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딸을 맞이하고. 솔로몬이 애굽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율법에 위배된다고는 볼 수 없다(Bähr, Keil 등). 즉 일찍이 요셉과 모세에게서도 그러한 전례(前例)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창 41:45, 민 12:1), 모세 율법에 명시된 가나안족과의 혼인 금지 조항에 저촉되지도 않기 때문이다(출 34:16, 신 7:3). 오히려 율법은 전쟁시에 취한 이방 여인과 결혼도 허용했다(신 21:13).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솔로몬의 결혼을 타락 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는 후일에 솔로몬에게 우상 숭배의 악영향을 끼친 왕비들 중(11:1-7) 바로의 딸이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Edersheim, Keil). 그러므로 본 절은 다만 솔로몬의 위세가 바로의 딸을 취할 수 있을만큼 강력했다는 점과 함께 이후 계속되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이 시작되었음을 소개하는 구절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여기서 바로의 딸이 자신을 위한 궁(宮)이 지어지기까지 임시적으로 거주한 ‘다윗 성’(히, 이르 다윗)은 일찍이 요새화된 고대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Keil, Bähr, Patterson). 이는 여호와의 궤가 위치한 영역으로 보이는 ‘다윗 궁’(히, 베트 다윗)과는 구별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대하 8:11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대하 8:11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다윗 궁에 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궤(법궤)가 안치된 장막이 다윗 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 궁은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선포되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인 바로의 딸이 그곳에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바로의 딸은 다윗 성으로 불리우던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기는 했지만, 다윗 궁 안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그러던 중 궁전 공사가 필역된 후,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궁으로 그녀를 인도했다(9:24).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 …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솔로몬은 즉위 4년 즉 B.C. 966년 경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B.C. 959년 경에 완공하였다(6:1, 38). 이처럼 7년에 걸쳐 성전 건축을 필역한 다음 솔로몬은 바로 궁전 건축에 착수하였다. 즉 솔로몬은 즉위 11년 즉 B.C. 959년에 궁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즉 B.C. 946년에 궁전 건축을 완공하였다. 따라서 궁전 건축에는 13년이 걸렸다(7:1). 결국 솔로몬의 주요 건축 공사는 도합 20년의 세월에 걸쳐 완공되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희생제물은 반드시 회막으로 가져와야 하고 야외에서 드릴 수 없었다(레 17:3-5).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신 12:11)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명하셨다. 여호와께서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금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타락한 우상 숭배를 행하여지는 곳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거짓 예배가 진행될 거짓 성소의 난립을 막기 위함이었다.
가나안 생활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제사를 드렸다. 그곳이 처음에는 실로였다. 그래서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렘 7:12)라고 불렸다. 그러나 법궤가 떠난 이후 실로는 황폐화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의 영향으로 산당을 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성전이 세워지기 이전까지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나라 전역의 여러 곳에서 제사를 드렸다(삿 6:25-26, 13:16, 삼상 7:10, 13:9, 14:35, 대상 21:26). 사울이 처음으로 성읍에서 사무엘을 만난 것도 사무엘이 백성들과 식사하기 위해 산당으로 막 떠나려던 때였다(삼상 9:12-14). 이런 산당 예배는 솔로몬 취임 당시까지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그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던 이유이다(2절).
혹자는 본 절의 산당(山堂) 제사를 백성들의 종교적 결함으로 해석한다(Rowlinson). 그런데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전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 절의 의미는 아직 유일한 제사 성소인 성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불가피하게 산당 제사를 했던 당시 형편을 알리는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Hammond). 이런 점에서 여기 ‘산당’(히, 바마)은 우상 숭배 장소인 가나안 족속들의 산당과는 구별되는 곳으로, 단순히 제사와 기도의 장소일 뿐이었다(Keil). 드보(De Vaux)는 당시 산당의 형태는 흙무덤 같은 작은 언덕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의 ‘제단’(히, 미즈베아흐)으로 구성되었지만, 때로는 제단 곁에 여러 개의 부속 시설을 갖추는 등 꽤 정교하게 구성된 산당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솔로몬 시대에 산당 제사가 보편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리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이후(삼상 4:11), 그 법궤가 실로→놉(삼상 21:1-9)→기브온(대상 16:37-40)→예루살렘(삼하 6:16) 등으로 옮겨다닌 결과 백성들은 제사의 구심 장소를 상실하고 각자 나름대로 산당을 만들어 제사드렸기 때문일 것이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다윗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이다(8:16).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를 넘어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의 가치를 인정받아, 향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의(義)의 척도로 등장한다. 그런고로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 알았고, 이후 이스라엘 왕들은 축복을 받으려면 다윗의 행함을 본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PEB, 9:5, 왕하 20:5, 대하 21:12). 결국 본 절은 솔로몬 치세의 번영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본 절을 부정적 의미로 해석한다(Hammond 등). 사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족속의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민 33:52), (2) 이후 열왕기에서 ‘산당’은 우상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남을 기억할 때 그것은 타당하다. 게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회상하며 기록했을 열왕기 기록자는 여기 본 절에서 솔로몬 왕국의 번영 이유와 타락 이유를 나란히 기록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당시는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고(2절), 다음 장면에서 산당은 솔로몬이 여호와께 지혜를 받는 긍정적 장소로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4-15절), 아직 지나치게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한다(Keil, Bähr). 다만 위험한 가능성을 가질 뿐이다. 그 위험의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1) 여호와의 유일 중앙 성소 명령(신 12:5-14, 18, 21, 26)을 소홀히 할 위험성과 (2) 산당을 중심으로 드려지는(신 12:2,3)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행위를 본받을 위험성이다(Patterson). 그런고로 여호와의 성전이 완공된 이후, 이러한 산당은 전혀 불필요했고 또한 결코 합법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통치자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산당 제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한 왕들 조차도 산당을 훼파하는 데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 행위에 빠지고 말았다(Patterson, Keil).
그 제단에. 기브온 산당의 모세 성막(출 27:1-2, 38:1, 2) 안에 있던 놋 제단을 가리킨다(대하 1:3-6).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일천의 숫자가 횟수인지 양(量)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쪽이든 엄청난 규모임엔 틀림없다. 솔로몬은 백성들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기 전 무엇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원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가 자신과 백성들을 하나님께 전적 헌신하는 하나의 신앙 고백으로서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한편, 번제(히, 올라)는 희생제물을 통째로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1)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원할 때 (2)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할 때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는 자원제이다(레 1:3). 그러므로 솔로몬도 이러한 목적으로 그의 통치 초기에 왕 개인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헌신을 위하여 이처럼 기브온 산당에서 이 ‘올라’를 드린 것이다(Tosef).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규모면에서 ‘일천 번제’(히, 엘레프 올로트)라는 전무후무한 성격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전적 헌신의 징표일 뿐 아니라, 즉위 초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과 순종에의 열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제사 제물들을 열심히 드린다 할지라도 최소한 칠 일 또는 팔 일이 소요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J. Hammond). 여하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신하가 군주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충성과 헌신의 표시로 생각되었다(IDB, 시 68:18). 그러므로 일천 번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믿고 모시는 솔로몬과 백성들의 신앙 고백 행위이다.
그럼 솔로몬이 직접 번제를 드렸는가? 우선 이 본문에는 왕 자신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면서 직접 번제를 드렸는지 여부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왕이 혼자 그 엄청난 수의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솔로몬이 그 제단에 … 번제를 드렸다”는 표현은 단지 제물을 드린 주체를 왕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그건 왕의 주관 아래 이루어진 일들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경우도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왕상 6:2)하였다고 표현한다. 이 말이 왕이 직접 석공과 목수의 일을 하였다는 의미가 아님은 자명하다.
‘일천 번제’는 그 제사에 참여한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일 수 있다. 기브온 산당의 제사는 솔로몬 혼자 드린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제사를 드리러 가면서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재판관들과 온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족장들”(대하 1:2)과 함께 갔다. 솔로몬은 후에 이보다도 더 엄청난 수의 번제를 드린다. 예루살렘 성전 봉헌 기념 제사를 드릴 때이다. 그때 그가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의 봉헌식을 행하였”(왕상 8:63)다. 이 모든 제물을 솔로몬이 직접 드렸을 리 없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인 일천 번제에 이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희생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큰 일을 하시고자 했음을 의미한다(Patterson). 여기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이제 시작될 통치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려는 목적이 있었다(Keil). 따라서 솔로몬에게는 여호와의 뜻에 부합한 정당한 간구를 할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마 6:33, 7:7, 약 4:3).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다(신 32:4).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었던 2대 비결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cum Deo),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행하였기 때문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
큰 은혜. ‘큰 은혜’(히, 헤세드 가돌)의 문자적 의미는 ‘크신 친절’(great kindness) 또는 ‘크신 긍휼’(great mercy)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들은 다만 행한 것에 대한 보답이 아닌 오직 은총일 따름이라고 솔로몬은 겸손히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혜’(히, 헤세드)는 보통 ‘언약’과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8:23, 신 7:9, 12, 느 9:32, 단 9:4, 미 7:20 등). 즉 언약 관계에서 주어지는 친절, 사랑, 긍휼, 호의 등이 바로 ‘헤세드’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별히 여기서는 당신의 언약을 따라 다윗 가문을 선택하셔서 영구한 왕위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호의를 의미한다(1:48, 2:4, 45, 대하 1:8, 9).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출입하다’(히, 야차 와보)란 말을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란 뜻인데, 이는 곧 맡은 바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키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 말은 왕으로서 어떻게 백성들을 성공적으로 잘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이다(민 27:17, 신 28:6, 31:2, 삼상 18:13, 시 121:8).
그들은 큰 백성이라 …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이 말은 일찍이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창 13:16, 15:5, 22:17). 한편, 솔로몬 당시의 인구 수는 확실치 않으나, 다윗이 그의 말년에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만 130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삼하 24:9).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로 ‘땅의 티끌’(창 13:16), ‘하늘의 뭇별’(창 15:5), ‘바닷가의 모래’(창 22:17) 같이 번성하도록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었다.
듣는 마음. ‘듣는 마음’(히, 레브 쇼메아)은 문자적으로는 ‘듣는 마음’이다. 그런데 ‘듣다’란 동사 ‘샤마’는 ‘복종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루터(Luther)가 이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은 의미가 깊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서 얻는다고 보기 때문이다(시 119:97-99, 잠 2:6-9).
선악을 분별하게. 통치자로서 백성들의 제반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할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다. 만일 통치자가 백성들 사이의 제반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를 옳게 가려 주지 못한다면,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잘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듣는 마음’을 구했다. 한편 솔로몬이 구한 이러한 마음는 결코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서, 그 일례가 16-28절의 판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후일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역사속에서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대상 29:25, 대하 9:22).
법도와 명령.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중언법적 표현이다(2:3). 신 4:1 주석 참조.
지키면 … 네 날을 길게 하리라. 간구한 대로 솔로몬이 총명한 지혜를 받을 수 있었고, 덧붙여 장수와 부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따라 행했기 때문이었다(3절). 따라서 솔로몬이 이후 계속해서 그같은 지복(至福)의 상태를 누리려면, 변함없이 즉위 초기와 같은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솔로몬은 점점 여호와의 길에서 벗어나 타락하였다(11:9-13). 그 결과 솔로몬은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다(Keil, Hammond).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관념상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비단 영적인 의미 뿐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의미를 지녔는데, 솔로몬은 60 세 안팎의 다소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다.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 잔치하였더라. 기브온 산당의 제사를 모두 마친 후 솔로몬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법궤가 있는 시온 산 제단에서 새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그런데 기브온에서와는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특별히 감사의 제물(히, 쉘라밈)가 추가되고 있다. 여기서 이것은 곧 레 3:1-17, 7:11-21, 28-34에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화목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감사를 표시하는 제사이다. 즉 솔로몬은 기브온의 일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약속을 얻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마자 감사를 드리고 있다. 한편 이 화목 제사에 쓰인 제물들은 신하들과의 잔치에 사용되었을 것이다(레 7:15, 31, 삼상 2:16).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다윗 통치 이후 솔로몬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장막이 있었다. 하나는 기브온에 있는 원래의 장막이고(대하 1:3),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시온 산 위에 있는 임시 장막이다(삼하 6:17). 그런데 기브온 장막은 원래 모세의 장막과 같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여호와의 궤(법궤, 언약궤)가 없었다. 반면 시온 산 위의 장막 속에는 여호와의 궤가 안치되어 있었지만, 온전한 장막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즉 두 개의 장막이 불완전한 상태로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다윗시대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양쪽에서 이중으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면 다윗은 왜 언약궤와 장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영구한 여호와의 성전 건축 계획이 있었으므로, 무리하게 한 쪽을 철수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인해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제사를 필한 후,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응답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서 새롭게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린 것이다.
창기 두 여자가. ‘창기’(娼妓)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나’가 반드시 ‘창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자들은 여기의 ‘창기’를 ‘여관집 여 주인’(hostess)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Bähr, Hammond). 또 혹자는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하도록 하라’는 신 23:17의 율법에 근거하여 이들을 이방인 창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rotius). 그러나 율법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창녀는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내내 존속해 왔고(IDB), 또한 이들은 여관을 거처로 삼아 여행자들에게는 여관집 주인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창 38:14), 그리고 본문의 창기들은 한 집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17절), 이들의 남편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원래의 번역과 의미가 타당하다고 본다.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분명 이 ‘두 창기 사건’은 하위 재판관들에 의해 해결되지 못한 어려운 사건으로서, 결국 최고 재판관인 솔로몬 왕에게까지 올라온 어려운 사건이었다. 따라서 당시 솔로몬은 일종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만일 솔로몬까지도 이 사건을 해결치 못한다면, 그는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지혜와 자질이 의심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하여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케 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던 것이고(9절), 하나님께서는 그 응답으로 송사(頌辭)를 듣고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솔로몬에게 주셨던 것이다(11, 12절).
나와 이 여자가 한 집에서 사는데. 아마 이 두 여인은 같은 여관을 거처로 삼고 매춘 행위를 하는 창기였던 것 같다. 실제 당시 가나안 땅의 어떤 여관에는 이러한 창기들이 기거하고 있었다고 한다(수 2:1).
본즉 죽었기로. [히, 힌네 메트] 직역하면 ‘보라! 죽어 있도다’란 뜻으로, 곧 여인의 경악과 놀라움이 나타나고 있는 장면이다.
자세히 보니. 여기서 ‘자세히 보다’(히, 빈)는 꼼꼼하게 살펴 분별하여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단 10:1, 삼상 3:8, 스 8:15, 시 37:10).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왕의 명령의 진의(眞意)도 모르고 선뜻 동의하는 이 여자의 말은 모성애의 참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따라서 이 여인이 애초에 보였던 아이에의 강한 집착(20, 22절)도 사실은 진정한 아이 사랑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질투와 소유욕 때문이었음이 자명해졌다. 따라서 그 여인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생명을 물화(物化)시키는 지극히 비 인간적인 응답을 선뜻 하고야 만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권위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수 1:17, 삼상 11:6, 7, 왕상 1:37). 그런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표징은 재판의 지혜로운 판결이었다. 이것은 이전의 지도자들이 군사적 승리로서 권위의 표징을 보여 주었던 것에 비해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요구되는 권위였던 것이다(삿 6:12, 14, 삼상 11:11, 15, 18:27, 28). 한편 본 절은 12절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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