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하여 가로되. 다윗이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남긴 명령은 대상 28-29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 절 이하의 내용은 다윗이 왕위 계승자인 아들 솔로몬에게 사적(私的) 유언의 형태로 당부하는 말이다. 한편 본서가 솔로몬 즉위 이후의 다윗의 활동을 생략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와 달리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너는 강하게 되어라! 그리고 남자가 되어라’란 의미이다. 이러한 다윗의 권면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권면해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수 1:6-4). 한편 혹자는 다윗의 이 말을 통해 당시 솔로몬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그리고 사실 즉위식 이후에도 다윗은 솔로몬을 ‘어리고 미숙한’ 아들로 말하기도 한다(대상 29:1). 이런 맥락에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의 전통으로 미루어 즉위시 솔로몬의 나이를 14세 정도로 보았다. 혹자는 12세로 보기도 한다(Eupolemus). 아무튼 20세가 채 안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Hammond). 그러나 여기서 대장부가 되라는 다윗의 말이 결코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다(삼상 4:9). 오히려 이 말은 여호와의 율법 준수의 임무를 행함에 있어 담대하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Keil, Bähr). 왜냐하면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에게서도 ‘담대한 것’과 ‘율법 준수’는 상호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수 1:7).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이다. 따라서 데니우스(Thenius)의 견해처럼, 다윗의 이 말을 부친의 죽음을 남자답게 용감히 견디도록 위로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상 타당치 않다(Keil).
그 길로 행하여. 여기서 ‘길’(히, 데레크)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의 도(道)이다. 구체적인 예로, 신 32:4에 의하면 하나님의 길은 정의의 길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통치할 때 ‘정의’를 기본 강령으로 삼아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도로 다스려야 했다.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여기서 ‘법률’(히, 훅카)과 ‘계명’(히, 미츠와)과 ‘율례’(히, 미쉬파트)와 ‘증거’(히, 에두트)를 각각 개별적으로 다른 대상들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들을 구별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으나, 불가능하고 또한 불필요하다(Hammond).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모세 율법 그 전체를 강조하여 제시하려는 중언법(重言法)적인 표현이다(Keil).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처럼 비슷한 어휘가 반복되어 나란히 등장하는 예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신 5:31, 8:11, 시 119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했다. 인간이 세운 법과 제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칫 소수 집권층만을 위한 악법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므로(롬 7:12), 그 법대로 통치하는 자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공의와 평강의 나라이다(계 11:15).
형통할지라. 사전적 의미에서의 형통(亨通)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형통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스킬’은 ‘지혜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지혜롭게 되고, 또한 지혜로운 그가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형통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Bähr). 그러므로 ‘형통’(히, 사칼)이란 말이 뜻하는 잘 되는 그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지혜’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만일 네 자손이 … 행하면. 이 조건은 원래 나단의 메시지 (삼하 7:8-16) 속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8:25, 9:5 등). 그런데 애초 이 내용은 신명기에 기록된(신 6: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 위탁한 교육적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도 이러한 의무에서 제외되고 있지 않다(신 17:18-20).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신 6:5 주석 참조.
내게 행한 일 곧 … 네가 알거니와.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는 삼하 2-3장과 19-20장을 각각 참조하라. 그런데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군대 장관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기심 때문이었다(삼하 3:6-39, 20장). 여기서 특기할 것은 요압의 그러한 살해 행위를 다윗은 마치 자신에게 행한 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은 다윗의 권위에 대한 멸시와 도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Bähr, 삼하 3:26, 20:11). 적어도 요압은 다윗 왕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을 바친 훌륭한 전사였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방자하고(삼하 18:5, 14) 거칠었던 것 같다(삼하 3:27, 18:14). 그래서 끼친 공(功) 못지 않게 자주 다윗 왕가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 중에서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행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요압의 치명적 실수로서, 다윗은 그 사실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을 명하고 있다.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다윗은 아브넬과 협상하여 평화적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려 했었다(삼하 3:21). 또한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왕국의 재정비를 도모하려던 때였다(삼하 19:13, 20장).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평화의 노력이 요압의 살해 행위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다. 따라서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계략으로 살해한 행위는 다윗을 심히 분노케 했다(삼하 3:29).
전쟁의 피를 … 띠와 … 신에 묻혔으니. 여기서 ‘띠’와 ‘신’은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갖추어야 할 것들로서, 주로 전쟁에 임하는 전사(戰士)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 도구였다(Keil, Bähr). 만일 요압이 전쟁 중에 정정 당당히 싸워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피를 띠와 신에 묻혔다면, 그것은 결코 책할만한 일이 못될 것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태평한 시대에, 곧 다윗이 탕평책을 쓰고 있는 즈음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 및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전쟁터에서나 묻혔어야 할 피를 명분없이 흘리게 했으니, 그것이 곧 요압의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다.
그의 백발이 평안히 …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그 무렵 요압도 고령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백발의 평안한 죽음은 죄 없는 자의 죽음으로서, 요압 같은 자에게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Bähr). 왜냐하면 요압은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31절). 히브리인들은 무고한 자의 흘린 피는 그 피값이 보상될 때까지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고(창 4:10), 또한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현세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했다(수 2:19, 마 27:24, 25). 한편, 이처럼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창 9:5, 6)는 피의 보상 원리에 입각하여 다윗은 요압이 그 피 흘린 죄를 반드시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솔로몬에게 권고한 것이다. 그러면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는가? 카일(Keil)은 당시 다윗으로서는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즉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새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한다(Leon Wood).
스올. 죽은 자들의 사후 거처 또는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식 표현. 창 37:35, 민 16:30, 신 32:22, 삼상 2:6, 삼하 22:6 주석 참조.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다윗의 이 부탁의 의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1) 왕 자신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Keil)와 (2) 왕궁에서 음식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Bähr).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두 가지 형태를 모두 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식탁을 보고 놀랐으며, 솔로몬 왕궁의 매일 음식 소비량이 굉장히 많았다는 기록이 있기 매문이다(4:22, 23, 10:5). 어쨌든 이 일은 원래 다윗이 한때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어려음에 처한 자신에게 음식물을 공급한(삼하 17:27-29) 바르실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해왔던 것인데, 이제 솔로몬에게도 그 선행 보답을 계속하도록 부탁하고 있다(삼하 19:33, 37).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다윗이 피난 길에 나서는 극도의 곤경에 처했을 때, 바르실래는 여러 가지 식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선행을 베풀었다(삼하 17:27-29). 따라서 후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다시 환궁 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는 바르실래에게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겠노라고 약속했다(삼하 19:31-39). 본 절은 다윗이 바로 그러한 바르실래의 선행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바르실래와 맺은 약속을 솔로몬 역시 계속 지켜 나가도록 요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게라의 아들. ‘게라’는 베냐민의 손자이므로(창 46:21, 대상 7:6) 시므이의 아버지일 수 없다. 또한 시므이보다 약 300년 전의 인물인 사사 에훗도 ‘게라의 아들’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삿 3:15) 이 말은 ‘게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J. Hammond).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여기서 ‘너와 함께 있나니’(히, 임메카) 란 말은 곧 너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이는 솔로몬이 거주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가까운 곳에 시므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Keil, Bähr). 그러므로 이 말은 혹자(Starke)의 견해처럼 시므이가 솔로몬의 권력하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므이’에 대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구체적인 저주의 내용은 삼하 16:7, 8에 나타나 있다. 한편 학자들은 여기서 ‘악독한 말’(히, 켈랄라 니므레체트)을 ‘강렬한 말’(Gesenius), ‘거친 말’(Keil), ‘악한 말’(Thenius) 등으로 번역한다. 여하튼 시므이의 그 저주 까닭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혹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정도로 시므이의 악독한 말(저주)은 다윗에게 원통함을 깊이 심어준 말이었다(삼하 16:12).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시므이는 급히 환영단 천 명을 이끌고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 왕을 영접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삼하 19:16-2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내가 …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당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막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므이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용서는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하 19:21, 23 주석 참조.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 내려가게 하라.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삼하 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民心)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처단해야할 존재로 생각했다. 사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이 견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癌的)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한편, 혹자는 용서받은 후 시므이의 행동이 신실한 회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윗이 이처럼 명령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Richard D. Patterson). 또한 일부 학자들(Stanley, Harwood)은 주장하기를, 시므이를 처형시키라는 다윗의 명령은 ‘뿌리 깊은 증오심’ 내지는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복수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윗의 명령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원한이나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 내지는 ‘하나님 왕국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자에 대해 개인적인 용서의 차원을 넘어 신적 심판은 반드시 집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Keil, Hammond).
다윗 성.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은 성채로 시온 산성과 동일시 된다(8:1, 삼하 5:7, 대하 5:2). 그런데 시온 산은 두로포이온 계곡과 기드론 계곡 사이의 산을 가리킨다. 이곳은 종종 예루살렘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Wycliffe).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 보다 확장된 것이다(IDB). 그리고 역대 유다 왕들의 무덤은 시온 산 곧 다윗 성에 있었다(11:43, 14:31, 15:8). 한편, 다윗의 묘는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느 3:15, 16) 후일 사도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행 2:29).
헤브론에서 칠 년 동안 다스렸고. 다윗의 헤브론 7년 통치는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서 통치한 기간이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국을 통합하여 명실 공히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서 33년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한편, 다윗의 헤브론 통치기간에 대해 역대기는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7년으로 나타내고 있지만(대상 29:27), 사무엘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7년 6개월로 나온다(삼하 5:5).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대체로 이 부분은 앞으로 이어져 나올 내용의 요약으로 보고 있다(Keil, Bähr, Hammond).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대상 29:23-25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것은 일찍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삼하 7:12).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70인역(LXX)에는 아도니야가 절을 하였다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한편 1:11의 밧세바는 왕비였으나 지금 그녀는 태후(太后)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위치는 대단히 유력한 위치였다(J. Hammond). 그러므로 실제 열왕기에는 왕들의 모친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14:31, 15:10, 13, 왕하 11:1, 12:1, 14:2, 15:2 등). 그 중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의 전횡(專橫)은 특기할 만하다(왕하 11:1-3). 분명 이런 맥락에서 아도니야 역시 밧세바를 움직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밧세바에게 접근한 것이다.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화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샬롬’은 보통 인사말로서 주로 사용된다(창 43:27, 출 18:7). 그러나 궁금증이나 의혹을 담은 물음에서도 종종 사용된다(삼상 16:4, 왕하 5:21, 9:11, 17).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방문이 의아했을 것이다(Keil, Hammond). 왜냐하면 아도니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 솔로몬과 왕위를 놓고 다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도니야가 이제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이 본격 통치를 시작할 즈음에 갑자기 밧세바를 방문한 것이다. 따라서 밧세바는 경계심을 갖고 질문을 한 것이다.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이것은 분명히 상황 판단 착오로서, 사실 자체와 반대되는 곡해이다(1:20, 40). 물론 아도니야의 유력한 추종 세력이 있었지만(1:7, 9), 온 이스라엘의 지지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주장은 아도니야의 교만한 성품과 왕위에 대한 미련이 빚은 착각이다(1:5). 여하튼 교활하게도 아도니야는 본래 왕위가 자신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한 사실을 과장하여 상기시킴으로써, 은근히 밧세바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돌아가. 이 말은 본래의 원칙에서 벗어난 변칙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아도니야가 이 말 다음에 그러한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말로 돌리고는 있지만(Keil), 역시 내심으로는 왕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음과 아울러 솔로몬의 왕위를 인정치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J. Hammond, Patterson).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오른쪽 자리는 특히 고대 근동 사회에서 존대와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였다(Keil). 그리고 그러한 관례는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시 110:1, 마 20:21, 25:33, 행 7:56, 롬 8:34). 한편 본문이 이처럼 솔로몬의 극진한 예절을 소상히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솔로몬은 효성이 지극한 왕이었음을 알리고, 동시에 그러한 효성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모친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결코 괄시가 아니라 아도니야의 요청이 역모에 관련된 탓임을 나타내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결과적으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한 것이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왕위를 요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밧세바의 ‘한 가지 작은 일’이 사실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임을 단정한다. 한편 본 절 전체에서는 ‘위하여’에 해당하는 ‘로’가 세 번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하찮게 보이던 작은 부탁이 결국은 왕위를 노리는 의도였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즉 선왕의 후궁과 다름없는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17절) 원래 장자권을 가졌던 아도니야가(15절) 애초 자신의 1차 거사 세력과 재차 역모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21절의 밧세바의 말과 본 절의 솔로몬의 대답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사건을 보는 시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비아달과 … 요압을 위해서도. 여기서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의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1차 거사 실패 이후(1:7, 49)에도 이들 핵심 세력 3인은 왕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암중 모색해 왔던 것 같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과거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을 취하라고 권면한 자가 아히도벨이었던 것처럼(삼하 16:21), 이번에 아도니야에게 아비삭을 요구하라고 권면한 자가 혹 아비아달 또는 요압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Theodoret).
허락하신 말씀대로 … 집을 세우신.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이트’는 때때로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50:22, 수 2:18, 렘 38:17). 따라서 혹자들은 ‘자손’을 주신 것으로 보고, 곧 솔로몬은 여기서 자신의 왕위를 이을 아들 르호보암을 낳은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Keil, Wordswoth). 그러나 솔로몬의 결혼은 이 일 뒤에 있었으므로(3:1). 그러한 견해는 따르기 곤란하다(Bähr). 오히려 솔로몬의 이 말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견고한 왕위’를 허락해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12절, 삼하 7:11-16).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대로(삼하 7:11-16, 12:24, 25, 대상 22:6-10), 왕위가 다윗에 이어 솔로몬에게 주어짐으로써 그 왕위를 더욱 견고케 하셨다는 뜻이다.
죽을 자이로되 … 죽이지 아니하노라. 혹자는 이것을 제사장의 목숨은 왕이 결정하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나, 사울의 예로 미루어 합당치 못하다(삼상 22:16-19). 따라서 솔로몬의 이러한 조치는 역시 본문이 말하는 대로 부친 다윗을 도왔던 아비아달의 공로가 참작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비아달의 공로는 다음 두 가지이다. (1) 다윗 앞에서 여호와의 궤(언약궤 또는 법궤)를 메어 올린 일 - 제사장 아비아달은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대상 15:11-15)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피난할 때(삼하 15:24-29) 법궤를 맡아 책임짐으로써 다윗을 도운 적이 있었다. (2) 다윗과 환난을 함께 받은 일 - 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삼상 22:20-23, 23:6)와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도피할 때(삼하 15:24,35) 다윗과 함께 동고 동락했다.
엘리의 집 …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일찍이 하나님께서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의 집에 선포한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상 2:27-36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죄악으로 말미암아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하여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런데 여기서 열왕기 저자는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파면 사건을 그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써 아비아달은 이다말과 엘리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제사장 중 마지막 제사장이 된 셈이기 때문이다. 원래 아론의 네 아들들(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중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 분향 사건으로 일찍 죽었기 때문에(레 10:1, 2),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유력한 제사장 계열로 남는다(레 10장, 민 3:4, 대상 24:3). 그런데 아비아달은 엘리 집안 소속으로서 이다말 계열에, 사독은 엘르아살 계열에 각각 속한다(IDB, 삼상 14:3, 22:9, 대상 24:3). 그러므로 아비아달이 역모죄로 말미암아 솔로몬에 의해 파면된 것은 곧 대제사장직이 엘르아살 계통으로 완전히 일원화 되었음을 의미한다(Keil, 35절, 대상 6:1-8). 아울러 다윗 시대의 2명의 대제사장 문제(1:8)가 해결되었고, 결국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의 시종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섭리 주관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이 보여준다.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요압이 급히 도망친 ‘여호와의 장막’은 이전에 아도니야 역시 도망친 곳으로서, 이곳은 기브온에 있던 성막이 아니라(대하 1:3), 시온 산 위에 있던 장막이다(대하 1:4, Keil).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갈대아역(the Chaldee)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LXX, Vulgate, the Arabic)은 여기서 ‘압살롬’ 대신 ‘솔로몬’을 취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Thenius, Ewald)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여타 히브리어 사본들을 참조할 때, 그리고 문법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러한 본문 수정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Keil, Bähr).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 제하리라. 민 35:31-34의 율법에는 고의로 살인한 자는 결코 용서치 말 것과, 또한 그 죄값은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로써만 오직 갚을수 있다는 율례가 나온다. 그러므로 이런 맥락에서 아브넬과 아마사의 죽음에 책임을 갖고 있는 다윗 왕가는 그들의 피를 흘리게한 요압의 피로써 그 죄값을 속량할 의무가 있었다(삼하 21:1-9, 창 4:10, 9:6). 따라서 다윗은 임종시 이 사실을 유언으로 남겼고(5, 6절),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받들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마침내 무고히 피흘리게 한 죄값을 속량받아, 결국 피흘린 죄를 자신의 집으로부터 제할 수 있었다.
그가 자기보다 외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이 때문에 요압은 비록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지만, 솔로몬의 처사는 위법이 아니다(30절).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요압보다 의롭고 선한 인물로 보고 있는 까닭은, 비록 아브넬과 아마사도 다윗을 적대하긴 하였으나(삼하 2:8-29, 17:25) 그것은 전쟁시였고 후에는 오히려 화평을 도모했었기 때문이다(삼하 3:21, 19:13, 20:4). 반면 요압은 평화시에 개인적 복수심과 질투로 다윗 왕을 거슬러 그들을 살해했던 것이다(5절).
아브넬과 …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아도니야가 제단 뿔을 잡았을 때는 살려주었던(왕상 1:50-53) 솔로몬이 왜 요압의 경우에는 죽이라고 했는가? 그것은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출 21:14)는 율법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넬과 아마사를 고의로 죽인 요압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되었다.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개인적인 복수심과 질투로 평화시에 무참히 살해한 내용은 각각 삼하 3:22-27과 20:4-12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즉 요압은 다윗 왕 모르게 독단적으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살해했다. 그러나 비록 요압의 행위가 독단적 행위였더라도 그 사건들은 다윗에게 좋지 못한 오해가 생기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성심껏 치러 주었고(삼하 3:31-37), 솔로몬도 여기서 다윗 왕은 전혀 무관한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새삼 변명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J. Hammond)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미 그 당시에 다윗 왕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삼하 3:37).
다윗과 그의 자손 …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이제 솔로몬은 다윗 집안에 여호와의 평강이 영영히 깃들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하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그동안 다윗 집안에 드리워진 무고한 자의 피흘린 죄책을 말끔히 제거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31절). 이로 보아 우리는 다윗 혹은 솔로몬이 결코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원한으로 요압을 처형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경적 ‘죄의 보응 원리’(창 9:6, 출 21:14, 레 17:11)에 입각하여 공의롭게 요압을 처형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J. Hammond), 즉 다윗 혹은 솔로몬은 무고한 피값을 갚을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다윗 왕가로 돌아와 저주가 되는 것으로 믿었다. 반면 그 피흘린 죄책을 제거하면, 다윗 왕가는 여호와의 평강의 상태에 들게 될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이다(Wycliffe). 그런데도 일찍이 다윗이 즉시 이를 행하지 못한 것은 당시에는 요압의 세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삼하 3:39). 그러나 이제 솔로몬이 마침내 그 의무를 행한 것이다.
광야. ‘유다 광야’를 말한다(Keil, Hammond). 이곳은 베들레헴과 드고아에서 가까운, 돌이 많은 지역이다(수 15:6, 삿 1:16). 그런데 여기에 요압 조상들의 무덤이 있었다(Bähr).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에 딸린 정원에 무덤을 마련하기도 했다(Keil). 그런데 이처럼 넓은 정원 딸린 집은 귀족들의 거처였으므로, 집에 장사되는 사람은 주로 귀인(貴人)들에 국한되었다. 성경에는 사무엘이 이처럼 집을 장지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삼상 25:1). 따라서 비록 요압은 피의 보응 원리에 따라 처형은 당했지만, 생전에 그가 다윗을 위해 세운 많은 전공(戰功)이 참작되어 이처럼 용사의 죽음으로 예우 받은 것이다(J. Hammond).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이것은 이제 대제사장직이, 다윗이 부득이 세웠던 이원 체제에서(삼하 8:17) 사독 가문이 주도하는 일원 체제로 바뀌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한편, 이때로부터 세워진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 정통성은 후일 선지자 에스겔에 의해 인정되기도 했는데(겔 44:15, 16),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직은 B.C. 171년, 안티오쿠스(Antiochus)에 의해 짓밟혀 메넬라우스(Menelaus) 가계로 넘겨질 때까지 계속 수행되었다. 따라서 쿰란(Qumran)동굴을 거처로 삼았던 엣세네파(The Essenes)는 오직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만을 유일한 합법적 대제사장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회복을 기대했었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너는 예루살렘에서 … 나가지 말라. 일종의 주거 제한 및 감시를 위한 조치이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여 반란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J. Hammond). 한편 본래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8절)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 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요충지였다.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당시 사형 선고의 일반적 형식이다(Bähr, 레 20:9, 수 2:19). 그 의미는 ‘너 자신의 잘못(죄) 때문에 네가 죽는 것이다’란 뜻으로서, 곧 죽음(피흘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이 바로 죽임당하는 자(범죄자)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형 집행자는 그 피흘림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이다.
시므이의 두 종이 … 도망하여 간지라. 혹자는 종들이 주인 시므이와 사전에 짜고, 주인을 예루살렘 밖으로 인도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추측하기도 하나 근거가 없는 무리한 추측이다. 아마도 두 종은 주인 시므이에게는 주거 제한 명령(혹은 금족령)이 떨어진 상태이므로, 자신들을 쫓아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도망친 것 같다. 아무튼 두 종의 도망 사건 배후에는 다윗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8, 9절, 삼하 16:12).
가드.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삼상 21:10)로, 이스라엘과는 때로는 적대적이고 때로는 친교를 맺는 등 많은 정치적 연관을 갖고 있었던 블레셋의 주요 성읍이다(삼상 5:6-10, 17:4,52, 삼하 15:18-22, 대상 18:1). 여호수아 11:22 주석 참조.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 ‘마아가’는 삼상 27:2의 ‘마옥’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기스’는 일찍이 사울을 피해 망명한 다윗을 보호해준 인물이다(Keil). 삼상 21:10, 27:2 주석 참조.
가드로 가서. ‘가드’는 그 위치상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이므로(37절), 어쩌면 시므이는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므이가 자신의 맹세에 대해 철저한 사람이었다면, 예루살렘을 벗어나 가드까지 먼 길을 여행하기 전에 먼저 왕의 허락을 요청했어야 옳았다(Patterson). 만일 그러한 절차를 밟았다면, 시므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망간 종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므이는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맹세를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 온전히 회개치 못한 상태를 드러내었다.
아기스에게 나아가. 시므이는 직접 아기스 왕과 교섭하여 종들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은 충분히 정치척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이었다. 즉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망명이나 동맹 반란의 시도로 비칠 수 있었다(삼상 27:1,2, 29:1,2). 여하튼 시므이는 예루살렘을 나가지 말라는 솔로몬 왕의 명령(36절)을 정면으로 위배하였다.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을 향하여 시므이는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다(삼하 16:7, 8). 이때 시므이의 저주를 듣고 흥분한 아비새는 시므이를 단칼에 쳐죽이려 했다(삼하 16: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를 만류하며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삼하 16:11, 12).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원통함을 돌아보시고 시므이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오늘 공의롭게 보응하셨다(롬 1:18, 살후 1:5-9).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여기서 ‘이에’는 12절 이후의 일련의 사건을 지시한다. 한편 성경에서 ‘손’(히, 야드)은 보통 권세, 힘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IDB, 출 13:3, 시 78:72, 히 10:31). 그러므로 본 절은 ‘모든 장애와 위협을 제거하고 나니 솔로몬의 권세가 막강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은 12절과 함께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 그의 왕권 확립에 대한 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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