 나무 자르는 기술 뿐만 아니라 쓸 만한 나무를 골라 적절한 시기에 자르고, 또 이를 적절히 보관하는 등, 보다 광범위한 지식이 요구된다(Keil). 그런데 시돈 사람(the Sidonians) 곧 베니게인들 중에는 그러한 건축 기술자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베니게인들은 무역 중심의 생활을 해왔던 관계로 예전부터 선박 건조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Movers, Schnaase).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농경, 목축 생활을 해왔으므로, 목재를 사용하는 건축 기술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여기서 ‘시돈 사람’(히, 치도님)이란 명칭은 곧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본래 베니게는 도시 국가 형태로서, 곧 시돈과 두로의 두 주요 도시로 구성된 국가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두로보다 시돈이 보다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이 베니게인들을 속칭 ‘시돈 사람’이라고 불렀다. 특별히 여기서는 백향목이 있는 지역이 시돈 지역에 속했고, 또한 시돈 성의 주민들이 보다 뛰어난 건축 기술을 갖고 있었으므로 이처럼 시돈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역시 두로 왕 히람의 통치 영역에 속했다(Keil, Hammond).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찬양할지로다’(히, 바루크)의 기본 뜻은 ‘무릎꿇다’이다. 그러므로 찬양이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행위이다. 그런데 본 절의 ‘찬양’은 히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믿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Keil, Hammond). 사실 히람이 다스리던 베니게 지역은 다신 숭배, 특히 바알 숭배가 성행했던 곳이다(Kapelrud). 그러므로 히람은 단지 대부분의 고대 근동인들의 신앙 태도처럼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로서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인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창 26:28, 29). 그렇다면 본 절은 히람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시작할 수 있을만큼 안정과 부를 주셨음을 크게 인정하는 표현이라 하겠다(대하 2:12). 한편 이런 견지에서 70인역(LXX)은 본 절을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만하다’로 적절하게 번역하였다(Hammond).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부친 다윗과 마찬가지로 계속 히람과 화평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솔로몬의 처신이 두로 왕 히람에게 ‘지혜롭게’(현명하고 분별력 있게) 비쳐졌을 것이다.
잣나무 재목. 잣나무(fir, KJV; cypress, RSV)는 보통 백향목(cedar) 보다는 못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역시 병충해, 부패에 강하여 내구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튼튼하고 가벼워 좋은 건축재이다(Winer).
당신이 지정하는 곳. 역대기 기록에 의하면, 이 장소는 바로 욥바이다(대하 2:16). ‘욥바’(Joppa)는 ‘아름다움’이란 뜻을 가진 예루살렘 최근교의 항구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56 km 가량의 거리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바위들로 자연 방파제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천연의 선박 기항지였다(Gold). 그런데 정작 레바논에서 욥바까지의 바닷길 보다도 욥바에서 예루살렘까지의 험하고 울퉁 불퉁한 육로가 목재를 운반하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Hammond).
음식물을 주소서. 베니게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뻗어 있는 길고 좁은 나라이다(Kapelrud).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페니키아(베니게)는 임산물(林産物)이 풍부한 대신 농작물(農作物)이 부족했다. 실제 베니게 지역에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평야 지대는 대략 75 제곱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에 불과했다고 한다(Josephus). 따라서 비록 비옥한 땅이기는 해도 실제 경작 면적은 결코 넓지 못했다. 그러므로 베니게는 외국으로부터의 식량 수입에 상당량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의 교역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식량이었다(스 3:7, 겔 27:17).
재목을 주매. 여기서 ‘주매’(히, 노텐)는 분사형으로서, 곧 계속 공급하여 주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솔로몬과 히람의 이러한 교역은 성전과 왕궁 건축이 모두 마칠 때까지 근 20년 동안 지속되었을 것이다.
맑은 기름. ‘맑은 기름’(pure oil, KJV)이란 감람 나무 열매에서 짜내는 식용유, 즉 올리브 유(油) 중의 고급 기름이다. 설익은 감람 나무 열매를 따서, 그것으로 올리브 유를 짜낼 때 처음 나오는 기름을 따로 모으면 그것이 바로 맑은 고급 기름이다(Masterman). 이 기름은 일반 기름보다 더 흰 색깔을 띠고 있으며, 맛은 더 순수하다고 한다(Bähr, Symbolik).
고르. 액체 또는 고체의 용량을 재는 가장 큰 단위로서(4:22), 학자에 따라 180 리터(D. J. Wiseman, D. H. Weaton), 210 리터(O. R. Sellers), 380 리터(KB) 등으로 다양하게 추정하나, 대략 230 리터 가량 되는 용량 단위이다.
친목. 여기서 ‘친목’(히, 샬롬)은 4:24의 ‘평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말이다.
약조를 맺었더라. ‘약조’(히, 베리트)는 성경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언약’으로 번역되었다(창 6: 18, 신 31:16, 삼하 3:13 등). 그런데 ‘베리트’는 법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의무를 말한다. 그리고 이 ‘베리트’를 맺는 데는 보통 종교적 의식(儀式)이 따랐다(Vos). 실제로 본 절의 ‘약조를 맺다’(히, 카라트 베리트)는 ‘언약을 자르다’(cut a covenant)라는 원어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계약 당사자들이 희생제물을 자른 후 그 사이를 지나가는 맹세 의식을 가진 데서 비롯된 듯하다(창 15:10, 렘 34:18). 한편, 삼상 22:8의 원문에서는 ‘자르다’의 뜻인 ‘카라트’만으로 ‘맹약을 맺다’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였다(Payne).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 그 역군의 수가 삼만 명이라. 본 절의 역군 삼만 명은 이스라엘인들로서 15절의 이방인들로 구성된 짐꾼 칠만 명과 돌 뜨는 자 팔만 명과는 구별된다(Keil, 9:21, 대하 2:17). 즉 본 절의 이스라엘 역군들은 아도니람의 지휘하에 만 명씩 석 달에 한번 윤번제로 일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집에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이스라엘 역군 삼만 명은 히람의 기술자들을 도와 벌목(伐木)작업을 조력하는, 비교적 가벼운 노동을 맡은 자들이었다(Thenius). 따라서 본 절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를 삼지 않았다는 9:22과 모순되지 않는다(Wycliffe).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여기서 ‘감독’(히, 알 하마스)은 4:6의 ‘노동 감독관’과 같은 말이다. 4:6 주석을 참조하라.
짐꾼. ‘짐 나르는 사람’(transporter)을 의미한다. 이들의 임무는 벌목한 나무나 뜬 돌을 일정 지점까지 운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돌을 뜨는 자. ‘돌을 뜨는 자’란 ‘돌을 자르는 사람’, ‘석수’(hewer, KJV; stone-cutter, Living Bible)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의 숫자가 팔만이나 되고 또 산에서 일을 한 것을 보면, 이들의 일은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기 보다는 단순 노동에 가까운 것, 즉 채석공(採石工)으로서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번역의 ‘돌 깨는 사람’은 적절한 표현이다. 보다 기술적인 작업은 히람의 건축 기술자들이 담당하였을 것이다. 한편, 목재의 벌목 작업과는 달리 돌의 채석 작업은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목재와는 달리 돌은 먼 거리 수송이 결코 용이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서도 채석은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Patterson). 고고학적 발굴 결과, 예루살렘 성 바로 근교에 ‘솔로몬의 채석장’이라고 불려진 대규모의 채석장(採石場)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Wood). 그렇지만 성전의 기초석으로 사용될 크고 우아한 돌은 레바논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Hammond).
떠다가 다듬어서. 성전 기초석으로 놓이게 될 ‘크고 귀한 돌’은 하나 하나가 빈틈없이 꼭 맞아 들어가도록 8 규빗 내지는 10 규빗의 정방형 크기로 다듬어졌다. 그리고 6:7로 미루어 보건대, 이 돌을 잘라내고 다듬는 작업은 채석장 현지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 갖추니라. 솔로몬이 히람과 협정을 맺은 목적인 성전 건축 준비 작업이 마무리 되었음을 보여 준다(Keil). 한편, 70인역은 이 모든 준비를 갖추는 데 3년이 걸렸다고 덧붙인다(Hammond). 이러한 추론은 아마도 본격적인 성전 건축 공사가 솔로몬 즉위 제4년째부터 시작되었다는 6:1의 연대기적 진술에 근거한 것 같다. 왜냐하면 솔로몬과 히람의 협정은 분명 솔로몬 즉위 초에(5:1) 진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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