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서론
(1) 제목
고대 히브리어 정경에는 본래 열왕기서가 상하 구분없이 한 권으로 취급되었다. B.C. 3세기경 70인역 번역자들은 70인역의 편집 과정에서 상하 두 권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오늘날 처럼 열왕기서가 분리된 것은 1517년 봄베르그에 의해 출판된 히브리 성경 초판(the Rabbinic Bible, Venice, 1516-1517) 이후부터 였다.
(2) 저자
저자에 대한 견해는 (1) 선지자 예레미야로 보는 견해와, (2) 예레미야와 동시대 인물인 익명의 선지자적 역사가로 보는 견해가 있다.
(3) 기록 연대
기록 연대는 대략 B.C. 562/561~537/536년 경이다.
(4) 주제
열왕기서는 결코 세속사나 민족사가 아니라, 선민을 통치,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신정사요 종교사란 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러므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성실도 여하에 달려 있었으며, 열왕들의 통치 성공과 실패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부에 따라 결정됨을 보여준다.
1-4절. 다윗 왕의 노환(老患)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본서 저자가 초두에 다윗 왕의 노환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다윗 왕이 노환으로 인해 더 이상 국정(國政)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아도니야가 다윗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반란을 꾀하게 되는 배경을 알려 준다. (2) 같은 맥락에서 다윗 왕의 서거(逝去) 이전에 솔로몬이 급히 즉위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제공해 준다(J. Hammond). 한편 노환으로 인한 다윗의 나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는 본문은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느끼게 해준다.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목동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윗은 실로 파란 만장한 세월을 살았다. 이스라엘의 왕이된 이후에도 다윗은 많은 날들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그 결과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하고 성전 건축의 기반을 다지는 등 명군(名君)과 성군(聖君)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그러나 그 영화로웠던 세월들도 유수처럼 흘러 지나가고, 이제 다윗은 칠십 노인이 되어 바야흐로 인생의 황혼기를 맞게 되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삼하 5:4,5)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므로(2:11, 대상 29:27). 이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한편 히브리 원문상 ‘나이가 많아’(히, 바 바야밈)와 ‘늙으니’(히, 자켄)는 종종 같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관용어이다(창18:11, 24:1, 수 13:1).
이불. ‘이불’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가드’는 원래 ‘덮개’(covering)란 뜻을 가진 단어로서 의복, 겉옷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창 39:12, 왕상 22, 10) 침상이나 탁자를 덮는 어떤 것이란 뜻으로 사용되기 한다(삼상 19:13, 민 4:6). 여기서는 침상을 덮는 이불로 사용되었다(Hammond, Keil). 왜냐하면 다윗은 쇠약하여 침실의 침상에서 줄곧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15, 47절).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몸의 온기가 떨어진 것은 단순히 나이 많음에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다윗의 젊은 날의 고생 때문이기도 하다(Keil). 혹 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Hammond). 여하튼 다윗은 초기에는 외부적으로 망명 생활, 숱한 전쟁 등으로 인해 온갖 풍파를 겪었으며, 말년에는 내부적으로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으로 인해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다. 더욱이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 이후 하나님의 징계로 겪었던 집안의 불화는 결정적으로 다윗을 노쇠케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말년에 노환(老患)이 되어 다윗을 쇠약케 만든 듯하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한편, 본서 초두에서 이처럼 다윗의 몸의 증세를 상세히 알리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나라를 통치하기에 어렵게 되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원문에는 단수, 즉 한 사람의 말로 되어 있다. 곧 ‘우리 주’ 대신 ‘내 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상 그의 말은 다른 모든 신하들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다윗의 상태가 다윗의 모든 신하들을 근심케 하는 심각한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당시 뚜렷한 후계자가 발표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윗 왕의 쇠약은 국가적인 중대사였다. 한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여기서 신복들은 왕의 궁중 시의(侍醫)들을 가리킨다고 한다(Antiquities of the Jews).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히브리 원문에서 이 말은 허락을 요청하는 형태이다. 즉 ‘구하도록, 받들어 모시게 허락하소서’란 뜻이다. 따라서 다윗은 이를 허락하였다(3절). 이것은 신하들 뿐만 아니라 다윗 자신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음을 말해 준다.
젊은 처녀. [히, 나아라 베툴라] 남자 관계가 전혀 없는 나이 어린 처녀를 가리킨다. 이처럼 특별히 젊은 처녀가 요구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다윗 왕의 체온 저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젊은 동녀의 온기(溫氣)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2) 또한 그녀는 다윗 왕의 후궁(後宮)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처녀이어야만 했다(Hammond, Pattersonm, Austel).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젊은이의 온기를 받아 늙은 몸의 기운을 회복하는 방법은 고대 치료 의술 중 하나로서 갈렌, 그로티우스 등 고대 의사들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고대 헬라의 명의(名醫) 갈렌(Galen)에 의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의 체온으로 노쇠한 사람의 체온 저하를 방지하는 치료 의술이 실제로 있었다(Galen, Mathus medicus, 8.7). 그러므로 젊은 처녀로 다윗의 품에 눕게 한 것은 분명 그 같은 치료 방법을 통하여 다윗의 원기를 회복시켜, 그로 하여금 통치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게 한 것이 확실하다.
수넴. 수넴은 나사렛에서 대략 11.2 km 떨어진 소(小) 헬몬산(Mt. Little Hermon)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잇사갈 지파의 고을로 현재의 ‘술렘’(Sulem) 또는 ‘솔람’(Solam)이란 곳이다. 한편 에스드라엘론(Esdraelon) 평야 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넓고 비옥한 농토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고장이다(수 19:18, 삼상 28:4).
아비삭. 간호와 온기(溫氣)로써 다윗 왕을 받들어 모실 의무를 띠고 이스라엘 중에서 뽑힌 수넴 출신의 아리따운 처녀이다.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방랑자’이다. 여기서 ‘아브’ 또는 ‘아비’는 ‘아버지’란 의미로서, 히브리인들의 이름 중에서 흔히 발견되는 합성어이다. 예컨대 아비야, 아비아달, 아비멜렉, 아비가일, 아비새 등이 있다. 한편, 여기의 ‘수넴 여자 아비삭’이 솔로몬의 애인 ‘술람미 여인’(아 6:13)과 동일하다는 설(說)이 있으나,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스스로 높여서. 히브리어 ‘미트나세’는 분수에 맞지 않는 교만한 행동, 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독자적 행동을 가리킨다(민 16:3, 잠 30:32). 그런데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인 까닭은 6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중 장자의 권리가 가장 기초적인 이유였다. 왜냐하면 암살롬이 죽은 후 다윗의 남은 아들들 중에서는 아도니야가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이다(삼하 3:2-5, 왕상 1:6절 주석 참조). 따라서 때마침 다윗이 늙고 무기력해졌으므로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욕심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장자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선택이었다(신 17:15).그리고 이 선택은 이미 솔로몬에게 주어졌었다(삼하 7:12-17, 12:24, 25, 대상 22:6-10). 또한 아도니야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Keil, Bähr, Patters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한 것은 분수를 넘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행동이 된다. 그래서 아도니야의 왕위 찬탈 시도에는 ‘스스로 높여서’라는 부정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내가 왕이 되리라. 당시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했던 동기는 다음과 같다. (1) 왕자 중 아도니야의 연장자였던 암논은 다말 사건으로 인하여 피살되었고(삼하 13:29),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고 군대 장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18:24), 길르압(다니엘)은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보인다(대상 3:1). 따라서 아도니야는 당시 생존한 왕자들 중 최고 연장자였으므로 순서대로라면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다. (2) 또한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한 자로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6절). (3) 그리고 아도니야는 주위의 인물들 특히 군대 장관 요압이나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같은 사람들을 포섭할 만한 정치력이 있었고, 또한 그 같은 사람들에 의해 사주(使嗾)를 받았다(7절).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도니아는 교만해져서 왕이 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과 다윗 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사의 모든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결국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시 107:10, 11). 하물며 메시아의 가계로 선택 받은 다윗 집의 사건에 관해서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엘렌 화잇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왕위를 갈망한 자는 아도니야인데 그는 체용과 태도가 ‘심히 준수한 자’였으나 절조가 없고 무모했다. 그는 젊어서 조금도 제재를 받지 않았으니 이는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던’(왕상 1장 참조) 까닭이었다. 이제 그는 솔로몬을 왕위에 임명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반항하였다. 타고난 천품이나 신앙상 성품 양면으로 보아 솔로몬은 그의 형보다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기에 보다 더 적합한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고 더욱이 하나님의 선택이 분명히 지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도니야는 지지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죄과가 있었으나 요압은 지금까지 왕에게 충성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제사장 아비아달처럼 솔로몬을 대적하는 음모에 가담하였다”(부조와 선지자, 749).
호위병. 직역하면 ‘앞서 달리는 자’란 의미인데, 이는 곧 왕이나 방백의 행차에 앞서 달리면서 호위 및 길을 정리하는 일종의 경호원을 가리킨다. 일찍이 압살롬도 반역에 앞서 이처럼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을 준비한 적이 있다(삼하 15:1). 한편 A.D. 1세기 경의 유명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수리한 용모, 야심만만한 기질, 그리고 용의 주도한 정치력 등 모든 면에서 아도니야는 형 압살롬을 닮았다고 한다.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 이 말은 당시 아도니야가 다윗의 아들들 중 최고 연장자임을 밝히기 위해 기록되었다. 즉 다윗의 맏아들 암논은 근친 상간으로 인해 압살롬에게 죽고(삼하 13:28), 셋째 아들인 압살롬 역시 반역하고 죽었다(삼하 18:14, 15). 그리고 둘째인 길르압(혹은 다니엘, 대상 3:1)은 이후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려서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Keil, Hammond). 따라서 이제 남은 아들들 중에 최고 연장자는 아도니야 자신이었던 것이다.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도 준수한 용모를 가졌으며(삼상 9:2), 아비 다윗 왕에 대해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도 그러하였다(삼하 14:25). 그리고 다윗도 준수한 용모를 가졌다(삼상 16:12). 사실 지도자에게 있어 준수한 용모는 백성들의 인기를 끄는 데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요인이다. 그러나 육체의 아름다움 보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이 더 중요한 자격이다(삼상 16:70.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더라. ‘한 번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야마우’는 ‘그의 모든 날들로부터’(from his all days)란 뜻이다. 즉 아도니야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책망을 들은 일이 없음을 뜻한다. 이 말은 아도니야의 교만한 행위의 원인 중 하나가 다윗이 그를 적절히 훈계치 못한 데에 있음을 암시한다(잠 22:6). 여기에 더하여 다윗이 노쇠해지자 아도니야는 부친을 무시하고 동의도 없이 멋대로 왕이 되려 하였다(18절).
제사장 아비아달.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학살할 때 피하여 다윗의 보호를 받다가(삼상 22장), 이후 다윗 통치 하에서 사독과 더불어 대제사장이 된 인물이다(삼하 20:25). 오랜 역경의 세월 동안 다윗과 동거 동락해 온 그가 다윗의 뜻을 거스르고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추측컨대 아비아달은 당시 공동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을 시기한 끝에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해석된다(Keil, Rowland). 즉 성경 기록상 엘르아살 계통의 사독의 이름이 항상 이다말 계통의 아비아달의 이름보다 앞서서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삼하 8:17, 15:29, 35, 20:25). 당시 사독이 아비아달 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Keil, Bähr). 따라서 아비아달은 자신의 대제사장적 가문의 회복을 위하여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것 같다(Hammond). 그러므로 혹자(Thenius)의 견해처럼, 군대 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왕위 찬탈 음모 가담은 아도니야가 최고 연장자로서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였기 때문이라는 대의 명분을 따라서가 아니다(Keil). 다만 그들은 다윗 사후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실리적 목적으로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했다. 결국 요압의 처형(2:28-35)과 아비아달의 추방(2:26, 27)이라는 비극적 결과가 이들의 그러한 사욕을 입증해 준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브나야는 다윗의 전성기에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했던 인물이다(삼하 8:18).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은 외국인 용병으로 왕의 친위대를 구성하고 있었고(38절), 브나야는 이들의 대장이었다(대상 18:17). 본래 브나야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로서(대상 27:5) 레위인이었으나, 그의 뛰어난 무용(武勇)으로 인해 다윗 왕의 시위대장으로 발탁된 것 같다(삼하 23:20-23, 대상 11:22-25). 그러다가 브나야는 솔로몬의 명령을 받고 아도니야의 반란 사건에 가담한 요압을 죽인 후 대신 군대 장관이 된다(2:28-35).
선지자 나단. 다윗의 신임을 받는 왕궁의 조언자였다. 당시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나단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솔로몬에게 넘겨주도록 하였고(삼하 7:4-170, 밧세바를 취한 일로 다윗을 책망하기도 하였다(삼하 12:1-14). 그리고 나단은 솔로몬 출생시 하나님의 명으로 솔로몬에게 ‘여디디야’(‘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일이 있으므로, 일찍부터 나단은 솔로몬이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받은 바 있었다(삼하 12:24, 25).
시므이. 이 사람이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학자들(Keil, Bähr)은 솔로몬의 열두 관장 중 하나로 임명받은 엘라의 아들 ‘시므이’(4:18)와 동일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발트(Ewald)와 같은 학자는 시므이를 다윗의 형인 ‘삼마’(삼상 16:9, 삼하 21:12) 도는 ‘시므아’(삼하 13:3)로 보기도 하나 근거는 희박하다.
레이. 역시 미상의 인물이다. 요세푸스는 ‘다윗의 친구’로 보기도 하고, 에발트는 ‘다윗의 형제’로 보기도 하나 타당성은 없다(Hammond).
다윗의 용사들. ‘용사들’의 히브리어 ‘깁보림’은 두목, 수령의 뜻을 갖는다. 특별히 다윗의 37인의 용사들에게 사용되었다. 그들은 주로 가드 족속, 그렛 족속, 블렛 족속 등으로 구성된 용병들로서 다윗의 직접적인 통솔하에 있던 다윗의 오랜 전우들이다(삼하 23:8-39, 대상 11:10-12:18).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압과 아비아달이 구세대의 세력이라면, 사독과 나단 등은 후기 예루살렘에서 기반을 잡은 신흥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브나야를 비롯한 다윗의 용사들은 요압의 영향권하에서 벗어난 다윗의 친위 세력이었다. 따라서 아도니야는 이들을 포섭하는 데 실패했고, 이들 역시 다윗의 뜻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자라난 새 인물 솔로몬을 지지하는 것이 옳을 뿐 아니라 유리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 가담치 않았다.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이것은 단순히 잔치 음식이 아니고 제사에 쓰이는 희생제물이다(참고, 민 28-29장), 그런데 일찍이 사울이 왕이 될 때도 제사를 드렸고(삼상 11:15), 압살롬도 제사를 가장하여 반역을 자행한 바 있었다(삼하 15:7, 12). 마찬가지로 아도니야 역시 제사 잔치를 베풂으로써 반역 거사를 도모한 것이다. 이처럼 반역 거사에 제사 형식을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1) 제사 형식을 갖춤으로써 종교계 및 군부 실력자들의 회합 의도를 자연스럽게 은폐시킬 수 있으며 (2) 자신들의 거사 행위에 신적(神的) 근거 및 정통성을 부여하고 (3) 거사에 가담한 자들 상호간에 정신적, 종교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한편, 거사 장소로서 아도니야는 수도 예루살렘 남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에느로겔 근방을 택했는데, 이로 미루어 아도니야는 자신의 거사에 상당히 많은 세력의 지지를 확신하고, 거사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군대 장관 요압의 동조와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지원을 얻음으로써, 아도니야는 성공을 확신한 것 같다. 하지만 아도니야는 신정 국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하나님의 뜻’에는 유념치 않았다.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 다윗은 여러 왕비로부터 많은 자식을 두고 있었다. 대상 3:1-9에 의하면 아들만 대략 19명 가량 되는데, 그중 아도니야는 넷째였고, 솔로몬은 열째 아들이었다. 그리고 첫째 암논과 둘째 길르압(혹은 다니엘)과 셋째 압살롬 모두 죽었다(6절 주석 참조). 따라서 당시로서는 아도니야가 최고 연장자였으며, 솔로몬을 제외한 그의 동생은 모두 14명이었다(이외 많은 다윗의 첩의 아들들도 있었다). 이들 아도니야의 동생들도 아마 솔로몬 보다는 최고 연장자인 아도니야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도니야는 이들도 자신의 거사 잔치에 참여시켰다.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 다윗 왕의 근친이거나 또는 다윗 왕의 신하로서 궁중에 출입하는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일찍이 이들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아도니야는 이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거사 잔치에 초대한 것 같다. 따라서 이들 중에는 아도니야의 음모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없이 초대에 응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삼하 15:11, J. Hammond).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부왕(父王)인 다윗 조차도 모르게 은밀히 아도니야가 왕위 계승식을 추진한 것으로 보아 아도니야의 행위는 분명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인 솔로몬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코자 시도한 쿠데타였다고 볼 수 있다.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계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차’는 ‘모략, 흉계’ 등의 부정적인 뜻을 지니기도 하나, 여기서는 ‘상담, 의논’ 이란 의미가 강하다. 즉 ‘에차’는 남을 해하는 계교(욥 5:13)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나, 노인의 가르침(12:8)이나 지혜로운 자가 듣는 권고(잠 12:15) 등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아도니야의 반역 거사를 분쇄하고자 하는 나단의 계책은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해 행해지는 긍정적인 의미의 계책이라고 볼 수 있다.
솔로몬이 반드시 … 내 왕위에 앉으리라. 다윗은 솔로몬을 낳기 전, 성전 건축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미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대상 22:9), 솔로몬을 낳은 후 밧세바에게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 대하여 맹세한 바 있다(30절). 그러므로 선지자 나단이 신앙의 사람 다윗으로 하여금 이 약속을 회상하게 하도록 지시한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근거하여 호소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응답을 받는 길이다(창 32:9, 12, 출 32:13, 14).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중들었더라. 왕의 거동이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였음이 나타난다. 따라서 다윗이 침실에 머문 것이 일시적이 아니고 장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47절). 한편 본문과 같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다윗 왕의 궁중 기록의 전거(典據)는 분명 ‘선지자 나단의 글’(대상 29:29)이었을 것이다(J. Hammond).
어찌 됨이냐.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 라크’는 의미상 ‘무엇을 원하느냐’로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의 이러한 관심은 그가 여전히 밧세바를 총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공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기서 밧세바는 자신의 진술을 확대시켜 다윗이 왕위 계승자를 지목하는 일은 자신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대한 관심사라고 밝힌다. 사실 밧세바의 이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밧세바가 이 사실을 적절히 지적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능변가(能辯家)였던 것 같다.
죄인이 되리이다. ‘죄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핫타’는 영적, 도덕적 과오를 나타내기도 하지만(창 20:9, 애 5:7), 잃거나 놓침, 또는 틀림이나 빗나감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욥 5:24, 삿 20:16).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왕위 경쟁에서 실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역적 또는 반역자가 될 것을 뜻한다(Clericus, Bähr, Hammond). 이것은 역설적으로 이미 솔로몬이 왕위 후보자로 알려져 있었음을 입증한다(13, 17절). 그런데 그것은 다윗에 의해 생긴 위협이므로(17절) 다윗이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였다. 지금 밧세바는 그러한 점을 다윗에게 호소하고 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왕께 절하고. 이것은 왕비 밧세바의 인사와는 좀 차이가 있다(16절).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들이 예의를 표하고 있음을 특별히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반면 다른 왕들의 기록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찾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자세는 일찍이 나단이 다윗을 책망하기 위해 왔을 때와도 매우 다르다(삼하 12:1). 아마도 이는 다윗 왕에게 존엄한 통치자로서의 직무를 다할 것을 호소하려고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말 역시 사실 여부를 묻는 의문(Keil)이 아니라 나단의 뛰어난 화술이다. 즉 나단은 아도니야의 음모를 알면서도 다윗 앞에서는 그 자초지종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예언을 전한 바 있는(삼하 7:12) 자신을 제외시키고 그렇게 하실 수 있느냐는 투의 항의조로 다윗을 자극한 것이다. 이러한 나단의 화술은 즉각적이고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나단이 말하는 동안(22-27절) 밧세바는 물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밧세바가 온 다음엔 나단이 물러가 있었다(32절), 이것은 혹자들(Clericus, Thenius)의 견해처럼 나단과 밧세바가 상호 공모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취한 행동이 아니라, 왕의 허락 없이는 제삼자가 함께 할 수 없는 궁중 예법 때문이었을 것이다(Keil).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여기서 ‘오늘’(히, 하욤 하제)은 단순한 시간적 의미의 오늘(today)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성취의 날로서의 오늘(this today)의 의미가 크다(참고, 신 6:6, 9:3). 한편 히브리 원문상 ‘키’란 말이 본 절에서 세번 나오고 있는데, 이는 ‘정녕, 진실로’(surely)란 뜻으로서, 곧 진술하는 내용에 강조를 주고 있다(Ewald). 또한 ‘그대로’(히, 켄)란 말은 다윗의 행동이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지시된 내용을 따르는 순종의 행동임을 보여준다.
만세수를 하옵소서.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히 레올람’은 직역하면 ‘영원토록 사시옵소서’란 뜻으로서, 이 역시 신하가 왕께 드리는 기원이다(25절). 이 같은 형식의 기원문은 히브리 왕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 사용되었으나,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는 그들의 왕들에 대해 자주 사용하고 있다(단 2:4, 3:9, 5:10, 6:21, 느 2:3 등). 한편 본 절에서 밧세바의 이 말은 다윗 왕의 내린 명령에 깊은 감사를 표시함과 동시에 그것이 존엄한 왕명으로 받들어질 것임을 나타낸다(Keil).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 브나야. 이들은 솔로몬의 대관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인물들이었다. 즉 제사장은 왕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자로(39절), 그리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자로서 대관식을 진행해야 했다. 또한 군부 실력자인 브나야는 그 예식을 경호하는 일을 담당했을 것이다. 한편 로린슨(Rawlinson)교수는 위에 열거된 이름의 순서가 곧 왕국 내 지위의 차서(次序)라고 보나 확실치는 않다.
내 노새에 태우고. 히브리 원문상 ‘내 노새’에 해당하는 ‘하피르다 아쉐르 리’는 직역하면 “나에게 속한 그 노새”이다. 구체적으로 알 순 없으나 누가 봐도 그것이 다윗 왕의 노새인 줄 알아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바로 그 노새에 솔로몬이 탔다는 것은 솔로몬이 곧 다윗 왕의 후계자임을 널리 알리는 상징적 표시이다(Keil, Bähr, Hammond). 한편 여기서 ‘노새’(히, 피르다)는 여성형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암노새를 가리키는데, 이는 숫노새 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다윗 당시에만 해도 노새는 수입해 들여온 것으로서(10:25, 겔 27:14). 귀족 계급들이 주로 사용했던 교통 수단이었다(삼하 13:29, 18:9). 일반 평민은 대부분 나귀를 사용했다. 그러나 후에는 노새가 보다 일반적으로 보급되었고, 동시에 운송 수단으로써도 널리 사용되었다(W. S. McCullogh).
기혼으로. ‘기혼’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1) 본문에서 기혼이 예루살렘 보다 낮은 지형으로 나타나고 있고(33, 40절), (2) 이러한 표현은 흔히 예루살렘 동편의 기드론 골짜기를 지칭할 때 사용되며, (3) 갈대아 사본, 수리아 사본 등 여러 고대 사본 등이 기혼을 이 골짜기의 실로암 못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미루어 기혼은 곧 실로암인 것으로 추정된다(J. Hammond). 당시 이곳은 예루살렘 성의 주요 수원지(水源池)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Patterson). 더구나 이곳은 아도니야의 잔치 장소인 에느로겔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도니야의 음모를 분쇄하려고 일부러 기혼을 택하였을 것이다. 한편 데니우스(Thenius)는 여기 ‘기혼’을 ‘기드온’으로 고쳐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대제사장 사독이 기브온 성막에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단순한 추측일 뿐 타당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과 기브온과는 약 3시간이나 떨어진 먼 거리이므로 아도니야의 대관식보다 늦게 거행된 솔로몬의 대관식이 아도니야의 대관식이 다 마치기 전에 벌써 끝나 예루살렘까지 돌아오기에는(41절) 시간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뿔나팔을 불며. ‘뿔나팔’(히, 쇼파르)은 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 갑작스럽게 찢어지는 듯한 높은 소리가 난다. 이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나(레 25:9, 암 3:6), 특히 왕의 즉위식 때에 사용되었다(삼하 15:10, 왕하 9:13, 11:14). 따라서 다윗 왕은 솔로몬의 대관식 때에도 이것을 불어 모든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아도니야의 무리들에게도 그 소리가 들리도록하여 솔로몬의 왕위 즉위가 만천하에 공식 선포되고 드러나도록 하였다.
아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참으로, 진실로’의 뜻을 갖는 ‘아멘’(Amen)은 보통 이미 말한 것에 대한 동의, 확언, 응답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브나야의 이 말은 하나님의 사후 승인을 요청하는 말이 아니라 말씀하시면 꼭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시 33:9)처럼 다윗의 말이 그대로 성취되기를 바라는 강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이다(Keil).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 기름 부음의 의식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성별하셨다는 의미(34절 참고) 외에도 하나님께서 또한 여호와의 영(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Bähr, 삼상 16:13). 실제로 사울과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 곧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삼상 10:9,10, 삼상 16:13).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니. 여기서 ‘갈라지다’(히, 바카)란 말은 ‘찢다, 쪼개다, 부수다’ 등의 뜻을 가지는 바, 위의 표현은 그 소리가 땅을 진동시킬 만큼 솔로몬을 추종하는 백성들의 무리가 많았고 또한 즐거움으로 사기 충천한 사실을 가리키는 과장법적 표현이다(45절).
요압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전쟁터를 많이 경험한 노련한 군인 요압이 특히 민감하게 나팔 소리에 반응하고 있다(Hammond, Bähr). 일찍이 요압은 압살롬이 반역하여 왕이 될 때에 이러한 나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삼하 15:10). 그러나 지금은 반역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에게 들린 나팔 소리로 인해 요압은 그 의미를 예감하고 불안해 하였을 것이다.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삼하 18:27에서도 나타난다. 즉 ‘좋은 사람은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다윗의 말이다. 아마도 이 같은 말은 그 무렵 속담처럼 통용되었던 것 같다(삼상 24:13). 따라서 여기서 ‘용사’란 말은 ‘좋은 사람’의 의미를 가진 인사말일 것이다(J. Hammond). 한편 성경에서 ‘용사’와 ‘아름다움’은 흔히 결부되어 등장한다(참고, 삼하 1:17 이하의 다윗의 노래). 여하튼 아도니야는 성중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와 나팔 소리에 내심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짐짓 자신과 무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처럼 허세 섞인 말을 한 것이다(Keil, Hammond).
솔로몬도 왕좌에 앉아 있고. 여기서 ‘왕좌’(히, 키세)는 ‘왕위’(王位)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 말은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주권자임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출 11:5, 삼하 7:13, 대하 29:1 등). 한편 솔로몬은 부왕(父王)인 다윗이 아직 죽기 전, 왕위에 즉위했다. 이처럼 노환, 질병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선왕(先王)의 생전에 후왕(後王)이 왕위에 올라 외형상 두 왕이 한 나라를 공동 통치하는 경우를 ‘섭정 제도’(the system of Co-regency)라고 하는데, 이 제도는 당시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 흔히 발견되는 제도였다. 이스라엘에서는 다윗과 솔로몬 때를 기점으로 후대 왕국의 역사에서 자주 나타나게 된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다윗 왕의 이 동작을 신하들의 축복 인사에 대한 답례로 보기도 한다(Thenius). 그러나 48절 초두의 ‘웨감’(and also)은 47절 동작의 목적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침상에서 몸을 굽혀 절한 다윗 왕의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 행위인 것이다(Hammond, Keil, Bähr). 한편 이처럼 침상에서 경배하는 행위는 노년의 야곱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또한 어떤 맹세나 선포에 대한 확증의 의미를 띠기도 한다(창 47:31).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아도니야의 불의한 반역 거사 초대에 응했던 무리들(9절)이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듣자 생명에 위협을 느껴 뿔뿔이 해산한다. 여기서 (1) 그들이 그토록 쉽게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애초부터 확신이 없었음을 보여주고, (2) 또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당황하여 급히 일어남은 용기가 없었음을, (3) 그리고 각기 제멋대로 처음부터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 모인 무리들인 것을 보여 준다.
솔로몬 왕이 …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아도니야는 자신의 입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시인하고, 자신을 그의 ‘종’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제 왕위(王位)를 포기했음을 고백한다. 아울러 목숨만을 구걸하는 겁장이로 나타남으로써, 그의 오만함이 솔로몬의 권위 아래 여지없이 부숴진 사실이 적나라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교활했다. 일단 대세가 솔로몬쪽으로 완전히 기울자 이처럼 굴복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역모를 계획하다가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다(2:13-25).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히브리인들 맹세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가 들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맹세의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만일 누가 맹세를 하고도 그 맹세를 어기면 그는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범한 자가 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맹세는 그 엄숙함과 불변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아도니야도 자기의 생명 보장에 대해 솔로몬이 맹세로써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선한 사람일진대. 문맥상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이제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불의한 욕심을 버리고, 더 이상 선동적인 역모를 꾀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지낸다면 그의 생명은 확실히 보장될 것이란 뜻이다(Patterson, Bähr).
악한 것이 보이면. 여기서의 ‘악함’(히, 라)이란 도덕적 악함이라기 보다는 왕이 되려는 ‘불순한 의도’를 말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이 악함의 성격은 ‘비겁함’이다. 왜냐하면 본 절에 ‘악함’에 대비되는 ‘선함’(히, 벤 하일)의 원어적 의미는 ‘용감성’이기 때문이다(공동번역은 실제로 ‘용감한 사람’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는 처음부터 떳떳하지 못하게 몰래 솔로몬과 그의 세력을 해치우려 했던 비겁한 행위로 비쳐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솔로몬은 만일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욕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비겁한 역모를 꾀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엄중히 경고하면서 조건부로 아도니야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Previous
List